[스크랩] 서울문화투데이 2016년 8월19일

▲ 조문호 기자/사진가


미술품거래가 꽁꽁 얼어붙은 현실 속에 한 가닥 신선한 바람이 인다.

바로, 다큐멘터리 사진이 서서히 뜨고 있다는 것이다.

조영남 그림 대작과 이우환 위작 사건에다 국가브랜드 '크리에이티브 코리아 디자인 표절 의혹, 그리고 전직 문체부 간부의 도둑질에, 그 것도 모자라 엉터리 그림을 비싸게 강매한 짜증나는 뉴스가 넘쳐나는 시국이라 더욱 신선하게 다가온다.

요즘 들어 예술을 사기라는 사람들이 많은데, 예술은 사기가 아니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이야기는 예술가들이 갖고 있던 권위와 기존 방식만 옳다는 선입견을 말한 것이지, 창작 행위 그 자체를 말한 것이 아니다.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없이 살 수 없다지만, 예술을 사기로 여기고, 예술가를 유린한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모든 예술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생이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돈이 최고라는 지금의 황금만능주의는 헤르만 헤세의 명언을 무색케 한다.

‘독제에 저항한 침묵의 언어’라는 한국단색화 계열 화가들의 궤변도 민망하고, 단색화열풍이 시들하니, 돈 가진 그림 장사들의 민중미술 띄우기도 속보인다. 아무리 바람 잡으려 하지만 도무지 지갑을 열지 않는 것이다. 가진 자들은 가진 자대로 돈 단속하고, 없는 자들은 없는 자대로 눈 돌릴 겨를이 없으니, 오로지 작가들만 죽을 지경이다.

그런데, 이 꽁꽁 얼어붙은 겨울 아닌 복더위에 한 가닥 봄바람이 일고 있다.

그것도 여태껏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한, 사진 중에서도 설움을 가장 많이 받은 다큐멘터리사진이라니 도무지 믿기지 않는 것이다. 더 고마운 것은 기득권자들의 돈 늘리기 놀음이 아니라, 대중들의 순수한 바람이라 더 눈물겹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이제사 사진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채고 있다는 것이다. 예술이 사기의 허울에서 헤매면 헤맬수록 기록의 가치에 대한 진실성은 더욱 더 빛 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제일먼저 빛을 본 사진가는 우리나라 국토를 기록하는 다큐사진가 임재천씨다. 삼 년 전 제주도를 시작으로 강원도와 부산으로 이어지는 프로젝트에 매년 후원자들이 나서 그의 작업비용을 지원해 주고 있다. 한 지역이 끝나는 전시에서는 후원자들이 좋아하는 작품을 서로 나누어 갖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예술 나눔 프로젝트다.

지난달의 강원도 전시를 성공적으로 끝내며, 다시 부산 작업에 대한 후원자를 모집했는데, 몇일 전 후원자 50명이 모두 성원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세 차례의 프로젝트를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SNS의 위력이었다.

두 번째 성공적으로 전시를 하고 있는 다큐사진가는 성남훈씨다. 오는 23일까지 강남 ‘스페이스22’에서 열리는 성남훈의 초창기 빈티지 시리즈 ‘꿈은 시간을 모른다’전은 전시가 중반에 이르렀으나 벌써 많은 작품들이 팔려나가는 이변을 보이고 있다. '스페이스22'에서 선정한 작품을 일반인들이 소장한다는 뜻으로 만들어진 이 아트마켓 프로젝트인 '셀렉션 앤 컬렉션‘은 우리나라 사진시장의 숨통을 터서 전업 작가들을 지원하려는 시도였다. 집시사진을 포함한 많은 사진들을 구분해, 10장씩 묶은 소장용 시리즈도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러한 다큐멘터리 사진의 선전에 힘입어 인사동 ‘아라아트’에서도 다큐기획전이 준비되고 있다. 30년 동안 전국 오일장 600여개를 기록한 여성다큐사진가 정영신의 ‘장날’은, 80년대 기록된 향수어린 장날 사진이라 벌써부터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오는 24일부터 열리는 이 기획전의 후원자를 모집해 우리나라 오일장과 함께하려는 나눔의 미덕까지 갖춘 프로젝트다.

허구보다 진실이 앞서고, 돈의 논리보다 삶의 가치가 앞서고, 욕심보다 인정이 앞서는, 이 반가운 현상에 한 가닥 희망을 건다.



임재천씨의 ‘한국의 발견’ 강원도 편이 지난 7월16일부터 30일까지 ‘스페이스22’에서 열리고 있다.

작가와의 대화가 있었던 지난 21일,  ‘눈빛출판사’와 함께해 온 사진가들이 사진전을 보러갔다.

강원도 곳곳의 아름다움을 살펴보며, 사진전의 성과와 보완해야 할 점들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눈빛출판사’ 이규상대표가 의외의 선언을 했다.
“앞으로는 싸움 닭 노릇 그만하고, 좋은 책 만드는데 전념하겠습니다.”
갑작스런 심경변화를 정확히는 모르지만, 잘 생각한 것 같았다.


전체 사진인들을 포용해야 할 사진출판사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게, 늘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진계을 바로 세워야한다는 이대표의 정의감이 사라진 것은 아닐 게다.

이제, 그를 대신해 사진인들이 힘을 모아 나서야 할 차례다.

참석한 분들이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임재천씨 사진전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성과를 격려하는 분들이 많았지만, 문제점을 지적하며 걱정하는 분도 있었다.


평생 강원도와 함께 해 온 엄상빈씨는 안타까운 점이 더 많았던 모양이다.

넓은 강원도 산하를 일 년이란 시한 아래 작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작업을 마무리할게 아니라, 지속적인 관심아래 보충촬영 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지난 해 ‘제주도’ 작업에 이어 전 국토를 기록하는 임재천씨의 ‘한국의 발견’ 프로젝트는

사전에 후원자를 모집하여, 그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추진되는 작업이라,

많은 기대 속에 사진인들의 지대한 관심을 받아 왔다.

전시작도 소장자인 후원자가 골란 사진인데, 전문가의 시각과는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었다.

대개 아름다운 풍경 위주로 골랐는데, 아무리 소장자 취향이 우선이라지만,

그에 따르다 보면 작가의 자리가 없어질 뿐더러, 작품의 질이 떨어질 것을 우려한 것이다.

자연 풍경 못지않게, 그 땅에서 살아가는 삶의 자취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길 바라며, 모두들 축배를 들었다.


이 자리에 함께한 분은 임재천씨를 비롯하여 신임 ‘스페이스22’ 관장으로 취임한 이유홍씨, 

 ‘눈빛출판사’ 이규상씨, 사진가 엄상빈씨와 홍성인 내외, 김보섭, 김상훈, 김 원, 남 준, 한선영,

하지권, 김지연, 김봉규씨 등 열 다섯 명이었는데, 뒤늦게 성남훈, 장 숙씨도 함께했다.

글 / 조문호


















































 

 

‘2015 북경국제사진제’에 참가할 한국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의 첫 미팅이
지난 18일 오후3시 인사동 ‘귀천’에서 있었다.

그 자리에는 한국사진가들의 참여를 추진한 ‘눈빛출판사’ 이규상대표를 비롯하여
기획자인 류은규씨, 다큐사진가 엄상빈, 김보섭, 조문호, 임재천씨 등
모두 6명이 모였다.

 

오는 10월24일부터 11월1일까지 열리는 축제에 다섯명의 국내 작가가 참여하게 되는데,

각각 20여점씩 출품하게 된다고 한다.

류은규씨의 진행 상황을 전해 듣고, 준비할 것들을 챙기기도 했다.
참가할 사진가들의 소통을 위해 엄상빈씨가 통역원을 제공한다는 이야기도 했다. 

모임이 끝난 후, 인사동 ‘유목민’으로 자리를 옮겨 대낯부터 술 자리를 만들었다.
그런데 술집으로 내가 이끌어 놓고, 술값은 엄상빈씨가 내 버렸다.
그 술값이 만만 찮을텐데...

사진 : 류은규, 조문호 / 글 : 조문호

 

 

 

 

 

 





ㆍ원로부터 신진 작가까지 주제가 있는 사진집… “사진, 편식하지 마세요”

 

이미지 가공이 범람하는 시대에 ‘기록과 재현’이라는 사진의 본질에 충실한 미공개 신작 중심의 사진집 ‘눈빛사진가선’ 1차분 10권이 출간됐다.

사진전문 출판사인 ‘눈빛’이 펴내는 ‘눈빛사진가선’은 원로부터 신진 작가까지 각자 일관된 주제 아래 작업한 작품 50여점을 싣고, 사진비평가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 필자들의 해설을 수록한다.

​1차분은 구본창의 ‘DMZ’(해설 신수진), 김금순의 ‘동해남부선’(이광수), 김문호의 ‘온 더 로드’(최옥정), 김병훈의 ‘산책이 그리운 이유·동물학’(진동선·박영택), 김지연의 ‘삼천원의 식사’(김영춘), 민병헌의 ‘잔설’(김화자), 변순철의 ‘전국노래자랑’(최범), 신은경의 ‘가마미해수욕장’(송수정), 임재천의 ‘소양호 속 품걸리’(강영숙), 임재천의 '소양호 속 품걸리'(강영숙), 전민조의 '손에 관한 명상’(미재 김원숙)이 나왔다.

눈빛의 이규상 대표는 “사진계가 디지털 사진문화의 거대 소비집단이 되고, 현대미술에 매몰돼버린 상황이지만 오늘도 사진 본질을 구현하는 열정적 작업을 하는 사진가들의 작품세계를 널리 알리고, 용기를 주고 싶다”며 “유명 사진가 몇명에게만 관심을 두는 대중의 ‘편식’을 변화시키는 데도 사진가선이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사진출판의 어려움이 가중되지만 보다 많은 이들이 즐길 수 있도록 사진집 단가는 낮추고, 사진의 질적 수준은 높이려 했다”며 “사진가선이 향후 100권, 200권을 넘어서 한국 사진사의 1차 사료이자, 사진에 대한 개념과 사진미학의 재정립에도 이바지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각권 110쪽 내외·1만2000원.

 

[경향신문]



[중앙일보]
사진작가 임재천의 전국 답사기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시장·포구 … 낡은 집과 아파트
평범함 속의 아름다움 잡아내



사진가 임재천은 2000년부터 2010년까지 방방곡곡을 떠돌았다. 2004년 8월 경북 안동 하회마을에서 만난 뱃사공은 아직도 저 푸른 물빛을 바라보며 강을 건너고 있을까. [사진 눈빛]


한국의 재발견
임재천 지음, 눈빛
175쪽, 4만원

국내의 대표적인 사진 전문 출판사 ‘눈빛’이 창립 25주년 기념으로 사진가 임재천의 첫 작품집을 발간했다. 사반세기 동안 한 분야의 전문 출판사를 운영해 온 자긍심이 이 작품집에 묻어있을 법하다.

 의도인지 우연인지 알 수 없으나 임재천 또한 10여 년간 한 눈 팔지 않고 한국을 찍어 온 사진가다. 고집 대 고집의 만남이랄까. 하지만 고집만으로는 세월을 견딜 수 없는 법이다. 안목이 따라주지 않으면 지속하기 어렵다. 결국 이 작품집은 외곬의 출판인이 체득한 안목과 또 다른 외곬 사진가의 안목이 맞아 떨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의 재발견』은 제목에서부터 기획 의도를 엿볼 수 있다. 1980년대 ‘뿌리 깊은 나무’에서 출간한 ‘한국의 발견’ 시리즈를 연상시킨다. 출판인으로서의 한창기(1936~97) 선생의 면모가 유감없이 드러나는 이 시리즈는 기획부터 편집, 필진에 이르기까지 한마디로 출판의 ‘모범’에 가까웠다. 사진 역시 그렇다. 한국에 대한 방대한 문화인류학적 보고서를 위해 사진가로 참여한 강운구·주명덕 등은 거기에서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2000년부터 10여 년 동안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한국의 지리·문화·풍속 등을 꼼꼼히 관찰하고 경험해 온 사진가라면 누구나 이런 기획을 꿈꾸어 봤을 법하다. 어쩌면 ‘오만한’ 기획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최소한의 오만 없이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진정 가치 있는 일은 어디에도 없다. 중요한 것은 시작이고 결과는 나중에 판단할 문제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재발견』은 시도만으로도 이미 가치 있는 책이다.

 이번 작품집은 도시, 삶, 사람, 전통문화, 자연으로 나뉘어 있다. 물론 도시에도 사람이 있고 전통문화도 삶의 한 양태이므로 각 장은 서로 섞인다. 그럼에도 이 구분 덕택에 독자는 작가가 전달하려는 메시지에 구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작가가 ‘재발견한’ 한국의 모습을 더욱 분명히 드러낸다. 사진은 단지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창’이 아니라 사진가의 눈을 통해 걸러진 ‘이미지’인 것이다. 그렇다면 임재천의 눈이 본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거기 사는’ 현지인의 눈에는 일상이어서 스쳐 지나가 버리거나, 집중하지 않으면 눈치 채지 못하는 평범한 환경이 사각의 프레임 속에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얼마나 오래 됐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이 벗겨져 나간 벽면의 페인트, 모든 매장의 전기 계량기가 모여 있는 시장의 칙칙한 관리사무소, 볼품없이 벽면에 쌓인 고철덩어리 자전거 등, 삶의 환경은 자꾸만 세월에 밀려나간다.

 유난히도 자주 등장하는 개인의 뒷모습은 도시의 고독한 삶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며, 삶에 끼워 맞춰 대충 지었던 낡은 집과 개발의 광풍에 휩싸여 계획적으로 건설한 대형 건물들의 부조화도 자주 눈에 띈다. 그 틈에서도 억척스런 삶이 꿈틀거리고 있다. 시장과 포구, 농가의 사람들이 그렇다.

 한편 작가의 눈에 전통문화는 고궁이나 서원, 민속마을, 사찰 등에만 있다. 관광지가 되어 이국적인 정취마저 풍기는 곳이다. 자연은 어떤가. 얼핏 보면 여전히 아름답지만 거기에도 부조화가 있다. 탁 트인 시야를 가로막는 어지러운 전선들, 편리와 이익을 위해 흉측하게 도려낸 도로와 난개발의 잔해가 도처에 널려있는 것이다. 그래도 자연에 대한 그리움 탓에 산과 강을 찾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을 위한 인공의 시설물은 다시 자연을 망친다. 우리에게 ‘아름다운’ 풍경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은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작가는 후기에서 ‘조국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이 그간의 사진작업을 이끌어온 원동력이라고 밝힌다. 애정이 있는 한 아름답지 않은 것은 없다. 반대로 애정이 없다면 어떤 것도 아름답지 않다.


결국 『한국의 재발견』은 애정과 그리움으로 본 한국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풍경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이 지점에서 아름다움으로 바뀐다. 작가가 독자와 공유하고자 하는 것도 그런 아름다움이 아닐까 싶다.

박평종 사진평론가

◆ 박평종 1968년 생.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파리 10대학에서 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학과 현대사진 등을 강의하며 작가와의 소통을 중점으로 한 비평 활동과 대중적 글쓰기를 하고 있다. 『한국사진의 선구자들』 『한국사진의 자생력』『매혹하는 사진』『사진가의 우울한 전성시대』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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