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사진작가 임재천의 전국 답사기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시장·포구 … 낡은 집과 아파트
평범함 속의 아름다움 잡아내



사진가 임재천은 2000년부터 2010년까지 방방곡곡을 떠돌았다. 2004년 8월 경북 안동 하회마을에서 만난 뱃사공은 아직도 저 푸른 물빛을 바라보며 강을 건너고 있을까. [사진 눈빛]


한국의 재발견
임재천 지음, 눈빛
175쪽, 4만원

국내의 대표적인 사진 전문 출판사 ‘눈빛’이 창립 25주년 기념으로 사진가 임재천의 첫 작품집을 발간했다. 사반세기 동안 한 분야의 전문 출판사를 운영해 온 자긍심이 이 작품집에 묻어있을 법하다.

 의도인지 우연인지 알 수 없으나 임재천 또한 10여 년간 한 눈 팔지 않고 한국을 찍어 온 사진가다. 고집 대 고집의 만남이랄까. 하지만 고집만으로는 세월을 견딜 수 없는 법이다. 안목이 따라주지 않으면 지속하기 어렵다. 결국 이 작품집은 외곬의 출판인이 체득한 안목과 또 다른 외곬 사진가의 안목이 맞아 떨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의 재발견』은 제목에서부터 기획 의도를 엿볼 수 있다. 1980년대 ‘뿌리 깊은 나무’에서 출간한 ‘한국의 발견’ 시리즈를 연상시킨다. 출판인으로서의 한창기(1936~97) 선생의 면모가 유감없이 드러나는 이 시리즈는 기획부터 편집, 필진에 이르기까지 한마디로 출판의 ‘모범’에 가까웠다. 사진 역시 그렇다. 한국에 대한 방대한 문화인류학적 보고서를 위해 사진가로 참여한 강운구·주명덕 등은 거기에서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2000년부터 10여 년 동안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한국의 지리·문화·풍속 등을 꼼꼼히 관찰하고 경험해 온 사진가라면 누구나 이런 기획을 꿈꾸어 봤을 법하다. 어쩌면 ‘오만한’ 기획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최소한의 오만 없이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진정 가치 있는 일은 어디에도 없다. 중요한 것은 시작이고 결과는 나중에 판단할 문제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재발견』은 시도만으로도 이미 가치 있는 책이다.

 이번 작품집은 도시, 삶, 사람, 전통문화, 자연으로 나뉘어 있다. 물론 도시에도 사람이 있고 전통문화도 삶의 한 양태이므로 각 장은 서로 섞인다. 그럼에도 이 구분 덕택에 독자는 작가가 전달하려는 메시지에 구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작가가 ‘재발견한’ 한국의 모습을 더욱 분명히 드러낸다. 사진은 단지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창’이 아니라 사진가의 눈을 통해 걸러진 ‘이미지’인 것이다. 그렇다면 임재천의 눈이 본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거기 사는’ 현지인의 눈에는 일상이어서 스쳐 지나가 버리거나, 집중하지 않으면 눈치 채지 못하는 평범한 환경이 사각의 프레임 속에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얼마나 오래 됐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이 벗겨져 나간 벽면의 페인트, 모든 매장의 전기 계량기가 모여 있는 시장의 칙칙한 관리사무소, 볼품없이 벽면에 쌓인 고철덩어리 자전거 등, 삶의 환경은 자꾸만 세월에 밀려나간다.

 유난히도 자주 등장하는 개인의 뒷모습은 도시의 고독한 삶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며, 삶에 끼워 맞춰 대충 지었던 낡은 집과 개발의 광풍에 휩싸여 계획적으로 건설한 대형 건물들의 부조화도 자주 눈에 띈다. 그 틈에서도 억척스런 삶이 꿈틀거리고 있다. 시장과 포구, 농가의 사람들이 그렇다.

 한편 작가의 눈에 전통문화는 고궁이나 서원, 민속마을, 사찰 등에만 있다. 관광지가 되어 이국적인 정취마저 풍기는 곳이다. 자연은 어떤가. 얼핏 보면 여전히 아름답지만 거기에도 부조화가 있다. 탁 트인 시야를 가로막는 어지러운 전선들, 편리와 이익을 위해 흉측하게 도려낸 도로와 난개발의 잔해가 도처에 널려있는 것이다. 그래도 자연에 대한 그리움 탓에 산과 강을 찾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을 위한 인공의 시설물은 다시 자연을 망친다. 우리에게 ‘아름다운’ 풍경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은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작가는 후기에서 ‘조국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이 그간의 사진작업을 이끌어온 원동력이라고 밝힌다. 애정이 있는 한 아름답지 않은 것은 없다. 반대로 애정이 없다면 어떤 것도 아름답지 않다.


결국 『한국의 재발견』은 애정과 그리움으로 본 한국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풍경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이 지점에서 아름다움으로 바뀐다. 작가가 독자와 공유하고자 하는 것도 그런 아름다움이 아닐까 싶다.

박평종 사진평론가

◆ 박평종 1968년 생.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파리 10대학에서 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학과 현대사진 등을 강의하며 작가와의 소통을 중점으로 한 비평 활동과 대중적 글쓰기를 하고 있다. 『한국사진의 선구자들』 『한국사진의 자생력』『매혹하는 사진』『사진가의 우울한 전성시대』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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