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강한 출판사 <15> 눈빛

 

 

사진 전문 출판사 눈빛이 낸 첫 책은 프랑스 영화감독이자 사진가 크리스 마커(2012년 작고)의 <북녘 사람들>이었다. 그때가 1989년 2월. 바로 그 전해 11월에 출판사 등록을 한 눈빛이 올해 25돌을 맞았다. ‘창립 25주년 기념 도서전’(11월26일~12월22일)을 열고 있는 서울 종로구 통의동의 사진전문 한옥 갤러리 ‘류가헌’ 전시장 입구에 이런 내용의 걸개자막이 걸려 있다. “당시만 해도 누드나 자연풍광 위주의 아름다움을 내세운 이른바 살롱사진이 주류였다. 흑백사진 140여점을 통해 분단의 아픔을 보여준 다큐멘터리 <북녘 사람들>은 사진계에 전혀 다른 사진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환기시켰다.”

 

3일 마포구 상암동 사무실에서 만난 이규상(53) 눈빛 대표는 “5년 만에 2000부가 모두 팔린 <북녘 사람들>이 새로운 사진 독자층을 형성했고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에게도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고 했다. 대중출판물로서 사진집의 유통 가능성 또한 그때 검증됐다. 그 가능성은 25년이 지난 지금 연 매출 3억~4억원 규모의 작지만 나름 탄탄한, 명실상부한 한국 유일의 사진 전문 출판사 눈빛의 건재로 현실화했다.

 

“25돌 기념식은 기념 도서전으로 대신했다. 눈빛이 낸 모든 도서(절판·품절품은 제외)를 이렇게 한자리에서 볼 수 있고 할인판매도 하는 행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신간 사진집 3종도 냈다. 임재천의 <한국의 재발견>, 정태원의 <서울발 사진종합>, 이창성·전민조 등의 한국사진작가협회가 엮은 <한국의 보도사진>이다.” 도서전 반응은 “기대 이상으로 좋다”고 했다. <한국의 재발견>은 출간 열흘 만에 재판을 찍었다.

 

“소비하는 매체가 아니라 우리 삶과 역사에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있는 미디어로서의 사진”, “사진을 위한 사진이 아니라 삶과 연계된 사진”을 추구해 온 이 대표의 사진관은 류가헌 벽에 걸린 25점의 사진에 잘 드러나 있다. 그중 하나인, 구와바라 시세이가 1965년 입을 굳게 다문 채 무리지어 한일협정 반대 침묵시위를 벌이는 대학생들 모습을 정면에서 찍은 사진은 저항의 에너지가 응축된 터질 듯한 긴장감과 함께 전율에 가까운 역사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이 대표는 사진으로 우리의 역사를 쓰고 싶어한다. 그것도 권력 중심의 역사가 아닌 이름없는 사람들의 역사를. 하지만 이 대표 자신은 사진가가 아니다. 서울예술대 문창과를 나온 문학도다. “문창과 다닐 때 출강한 이기웅 열화당 대표한테서 편집실기를 배웠다. 그때 열화당에 특채돼 3년간 미술 이론서와 미술연감, 사진문고 시리즈를 만들면서 편집자의 기본기를 익혔다.” 같은 문창과에서 만난 안미숙(51)씨와 결혼한 지 3개월 만에 사표를 내고 사회과학 출판사 거름이 재정 지원을 하던 눈빛 팀에 합류했다. 1988년 11월 눈빛이 독립하면서 이 대표가 인수했다. 그때 망설이던 이 대표의 결심을 끌어낸 사람이 지금 편집장을 하고 있는 아내 안씨였다. “내가 아니었으면 지금 눈빛도 없을 것”이라며 안씨는 웃었다.

 

눈빛 직원은 이 대표와 안 편집장, 그리고 5년째 근무 중인 편집자 성윤미(29)씨, 세 명이 전부.

 

눈빛의 주종목은 사진집이다. 눈빛의 총 500여종 책 중 가장 비싼 건 정봉채의 <우포늪>으로, 정가 7만원이다. 평균 3만~4만원대. 사진집이 비싼 것은 일반 책의 3배나 되는 인쇄비와 종이값 때문이다.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종당 1쇄는 보통 1000부다. 편차가 있지만 3~4년 정도면 다 팔린다.” 6개월에 매진되기도 한다. 이경모의 <격동기의 현장>은 6000부, 산업화·도시화의 이면을 담은 김기찬의 <골목안 풍경>은 5000부 정도 나갔다. 베스트셀러라 하긴 어렵지만 사진집으로는 대박에 가깝다. <한국의 재발견>은 에스엔에스를 통해 사전판매 예고를 했는데, 200부 정도를 예상했으나 450여권의 예약이 들어왔다. 구와바라나 1970년대 서울 청계천 판자촌을 찍은 <노무라 리포트>를 낸 노무라 모토유키도 꾸준히 나간다. 최민식의 <휴먼 전집>과 이론서인 한정식의 <사진예술 개론>도 꾸준하다.

 

“팔리는 기간이 좀 길긴 해도 깔아 놓은 종수가 많아 큰 걱정 없이 근근이 유지할 수 있다. 적자는 면했다. 나는 다른 재테크 하지 않고 책으로만 재생산을 하고 있다. 독자들이 눈빛을 만들어주었고 또 독자들 덕에 유지되고 있다는 얘기는 빈말이 아니다.”

 

한국 사회의 경박한 상업주의와 배금주의, 문화 경시 풍토에 가슴 아파하는 이 대표는 “유통구조 담합과 후배들을 키워주지 않는 잘나가는 소수 작가들의 유아독존식 행태가 사진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현실에 매우 비판적이다.

 

“10여년 전부터 20세기 한국인의 삶의 모습을 기록한 사진과 도서를 수집해 왔다. 압축성장으로 잃어버린 것을 다시 복원해 놓고 싶다. 사진은 단순히 예술 장르여선 안 된다. 여러 인문 분야와 연계해서 사진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그것을 하지 않는 건 직무유기다.”

 

[한겨레신문]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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