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더리스 사이트’ (Border-less.site)展이 옛 서울역사인 ‘문화역서울 284’에서 지난 3월17일 개막되었다.

중국 단둥과 북한 신의주 접경지역이 품고 있는 특징이나 불연속적이고 혼종된 시간성을

회화, 조각, 사진, 음악, 건축, 퍼포먼스 등 18명의 작가가 참여하고 있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주최하고 ‘정림건축문화재단’이 주관한 이 전시는

코로나19로 국가 간의 경계가 강화되고 타지에 대한 배타성이 커진 시점을 맞이하며

‘경계’에 대한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기 위해 기획되었다.

 

경계가 맞닿아있는 접경지역의 모습을 작품으로 표현함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경계 없는 경계’의 의미와 심리적 경계를 낮추는 경험을 도모하려 했다.

전시 관계자는 “전시를 통해 우리가 그동안 가졌던 경계의 의미가

단절이 아닌 연결의 의미로 확장되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신의주와 단둥(丹東)은 압록강을 사이에 둔 북한과 중국의 접경 지역이다.

조선 시대 양국 외교 사신들이 오간 길이고, 지금은 북·중 최대 교역 거점이다.

오랜 세월 국경을 넘나든 흔적과 함께 서로의 문화와 시간이 혼재되어 있다.

 

통행이 제한된 국경지대에 대한 작가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통해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안에서 떠다니는 개개인의 서사를 우리 삶에 반추해 본다.

 

본 전시는 리서치 섹션을 도입부로 삼아 ‘접경 지역, 혼종의 시간’,

‘타자화, 인식의 사각지대’, ‘경계에 대한 수행적 시도’ 등 세 개의 축을 따라 진행된다.

 

신의주-단둥 지역에서 수없이 이루어졌던 월경의 기록과 잔해를 재맥락화한 작업이 다양하게 펼쳐진다.

출품작들은 어떤 완결성을 기대하기보다 강렬한 경험의 후유증을

다양한 층위에서 공유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접경 지역, 혼종의 시간’ 섹션에서는 신의주와 맞닿아있는 단둥 지역을 기반으로 한 작품을 선보인다.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이 단둥을 답사하면서 느꼈던 풍경과 장소성,

국경지대의 제한된 공간성을 담은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성장한 중국 단둥과 북한 신의주는 쌍둥이처럼 닮았으면서도 다른 모습을 품고 있다.

외부인들에게는 제한된 풍경을 드러냄으로 인해 쉽게 타자화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지속된 분단이 만든 집단 탈출에 대한 꿈과 그 한계를 판타지 장르로 전환하는 최윤,

 

이주민들의 고단한 삶의 이야기를 장소를 기반으로 풀어낸 이주용의 ‘장소, 사물의 기념비’,

 

압록강 하구의 축적된 시간을 호명할 수 없는 형상으로 형상화한 김주리의 ‘모습(某濕)’

 

임동우의 '복수 간판'은 경계 도시 단둥의 특징을 간판으로 가시화한 작업이다.

중국인, 북한인, 한국인, 북한 화교 등이 뒤섞여 살아가는 경계 도시에서 볼 수 있는

한글과 중국어가 섞인 간판으로 중국과 한반도 문화의 결합 양상을 탐구한다.

 

김태동은 지도상의 경계선인 압록강 위에서 배를 타고 찍은

수많은 사진을 재조합한 ‘On The River’를 선보였다.

 

신제현의 '회전하는 경계'는 건설 당시 '태양 호텔'로 불렸던 신의주의 원형 건물을 재현했다.

이데올로기를 태양으로 형상화한 과시용 건축물이 아니라 아파트였다는

해프닝을 통해 접경 지역을 둘러싼 불투명한 시선을 드러낸다.

 

맛깔손, 코우너스 작가는 접경지역에서 취할 수 있는 각자의 목소리를 내었다.

 

‘타자화, 인식의 사각지대’ 섹션에서는 남한과 북한, 북한과 중국이라고 하는

첨예한 갈등과 긴장 속에 있는 지역을 살펴보는 일로 “경계”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를 다층적으로 사유해볼 것을 요구한다.

 

이 파트에서는 뒤섞여 버린 민족성이나 정치적 이념의 허구적인 경계에 대한 사유,

안과 밖을 쉽게 나누는 배타심과 집단적 인식의 오류 등을 숙고해볼 수 있는 작품으로 채워졌다.

 

황호빈과 김황은 첨예한 갈등과 긴장 속에 있는 이 지역을 보다 수행적으로 사유하면서

망각의 시간 속에 섞여 들어간 경계에 대한 사유를 또 다른 이야기로 풀어낸다.

 

서현석은 ‘안개’라는 작업을 통해 가까이 갈수록 견고함을 잃지만

관습적으로 확고하게 규범화되는 경계를 탐색한다.

 

이원호, 이해반 작가의 미디어 작품과 퍼포먼스를 통해 거대한 역사의

물결 속을 관통하는 각자의 서사를 풀어내고 있다.

 

‘경계에 대한 수행적 시도’ 섹션은 정체되었거나 빠르게 지나가는 한 장소를 기록해보는 행위다.

보통의 국가가 갖는 합일된 시간성과 달리, 접경지역 만이 갖는

불연속적이고 혼종적인 시간성을 회화, 조각, 음악, 건축 등으로 풀어낸다.

 

작가는 장소에 축적된 불연속적인 시간으로 인해 재 맥락화된 이미지와

파편화된 세계에 대한 탐구로 달라져버린 서로를 조우하게 한다.

작가들은 시간이 정체되어 있기보다는 빠르게 지나간 장소를 기록한다.

 

정소영은 70여 년의 시간을 사이에 두고 이미륵의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를 조형 작업으로 변환한다.

 

남과 북의 연주자가 견우와 직녀의 설화를 기반으로 한 곡을 새롭게 해석한

전소정의 ‘이클립스’는 서로 다른 삶이 예술적 상상력으로 조우할 수 있을지를 질문한다.

 

라오미는 특정 장소를 둘러싼 서사와 이미지를 그림으로 옮기는 작업을 했다.

'끝없는 환희를 그대에게'는 근대 문화의 유입이 활발하게 이뤄졌던 도시 단둥에서 읽은

제국주의적 욕망과 이데올로기의 흔적을 펼쳐낸 작품이다.

 

바래, 김보용 작가 등이 참여한 ‘경계에 대한 수행적 시도’에서는 접경 지역이 오랫동안 배태하고 있는

특징이 앞으로 우리 안에서 어떤 가능성으로 등장할 것인지 살펴보게 한다.

 

‘보더리스 사이트’는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안에서 떠다니는 개개인의 서사를 반추한 전시로,

단둥지역을 체험한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경계에 대한 간접체험을 할 수 있다.

 

전시는 5월9일까지 이어진다.

 

사진, 글 / 조문호

 

본 프로젝트와 관련된 문의사항은 이래 연락처로 문의.

전화 문의는 공휴일을 제외한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가능

‘문화역서울284’ 02-3507-3530

 

전시 현장을 직접 방문하기 어려운 관람객을 위해 온라인 플랫폼(www.border-less.site)이 함께 마련됐다.

온라인 플랫폼에서는 작가가 영감을 받은 참고자료들이 작품과 함께 준비되어 있어,

온라인 플랫폼 방문객은 오프라인 전시장과 또 다른 작품 감상 경험을 가질 수 있다.

전시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문화역서울 284’ 누리집 (www.seoul284.org),

‘보더리스 사이트’ 온라인 플랫폼(www.border-less.site)에서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전시 기간에 진행되는 서현석, 김 황, 김보용의 퍼포먼스는

전시된 작품이 경계지역에서 일어난 이야기들을 우리 삶 안에서 비춰볼 기회를 제공한다.

 

이 전시를 본 후 인근 후암동의 'KP갤러리'에서 열리는 “충돌하는 이미지”도 볼만하다.

안 준, 이주용, 이진경 3인전으로, 4월14일까지 열린다. 

 

충돌하는 이미지들 Clash of images

 

안준_이주용_이진경展 

2021_0317 ▶ 2021_0413 / 일,공휴일 휴관

 

이주용_Dreaming Series_LED 패널_160×120cm_1999

 

 

초대일시 / 2021_0317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KP 갤러리

Korea Photographers Gallery

서울 용산구 소월로2나길 12(후암동 435-1번지) B1

Tel. +82.(0)2.706.6751

kpgallery.co.kr

 

 

Korea Photographers Gallery (이하 K.P 갤러리)는 2021년 3월 17일부터 4월 13일까지 안준, 이주용, 이진경 작가를 초대하여 『Crash of Images-충돌하는 이미지들』 전시를 개최합니다. 전시에 소개되는 작가들의 작품들은 독립된 주제의식을 바탕으로 제작된 창작 작품들로 작업의 연계성은 없지만 갤러리 공간에서 서로가 지닌 지점과 조우해 Invisible Image를 생산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감각적 경험과 작업의 이해들을 관람객들에게 선사합니다. ● K.P 갤러리는 상이한 작품들이 충돌하는 과정을 통해 갤러리 공간을 열린 감각공간으로 변화시키고 가시적인 작품들이 생산하는 비가시적인 의미생산에 주목합니다. 또한 작가, 작품 중심의 이미지 해석과 이해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합니다. ■ KP 갤러리

 

 

안준_The Tempest_150×100cm_2020

 

 

『Crash of Images-충돌하는 이미지들』 전시는 각기 다른 예술 세계와 특성을 가진 세 작가의 작품을 한 공간 안에 배치시켜 이미지들의 만남과 부딪힘으로 인해 작업의 의미가 어떻게 재생산되고 증폭되는지 주목하고 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이끌어 내는 전시이다.

 

 

이주용_Dreaming Series_LED 패널_160×120cm_1999

 

 

개인적 미감에 의해 완성된 작품은 그것이 속한 환경에 따라 다르게 작동되고 공간의 연출에 따라 다른 작품들과의 관계가 형성된다. 전시장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작품끼리의 조화와 충돌을 통하여 매 순간 사건들이 일어나고 가치가 부여되는 장소이며 상호 관계 속에서 작품의 의미가 드러나도록 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번 기획전에 초대된 안준 작가의 팔당댐 방류 장면 사진과 이진경 작가의 검정비닐 초상사진, 이주용 작가의 정지된 인체 제스처 작업의 만남이 그러하다. 물론 세 작가가 이미지에 나타내고자 하는 바가 다르고 각각의 작품은 나름대로의 깊은 철학적·미학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작업들이 한 공간에서 만나 충돌하고 거기에 관객의 상상력이 개입될 때 새로운 의미로 재탄생된다.

 

 

이진경_Portrait1_125×100cm_2019

 

 

예컨대 검정비닐을 초상처럼 찍은 이진경 작가의 작업 앞에서 지구오염의 주범인 검정비닐이 인간의 욕망으로 인한 소비의 산물임을 인식하게 되고 그것이 곧 우리의 자화상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그로 인해 폭풍우 치는 바다를 찍은 것처럼 보이는 안준 작가의 「tempest」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간섭으로 만들어진 댐에서 기인했다는 것을 기억하고 마치 격렬한 자연의 반항이나 곧 사라질 인간의 욕망으로 느끼게 한다. 그리고 특정한 인체의 제스처를 담은 이주용 작가의 사진이 두 작가의 사진과 만나 본래 의도와 다르게 과도한 인간의 욕망으로 결국 소외되고 고통을 겪는 인간의 몸부림으로 보인다. ● 하지만 이것은 하나의 해석에 불과하다. 연관 없어 보이는 이미지가 한 공간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새로운 시각적 볼거리와 의미들이 만들어지고, 이에 대한 해석은 관객들의 상상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안준_The Tempest_150×100cm_2020

 

 

『Crash of Images-충돌하는 이미지들』展은 단순히 영역을 나누어 작품을 진열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 간에 소통을 돕는 매개체로서의 전시 공간 안에서 관객이 작품과 만날 때 각자 해석의 층위를 형성하고 보다 입체적으로 감상 할 수 있도록 설계하였다. 이는 관객들에게 초대된 세 명의 작가들을 단순히 소개하는 차원을 넘어서 그들의 작업이 서로 관여하여 어떻게 시각적 충돌을 일으키고 새로운 내러티브 갖게 하는지 하는 경험을 제공하기 위함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세 작가의 세계관이 조응하여 새로운 가치를 형성하는 과정과 이미 존재하는 작업의 절대적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 오혜련

 

 

안준_The Tempest_100×150cm_2020

 

 

The Tempest ● 이제 연회는 끝났다. 이 배우들은 아까도 말했지만 모두 정령들인데, 이제 공기 속에, 엷은 공기 속에 녹아버렸지. 그리고 이 주추도 없는 환영의 건물처럼 구름에 휩싸인 탑도, 찬란한 대궐도, 장엄한 사원도, 거대한 지구 자체도, 아니, 지상의 모든 것들이 끝내는 녹아서, 이 가상의 구경거리처럼 사라져가 자국조차 남기지 않게 된단 말이다. 우리는 마치 꿈과 같은 재료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리고 우리의 짧은 삶 또한 꿈으로 둘러싸여 있는거지. ■ 안준

 

 

이진경_Portrait 04_125×100cm_2019

 

 

PortraitThe Tempest ● 이제 연회는 끝났다. 이 배우들은 아까도 말했지만 모두 정령들인데, 이제 공기 속에, 엷은 공기 속에 녹아버렸지. 그리고 이 주추도 없는 환영의 건물처럼 구름에 휩싸인 탑도, 찬란한 대궐도, 장엄한 사원도, 거대한 지구 자체도, 아니, 지상의 모든 것들이 끝내는 녹아서, 이 가상의 구경거리처럼 사라져가 자국조차 남기지 않게 된단 말이다. 우리는 마치 꿈과 같은 재료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리고 우리의 짧은 삶 또한 꿈으로 둘러싸여 있는거지. ■ 안준_04에 대한 조각 글 ● 비명이다. 소리 지르고 싶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소리를 내려고 배에 힘을 줘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몸을 뒤틀고 쥐어짜내도 목구멍으로 아무 소리도 올라오지 않았다. 심연은 몸짓만 남을 뿐 소리도 집어 삼켜버리는 것 같았다. 토해내지 못한 비명을 삼키고 웅크리고 앉은 검은 덩어리는 그 기억들도 삼켜버리고 유령처럼 떠돈다. 나의 시간과 너의 시간을 삼키고 웅크리고 앉아 어느날 납작해진 몸뚱아리가 되어 그것이 있었던 시간까지 납짝하게 접어버린다. ■ 이진경

 

 

Vol.20210317b | 충돌하는 이미지들 Clash of images展



사진가 이주용씨의 ‘항해1 프로젝트’가 지난 13일부터 청계천 ‘바다극장’에서 열렸다.
‘한예종’교수인 이주용씨의 일관된 주제는 시간과 기억 그리고 역사다.
사진의 근원에 대한 원형을 찾는 작업의 연속이다.
한 때는 ‘천연당사진관‘을 기억하기 위해 일본과 중국 등 동양권을 떠돌기도 했고.
이번은 두만강 접경지역에 사는 조선인들의 지나 간 시간을 기억하고 있다.



2018년부터 시작된 '항해1 프로젝트'는 동해에서 블라디보스톡, 두만강, 백두산,

압록강 접경지역을 거쳐 단둥항에서 인천항으로 이어진 항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여객선에서 시작된 전시와 설치작업은 산둔촌의 빈집, 내두산촌의 폐교, 삼봉촌집,

철원의 정미소를 거쳐 청계천 바다극장에서 마무리하는 작업이었다.

이주행로 같은 방향으로 옮겨가며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한 공간에서 이루어졌다.



지난 17일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공간을 찾아나섰는데, 청계천에 ‘바다극장’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 길을 수 없이 지나쳐도 몰랐는데, 극장에서 전시를 한다는 것도 생소했다.

상인들이 내놓은 짐 꾸러미가 놓인 미로를 비집고 올라가니, 오래된 바다극장이 나왔다.



극장 입구를 비롯하여 여기 저기 걸려 있는 대형사진들이 분위기를 압도했다.

무표정한 초상사진에서 어머니를 만난 것 같은 따뜻한 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포근하면서도 얼굴에 한이 서린 친숙한 동포들의 모습이었다.



사진뿐 아니라 영상, 빛, 홀로그램, 기록 재생장치 같은 기구들도 설치되어 있었다.

사진보다 더 사실적이고 유물적인 집기들에 의해 전시는 더 빛났다.



초대 시간에 맞추어 극장을 찾아 온 분은 대략 200여명 될 것 같았다.

극장 전면에 걸렸음직한 대형 간판 위로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고,

그 아래는 음악가 두명이 첼로와 피아노를 연주했다.

흘러나오는 음률이 얼마나 애잔한지 눈이 시러웠다.



흐릿하게 간판 위로 스쳐가는 초롱초롱한 눈빛의 어린이들과 북녘 사람들 모습을 지켜보며, 

그토록 동포애를 강하게 느낀 적이 없었다.

얼마나 분위기에 빠졌으면, 사진 찍는 일도 잊어버렸을까?



연주가 끝나니, 이주용씨와 ‘바다극장’ 극장장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대형극장에 밀려 폐관된 극장을 지켜며 그 자리를 만들어 준 극장장이야 말로

이 ‘항해1 프로젝트’의 주인공이나 다름없었다.



화가가 그린 대형 간판을 비롯하여 사진과 음악, 영상, 빛, 홀로그램 등으로 시간의 기억을 끄집어 낸 종합예술이었다.

이주용씨는 사진가이기 전에 역사가이고 연출가였다.



이주용씨를 처음 만난 것이 83년도 였으니, 30년도 넘었다.

내가 ‘월간사진’에 있을 때, 그는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에 있는 브룩스대학에서 공부할 때다.

어느 날 잡지사에 찾아 와 ‘미국의 전설적인 사진가들을 찾아 인터뷰 할 테니, 연재할 수 있냐?‘는 것이다.

외국 사진 잡지나 번역해 지면을 채워야 하는 당시의 형편에서 눈이 번쩍 뜨이는 제안이었다.

그래서 안젤아담스를 비롯한 유명 작가들의 생생한 이야기나 작품들을 매달 특집으로 게재할 수 있었다.

사진 경력이 오래된 분들은 그 당시의 인터뷰기사를 생생하게 기억할 것이다. 


 

그 뒤 귀국해서는 ‘포토291’을 창간하여 사진잡지에 변화를 리드했다.

그러나 초보적인 내용의 대중 잡지나 간신히 버틸 수 있었지, 전문적이고 괜찮은 사진잡지는 팔리지 않았다.

몇 년을 지탱했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그 뒤부터 이주용씨를 만나지 못했다.



‘신구전문대’를 거쳐 ‘한예종’ 교수로 있다는 소문만 들었는데, 삼년 전 우연히 다시 만난 것이다.

동자동에 살며 주민들에게 사진을 뽑아 주지 못해 안달하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사진프린트기를 구입해 동자동 쪽방을 찾아 온 것이다.



그때서야 그가 진행해 온 ‘천연당사진관’ 프로젝트도 알게 되었고, 평창동 작업실도 가보게 되었다.

그의 작업실은 마치 박물관 같았다.

숱한 년륜이 쌓인 뷰카메라에서부터 다양한 사물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내가 지켜 본 사진가 이주용씨의 치밀하고 적극적인 작업방식, 아니 삶의 방식을 재확인한 것이다.



본 ‘항해1 프로젝트’의 진행 중 우연히 발견했다는 책 ‘호랑이를 죽여라’는

70년대 미국으로 이주한 한 여성의 가족사를 바탕으로 쓴 것이라고 한다.

희생만 강요당한 이주여성의 한 개인사를 통해 근현대사를 조명한 전시의 핵이었다.




영화에서는 전쟁과 폭력, 이데올로기의 가면 속에 숨겨 진 욕망이

우리민족의 이주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추적하고 있다.



지난 13일부터 시작된 전시는,19일인 오늘이 마지막이다.

시간 되는 분들은 꼭 한번 들려보기를 추천한다.


글 / 조문호

























지난 4, ‘한국종합예술대에서 교편 잡는 사진가 이주용 교수의 작업실을 방문했다.

평창동 연화정사옆에 있는 작업실에서 10년 넘게 일해 왔다는데, 전망이 끝내 주었다.

북한산 자락의 옹기종기 몰린 집들이 석양에 물들고 있었고, 작업실은 마치 박물관에 온 것 같았다.

희귀한 대형 박스카메라들이 즐비했고, 온갖 석불과 오래된 물건들이 여기 저기 진열되어 있었다.

 

30여년 전 이주용교수가 미국서 공부할 때, 안젤 아담스를 비롯한 미국 전역의 사진계 거목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그 취재한 원고를 내가 근무했던 월간사진으로 보내주어 2년 가까이 연재했는데,

국내사진인들의 눈이 번쩍 뜨이게 하였다.


그 뒤 귀국해서는 포토291“이란 사진잡지를 창간하여 새바람을 일으키기도 했다,

원래 좋은 잡지보다 아마추어를 상대로 한 대중잡지만 간신히 살아남는 현실은, 오래 지탱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 이후, 이교수를 전시장에서 한 두 차례 만나기는 했지만, 이렇게 작업실을 방문할 줄이야 꿈에도 생각치 못했다.

 

몇 일전 동자동 쪽방촌 작업에 필요한 자재 도움을 페북에 올렸는데, 그 걸 보고 도와주겠다며 전화해 준 것이다.

사용하는 비싼 프린트기를 빌려주려다, 아예 새것으로 사 주겠다는 것이다

 그토록 고마운 인정을 베푸는데, 이주용교수가 어떤 작업을 하는지도 모르고 있다는 게, 창피했다.


그동안 동북아 天然堂사진관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서울에서 출발해 일본 동경을 거쳐 오사카,

북경을 잇는 한,,3국의 현재와 과거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간 작업이었다.

역사적 기록성과 사진 아카이브의 중요성을 공유한 중요한 전시였다.

또한 순회전이 열린 도시에서 만난 가족들의 초상사진을 촬영함으로, 동시대 초상사진의 사회학적 의미를 주지시키기도 했다.

 

그런 중요한 작업을 직접 못 본 게 아쉬웠지만, 인물을 통한 사회적 다큐멘터리 작업은 계속된다니, 기대되는 바가 크다.

방문한 작업실에는 사진관의 배경그림을 그리는 화가 조수 나우미씨와 함께 있었는데,

그런 훌륭한 조수와 함께 작업한다는 것도 너무 부러웠다.


그런데, 작품들과 작업실에 늘린 기자재들에 취해, 평소 습관처럼 해왔던 사진 찍는 일과

서울도시빈민 프로젝트에 대한 자문마저 잊어버린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프린트 기자재를 구입해 주려, 내가 사는 쪽방까지 방문해 자문을 구할 수 있었다.

 

결론은 모든 것을 쉽게 결정하지 말고, 신중하게 접근하라는 말인데, 아직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좀 더 세밀한 현장조사는 물론이고, 주민들의 마음이 열렸을 때, 논의할 문제라고 했다.

한 지역에 많은 사진가들이 몰리면 자연적으로 부작용이 일어 날 소지가 많다며,

인간적인 소통보다 사진욕심에 눈이 어두운 사진가가 반드시 생긴다는 것이다.

 

서울 전역 빈민가의 철저한 현장조사가 선행된 후, 사진가들이 들어가는 것이 좋겠다,

구역별로 나누어 한 지역에 한두 명만 들어가, 상호 협력하는 시스템으로 만들어가야 할 것 같다.

이 문제는 기획전문가인 브레송의 김남진 관장께 부탁할 생각인데, 본인이 허락해 줄지 모르겠다.

좌우지간 경험 많은 사진가들의 자문을 구한 후, 좋은 방안이 마련되는 대로 공개할 작정이다.

 

그리고, 저녁 무렵엔 부산에서 활동하는 다큐사진가 조성기씨를 인사동에서 만나기로 했다.

조성기씨는 10여년 전 강원다큐멘터리 사진 작업에 함께 한 적 있었다.

오랜만의 만남이라 이산가족 같은 감은 있었지만, 반갑기 그지없었다.


그 자리에는 조성기씨를 비롯해 사진가 박종면씨와 인성욱씨가 동행했는데, ‘유목민매상께나 올렸다,

서로간의 정보 교환은 물론, 사진판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일화를 안주삼아 퍼 마셨는데,

유목민주인장 전활철씨와 푸른별이야기 최일순씨, 그리고 뒤늦게 시나리오작가 최건모씨도 합류했다.

다 연줄연줄 아는 분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조성기씨가 부산가는 열한시 기차표를 취소하고,

내가 사는 서울역쪽방에 끼어 자겠다고 했다. 내 사는 꼴도 보고 싶었겠지만,

서울 올라 온 김에 눈빛에서 나오게 될 사진집 서문을 부탁하러 이경홍교수를 만나려는 것이다.

 

쪽방 갈 놈들이 겁도 없이 택시까지 잡아타고 갔는데,

입주한지 몇 일 되진 않았지만, 긴 밤 손님은 처음 받았다.

술이 취해 매점에서 소주와 이 것 저 것  별의 별 것을 다 집어넣었다. 내일도 처먹어야 사니까...

그 날 밤 술 마시며, 전 주인이 남겨 놓고 간 유품, 꽃그림을 안겨 기념사진까지 찍었다.

상도 말로 참 욕봤다!

 

하루 일기가 길었던 만큼, 그 이튿날은 죽어나야 했다.

 

사진, / 조문호











내가 사는 동자동 쪽방입니다

그림은 전에 살던 분이 남기고 간 유품이지요.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