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숲출판사에서 발간한 조문호 포토 에세이집 노숙인, 길에서 살다가 오는 9월 하순경 출판됩니다.

책 발간에 맞추어 오는 923일부터 104일까지 인사동 유목민골목 담벼락에서

현수막전과 함께 책 사인회를 개최하오니 많은 관심 바랍니다.

오 갈 곳 없는 빈자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개선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사인회 일자 : 2021, 925일과 102,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장소 : 인사동16, 현수막 전시장 앞

 

아래는 이광수교수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다큐멘터리 사진 안에는 온갖 다양한 역사학자, 철학자, 사회과학자, 이야기꾼, 인문학자들이 다 들어 있습니다. 루카치도 들어 있고, 헤이든 화이트도 들어 있고, 긴즈버그도 들어 있고, 푸코도 들어 있는데...그 중 압권은 레비 스트로스로 봅니다. 참여관찰이지요. 대상 속으로 들어가되, 그들 속에서 공기와 같이 보이지도 느끼지도 못한 채 하나로 융화되는 거지요. 거기서 어떤 사진가는 까르띠에 브레송 같이 표현을 하고, 어떤 사진가는 로버트 프랭크 같이 표현을 하고 어떤 사진가는 유진 리차즈같이 표현을 하지요. 사진가 조문호는 레비 스트로스 같이 참여관찰을 하는 사진가이면서, 브레송이나 프랭크같이 스케치나 장면 포착과 같은 방법을 택하지 않습니다.

 

조문호는 브레송이나 프랭크와는 다른 사진을 찍지만, 그렇다고 리차즈같이 자극적이고 감각적인 사진을 찍지도 않습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우리 눈이 보는 그대로 찍습니다. 대상이 마음 문을 열 때까지 카메라를 들지 않는 건 리차즈와 같지만, 사람의 눈을 맞추고 셔터를 누르거나 그게 아니다 싶으면, 그 사람을 감춰줍니다. 오로지 모든 초점은 그 대상, 사람에 있습니다. 카메라도 그저 그런 똑딱이, 화려한 이론도 없이... 그저 사람을 존중하는 사진을 찍습니다. 조문호가 현장에 들어가는 것은 사진을 찍으러 들어간 게 아니고, 그들과 함께하러 들어가는 겁니다. 사진은 삶을 함께하는 하나의 방편입니다. 사진이 종이고 사람과 함께 하는 삶이 주라는 이야기입니다.

 

5년간의 참여관찰 - 관찰보다는 참여에 방점이 있습니다 - 로 찍은 그 사진이 곧 나옵니다. 동자동 사람들을 담은 '노숙인 길에서 살다' (이숲출판사)... 한국 사진사에 큰 족적이고, 이정표가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사진평론가 이광수

 

 

요즘 인사동 출입이 부쩍 잦아졌다.

인사동 이야기를 마무리하려니, 인사동과 관련된 분들이 너무 많이 빠져서다.

방동규선생을 비롯하여 화가 이종승, 금보성, 서정란, 이만주 시인 등

몇몇 분은 오래된 사진 파일에서 찾았지만, 다른 분들은 찍을 시간이 없었다.

 

찍은 사진만도 넘쳐나지만 가급적 많은 자료를 보내는 것이 좋은 책을 만드는 요건이었다.

책에 게재되거나 빠지는 문제는 사진의 완성도에 따라 편집자가 결정하도록 출판사에 위임했다.

 

그리고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기록하는 작업은 일회성으로 끝낼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사동에 대한 관심과 애착을 결집시켜 인사동 정체성이나

사라져가는 인사동 풍류를 되 찾을 수 있는 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여지껏 책 만들기 직전에 집중적으로 일했으나 앞으로는 인사동과 관련된 분은 만나는대로

꾸준히 촬영하고 기록하며 몰랐던 이야기나 새로운 이야기들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이번에 게재되지 못한 분은 좋은 사진이 나올 때까지 다시 찍을 것이고,

미처 찍지 못한 분도 한 분 한 분 기록하여 인사동 이야기를 이어가기로 한 것이다.

 

내년 초에 만들 인사동 사진집은 촬영해 둔 인사동 풍류를 조명할 수 있는 스냅사진으로 구성할 것이지만,

그 이후에 제작할 제2인사동 이야기는 추억하는 인사동이 아니라 앞 날을 제시할 책이 될것이다.

 

그동안 찍은 사진과 정리한 원고를 '눈빛출판사'에 넘기려고 보니, 인사동과 관련된 중요한 사람이 생각났다

바로 인사동 역술가로 알려진 신단수씨였다.

오래전 인사동 대일빌딩 자리의 역술인 아지트에서 비롯된 그의 행적은 인사동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그리고 인사동에서 태어나 자란 출판인 이나무씨의 인사동 이야기도 들어볼 겸,

지난 2일 오후 4시경 인사동으로 나갔다.

어차피 원고는 주말까지 보내기로 했으니, 하루의 여유가 있었다.

 

강원도에서 제사를 지내고 금방 왔다는 신단수씨를 만나 사진을 찍었다.

차 한 잔 나눌 시간도 없이 인사아트프라자전시장에 갔더니 편근희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인사동 사랑도 여간 아니기 때문이다.

장소를 정해 촬영하고 있으니 정영신씨와 김발렌티노가 나타났다.

 

김수영시인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를 추진하는 김발렌티노를 돕기 위해 나온 것 같았다.

인사동 청소하는 김발렌티노도 찍고 싶었으나, 청소하는 날 맞추어 차후에 찍기로 했다.

거리에 낙엽이 흩어지는 늦가을 무렵의 청소 날에 연락해 달라고 부탁했다.

정영신씨는 판화가 류연복씨에게 부탁한 책 제호 글이 금방 도착했다며 보여주었다.

출판사도 만족한다지만, 나 역시 마음에 들었다.

 

추석이 끝난 다음 날부터 하게 될 정영신씨 어머니의 땅‘ 전시에 맞추어

노숙인, 길위에 살다' 현수막전을 '유목민' 골목 담벼락에 걸기 위해 현장답사를 했다.

책을 판매하기 위한 전시라 이숲 출판사이나무씨도 만나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이른 시간부터 전활철씨와 한 잔하고 있으니, 이나무씨가 나타났다.

 

노숙인 책을 출판하기로 약속했던 작년 2월의 첫 만남도 인사동 유목민에서 이루어졌다.

그 당시 인사동에서 태어나 고등학생 때까지 살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살았던 자리에 한 번 가 보자고 부탁했다.

가 보니 옛 모란미술관 자리였고 지금은 화봉갤러리가 있는 자리였다.

 그때의 기억을 담아달라는 원고청탁까지 했다.

그것도 다음 날까지 원고를 보내 달라고 부탁했으니 억지도 그런 억지가 없었다.

 

골목 담벼락에 걸 현수막 크기는 가로 8미터에 세로 1미터 50센티 정도인데, 그 속에 30여장의 사진을 배열하기로 했다.

현수막도 사진만 선정해 주면 출판사에서 제작해 주겠다니 이렇게 고마울 수가 있는가?

마침 사무실에 일보러 갔던 신단수씨와 정영신씨도 유목민에 나타났다.

작년 이나무씨와 첫 만남에도 신단수씨가 합석했는데, 우연치고는 특별했다.

두 분의 성함도 새로 지은 이름이었다. 이나무씨의 본명은 임왕준이고 신단수씨의 본명은 김효성이다.

 

그날 신단수씨를 만나 사진을 찍게되면 인사동의 미래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으나 참았다.

보나 마나 실망스러운 이야기가 나올 텐데, 일할 의욕을 잃을 것 같아서다.

 

기분좋게 마신 술자리였는데, 다음 날 해는 분명 서쪽에서 뜰 것이다.

사진을 편집하여 현수막까지 만들어 주겠다는 말이 고마워 술값을 냈기 때문이다.

현금카드를 처음 만들어 보았는데, 카드 긁는 재미가 솔솔했다.

이러다 나도 노숙자 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사진, / 조문호

 

 

지난 11일 개막된 정영신의 ‘장에 가자’ 사진전이 10일간의 일정을 잘 마무리했다.

 

그동안 전시를 하면 아는 분들에게 초대장을 보내거나 여러 통로로 알려왔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예전과 달라 별도의 초대를 하지 않았다.

전염병이 창궐하는 때라 상대에게 부담을 줄 수가 있어 페이스 북으로만 알렸다.

 

그래서인지 인사동과 관련된 오래된 지인들이 많이 빠졌다.

그러나 전시 작품을 보러 오거나 책을 구입하기 위해 들리는

순수한 수요층이 많았다는 것은 또 하나의 성과였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외출을 자제하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전시장을 찾아주시거나,

책을 구입하는 등 성원해 주신 많은 페친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덕분에 ‘장에 가자’ 책은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라 인기리에 팔리고 있다.

 

아래 사진은 지난17일부터 전시가 마무리된 20일까지 방문한 분의 모습과 전시장 풍경이다.

고마움을 잊지 않기 위해 전시장에 들린 분들을 모두 기록하려 했으나, 미처 빠트린 분도 많았다.

받은 것만큼 돌려 드린다는 다짐으로 꼼꼼히 챙겨왔으나 말처럼 쉽지 않았다.

 

지난 17일은 사진을 찍기 위해 뒷걸음질 치다 턱에 걸려 뒤로 넘어지는 봉변을 당했다.

넘어지며 오른 손으로 바닥을 짚었는데,

오른 손에 잡혀있던 카메라가 바닥에 부딪혀 렌즈가 망가져 버렸다.

심하게 엉덩방아를 찧었지만, 몸은 별로 다치지 않았다.

카메라를 놓았다면 그렇게 망가지지는 않았을 텐데, 욕심이 일을 키운 셈이다.

 

니콘AS센터에 갔더니, 단종된 카메라라 렌즈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혹시나 알 수 없어 카메라는 두고 왔으니, 이젠 사진도 찍을 수 없게 되었다.

정영신씨 카메라로 가끔 찍었지만, 총 잃은 병사에 다름아니다.

 

정오 무렵에는 ‘눈빛’의 이규상대표가 전시장을 방문하여

김남진관장과 함께 충무로 ‘뚝배기집’에서 미역국을 먹었다.

그 날 이규상씨로부터 듣게 된 따끈한 소식은 홍대부근에 개장한

‘예술산책’ 책방에다 고객을 위한 작은 갤러리를 만든단다.

그 곳에서 정영신의 ‘장에 가자’전을 다시 열자고 했다.

 

시나리오 작가 최건모씨는 불광서점에서 사인회를 하자는 제안을 했는데,

이 것 저 것 가리지 않고 책 판매에 도움이 된다면 적극적으로 나설 작정이다.

 

그날은 짐 때문에 차를 끌고 나와, 온 종일 주차문제에 시달려야 했다.

충무로는 타 지역보다 주차비가 비싸 전시장을 지키고 싶어도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동자동으로 이동하여 빈자리에 차를 세우고 모처럼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컴퓨터 켜기가 무섭게 예술감독 안애경씨가 전시장에 들렸다는 연락이 왔다.

 

차를 두고 지하철로 달려갔는데, 인사도 나누기 전에 차 빼 달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상황에 안애경씨가 주차한 곳까지 태워 주었는데,

손님에게 굳은 일을 시키는 부담을 안기고 말았다.

 

다시 전시장으로 돌아오니 에니메이션감독 주흥수씨와 화가 유준씨가 전시장을 찾아왔다.

주감독과 만날 약속은 일찍부터 한 터라 저녁식사라도 함께 할 작정이었으나,

약속이 겹쳐 잔시장을 비울 수가 없었다.

 

뒤늦게 나타난 조준영교수와 저녁식사를 하러 갔으나 마음이 편치 않았다.

차 때문에 술 한 잔 마실 수도 없었는데, 하루 종일 저 놈의 차가 내 발목을 잡았다.

 

전시기간 동안 동자동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으니, 내가 없는 사이 다녀간 분도 많았다.

사진가로는 헤이리에서 ‘갤러리 움’을 운영하는 권홍, 이경희부부를 비롯하여

제이 안, 양시영, 윤성광씨가 다녀갔고, 화가 전인경씨와 전인미, 조경석, 심금숙, 심경애, 김인숙,

문금희, 박상문, 조한곤, 류순이, 강선준, 한동일, 김지욱, 이창수, 박성득, 이경애. 정진택,

박경애, 유현동, 한승훈, 김순남, 채재웅, 김욱수, 권병준, 조영기, 조용모, 정혜령씨 등

많은 분들이 전시장을 다녀갔더라.

 

그 이틀 날은 사진가 김수길씨와 이민씨를 전시장에서 만났는데,

김수길씨는 어디가 아팠는지 안색이 안 좋아 보였다.

아마 이화마을 빨래줄 전시를 치르느라 힘들었던 모양이다.

 

늦은 시간에는 고향 후배인 사진가 하재은씨가 찾아왔다.

요즘은 페북에 통 보이질 않아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는데,

그 사이 목동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하는 등 바쁜 일이 많았단다.

이사하는 과정에서 사용하던 앱숀 프린트기도 처분했다고 한다.

 

하재은씨는 한 때 외국 시장을 주제로 작업을 했으나,

지금은 고향의 사계를 집중적으로 기록한다고 했다.

그 날 드론으로 공중 촬영된 동영상을 보여주는데,

고향인 영산의 가을이 그토록 아름다운 줄은 미처 몰랐다.

 

지난 19일은 공윤희씨와 최석우씨가 찾아 와 늦은 점심을 먹었다.

최석우씨가 전시장 바로 옆에 있는 일식집으로 가자는데, 평생 일식집은 처음이라 망설여졌다.

유별나게 일본을 싫어해 그동안 일본여행은 물론 스시집 마저 철저하게 외면했지만,

손님의 배려를 어찌 거절할 수 있겠는가?

 

음식 값이 비싸기는 해도 너무 맛있게 먹었다는 정영신씨 말에

한 번도 데려가지 못한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

 

전시가 끝나는 20일은 정오 무렵에야 전시장에 나갔는데,

아들 조햇님과 ‘진인진출판사’의 김태진 대표가 와 있었다.

아마 정의당 동지로서 가까운 사이 같았다.

 

김태진씨는 ‘장에 가자’ 책 내용이 좋아 어머니를 비롯한 주변 분에게

선물할 책을 여러 권 구입해 와서 서명을 받아 갔다.

많은 책을 구입해 준 것만도 고마운데, 작품까지 한 점 사주었다.

인사치레만이 아니라 고향을 그립게 하는 정감도 한 몫 한 것 같았다.

 

이번 전시의 작품판매는 곽명우씨가 사간 작품에 이어 두 번째인데, 너무 고마웠다.

여지것 살아오며 많은 전시를 치러 왔으나, 손해 보는 줄 알면서도 치루는 병중의 큰 병이다.

경제적 손실보다 그 곳에 쏟아 붓는 공력 또한 여간 아니기 때문이다.

난, 전시를 열어준다고 해도 한사코 손사래를 쳐 왔으나, 정영신씨 경우는 달랐다.

어렵사리 책을 내준 출판사 사정도 고려해야하기 때문이다.

 

사진집으로 대중성을 갖기는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지만,

이 책은 따뜻한 이야기 거리가 담겨있어 대중성에 기대 걸만도 했다.

다행히 사회적 거리두기로 사람 사는 정이 그리운 때라 시기적으로도 적절한 것 같았다.

 

출판사의 주도면밀한 접근으로 일단은 출판 몇 일만에

재판에 들어갈 정도로 잘 팔리는 책으로 낙점 되었다.

 어쩌면 이 전시가 끝이 아니라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뒤 이어 사진가 이동준씨와 강정효씨가 나타났는데,

제주에서 온 강정효씨는 다음에 전시할 작가였다.

남태영씨의 도움을 받아 작품 철수에 들어갔는데, 액자가 없으니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저녁에 전시를 끝낸 기념파티를 ‘뮤아트’ 김상현씨가 마련한다는데,

점염병이 기승을 부려 지인들을 마음 편히 초대할 수도 없었다.

 

아무튼, 전시를 추진한 김남진관장을 비롯하여

도움준 많은 분들의 성원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사진: 정영신 / 글: 조문호

 

'장이 가자' 책을 소개한 신문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blog.daum.net/mun6144/5805

 

 

 

 

 

 

 

정영신의 ‘장에 가자’사진전이 지난 11일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개막되었다.

 

원님 덕에 나팔 부는 격이라고 좋아했지만, 첫날부터 술에 취해 뻗어버렸다.

전시가 끝나는 열흘 동안 살아남을 수 있을지가 걱정이다.

 

첫 날은 가져 갈 짐이 많아 차를 끌고 나왔는데,

주차할 곳도 마땅찮은데다 빠트리고 온 게 있어 다시 집에 가야 했다.

 

그의 치매수준이다.

눈은 침침하고 귀는 안 들리고, 어느 한 구석 성한 곳이 없으니 산송장에 다름 아니다.

이런 산송장을 거두어주는 보살님께 보답하는 길은 오로지 충성뿐이다.

녹번동에 차를 두고 동자동에 들려 충무로로 와야 했다.

 

서울역에서 충무로까지는 회현역과 명동역 다음인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지만

남산 길로 걷게되면 산책코스로 댓길이다.

스산한 늦가을 정취에 흠뻑 빠져 산길을 걸었는데, 머리위로 황금 잎이 휘날렸다.

 

전시장 입구에 도착하니 김이하 시인이 나와 있었다.

김이하시인은 문단의 곽명우씨나 마찬가지다.

이젠 문단 뿐 아니라 화단이나 사단까지 넘나드는 예술 판 마당발이다.

 

산길을 걸으며 생각한 것은 전시장 들어섰을 때, 처음 만날 장면이었다.

장터에 누가 어떻게 어울려 있을지 그 분위기가 궁금해서다.

그 첫 장면에 주술 같은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카메라를 손에 쥐고 들어갔다.

 

주변을 살펴보지도 않고 정면을 향해 찍었는데,

의자에 앉으려는 김이하씨의 어정쩡한 자세 옆에는

대마 명예회복이란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현영애감독이 서 있었다.

좌측에는 ‘이숲’출판사 김문영 대표와 정영신씨가 있었다.

뭔가 미완의 느낌이 드는 이 사진이 주는 의미는 뭘까?

 

한 쪽에는 현감독과 이조기영씨 등 함께 온 손님 몇 분이 계셨다.

지난 번 정선에서 만났던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반가운 분들이 차례대로 등장했다.

 

화가 정복수씨 가족과 김 구, 김문호, 이나무, 양재문, 남태영, 임경일, 이윤기, 장영진, 김범준,

이수철, 박찬호, 김영호, 최인기, 최건모, 한상진, 이기형, 홍성미, 이홍순, 정윤순, 김수진, 김재희,

 박찬원, 김민영, 임홍택, 손은영씨등 많은 분들을 두루 만날 수 있었다.

 

별도의 개막식은 없으나 다들 맞추어 오셨는데, 반갑기야 하지만 전염병이 걱정이었다.

만약 확진자가 생긴다면 갤러리 문 닫아야 할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다들 목숨 걸고 찾아 왔으니, 술이라도 한 잔 대접해야 할 것 아닌가?

묵은지 갈비찜이 맛있는 ‘김삼보’집으로 다들 자리를 옮겼는데,

곽명우, 남 준, 정장식씨는 뒤늦게 합류했다.

 

술 자리에서 많은 대화들이 오갔으나,

귀가 어두워 제대로 알아듣질 못하니 술 밖에 마실 일이 없었다.

일찍부터 홀짝홀짝 마신 와인이 화근인지,

소주가 들어가니 어질어질하며 진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아무데나 드러눕고 싶었으니, 이제 봄날은 간 것 같았다.

 

2차는 생각도 못하고, 술자리 파하기가 무섭게 최건모씨 도움으로 택시에 실려갔다.

미안하면 그냥 자빠져 잘 것이지, 택시비 걱정하느라

“이럴 때 119 부르면 안 될까?하는 별 궁상을 다 떨었다.

집에 도착하여 바로 뻗어버렸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방한복을 벗지 않아 온 몸이 땀에 젖었는데,

빼지 않고 잔 틀니의 불쾌함에다 속까지 쓰려 죽을 지경이었다.

원님 덕에 나팔 두 번만 불었다간 뒈지기 십상이었다.

 

보살님이 데워 준 육개장으로 속을 풀고 다시 전쟁터에 나서야했다.

술 상무를 제대로 하라는 보살님의 지시를 어찌 거역할 수 있겠는가?

이제부터 살살 마시자고 다짐에 다짐을 했다.

 

몸이 편찮으니 사진 정리는 물론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이틀 동안 소식을 못 전해 부득이 연속 상영을 좀 해야겠다.

 

그 이틀 날은 삭은 표내지 않으려고 동동구리무도 바르고 나름의 정장을 했다.

그 꼴에 그 꼴인 것을 꾸물대다보니, 사진가 박옥수선생과 최정균씨가 전시장에 먼저 와 계셨다.

박옥수선생께서 장터사진을 돌아보더니, 오랜 추억담을 꺼냈다.

 

지금은 돌아가신 사진가 문선호선생의 스튜디오에서 일할 무렵인 75년도 이야기였다.

그 당시 문선호선생의 스튜디오에는 박선생을 비롯하여 이창남씨가 일했는데,

쉬어야 될 년 말에 지방촬영명령이 떨어져, 새벽에 찾아간 곳이 여수장이었다고 한다.

장터 사람들의 순박함에 끌렸던 그 때가 그립다는 것이다.

 

전라도에서 경상도로 이동한 강행군이라는데,

년 초에 밥 사먹을 곳이라도 제대로 있었겠는가?

촬영 길에서 돌아 온 즉시 찍은 필름을 현상해 보고는 다시 찍으라고 내려 보냈단다.

최선을 다 하라는 가르침이 아닌가 생각된다.

 

장터사진에서 그 때 그 사람과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이 무엇을 말 하는가?

장터는 바로 그리움이었다. ‘사람 사는 정’ 말이다.

 

한참 후에는, 누군지 아리송한 분이 “날 알겠는 기요”라며 반갑게 다가왔다

마스크 위를 살펴보니 사진가 강위원씨 같은 느낌은 들었으나,

대구에 계신분이라 아닌 줄 알았다.

인사까지 나눈 터라 다시 물어보기도 민망했는데, 마침 팜프렛 한 권을 꺼내주었다.

 

진짜 강위원씨 맞았다. 뵌 지가 너무 오래되어 근황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

“아직 경일대학교에서 사진 가르킵니꺼?‘라고 물었더니,

정년퇴임한지가 십년이 넘었단다.

세월이 너무 빠르다는 것을 다시 절감했다.

 

팜프렛은 지난 주 대구에서 열었던 ‘팔공산의 향기’ 사진전이었다,

실린 사진에서 자연을 향한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바로 사진가의 마음이기도, 전하고자하는 메시지 같았다.

처음이면서도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기회라 기념사진도 찍었다.

 

뒤 이어 ‘스마트협동조합’ 서인형씨를 비롯하여 최석태, 황경하, 박건주, 이영미,

이미경, 정종열씨 등 조합의 일개 분대가 밀어닥쳤다.

 

사진들을 돌아 본 후 ‘보은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이젠 술을 아껴 마셔야 했다.

신사동 ‘뮤아트’에서 마실 일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살아남기 힘들더라.

 

좌우지간, 전시 덕분에 반가운 분들은 많이 만났다.

이렇게라도 보지 않으면 살아 생 전 뵐 날이 몇 번이나 있겠는가?

김진하, 박신흥, 김준호, 주기중씨 등 뵙지도 못하고 다녀간 분도 여럿 있었지만.

셋째 날 부터는 가까이 있는 동자동 쪽방에서 대기할 작정이다.

행여 보살님 청춘사업에 방해 될지도 몰라, 서랍에 넣어 둔 핸드폰을 꺼내 켜 놓았다.

 

정영신의 ‘장에 가자’ 책은 여행부문의 베스트셀러다.

출판된 지 몇 일만에 다시 찍은 2쇄마저 품절되어, 일부 서점은 책이 없는 곳도 있었다.

전시장에도 주문한 책이 오지 않아 재고가 바닥났다.

10% 활인해서 판매하는 인터넷서점에서 구입하는 것이 훨씬 편하다.

 

구입한 책을 전시장에 가져오면 작가 서명과 함께 작품사진(5X7규격)한 점을 선물로 드린다.

전시는 오는 20일까지 이어진다.

 

요즘은 없는 것이 없는 장이 아니라, 없는 것이 더 많은 장이지만,

그래도 따끈따끈한 정은 살아 있다.

“장 구경 하세요~ 날이면 날마다 오는 장이 아니랍니다.”

 

사진, 글 / 조문호

 

사진가 정영신씨가 3년 간 작업해 온 ‘장에 가자’가 ‘이숲’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장에 가자’는 시골장터와 그 지역 문화유산을 탐방한 책으로

장터에 문화의 옷을 입히고 싶은 작가의 마음이 오롯이 담겼다.

가족과 함께 주말여행을 생각하시는 분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장에서 사람 사는 정을 느끼고, 인근 유적까지 돌아본다면 유익한 여행길이 되리라 여겨진다.

 

그동안 정영신씨가 장터에 관한 책을 여러 권 펴낸바 있지만,

이번에 나온 책은 시골 오일장만 소개한 것이 아니라 장터와 유적을 연관시켜

장터가 문화 관광의 허브가 될 가능성을 타진하였다.

 

각 지역별 역사와 인물, 특산물 등 일곱가지 주제로 분류해 전국 22개 장터를 소개했다.

찍어둔 기존의 장터 사진이 아니라 다시 발품 팔아 찍은 최근 사진들이다.

출간을 기념해 2020년 11월 11일부터 20일까지 '갤러리 브레송'에서 사진 전시회도 열린다.

 

‘장에 가자’ 책은 10월30일까지 SNS를 통해 판매한다

책을 주문하신 분에게 장터 사진(5x7인치) 한 장을 서명하여 증정한다.

아래 장터사진 5장 중 번호를 선택해 주시면 책과 함께 우송해 드린다.

전시회기간 중에 구입하는 분은 장터 엽서(5매)를 증정한다.

 

책값 입금하실 곳 : 하나은행 593-810222-39907 (정영신) 

정영신 전화 010-2955-8926 카톡이나 메신저로 연락주시면 됩니다.

주문 받은 책은 매주 목요일 일괄 보내드립니다.

 

 

‘장에 가자’ -시골장터에서 문화유산으로-

-목차-

 

1장. 느림의 미학을 만나는 오일장

담양장, 대나무 소리 들린다

예천장, 조상의 숨결을 담다

영암장, 남도의 설악산으로 불리는 월출산

 

2장. 여인 삶의 향기가 밴 오일장

청양장, 콩밭 매는 아낙네가 부르는 칠갑산

순창장, 고추장으로 버무린 살풀이

남원장, 춘향이의 고장

 

3장. 자연 특산물과 만나는 오일장

강경장, 백제의 옛 터전 황산벌

광천 토굴 새우젓 시장, 은근하게 발효된 자연의 맛

남해 이동장, 가천 다랭이 마을

금산장, 인삼의 고장

 

4장. 개화기 인물을 만나는 오일장

정읍 샘고을 시장, 동학농민운동의 발생지 말목장터

영덕장, 블루로드 영덕대게의 고장

구례장, 지리산과 섬진강이 빚은 땅

 

5장. 옛 성현과 함께하는 오일장

광양장,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매실의 고장

영주장, 소백산 자락에 깃든 선비의 고장

송정리 오일장, 정(情) 한 보따리가 이야기꽃으로

 

6장. 역사 이야기와 함께하는 오일장

울산 언양장, 우리나라 근대화의 진열장

부안장, 산과 바다와 땅의 특별한 조화

무주 반딧불 시장, 나제통문

 

7장. 문화의 숨결이 오일장 속으로

옥천장, 정지용 시인을 만나다

고창장, 세계 최대 고인돌 유적지

보성장, 판소리 가락 초록 융단 휘 감는가

완주 고산장, 산중에 핀 한 송이 꽃, 선암사

 

-증정 사진 1-

-증정 사진 2-

-증정 사진 3-

-증정 사진 4-

-증정 사진 5-

 

-추천사-

사람냄새나는 ‘장에 가자’, 문화유산은 덤이다.

 

사진가 정영신씨의 시골장터와 지역 문화유산을 연결한 ‘장에 가자’를 펼쳐보니, 잊었던 고향과 돌아가신 부모님이 생각난다.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자주 듣던 사투리가 튀어나오고, 약장사의 구수한 구라가 재현되는 등 그리움이 밀려왔다.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며 사람답게 살아 온 노인들의 삶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 된 것이다.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 아닌가 생각된다. 한 마디로 로봇의 세상에서 사람의 세상으로 돌아가자는 메시지 같았다.

 

이 책은 34년 동안 장에 미쳐 쫓아다녔던 정영신의 장터 사랑이 이루어 낸 또 하나의 결실이다. 그동안 전국에서 열리는 오일장을 빠짐없이 찍고 장터 사람들의 이야기를 채록하는 등 여러 권의 장터 책을 펴냈지만, 이 책이 기존 책과 다른 것은 장터 인근에 있는 문화유적과의 연관성을 살펴보며 함께 소개한다는 점이다. 옛 선인이나 유적인들 장터와 관계없을 수가 없지만, 사람 만나는 장소가 장터고 사람 사는 게 문화니 자연스러운 조화인 것 같았다. 이왕 장에 간 김에 인근에 있는 유적지도 함께 돌아본다면 도랑치고 게 잡는 격이 아니겠는가.

 

작가는 장터에서 절망보다 희망을 찾았다. 현실적 부정보다 긍정적으로 보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책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다. 장터사람들이 전하는 구수한 사투리도 정겹지만, 감칠맛 나게 풀어가는 이야기 전개는 인간성이 상실되고 기계화되어가는 현실을 돌아보게 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근원적 향수를 자극했다.

 

“워메 줄 것이 한나도 없는디, 요 무시라도 하나 깍아드릴께라. 먼디서 온 손님인디.”라는 남원장에서 만난 한 할머니의 인정이 군고구마처럼 따뜻하다. 갈퀴 같은 손을 내밀며 “꼭 소가죽 같제라. 그래도 이 손으로 새끼덜 먹이고 갈쳤제”라는 대목에서는 코끝이 찡해진다. 그렇게 키운 자식들인데, 다 어디가 있는가?

 

영암장에서는 따뜻한 믹스 커피 한잔으로 하루 장사를 시작하는 할매들의 수다가 요란했다. 도갑사 해탈문 이야기, 도갑사를 지키는 나무 이야기, 영험한 월출산 이야기 등 장보따리 풀 듯 풀어낸다. 장터에 “봄에는 얼었던 땅을 뚫고 올라온 풋풋한 초록 푸성귀를, 여름에는 따가운 햇볕 아래 농익은 과일과 채소를, 가을에는 노랗게 물든 들판에서 익어간 곡식을 가져온 여인네들의 삶이 아름다운 색과 냄새와 맛과 소리와 함께 진열된다.”고 적고 있다.

 

청양장에는 당근 네 개 달랑 들고 나와 자리를 편 할머니 이야기도 있었다. “이거라도 놔야 사람 구경을 마음껏 허지유. 산중에 살다 보면 사람이 그리워유.”라는 말에 외로움이 절절하다. 농산물 팔러 온 것이 아니라 사람구경 온 할머니에서 심각한 오늘의 농촌 현실을 말해주고 있다.

 

정영신의 사진과 글은 아무런 기교나 멋을 부리지 않는다. 따스한 인정과 고향을 향한 그리움만 차곡차곡 쌓여 있다. 시골 할아버지의 등짐에, 아줌마의 봇짐에 감춘 사연 사연들을 장마당에 풀어 놓고 있다. 사진들이 다소 산만한 느낌은 들지만, 꼼꼼히 살펴보면 장터의 난장스러움이 잘 묘사되어 오히려 정감이 간다. 대개가 화면을 단순화시키기 위해 장애물을 치우는 등, 주변을 정리해 기록적 가치를 망가트리는 경우가 있지만, 그러지 않았다. 세월이 지나면 그런 하잘 것 없는 장애물도 역사적 단서가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럴듯한 배경을 택해 장꾼을 연출시키는 기존의 사진들에 비해, 이 처럼 장꾼들과 소통하며 찾아 낸 감정묘사나 장마당의 혼잡한 분위기가 주는 가치나 울림이 훨씬 오래간다. 사진을 찍기 전에 물건을 사고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간의 벽을 허무는 것 또한 그만의 어프로치다. 재미는 좀 덜하지만, 그보다 몇 배로 값진 장꾼과 사진쟁이의 소통된 마음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정영신식 색깔의 장터세계고 작품세계인 것이다.

 

다큐멘터리사진의 속성이기도 하지만, 그의 사진에서는 현장성에 의한 휴머니티가 짙게 깔려있다. 인정이 모닥불처럼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정영신의 사진에서는 된장처럼 구수한 냄새도 베어나고 잘 익은 막걸리 맛도 난다.

 

정영신의 장터 사진을 보면 그 때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각박한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사람 사는 게 이런 것“이라고 가르쳐 준다.

 

조문호 (사진가)

 

 

 

-작가노트-

움직이는 박물관, 시골장터

 

내가 어릴 적에 장(場)이 열리는 날이면 온 마을 사람들은 잔칫날처럼 들썩거렸다. 안동 아재의 소달구지가 동구 밖에 이르면 깨순이 엄마 보따리가 제일 먼저 실렸다. 뒤이어 마을 사람들 보따리가 하나둘 올라가면 사방이 초록으로 덮인 신작로 길을 빠져나갈 때까지 뒤따라가다가 돌아왔다. 봄이면 들판에 앉아 있던 자연도 덩달아 장에 나와 그 지역만의 삶 이야기를 초록빛으로 품어냈다.

 

후미진 장 골목에서는 갈퀴와 도리깨, 체와 쟁기를 만들었고, 정월 보름을 앞두고 농악놀이에 쓸 짚신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팔았다. 대장간 앞에는 날이 무뎌진 호미와 낫을 벼르려고 노부부가 앉아 있었고, 텃밭에서 뜯어온 채소와 농로에서 잡은 미꾸라지를 가지고 나온 박씨 아짐은 생산자이면서 판매자였다. 또한 장터 끝 골목에는 엄마 따라온 삼식이가 새끼 돼지가 도망갈까 봐 새끼줄을 붙들고 동그마니 앉아 있었고, 털북숭이 복숭아를 머리에 이고 온 순덕이, 소금물에 우린 감을 베어 먹던 주근깨투성이 깨순이도 있었다.

 

이렇게 장은 자연과 흙과 나무에서 흘러나온 푸르디푸른 이야기가 살아 있어 움직이는 박물관이 되었다. 지금 장은 예전과 많이 다르다. 그러나 땅과 더불어 살아가는 농민들이 지역 농산물로 만들어가는 농민 장터가 살아나야 한다. 장은 단순히 뭔가를 사고파는 장소를 뛰어넘어 인간의 삶과 정이 생생히 살아 있는 공간으로 새롭게 해석되어야 한다. 장을 통해 소통하는 백성의 삶은 수천 년 전부터 이어져왔으나 시대가 변하면서 오일장은 점점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34년째 장터를 돌아다니면서 ‘장터를 장터답게 만들 계기는 무엇일까?’ 숱하게 고민했다. 사진 한 컷 촬영하지 못하고 파장 무렵까지 장꾼들과 장에 나온 농민들과 이야기만 하다 돌아오기도 했다. 장터에서 만난 사람들도 자신이 사는 곳에 어떤 보물이 숨어 있는지 책이나 텔레비전에 소개된 것 말고는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했다.

 

5년 전 신문과 잡지에 전국 장터를 2년간 연재한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오일장의 모든 자료를 갖고 있지만, 새로운 장터 사진과 소식을 전하고 싶어 매번 다시 들렸다, 그 때는 장터의 변화된 모습과 또 다른 이야기를 기록했을 뿐 장터 주변에 숨어 있는 문화 유적지는 찾아보지 못했다. 장터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뭔가 두고 온 것이 있는 것 같아 다시 같은 장터를 찾곤 했다.

 

이 책, 『장에 가자, 시골장터에서 문화유산으로』는 내가 이전 책들에서 다룬 적이 없었던 장터와 지역 문화재를 찾아다니며 작업한 결과물이다. 여기 소개한 장 말고도 작업 중인 장이 숱하다. 30여 년 전 흑백필름으로 작업했던 예전 장터 모습과 요즘 모습을 비교해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30년 세월이 많은 것을 바꿔놓았으나 장에 오는 사람들이나 장에서 파는 물건들은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더 크게 말하자면 장에 오는 사람들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불과 55년 전인 1965년에는 버스비가 1원이었고, 쌀 한 말 값이 360원이었다. 우리 사회가 근대화 이후 엄청나게 발전했음을 여기서도 알 수 있다.

 

나는 지금도 장터에 가면 고향 냄새와 맛, 소리와 감촉을 느끼고 싶어 구경하러 나온 사람처럼 장을 몇 바퀴나 돌며 헤집고 다닌다. 어떤 물건이 새로 나왔는지, 난전에서 무엇을 파는지 알고 싶다. 계절 따라 파는 물건이 다르기에 사계절 모두 장에 가봐야만 그 생리를 알 수 있다. 겨울철 구례 산동장에 가면 산수유 열매로 장 안이 온통 새빨갛다. 이처럼 장터는 그 지역의 삶이 그대로 펼쳐진 한 폭의 풍속도다. 치열한 삶의 현장이면서도 인정 넘치는 백성의 문화 공간이다. 내게 남은 숙제는 지역마다 서로 다른 장의 특색을 잘 살려낼 고유한 문화를 찾아내는 일이다. 우리네 시골장은 선조들의 역사이고 우리의 현재이자 아이들의 미래다.

 

정영신 (사진가, 소설가)

 

작가소개

​​정영신은 1958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나 34년째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오일장 600여개를 모두 기록한 장터사진가이자 소설가다. 장터에서 만난 우리 민초들의 삶의 애환과 각 지역의 역사적 자취를 찾아다니며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다. 특히 농사짓는 초기부터 유통되기까지의 전 과정과 한국어머니들의 삶의 이야기를 채록해 왔다, 장마당의 풍정만 기록한 것이 아니라 장터 인근에서 만날 수 있는 지역문화유산과 장마당을 고리지어 사진과 글로 담아내고 있다.

 

개인전

‘정영신의 시골 장터’ (2008, 정선아리랑제 설치전)

‘정영신의 장터’ (2012, 덕원갤러리)

‘장에 가자’ (2015, 아라아트)

‘장에가자프로젝트2’ (2015 정선시외버스터미널 문화공간)

‘장날’ (2016, 아라아트)

‘정영신의 한국의장터전’ (2017, 전국5일장박람회)

‘장터에서 백만 가지 표정을 담다’ (2018.정선고드름축제장)

 

단체전

<순실뎐> (2017 나무화랑), <병신무란 하야제> (2017 아리수갤러리), <촛불 역사전> (2017 광화문광장) 등

 

출판

‘시골 장터 이야기’ (2002, 진선출판사).

‘한국의 장터’ (2012 눈빛아카이브)

‘정영신의 전국 5일장 순례기’ (2015.눈빛)

눈빛사진가선 29 ‘장날’ 정영신사진집 (2016.눈빛)

‘정영신의 장터이야기1’ (2019 라모레터)

‘정영신의 장터이야기2’ (2019 라모레터)

‘정영신의 장터이야기3’ (2019 라모레터)

 

작품소장

서울시립미술관 2점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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