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느닷없는 ‘인사동 이야기’ 사진전 준비하느라 똥줄이 탄다.

며칠동안 정신없이 지내다 액자를 맡긴 이제사 한시름 놓았다.

 

뭐보다 머리가 아픈 건 그 많은 사진에서 무엇을 보여주느냐 하는 선택의 문제였다.

오늘의 인사동을 말할 수있는 '묵시록'에 걸맞는 이미지를 골라

흑백으로 바꾸었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 건 아니다 싶었다.

 

흑백으로 전환하면 사진의 리얼리티를 훼손하기도 하지만,

그 장면에 따른 컬러의 독특한 분위기가 사라져서다.

다시 스트레이트한 본래의 사진으로 바꾸었더니, 훨씬 감이 좋았다.

이제 사진자료들을 정리하여 알리는 일만 남았다.

 

돈 버는 일을 이렇게 열심히 했더라면 강남에 아파트라도 한 채 생겼을까?

돈을 우습게 여긴 스스로의 업이니 누굴 탓하랴 마는 평생 해온 일에 후회는 없다.

 

이제 정부에서 주는 돈으로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으니, 또 다시 일을 저지른 것이다.

그러나 점점 힘들어지는 것을 보니, 일을 줄여야 할 때는 된 것 같다.

 

모처럼 컴퓨터 앞에 앉아 지난 이야기라도 끌적일 여유가 생긴것이다.

 

며칠 전에는 일손이 잡히지 않아 바깥 나들이를 했다.

'동자동 사랑방'에 커피 한잔 얻어 마시러 갔더니,

회의 중인지 사람들이 많아 새꿈공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낙엽을 머리에 이고 고독을 씹던 가을남자 이대영씨가 반겨주었다.

혼술을 즐기는 이씨가 그 날따라 분위기에 쏠렸는지 술 잔을 권했다.

 

그렇게 시작된 술자리는 짹짹이 아낙의 술 공수로 한 병 두병 늘어 갔는데,

영등포에서 동자동으로 이사오기로 한 차씨 아주머니의 등장과

눈 먼 권관수씨 등 술꾼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권씨는 기자들이 몇 명 찾아와 인터뷰를 하고 갔다며 떠벌렸다.

현금을 안 주고 통장에 넣어준다고 불평 했지만, 인터뷰료 들어 올 건수 생겼다는 자랑인 셈이다.

 

요즘 케이비에스에서 연말 특집 제작한다며 동자동을 헤집고 다니는 모양이다.

오전에는 내방에도 찾아와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갔다.

아무튼, 빈민들의 현실이 알려져 희망을 갖고 살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으면 좋겠다,

 

눈먼 권씨는 소주를 패트병에 담아 가슴에 품고 다니며 마신다.

담배 한 가치는 항상 귀에 꼽고 다니는데, 어디 떨구었는지 담배 찾느라 여기 저기 더듬었다.

 

귀가 밝아 비둘기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섭하는 판에

잠바 속으로 담배 떨어지는 소리는 왜 못 들었는지 모르겠다.

 

낙엽이 떨어지는 공원의 술상은 어느 술상보다 멋졌다.

 

"하나님! 전기세 많이 나가니 에어컨 좀 꺼 주세요"라고 이씨가 허공에 외쳤다.

날씨가 점차 쌀쌀해 진다는 소리다.

 

 박씨는 뭐가 그리 눈에 거슬리는지 낙엽 떨어지기가 무섭게 쓸어담았다.

지저분해서가 아니라 소일거리로 하는 일이라 말릴 수도 없었다.

 

권씨는 보이지도 않으면서 짤짤이나 고스톱만 하면 딴다고 자랑질이다.

 

본격적인 추위가 몰려오면 다들 방에 처박혀 살아야하니,

오늘이 가을의 마지막 술상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봄이야 다시 오겠지만, 동자동의 봄은 언제 오려나?

 

사진, 글 / 조문호

 




동자동 쪽방에도 어김없이 봄바람이 분다.
지난 9일 오후에는 무슨 불만이 그리 많은지 잔뜩 찌푸렸는데, 그런 날씨는 내 몸이 먼저 알아챈다.






찌푸둥한 몸을 이끌고 공원으로 나갔더니, 이미 사람들은 젖어있었다.
비가 아니라 술에 젖어 세상시름 다 녹였다.
그들의 텅 빈 가슴 위로 꽃비가 떨어지고 있었다.

그 날따라 흐드러지게 핀 목련이 슬퍼 보이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무슨 말인지도 알아듣지 못할 혀 꼬부라진 소리가 나를 반긴다.
세상에 여기처럼 인심 좋은 곳은 없을 게다.
담배와 술은 기본이고, 그 철천지원수 같은 돈도 나눠 쓴다.
공원의 비둘기조차 빈자들의 술안주를 축낸다.





다들 취했으나, 정용성씨가 소주 두 병을 더 사왔다.

할 술이 떨어져 사왔겠지만, 술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주량에 맞추어 알아서 마시는 습관이 몸에 배어서다.






한 쪽에선 장기로 상대의 수를 탐색하였고,
한 쪽에선 욕설로 상대의 정을 확인하였다.
못할 놈들의 “씨발넘아”는 사랑한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가끔 생각 차이로 실랑이가 생기고 큰 소리도 나지만, 옆에 있는 경찰초소 보안관이 판결 내린다.






이 꿀꿀한 봄날에 어찌 술 생각이 없겠냐마는 술을 자재 했다.
‘알중’들의 술자리를 부추긴다는 부정적인 시선을 의식해서다.
요즘 노숙자 술 마시는 사진을 올리지 않는 이유도 그래서다.






멀쩡한 놈들이 일은 안 하고 술만 마신다는 질책을 여러 번 들었다.
노인들도 폐지를 줍거나 일 하는데, 뭐 좋다고 그런 놈을 찍느냐는 거다.
대꾸는 안하지만, “잘난 놈보다 못난 놈이 정겹다‘고 구시렁거린다.






일하는 사람들은 희망이라도 있지만, 이들은 희망조차 잃은 사람이다.
그들의 죄라면 부모 잘 못 만나, 가진 것 없고 못 배운 죄 뿐이다.
세상에 아무런 미련도 없이 스스로의 목숨을 재촉하는 것이다.






술 없이는 못 사는 불쌍한 사람들, 너무 나무라지 말라.
“새벽종이 울렸네”의 새마을 시대도 아니고, 죽자 살자 일만하는 시대도 지났다.
그런 욕심들이 세상을 이 지경으로 만들지 않았던가?






뒤늦게 안면은 있으나 잘 모르는 아낙이 나타나 계속 시비를 걸어왔다.
싫어하면 사진을 찍지 않는 것은 기본인데, 왜 다른 사람까지 찍지 말라는 것인가?
가끔 심통 부리는 사람도 있지만, 일체 대꾸하지 않는다.






이대영씨가 사진작가라고 해도 소용없고, 정용성씨가 기자라 해도 소용없었다.
뒤에서 나를 지켜보다 카메라만 꺼내면 고함을 질러댔다.
결국은 황춘화씨의 “우리 편이야!”라는 혀 꼬부라진 한 마디가 그 여인의 입을 막았다.






우리 편이란 한 마디가 그렇게 친근할 수 없었다.
“그래, 우린 모두 한 편이야!
세상은 편 가르기에 눈이 뒤집혔지만, 모두 우리 편으로 만들어버리자“






노래 가사처럼 ‘아픈 가슴 빈자리에 하얀 목련이 진다’



사진, 글 / 조문호




















더위에 쫓겨, 밖으로 나가야 했다.
쪽방 컴퓨터 앞에 쪼그려 있으려니, 숨이 턱턱 막혔다.

골목에서 만난 유한수씨는 김원호씨에게 거수경례를 붙이며
군인을 길들여 왔던 ‘충성’이란 개소리를 외쳤는데, 그게 누굴 위한 충성이었던가?

국가에 헌신해야한다는 것이 몸에 베었지만, 그건 기득권자들을 위한 미친 짓이었다
단지, 무료한 일상에 웃기 위한 행위였지만, 뒷 맛이 개운치 않았다.






조인형씨는 고물 티브이 한 대를 해부하고 있었고,
조두선씨와 박성일씨 등 몇 명은 이야기 나누느라 정신없었다.
일하는 사람과 노는 사람의 차이만 있을 뿐,
사는 것은 다 마찬가지다.






새꿈 공원에는 정재헌, 이대영씨가 이미 취해 있었는데,
술이 약이던가? 술 취한 사람들은 다들 웃고 있었다.
절망에 익숙해지면 술과 담배를 끼고 사는 법이다.
세상이 중독자를 양산하고 있다.





사는 게 너무 공평하지 못하다.
가진 자들은 돈을 주체 못해 별 지랄을 떨지만,
더워도 물놀이 한 번 가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들.
동자동 사람들에게 신바람 일으킬 일은 과연 없는가?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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