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이현의 사진일기

폭염이 기승을 부린 지난 주말의 봄에실농장에는 또 다른 시원한 풍경이 연출되었다.

 

물놀이를 좋아하는 평이를 위해 정원 모퉁이에 물놀이장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온종일 물놀이에 빠진 평이의 모습에, 구경하는 나까지 시원함을 느꼈다.

 

사실, 고양이처럼 물을 겁내는 늙은이라, 여태 바닷가에 갈 기회가 생겨도 물에 잘 들어가지 않았다.

오래전 물놀이하다 죽을 뻔한 이후부터 생긴 물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지난 주말 역시 무더위가 기승을 부려 낮에는 일손을 놓아야 했다.

집안에 들어가도 푹푹 찌는 더위라 오래 있을 수도 없었다.

 

얼마 전 인근 고속도로 발파작업으로 지붕의 기와가 흔들려 비가 새기 시작했는데,

공사장 측에서 임시방편으로 지붕 전체를 천막으로 감싼 이후 부터다.

 

김창복씨는 그 무더운 날 닭을 잡아 삶았고, 나는 이현이 따라 옥수수를 땄다.

 

옥수수를 삶아 다 같이 하모니카 합주로 토종 맛에 빠지기도 했고,

수박 화채로 더위를 식히는 여유로운 주말을 보낸 것이다.

 

잠시만 움직여도 땀이 팥죽같이 흘러내려, 그늘막에 앉아 담배나 피우며 평이 물놀이 구경을 했다.

 

물에 들어오라는 평이 재촉에 못 이겨, 잠깐 놀아주러 들어갔는데, 그게 아니었다.

지하수를 뽑아 올린 찬물이라 지긋지긋한 더위를 한 방에 날려버렸다.

 

족욕이나 즐겨야 할 늙은이가 어린애처럼 물장구치는 꼴불견이었으나,

정신이 번쩍 드는 시원함에는 쪽팔려 죽어도 좋았다.

 

턱 위에 올라가 다이빙한다며 퐁당거리는 추태까지 보였으니, 나이를 잊어버린 것이다.

 

다들 늙으면 어린애가 된다 지 않던가? ㅎㅎ

 

사진: 정영신, 조문호/ : 조문호

 

토종이 맛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나, 식탁에서 사라진 지 꽤 오래되었다.

식량 증산을 위해 새 품종으로 개량했기 때문인데, 크고 매끈한 것만 찾는 소비자의 성향도 한 몫 했다.

'농업진흥청'에서 개량한 종자만 사용하다 보니, 토종이 설 자리를 잃어 씨를 말려 버렸다.

 

요즘 나온 과일이나 농산물을 먹다 보면 대개 맛이 없다.

다들 왜 옛날 맛이 나지 않을까?” 궁금해 하지만, 종자를 바꾸었기 때문이다.

 

아산의 김창복씨는 유기농으로 토종만 고집하는 농삿꾼이다.

토종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워, 긴 세월 토종 씨앗을 구하러 수소문하고 다녔다.

현재 보유한 종자만 수십 종에 달한단다.

 

수집한 토종 씨앗으로 재배해, 그 농장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농산물은 토종이다.

그러나 수확량도 적지만 때깔이 작고 못생겨 상품화될 수가 없었다.

돈은 못 버는 대신, 식구들은 옛 맛의 진수를 본다.

 

지루한 장마로 지지난 주말엔 봄에실농장에 가지 못했다.

지난 주말에도 장마가 이어진다는 일기예보였으나, 일기예보가 빗나기를 바라며 갔다.

일주일만 가지 않으면 잡초가 농작물을 뒤덮기도 하지만, 자란 야채를 따기 위해서다.

 

아니나 다를까 비는 그치지 않고, 젖은 땅을 쉼 없이 적셨다.

지난 폭우에 언덕길이 무너지는 불상사는 있으나, 큰 피해는 없었단다.

지척에서 울어대는 맹꽁이 소리를 음악 삼아 멍 때리는 한가한 시간이었다.

 

선우는 옥수수를 삶아왔다. 하나같이 어린 애 손처럼 작고 앙증맞았으나, 맛은 달랐다.

마치 늙은이의 치아처럼 생겼는데, 옥수수 알은 빠지거나 엇갈린 것이 더 맛있었다.

그래, 어릴 때 맛본 이 맛이야! 입맛이 변한 게 아니라 종자가 달랐구나

맛있게 하모니카를 불고 있으니, 고양이도 먹고 싶어 창 너머로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김창복씨는 빗방울이 약해지니, 그사이를 못 참고 신발을 거둬 빗물에 씻어 왔다.

참 부지런한 분인데, 게으른 놈은 옆에 있기가 참 민망하다.

 

이현이는 정동지가 갖다 준 옷으로 패션쇼 하느라 바빴다.

이 옷은 어울리지 않는다면서 한 바퀴 돌고 가더니,

두 번째는 쌕시 모드라며 짧은 바지에 선그라스 까지 끼고 나와 한바탕 웃겼다.

 

비 덕분에 복에 없는 호강을 했다.

토종작물을 특화하여 파는 방법은 없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왔다.

거지의 삼중생활은 고달프지만 즐겁다.

 

사진, / 조문호

 

 
양이현, 셀프 촬영

‘봄에실’은 아산시 인주면에 있는 농장 이름이다.

그곳에는 김창복, 김선우, 양이현, 김평 동지 외에 또 다른 대식구가 있다.

 

고양이 4대가 함께 살며 농장의 파수꾼 노릇을 톡톡히 한다.

갈 때마다 꼬리를 치켜세워 반가운 기색은 하지만, 별다른 행동은 하지 않는다.

항상 거리를 두며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편안한 가족관계를 유지한다.

 

함께 모인 것을 보지 못해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 대략 20여 마리 되는 것 같았다.

들쥐나 뱀을 쫓아주는 고마운 일을 하지만, 그들이 먹어 치우는 사료 값이 만만찮다.

 

 4대가 한 가족을 이룬 농장에 유일하게 입양된 갈색 고양이가 한 마리 있다.

다들 야생으로 사는 것이 체질화되었으나, 그 냥이만 방에 살던 미련이 남아,

높은 곳에 올라가 창으로 방안을 내려다 보았다.

안쓰럽지만, 곧 자유로운 야생에 익숙해질 것이다.

 

고양이가 없었을 때는 들쥐가 닭장에 들어가 닭을 잡아가기도 하고

풀밭에 뱀이 도사리고 앉아 일하는 사람을 놀라게도 했으나,

고양이 방위사령부가 지킨 후로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이가 들수록 세월이 빨라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인데, 주말마다 농장에가니 일주일이 총알같다.

 

문제는 몸이 마음같이 움직여 주지 않는데 있다.

 

더구나 장마철이라 그런지 몸은 쇳덩이처럼 무겁고, 마치 두들겨 맞은 것처럼 욱신거린다.

 

지난 주말에는 김창복씨가 몸보신시켜 준다며 닭을 두 마리나 잡았다.

더운 날 아궁이에 불을 지펴 엄나무와 푹 삶아 놓았더라.

 

그리고 얼마나 부지런한지, 그 넓은 농장의 잡초를 깨끗이 베어내고,

나무 가지치기까지 해 정원을 말끔하게 단장해 놓았다.

 

연못에는 물이 고여 곳곳에 개구리알이 둥지 틀었고,

심어놓은 야채는 싱싱하게 자라, 가지도 고추도 거시기보다 더 컸다.

 

정동지는 백반을 챙겨와 이현이에게 봉숭화 꽃잎으로 손톱에 물들이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잠시도 쉴 틈 없는 김선생께는 발판 겸 책꽂이 하나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냥 판자를 잘라 못질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라인더로 갈고,

선우는 콩기름까지 먹여 발 딛기 민망할 정도로 예쁘게 만들어 주었다.

 

다음날 오찬에는 선우가 연잎밥을 지었는데, 너무 예뻐 먹기 아까웠다.

오래전, 도예가 조상권씨 공방에서 먹어본 후, 두 번째 맛보는 연잎밥이었다.

입안에 번지는 향이 감칠맛이었다.

 

남정네 빰치는 작은 여장부 김선우는 일 솜씨뿐 아니라 음식솜씨도 대단했다.

거기다 양이현의 부지런함이나 인정스러움은 요즘 소녀가 아니다.

듬직한 평이의 재치 역시 부전자전이다.

 

대단한 분이 모여 사는 농장에 얼치기 두 명이 끼었으니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도움은커녕 일거리만 만드는 편인데, 갈 때마다 신세만 진다.

 

'벼룩도 낯짝이 있다'는데, 이 일을 어쩌지?

 

사진, 글 / 조문호

 

양이현, 셀프 촬영

지난 주말에는 아산 인주면 산채에서 바비큐 파티가 있었다.

급히 장항에서 사진 찍을 일이 있다는 정 동지 말에 그곳부터 들려야 했다.

장항선 따라가는 장터 기행 작업하느라 여러 차례 갔으나,

‘등잔 밑이 어둡다’듯이 장항역 사진만 못 찍었다는 것이다.

사진 한 장 찍기 위해 장항까지 간다는 것은 좀 억울했다.

시간 낭비는 차지하고, 길바닥에 쏟는 기름 값과 통행료가 아까워서다.

차라리 사진 원고 대행업체에서 한 컷 빌려 쓰면 좋으련만, 정 동지는 모든 것을 직접 찍어야 직성이 풀린다.

 

장황에서 간단히 촬영한 후 급히 달려갔으나, 다들 파티를 열기위해 우리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여섯시 무렵 도착했으나, 해가 길어 한낮이나 마찬가지였다.

 

다른 곳은 비가 많이도 내렸으나, 이곳만 피해 갔는지, 파 놓은 연못에 물도 고이지 않았다.

들쥐와 뱀을 쫓는 고양이는 녹음 짙은 산채를 어슬렁거렸다.

 

임금님 기다리던 궁녀가 죽어 꽃이 되었다는 전설의 능소화는 전신주를 타고 올라 하늘 위에 피어 있었다.

 

매번 ‘백암길미술관’에서 머무는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본가에다 PC까지 장만한 임시 거처를 만들어 놓았다.

미술관 잠자리가 불편해서 보다, 그곳까지 운전해 가려면 술을 마실 수 없기 때문이다.

 

선우와 이현이는 음식을 나르고, 김창복씨는 모깃불 피울 쑥을 베거나

숯불을 피우는 등 바쁘게 움직였다. 등달아 평이도 신났다.

 

파티 준비를 서둘러 끝낸 후 다 같이 축배부터 들었다.

새 식구를 맞은 동지들의 단합을 위한 축배였다.

 

노릇노릇하게 구운 돼지고기와 자연 속에서 마시는 술맛은 어디에도 비길 바가 아니었다.

 

좋아하는 소주 ‘새로’도 한 박스나 사 두었다.

일 나갔던 기웅서씨는 정동지 좋아하는 흑맥주까지 사왔다.

평소 소주 한 병이 주량이지만, 그날은 두 병을 마셔도 끄떡없었다.

 

술이 들어가면 가무가 따라야 하지 않겠는가?

김창복씨는 주변을 밝힐 조명 설치에 분주하고, 이현이는 무대 장비 챙기느라 바빴다.

평이는 현장감독이라며 안전모까지 쓰고 나왔다.

 

창고에 숨겨 둔 드럼과 북채까지 끄집어냈다.

놀라운 것은 앰프도 없고 노래방 기계도 없지만, 디지털세대인 이현이의 지혜로 모든 것이 해결됐다.

 

마이크에 앰프 성능이 있었고, 유튜브 노래방 음원을 연결한 핸드폰이 노래방 기계로 변신한 것이다.

드디어 산 속 야외무대의 버라이어티 쇼 막이 올랐다.

쑥을 태운 자욱한 모깃불 연기가 마치 무대 연막 같았다.

 

차례대로 노래를 불렀는데, 나가수 뺨치는 노래 실력이었다.

김창복씨의 ‘휘나리’에 이어 ‘다 함께 나가자’에 이르기까지 별의별 노래가 다 나왔다.

 

산채가 떠나갈 듯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니, 울어대던 풀벌레도 기 죽어 잠잠했다.

 

선우와 이현이는 여성해방가로 불리는 ‘딸들아 일어나라’를 합창했다.

일하느라 하루를 다 보내고 자신과 세상에는

한 발도 들여놓지 못하는 여성의 처지를 토로한 노래였다.

 

촌에서 썩기 아깝다며, 중앙무대로 진출하라며 바람을 잡았다.

이현이는 다양한 분장으로 눈길을 끌었으나, 관객이 적어 아쉬웠다.

 

구름 속에 숨은 달빛만 엉큼하게 내려보고 있었다.

 

사진 : 정영신, 조문호 / 글 : 조문호

 

개뿔도 없는 거지가 이렇게 호사를 누려도 되는지 모르겠다.

지난 달부터 일주일에 사흘(월,화,수)은 동자동서 사진 찍느라 바쁘고,

이틀(목,금)은 녹번동에 파출부로 나가고, 나머지 이틀(토,일)은 농장에 농사지으러 다닌다.

나보다 더 바쁜 사람 있으면 어디 한번 나와봐라.

 

지난 주말은 아산 농장 가기 전에 들릴 곳이 있었다.

가는 길에 강남 ‘연우갤러리’에서 열리는 오현경씨 “Rain”도 봐야 하고,

용인 ‘갤러리 위’에서 열리는 이익태씨 “Everyone Pierrot”도 봐야 했다.

거리가 멀어 미뤄 둔 전시를 하나 하나 돌아보며 아산시 인주면에 간 것이다.

 

오후 3시 무렵 도착했는데, 이번엔 반기는 식구가 많았다.

김창복, 김선우 동지를 비롯하여 양이현과 막네 김평까지 와 있었다.

평이는 2년 전 아산에서 열린 ‘미얀마 민주시민을 위한 미술행동전’ 개막식에서 보고 처음 만났는데,

얼마나 자랐는지 엄마보다 더 컸다.

 

이현이는 햇살이의 새 이름인데, 예쁜 아가씨가 엄청 부지런하고 일을 잘 하더라.

 

지난주에 부루벨리를 따 왔으나, 다시 주렁주렁 열렸다.

이현이와 평이까지 합세해 부루벨리를 땄는데, 시간이 너무 빨리 갔다.

 

잔뜩 딴 부루벨리를 모두 가져가라는데, 지난 번처럼 배달할 일이 걱정되었다.

 

고민 끝에 나누어 먹을 방법을 찾아냈다.

냉동실에 저장해 두었다가 다음 달에 열릴 정동지의 '장항선 따라가는 장터사진전'때 내놓을 작정이다.

 

선우가 차려 낸 진수성찬으로 배를 불린 후, ‘백암길미술관’에 여장을 풀었다.

미술관에서의 잠자리는 마치 신혼여행 온 기분이다.

 

이튿 날은 잡초를 뽑다보니, 텃밭에 심은 청경채를 벌레가 다 갉아 먹었더라.

농약을 사용치 않아 어쩔 수 없는 현상이지만, 손으로 벌레를 잡는 수 밖에 없었다.

 

간식으로 먹기 위해 감자를 캐러 갔는데, 자색감자가 포도송이처럼 탐스럽게 달렸다.

그런데, 이현이가 감자밭에서 맹꽁이 한 마리를 발견한 것이다.

 

맹꽁이는 10년 전부터 멸종위기 2급으로 지정된 보호종이 아닌가?

건설 현장에서 맹꽁이 한 마리 나오면 1억 원 날아간다는 말도 있다는데, 이곳에 맹꽁이가 엄청 많다고 한다.

 

비오면 맹꽁이들이 “맹꽁맹꽁” 합창하고, 여름밤엔 반딧불이 산채를 수놓는 보기 드문 청정지역이었다.

이십여 년 동안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유기농을 고집한 김창복씨의 노력과 집념 덕분이다.

 

그리고 포장도로에서 산채까지 가는 팔백 미터가 비포장도로였다.

처음엔 다소 불편하게 느껴졌으나, 이 또한 이곳만의 매력이었다.

요즘 흙길 걸을 수 있는 곳이 어디 있는가? 입구에 주차장만 준비된다면 산책코스로 손색이 없었다.

 

이곳에 갈 때만은 핸드폰도 버리고 아날로그의 삶으로 돌아간다.

 

올해 열 두 살인 평이는 유치원은 물론 초등학교도 보내지 않았다.

오로지 가정교육에 의지한 채, 스스로 지식을 깨우쳤으나 모르는 것이 없었다.

획일적이고 일방적인 과도한 지식 습득이 인간성을 상실시키는 교육의 문제점을 간파한

부모 덕분에 공부에 쫓기지 않고 자유롭게 자란 것이다.

 

단 한 가지 문제점은 주변에 친구가 없어 걱정이다.

얼마나 사람이 그리웠으면, 우리가 가는 주말을 손꼽아 기다린단다.

다음에는 바비큐 해 먹자는 평이의 마지막 인사가 마음에 걸린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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