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은 마음이 홀가분했다.

전날 밤 인사동 이야기원고도 마무리해 넘겼고,

노숙인, 길 위에 살다현수막 전에 사용할 사진도 골라

정영신씨께 넘겨주려 녹번동으로 찾아갔다.

 

주말 쫑 기념으로 정영신씨와 와인이나 한잔할 생각인데,

아침에 일어나 컴퓨터를 켜니, 이게 왠 난리냐?

그날이 생일이라며 여기저기서 꽃바구니가 날아오고

축하한다는 메시지가 페북 창을 도배했다.

본인도 몰랐던 생일인지라 깜짝 놀랬다.

 

사실, 나는 태어난 자체가 부끄러워 생일을 싫어한다.

예전에는 모르고 넘어갈 때가 많았으나 정영신씨를 만나고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제일 싫어하는 음식인 미역국을 먹어야 하고

부담스러운 선물도 받아야 했다.

 

요즘은 페이스북까지 나팔 불어 동네방네 소문 다 내버린다.

그 수많은 축하 인사에 일일이 답하는 것도 하나의 일이 되어버린다.

조용히 살기 힘든 세상인 것이다.

소통하기 위해 페북에 가입한 자업자득인 것을 어쩌겠는가?

 

미끌미끌한 미역국을 아침 겸 점심으로 먹어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나니 이태원의 김상현씨가 전화를 걸어왔다.

오늘도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날 것 같은 예감이었다.

사 온 빵과 식혜를 술안주로 한 잔하고 있는데,

이번엔 조해인 시인이 생일을 축하한다며 전화를 걸어왔다.

 

생일 케잌까지 사 와서는 촌스럽게 촛불까지 켰다.

정영신씨는 이제부터 나이가 한 살이라며 초를 하나만 켜네

한 살짜리 어린애로 취급하겠다는 심보가 아니던가?

 

그렇다면 아무 일도 안 해도 되고 젖도 빨려주겠네.

그나저나 나이를 한 살 더 먹으면 도대체 몇 살인가?

며칠 전 김발렌티노가 같은 띠 동갑이라며

꿀꿀이 행님이라고 했으나 계산이 잘 안 된다.

 

낮술에 취해 뻗어 잤는데, 자고 일어나니 날 새버렸네.

우왕~ 생일이 가버렸잖아.

정영신씨 하고 오붓하게 쫑 파티 하려던 것도 물 건너갔고

기념으로 하려던 한 살짜리 퍼포먼스도 불발로 끝났네.

뒤늦게 한 말로 요즘은 육 개월 지나면 젖 안 물린다네.

 

, 한 살짜리 개구쟁이가 분명한데, 몸은 자꾸 늙어가니 이 일을 어떻하나?

이제 내 나이 철없는 한 살로 돌아왔으니,

행여 어리광을 부리더라도 널리 양해해 주시길 바라나이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 조문호

 

 

 

 

난, 생일을 유달리 싫어한다.

나만을 위한 특별한 날이 부담스러워서다.

어릴 적부터 생일은 어머니를 위한 날이라고 여겨왔다.

오죽하면 미역국을 싫어했을까?

 

젊을 때는 음력 생일을 가족들이 챙겨주었지만,

점차 나이가 들어가며 음력 생일은 잊어버렸다.

한 동안 생일은 잊고 지나칠 때가 더 많았는데,

정영신씨를 만나며 피곤할 정도로 생일을 챙기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음력생일이 양력생일로 바뀌었고,

그 미끌미끌한 미역국 먹는 일이 유일한 생일치레였다.

그냥 지나치기를 바랬으나, 페이스 북을 시작하며 더 큰 곤욕을 치룬다.

 

생일이 되면 페북에서 나팔 불어대니, 잊고 지나치기는커녕

잘 모르는 페친까지 생일을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날려댄다.

사실 나이가 들수록 생일을 맞는다는 것은 죽음을 재촉하는 것 같다.

 

지난 9월3일에는 폭우로 정선 만지산에 고립되어 있었다.

이튿 날 아침에 생일밥을 먹기로 약속 했는데, 빠져 나갈 수가 없었다.

정오 무렵에야 물길이 열려 떠날 수 있었다.

 

아침 약속이 저녁으로 바뀔 수밖에 없었는데, 가는 길도 만만치 않았다

평소 네 시간이면 충분한 국도가, 이날은 양평에서 밀리기 시작하여

장장 일곱 시간이 걸려서야 녹번동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영신씨는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있었다.

조촐한 생일 밥상을 준비해 두었는데, 손녀 하랑이도 온다고 했다.

 

좀 있은니 아들 햇님이 내외와 귀염둥이 하랑이가 등장했다.

하랑이가 생일케익까지 들고 왔는데, 그 날은 생일 같았다.

 

하랑이를 웃기려 빠진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 거렸더니,

괴기한 모습에 놀란 하랑이가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진짜 웃기는 건, 나를 보지 않겠다고 눈을 감아버린 것이다.

 

하랑이 마음을 달래려고, 좋아하는 얼음과자를 주어도 반기지 않고

생일케익에 불을 꺼라 해도 시무룩했다.

얼마나 할애비가 얄미웠으면 눈을 반쯤 감고 안 보려 할까?

 

“하랑아~할아비 생일을 축하해 주어 고마워”라고 말했더니

그때사 손 키스를 날려준다.

 

하랑이가 요즘은 어린이집에 다녀 그런지

말도 제법하고 귀여운 짓을 곧 잘한다.

먼 길을 탈출하여 어렵사리 생일상을 받은 보람이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은 생일을 맞고 싶지 않다.

이젠, 나에게 생일은 없다.

 

사진 글 / 조문호

 

 

 



생일에 대한 나의 생각은, 대충 세 시기로 나누어진다.

그중 좋았던 시절은 소년기였다.
물커덩한 미역국이 먹긴 싫었지만, 일단 호주머니가 두둑해 좋았다.

그리고 청년기에는 생일이 싫었다.
본디 성격이 암띠어 나를 주인공으로 이루어지는 자체가 싫었고,
사춘기의 반항심까지 더해, 더러운 세상에 태어난 것조차 불만이었다.

그 이후로는 내가 챙기지 않았으니 모르고 지나기 일쑤였다.
그래서 음력 날짜는 잊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10여전 지금의 아내를 맞고부터 상황이 역전됐다.
어찌나 생일을 챙기는지, 귀찮을 지경이었다.
친구들에게도 연락해 술판까지 벌여주는 그런 여자다.

그렇게 길들어 살아왔는데, 어제께 또 생일을 맞은 것이다.
올해 따라 유난히 소란스러웠던 건, 페북 때문이었다.
온 천지에 생일이 알려져 축하메시지와 전화가 빗발쳤다.

한정식선생님과 장경호씨를 만나러 점심때부터 인사동에 나갔다.
아내와 함께 한정식선생을 만나 뵙고, ‘대청마루’에서 거룩한 생일 밥을 먹었다.
돼지갈비에 소주 한 병, 딱 좋았다.
그러나 낮술에 취해 호들갑을 떨기 시작한 것이다.

술 마시지 않을 때는, 새 색시처럼 내숭 떨다,
한 잔만 들어가면 백팔십도로 바뀌는 지랄 같은 술버릇은
내가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았다.

뒤늦게 ‘눈빛출판사’ 안미숙씨를 만나 요상한 커피까지 얻어 마셨다.
술도 깰 겸 밖에 나왔다가 거리에서 장경호씨를 만났다.
둘이서 공성훈씨의 전시에도 가보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술시가 좀 일렀지만, ‘유목민’으로 들어갔다.
싱싱한 고등어조림에다, 또 한 병 깠다.

주인장 전활철씨와 노광래, 유진오씨를 만났으나,
슬슬 맛이 가기 시작해 노광래씨 차에 실려 얼른 집으로 튀었다.

아! 술이 취해 집에 들어왔으면 자빠져 잘 일이지, 왜 컴퓨터는 켰는지 모르겠다.
숱하게 올라 온 폐북의 축하메시지들 답하느라 낑낑댄 것이다.
독수리 타법으로 또닥거리며, 친근하게 답 한다는 게 너무 오버한 것이다.

이틑 날 반나절을 낑낑거리며 누웠는데, 밤늦게 쓴 댓글이 영 찜찜했다.
그 중 두 분은 폐북에서 만난 생면부지의 젊은이들 아니던가?
마음에 걸려 확인해 보았더니 정말 과관이었다. 거시기란 말이 여기 저기 박혀 있었다.
얼른 고쳤으나 이미 본 뒤라, 때 늦은 후회였다.

“죽으면 늙어야지, 죽으면 늙어야지”를 되씹으며 반성한다.

이제 늙어감을 축하할 일도 아닌듯 싶다.
그 놈의 생일 때문에 쪽 팔렸으니, 다시 생일을 반납해야겠다.

사진: 한정식, 정영신, 조문호 / 글: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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