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리되어 숙제처럼 머리에서 떠나지 않은 것이 안창홍의 ‘유령패션’전이었다.

인터넷에서 대략의 작품이미지는 보았지만,

하나하나의 작품이 어울려 안겨주는 감흥이 기대되어서다.

더구나 전시장 가려다 코로나에 발목 잡힌 전시가 아니던가?

 

지난 16일 정동지와 은평구 진관동의 ‘사비나미술관‘을 찾아갔다.

때 마침 안창홍 작가와 이명옥 사비나관장 등 여러 명이

전시 보러 온 에콰도르 대사 일행에게 작품을 설명하고 있었다.

 

지난해 ‘한국과 에콰도르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안창홍의 ‘유령패션’이 초대되었는데,

에콰도르 최고의 미술관인 '과야사민미술관'과

'인류의 예배당'에서 성황리에 전시를 마친 귀국 보고 전이었다.

에콰도르와 교류의 물꼬를 턴 문화외교의 좋은 선례였다.

 

안창홍의 '유령패션'은 옷만 있고 사람은 없는 그야말로 유령 같은 작품이다.

삼개 층에 나누어 전시된 작품들은 물질문명에 병든 현대인의 자화상 같았다.

쇼윈도나 걸려있을 원색의 옷들이 난무하지만, 얼굴도 팔도 다리도 없다.

허공을 부유하듯 옷만 떠도는데, 더러는 옷깃에선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진다.

 

자신을 드러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자 부와 계급을 상징하는 패션을 통해

인간 존재 자체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유령패션’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욕망과 인간 허상의 단면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사람 사는 것이 아니라 허깨비의 삶이라는 것이다.

 

'유령패션' 작업은 먼저 인터넷에서 그림의 바탕이 될 패션 이미지를 수집한다.

디지털 펜으로 사람의 형상은 지우고 옷만 남긴 위에 그림을 그려 넣는다.

이를 캔버스에 전신 크기의 유화로 옮기고, 입체 작업으로도 확장한다.

 

그리고 폭력적 억압에 의해 잃어버린 개인의 정체성과

현대 사회의 집단 최면 현상을 담은 ‘마스크’ 연작인상적이다.

눈을 가린 붕대와 이마에 뚫린 열쇠구멍은 상실된 자아와 무의식을 상징한다.

마스크는 최면에 걸린 듯 집단적 무의식에 빠져들게 한다.

 

안창홍 작업의 밑바탕에는 부패한 자본주의에서 소외된 사람들과

역사 속에 희생된 이들에 대한 울분의 시선이 깔려 있다.

급변하는 시대적 상황을 통찰력 있게 꿰뚫어보며 까발린다.

 

이번 귀국전을 위해 평면에서 입체로 확장한 새로운 시도의 작품 3점도 선보였다.

스마트폰으로 '유령 패션'을 그린 디지털 펜화 약 150점은 OLED 디스플레이로 설치됐고,

디지털 펜화를 유화와 입체 작업으로 옮긴 작품 32점이 전시되었다.

그리고 4층 전시실에는 자화상을 비롯한 드로잉 85점을 내 걸었다.

 

자화상

안창홍은 1953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제도적인 미술 교육을 거부하고 화가로서 독자적인 길을 걸어왔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현대 한국 사회를 비판하며 권력에 저항해온 작가다.

1970년대 중반 '위험한 놀이'연작을 시작으로 80년대 민중미술 운동을 주도한 ‘현실과 발언’도 참여했다.

가족 해체를 다룬 ‘가족사진’ 연작을 비롯하여 '봄날은 간다', '사이보그' 연작 등을 발표하며

50여 년간 ‘권력’이란 괴물의 속성을 꿰뚫어보며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전달해왔다.

 

거침없고 저돌적인 작업 방식에서 야성의 끼를 느낄 수 있듯이,

원초적 본능이 꿈틀거리는 강열함이 작품의 주조를 이룬다.

첨예한 비판 의식을 지니면서도 항상 새로운 시도로 돌파한다.

 

그는 1989년 카뉴 국제회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2009년 이인성 미술상에 이어

2013년 이중섭미술상과 부일미술대상을 수상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기획한 '2019 원로작가 디지털 아카이빙 자료수집·연구지원' 작가로 선정되는 등

국내 대표 작가로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잘 나가는 작가다.

 

이 전시는 5월 29일까지 이어진다.

 

사진, 글 / 조문호

 

 

요리 조리 코로나를 피해 다니다 기어이 덜미 잡혀버렸다.

정동지가 먼저 걸려, 뒷바라지 하다 보니 나까지 걸린 것이다.

병원에서 처방받아 녹번동 정동지 집에 함께 격리되었는데,

뼈마디가 쑤시는 고통보다 호흡기가 나빠 숨이 가빠 죽겠더라.

 

금주 금연에다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죽 뿐이고,

둘 다 환자라 덜 아픈 사람이 일할 수밖에 없는 비상사태였다.

좁은 공간에서 몇 날 며칠을 붙어 지내는 호사도 소용없었다.

몸 아픈 것 보다 대선 결과의 실망감과 죄책감에 더 죽을 맛이었다.

할 일은 많았지만 몸이 아프니 컴퓨터도 켜기 싫었다,

 

불쌍하게 보였는지 정동지가 냉동실에 숨겨 둔 대마 나물을 꺼내 볶아 주었다.

반찬 씹는 것 조차 거슬려 대마 나물을 죽에 넣었더니, 맛도 있고 몸도 덜 아팠다.

중요한 것은 하루종일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다.

정동지는 책에 파묻혀 힘들게 견뎠으나, 난 자성의 시간을 가지며 여유롭게 지낸 것이다.

 

아픈지 일주일만에 약속이라도 한 듯, 둘 다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출감 기념으로 첫 나들이 한 곳은 연신내 ‘사비나미술관’이었다.

그 곳에서 안창홍씨의 ‘유령패션’이 열리고 있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 듯 안창홍씨를 비롯하여 이명옥관장 등 여러명이

에콰도르 대사 일행에게 작품을 설명하고 있었다.

얼마 전 에콰도르에서 초대한 안창홍 '유령패션'전에 대한 답례 형식의 방문인 것 같았다.

 

삼개 층에 나누어 전시된 안창홍씨의 수많은 작품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바로 물질문명에 병들어 유령처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자화상이었다.

코로나에 죽어 가는 오늘의 현실같기도 했다.

 

전시장에서 나와 모처럼 ‘음암동 돈까스’에 들려 외식하는 시간도 가졌다.

죽다 살아난 정동지를 밝은 곳에서 보았더니, 화색이 진달레처럼 피어났다.

죽을 때가 가까워 헛것이 보이는 줄 알고 눈을 비벼보았으나 사실이었다.

아파 누운동안 얼굴에 아무것도 바르지 않았더니, 피부가 살아난다는 것이다.

코로나로 힘든 시간이었지만, 전화위복의 기회가 된 것 같다

 

대마는 마약이 아니라 약이다.

하루속히 대마를 합법화해 필요한 사람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하라.

모두 치료하고 행복할 권리가 있다.

 

사진, 글 / 조문호

 

 

 

 

 

 

 

 

 

 

 

 

 

 

 

 

 

 

 

 

 

 

 

 

 

 

 

 

 

 

 

 

 

 

 

 

 

 

 

 

 

 

 

 

 

 

 

 

 

 

 

 

 

 

 

 

 

 

 

 

 

 

 

 

 

 

 

 

 

 

 

 

 

 

 

 

 

 

 

 

 

 

 

 

 

 

 

 

 

 

 

 

 

 

 

 

 

 

 

 

 

 

 

 

 

 

 

 

 

 

 

 

 

 

 

 

 

 

 

 

 

 

 

 

 

 

 

 

 

 

 

 

 

 

 

 

 

 

 

 

 

 

 

 

 

 

 

 

 

 

 

 

 

 

 

 

 

 

 

 

 

 

 

 

 

 

 

 

 

 

 

 

 

 

 

 

 

 

 

 

 

 

 

 

 

 

 

 

 

 

 

 

 

 

 

 

 

 

 

 

 

 

 

 

 

 

 

 

 

 

 

 

 

 

 

 

 

 

 

 

 

 



사비나미술관에서 다음달 16일까지 전시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우물 속에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검은 물이 출렁인다. 마치 물을 길어 올리듯 우물 안으로 늘어뜨려진 쇠사슬은 끊임없이 오르내린다. 쇠사슬의 움직임으로 수면은 출렁이고, 이러한 수면의 흔들림은 빛을 받아 고스란히 한쪽 벽면에 반사돼 빛의 파장을 만든다.


김승영 '리플렉션' [사비나미술관 제공]


다음 달 16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리는 김승영(53) 작가의 개인전에서 만날 수 있는 우물 모양 작품 '리플렉션'(Reflection)은 억압이나 속박의 상징인 '쇠사슬'이 한없이 유연한 '물'과 부딪히며 수면이 일렁이는 현상을 통해 흔들리는 인간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우물 벽면에 새겨진 '애정', '자기합리화', '절망', '소통', '비난' 등의 단어는 작가의 이런 의도를 더욱 분명히 드러낸다.


1995년 첫 개인전부터 '물'이라는 소재를 꾸준히 사용하는 작가에게 '물'이란 생명이자 자기를 반영하는 거울, 보이지 않는 초월적인 에너지의 상징이다. 또한, 작품 제목처럼 '투영'과 '성찰'의 매개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의 타이틀 또한 '리플렉션스'(Reflections)이다.


김승영 '슬픔' [사비나미술관 제공

전시장에 놓인 또 다른 설치 작품 4점도 모두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의 투영과 성찰을 시도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조형물 '슬픔'은 국보 83호 반가사유상과 똑 닮은 모습이다. 그러나 가까이서 보면 반가사유상과는 고개를 숙인 정도나 손의 위치가 다소 다르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온다. 눈물을 닦아내는 것처럼 오른쪽 볼 아래 위치한 손의 각도가 해탈과 초월의 도상인 부처를 슬픔과 고뇌가 가득한 존재로 탈바꿈시킨다.


갤러리 관계자는 "슬픔이 감정으로 괴로워하는 인간의 모습을 표현함으로써 삶의 무게를 이야기하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인간의 감정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는 저울에 뇌 형태의 쇠사슬을 얹은 작품 '뇌'에서도 확인된다. 저울의 바늘은 쇠사슬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한 바퀴 돌아 다시 '0'을 가리킨다. 인간의 감정과 삶의 무게는 가늠할 수 없다는 의미다.


지하층에 설치된 '쓸다'는 관람객들에게 당혹감을 안겨주는 작품이다.


작품을 보기 위해 지하로 연결된 계단을 내려가는 관람객들은 곧 벽돌로 막힌 벽과 맞닥뜨린다. 이 벽돌 벽 틈새로는 거친 결의 나무 마루가 깔린 풍경이 보이고 스산한 사운드만 흘러나온다. 작가가 해인사에서 수집한 비질 소리다. 벽돌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거친 비질 사운드는 마음 깊은 곳 감정의 잔해를 쓸어 모아 버리는 소리처럼 들린다.


관람료 2천~3천원.

문의 ☎ 02-736-4371







Play : Pray
강운展 / KANGUN / 姜雲 / painting


2016_0406 ▶ 2016_0506 / 월요일 휴관



강운_Play : Pray展_사비나미술관_2016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21022g | 강운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6_0406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30pm / 월요일 휴관



사비나미술관

Savina Museum of Contemporary Art

서울 종로구 율곡로 49-4(안국동 159번지)

Tel. +82.2.736.4371

www.savinamuseum.com


"나는 '물 위를 긋다'를 통해 play, 즉 물과 종이와 긋는 놀이로 '일획'으로 무한을 표현함으로써 예술의 직관적 본질로 들어가고자 했다. 그리고 '공기와 꿈'을 통해 pray, 즉 작고 엷은 한지 조각을 오려 붙이는 수행과 기도의 과정을 통해 일상의 고뇌를 덜어내고 나아가 자연을 끌어안으려 했다." (작가노트 중에서) 'play : pray' - 시상(視象)과 심상(心狀)의 관계항 ● 가스통 바슐라르는 「물과 꿈」에서 '우리의 정신이 갖는 상상적 힘은 매우 다른 두 개의 축 위에서 전개된다'라고 말했다. 하나는 새로움 앞에서 비약을 찾는, 즉 회화적인 것이나 다양함, 예기치 않은 사건을 즐기는 것이고, 또 하나의 상상적 힘은 존재의 근원을 파고들어가 원초적인 것과 영원적인 것을 동시에 존재 속에서 찾아내려고 한다는 것이다. 바슐라르가 말한 두 개의 상상적 힘은 예술가의 창작활동이 지닌 특성과 닿아 있는데 강운의 전시 주제어인 'play : pray'와 맥락적으로 연결 지을 만하다. 상상력은 '실재(자연)'와 떨어져 있어도 끝없이 '자연(구름)'의 형태를 만들어낼 수 있고, 또 한편으로는 자연에 존재하는 물질(구름, 공기, 물 등)의 본질을 찾아 그 특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려는 작가를 자극하기도 한다. ● 'play : pray'는 지금까지 펼쳐진 강운의 작품세계를 축약하는 단어라 할만하다. pray는 '유화 구름'에서 현재의 '한지 구름'까지 지속해서 탐구해온 「공기와 꿈」이라는 화제를 지칭하고, play는 구름 소재로 일관하던 작업에서 일탈한 「물 위를 긋다」라는 화제를 의미한다. 우선, 사전적으로 볼 때 play가 행위적이라면, pray는 정신적이다. 아크릴 판 위에 한지를 놓고 공기 중으로 물을 뿌려가며 한지 위에 맺히는 과정을 다루는 「물 위를 긋다」는 play적인 작업이다. 반면 「공기와 꿈」은 얇은 종이를 한 겹 한 겹 붙이며 구축하는 지난한 과정이 자신을 비우고 필요한 것만 남기는 수행 과정이라는 점에서 pray적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은 보는 사람 혹은 생각의 차이에 따라 전혀 반대로 인식될 수 있다. 예컨대 관람자의 시각에서 「물 위를 긋다」를 본다면 무아의 정신에서 행하는 '일점일획(一點一劃)'의 행위를 자아를 성찰하는 수련과정으로 인식할 수 있다. 이럴 때의 「물 위를 긋다」는 pray적이다. 「공기와 꿈」도 마찬가지이다. 한지 조각을 캔버스에 붙여가며 공간을 메워가는 행위는 화가의 시각에서 떨어져 본다면 그 행위 자체는 play적이다. ● 이처럼 'play : pray'는 창작과정의 의미를 행위에 두느냐, 정신에 두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play : pray'는 단어 의미상 대조적이지만, 정작 해석과 추구하는 뜻은 이분법적 구분이 아니다. 인간의 감성과 이성은 대립적이지만, 완전히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play : pray'는 예술가의 창조과정에서 반복되는 숙명적 관계를 대변한다.


강운_공기와 꿈_캔버스에 염색한지, 한지_181.8×259cm_2013

강운_공기와 꿈_캔버스에 염색한지, 한지_181.8×259cm_2013


'play : pray'의 관계항에 관한 더 깊은 이해를 위해서는 강운의 작품세계에 밀착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강운은 매일 같이 구름의 '형상'이 지닌 비정형성과 무한성을 드러냄으로써 구름의 실재, 자연의 실재를 표현하고자 했다. 누구도 가보지 못한 실재의 세계(이데아의 세계 혹은 화가가 꿈꾸고 소망하는 세계)를 그림이라는 틀을 빌려 추구한지 20년이 넘었다. "태생적으로 이름에 구름 '雲' 자를 달고 나와 '서정의 장소'가 몸 속 깊은 곳에 아로새겨져 있을지 모른다"(작업노트)고 고백했을 만큼 그에게 구름은 운명적으로 이어진 듯하다. ● 강운의 구름은 크게 유화 구름과 한지(이 글에서는 한지라는 재료가 지닌 특성을 굳이 언급하거나 특별한 재료로 연결하지 않았다. 한지는 화가 강운이 표현하고 있는 실재의 세계를 결정짓는 유일한 재료는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구름으로 대별되는데 2000년을 기점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유화 구름은 어떤 가식이나 허세 없이 진실로 자연을 대한 화가의 감성의 폭과 깊이를 들여다볼 수 있다. 당시의 작품은 시골의 하늘 풍경을 바라보며 느낀 감성적 체험이 기원이다. 화순 동복, 나주 비상 활주로에서 본 구름의 다양한 인상(색감, 형태, 움직임 등)을 거짓 없이 표현하려는 의지가 뚜렷했다.


강운_Play : Pray展_사비나미술관_2016


가스통 바슐라르는 그의 저서 「공기와 꿈」에서 "구름은 가장 몽상적인 '시적 오브제'들 중의 하나이다."라고 했다. 바슐라르의 표현처럼 구름은 세상을 이루는 많은 물질 가운데 인간을 몽상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물질이다.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는 뭉게구름을 보고 평화롭게 노니는 양 떼를 연상하고, 빠르게 이동하는 구름을 볼 때면 순간 이동을 꿈꾼다. 괴테가 구름을 '안개구름, 뭉게구름, 새털구름, 비구름'으로 치밀하게 분석하여 구름이 지닌 특징과 상징적 아름다움을 이야기했듯이 구름은 어떤 영감을 주거나 꿈을 꾸게 하는 대상이다. ● 실제 강운의 유화 구름은 "환상적이고도 빛나는 형태를 지닌 이 모든 구름들, 저 암묵의 어둠들, 공중에 내걸려 서로 덧포개어져 있는 저 녹색 빛과 장미빛의 거대함……"으로 시작되는 한 풍경화가의 그림을 분석한 보들레르의 글처럼 구름의 모든 변화를 놓치지 않고 담아내려는 폭풍적 열정이 가득했다. 생성과 소멸, 평화와 분노, 행복과 슬픔 등 인간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대립적 현상을 품고 있었다. 이 같은 유화 구름의 시각적 강렬함에 견주어 한지 구름은 하나의 무한공간이자 여백으로서 하늘 공간을 표현하려는 의도가 강하다. 여러 색의 작은 한지가 일출에서 노을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른 하늘빛을 대신해서 캔버스 전체에 촘촘히 덮인다. 이때 서로 겹치는 작은 면들이 자연스럽게 밝고 어둠으로 나뉜다. 새털처럼 가볍고 얇은 한지 조각들이 흩어지고, 겹쳐지고, 포개지는 과정이 수없이 반복되면서 화면은 하늘의 깊이를 더해간다. 작은 한지 조각들이 촘촘히 붙여지면서 층이 형성되고 포개지는 양에 따라 구름의 형태와 질량이 달라진다. 실재의 세계, 꿈의 공간에 이르고자 하는 화가의 절실함이 구름이 되어 유동한다. 무엇보다 하늘을 응대하며 빠른 붓놀림으로 구름의 움직임을 포착하던 유화 구름의 숨 가쁜 역동성은 사라졌지만, 구름에 관한 철저한 탐구와 사색은 한층 깊어졌다. 초기 구름과 현재 구름의 존재적 무게감의 차이가 발견되는 지점이다.


강운_푸른점_종이에 담채_35×23cm×2_2015


구름은 어떤 특정한 형상을 지니지 않는다. 어느 한 가지 형태로 규정할 수 없는 비정형이다. 그래서 매 순간 변하는 자연을 빠짐없이 화폭에 옮긴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단지, 화가의 망막이 아닌 마음에 반영(反映)된 특별한 상(象)을 옮기는 것이다. 이 점에서 그의 한지 구름은 외형적 재현이 아닌 구름을 통해 생의 의미를 깨닫고 싶은 심상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작가도 "청년기에 마주한 구름이 마음에 품은 꿈과 방랑이었다면, 장년기의 구름은 인간이라는 미약한 존재로서의 고백과 겸손이다."라고 말했듯이 한지 구름은 열린 마음, 열린 공간으로서 궁극에 작가의 마음이다. ● 이 같은 시각에서 볼 때 「물 위를 긋다」는 한층 더 심상에 가까운 작업이다. 작가가 작은 물방울들의 의미를 '인간의 마음'으로 해석한 이유를 알만하다. 인간의 마음은 곧 자신의 마음이다. 결국 마음의 탐구를 위한 행위가 「물 위를 긋다」 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 「물위를 긋다」와 「공기와 꿈」은 환경조건차가 크다. 「물 위를 긋다」는 습도, 온도에 따라 물방울이 맺히는 정도, 한지에 스며들고 번지는 범위와 형태가 달라진다. 모든 과정에 작가의 의도보다 우연성이 더 강하게 작용한다. 그래서 작가의 의도대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없다. 마치 자연의 흐름을 자의적으로 막을 수 없듯이 흐르고, 번지고, 맺히는 과정을 의도적으로 유도하지 못한다. 특히 표현 방법적 측면에서 보면 「공기와 꿈」이 지난한 행위의 반복이 주는 노력의 산물(반복적인 행위의 축적이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우연은 없다)이라면 「물 위를 긋다」는 물과 공기가 순간적 행위로 만나 만들어낸 우연의 효과이다. 이 같은 우연성은 철저히 작가가 원했던 특성이다. 우연성과 함께 「물위를 긋다」는 철저히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의 의미가 크다. '일점일획(一點一劃)'에 모든 것을 담겠다는 것은 모든 것을 비우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무언가를 채운 듯 하지만,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은, 어떤 형태를 그렸지만, 결국, 아무런 형태도 아니다. 이러한 의미를 동양철학에서 찾는다면 노자가 자연이 주는 몽롱한 아름다움을 보고 표현한 "모양이 없는 모양이며, 구체적인 사물이 없는 상"(無狀之狀, 無物之象-『논어』, 14장)이란 말과 연관지을만 하다. ● 사실 공기와 물은 과학적으로 같은 질료이다. '공기 중의 수증기가 아주 작은 물방울이나 얼음 알갱이로 변하여 흰색이나 회색으로 뭉쳐 공중에 떠다니는 것'이 구름이다. 따라서 구름은 가벼운 수분덩어리이다. 그 수분덩어리가 바람을 만나 어떤 형태를 생성하고 소멸하기를 반복하듯 「물 위를 긋다」도 한지 위의 물감과 만난 수분덩어리의 맺힘이다. 구름은 하늘이라는 공간속에서 물은 땅을 기반으로 움직이지만 구름과 물은 물질적으로 별개가 아니다. ● 궁극적으로 'play : pray'전은 '시상(視象)과 심상(心狀)으로 접근한 실재의 세계에 관한 탐구'이다. 「공기와 꿈」은 눈에 보이는 상을 따라 옮기는 행위적 측면을 강조하고, 「물 위를 긋다」는 행위보다 정신일치로서 심상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결국 두 주제는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통해 순수, 본질, 근원에 관한 회귀적 탐구와 물음이라는 공통 목적을 지녔다. 문명과 제도의 틀에서 벗어나 자신의 본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노력의 과정이다. 외부의 자연환경을 끌어들여 캔버스에 묘사하는 것은 화가의 선택이지만, 이후 외형을 버리고 내면의 본질에 다가서는 것도 화가의 몫이다. 문제는 자신을 둘러싼 외형을 벗고 내면을 얼마나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느냐다.


강운_붉은점_종이에 담채_35×23cm×2_2016


'기상학적 아름다움'을 거부하는 것보다 그 아름다움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더 힘들다고 했던 보들레르의 말처럼 대기 중에서 일어나는 자연현상을 자신만의 조형언어로 표현해온 강운의 구름 그림은 부정할 수 없는 미적 아름다움을 내재하고 있다. 동시에 그의 그림은 숱한 시간과 지난한 과정을 거쳐 구름으로 상상할 수 있는 '실재의 세계'를 담아내고자 한 자기수련을 보여준다. 형이상학적으로 정의된 '실재'로서의 '자연'을 작가가 상상력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현재의 '구름', 즉 「공기와 꿈」이고, 그 과정에서 일탈적 행위로써 자신을 비워내는 수행과정으로 「물 위를 긋다」를 시도하고 있다. 이렇듯 강운 작품은 '실재'를 탐구해 가는 철학적 의미에서 출발해 '구름'을 통해 실재(이데아)의 세계에 닿아가고 있다.


강운_Play : Pray展_사비나미술관_2016


결론적으로 그의 작품은 만져지지 않는, 눈으로 볼 수 없는 '실재'를 찾는 여정이다. 그리고 이 여정에 작가는 과감하게 관람자의 몫을 남겨두었다. 자신이 느끼고 찾고자 했던 그 실재의 세계를 함께 찾아보기를 희망한다. 이것이 화가 강운이 'play : pray'전으로 전하고 싶은 진실한 메시지이다. ■ 변종필



Vol.20160406f | 강운展 / KANGUN / 姜雲 / painting


CEO 오피스 -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한국사립미술관협회장

미술관 장수비결은 차별화
예술에 과학·경제 등 접목…끝없는 실험으로 20년 버텨

가상 미술관 구축 등 공익사업
건강한 미술생태계 만들려면 사립미술관 지원 강화해야
뮤지엄 법인 설립 간소화를


 

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서울 안국동의 사비나미술관이 요즘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3D프린팅과 예술’전 덕분이다. 지구촌 정보기술(IT) 시장의 뜨거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3D프린터가 미술에 어떻게 접목될지 또 예술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가늠해볼 수 있는 전시다.

사비나미술관은 지난해 초부터 이 전시를 기획했다. 3D프린팅 기술이 국내에서는 아직 남 얘기처럼 들리던 때 우리 사회와 예술에 끼치게 될 영향력을 일찌감치 내다보고 기획한 전시다.

전시 아이디어는 이명옥 관장에게서 나왔다. 아트 콘텐츠 메이커로 통하는 그는 오래전부터 톡톡 튀는 전시를 기획해 미술계 안팎에서 주목을 받아왔다. 세상의 변화를 꿰뚫어 보려는 혼이 깃든 전시회들이다.

그는 1996년 인사동에 사비나갤러리를 설립해 기획전을 열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미술전시는 한 작가의 작품을 집중 조명하거나 한 시대를 조망하는 전시가 대다수였는데 이 관장이 처음으로 개념 또는 테마 중심의 기획전 전문 갤러리를 표방하고 나섰다.

원래부터 전시기획자가 되려던 것은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그의 가슴 속에는 예술가가 되려는 열망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교적 분위기의 엄격한 교육자 집안에서 2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난 그에게 그 길은 ‘가서는 안 되는 길’이었다. 부모는 교육자가 되길 희망했지만 자신의 끼를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예술 쪽에 더 마음이 쏠렸다. 결국 부모의 뜻에 따라 원치 않는 공부(성신여대 교육학과)를 하게 된 그는 마음을 잡지 못한 채 전공 공부 대신 미술과 음악에 탐닉했다.

대학 졸업 후 잠시 방송국 프로듀서로 일했다. 방송 일을 하면서 그는 처음으로 자신에게 남다른 기획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서 다시 작가에 대한 열망이 불타올랐다. 결국 방송국 일을 접고 그림 공부에 매진한다. 안타깝게도 그는 곧 자신에게 화가로서의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좌절감에 빠져 한동안 방황하던 그는 아트 컬렉션에 흥미를 느껴 유럽을 돌며 작품을 수집했다. 그 과정에서 몇 차례 전시를 기획할 기회를 얻게 됐는데 그는 자신이 전시기획에 남다른 눈썰미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전시기획자로서의 삶의 출발점이었다.

“1990년대 초만 해도 한국에는 전문 전시기획자가 없었습니다. 몇 차례 전시 기획으로 자신감이 붙어 1996년 관훈동에 기획전시 전문인 사비나갤러리를 열고 본격적으로 기획전을 열기 시작했어요.”

그가 기획한 전시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인간의 해석’전, ‘키스’전, ‘밤의 풍경’전 등 하나같이 화제를 뿌렸다. 연일 신문 문화면의 톱을 장식했고 스폰서가 따라붙을 정도로 성공을 거뒀다. 요즘 한창 붐이 일고 있는 예술과 과학의 융합을 시도한 전시도 선보였다.

때론 그의 이런 ‘튀는’ 시도들은 거센 역풍을 맞기도 했다. ‘이발소 그림’전 때는 순수미술 진영으로부터 “이상한 짓 한다”고 비판받았고, ‘머리가 좋아지는 그림’전은 대중 영합적이라고 깎아내리는 지적도 들어야 했다. 우여곡절은 많았지만 사비나갤러리 색깔을 세상에 각인시킬 수 있었다.

그의 참신한 기획력은 저술 작업에서도 빛을 발했다. ‘팜므 파탈(2008)’을 비롯해 ‘머리가 좋아지는 그림이야기’ ‘명화경제토크’ ‘크로싱’ 등 미술을 남들이 생각지 못한 주제로 접근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6년 동안의 기획전을 통해 자신감을 얻은 이 관장은 2002년 갤러리를 미술관으로 전환했다. 갤러리라는 상업적 이미지를 벗고 기획전 중심의 공익을 표방한 미술관이 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그러나 그는 뜻하지 않은 어려움에 부딪힌다.

“제가 미술관 운영을 너무 우습게 봤어요. 소장품 구입비, 인건비, 건물 유지·보수비 등으로 연간 최소 2억~3억원의 비용이 들어가더라고요. 미술관이 한 개인의 열정만으론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죠. 공공부문의 지원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곧 다른 미술관들도 자신과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미술관법이라는 틀만 갖춰졌지 사립미술관에 대한 공공부문 지원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는 사립미술관들의 연대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했다. 같은 해 노준의 토탈미술관 관장 등 몇몇 선배와 함께 한국사립미술관협회를 창립한 이유다. 그는 노 초대 회장의 뒤를 이어 2011년부터 협회 리더가 됐다.

공적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미술관은 돈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라는 일반의 인식을 바꾸는 게 급선무였다. “국·공립 미술관은 국가 예산을 집행하다 보니 아무래도 경직된 기획을 하지만 사립미술관은 재미있는 전시로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소수의 대기업 미술관을 제외하고 1년에 수억원에 달하는 운영비를 10년 이상 감당할 만한 곳은 드물어요. 자신의 소장품을 사후에 기부해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미술관 설립자들의 선의를 사회가 인정했으면 좋겠어요.”

그렇지만 말로만 떠들어서 될 일이 아니었다.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미술관이 중요한 사회적 기능을 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보여줘야 했다. 이를 위해 이 관장은 협회 차원의 다양한 공익사업을 추진했다. 국내 대표작가의 작품을 국내외에 소개하는 가상미술관 구축 사업 코리안아티스트프로젝트(KAP)와 학교 및 지역미술관을 연계하는 교육프로그램이 그중 대표적인 예. 처음에는 귀찮은 일을 시킨다며 회원들 사이에 볼멘소리도 터져 나왔지만 그의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고 다들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덕분에 KAP는 짧은 시간에 해외 미술인들 사이에 한국 현대미술 정보 포털로 자리 잡았고 교육프로그램도 지역미술관의 적자를 메워주는 효자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그의 강력한 리더십과 열정, 사심 없는 일처리에 대해 사립미술관협회 회원들은 2013년 12월 열린 정기총회에서 만장일치 회장 재추대로 화답했다.

이 관장의 이런 성공 뒤에는 항상 ‘소통’이라는 두 글자가 똬리를 틀고 있다. 전시의 잇단 성공과 한국사립미술관협회의 모범적인 운영은 그가 인생의 모토로 삼고 있는 소통의 힘이다. 그가 요즘 목표로 삼고 있는 뮤지엄 법인 설립 간소화 작업도 문화체육관광부와의 소통 노력을 통해 반드시 관철되리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타인과 공감하는 소통이야말로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전시가 재미있어야 대중과 소통할 수 있잖아요. 어때요. ‘3D프린팅과 예술’전 재미있지 않나요.”

이명옥 회장 프로필

△1955년 출생 △성신여대 교육학과 △홍익대 미술대학원(예술기획 전공) △사비나미술관 관장(1996년~현재) △국민대 미술학부 겸임교수 △과학문화융합포럼 공동대표(2008년~현재) △한국공학한림원 문화기술융합위원회 위원 △한국사립미술관협회 회장(2011년~현재)

한국경제 /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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