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양재문씨로 부터 저녁식사라도 한 번 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지난 16일 오후 여섯시 무렵, 약속장소인 충무로로 갔더니, 정영신씨도 나와 있었다.

양재문씨는 30년 지기인 오래된 사우지만, 그동안 만날 기회가 통 없었다.

정선 살 때는 사진판과 거리를 두어 그랬지만, 그 뒤는 장터 따라 다니느라 연락이 끊긴 것이다.

한참 뒤에 인터넷에 드나들며 서로의 근황을 알게 되었고, 몇 년 전 ‘사진예술’ 행사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얼굴 좀 보고 삽시다”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올 정도였다.

 





80년도 중반 ‘월간사진’에서 일할 무렵 처음 만나 ‘한국사협’, ‘삼성포토스페이스’에 이르기 까지 함께한 세월이 녹녹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작년 2월 경, 모처럼 그의 개인전에 가 볼 기회가 생겼다.

‘비천몽’이란 제목의 전시였는데, 육감이 동하는 몽환적인 춤사위가 마치 한 폭의 수묵채색화처럼 아름다웠다.

곧 바로 초창기 그가 발표했던 ‘풀빛여행’이 오버랩 되며, 그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각인시킨 것이다.

 





그 뒤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었던, 나의 ‘사람이다’ 전시에도 한 번 왔었다.

찾아 준 것만도 고마운데, ‘청량리 588’사진 한 점을 사 주는 아량까지 베풀어 몸 둘 바를 몰랐다.

사진가들 사는 게 보나 마나인데, 남의 사진을 사준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마음 씀에 비해, 무관심했던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다.






그가 강남에서 충무로로 작업실을 옮긴지가 육년 째라지만, 그의 작업실이 충무로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

충무로 ‘대한극장’ 앞에서 만나 그의 작업실과 가까운 ‘구이구이’식당에서 전어구이로 술 한 잔 나누며 모처럼 회포를 풀었다.






식당에서 일어나, 남산이 더 가까워 보이는 그의 작업실에도 가 보았다.

오피스텔처럼 지어진 건물이었으나, 아파트처럼 널찍한 공간이라 작업실로 안성마춤이었다.

혼자 살지만, 홀애비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아늑한 공간으로 꾸며놓았더라.

한 쪽에는 서재가 있었고, 한 쪽은 앱션 프린트기와 불 꺼진 조명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진공관 앰프에서 흘러 나오는 은은한 음악에다, 그가 즐기는 ‘칼바도스’란 양주도 죽였다.

처음 마셔보았지만, 묵직하게 느껴지는 맛이 아주 매혹적이었다.

더구나 와인을 끓여 회석시켜 마시기도 했는데, 칼바도스‘에 대한 애호가로 보였다.







그런데, ‘Calvados in Paris’란 제목의 사진집을 한 권 내놓았다.
얼마나 ‘칼바도스‘란 술을 좋아했으면 사진집에 술 이름이 들어갔나 싶었지만, 사진집은 술에 대한 기억으로 보았던 파리였다.

처음 발표한 ’풀빛 여행‘과 요즘 작업은 보았지만, 중간 작업은 전혀 보지 못했는데, 다른 작품까지 궁금하게 만든 사진집이었다.

아마 파리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며 마셨던 ’칼바도스‘가 그를 파리로 이끌었던 것 같았다.

그 환상의 시간여행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시간여행에 전이되는 독특한 경험을 하게했다.






’칼바도스‘를 마시며 생각했던 파리에 대한 기억들은 분명 어디서 본 듯한 친숙함과 낯설음이 교차하는 묘한 느낌을 주었다,

술을 마시며 바라 본 파리라 때로는 화각이 비틀어지거나 왜곡되기도 했지만, 언젠가 한 번은 기억했던 잠상이 분명했다.

사진이 좋았지만, 논리가 짧은 탓에 사진집에 서문을 쓴 이경률씨의 마지막 글을 옮겨본다.






“불 켜진 에펠탑 끝 가장자리에 연이어 나타나는 지난 여름날의 파리 여행 그리고 그 여행 한 가운데 연속으로 겹쳐 나타나는 누군가의 얼굴...

결국 작가의 칼바도스는 장면을 보는 응시자의 또 다른 칼바도스로 전이되어 프루스트 소설의 마들렌 과자, 문 열리는 소리, 덜컹거리는 마차와 같이  기억의 자극-신호로 나타난다. 이러한 신호로부터 드러나는 기억의 단편들은 그때 심연에 부유하는 위대한 카이로스의 세상으로 펼쳐진다”






그런데, 이 친구 사진만 잘 찍는 줄 알았는데, 소리도 잘 했다.
즉석에서 '사철가'와 '흥타령'을 불렀는데, 소리의 기교보다 음색이 타고 났더라.

속에서 터져 나오는 전형적인 남도소리꾼의 걸걸한 애간장이 묻어나고 있었다.






“이산 저 산 꽃이 피니 / 분명코 봄이로구나 / 봄은 찾아왔건마는 / 세상사 쓸쓸허드라 / 나도 어제 청춘이러니 /

오 날 백발 한심허구나 / 내 청춘도 날 버리고 / 속절없이 가버렸으니 / 왔다 갈 줄 아는 봄을 / 반겨 헌들 쓸 데 있나...”


부질없는 세상을 탓하며 늙어가는 우리네 신세타령이라 더 마음이 동했다.






소리가 끝나고, 나의 동자동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갑자기 드론으로 동자동을 부감 촬영해보라는 말을 꺼냈다. 역시 사진선생을 오래 하더니, 교육적인 면모도 있었다.

꼭 필요한 사진이지만.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단은 도면적인 지리의 정보성보다 내가 보고 싶은 장면이라 더 찍고 싶었는데, 돈이 없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 속내를 눈치 챘는지 50만원을 내놓으며, “좋은 것은 살 수 없지만, 왠만한 드론은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내 형편에 한 번 사용하기 위해 드론을 산다는 것이 무리지만, 장터 다니는 정영신씨가 더 절실한 장비라,

뻔뻔스럽게도 고맙다며 받아 들였다.






술이 얼큰하게 취해, 기분 좋게 돌아오는 길에 정영신씨가 시비를 걸어왔다.
“어떻게 남이 주는 돈을 그렇게 편하게 받냐? 동자동 살더니 거지근성 생긴 것 아닌가?라는 것이다.

“돈은 돌고 도는 것이다”며 큰 소리 쳤지만, 나 역시 쪽팔리기는 마찬가지다.
속으로는 “네 년 장터사진 때문에 받았다”고 되받고 싶었지만, 참았다.

"돌고 도는 돈이니, 언젠가는 갚을 날도 있겠지... "


사진, 정영신,조문호 / 글, 조문호































지난 2월16일, 사진가 양재문씨의 ‘비천몽’전시가 율곡로 ‘아트링크’에서 열렸다.
기다린 전시였으나, 꾸물대다 30분이나 늦었다.

전시장에는 작가를 비롯하여 ‘아트링크’ 이경은 관장, 사진가 황규태, 김녕만, 곽영택, 이기명,

강홍구, 김복남, 곽명우씨등 많은 사진가들이 보였으나, 강홍구씨의 노래는 이미 끝나버렸고,

춤꾼의 치맛자락만 봄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전시된 작품들을 돌아보니, 추는 춤과 걸린 작품이 묘한 대조를 이루었다.

‘아트링크’갤러리가 마치 이 전시를 위해 만들어진 공간처럼 생각되었다.

정사각형으로 이어진 한옥의 회랑  마당에서 춤을 추었는데,

실제의 춤사위보다, 벽에 걸린 꿈결같은 춤이 더 아름답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사진에 다양한 장르가 있지만, 난 사진의 가치를 기록에 두어 그런지,

비현실적이거나 작가의 주관에 의한 작품은 사진보다 미술로 보는 고집스러움이 있다.

현실보다 비현실이 더 아름답다는 생각에 일종의 배신감 같은 것도 느꼈다.

양재문씨는 30년 지기의 오래된 사이지만, 살기가 바빠 그런지 참 오랜만의 만남이었다.

전시를 보니 20여 년 전에 보았던 ‘풀빛여행’이란 전시가 떠올랐다.

그 몽환적 춤 여행이 아직 선명한데, 이번엔 흑백에서 컬러로 바뀌었다.

마치 한 폭의 수묵채색화처럼 아름다워, 육감까지 동했다.


작가는 어머니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을 춤사위에 담았다고 한다.

느린 셔터로 잡은 흔들리는 동작은 자신도 느끼지 못한 무아의 경지에 달했는데,

내가 볼 때는 흥행이 될 것 같았다.

사진평론가 이경률씨는 “어떠한 구체적인 정보도 주지 않는 작가의 사진들은 하늘로 비천(飛天)하는

영혼을 보여주듯이 춤사위 그 자체의 기록을 넘어 그것으로부터 반사되고 전이(轉移)된 정신적 생산물로

이해된다”고 말했으나, 에둘러 말하는 관습 때문인지, 원고지 채울 요량인지, 머리가 좀 지끈거렸다.

어쨌든, 오늘 좋은 사진전과 반가운 사람들 만나 기분 좋았다.
양재문씨의 작품이 쌕시하다는 곽영택씨 말처럼, 내 식으론 꼴리는 사진이었다.
뒤풀이는 '북촌만두'에서 인사동 ‘촌’으로 자리를 옮겨가며 마셨다.


자기자랑에다 면전에서 상대방 칭찬까지 해 대는 친구가 있어 좀 껄끄러웠지만,

맞은편에 앉은 미녀 복남씨의 눈웃음에 술은 술술 잘 넘어갔다.

취기가 너무 올라, 마구초 한대로 진정시켜야 했다.

‘귀천’에서 모과차 한 잔으로 속 풀고, 돌아오는 길은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내 십팔번 “연분홍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라는 노랫말처럼,

조지피면 같이 웃고, 조지지면 같이 울고 싶었다.


"꿈에서 몽정이나 한 번 했으면..."



사진, 글 / 조문호

























양재문 사진가의 ‘비천몽’은 춤꾼의 연속 동작을 한 장의 사진에 담았다. [사진 갤러리 아트링크]


양재문의 춤 사진전 ‘비천몽’
춤사위 연속동작 한 장에 포착


얼핏 한지에 번지는 물기를 본 듯하다. 흔들리는 동작선이 여러 겹 포개진 한 폭의 수묵채색화 같다.

사진가 양재문(63·신구대학 사진예술아카데미 교수)씨는 춤의 결정적 한 순간을 포착하는 대신 실타래가 풀리듯 이어지는 춤사위의 연속 동작과 그 여운의 끝자락을 사진 한 장으로 흡수했다. 나풀거리는 한복의 그림자 너머로 몸의 뼈대가 떠 있다.

무용평론가 김영태는 “양재문의 복선 이미지 율동 속에는 춤 생명선이 꿈틀댄다, 아니 피어난다”고 썼다. 그가 카메라로 쓴 “인체의 시는 상상력 넘어 육감의 본능과 선이 닿아 있다”고 표현했다.


1994년 전통춤의 사진 작업을 시작한 양재문 작가가 오랜만에 춤 사진을 발표한다. 16일 서울 율곡로 갤러리 아트링크에서 막을 올린 ‘비천몽(飛天夢)’전이다.

전시 제목이자 작품명인 ‘비천몽’은 ‘천상을 꿈꾸며 춤추는 자는 아름답다’는 작가의 생각을 담았다. 하늘로 날아오를 듯 투명하고 고요한 오방색 치마폭은 춤꾼의 날개가 되어 그를 들어올린다.

작가 노트는 돌파구를 찾아 헤맨 오랜 고민 끝에 찾아낸 사진작업의 과정을 알려준다. “어떠한 순간을 사진에서 멈춤 그 자체로 표현하지 않고, 춤사위에서 잘려져 나오는 찰나의 전과 후, 그리고 그 일련의 광적들을 한 장면에 포함시켜 거기서 드러나는 여운을 추상으로 표현한다.”

사진이론가인 이경률 중앙대 교수는 “어떠한 구체적인 정보도 주지 않는 작가의 사진들은 하늘로 비천(飛天)하는 영혼을 보여주듯이 춤사위 그 자체의 기록을 넘어 그것으로부터 반사되고 전이(轉移)된 정신적 생산물로 이해된다”고 평했다.

이럴 경우, “춤은 더 이상 행위로서의 춤사위가 아니라 어떤 사태의 진상이나 본질을 암시하는 지시로서 춤이 된다”는 것이다. 사진과 춤이 만나 일군 공명(共鳴)이 여유롭다.

전시는 다음 달 6일까지. 02-738-0738.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사진이야 수묵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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