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정영신


설날이지만 혼자 쓸쓸하게 제사를 지냈다.
형, 동생 모두 예수를 믿으며, 시작된 풍속도다.
하나 뿐인 아들 녀석까지 교회에 나가니, 나 죽으면 이 짓 마저 끝이다.
우리 선조들은 조상 모시기를 최고의 가치로 여겼는데,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이번 차례음식 장만은 돈도 돈이지만, 엄청 힘들었다.
연료비 아끼려다 감기 걸려, 아픈 몸으로 장만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쓸쓸하게 술을 올린 후, 아내에게 말했다.
“나 죽어 제사상 차리면, 구신이지만 상을 확 엎어 버릴끼다.”
아내 대답이 걸작이다. “같이 죽을거니, 차릴 사람이 없어 다행이네”

옛날이나 지금이나 없는 서민들은 시국이 흉흉하거나,
새해들어 살기가 어려우면, 점술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았다.
올 해는 좋은 일이라도 생길런지, 복점이나 한 번 볼까보다.

1946년 광주 월산동에서 찍은 이경모선생의 사진으로 ‘눈빛출판사’ ‘격동기의 현장’에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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