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생활수급비가 나온 지난 19일의 동자동 새꿈 공원은, 공원 자체가 술상이었다.
평소에는 수급비가 20일 나오지만, 당일이 공휴일이라 하루 앞당겨 나온 것이다.

수급비래야 노령년금 제하고, 쪽방 달세내고 나면 40만원 가량 남지만,
이런 저런 사정으로 수급비를 못타는 빈민들의 입장에서는 부럽지 않을 수 없다.
먹고 싶은 것 참아가며 알뜰하게 모우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대개 얼마가지 않아 바닥 나 또 다시 수급 날을 기다리게 된다.


수급비가 나와도 이웃에 빌린 돈이나 외상값 갚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으니 
쪼달리는 생활이 반복되는 것이다.






대개 술 담배를 즐기는 사람과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의 차이인데,
희망도 없는 빡빡한 살림에 술 한 잔 하는 낙마저 없다면 무슨 재미로 살겠는가.


동자동 사람들은 예사로 이웃과  술 담배를 나눈다.

어디를 가나 없는 사람의 인심이 더 후한 것은 기정사실이다.


구두쇠처럼 야멸차게 사는 사람과 인심 좋은 사람을 두고,
대개의 사람들이 후자를 더 안 좋게 보는 세상이다.
사람보다 돈의 논리를 더 앞세우기 때문이다.






다들 술이 취해 별 것 아닌 일에 언성을 높이기도 하고, 싸울 듯 맛 서기도 했다.
김씨가 이씨에게 나라 망친 역적의 후손이라니, 듣는 이씨 기분이 어떻겠는가?
그러나 아무도 주먹을 휘두르지 않았다. 그 뒤의 결과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끌벅적 소란스럽지만, 이내 다시 술잔이 오간다.






술이 거나하게 취한 이진수씨가 내 팔을 당기며 따라 오란다.
비닐봉지에는 마시다 남은 소주병과 따지 않은 소주병이 있었지만, 기어이 새 병을 땄다.
먹던 술을 두고 왜 새 병을 따냐고 물었더니, 대접하는 술은 새 술이라야 된다나...


몇 발자국 옆의 정옥상씨를 부르니, 저 놈은 술 취하면 잔소리가 많으니 그냥 두란다.
그러면서 지갑 속에 들어 있는 신사임당 지페 몇 장을 꺼내 보이며 자랑 해댄다.
허구한 날 허덕이다 모처럼 돈이 생겼으니, 기분 좋은 모양이다.






공원 한 쪽 구석에서는 잔돈 섰다판이 벌어지기도 하고,
한 쪽에서는 빌린 돈을 갚는지 돈을 주고 받기도 했다.

구멍가게 옆의 공원 입구 자리는 일찍부터 정재헌씨가 판을 벌여 놓았다.
배용식, 이준기, 이원식, 강완우씨 등 여러 명이 주위를 배회하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김장수씨는 문대통령이 5,18유가족을 포옹했던 이야기를 꺼내며,
좋은 대통령이 되었다며 칭찬에 침이 말랐다.






공원에 어둠이 몰려오자 하나 둘 둥지로 돌아갔다.

정재헌씨는 엊그제 계단에서 넘어져 얼굴을 다쳤는데, 이 날도 술이 취해 몸을 가누지 못했다.
5층 사는 정재헌씨 방까지 부축하느라 얼마나 용을 썼던지, 마셨던 술이 깰 지경이었다.
간신히 방에 앉혀 놓았더니, 말없이 쳐다보는 눈길에 고마움이 묻어난다.





다행스럽게도 정씨는 혼자 술을 마시지는 않는다.
술 취해 오르기가 힘든 줄 알면서도 매일같이 공원으로 내려오는 것은
사람 사는 정이 그리워서다.


정 때문에 울고, 정 때문에 사는 사람들이다.


사진, 글 / 조문호













































노숙하는 이상구씨는 서울역 지하철 11번 출구에서 올 겨울을 보낸 사람이다.

밤늦게 돌아오다 보면, 늘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자고 있었다.
따끈한 빵이나 고구마를 사와 이불 속에 밀어 넣어도 미동도 안했다.
만사가 귀찮은 듯 보였다. 낮에는 어디서 지내는지, 늘 밤늦게 잠자리를 폈다.
지난 16일엔 모처럼 일찍부터 자리 깔고 앉아 있었다.

기회다 싶어 옆자리에 앉으며 말을 걸었다.
“아제는 소원이 뭔기요?” 했더니,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뭉칫돈이나 여자, 대궐 같은 욕망의 찌꺼기들을 들먹일 줄 알았는데, 뒤통수 쳤다.
“소주 한 병과 김밥 한 줄” 아주 현실적인 소원이라 기꺼이 삼천 원을 내 놓았다.






술친구로 지내던 김씨가 내려오니, 술 사오라며 시켰다.
그는 꼼짝도 않고 입만 가지고 사는 사람이다.
학창시절에는 야구선수로 이름을 날렸다는, 왕년의 자랑도 했다.

대개 그들을 인생패배자처럼 생각하지만,
더러는 아무런 욕심 없이 자유를 구가하는 사람도 있다.
추운 날씨에 노숙인 보호소에 가지 않는 것도 사람이 만든 규칙이 싫어서다.






술을 홀짝이다, 그가 나에게 되물었다. ‘당신은 뭐 하는 사람이야?'기에
“성은 조가고 하는 일은 사진기사다, 앞으로 조기사라 불러”했더니.
사진기자거나 사진작가지 기사가 무어냐며 나무랐다.
“기는 적을 記자고 사는 베낄 寫라 했더니, 그때야 ”말 되네”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서기’에서 일하는 이애신씨가 나타나 이상구씨에게 이 것 저것 물었다.
묻는 이야기라고는 언제부터 나왔냐는 등 뻔한 얘기들이지만,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할 수 없냐?'는 물음에는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자기가 기초생활수급자라는 것이다.
귀찮게 굴어 약 올리려고 거짓말했는지 모르나,
기초생활수급자면 길거리에서 자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노숙 인에는 대개 두 가지 부류가 있다.
아직 욕망의 찌꺼기가 남은 초짜는 늘 이글어진 표정이지만,
모든 욕망을 내 던진 고수들은 그냥 허허실실이다.
모든 걸 버렸다면, 그게 부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다들 생불 만나거들랑, ‘소주 한 병과 김밥 한 줄’의 시주를 하라.

사진, 글 / 조문호















일을 줄이려 잘 나가지 않으니, 이젠 다른 일이 꼬리문다.
다음 달 열리는 오일장 박람회 일로 급히 정선에 다녀와야 했다.
당일치기지만, 집에도 가지 않고 그냥 올 순 없었다.
지난달 심은 고추와 옥수수에 거름도 주고 물도 줘야하기 때문이다.
자동차가 필요해 검사만료일이 다 된, 폐차 직전의 고물차를 불러냈다.

부랴부랴 ‘성산자동차검사소’부터 달려갔으나, 대기자가 너무 많았다.
오후6시가 가까워서야 순서가 돌아왔는데, 우려대로 불합격이었다.
매연 1% 초과에다 파손된 후미 등 때문에 미끄러졌다는 것이다.
깨진 아크릴만 교환 할 수 없어, 통째로 갈려면 가격이 만만찮았다.
정선 갔다 와서 해결할 생각으로 동자동으로 돌아갔다.
분향소에도 들려야 하고, 용성이네 쌀을 전해주는 등, 할 일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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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분이 돌아가신 동자동 분향소는 30분이나 늦었지만, 다들 기다려 주었다.
연고자 없는 세 분의 상주가 되신 김호태씨를 비롯하여 우건일, 조두선,
김정호, 선동수, 박정아, 이난순씨 등 여러 분이 남아계셨다.
쪽방에서 돌아가신 채로 발견된 김동휘씨의 장례는 내일이라지만,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해 드릴 수가 없었다.

저승에서나마 사람대접 받기를 염원하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일찍 자고 새벽에 일어나야지만, 이런 저런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았다.
난, 잘 때는 한없이 자지만, 안 잘 때는 허구한 날 날밤을 깐다.
틀에 짜인 규칙을 싫어하기도 하지만, 잠자는 건 죽는 연습이라는 생각이다.
광주 518묘역에서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기도 했지만,
한 두 시간만 눈을 붙이고 정선으로 떠나야 했다.



 


오전에는 군청에서 일을 보고, 오후에는 만지산집에 들렸는데,
얼마나 가물었던지, 말라죽은 야채 모종이 곳곳에 너부러져 있었다.
물 퍼 나르고 거름 뿌리느라, 오줌 누며 거시기 볼 시간도 없었다.

어두워서야 간신히 마무리하고 산꼭대기 사는 최종대씨 집에 올라가
늦은 저녁밥을 얻어먹었더니, 갑자기 졸리기 시작했다.
급한 마음에 떠나려 했으나, 한 시간만 눈 부쳤다 가라며 두 내외가 붙들었다,
그 한 시간의 잠은 꿀맛이었다. 짧은 시간의 천국인 셈이다.





서울로 돌아오니, 오전 두시가 지나버렸다.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 온 걸 축하한다며 정영신씨와 술잔을 들었다,
작년 무렵 만지산에 들어 온,  치정에 얽힌 여인네 이야기를 안주 삼았다.
꽃뱀처럼, 어리숙한 촌 남정네들을 녹여 단물만 빨고 내친 놈이 한 둘이 아니라는데,
믿기지 않는 소문이었다. 와전되었기를 바라지만, 사실이라면 심각한 문제였다.

몇 시간 자지도 못한 채, 그 이튿날은 온 종일 자동차검사에 매달려야 했다.
정선가는 비용에 맞먹는 후미 등 값 줄이려 장안동 중고가게를 누벼야 했다.
그 다음은 매연이 문제였다. 검사소에선 1% 초과로 배기통만 털어 오라 했는데,
브란자를 수리해야 한다며 상당한 수리비를 요구했다.






아는 정비업소에 찾아가 부탁하니,
한적한 곳에 가서 패달을 밟아 공회전 시키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처음부터 왜 검사대행업체에 맡기지 않았냐고 했다.
고물차는 대행업소에 맡기면, 아무 탈 없이 통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그런 불법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들은 어떠한 경로를 통해 도장을 찍는지 모르겠다.
사람의 생명이 달린 안전문제인데 어떻게 아직까지 그런 게 통하는지...





어렵사리 검사는 받았지만, 이박 삼일동안 바쁘게 돌아 다녀야 했다.
쪽방에 올라와 라면 한 그릇 끓여먹고 컴퓨터를 켜니,
그때야 쌓였던 피로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컴퓨터를 켜 놓은 채, 누가 업어가도 모를 상태로 뻗어버렸다.
눈을 떠보니 이튿날 점심 무렵이었는데, 장장 열 몇 시간을 잠든 것이다.
차라리 영원히 잠드는 것이 더 편할 법 같기도 했다.

사진들은 몇 일전에 찍은 동자동사람들이다.



사진, 글 / 조문호















동자동 사는 황춘화씨 쪽방에 볼 일이 있어 올라갔다.
몇 일 전 내 방의 쌀을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지방가기 전에 줘야 편할 것 같았다.
쌀 포대를 안고 좁은 계단의 오층 건물 옥상까지 올라가려니 숨이 찼다.
쌀 포대를 계단에 내려놓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데,
5층 정재헌씨 쪽마루에 정재헌씨와 정용성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 용성이 녀석 얼굴이 엉망진창이었다.
그 꼴로 술을 마신 듯 해, 꼬라지가 거기 뭐꼬? 술 좀 거마 무라했더니,
계단 내려오다 넘어졌다는 것이다.

열악한 환경을 비켜 가지 못하는 팔자인지 모르지만최소한의 안전장치는 필요했다.
가파른 계단이라 손잡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건물 주인에겐 통하지 않는단다.

 





가진 자들에게 당하기만 하는 대개 빈민들의 고충이긴 했으나,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중재를 해 주던지,
아니면 상담소에서 직접 손잡이를 좀 만들어주었으면 한다.
자칫하면 목숨도 잃을 수 있는 일이다.
매일같이 술이 취해 오르내리는데, 여지 것 큰 사고가 없었던 것이 신기하다.
날카로운 시멘트에 부딪혀 그 정도 다친 게 천만다행이었다

용성이 더러 쌀 가져왔다고 했더니, 냅다 달려가 옥탑 방까지 들어 올려주었다.
다친 용성이 때문에 속이 상했는지, 술 취한 황춘화씨는 방에 쓰러져 자고 있었다.
이 대책 없는 두 모자를 어떻게 해야 할까? 억장이 무너졌으나, 방법은 없었다.
술을 끊으려면 병원생활을 해야 하지만, 당사자의 의지도 병원비도 없다.






걱정만 남긴 채 돌아오려니, 용성이가 손을 내민다.

돈 좀 달라”는데, 냉정해져야 했다.
그 간절한 눈빛을 거절하지 못해 주어 온 것을 후회했다.
그 돈으로 소주 사 마시니 내가 알콜 중독을 도운 격이다.
이제 돈은 줄 수 없다고 잘랐더니, 풀이 죽어 고개를 푹 숙였다.
돌아서는 마음이 아팠으나, 어쩔 수 없었다.





이 세상에 절대 신은 없다. 있다면 그건 사기일 뿐이다.

착한 놈은 고생하고, 나쁜 놈이 잘 사는 더러운 세상 아니던가?

일층으로 내려오니 구멍가게 앞에 이준기씨와 강완우씨가 있었다.
술이 한 잔 된 이준기씨가 반갑다며 하소연을 풀어놓더라.
어떻게 배붙이고 살던 서방을 교도소에 집어 넣냐?는 것이다.
사연인즉, 친구가 아내에게 손 지검을 했는데, 경찰을 불러 구속시켰다는 것이다.
좁은 방에서 함께 부대끼며 살다보니 화가 났겠지만, 참아야 했다.
다 돈 없는 이들의 서러움이다.






동자동엔 한 가닥 희망을 가지며 참 사람과, 절망을 술로 잊는 사람만 산다
알콜에 중독되거나, 몸과 마음을 심하게 다친 저승 대기자들이다.
하기야! 난 담배 중독자니, 남의 말만도 아니다.
오래 사는 것은 자랑이 아니라 수치라며 스스로 위안한다.


사진, 글 / 조문호














요즘 동자동 쪽방 촌 빈민들이 연이어 세상을 등지고 있다.
혼자 어렵게 연명하던 독거들이 스스로 목숨을 재촉한 듯하다.

술로 위안하다 더러는 병원으로 옮겨져 운명하기도 하지만,

외부와의 왕래를 끊은 채 혼자 쓸쓸히 생명줄을 놓는 사람도 있다.

말로만 듣던 독거사가 빈민촌에는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5일 오후 무렵, 동자동 ‘식도락’에 합동분향소가 차려진다는 메시지가 떴다.
급히 지방 갈 일이 있어, 성산동자동차검사장에 있을 때였다.

고물차 불합격 판정으로 전전긍긍하고 있을 즈음이라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아무래도 철상할 시간까지 도착하기 어려울 것 같았으나, 서둘렀다.

다행히 김정호씨에게 사정이야기를 했더니,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다.

허급지급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이 날의 상주로 나선 김호태씨를 비롯하여

우건일, 김정호, 조두선, 이원식, 선동수씨가 기다리고 있었고,

이난순, 박정아씨는 주방일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 날은 윤정수(82)씨와 은진기(67)씨, 두 분의 장례식을 치루었고,

김동휘(72)씨는 내일 장례를 치룬다고 하였다.


다들 무연고자라 '동자동사랑방'에서 어렵게 장레를 치루는데,
내일은 정선군청에 약속이 있어 조문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적은 조의금이나마 맡겨두었으나 마음이 편치 않았다.

더구나 김동휘씨는 쪽방에서 쓸쓸이 세상을 떠난 분이라,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해 드리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부디 세상에서 받은 설음과 고통 다 잊으시고, 편히 영면하시기 바랍니다.

사진, 글 / 조문호



























동자동 사랑방’은 주민이 주인인 아주 민주적인 협력체다. 여기는 갑 질하는 이도 없고, 완장부대도 없다.

서로 돕는 자치단체로 주민들과 소통하며 정 나누는 행복한 보금자리다.
이 야박한 세상에 정 나누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한 끼 천원으로 식사 할 수 있는 ‘식도락’과 책을 나누어보는 도서실을 운영하며,

어려운 분들의 선반을 만들어 주는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때로는 잘 못 된 세상을 바로잡기 위한 연대투쟁도 빠지지 않는다.

특히 연고자 없는 이들이 세상을 떠나면, 사랑방 식구들이 상주가 되어 장례까지 치러 주고 있다.

중요한 것은 주민들을 길들이는 무차별한 지원을 거부하며, 스스로의 자립을 돕는데 있다.

그리고 ‘동자동 사랑방‘에서는 매년 어버이날과 추석을 맞아 주민들을 위한 행사를 마련한다.

지난 5월8일의 어버이날에도 어르신들에게 꽃을 달아드리며, 술과 음식을 대접하는 잔치를 열었다.

오전10시부터 새꿈어린이공원’에서 열린 이 날 잔치에는 주민 300여명이 참여하는 성황을 이루었다.

잔치 비용도 관이나 단체에서 후원 받은 것이 아니라 주민들로부터 한 푼 두 푼 모아 마련하였다.

필요한 예산이 250만원이었는데, 229명의 주민들이 낸 모금액이 2,513,230원에 달해, 신통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서로 협력한 애착의 결과였지만, 사랑방 식구들이 하나같이 손발을 걷어 부쳤다는데 의의가 있는 것이다.

쪽방주민은 물론 더 배고픈 노숙인까지 대접하는 고마운 자리가 되었다.

이 날 잔치에 곁들여 그동안 찍은 사진을 돌려드리기 위한 ‘동자동 사람들’ 빨래줄 사진 나눔 전도 가졌다.

다 뽑지는 못했으나, 그 중에서 135장을 골라 빨래 줄에 걸어 서로 돌려 본 후 잔치가 끝난 후 가져가게 했다,

누락된 사진과 다시 찍는 사진들은 올 추석잔치에서 돌려드리기로 하였으나, 장수사진 촬영에 주력할 생각이다.

이번 어버이 날 잔치에는 사랑방 식구들이 아침8시부터 몰려 나와 각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다.

아침식사를 드시지 못한 분도 많았지만, 점심마저도 주민들 챙기느라 못 먹은 채 다들 정성을 다했다.

음식이 소진되어 주민들이 떠나갈 무렵에는 쓰레기 치우고 주변 정리하느라 또 한 차례 전쟁을 치루었다.

다들 집기들을 옮겨가고 나니, 그 때 사 시장기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취재하러 왔던 정영신씨 따라가 비빔밥 한 그릇 얻어 먹었는데, ‘식도락’ 골목에 사랑방식구들이 몰려 있었다.

“식사하지 않고 어디 갔다 왔냐?”며 중국집 ‘태향’으로 안내했다.

김호태회장을 비롯한 여러 주민들이 식사를 끝내고 소주 한 잔 나누며 뒷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동자동사랑방’ 사무실 앞에서는 강동근, 김정길, 김정호, 강병국, 임수만씨 등 여러 명이 설거지하느라 분주했다.

이날 뒷마무리하며 끝까지 남은 분으로는 우건일조합장을 비롯하여 박정아, 선동수, 허미라, 김창헌, 차재설, 박희봉,

박용서, 조두선, 전인중, 한정민, 최순규씨 등 많은 분들이 수고해 주셨다.


'동자동 사랑방' 화이팅!



사진,글 / 조문호


































오늘 아침 문재인씨가 대통령 되었다는 소식을 페북에서 알았다.
반가웠지만, 홍준표 득표의 쪽팔림과 심상정 몰락에 마음이 엿 같았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을 하며, 점심 먹으러 ‘식도락’으로 갔다.

빵으로 때울까 생각하다, 오늘 세월호 리본을 만든다기에 내려간 것이다.
다행스럽게 입맛도 없는데, 식도락에서 국수를 끓여 놓았다.
요즘 쓸 수 있는 이빨이 아래위로 두 알 뿐이라 밥 먹기가 영 힘든데,
물 국수라 잘도 빨려 들어갔다.

난순 여사가 비벼 먹는 비빔국수도 먹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것도 욕심이라며, 눌러앉아 리본 만들기를 기다렸다.






허미라씨를 비롯하여 김정호, 선동수, 박정아, 유한수, 김호태,
김창헌, 이인자, 강병국, 조남철씨 등 일꾼들이 속속 등장했다.
이곳에서 세월호 리본을 세 번째 만들었으나, 아직도 다들 서툴다.
규격화를 거부하는 인간 본능이라 믿고 싶었다.

모두들 세월호에 가득 찬 진흙을 호미로 퍼내는 심정으로 리본을 만들었다.
대통령이 새로 뽑혔지만, 아무도 정치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많은 주민들이 정의당을 지지했기에, 비참한 결과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새 정부와 힘을 모아 적폐를 하나하나 청소할 것으로 위안했다.






먹을 것이 마땅찮아 서울역 ‘롯데마트’에서 베지밀 한 박스를 사왔다.
4층까지 기어 올라와서는 쪽방에 퍼져버렸다.
한 숨 자고 일어나 빵에다 베지밀 까지 먹었더니 속이 더부룩했다.

오후 아홉시가 넘었지만, 동내 산책이라도 나가야 했다.
밤에는 술 마시는 회사원들 뿐이라 잘 나가지 않지만,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공원으로 들어가려는데, 뒤에서 누가 형님이라 불렀다.
돌아보니 정용성이었다. 이 녀석은 지 애비 벌 되는 놈을 늘 형님이라 부른다.
불렀던 사연인즉, 지 애미와의 실랑이 때문이었다.






두 모자가 술을 너무 좋아해 매점에서 소주 두병과 새우깡 한 봉지를 사서는,
아들은 시원한 공원에서 마시자 하고, 애미는 쌀쌀하니 방에서 마시자며
서로 고집을 꺾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나를 지원군으로 불렀던 것이다.

다들 반 술은 되었지만, 나만 말짱해 일단 중재안을 내 놓았다.
30분만 마시고, 방으로 올라가자고 했다.
사실은 내가 더 술이 고팠기 때문이다.
용성이 녀석은 기분이 좋아 노래를 불렀다.





멜로디는 분명 투쟁가였으나,
가사에는 압박과 설음에 해방된 민족까지 뒤 섞인 묘한 노동가였다.
반세기 동안 정치꾼들의 놀음에 길들어 온 우리민족의 자화상이 아니라 자화가였다.
이념이 무엇인지도 모르며, 오로지 잘 사는 것만 지향해 온 민초들의 슬픈 노래였다.






약속시간이 되어 다들 황춘화씨 따라 방으로 올라가야 했다.
그 방은 5층에서도 옥상까지 올라가야 하는데다,
계단도 가파르고 좁아 힘든 코스지만, 한 잔 더 마시려면 따라가야 했다.
소주와 안주가 담긴 오븐을 들고 올라갔는데, 다들 바빴다.

술 취한 용성이는 방 치우러 가는지 먼저 올라가 버리고,
황춘화씨는 4층에 있는 술꾼 정재헌씨 집부터 들어갔다.
이 양반은 술 취해 자고 일어나, 그 때야 허기를 메웠는지 이를 닦고 있었다.
이 판에 어울리면 힘들 것 같으니, 제발 제발이라 부르짖었다.






알 중 어미와 아들, 그리고 좃 중 셋이 모여 오붓하게 한 잔 했다.
술이 취해 오가는 이야기들은 도무지 사이클이 맞지 않았다.
켜 놓은 텔레비 마저 사이클에 문제가 생겼는지 펄펄 거렸다.
내가 텔레비 죽이라니까, 이번에는 손바닥 만한 라디오를 켰다.

두 모자가 매일 같이 함께 술을 마시니,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그냥 대화의 칸막이처럼 켜 놓는 것이다.





대화 칸막이로는 내 노래가 더 좋다며 한 가락 뽑았다.
‘봄날은 간다’를 불렀는데, 목이 메어 그만 울음이 되어버렸다.
좃이 피면 같이 웃고, 좃이 지면 같이 우는 대목에 못 미쳐,
용성이 모자 앞에서 쪽팔리게 울어버린 것이다.
놀란 두 사람이 무슨 사연인지 의아해 슬픈 눈길로 쳐다보고 있었다.






황춘화씨와 정용성씨 모자는 동자동에 들어 온지가 삼십년이 넘었다.
동대문에서 양동으로, 양동에서 동자동으로, 마지막 쫓겨 온 곳이 동자동이었다.
황춘화씨가 기초연금 70만원 받아 23만원 방세 제하고 사니 보나마나 뻔하다.
거기다 두 사람이 매일 마셔대는 술값도 장난 아니다.


얼마 전에는 술이 취해 넘어진 용성이가 허리를 다쳤단다.
술만 마시면 아프지 않은데, 술이 깨면 아프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 기회에 진단서를 끊어 제출하면 자기도 기초생활 수급자가 될 수 있다는 소리를 듣고,
오늘 진단서를 끊어 왔다며 보여주었다.





정확하게 기억되지 않으나, 병명이 탈골이 아니라  알콜 중독에 의한 의존증이라 쓴 것 같았다.
수급자 자격에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일 할 수 없는 환자는 분명해 수급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만약, 아니라면 모든 걸 적게 주고 피해가는 잘 못된 법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싸워야 했다.

황춘화씨도 몇 일 전 이웃집 개에 팔을 물려 붕대를 감고 있었다.
기사가 준 돈으로 첫 병원비는 치렀지만, 앞으로가 문제라며 걱정했다.
추측컨대, 그 기사라는 사람은 기자를 잘 못 알아들은 사진가 김원씨를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몇 달 전 사진 찍지 말라며 화 낸 것을 사과했다.
난 잊은 지 오래되었으나, 그는 여지 것 잊지 않고 있었다.
'맞은 놈은 다리 펴고 자지만, 때린 놈은 오무려 잔다'는 옛말이 생각나 혼자 키득거렸다.

사는 꼴이 기가막혀 제일 필요한 게 무어냐고 물었더니, 쌀이라고 했다.
난 밥을 해먹지 않아, 내방에 있는 쌀 포대를 가져가라 했더니,
두 모자가 차례대로 내 손을 부여잡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이 착한 양을 굽어 살펴 인도하라”는 기도였다. 아~ 니미 기분 이상하데...





이미 자정이 지나 일어났더니, 황춘화씨도 따라 일어났다.

계단이 위험해 술 취해 떨어질까 걱정된다며 따라나선 것이다.
‘아지매 걱정이나 하이소. 다시 올라 갈라 카마 힘든께 내려 오지마소“ 해도
기어이 따라 내려와 배웅했다. 법 없어도 살, 참 착한 모자였다.

어쩌면, 말년까지 마흔여섯이나 된 아들녀석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행복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자식 놈이 그때까지 장가 안가고 밤낮으로 엄마 술친구 되어 줄 놈이 있겠는가?
다들 혼자 사는 쪽방에서, 엄마와 살 부대끼며 사는 맛이 부러울 것이다.

헤어지며 잡는 손의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사진, 글 / 조문호















































'사랑의 이삭 나눔 콘서트'가 지난 5월6일 오후4시부터 동자동 '성민교회'에서 열렸다.
'명성교회'에서 어버이날을 앞두고 마련한 이 날 콘서트는 이범주씨 사회로 진행되었는데,

교회의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가득 메웠다.
‘명성사물놀이선교단’의 삼도사물놀이와 ‘아름다운 무용선교단’의 설장구와 부채춤,
소프라노 최현혜씨의 ‘고향의 봄’ 등 다양한 공연이 펼쳐져 주민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중간 중간에 추첨하여 상품권을 나누어 주기도 했으나, 다들 공연 후 나누어주는 선물에 쏠렸다.

대개 굿보다는 제사떡에 관심이 많은 듯했다.

그리고 어디를 가나 물건을 나누어 주는 곳에는 완장을 좋아하는 사람이 따른다는 것이다.

상담소에서 완장 노릇 하는 모씨가 설치자 여기서 배급의 주도적 완장노릇을 하는 사람과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김만귀, 김정호씨등 여러 사람이 말려 한 사람이 객석에 앉으므로 조용하게 무마되었으나,

이권이 따르지도 않는 봉사 직에 그토록 목메는 부분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누어 주는 것도 갑 질이 될 수 있을까?

이날은 선물을 나누어 줄때 다소 혼잡스러워 잠시 중단되기도 했으나, 쌀10킬로와 라면 한 박스 중 한 가지를 선택하게 했다,

밥 해먹기 싫은 남정네 몇몇이 라면을 택하였으나 대부분 쌀을 선택했다.

혼잡스러워 끝까지 지켜보지 못했는데, 못 받은 사람은 없었는지 모르겠다.

문제는 어느 단체에서 하는 공연이던 간에, 공연 후에 반드시 선물이 따라야 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좋은 공연도 선물 없이는 관객동원이 용이하지 않게 되었다.

이미 길든 주민들의 탓이기는 하지만, 주민들의 타자화를 부추기는 무분별한 지원은 지금부터라도 고려되어야한다.

봉사는 조용하게 해야 하고, 지원은 보이지 않게 골고루 해야 한다.

몸이 쇠약하여 외출 못하는 더 힘든 사람들이 소외되지 않게 하라.

진정한 사랑의 이삭 나눔을 바란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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