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권 회고전 ‘나무에 새긴 30년’

김준권 작가가 올해 완성한 채묵 목판화 ‘푸른 소나무’. 새벽 시간 왕릉을 둘러싼 소나무 숲이

상서로운 푸른 기운을 내뿜는 모습을 표현했다. 김 작가는 특정 지역의 풍경을 보이는 그대로

그리지 않고 이를 보며 떠오른 생각을 함께 담아낸다.

색깔별로 별도의 목판이 필요해 6개 판에 새겨 완성했다. 김준권 작가 제공

 

 

소담스레 눈이 쌓인 시골 마을, 서늘한 새벽 공기를 내뿜는 숲 속 정경, 분홍 꽃잎이 흐드러진 봄날의 꽃나무….

김준권 작가(58·사진)의 서정적인 풍경화를 보면 두 번 놀란다. 먹빛이 부드러운 수묵화 같은데 뾰족한 칼로 파낸 판화다. 평화로운 풍경을 그려내는 작가는 청년 시절엔 민족해방(NL) 계열로 정치 투쟁의 선봉에 섰던 투사였다.

1980년대 미술계의 주류였던 민중 화가들은 민주화 이후 각자의 길을 걸었다. 목판화가 오윤(1946∼1986)은 40세에 요절해 전설이 됐다.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한 그림으로 논란을 일으킨 홍성담 작가(59)는 여전히 직설적 화법으로 시대와 불화한다. 투쟁의 도구가 아닌 예술의 본질로 돌아가 미학적 고민을 하는 이들도 있다. 김 작가가 그런 경우다.

 

 

10일 서울 종로구 아라아트센터에서 개막하는 그의 회고전 ‘나무에 새긴 30년’은 미술 운동가에서 서정적 목판화가로 선회한 작가의 예술 여정을 시기별로 보여준다. 홍익대 미대 졸업 후 미술교사에서 해직 교사로, 민족미술협의회의 사무국장과 상임집행위원장으로 바쁘게 활동하며 억센 선묘 위주의 선동적 작품을 선보였던 작가는 민중미술운동이 동력을 잃자 다른 고민을 해야 했다.

“커다란 이념이 아니라 동네 고샅길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 감동을 표현할 기술이 없더군요.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선에 투입됐던 거예요. 내가 옳다며 떠들던 것들이 실은 무지의 발로가 아닐까 회의했습니다. 다시 공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민중미술가로 활동하던 시절인 1985년 고무판에 유성잉크를 발라 찍어낸 선묘 위주의 ‘태극도’. 김준권 작가 제공

 

 

떠들썩한 세상 한가운데 서 있던 그는 30대 중반이던 1991년 충북 진천군 백곡면 산골짜기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자발적인 유배 생활을 시작했다. 팔만대장경이 있는 해인사에서 전통적인 수묵인화기법을 익히고, 목판화의 선진국으로 유학을 떠나 일본 다색목판화 우키요에와 중국의 수인판화를 배웠다.

한중일 3국의 목판화 문화를 섭렵한 결과물이 채묵 목판화다. 젊은 시절 여느 목판화가들처럼 서양 종이에 유성물감으로 찍어냈던 그는 지금은 한지에 먹을 안료로 쓴다. 유성판화는 누가 찍든 같은 결과물이 나오지만 수묵판화는 먹의 농도, 목판과 한지의 수분 함량에 따라 작품들이 다 다르다. 그만큼 표현 영역이 넓지만 수분 조절이 어려워 정교한 기술과 집중력이 필요하다.

소재도 바뀌었다. 머릿속 이념을 담아내던 작가는 평범한 이들이 발 디디고 사는 이 땅의 질박한 풍경들을 눈으로, 발로 사생하고 작업실에 앉아 되새김질하며 목판에 새겨낸다.

그가 30년간 그리고, 파고, 찍은 작품은 550여 점. 작품마다 5, 6개의 판을 새겼으니 3000개가 넘고, 작품당 20점 미만의 에디션을 찍었으니 6만 장이 넘는 판화를 내놓은 셈이다. 이번 전시에는 연도별로 7, 8점씩 250여 점을 전시한다.

작업실에 ‘한국목판문화연구소’라는 간판을 내건 작가는 “목판화란 죽은 나무를 살려내는 일”이라며 “내가 살려낸 것이 무엇인지 묻고 또 묻는다”고 했다. 29일까지. 02-733-1981

동아일보 /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민중문화운동으로 시작한 미술 인생…화집 출판기념 전시


(서울=연합뉴스) 김정선 기자 

 

 "물기를 먹은 화선지와 목판에 우리 땅과 사람을 담아내다 보니 30여년이 훌쩍 갔습니다. 1980년대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민중문화운동으로 미술계에 발을 디뎠는데, 돌아보면 지금까지 재미있게 잘 지낸 것 같습니다."

전통 수묵기법에 기반을 둔 목판화로 다양한 자연과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낸 김준권(58)이 자신의 미술 인생을 돌아보는 화집 '나무에 새긴 30년'을 내고 10∼29일 서울 아라아트센터에서 기념 전시회를 연다.

1일 서울시내 음식점에서 기자들과 만난 작가는 이러한 목판화에 천착하는 이유에 대해 "뭔가에 홀렸나 보다"라며 "왔던 길을 되돌릴 수도 없고 계속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다"고 털털하게 말했다.

 

 

 

홍익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그는 미술교사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참여하다가 해직당했고 동료 화가들과 함께 민중판화전을 열었다.

민중미술을 하다가 이러한 수묵 목판화에 집중한 계기에 대해 "시야가 달라졌고 스스로 입체적으로 보려고 노력했다"는 대답을 내놨다.

한국의 수묵 목판화를 좀 더 자세히 연구하고 싶어 중국과 일본으로 떠나 한중일 판화를 비교한 적도 있다.  

1993년에는 서울에서 충북 진천으로 작업실을 옮겨 '동네 길과 동네 사람'을 소재로 자주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김준권은 "동네 고샅길 하나를 보고서도 한없이 감동할 수 있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수묵 목판화의 매력에 대해선 "찍을 때마다 종이에 물을 얼마나 적시는지 그 순간의 감각이 어떤가에 따라 찍히는 그림이 달라진다"며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최대 60번을 찍어낸 적도 있다"고 말했다. 

 

김준권의 수묵목판 작품 '山韻'(2009)

 

종이에 찍고 그늘에서 말리기를 거듭하는 과정을 한 달 넘게 하며 완성하다 보면 화선지의 반복된 수축과 팽창이 남모를 깊이감을 준다고 작가는 설명했다.

작가는 1984년에 첫 개인전을 낸 이후 최근까지 국내외에서 30여차례 전시회를 열었다. 

지난달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쓰러졌다가 몸을 추스르고 나온 작가는 "한국의 목판화 제작 환경이 열악하지 않느냐"면서 미술시장이나 상업 화랑 등지에서 이러한 작품들을 많이 취급하지 않아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수묵 목판화로는 드물게 열린다는 이번 전시회에서는 연도별로 7∼8점을 선별해 판화 250여점, 초기 유화 20여점 등을 보여준다.

 

 

jsk@yna.co.kr 




화각인 畵刻人

김준권展 / KIMJOONKWON / 金俊權 / printing

2013_0902 ▶ 2013_0915

 

 

김준권_산에서...1303_채묵목판_160×84cm_2013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20516k | 김준권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3_0902_월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9:00pm / 주말,공휴일_10:00am~07:00pm


갤러리 팔레 드 서울gallery palais de seoul

서울 종로구 통의동 6번지Tel. +82.2.730.7707

www.palaisdeseoul.net


김준권의 수묵목판화의 길 ● 한 때 거리와 광장을 부추기던 군중은 차차 세월의 풍경 속으로 잦아들고, 철새처럼 그도 참으로 먼 길을 휘돌았다. 우수와 고독과 적막과 부동은 민중시대 이후 그가 사랑한 미궁의 벗이었다. 나는 그의 수묵 위주의 근작 목판화를 보면서 이전의 유성의 '다색' 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움으로 설레기 시작했다. 귀티 나는 단색조의 중색효과에 공기원근법적 투과성이 이끈 여리고 감각적인 화면들이었다. 일반적으로 수묵화가 붓털에 의탁한 유연한 선이나 선염의 맛이라 한다면 그의 수묵인은 절제된 형상과 맑은 색면으로 가다듬은 담미의 호흡이다. 숭덩숭덩한 이미지의 목판화와 산들산들한 느낌의 묵화가 각각 제 영역에서 더 나아가기를 주저하는 엉덩이를 툭툭 털고 있었다. 예의 이런 작품들에도 관통하고 있는 묵언의 태도는 그러나 말길을 잃었던 과거의 것과는 완연히 달라진 느낌이다. 이곳에는 사람이 서 있지 않아도 되었으며 새를 날리지 않아도 되는 무언가가 숨을 쉬고 있었다. 「島」연작에서 나는 사실주의적 가치관을 옹호한 마음자리를 보았고 그의 판화날개 30년의 휴식도 보았다. 떡칠한 유성 프린팅에서는 맛볼 수 없는 가뿐하고 상쾌한 먹빛의 감색! 선이 사라진 자리에 단아한 면이 들어서고 면이 포개지는 섬과 섬 사이를 안개처럼 고요히 여백이 다녀갔다.

 


김준권_신안에서..._채묵목판_50×80cm_2013

모든 인간적 배경을 거둔 선경이기도하거니와 안개 속에서 옷을 벗은 세속의 풍경이기도 하다. 이곳이 그가 다다르고자 했던 종래의 판화경이 아니었을까. 그리하여 목판이라는 물성의 한계이면서 목판만의 고유한 진화가 그 목적지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느낌. 그의 또 다른 연작 「산에서...」도 마찬가지다. 화면 구성으로 보자면 텅 빈 하늘에 매지구름 한 뗏장이라도 올려붙이고 싶은 충동이 이는데, 낮은 등성이마다 마치 어깨를 결은 사람들이 밀려오고 밀려가는 물결처럼 포치하여 '땅의 근거'를 버리지 않았다. 만일 여기에서 조금 벗어나 구성주의적 데포르메로 커서를 옮겼더라면 힘들게 얻은 여백을 잃었거나 작품에 우려낸 피 같은 역사도 창백해졌을지 모른다. 모름지기 인간이 사는 이 평범한 공간과 원근이 주는 최소한의 긴장을 내려놓지 않는 바탕에서 비로소 그의 묵음과 여백은 뜻을 이루고 있었다. 작가는 산이면 산, 들이면 들, 나무면 나무가 인간군 위에 포개지고 있다는 내심을 들키고 싶지 않다. 이도 다분히 산의 기호와 힘이면 되었고, 대지 또는 자연이 제시하는 원시적 미감을 휘어잡는 것으로 충분해야 하는 것이다. 짐작 컨데 18년전 교단의 복직을 거부하고 떠났던 중국행과 그 연장에서 힘입은 수묵목판화의 방법론은 자신의 예술인생의 변화를 예감하는 결정저거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낮게 깔았던 그의 눈꺼풀은 작품 「歸路」에서 서서히 떠올라 마을을 지나 언덕을 오르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겹겹이 심원법으로 조감한다. 그의 다른 쪽 눈자위 하나는 또 바다 한 가운데로 풍덩 뛰어내려 수평선 멀리 작은 섬들로 시원스럽게 판을 갈아치웠다. 지난 다색판화류의 서양 회화적 정서로부터 돌아와 수묵의 본성으로 깨어난 듯 그가 새로 얻은 자기 공명적 도안은 이즈음에 단연 주목받을 만한 것이 되었다.

 


김준권_독도에서_채묵목판_30×40cm_2013

이번 전시회에 또 그가 내인 판화들은 「靑竹」 연작이다. 대나무 외투를 입은 청회색빛 '겨울'을 벗고 야들야들한 연초록빛 '봄'으로 새 단장을 하였다. 종종 그의 주제는 소재 속에 녹아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대상이 가진 상징의 언어는 결을 따르되 결코 과장하지 않는다. 그저 그것이 거기에 있어 날마다 그것을 따라 읽고 만지고 그리고 즐기며 그것을 사랑하는 것이다. 대나무도 그렇다. 머리오리는 소쇄하니 바람을 쓸고 가슴은 텅 비어 무심한데 사계절 곧은 그림자는 밤마다 달빛을 희롱한다. 나무도 아니요 풀도 아닌 비목지초의 한 가운데를 살아 백년에 한번 꽃을 피운다면 어찌 새 세상의 봉황을 못 부를까! '봉황새'는 중국 최초의 황제인 황제 때 나타났다고 하여 전설이 되었다. 봉황은 출현할 성군을 위해 나타나고 대나무는 그 봉황을 맞이하기 위해 열매(봉황새가 유일하게 먹는다는 '죽실')를 예비한다는 '각본'. 대나무의 초고속 생장력(하루에 60~100cm를 자라 약 3개월 만에 성목이 된다.)이나, 마치 달이나 갈대 같은 것이 긴 세월을 치르는 동안 해뜩 변해버린 듯 기묘한 식물이라는 점도 관심거리지만 대나무다움은 역시 마디 속이 텅 비어 있는 '공동현상'과 백년 만에 한번 꽃을 피우고 모두 죽는 미스터리의 '개화현상'에 있다. 단 한번 지핀 불길에 목숨을 건다? 사랑 말인가 깨달음 말인가...

 


김준권_두주마을_채묵목판_63×341cm_2013

김준권의 대나무 연작은 말하자면 이런 대나무의 유래와 성상과 빛깔을 무심히 껴안고 돈다. 그는 목판 위에 칼춤을 추면서도 무난하고 냉정하며 고독하다. 그가 그리고 파고 찍는 노동의 형태가 그러하고 묵언의 대화법을 감추고 있는 저 대나무 속 같은 '공동의 마음'이 그러하다. 소나무와 버드나무의 중간에 놓인 다리쯤 될까, 조금 낭창낭창하다 싶지만 그렇다고 어떤 '바람'을 기대한 것은 아니니 이번에도 그는 과묵한 편이다. 가늘고 긴 대나무의 줄기든 가벼운 잎사귀든 그 그늘이든 그 볕이든 한 데 묶어 매 순간의 움직임을 차단한다. 대나무를 소재로 한 여느 수묵화들이 마치 대여섯 자의 거리를 두고 부분적으로 죽간의 크기와 길이를 정한 다음 잔가지와 이파리의 필력을 다듬는 짜임으로 흔했거나, 더러 뒤란이나 마을을 에워싼 대숲을 먹 번짐과 함께 넓게 담아내는 것들이었으되 아직까지 칼로 무수히 색점을 뜬 사례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가 몇 걸음 중경으로 물러나 전체 대숲을 잡아내고자 한 이유를 알만하다. 작품 「대나무 숲」에서 보듯 화면 하나를 댓잎의 파노라마로 즐기는 그의 한가로움이 멋지지만 숲 전체를 압도하며 정말 판각으로 도전하고자 한 담력과 그의 장인적 포부에서는 차라리 질린다. 나는 그의 최근작 소나무가 있는 「숲에서...」 연작에 매우 만족한다. 그의 지난 언어의 파동이 수묵적 담미에 와서 더욱 높아지고 넓어지고 자유로워진 기분이다.

 


김준권_靑竹-1312_채묵목판_59×98.5cm_2013

대나무가 비목비초의 안을 굽어보는 맛이라면 소나무는 비산비야의 밖을 내다보는 맛이다. 늙어갈수록 아취를 더하는 뒤틀림이 아름답고, 한 잎집에서 나서 아랫부분이 서로 맞닿아 잎이 떨어질 때도 하나 되어 떨어지는 '백년해로의 부부애'도 행복하다. 소나무는 몸을 쪼개어 이승의 살 집을 지어주고, 청아한 자태로 인간에게 지조 있는 삶과 의연하게 늙는 법을 가르쳐준다. 사계절 푸른 수염을 웃으며 지나는 허튼 바람 따위 시비하지 않는 군자 위의 초목이라 하면...! 내가 이 연작들의 겹쳐 찍기에서 드러나는 중색효과에 관해 묻자 그는 일반의 중색효과와는 다른 무엇을 설명하기 위해 기형적으로 굵어진 그의 엄지손가라고가 집게손가락으로 미간을 찌른다. 즉 두 색 또는 그 이상의 겹쳐진 부분에 얹히는 유성색상의 감산혼합적 중첩이 아니라 이를테면 첫 판의 소나무와 둘째 판의 솔가지가 화선지에서 만나 서로 '살갑게 스치는' 인연이다. 수성에서만 연출할 수 있는 마치 모시저고리에 비치는 여인의 속살, 속살을 감추는 모시적삼의 보드라운 감촉 같은 것이었다. 일본에는 수성판화 '우키요에'가 있다면 중국에는 '수인목판화'가 있다. 우리에게도 동등한 지위의 판화는 없을까... 그는 의당 '수묵목판화'라 답한다. 뱃속의 아기 이름을 이미 지어놓은 것이다. 그가 불러줌으로써 비로소 기꺼워지는바 뱃속의 태동이 좋다. 그가 의욕적으로 전취하고자 하는 것은 적어도 그 모국어적 독자성에 서있을 목표이니 우선 일본과 중국에는 없는 저 티 없이 맑은 기법에 흐뭇이 박수를 보낸다. ■ 김진수

Vol.20130902e | 김준권展 / KIMJOONKWON / 金俊權 / printing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