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하는 사진이 각진 거울의 반사를 통해 태어났으니, 설치물 자체가 작품의 모태인 셈이다.
작가는 최석태씨에게 작업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었으나,
귀가 어두워 무슨 말인지를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거울에 반사된 다각도의 이미지가 장소의 고유성을 허문다는 것 같았다.
작가 용해숙씨를 처음 보았는데, 대단한 열정을 가진 여장부란 생각이 들었다.
그 끝이 어디로 향할지는 모르지만, 주목해 볼 작가로 생각되었다.
법당 단청을 거울에 반영시켜 유토피아가 존재하는 공간으로 재구성했는데,
공간을 바라보는 인간 중심적 관점을 다시 생각해보자는 이야기 같았다.
거울에 비친 허상으로 기록의 매개인 사진마저 무위라는 걸까?
사진이 폭 넓게 활용되며 사진 본연의 목적에서 점차 멀어 간다는 씁씁한 생각을 하며 내려왔다.
벽치기 골목의 ‘유목민’은 초저녁인데도 손님이 많아 앉을 자리가 없었다.
좀 쌀쌀했지만, 담배 피우기 좋은 골목에 상을 차렸다.
안쪽에서 마시던 김태영, 이승철 시인, 전상기 문학평론가 등
몇몇 분들이 담배 피우러 나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최석태, 김구, 김이하씨도 전시장에서 왔으나 자리가 없어 ‘사랑채’로 간다고 했다.
그런데, 김태영씨가 ‘이즈’에서 그림전시를 한다는 소식을 주었다.
시간이 늦어 볼 수는 없었으나, 전시 리프렛과 새로 펴낸 시집
‘버드나무 버드나무 흰 그림자’ 한 권을 선물 받았다.
그 자리에서 시집은 읽을 수 없었으나, 리프렛에 실린 그림은 볼수 있었다.
그림에 환영어린 몸짓 같은 것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흐릿한 붓질에서 인간의 불안감이나 삶에 대한 허무감 같은 것도 고개 내밀었다.
그 날은 ‘유목민’과 ‘사랑채’를 넘나들며 마실 수밖에 없었는데,
뒤늦게는 '사랑채'에 안원규씨와 우문명씨도 나타났다.
여기저기 옮겨가며 마셔 그런지 주량을 한참 초과해 버렸다.
필름이 끊겨 어떻게 돌아 왔는지도 알 수 없었다.
카메라에 찍힌 사진을 보며 그 날 방기식씨가 있었다는 것도 알았다.
그 와중에 선물 받은 김태영씨 시집을 흘리지 않은 게 신통했다.
속은 쓰렸지만, 화장실에 들어가 시집부터 읽었다.
김태영씨 그림과 시의 연관성이 궁금했는데, 공통점이 보였다.
첫장에 실린 ‘만종’이란 제목의 시는 이러했다.
“묻지도 않고
스포츠로 민 머리
손수 감겨주고
뽀드득,
물기를 훔친다.“
‘잠꼬대’란 시는 더 난해했다.
“비단길 흰 허벅살 한 입의 사과즙”
‘즉물성의 감각, 즉물성의 형이상학’이란 제목의 발문을 쓴 문학평론가 전상기씨는 김태영시의 불친절함을 이렇게 말했다. “김춘수의 무의미시나 전봉건의 초현실주의시, 아니면 김종삼의 음악을 들으면서 떠오르는 감흥을 시화한 방식에 견준다면 어떨까. 예의 없고 불친절하며 뜬금없기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이 시를 보노라면 김태영의 시가 어떨지 감이 올 것이라“ 했다. 그리고 ‘그의 시는 시적 화자의 시작 당시의 생각과 감성을 드러내는데 집중한다고 했다. 즉흥성과 즉물성의 감각을 이미지화하는 것, 다시 말하면 거기에 집중하는 미세하고 예리한 감각의 움직임을 포착해내는 것이 김태영의 시작 목표라고 적고 있다.
자리에 누워 뒤척인 긴 시간의 피로를 걷어내려 촛불 아닌 카메라를 잡았다. 검찰개혁 촛불 문화제’가 열린 지난 5일 오후3시 무렵, 지하철 서초역에 도착했다.
혼잡할 것 같아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나왔으나, 주변은 사람들로 꽉 찼다, 한마디로 인산인해였다.
또 하나 반가운 것은 태극기부대가 남용해 혐오감을 느껴 온 태극기를 되찾아 왔다는 것이다.
로터리를 중앙으로 사방에 설치된 대형스크린에서 전체 장면 장면을 볼 수 있어 어디든 자리만 잡으면 되지만, 한 자리에 머물 수는 없었다. 사진도 찍어야하지만 협력할 ‘광화문미술행동’ 팀도 찿아야 하고, 만나야 할 사람도 있었다, 사람에 밀려다니느라 자리 옮기기가 싶지 않았다.
한 시간 정도를 헤매다 간신히 판화를 찍고 있는 김구씨를 찾았다. 판화 찍어 시민들에게 나누어 주느라 정신없었다. 한 쪽에 보이는 ‘광화문미술행동’ 깃발따라 들어가니, 서예 퍼포먼스는 이미 끝난 후였다.
강병인, 정고암선생께서 글을 쓴 모양인데, 주위에선 풍물패가 신명을 지피고 있었다.
그런데, 글 써놓은 현수막에 드러누워 악을 써는 여자가 있었다. 진행요원들이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았는데, 의도적으로 손대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아마 지난번 광화문 태극기 집회의 여기자 성추행 비판을 염두에 둔 해프닝인 것 같았다. 경찰도 손댈 수 없어 결국 여경들을 불러와 끌어냈다.
그 곳에서 반가운 분들을 줄줄이 만났다. 김진하씨를 비롯하여, 김진열. 류연복, 박윤호, 정영신, 이재민, 장경호씨를 현장에서 만났고, 또 다른 곳을 지나다 김재홍씨와 손기환씨를 만났다. 뒤늦게는 대전에서 온 이석필씨도 만났다. 페북에서 만나자고 한 기국서씨와 신윤택씨는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는데, 사실 그 곳에서 사람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마침 사진가 하형우씨를 만나 김문호씨와 합류하게 되었는데, 이수철, 정영신, 박윤호씨 등 사진가 여럿명과 늦은 점심 겸 이른 저녁을 먹었다. 반주까지 한 잔 곁들여...
나오다보니 편의점 앞 탁자에 반가운 분이 앉아 있었다. 강원도 양양에서 온 정덕수시인이 예쁜 아가씨를 데리고 있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류연복, 김이하, 김진열씨도 찾아왔다.
시골에서 온 정덕수씨가 편의점에서 막걸리를 사오기에 “오늘 집회서 받은 일당 받은 것 다 쓰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씩 웃는다. 일당은 커녕, 일 제쳐두고 찿아 오느라 손해가 이만저만 아니다. 오로지 개검들 조지고 싶은 충정 하나로 돈 써가며 몰려 온 사람들이니까...
검찰개혁을 외치는 함성이 서초동 일대를 뒤 덮었다. 그 함성에 막힌 가슴이 뻥 뚫리며, 기가 살아나는 것 같았다. 작은 기라도 보태려 나왔으나, 오히려 기를 받아 힘이 흘러 넘쳤다.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의 세가 하늘을 찌르니, 어찌 힘이 솟지 않겠는가?
사실, 검찰 개혁의 필요성은 대부분 공감하지만, 조국장관 수호에는 이견도 있다. 그분들의 말도 일리는 있지만,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칸 태울 수는 없지 않은가? 거리에 나온 많은 사람들은 정치검찰로 목숨을 잃은 노무현 대통령을 상기시켰다.
조국장관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지켜보며, 그 때를 떠 올린 것이다. 군중들의 손에 잡힌 피켓이나 외치는 구호가 잘 말해주었다.
‘이제는 울지 말자. 이번엔 지켜내자. 우리의 사명이다’
대표적인 구호가 ‘검찰 개혁 조국 수호’, ‘조국 수호 검찰 개혁’로 두 사안은 붙어 다녔다. 무대에는 소설가 이외수씨를 비롯하여 많은 시민들이 차례대로 나와 검찰개혁의 당위성을 말했다.
신나는 공연도 이어졌는데, 그 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지만 탈 없이 잘 어울렸다. 늦은 시간까지 불편을 감수하고 질서정연하게 자리를 지켜 준 대단한 국민이었다.
지난 10월3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태국기 집회와, 5일 서초동에서 열린 촛불 집회는 다른 점이 너무 많았다. 참여 인원수도 서초동이 더 많았지만, 그런 숫자놀음은 중요하지 않다.
일단 자유한국당에서 동원한 집회와 자발적인 집회라는 차이점이 분명하고, 정당이 표면에 나선 것과 시민들이 주체가 된 것이 달랐다. 그리고 한 쪽에서는 폭력에 의한 분노가 일었고, 한 쪽은 평화로운 놀이마당이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내 세우는 논리나 어휘의 차원이 달랐다. 태극기부대에서 내세운 구호이긴 하지만 “문재인을 단두대로, 박근혜를 청와대로”란 현수막도 있었다. 이런 저질의 구호는 자유한국당 얼굴과 바로 연결된다. 그래서 태극기부대와는 거리를 두지만... 허구한 날 빨갱이 타령으로 덕 보더니, 저들 하는 짓이 빨갱이와 다를 게 뭐 있는가? 괜히 맛 불 놓는다고 돈만 쏟아 붙지만 헛짓 그만해라. “국 쏟고 뭐 디이는 격이다“
이제 보수정당과 연대한 정치검찰과 부패언론의 더러운 권력구조에 종지부를 찍어야한다.
긴 세월 일제에 빌붙어 권력을 휘두르다, 그 이후는 양놈에 달라붙어 죄 없는 국민을 빨갱이로 몰아 얼마나 많이 죽였는가? 제발 후손을 위해서라도 각성하라. 꼴통보수 정치인이건, 부패 검찰이건 새로운 각오로 임해야 할 것이다.
광화문 국민문화제가 열린 4월7일의 광화문광장에는 이른 시간부터 많은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4,3깃발제작소에서는 깃발을 만들며, 춤꾼 양혜경씨의 넋전 굿이 열렸고,
또 한 켠에는 성효숙씨의 '붉은 꽃' 퍼포먼스를 준비하고 있었다.
수 많은 부스에서 4,3항쟁에 대한 다양한 행사를 벌였으나, 4,3에 관한 책을 파는 부스도 많았다.
몇일 전 출판된 4,3의 주역 김달삼을 비롯한 학살의 실체를 엮은 소설가 강기희씨의 ’위험한 특종‘도 선보였다.
그런데, 그 날 제주 4,3에서 학살된 원혼을 기리는 추모장에 난데없는 태극기부대가 등장하여 주변을 소란스럽게 했다.
행사부스를 사이에 두고 판을 벌이는 형태에서 좌우의 갈등이 7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바뀌지 않은 것 같았다.
4,3의 원혼들이 얼마나 통탄했겠는가?
이날 행사장에는 배인석 민예총 사무총장을 비롯하여 유순예, 양혜경, 성효숙, 안해룡, 마문호,
양 동, 양시영, 김이하, 마기철씨 등 반가운 분들의 모습도 보였다.
사진, 글 / 조문호
아, 샛바람이여~
아, 그때 그 벅찬 해방의 감격이 막 맑고 밝은 희망으로 나부끼던 싱그러운 섬마을 마다 느닷없이 불을 싸지르고 집중사격으로 쓰러진 사람 사람들 자지러지던 어린 것은 시끄럽다고 쏴버리고 뭔짓이냐 이놈들아 뭔짓이냐 이놈들아 울부짓던 어머니는 첩자라고 갈겨버리고 그 범죄가 질서가 되고 역사가 되어 온 치욕 통곡마저 반역이 되던 세월 죽고 나서도 죽지 못한 원한이
마치 모래밭에 떠밀린 미역쪼가리마냥 몸부림쳐 일으킨 샛바람이여 이제는 몰아쳐 이제는 몰아쳐 저 반역의 역사를 발칵 뒤집어엎어라.
오늘도 흰구름이고 껌뻑이는 한라여 그때 그 찢겨진 참해방의 깃발 하늘 높이 하늘 높이 나부끼시라. 그날 그 피눈물의 싸움은 저만치 앞서가는 인류의 영원한 길라잡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