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민예총을 후원하는 일일 맛집이 지난 25일 인사동 코트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강욱천씨가 운영을 총괄한 이번 후원 모임에는 류연복씨의 서예퍼포먼스를 비롯하여

김민정, 송희태, 이광석, 손현숙, 송병휘, 레드로우, 고이, 박인호, 라오니엘 등 많은 분의 공연이 이어졌다.

 

늦게 들려 류연복씨 서예 퍼포먼스는 보지 못했으나

장경호, 곽대원, 김이하, 임동은씨 등 반가운 분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대표적 예술단체인 한국민예총이 아직도 보금자리가 없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셋방살이를 한다는 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정부의 지원 없이 가난한 예술인의 힘으로 단체를 이끌어 가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자를 내건 단체지만,

최소한 일할 수 있는 공간은 정부에서 도와주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한국민예총의 재기를 기원한다.

 

사진, 글 / 조문호

 

인터넷에서 스크랩한 사진
인터넷에서 스크랩한 사진

 

 

녹번동에서 동자동 갈 때는 안국역에서 내려 인사동 거리를 지나쳐 종각역에서 갈아탄다.

빨리 가는 코스도 있지만, 인사동 들리는 재미가 좋아서다.

 

일주일에 한 번은 별 볼일 없이 인사동 길을 걷게 되는데,

더러는 좋은 전시도 보지만, 반가운 분도 만날 수도 있어 도랑치고 게 잡는 일이다.

 

지난 월요일은 작심하고 볼만한 전람회를 찾아 나섰다.

제일 먼저 들린 곳이 나무아트에서 열리는 원치용의 길 건너기였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전시장에 올라가니, 문명 비판적인 작품들이 더 숨 막히게 한다.

 

드로잉 방식으로 그린 원치용의 화법도 독특했다.

철로에 코뿔소가 있거나 고속도로에 오리가 방황하는 

현대 문명에 의한 반생명적 개발행위를 비판하고 있었다.

 

눈앞에 다가온 재앙에 대한 일종의 경종이었다.

 

두 번째 들린 곳은 인사아트센터 지하 제주갤러리에서 열리는

4.3미술아카이브 기획전 바라 이었다.

 

4,3과 관련된 전시로는 이달 초 인사아트프라자에서 열렸던,

동백이 피엄수다에 이은 두번째 전시로 탐라미술인협회에서 주최했다.

 

참여작가로는 고길천, 고혁진, 김수범, 박경훈, 양미경, 오석훈,

이경재, 이명복, 정용성씨 등 아홉 명이었다.

 

4,3의 아픔을 상징한 작품들이 걸린 전시장 분위기가 숙연감을 주었다.

그 가운데 이명복 작품 광란의 기억이 있었다.

이승만 도당의 본색과 악질 패거리 만행에 치를 떨었다.

 

지난 달 세상을 떠난 미술평론가 성완경선생의 글도 반가웠다.

 

세 번째는 한국펜화가협회전이 열리는 '인사아트프라자'로 갔는데,

관람객 없는 다른 전시장과 달리 관람객이 몇 있었다.

 

평소 회원전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지만,

지난해 많은 초상을 그려 보여준 임동은씨 작품이 기억나서다.

  

이번에는 사람이 아니라 군침 도는 문어 한 마리가 꿈틀대며 글자를 흘리고 있었다.

내 이름이 문호라 그런지, 문어가 남 같지 않더라.

 

네 번째는 김명식씨의 ‘East side story’가 열리는 선갤러리에 들렸다.

 

이분은 동아대에서 오래동안 교편잡던 분인데,

20여년 전부터 ‘East Side Story’연작으로 주목받은 화가다.

 

비슷한 집들이 적당하게 배치된 그림들은 주택단지의 평면도를 연상시키는데,

벗겨질 듯 연하게 묻은 물감 자욱들이 묘한 여운을 남긴다.

 

전시제목 ‘이스트 사이드 스토리’란

"아름다운 꿈을 꾸는 사람들의 공동체 이야기를 뜻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집 배열이 새마을 운동 같은 느낌도 난다.

 

담백한 구도와 풍부한 색감을 빚어낸 칼 질의

민감한 리듬성은 설렘의 활력소를 만들어낸다.

색으로 모인 집들의 조화와 여백이 따스하고 행복한 느낌을 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김이하 시인의 홍제천 사진전’이 열리는 ‘다섯시’에 갔다.

김교서 시인의 비득치에 가면출판기념회도 함께 했다. 

 

김이하 시인은 오랫동안 사람과 홍제천을 기록해 왔다.

 

지난해의 사람에 이어 두 번째 보여 준 홍제천’은, 결국 사람과 자연은 하나라는 것일게다. 

사람을 좋아하고 자연 생태를 사랑하는 한 작가의 일상적 기록이고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다.

 

작가가 오랜 세월 찍어 온 사람과 마찬가지로

어떤 목적에 의한 기록이라기보다

좋아하는 자연환경과 지속적으로 대화하며 소통하는 것이다.

 

홍제천에 서식하는 청동오리나 왜가리, 해오라기 같은

작은 몸짓들을 살피며 함께 정 나누어 온 것이다.

 

아직 서울이 살아 있다는 것에 위안하며...

 

사진전과 함께 김교서 시인의 비득치에 가면’(영화나무) 출판기념회도 있었다.

 

40여 년 전 등단한 이래 처음으로 시집을 냈다는 김교서의 시는

시인 모습이나 이력처럼 갯벌처럼 끈적거렸다.

 

이 시집은 편향된 사회에 대한 그의 편향된 분노이자

음습하게 가려진 그곳을 되비추는 거울이다고 김이하시인이 적고 있다.

 

전시장에는 김이하. 김교서 시인이 자리를 지켰고,

연극배우 이명희, 시인 이승철, 홍순창, 이동엽, 강경석씨 등

여러 명이 축하 술자리를 만들었다.

 

술자리 피해 콜라를 방패막이로 앉았는데,

이명희씨는 '스마트협동조합' 스튜디오에서 촬영했다는

일인극을 핸드폰으로 보여주었다.

 

앤지 한 번 안 내고 단숨에 촬영했다는 동영상인데,

배우 이명희의 절규가 처절하도록 슬프게 만들었다.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순정의 드라마가 아니겠는가? 

'광고로 사용하면 대박나겠다'며 바람도 넣었다.

 

               

다섯시에서 열린 김이하의 홍제천을 마지막으로 서울역 가는 지하철을 탔다.

 

원치용의 길 건너기 한국펜화가협전은 지난 화요일로 전시가 끝나버렸다.

그러나 제주갤러리’에서 열리는 4.3미술아카이브 바라   5 9일까지 열린다.

선갤러리에서 열리는 김명식 ‘East side story’ 426일까지고,

다섯시의 김이하 홍제천 4월30일까지 열린다.

 

이 봄이 가기 전에 인사동에서 봄바람 나자.

 

사진,  / 조문호

 

아래는 인사아트센터 제주갤러리에서 열리는 4.3 미술아카이브 '바라-봄' 전시작입니다

 

 

지난 30일은 예술인 '스마트협동조합' 정기총회 날이었다.

대의원은 아니지만, 술 냄새를 맡아 달라 붙은 것이다.

 

그날이 바로 코로나 감옥에서 해방된 날이 아니던가?

총회 끝날 시간에 맞추어 뒤풀이 집에 갔더니, 반가운 분들이 많았다.

 

서인형 이사장, 황경하 사무국장, 박권주, 김성은, 송수아씨 등

상근하는 분 외에도 최석태, 장경호, 김이하, 정영신, 민정기,

박태종, 이미경, 김은엽, 이영경, 이명신씨 등 많은 분 들이

총회를 끝내고 여기저기 모여 있었다.

 

다들 몸 사리는 코로나 시국임에도 40명이나 참석했다고 한다.

전체 조합원 십 분의 일이 참석했다면 많이 나온 편이다.

 

스마트협동조합은 창립 삼 년 만에 괄목할만한 성장을 했다.

음악연습실 운영 등 사업도 확대되었지만, 조합원을 위해 많은 일을 했다.

나 역시 가난한 예술인들이 받을 수 있는 여러 지원을 받았는데,

코로나로 힘 들어 하는 가난한 예술인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여태 예총이나 민예총’같은 예술단체 어디에서도 회원들 생계를 위해

도움 준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도움은커녕 회원들 갉아먹는 구조가 아니던가?

 

빈손으로 시작한 '스마트협동조합'이 불과 삼 년 만에 자리 잡은 것은

조합원들의 협력도 따랐지만, 서인형 이사장의 기획력과

황경하 국장의 추진력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두 사람은 찰떡궁합이었다.

 

올해는 음반 사업에 이어 출판 사업도 시작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스마트협동조합' 인터넷신문도 창간 준비 중이란다.

 성장하는 '스마트협동조합'을 보니 마음이 든든했다.

 

아직 가입하지 못한 예술가들도 참여하여 함께 만들어 가자.

예술인들의 권익을 지키려면 힘을 모아야 한다.

 

이제 가난한 예술가들이 의지할 곳이 생겼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더구나 오늘 쪽방 격리에서 해방된 날인데, 이게 얼마 만이던가?

 

귀는 어두운데다 목소리까지 막혀 통하지도 않지만,

못난 사람은 보기만 해도 기분 좋더라.

 

그런데 소주가 달달한 게 술술 넘어갔다.

술잔 주고받을 것도 없이 혼자 홀짝홀짝 마시며

사진 찍고 놀다 결국 맛이 가고 말았다.

 

성악하는 민정기, 박태종씨는 쩌렁쩌렁 좌중을 압도했고,

김이하 시인은 구수하게 축가를 불러 박수갈채를 받는 판에

감히 어찌 끼어들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더구나 서너 개 남은 이빨 사이로 튜브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목구멍은 막혀 파리 방귀 소리보다 작은 주제에 말이다.

술이 취하면 간이 커진다는 말이 딱 맞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이란 구겨진 첫 구절부터 슬프게 만들었다.

아마 그건 노래가 아니라 벙어리 몸부림에 가깝다.

조지 피면 가치 웃고 조지 지면 가치 울던, 알뜰한 그 맹서에 봄날은 간다

마지막 대목에서 결국 눈물을 짤아내고 말았다.

 

그 이쁜 처자들 많은 자리에서, 팔릴것도 없는 쪽을 다 판 것이다.

그렇게, 그렇게 오바 하지 않으려고 다짐에 다짐을 해도 술만 취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지 버릇 개 못 준다. 아마 죽어야 철들 것 같다.

 

사진, / 조문호

 

 

 

 

지난 주말엔 아무런 계획도 없이 무작정 인사동에 나갔다.

한산했던 인사동 거리가 주말이라 그런지 제법 많은 사람이 나왔더라.

 

술 마시기는 좀 이른 것 같아 '나무화랑'부터 올라갔다.

전시장엔 용해숙씨의 '유토피아 삼경'이 열리고 있었는데,

작가를 비롯하여 최석태, 김구, 김이하 시인등 여러명이 있었다.

 

전시는 특정 장소를 입체 거울을 통해 재구성한 사진전인데,

일곱 개의 삼각 피라미드로 구성된 입체 거울이 전시장 한 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보기로는 거울 같지만, 잘 가공된 스테인리스였다.

 

가로 3m,·세로 1m의 대형 설치물이라 전시장에 올릴 때 고생했겠더라.

전시하는 사진이 각진 거울의 반사를 통해 태어났으니, 설치물 자체가 작품의 모태인 셈이다.

 

작가는 최석태씨에게 작업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었으나,

귀가 어두워 무슨 말인지를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거울에 반사된 다각도의 이미지가 장소의 고유성을 허문다는 것 같았다.

 

작가 용해숙씨를 처음 보았는데, 대단한 열정을 가진 여장부란 생각이 들었다.

그 끝이 어디로 향할지는 모르지만, 주목해 볼 작가로 생각되었다.

 

법당 단청을 거울에 반영시켜 유토피아가 존재하는 공간으로 재구성했는데,

공간을 바라보는 인간 중심적 관점을 다시 생각해보자는 이야기 같았다.

 

거울에 비친 허상으로 기록의 매개인 사진마저 무위라는 걸까?

사진이 폭 넓게 활용되며 사진 본연의 목적에서 점차 멀어 간다는 씁씁한 생각을 하며 내려왔다.

 

벽치기 골목의 ‘유목민’은 초저녁인데도 손님이 많아 앉을 자리가 없었다.

좀 쌀쌀했지만, 담배 피우기 좋은 골목에 상을 차렸다.

 

안쪽에서 마시던 김태영, 이승철 시인, 전상기 문학평론가 등

몇몇 분들이 담배 피우러 나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최석태, 김구, 김이하씨도 전시장에서 왔으나 자리가 없어 ‘사랑채’로 간다고 했다.

그런데, 김태영씨가 ‘이즈’에서 그림전시를 한다는 소식을 주었다.

시간이 늦어 볼 수는 없었으나, 전시 리프렛과 새로 펴낸 시집

‘버드나무 버드나무 흰 그림자’ 한 권을 선물 받았다.

 

그 자리에서 시집은 읽을 수 없었으나, 리프렛에 실린 그림은 볼수 있었다.

그림에 환영어린 몸짓 같은 것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흐릿한 붓질에서 인간의 불안감이나 삶에 대한 허무감 같은 것도 고개 내밀었다.

 

그 날은 ‘유목민’과 ‘사랑채’를 넘나들며 마실 수밖에 없었는데,

뒤늦게는 '사랑채'에 안원규씨와 우문명씨도 나타났다.

여기저기 옮겨가며 마셔 그런지 주량을 한참 초과해 버렸다.

 

필름이 끊겨 어떻게 돌아 왔는지도 알 수 없었다.

카메라에 찍힌 사진을 보며 그 날 방기식씨가 있었다는 것도 알았다.

그 와중에 선물 받은 김태영씨 시집을 흘리지 않은 게 신통했다.

 

속은 쓰렸지만, 화장실에 들어가 시집부터 읽었다.

김태영씨 그림과 시의 연관성이 궁금했는데, 공통점이 보였다.

 

 

첫장에 실린 ‘만종’이란 제목의 시는 이러했다.

 

“묻지도 않고

스포츠로 민 머리

손수 감겨주고

뽀드득,

물기를 훔친다.“

 

‘잠꼬대’란 시는 더 난해했다.

“비단길 흰 허벅살 한 입의 사과즙”

 

‘즉물성의 감각, 즉물성의 형이상학’이란 제목의 발문을 쓴 문학평론가 전상기씨는 김태영시의 불친절함을 이렇게 말했다. “김춘수의 무의미시나 전봉건의 초현실주의시, 아니면 김종삼의 음악을 들으면서 떠오르는 감흥을 시화한 방식에 견준다면 어떨까. 예의 없고 불친절하며 뜬금없기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이 시를 보노라면 김태영의 시가 어떨지 감이 올 것이라“ 했다. 그리고 ‘그의 시는 시적 화자의 시작 당시의 생각과 감성을 드러내는데 집중한다고 했다. 즉흥성과 즉물성의 감각을 이미지화하는 것, 다시 말하면 거기에 집중하는 미세하고 예리한 감각의 움직임을 포착해내는 것이 김태영의 시작 목표라고 적고 있다.

 

시어가 잠꼬대 같기도 하고, 아니면 단어를 나열시킨 무슨 암호 같았다.

김태영의 시는 세심한 독해력이 요구되었다,

 

‘고아’

 

​엄마는 어쩌자고

뻐꾸기 둥지였을까

나는 삐뚤빼뚤

도대체 천사는

언제까지나 유구할까

 

임동확 시인은 김태영의 시집에 ‘모순과 소퉁의 시학’이라는 추천사를 썼고,

홍일선 시인은 “천길 나락 ‘절벽’ 속에 피워낸 만다라 시편”이라는 글을 썼다.

요즘 작품들은 너무 난해하다. 

 

사진, 글 / 조문호

 

 
 

 

2021.9.27

사진 찍는 일보다 사진을 떠벌리는 일이 더 힘들다.

두 번 다시 전시는 안 하겠다고 맹세를 했건만,

어렵사리 책 만들어 준 출판사를 어찌 나 몰라라 하겠는가?

전시를 해야 책이라도 한 권 팔 것 아니겠는가?

 

며칠동안 정영신의 ‘어머니의 땅’이 열리는 인사동 ‘나무아트’와

‘노숙인, 길에서 살다’ 현수막 전을 하는 ‘유목민’ 담벼락을 오가느라 곤죽이 되었다.

허리 협착증이 도져 4층까지 오르내린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아직 전시가 열흘이나 남았는데 벌써 빌빌거려 걱정이 태산 같다.

 

술 마시기 딱 좋은 술집 앞에 전을 펼쳐 놓았으니

어찌, 참새가 방앗간을 못 본 척하겠는가?

전시가 시작된 첫날부터 고주망태가 되었으니 그다음 날은 보나 마나다.

속이 쓰려 죽을 지경이었지만 어쩌랴!

 

골목 전시장엔 퍼져 앉기만 하면 술을 안 마실 수가 없었다.

난, 알콜 중독자는 아니라고 큰소리치지만

남이 마시는 술을 못 본채하지 못하니 장담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당장은 좋아도 그다음 날은 더 죽어나지만 어짜겠는가?

 

지난 24일도 서둘러 나갔으나 손님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모처럼 인사동 나들이 하신 신신자씨는 ‘나무 아트’에서 기다리고,

이강산씨는 ‘유목민’ 골목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다들 멀리서 오신 분들인데,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그 날은 이강산씨를 비롯하여 신신자, 권 홍, 김이하,

장우원, 이영숙, 박옥수, 한공주, 안현수, 정성진, 오진향,

음현정, 이현정, 정재원, 임춘희씨가 찾아 주셨다.

양쪽을 오가느라 길이 엇갈려 이민씨와 김창주씨는 보지도 못했다.

 

다들 마스크를 써 알아보기도 힘들지만,

페이스북 친구들은 내가 누구라고 밝히기 전에는 알 수가 없다.

어떤 분은 적어 놓은 방명록을 보고 뒤늦게 결례한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둘째 날은 첫 날 마신 후유증으로 아예 골목 전시장엔 앉지를 않았다.

김이하씨 일행은 일찍부터 ‘유목민’에 자리 잡은 걸 알았지만 갈 수가 없었다.

앉기만 하면 술잔에 손이 갈 것이고, 한 잔만 마셔도 발동이 걸리기 때문이다.

 

둘째 날은 술 한잔 마시지 않고 잘 참아냈으나, 다음 날은 온종일 마셔야 했다.

토요일은 ‘노숙인, 길에서 살다’ 사인회가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일찍부터 ‘이숲’출판사 김문영대표와 이나무씨가 책을 가져오셨다.

 

그날은 양산에서 올라 온 공윤희씨를 비롯하여 박찬원, 강경구, 김남진, 김영호,

양재문, 노광래, 김명성, 이 성, 오현경, 이한복, 나매례, 이재민, 유순영, 온새미,

정세학, 김상배, 이오연, 홍현구, 박상문, 홍유경씨 등 많은 분이 찾아 주셨고,

부산에서 상경한 정남준씨를 비롯하여 손은영, 최인기, 김수길, 이봉희씨는

유목민 골목에서 일찍부터 자리 잡았다.

 

전강호씨와 시작한 술자리는 사인회가 끝나는 시간까지 이어졌으니

어찌 취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찝쩍거려 실수라도 안 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낼 수가 없었다.

저녁 늦게는 김상현씨 초대 파티가 약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오후 일곱 시 무렵 정영신, 김명성씨와 함께 이태원 ‘뮤아트’로 찾아갔다.

재즈가 차분하게 분위기를 가라앉힌 ‘뮤아트’에는 김상현, 임성익, 하양수씨가 있었다.

그런데, 분위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광어회와 전어회를 준비해 두었더라.

너무 과분한 접대에 미안했으나 어쩌겠는가?

 

취기에 고마운 마음도 감추고 축하 음악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 날 초빙한 연주팀은 처음 본 젊은이었다.

보컬에 유혜린, 드럼에 김소희, 콘트라베이스에 김민욱, 피아노에 박종현씨로,

요즘 젊은이들이 너무 잘하더라.

 

잘 모르는 곡이지만, 유혜린씨의 음색에 깜짝 놀란 것이다.

앳된 소녀의 목에서 어쩌면 저렇게 농익은 소리가 나는지...

마치 수십 년 동안 알콜과 담배에 절은 베테랑 재즈 가수의 목소리 같았다.

아무튼, 축하의 자리를 만들어 준 김상현씨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내일의 전쟁 준비를 위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천지신명님이시여~

제발 전시가 끝나는 날까지라도 목숨을 보존하여 주십시오.”

 

사진, 글 / 조문호

 

 

 



김이하 시인이 만난 사람들이 종로2가 YMCA 골목의 와인주막에 걸렸다.

실제인물이 아니라 초상을 소환한 사진전이다.

지난 5월1일 다섯시에 ‘다섯시’에서 개막한다는 페이스북 소개 글을 보고 대뜸 가겠다고 댓글을 달았다.

요즘 전시장에 안 가기로 다짐했지만, 스스로 자청한 것이다.

전시될 작품은 한 장도 소개되지 않았지만, 사진이 문제가 아니라 그의 사진에 대한 열정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를 볼 때마다 시인이며 사진가였던 박용수선생이 생각났다.




지금은 사진을 그만두고 ‘우리 말 갈래 사전’을 펴내는 등 우리말 연구에 빠져 있으나,

80년대 중반 민주화 시위현장에서 종종 만난 분이었다.

난청으로 소통은 잘 안 되었으나, 현장마다 찾아다니는 그 열정과 꾸준함을 존경해서다.

민주화 투쟁사뿐 아니라 문인들 행사기록도 빠지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박선생의 작업을 이은 분이 바로 김이하시인인 것이다.




김이하 시인을 알게 된지는 몇 년 되지 않았다.

광화문광장이나 인사동 지인들의 개막식에 어김없이 나타나 기록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는데,

만날 때 마다 별 말없이 빙그레 웃는 모습이 천하호인이었다.

난, ‘예술입네’ 하며 유별난 사진으로 폼 잡는 사진보다 지속적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더 중요시한다.

다들 별 것 아닌 것으로 터부시하지만, 그 기록들은 세월이 지난 후에는 가치를 발하기 때문이다.




사진계 행사 기록에 곽명우씨가 있다면 문단의 기록에는 김이하 시인이 지키고 있는 것이다.

요즘에는 문단의 기록 뿐 아니라 화가나 지인들 행사는 물론, 생태사진까지 찍는 등 점차 보폭을 넓히고 있으나,

그보다는 문인들 행사에 더 집중하고, 전시도 문인들 사진으로 압축했으면 돋보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기록은 꾸준하고 집약될수록 좋은 것은 두 말하면 입 아프기 때문이다. 



그동안 쪽방에서 꼼짝 안 하고 두문불출했다.

마침 쪽방상담소에서 ‘코로나19’ 위문품으로 일회용 죽을 열 개씩 배급해 주었는데, 외출할 필요가 없었다.

두 끼는 죽으로, 한 끼는 라면으로 때우면 닷새는 거뜬히 버틸 수 있는 편리한 식량이었다.

코로나 전염병 때문인지, 혼자 놀며 개기는 것에 재미를 붙여서다.



카메라가 말을 안 들어 정영신씨 카메라를 다시 빌려, 본인이 못 찍을 개막식 기록이나 해 줄 작정으로 갔는데,

제 버릇 개 못 주듯, 전시작가가 손님 맞으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아! 손님들이 너무 많았다. 이 얼마 만인가?

코로나 때문에 오랫동안 전시 개막식이나 지인들 모임도 없었거니와,

전시장에 들려도 조용할 때 갔기 때문에 간만에 많은 분을 한꺼번에 만난 것이다.

입구는 최명철씨가 지켜 앉았고, 김 구, 최석태, 김효성, 도천수, 김명지, 이명옥, 장경호,임경일,

노광래, 정영철, 조원균, 안완규, 윤일균씨를 비롯한 잘 모르는 분들이 가득 자리를 메웠고,

이정환, 권양수, 박윤호, 성유나, 이미리씨 등 사진가도 여럿 있었다.




반갑기는 했으나, 사회적 거리두기에 익숙해 덜컥 겁도 났다.

이제 한 풀 꺾이기는 했지만, 혹시 잘 못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남아서다.

사진가들 자리에 합석하여 소주 한 잔 얻어 마셨는데, 정영철씨는 멧돼지 쓸개주라며 한 잔 따라주었다.



그러나 정작 보아야 할 전시작을 보지 못한 것은 손님 사이로 관람하기가 편치 않아서다,

한 달 동안 전시되는 사진전이라 조용할 때 다시 볼 작정을 했는데, 신단수씨가 “작품이 어떠냐?”며 자꾸 물어왔다.

사실, 내 사진도 어디 걸렸다고 했으나, 부산한 술집 개막식에서 찾아보기란 용이하지 않았다.




뒤늦게 페북에 올라 온 배경 속의 작품을 몇점 보았는데, 김시인이 만난 분들의 초상사진 같았다.

주로 스냅으로 인물을 크로즈 업 한 사진인데, 사진 중에 제일 어려운 사진이 초상사진이다.

찍히는 사람의 개성이나 내면을 드러내기도 어렵지만, 일단은 작가가 흡족하기 전에 본인 마음에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끔 작가들의 프로필 사진을 부탁받으면 엄청 신경 쓰는 편인데, 스냅으로 포착한 초상이라 기대도 되었다.




그나저나, 액자까지 제작된 작품이라 사진이 팔려야 할 텐데, 걱정스러웠다.

여력 있는 분들이야 사겠지만, 이승철씨가 페북에 올린 명단을 보니, 돌아가셨거나 개털도 많았기 때문이다.

이 어려운 시기에 손해 보지 않는 전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할 뿐이다.




나온 김에 인사동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분이 있어, 다시 올 작정으로 먼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오는 31일까지 열리는 시인의 사진전을 다시 한 번 축하한다.

사진, 글 / 조문호

































자리에 누워 뒤척인 긴 시간의 피로를 걷어내려 촛불 아닌 카메라를 잡았다.
검찰개혁 촛불 문화제’가 열린 지난 5일 오후3시 무렵, 지하철 서초역에 도착했다.




혼잡할 것 같아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나왔으나, 주변은 사람들로 꽉 찼다,
한마디로 인산인해였다.

또 하나 반가운 것은 태극기부대가 남용해 혐오감을 느껴 온 태극기를 되찾아 왔다는 것이다.




로터리를 중앙으로 사방에 설치된 대형스크린에서 전체 장면 장면을 볼 수 있어
어디든 자리만 잡으면 되지만, 한 자리에 머물 수는 없었다.
사진도 찍어야하지만 협력할 ‘광화문미술행동’ 팀도 찿아야 하고, 만나야 할 사람도 있었다,
사람에 밀려다니느라 자리 옮기기가 싶지 않았다.




한 시간 정도를 헤매다 간신히 판화를 찍고 있는 김구씨를 찾았다.
판화 찍어 시민들에게 나누어 주느라 정신없었다.
한 쪽에 보이는 ‘광화문미술행동’ 깃발따라 들어가니, 서예 퍼포먼스는 이미 끝난 후였다.

강병인, 정고암선생께서 글을 쓴 모양인데, 주위에선 풍물패가 신명을 지피고 있었다.




그런데, 글 써놓은 현수막에 드러누워 악을 써는 여자가 있었다.
진행요원들이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았는데, 의도적으로 손대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아마 지난번 광화문 태극기 집회의 여기자 성추행 비판을 염두에 둔 해프닝인 것 같았다.
경찰도 손댈 수 없어 결국 여경들을 불러와 끌어냈다.




그 곳에서 반가운 분들을 줄줄이 만났다.
김진하씨를 비롯하여, 김진열. 류연복, 박윤호, 정영신, 이재민, 장경호씨를 현장에서 만났고,
또 다른 곳을 지나다 김재홍씨와 손기환씨를 만났다. 뒤늦게는 대전에서 온 이석필씨도 만났다.
페북에서 만나자고 한 기국서씨와 신윤택씨는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는데,
사실 그 곳에서 사람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마침 사진가 하형우씨를 만나 김문호씨와 합류하게 되었는데,
이수철, 정영신, 박윤호씨 등 사진가 여럿명과 늦은 점심 겸 이른 저녁을 먹었다.
반주까지 한 잔 곁들여...



나오다보니 편의점 앞 탁자에 반가운 분이 앉아 있었다.
강원도 양양에서 온 정덕수시인이 예쁜 아가씨를 데리고 있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류연복, 김이하, 김진열씨도 찾아왔다.



시골에서 온 정덕수씨가 편의점에서 막걸리를 사오기에
“오늘 집회서 받은 일당 받은 것 다 쓰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씩 웃는다.
일당은 커녕, 일 제쳐두고 찿아 오느라 손해가 이만저만 아니다.
오로지 개검들 조지고 싶은 충정 하나로 돈 써가며 몰려 온 사람들이니까...




검찰개혁을 외치는 함성이 서초동 일대를 뒤 덮었다.
그 함성에 막힌 가슴이 뻥 뚫리며, 기가 살아나는 것 같았다.
작은 기라도 보태려 나왔으나, 오히려 기를 받아 힘이 흘러 넘쳤다.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의 세가 하늘을 찌르니, 어찌 힘이 솟지 않겠는가?




사실, 검찰 개혁의 필요성은 대부분 공감하지만, 조국장관 수호에는 이견도 있다.
그분들의 말도 일리는 있지만,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칸 태울 수는 없지 않은가?
거리에 나온 많은 사람들은 정치검찰로 목숨을 잃은 노무현 대통령을 상기시켰다.

조국장관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지켜보며, 그 때를 떠 올린 것이다. 
군중들의 손에 잡힌 피켓이나 외치는 구호가 잘 말해주었다.


‘이제는 울지 말자. 이번엔 지켜내자. 우리의 사명이다’



대표적인 구호가 ‘검찰 개혁 조국 수호’, ‘조국 수호 검찰 개혁’로 두 사안은 붙어 다녔다.
무대에는 소설가 이외수씨를 비롯하여 많은 시민들이 차례대로 나와 검찰개혁의 당위성을 말했다.

신나는 공연도 이어졌는데, 그 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지만 탈 없이 잘 어울렸다.
늦은 시간까지 불편을 감수하고 질서정연하게 자리를 지켜 준 대단한 국민이었다.




지난 10월3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태국기 집회와, 5일 서초동에서 열린 촛불 집회는 다른 점이 너무 많았다.
참여 인원수도 서초동이 더 많았지만, 그런 숫자놀음은 중요하지 않다.




일단 자유한국당에서 동원한 집회와 자발적인 집회라는 차이점이 분명하고,
정당이 표면에 나선 것과 시민들이 주체가 된 것이 달랐다.
그리고 한 쪽에서는 폭력에 의한 분노가 일었고, 한 쪽은 평화로운 놀이마당이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내 세우는 논리나 어휘의 차원이 달랐다.
태극기부대에서 내세운 구호이긴 하지만 “문재인을 단두대로, 박근혜를 청와대로”란 현수막도 있었다.
이런 저질의 구호는 자유한국당 얼굴과 바로 연결된다. 그래서 태극기부대와는 거리를 두지만...
허구한 날 빨갱이 타령으로 덕 보더니, 저들 하는 짓이 빨갱이와 다를 게 뭐 있는가?
괜히 맛 불 놓는다고 돈만 쏟아 붙지만 헛짓 그만해라. “국 쏟고 뭐 디이는 격이다“




이제 보수정당과 연대한 정치검찰과 부패언론의 더러운 권력구조에 종지부를 찍어야한다.

긴 세월 일제에 빌붙어 권력을 휘두르다, 그 이후는 양놈에 달라붙어 죄 없는 국민을 빨갱이로 몰아 얼마나 많이 죽였는가?
제발 후손을 위해서라도 각성하라. 꼴통보수 정치인이건, 부패 검찰이건 새로운 각오로 임해야 할 것이다.



사진, 글 / 조문호






































































광화문 국민문화제가 열린 4월7일의 광화문광장에는 이른 시간부터 많은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4,3깃발제작소에서는 깃발을 만들며, 춤꾼 양혜경씨의 넋전 굿이 열렸고,

또 한 켠에는 성효숙씨의 '붉은 꽃' 퍼포먼스를 준비하고 있었다.



수 많은 부스에서 4,3항쟁에 대한 다양한 행사를 벌였으나, 4,3에 관한 책을 파는 부스도 많았다. 

몇일 전 출판된 4,3의 주역 김달삼을 비롯한 학살의 실체를 엮은 소설가 강기희씨의 ’위험한 특종‘도 선보였다.



 

그런데, 그 날 제주 4,3에서 학살된 원혼을 기리는 추모장에 난데없는 태극기부대가 등장하여 주변을 소란스럽게 했다.

행사부스를 사이에 두고 판을 벌이는 형태에서 좌우의 갈등이 7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바뀌지 않은 것 같았다.

4,3의 원혼들이 얼마나 통탄했겠는가?




이날 행사장에는 배인석 민예총 사무총장을 비롯하여 유순예, 양혜경, 성효숙, 안해룡, 마문호,

양 동, 양시영, 김이하, 마기철씨 등 반가운 분들의 모습도 보였다.

사진, 글 / 조문호






아, 샛바람이여~

아, 그때 그 벅찬 해방의 감격이 막
맑고 밝은 희망으로 나부끼던 싱그러운 섬마을 마다
느닷없이 불을 싸지르고 집중사격으로
쓰러진 사람 사람들
자지러지던 어린 것은 시끄럽다고 쏴버리고
뭔짓이냐 이놈들아 뭔짓이냐 이놈들아 울부짓던
어머니는 첩자라고 갈겨버리고
그 범죄가 질서가 되고 역사가 되어 온 치욕
통곡마저 반역이 되던 세월
죽고 나서도 죽지 못한 원한이

마치 모래밭에 떠밀린 미역쪼가리마냥
몸부림쳐 일으킨 샛바람이여
이제는 몰아쳐 이제는 몰아쳐
저 반역의 역사를 발칵 뒤집어엎어라.

오늘도 흰구름이고 껌뻑이는 한라여
그때 그 찢겨진 참해방의 깃발
하늘 높이 하늘 높이 나부끼시라.
그날 그 피눈물의 싸움은
저만치 앞서가는 인류의 영원한 길라잡이라.

아, 천년만년 한결같은 변혁의 샛바람이여
이어차아 쳐라쳐라 이어차아 쳐라쳐라
이어~차 이어~차 이어~차 이어~차

제주43항쟁 70주년에 부쳐
백기완 /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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