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는 오동나무나 대나무 지팡이를 짚어야 한다. 생전의 망자가 소갈머리 없는 상주를 키우느라 속이 썩어 텅 비었기에 속이 빈 나무를 짚는 거다.
인사동 찻집 ‘귀천’의 주인 목순옥 여사의 빈소. 자손이 없어 친정 조카들과 ‘귀천’의 단골 지인이 상주였다.
발인을 앞둔 8월 28일 밤. 모인 사람 모두 상장(喪杖)을 짚는 셈으로 오동나무로 만든 장구 반주에 대나무로 만든 대금 소리를 내며 판을 시작했다.

시인이자 기인(奇人)이었던 천상병의 배우자 겸 보호자였던 목순옥 여사. 그 텅 빈 삶을 기리는 듯 대나무 대롱을 빠져 나온 공명이 빈속에 삼킨 술처럼 번졌다.
이윽고 아쟁 선율이 가세하자 춤꾼 김운선이 살풀이 수건을 들었다. 서천서역의 꽃밭으로 가는 흰 길을 내듯 긴 수건으로 허공중천을 헤쳤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가수 장사익이 일어나 ‘봄날은 간다’를 부르는데, 한 음도 그냥 넘기지 않았다.
판소리처럼 삭여내다 목젖이 쏟아져 나올 것 같은 고음을 터트리자 숙연하던 장내에 추임새가 퍼졌다.

전남 진도의 ‘다시래기’ 같았다. ‘여럿이 즐긴다’는 뜻으로 ‘다시락(多侍樂)’이라고도 하는데, 상가에 풍악을 울려 웃음꽃을 피워 내는 풍습이다.
“그냥 보내드리기는 죄송해서”라는 말을 빌미로 종합병원 영안실에서 놀이판을 만들어 내는 이들이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 스스로의 표현을 빌리자면 ‘문화의 유목민’인데, 유서 깊은 풍류의 결사였다.

6·25 전쟁 후 명동과 충무로를 중심으로 모였던 문화예술인의 경계 없는 모임이 전신이다. 이후 그곳이 상업지구로 바뀌자 1960년대 중반 종로 관철동 쪽을 거쳐 80년대 초반에 길 하나 건너 인사동에 정착했다.
85년 문을 연 목 여사의 ‘귀천’은 노독(路毒)에 찬 유목민의 오아시스였다. 놀이판을 주선한 김명성씨는 “80년대 인사동엔 현찰이 없었다”고 했다. 대신 밥집과 술집엔 외상장부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한다.
‘문화의 유목민’은 정신이 자유로웠지만 경제는 자유롭지 못했던 거다. 그러면 형편이 되는 누군가가 알아서 갚아 주었다. 그 역시 ‘아라재콜렉션’을 운영하며 30년간 인사동의 밥값·술값을 댄 숨은 손이었다.
지난해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창예헌(創藝軒)’으로 개칭했는데, 떠밀려 대표가 되었다.

그의 청사진인즉, 명동에서 인사동까지 풍류의 이주를 주도한 민병산·박이엽·천상병 3인의 동상을 인사동 네거리에 세우고,
야간 전시와 심야 공연이 가능한 복합문화공간을 조성해 다시 풍류의 텃밭을 일구겠다는 거였다. 주말이면 내외국인 10만 명이 오가는 곳에 이렇다 할 게 없다는 것이다.

어제 오후 인사동에 나갔다. 한 달에 서너 번은 들르는데 갑자기 놀랐다. 대형 화장품 가게와 편의점이 곳곳에 들어서 있는 것이다.
그날 김명성씨가 중국인들이 인사동을 차이나타운으로 만들려 한다 해서 턱없이 웃었는데, 거리의 좌판은 중국 골동으로 가득했다.
가게 안의 우리 물건도 90%는 중국산이라 하니 이미 차이나타운이었다. 부지불식간 세계인이 걷고 싶은 특별한 거리가 별다를 바 없는 거리로 바뀌고 있었다.
진옥섭 KOUS 예술감독



(2010년 9월 10일자 중앙일보에 게재된 '노름마치' 진옥섭씨의 글입니다)

한국사진굿당"에서 지난 9월3일부터 5일까지 '놀자'모임을 가졌습니다.
홈페이지에만 올려 알렸는데, 회원10여명이 참여하여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 풀 꺾인 마지막 여름을 보냈는데, 모두가 떠나간 후에는 운해가 산구비 구비에서
노닐더니 갑자기 소낙비가 쏟아져 내렸습니다.

멀리서 '놀자'모임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같이 놀았던 사람들-
서울: 전활철, 장경호, 하태웅, 황정아, 한진희, 손성근, 김자영
인천: 김병주
마산: 변형주
창원; 김의권
김해: 정남규
정선, 사진굿당의 조문호, 정영신

 

 

 

 

 

 

 

 

 

 

 

 

 


귀천의 목순옥여사가 떠나가는 날에는 많은 비가 쏟아져
따라나선 추모객들을 곤혹스럽게 하였습니다.

오전9시에 장례식장을 출발한 운구행열은 인사동 '귀천'앞에 멈춰
노제를 지낸 후 의정부시립묘지로 향하였습니다.
새로히 준비된 의정부시립묘지에 천상병선생의 유해와 합장하였습니다.

천상에서 다시 만난 천선생님과 목여사님의 영면을 기원합니다

 

 

 

 

 

 

 

 

 

 

 

 

 

 

 

 

 

 

 

 


지난 8월 28일 오후9시부터 11시까지 강북 삼성병원 장례식장에서 목순옥여사를 추모하는 공연을 가졌습니다.
1부 배평모씨와 2부 진옥섭씨의 사회로 진행된 추모공연에는 춤꾼 김운선, 소리꾼 장사익씨를 비롯한 많은
지인들이 참여해 돌아가신 목순옥여사의 원혼을 달래며,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 했습니다.


 

 

 

 

 

 

 

 

 

 

 

 

 

 

 


신명덕씨의 '그 어떤 것' 목공예 전시에 여러분들을 초대합니다.
안국동 '담'갤러리(윤보선가옥 옆)에서 지난 8월18일부터 29일까지 열립니다.
나무들을 소박하게 다듬은 이번 전시에서 공통적으로 생각된 것은 작업공정이 아슬아슬했다는 느낌입니다.
예쁜 인형을 살짝 올려 놓으면 좋을듯한 조그만 선반, 작품을 보다 다리가 아프면 걸터 않아 쉴 수있는 나무둥지와 작은 의자들.
길 가운데 자리잡은 또 다른 전시관에는 노아의 방주를 연상케하는 나무 조각이 박제된 듯 달려있어 볼 것들이 많습니다.


 

 

 


도라지밭이 개망초 밭으로 변했다.

서울에 있는 날이 많다보니 잡초들이 제 세상을 만난 것이다.
제초제로 단숨에 박살낼 수도 있으나 누렇게 말라 죽어가는 꼴은 차마 보지 못하겠고,
자칫하면 좋아하는 봉선화, 채송화,코스모스도 함께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삼년 전 도라지를 심을 때부터 식용보다 관상용에 더 비중을 두었기에,
메밀꽃처럼 하얗게 무리 진 개망초 꽃이 그리 싫지는 않았다.
좀 더 기다리다 꽃이 질 무렵에나 뽑을 작정이었으나
‘빈집이나 게으른 집의 상징’이라는 아내 충고에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새벽부터 진종일 개망초를 뽑으며 아쉬움이 남아 기념사진까지 찍었다.
개망초 사이사이에 숨어있던 도라지꽃들이 수줍은 듯 얼굴을 내밀지만
풀숲을 이룬 개망초 꽃에 비할 바 아니었다.

오래전 처마 밑 전봇대 주위로 흙을 돋우어 조그만 동산을 만들었다.
그곳에 옮겨 심었던 야생화도 결코 잡초에 다름 아니다.
모두들 나름의 꽃을 피우지만 꽃의 생김에 따라 야생화와 잡초로 분류, 차별하는 것이다.
꽃은 꽃이지만 못생긴 죄로 죽임을 당하는 잡초 신세나,
푸대접 받는 사람 신세나 다를게 뭐 있는가?

개망초 꽃을 뽑으며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잡초처럼 누군가를 차별하지는 않았는지? 차별 받고 살지는 않았는지?..

 


 

 


고선례씨의 초대전이 6월 25일(금) 오후6시 유카리화랑에서 개최되었다.
'호랑이, 춘화를 보다'란 주제의 작품에서 미술평론가 곽대원씨는 "고선례의 지적호기심과
재미를 던져주는 이번 춘화전은 그동안 은밀하게 거래되며 소통되던 춘화를 공개적인 전시
장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작가는 용감하기까지 하다. 작가는 이 전시에서 춘화가 매우 건강한
그림이며, 미술시장의 새로운 장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전시장에서 열린 조촐한 오프닝 파티에는 작가 고선례씨 내외, 노광래씨 내외, 곽대원, 조문호
이종길, 전활철, 정동용, 편근희, 안영상씨 등이 참석하여 전시를 축하했다.
전시회는 7월 4일(일)까지 열리오니 많은 관람을 바랍니다.


 

 

 

 

 


서울필하모닉과 함께한 이경오 팝페라 콘서트가 지난 6월6일 오후7시30분부터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서울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주관하고 음악세계와 월드멘토링협회가 후원한 본 오페라 갈라콘서트에는
본회의 이경오씨 외에도 김봉미씨가 지휘를 맡아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팝페라 바리톤 이경오씨 외에도 테너 김철호씨, 팝페라 테너 주세페 김, 소프라노 김구미씨도 함께하여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본회에서는 목순옥고문, 정기범, 조문호, 이명희, 이정숙, 박호성씨 등이 관람하며 공연을 축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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