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9월24일자 기사 전문-

[박영택의 전시장 가는 길]

 


"티핑포인트 2010" 관훈갤러리 9.15-28
구명선 작

"왜 말 안했어?" -박영택: 경기대 교수·미술평론-

여자는 단단히 삐쳤다. 남자친구가 속였거나 거짓말을 했나 보다. 아니면 솔직히 말하지 않은 게 있었나 보다. 서로 사랑한다는 것, 애인이 되었다는 것은 둘 사이에 남김 없는 고백과 투명함을 요구한다.
속속들이 상대방의 모든 것을 알아야 하고 한 점 거짓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암묵적 동의다. 그것이 진정으로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이자 온전히 소유한다는 것이다.
그럴까? 우리가 타인의 어디까지를, 얼마만큼이나 알 수 있을까? 또 그것은 과연 가능한가? 사랑하기에 상대방의 모든 것을 완전히 알아야 하고, 알고야 말겠다는 것은 좀 무서운 욕망이다.
이 욕망이 너무 크고 깊기에 싸움이 일어나고 서로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준다. 모조리 알겠다고 덤비는 순간 모든 게 깨진다.

순정만화의 여자주인공 같은 여자가 어둠 속에서 눈을 조명처럼 빛내며 다소 무섭게 자리하고 있다. 새까만 흑연을 문질러 그린 이 그림은 흡사 아바타 같은 가상의 얼굴을 보여준다.
이 캐릭터는 작가의 분신이고 내면의 거울이다. “왜 말 안 했어?”라는 말 한마디를 하고 깊고 깊은 침묵으로 상대방을 노려보고 있는 중이다.
섬뜩하고 무섭다. 거짓말이 들통났거나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난 뒤 그 사실을 안 여자에게 추궁을 당하는 남자를 연상시키는 장면이다.
무엇보다도 연필 하나만으로 언어화할 수 없는 묘한 분위기와 야릇한 관능성, 섬세한 감정을 힘 있게 전하는 그림이다.
만화와 미술의 경계로 슬쩍 무화시킨 채 자신의 일상에서 겪는 생의 체험과 그로 인한 감정을 집요하게 깊은 검정과 연필선의 무게로 떠내는 흥미로운 회화를 보았다.
아울러 이런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여주었던 어떤 그녀가 순간 떠올라 놀랐다.


박영택(미술평론) 추천작가 구명선-익숙한 만화적 도상과 영상적 연출
유근오(미술평론) 추천작가 김윤아-공간에 그리는 드로잉
김정락(미술사학) 추천작가 장 파-가혹한 그리기 혹은 아름다운 인생
김종길(경기미술관 학예사) 추천작가 김형관- 현실에서 소비되는 다양한 이미지들을 앗상블라쥬 한다.
고충환(미술평론) 추천작가 조현익- 에로스와 타나토스, 욕망의 이중주


책임기획 :장경호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는 역학개념으로 인체에 바이러스가 침투한 뒤 일정기간의 잠복기를 거쳐서 발병되는
발화점을 이른다. 이는 흔히 철학이나 사회 또는 예술 등 기타 제 분야에서 소수에 의한 어떤 형태의 사고 또는 행동이
수면 아래서 진행되다가 하나의 현상으로 드러나는 것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날로 다원화되는 세계에서 생산되는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의미들을 단일한 그물망으로 포획한다는 것은 이미 불가능해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터핑포인트'전은 35세 이하의 신진작가들을 대상으로 하여 그들의 작업에 내재되어 있는 다기한 발언들을
기존의 작가, 평론가의 눈을 통해 다양하게 들추어내는 작업의 일환으로 기획되었다.

 

 

 

 

 

 

장경호씨가 기획한"Tipping Point 2010" 전시회가 2010년 9월 15일부터 28일까지 관훈갤러리에서 열렸다.
미술평론가 5명이 추천한 유망작가 5명의 작품들이 관훈갤러리 본관 1,2,3층에서 주제별로 전시되고 있다.
지난 9월 15일 가진 개막식에는 미술평론가, 참여작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전시장 앞마당에서 간단한 개막기념 와인파티를 가진 후 뒤풀이는 황정아씨가 운영하는 '봄날은 간다'에서 열었다.
뒤풀이에서 남은 10여명이 노래방으로 옮겨 놀았는데, 그 뒤풀이 모습들을 올린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