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민들의 자존감을 짓밟아 온, 줄 세우기의 오랜 관행이 드디어 막을 내렸다.

줄 세우지 않고 나누어 주는 동행스토어 ‘온기창고’가 문을 연 것이다.

 

지난 해 12월 중순 무렵, 줄 세우기 폐지를 요구한 대안으로 기존 남영동 ‘푸드마켓' 형식으로

물건을 배분할 것을 쪽방상담소 유호연 소장에게 제안한 적이 있었는데,

유소장은 서울시의 협력을 얻어 그보다 훨씬 유익하고 편리한 동행스토어 ‘온기창고’를 만들었다.

 

온기 창고 개소식이 열린 날에는 이른 시간부터 매장 주변으로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개소식에 오세훈 서울시장이 참석한다는 소문이 돌아, 공공주택사업을 환영하는

쪽방촌 주민들과 민간개발을 주장하는 건물주 측 사람들이 대치하기 시작했다.

 

건물주 측에서는 ‘남의 가게 장사 안 되게 왜 매장을 만드냐?’고 삿대질을 하며,

온기 창고 개장과 상관없는 쪽방 주민에게 시비를 걸어왔다.

 

쪽방 건물주들은 긴 세월 비싼 방세로 폭리를 취해왔다.

현금으로만 선 월세를 받아 탈세까지 했는데, 방세가 한 달만 밀려도 쫓아내는 돈 밖에 모르는 인간들이다.

 

“국세청은 당장 쪽방 건물주들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하라”

 

벼룩에 간을 빼 먹는 이런 몰염치한 악덕 건물주들 때문에

열심히 노력하여 돈을 번, 선의의 부자들마저 도매금으로 나쁜 사람 취급 받는다.

 

며칠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24만원인 월세를  30만원으로 계약서를 써 줄테니, 월세는 28만원을 내라고 했다.

기초생활수급비 중 주거비는 월세 계약서 금액 따라 책정되는 것을 악용해 방세 올리려는 속셈이었다.

 

말도 되지 않는 소리라며 거절했으나, 더러는 차액이 탐나 승낙하는 사람이 없다고 어찌 장담하겠는가?

살아 온 7년 동안 한 번도 건물 주인을 본 적이 없고, 관리인을 통해서만 방세를 주었다.

하수인에 불과한 건물 관리인은 쪽방 주민이라 더  이상 거론할 필요가 없었다.

이건 분명한 불법이며, 승낙한 빈민까지 범법자로 만드는 범죄행위다.

 

그 뒤 남영동사무소 주거복지 담당자를 찾아갔다.

두 달 전 주거 조사원에게 월세가 만원 인상되었다고 했더니, 변경된 계약서를 팩스로 보내라고 했다.

계약서를 다시 작성하지 않아 본래의 계약서에 금액만 가필하였기에, 다시 정상적인 계약서로 교체하러 간 것이다.

 

두 달 전에 만원을 올려놓고 또 인상하기 위해 편법을 쓰는 건물주를 고발하며

주거비 책정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했는데, 담당자는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란 말을 했다.

 

불법을 그냥 넘길 수 없는 난처한 일이기도 하지만, 공무원이 법 개정에 나설 입장도 아닐 것이다.

기초생활수급비 중 주거비는 계약서 금액 따라 지급할 것이 아니라, 일률적인 금액으로 통일해야 한다.

 

민영 개발을 강요하는 건물주들의 집단 패악질에 열 받아 촛점이 빗나갔는데,

다시 '온기창고' 개장 소식을 전해야 겠다.

 

‘온기창고’ 입구에는 쪽방상담소 전익형 실장을 비롯한 직원들이 현판식 준비하느라 바빴다.

 

온기창고 매장에 들어가 보니, '세븐일레븐'에서 후원 받은 갖가지 생필품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매장 안쪽에는 개소식 준비로 서울시 관계자를 비롯한 많은 분이 부산하게 움직였다.

 

동행스토어 ‘온기창고’는 창고형 매장으로 쪽방 주민을 위한 수요맞춤형 물품배분 시스템이었다.

 대형 냉장, 냉동고,  전자식 금전등록기 등의 기자재를 준비해두고,

편의점처럼 물품을 편리하게 가져갈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매장에 붙어 있는 이용약관을 살펴보니, 개인이 배정받은 적립 포인트 내에서 물품을 자율적으로 골라가는 방식이었다.

 

이용 대상은 ‘서울역쪽방상담소’ 등록 회원에 한해서다.  

회원에게 적립금 카드를 발부하여,  월 10만점의 적립금만큼 필요한 물품을 가져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지금까지는 공공기관이나 민간기업, 또는 자선단체로부터 후원물품을 전달 받았으나,

대개 물품 수량이 주민 숫자보다 모자라 후원품이 들어올 때마다 줄 세워 선착순으로 배부했다.

 

물품을 배분하는 날은 주민들이 일찍부터 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했는데,

춥고 더운 날씨에 따른 고통은 차지하고라도, 주민들의 자존감에 큰 상처를 입혔다.

 

그리고 이미 있는 물품을 이중으로 받는 경우도 많았지만,

비좁은 쪽방에 필요 없는 물건들이 널려 어지럽기 그지 없었다.

또한 거동이 불편한 환자나 노약자들이 배분 과정에서 항상 불이익을 받아왔다.

 

업체에서 보내주는 후원품 외에도 사업 취지에 공감한 ‘세븐일레븐’에서,

원활한 운영을 위해 향후 3년간 월 천만 원 상당의 물품을 후원하기로 했다.

 

여름철마다 쪽방촌 주민들의 여름 나기 물품을 후원해 온 ‘세븐일레븐’의

정기적인 후원을 약속 받으면서, 안정적인 운영의 기반을 확보한 것이다.

 

'세븐일레븐'은 물품 후원 외에도 주민들을 대상으로 저렴한

테이크 아웃 커피전문점인 '세븐카페' 운영을 지원하기로 했다.

세븐카페 운영 수익금은 온기창고 운영에 재투자할 계획이다.

 

그리고 ‘서울교통공사’에서 20,210,000원의 후원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여태 임의로 지원한 물품들은 수량도 부족했지만, 심지어 유효기간이 임박한 식료품도 많았다.

이젠, 후원물품을 보낼 것이 아니라 가급적 ‘서울교통공사’ 처럼, 현금으로 후원하라.

‘온기창고’에서 주민들이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여 비치할 수 있도록 협조해 주길 바란다.

 

그리고 주민들이 가장 절실한 물품이지만, 여태 한 번도 준 적이 없는 상품도 있다.

예를 들어 일회용 부탄가스나 일회용 믹스 커피, 화장지 등인데,

‘온기창고’ 메니저는 주민들이 무엇이 필요한지도 항상 점검하길 바란다.

 

문을 연 ‘온기창고’는 상시 문 열 것을 목표로 하지만, 당분간 주 3회 이상 운영된다.

전담인력(매니저) 1명과 참여주민 2명(공공일자리)이 함께 꾸려갈 예정이다.

 

지난 20일 개소식을 가진 동행스토어 ‘온기창고’의 본격적인 운영은 8월 1일부터다.

 

이날 개소식에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최경호 '세븐일레븐' 대표,

이재훈 '온누리복지재단' 이사장, 강석주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장, 유만희 부위원장,

그리고 쪽방 주민과 기자 등 많은 사람이 참석하여 발 디딜 틈도 없었다.

 

개소식에서 오세훈 서울시장과 최경호 세븐일레븐 대표이사가 업무협약서에 사인한 뒤,

서울시와 ‘세븐일레븐’이 동행 스토어 ‘온기창고’ 운영을 위한 업무 협약식도 가졌다.

 

오세훈 시장은 인사말에서 “자신 있게 말씀드리지만 동행식당이나 온기창고를 주민분들께서

이렇게 좋아하시는데, 다시 원상 복귀시킬 일은 거의 없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이런 변화를 원하시는

좋은 아이디어를 전달해주시면 제가 늘 신경 쓰면서 챙기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날 오세훈 서울시장이 동자동의 공공개발을 공개적으로 약속한 것이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가슴이 벅차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고개 숙이는 오세훈 시장의 자세에서 그의 진심이 읽혀졌기 때문이다.

공공개발만 성사된다면, 더 이상 동자동에 머물 필요가 없다.

 

‘버려진 사람들의 초상’ 작업을 끝낸 후, 당사자들에게 사진집을 전해주는 대로

시골 농장에 빌붙어 죽을 자리 마련할 일만 남았다.

 

그 날 '온기창고' 개소식에 참석한 인사들이 기념식수에 소원 카드를 달기도 했다.

 

그리고 서울시는 오는 9월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 ‘온기창고’ 2호점을 개소할 예정이라며,

두 곳을 1년가량 운영해 본 후, 나머지 3개 지역으로 확대할 방침이라고 했다.

 

한편, 오세훈 서울시장은 동행스토어 ‘온기창고’ 개소식을 끝낸 후,

거동이 불편한 주민을 위해 생필품을 대신 구매하여 쪽방을 방문했다.

 

 윤용주씨 방을 찾아 생필품을 전달하며. ‘약자와의 동행’이란 붓글씨를 받기도 했다.

 

서울특별시 오세훈 시장과 '서울역쪽방상담소' 유호연 소장을 비롯한,

‘온기창고’ 마련에 힘쓴 직원들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린다.

 


이제 더위에 숨이 턱턱 막히는 쪽방의 주거 문제만 남았다.

서둘러 동자동 공공개발을 착수해 주기 부탁드립니다.

 

사진, 글 / 조문호

 

 

 

 

 

한정식선생의 서거 1주기를 맞은 추모 사진전 ‘북촌’이 지난 19일 ‘갤러리인덱스’에서 개막되었다.

 

‘북촌’은 선생께서 태어나고 자란 서울의 북촌 일대를 기록한, 1978년부터 1990년대 까지의 북촌 풍정이다.

 

선생께서는 생전에 기록사진이야말로 사진의 존재 이유임을 말씀하셨다.

그래서 어린 시절을 보낸 북촌을 기록했는데, 찍을 무렵부터 서울은 변하고 있었다고 한다.

 

기록사진은 된장이나 와인처럼 묵혀야 더 깊은 맛이 난다는 말씀처럼,

30년이 지나서야 ‘북촌’사진집을 펴내며 작품을 발표했다.

 

선생께서 남긴 리얼리즘 사진으로는 ‘북촌’ 외에도 ‘흔적’과 ‘마구간 옆 고속도로‘가 있다.

 

사진의 예술성에 뜻을 두신 선생께서는 '중앙대' 사진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리얼리즘 사진과 결별한다.

 

그 이후부터 법문 같은 ‘고요’라는 정적감 도는 예술사진에 천착하며 일가를 이루었다.

 

그러나 지금도 우리나라 사진사에 주명덕선생의 검은 풍경보다 ‘혼혈아’가 먼저 오르고,

한정식선생의 ‘고요’보다 ‘북촌’이 호출되는 것이 무엇을 말하겠는가?

 

사진의 기록성에 초점을 맞춘 선생의 작품들은 세월에 숙성된 사진이라

보면 볼수록 아련한 추억을 불러일으켜, 마음이 따뜻해진다.

 

전시된 ’북촌‘사진에는 근대화, 도시화 물결 속에서 차츰 변해가는 거리와 골목,

가지런한 기와, 다소곳한 처마, 고즈넉한 창살,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오롯이 담겼다.

 

“이 ‘북촌’은 내 개인 기록이다.

사진으로 엮은 나의 고향이야기로, 내가 아는 서울, 내가 느끼는 서울,

내 기억 속의 서울이 여기 담겨 있을 뿐이다.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은 서울의 북촌지역이었다.

그리하여 ‘서울’하면 내게 그것은 그대로 북촌을 뜻한다.

나의 발길이 북촌에만 머문 이유요, 북촌만으로 이 사진집을 엮은 이유이기도 하다.

하기야 서울이라고 하면, 특히 옛 서울은 대개 북촌지역이 중심이었다.

따라서 이 ‘북촌’은 북촌이로되 실은 그대로 나의 서울이야기다”고 사진집 서문에 썼다.

 

한정식 ‘북촌’ -나의 서울-128페이지 230*280mm 서적 40,000원

‘북촌’ 사진집에는 흑백사진 80여 점이 실려있다.

 

추모의 시간을 가진 사진전 개막식에는 생각보다 추모객이 적었다.

 

긴 세월 강단에서 선생의 가르침을 배운 제자들은 다 어디 갔으며,

수시로 불러 모아 인사동에서 정 나누었던 주변 사진가들은 다 어디 갔는가?

‘죽고 나면 명예도, 작품도, 인연도, 아무 소용없다’는 생전의 말씀이 생각나는 시간이었다.

 

그날 개막식에는 ‘갤러리인덱스’ 안미숙 관장을 비롯하여

전민조, 강용석, 이일우, 이기명, 최연하, 김정일, 곽명우, 정영신, 한선영, 김창주씨 등

20여명의 사진가들이 모여 조촐한 추모의 시간을 가졌는데,

공교롭게도 이 전시를 기획한 ‘눈빛’ 이규상 대표마저 늦은 코로나에 걸려 참석하지 못했다.

 

전시는 7월 31일까지 열린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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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집 The Houses at Night

손은영/ SONEUNYOUNG / 孫銀英 / photography

2023_0706 2023_0831

손은영_밤의 집 The Houses at Night#27_Ed.2/10_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80×110cm_2020

손은영 홈페이지_soneunyoung.com

인스타그램_@_young_eye

 

주최,후원 / 서울대학교 유전공학연구소

 

초대일시 / 2023_0706_목요일_11:30a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주말_10:00am~04:00pm

 

 

서울대학교 유전공학연구소

Seoul National University

Institute of Molecular Biology and Genetics

서울 관악구 관악로 1 서울대학교 1051

imbg.snu.ac.kr

 

밤에 본 집 손은영은 서울과 군산 등 한국의 도시 주변의 자리한 작고 납작한 집들을 촬영했다. 어두운 밤으로 둘러싸인 집의 외관을 인공의 빛이 환하게 비춰주고 있어서 마치 인물을 촬영하듯 하나씩 집들을 기록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그로인해 집은 인격을 부여받은 존재가 되어 자립한다. 누군가의 초상처럼 자리한 낮은 집들은 낡고 누추한 대로 기꺼이 사람의 보금자리를 기품 있게 만들어 보인다. 가능한 자신의 정면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는 이 정직한 집은 가장 기본적인 집의 외관과 구조만을 뼈처럼 드러낸다. 지붕과 벽, 창문 이외의 다른 장식은 거의 없는 집이다. 도로나 길가와 인접한, 그렇게 무방비로 노출된 집들은 출입구를 숨긴 체 밋밋한 벽만을 창백하게 보여줄 뿐이다. 다만 몇 개의 창이 있고 외부의 시선과 접촉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구조물이 창문으로 붙어 일종의 방어벽을 만들고 있다. 이 어설프고 불안한 시설물은 기능적인 역할보다는 심리적인 방어기제로 작동하는 편이다. 기이한 색상의 페인트로 칠해진 벽은 그만한 강도를 지닌 지붕 색과 강렬한 대조를 이루면서 너무 얇고 평면적으로 펼쳐져있다. 벽은 그 집에 사는 누군가의 등을 연상시킨다. 혹은 타자의 시선에 대책 없이 드러나 버린 살처럼 민망하면서도 관능적으로 빛난다.

 

손은영_밤의 집 The Houses at Night#37_Ed.3/15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60×80cm_2020

사진이란 이미 존재하는 세계를 다시 보여주는 일일 텐데 그렇게 자리한 대상 자체가 지닌 묘한 시각적인 힘을 작가는 날카롭게 찍어낸다. 비록 더없이 소박하지만 충분히 흥미로운 구조와 형태, 매력적인 색채를 품고 있는 레디메이드로서의 이 건축물/집의 외관은 그 자체로 당당한 회화작품처럼 다가온다. 흡사 색채들의 콜라주로 이루어진 색면 회화 같기도 하다. 그래서 나름의 조형적인 매력을 간직한 오브제를 선명하고 밀도 있게 건져 올리는 감각이 돋보인다. 이 사진은 그러한 작가의 안목이랄까, 미에 대한 묘한 감수성의 결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사진에 들어와 박힌 대상보다도 그것을 다시 보여주는 작가의 시선, 안목, 조형감각이 우선하는 사진이라는 생각이다.

 

손은영_밤의 집 The Houses at Night#45_Ed.2/5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20×160cm_2020

고층 건물 아래에 마지못해 끼여 있거나 허름한 골목길 모퉁이 어딘가에 뜬금없이 박힌 이 작은 집들은 길옆에 바짝 붙어 서서 각박한 생애의 고단함을 스스로 방증하고 있다. 아름다우면서도 동시에 다소 생뚱맞은 색채와 기이한 형태가 역설적으로 빚어내는 조형도 정형화된 질서에서 벗어난 낯선 미감을 발화한다. 그것은 소외되고 주변부화된 것들의 간절한 반짝임이고 이는 집과 창문으로 발광하는 따스한 빛이 포개지면서 보다 강화된다. 지붕과 벽, 그리고 그 사이에 놓인 몇 개의 창문만이 집을 집이게 한다. 이 집들은 현재 번화한 도시에서는 찾아보기 드문 가옥구조이자 아파트와 고층 건물의 현란함 속에서 뒷걸음질 친, 지난 시간대의 집들이자 서서히 사라져가는 건축이다. 이상하고 키치적인 건물이자 주어진 어려운 여건 속에서 필사적으로, 불가피하고 요령껏 만든 집이다. 그래서인지 사진으로 다시 보게 되는 이 집들은 현실감이 줄어들고 마치 영화나 드라마세트장과도 같은 느낌을 부여한다. 사람이 거주하는 현실적인 공간이라기보다는 거의 초현실적이고 몽환적인 장면이다. 밤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기에 그러한 느낌은 보다 더 고양된다.

 

손은영_밤의 집 The Houses at Night#53_Ed.2/10_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80×110cm_2021

동시에 이 사진은 평범한 주변의 일상 풍경이 특별한 존재로 탈바꿈 하는 순간을 기록하고 있다. 작가는 일상적으로 접하는 현실 안에서 어딘지 이상한 파열음을 내는 순간, 장면을 만났고 이를 관찰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익숙한 공간 안에서 마주한 집의 외관에서 어떤 낮설음과 이상한 욕망과 충격을 건져 올려 찍는다. 눈에 보이는 광경을 넘어선 다른 어떤 것을 암시해주는 순간을 사진으로 재현하고자 한 것이다. 그것은 이른바 찰나에 대한 노스탤지어에 가깝다. 작가는 밤에 유독 특별한 순간, 장면이 되어버린 것을 건져 올리고 일상과 일상 너머,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느낌이 사진 속에서 공존하도록 배려한다. 우리는 일상을 살면서 늘상 현실의 풍경을 바라보지만 그 안에 감춰진, 그것이 두르고 있는 독특한 순간의 모습은 잘 보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란 그것을 보게 하는 이들이고 보여주는 존재들이다. 일상속의 비일상, 현실 속의 비현실, 사물 속의 꿈, 풍경 속의 또 다른 세계가 이어져있는 것을 보는 일, 보게 하는 일이다. 작가는 그렇게 현실계에 은밀하게 숨겨진 무엇인가를 발견한다.

 

손은영_밤의 집 The Houses at Night#55_Ed.2/5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20×160cm_2020

도시 공간에 자리한 모든 사물들은 침묵하는 부동의 것들이다. 몸은 있지만 입을 가지지 못해 발화하는 음성은 없지만 그래서 고막에 와 닿는 소리는 없지만 분명 사물은 표면과 질감으로 인간의 말과는 다른 말을 건네기도 한다. 문법과 규칙이 소거된 그 상형문자 같기도 한 이상한 문자, 말은 차갑고 완고하게 사물의 피부에 문질러져있다. 낯선 집의 외벽은 다양한 흔적과 상처를 간직하고 있다.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잔뜩 서려있고 그것과 함께 했던 누군가의 체취와 지문이 저부조의 층을 만들며 눌려있다. 그래서 사물의 피부에 눈을 주면 사물의 생애는, 그 역사는 매개 없이 그대로 다가와 안긴다. 무수한 사물들로 채워진 도시는 그런 의미에서 거대한 텍스트이자 관능적인 몸들이다. 시선으로 읽고 마음으로 상상하는 텍스트로서의 풍경이다. 도시에서 산다는 것은 사물들 속에서 사는 일이고 사물을 관찰하는 관찰자가 된다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자신을 둘러싼 공간, 환경을 질문하는 일이다.

 

손은영_밤의 집 The Houses at Night#61_Ed.2/5_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20×160cm_2021

작가는 적극적으로 그 도시의 내부로 잠입하면서 무엇인가를 관찰하고 찾아낸다. 그녀가 찾아낸 것은 어둠 속에 박힌 작은 집들이다. 밀폐된 벽을 성처럼 두르고 소박한 불빛을 등댓불처럼 방출하는 그 집들의 벽은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삶의 뒷면을 보여줄 뿐이다. 앞이 부재한, 따라서 표정이 지워진 뒷모습은 보는 이의 상상력을 발동시킨다. 그것은 다양한 페르소나를 가져야 하는 정면보다 더 정직하다. 집이란 공간도 그 내부의 인테리어나 살림살이보다 그 모든 것을 보자기처럼 죄 감싸버린 벽에서 진실에 더 가까운 것을 볼 수 있다. 작가는 그 벽 앞에서 들리지 않는 음성을 듣고 보이지 않는 집 안 사람들의 몸의 놀림을 보고 있다. 상상하고 있다. 침묵으로 절여진 집의 외벽이란 경계를 마주하면서 그 피부와 피부 너머를 동시에 바라보고 있다.

 

손은영_밤의 집 The Houses at Night#64_Ed.2/10_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60×120cm_2021

인간의 자취가 사라진 이 빈 풍경에는 이상한(?) 건물과 집의 내부에서 부드럽게 빛나는 불빛을 전해주는 창문만이 무거운 침묵 속에 놓여있다. 풍경이라기보다는 차갑고 즉물적인 정물의 느낌을 받는다. 다만, 보는 이들은 밝은 창문으로 인해 살림살이의 흔적, 사람의 자리를 은연중 상상하게 한다. 햇빛이 모였던 창이 밤이 되면 다시 안의 빛을 밖으로 방사한다. 그것은 막막하고 절대 암흑의 공간에 고립된 집들이 외부에 보내는 구원의 신호와도 같다. 생각해보면 모든 집들은 타인에게는 무척이나 완강하고 폐쇄적이다. 사람들의 최종 귀착점은 결국 각자의 집이지만 그것은 지극히 사적이고 그만큼 내밀하고 고독하다. 그래서 타자의 집은 타자만큼, 그보다도 타자적이다. 더구나 전통사회와 같은 공공의 영역과 사적 영역의 구분이 모호한 공동체가 무너진 이후 도시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타자에 대한 의구심과 경계심을 보이면서 이를 집의 구조를 통해 반영한다. 아파트 공간이 그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아파트는 기계와 같은 기능 복합체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손은영_밤의 집 The Houses at Night#85_Ed.2/10_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60×120cm_2021

반면 손은영이 사진으로 담은 집은 단독주택이자 현재의 거주 공간에서 낙후되어 밀려나고 퇴락한 것들, 빈한했던 지난 시절의 흔적을 아직도 간직한 것들로서 가난하고 소박한 살림을 숨기지 않는다. 벽으로 감싸인 납작한 집들은 방이 있음을 암시하는 창문과 그 안에서 사람이 살고 있음을 발신하는 불빛이 새어나온다. 작가는 아직도 우리 주변에 저런 집들이 존재하고 그 집에 분명 사람이 살며 생을 영위하고 잠이 들고 꿈을 꾸고 내일을 도모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우리는 작가가 보여주는 세상의 이 집들, 밤을 배경으로 고독하게 직립한 집의 외관을 통해 그 안에 있는 누군가의 삶과 생애를 기억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작가는 이 사진들이 "상처 입은 인간에 대한 위로"가 되고 싶다고 한다.

 

손은영_밤의 집 The Houses at Night#89_Ed.2/5_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20×160cm_2021

사실 작가는 이 빈집들을 촬영한 다음 후보정을 통해 창에 조명을 기입했다. 그래서 흡사 실제 전기불빛이 퍼지는 듯한 허구를 만든다. 집들은 정면에서 빛을 받고 있다. 지붕과 벽이 어둠 속에서 돌출하듯 밀고 나온다. 이 집들은 주변 풍경으로부터 고립되어 있거나 밀려나온 듯하다. 주변 풍경에 비해 이질적이고 생경한 외형을 간직하고 있는 어색하면서도 안쓰러운 이 집들은 또한 그런 사람의 초상, 생애를 대리한다. 반면 볼품없어 보이는 집의 외관과는 달리 작은 창문을 통해 나오는 조명의 불빛은 마냥 환해서 무척이나 당당하다. 그것은 자신의 가난에 기죽지 않는 자존심으로 견디고 있는 매 순간을 연장시킨다.

 

손은영_밤의 집 The Houses at Night#49_Ed.3/15_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60×80cm_2020

이처럼 작가는 이미 존재하는 도시의 풍경, 작은 집을 오브제 삼아 흥미로운 풍경, 정물을 구성한다.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레디메이드미학과 연루되면서 절묘한 구성과 기이한 형태, 매력적인 색채들의 조화로, 이상한 조합으로 만들어낸 예기치 못한 미이고 조형이다. 사진이 란 이미 존재하는 것의 피부에 달라붙어 이를 떠내는 일이지만 동시에 그로부터 너무 낯설고 이상한 아름다움을 무의식적으로 건져 올리면서 사진/회화의 구분을 무의하게 가로질러 가는 시각이미지를 선사한다. 벤야민이 언급한 것처럼 인간의 길들여진 시선과는 다른 사진이라는 기계적 시선으로 인해 가능한 초현실적인적인 힘을 누수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사진은 가장 보편적이고 익숙한 사진에서 출발하지만 동시에 그 비근한 소재에서 찾아낼 수 있는 수수께끼와도 같은 지점을 예민하게 지각시켜주는 사진이다. 무엇이라 설명하기 힘들고 규정하기 어려운 묘한 느낌과 모종의 기운이 어둠 속에서 밀도 있는 공기의 층으로, 몸으로 휘감기는 안개처럼 잔뜩 피어오르고 있다는 생각이다. 작가는 바로 '그것'을 찍고 싶었던 것 같다. 박영택

 

손은영_밤의 집 The Houses at Night#33_Ed.3/15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60×80cm_2020

현대인들을 일컬어 집 잃은 존재 homeless being 라고 한다. 집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집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나 동물이 추위, 더위, 비바람 따위를 막고 그 속에 들어가 살기 위하여 지은 건축물 등을 말한다. 단지 생명 유지가 집의 역할의 전부는 아니다. 기본적으로 집이란 한 인간의 태어나고 성장하는 생물학적인 장소이자 가족 구성원으로부터 사회의 규범과 질서를 배우고 세상을 알아가는 사회적 장소이다. 이와 더불어 집은 모든 개인적인 행위들이 일어나는 지극히 일상적 장소이기도 하다. 이처럼 주거 공간, 즉 집으로 불리는 건축물은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서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손은영_밤의 집 The Houses at Night#07_Ed.2/10_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80×110cm_2020

집은 인간이 거주하는 물리적인 공간이지만 개인의 경험과 정서가 결합하면서 가족 구성원과 추억을 공유하고 미래의 꿈을 함께 하는 삶의 중요한 터전이다. 즉 인생에서 가장 긴 시간을 보내는 장소이기도 하다. 하이데거는 인간 실존의 본질이자 존재의 기본적인 특성을 집에 거주하는 것으로 보았다. 집은 단순히 우연히 살게 된 가옥이 아니다. 그것은 어디에든 있는 것이거나 교환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의미의 중심인 것이다. 따라서 집은 외부와 나를 구분 지어주는 경계이기도 하면서 개인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장소이기도 하다.

 

손은영_밤의 집 The Houses at Night#75_Ed.2/10_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80×110cm_2021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집은 이런 정서적이고 정신적 의미보다는 경제적 가치의 척도가 되어버렸다. 젊은 세대는 삶의 목표를 집을 마련하는 것에 두었고 집을 마련하기 위해 일을 한다고 대답한다. 점점 갈수록 생업에서 돌아와 내 몸 편히 쉴 수 있는 집을 마련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집의 가치가 인간 실존의 문제보다 상위에 군림해버렸다. 몇 평의 집에 사는지, 자가인지 월세인지, 아파트인지 연립인지, 강남인지 어느 동네인지 등에 따라 한 인간의 능력과 가치를 판단하는 척도가 되었고, 부모 세대는 자식에게 집을 물려줄 수 있는지에 따라 능력의 지표가 되는 세상이 되었다.

 

손은영_밤의 집 The Houses at Night#46_Ed.3/15_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60×80cm_2020

우리는 어떤 집을 욕망하는가. 비록 집이 한편으로는 구체적인 건축물의 형태를 하고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삶에 있어서 가족 구성원들의 필수적인 정서적인 교류 공간이라는 점을 다시 생각하면서 '밤의 집'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바슐라르가 지적한 대로 실제로 사람들이 거주하는 모든 공간은 본질적으로 집이라는 개념을 지니고 있다고 했듯이 다양한 형태의 집들이 존재하고 있다. 우리가 기존에 생각하던 '전형적인' 주거 공간과는 달리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다. '밤의 집'에서 일관되지 않는 거주 구조를 보여주고 싶었다.

 

어릴 적, 아버지의 직업으로 인해 가족과 떨어져 지냈던 기억이 있어서 가족에 대한 애착과 온전한 가정에 대한 그리움이 적지 않았다, 어둠 속에 자리를 잡은 집을 들여다보면 그 속에서 사는 가족이 보이는 듯하다. 비록 화면에는 사람은 부재하지만, 창문 밖으로 새어 나오는 빛을 바라보고 있으면 가족 간의 대화가 들리는 듯했다. 자신을 가장 힘들게 하는 장소가 되기도 하지만 엄마의 뱃속과 같이 평온하면서 가장 사적이고 소중한 공간으로 보이도록 충만한 색감을 많이 사용하였다. 밤의 공간 속에서 찬연한 익명의 집들은 아름답게 빛나는 존재의 집으로 드러내 보이고 싶었다. '밤의 집'은 소유의 대상으로 전락한 집에 대한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고 현재를 살아가는 집 잃은 영혼을 위로하는 따뜻한 빛을 담아내고 싶었다. 손은영

 
양이현, 셀프 촬영

‘봄에실’은 아산시 인주면에 있는 농장 이름이다.

그곳에는 김창복, 김선우, 양이현, 김평 동지 외에 또 다른 대식구가 있다.

 

고양이 4대가 함께 살며 농장의 파수꾼 노릇을 톡톡히 한다.

갈 때마다 꼬리를 치켜세워 반가운 기색은 하지만, 별다른 행동은 하지 않는다.

항상 거리를 두며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편안한 가족관계를 유지한다.

 

함께 모인 것을 보지 못해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 대략 20여 마리 되는 것 같았다.

들쥐나 뱀을 쫓아주는 고마운 일을 하지만, 그들이 먹어 치우는 사료 값이 만만찮다.

 

 4대가 한 가족을 이룬 농장에 유일하게 입양된 갈색 고양이가 한 마리 있다.

다들 야생으로 사는 것이 체질화되었으나, 그 냥이만 방에 살던 미련이 남아,

높은 곳에 올라가 창으로 방안을 내려다 보았다.

안쓰럽지만, 곧 자유로운 야생에 익숙해질 것이다.

 

고양이가 없었을 때는 들쥐가 닭장에 들어가 닭을 잡아가기도 하고

풀밭에 뱀이 도사리고 앉아 일하는 사람을 놀라게도 했으나,

고양이 방위사령부가 지킨 후로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이가 들수록 세월이 빨라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인데, 주말마다 농장에가니 일주일이 총알같다.

 

문제는 몸이 마음같이 움직여 주지 않는데 있다.

 

더구나 장마철이라 그런지 몸은 쇳덩이처럼 무겁고, 마치 두들겨 맞은 것처럼 욱신거린다.

 

지난 주말에는 김창복씨가 몸보신시켜 준다며 닭을 두 마리나 잡았다.

더운 날 아궁이에 불을 지펴 엄나무와 푹 삶아 놓았더라.

 

그리고 얼마나 부지런한지, 그 넓은 농장의 잡초를 깨끗이 베어내고,

나무 가지치기까지 해 정원을 말끔하게 단장해 놓았다.

 

연못에는 물이 고여 곳곳에 개구리알이 둥지 틀었고,

심어놓은 야채는 싱싱하게 자라, 가지도 고추도 거시기보다 더 컸다.

 

정동지는 백반을 챙겨와 이현이에게 봉숭화 꽃잎으로 손톱에 물들이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잠시도 쉴 틈 없는 김선생께는 발판 겸 책꽂이 하나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냥 판자를 잘라 못질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라인더로 갈고,

선우는 콩기름까지 먹여 발 딛기 민망할 정도로 예쁘게 만들어 주었다.

 

다음날 오찬에는 선우가 연잎밥을 지었는데, 너무 예뻐 먹기 아까웠다.

오래전, 도예가 조상권씨 공방에서 먹어본 후, 두 번째 맛보는 연잎밥이었다.

입안에 번지는 향이 감칠맛이었다.

 

남정네 빰치는 작은 여장부 김선우는 일 솜씨뿐 아니라 음식솜씨도 대단했다.

거기다 양이현의 부지런함이나 인정스러움은 요즘 소녀가 아니다.

듬직한 평이의 재치 역시 부전자전이다.

 

대단한 분이 모여 사는 농장에 얼치기 두 명이 끼었으니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도움은커녕 일거리만 만드는 편인데, 갈 때마다 신세만 진다.

 

'벼룩도 낯짝이 있다'는데, 이 일을 어쩌지?

 

사진, 글 / 조문호

 

양이현, 셀프 촬영

빈민 위에 군림해 쪽방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서울역쪽방상담소가 서서히 변하고 있다.

오래동안 고질적인 줄 세우기 관행과 고압적인 불친절에 빈민들의 원성이 높았다.

그래서 쪽방상담소 업무를 동사무소에 통합하라는 주장을 해 온 것이다.

 

'서울역쪽방상담소'

 서울시립 '서울역쪽방상담소'2018년부터 '온누리 복지재단'에 위탁되어 운영되었다.

쪽방에 거주하는 취약계층의 생활 안정을 돕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많은 일을 해 왔으나,

그곳에서 하는 일의 하나가 기업체나 자선단체에서 보내 온 지원품을 나누어 주는 일이었다.

 

카드 발급 받으러 줄 선 모습, 서류작성에 의해 지체되었으나, 마지막 줄세우기 사진이길 바란다.

문제는 지원품을 나누어 줄 시간을 정하면, 물품을 받기위해 긴 줄을 서야 했다.

여름에는 무더운 땡볕에서 땀을 흘려야 했고, 겨울에는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기다렸다.

다들 한 두 시간 고생하는 것 보다, 굴욕적인 모욕감을 더 못 견뎌했다.

물건을 사기위해 줄을 서는 것과 물건을 얻기 위해 줄을 서는 차이란 하늘과 땅 사이다.

 

 줄 세우는 관행의 역사는 일제강점기에 국민들을 길들이기 위해 시작된 짓이다.

빈민들에게 선행을 베푸는 자랑질의 오래된 관행이 정치적 목적에 이용되거나,

정치인들이 생색내는 도구로 활용되어 온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동자동에 입주한 7년 전부터 주구장창 노래를 부른 일이 줄 세우지 말라는 것이었다.

빈민들의 잃어버린 자존감이나, 가난의 자긍심에 치명적인 독이었다.

 

 수시로 만나는 쪽방상담소 직원들과 얼굴 붉혀가며 개선하라는 글을 올렸으나, ‘쇠귀에 경 읽기였다.

지난 해 12월 중순 무렵에는 동자동 새꿈공원에서 물건을 나누어 주는 과정에서

쪽방상담소 직원과 주민사이에 싸움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그 과정을 지켜보다 서울역쪽방상담소는 갑 질 그만하고 자세를 낮추라는 글을

인사동 사람들블로그와 쪽방타운카페에 올린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글을 쪽방상담소 유호연 소장이 읽고 장문의 해명과 원망의 답 글을 올린 것이다.

그 일로 유호연 소장을 만나게 되었는데, 줄 세우지 않고 나누어 줄 수 있는 대안을 물어왔다.

하나하나 설명한 적이 있었는데, 그 안이 현실화된 것이다.

 

 모든 일은 정해진 쉬운 방법보다, 빈민들 입장에서 찾아야 한다.

잘못된 것을 개선할 의지만 있다면 이 세상에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뒤부터 점차 줄 세우는 빈도가 낮아지며, 줄을 세워도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일하는 직원을 늘리거나 간편하게 처리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내어 서서히 바꾸기 시작했다.

지난 6월28일엔 매달 줄 세워 나누어주던 식권을 카드로 바꾸었다.

 

기존에 사용해 온 식권

식권은 줄 세워 나누어주는 일만 아니라, 매일 아침 상담소 직원들이 식당을 돌아다니며,

전 날 사용한 식권을 수거하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바코드를 주민등록증 뒷면에 부착해 사용 여부를 확인하는 기존의 방법처럼,

전산화하라는 요구를 식권 나온 지 일 년 만에 시행한 것이다.

 

새로 바뀐 동행식당카드

 오세훈 서울시장이 작년 여름부터 시작한 아름다운 동행의 식권사업은 빈민 최고의 복지였다.

안정적인 하루 한 끼의 식사 제공이 빈민들 삶의 질을 개선한 것이다.

비좁은 쪽방에서 밥해 먹어야 하는 불편도 덜었지만, 귀찮아 밥 굶던 노인들이 밥을 먹기 위해

하루에 한 번씩은 외출을 한다는 것이다. 이보다 훌륭한 복지사업이 어디 있겠는가?

 

내가 자주 찾는 동행식당 '완도집'

 하루 한 끼는 먹고 싶은 음식을 찾아먹는다면, 방에서 혼자 쓸쓸히 죽거나 굶어 죽을 염려는 없는 것이다.

일 년 간의 시행에 따른 호응도에, 이젠 없어서는 안 될 복지사업이 되어버렸다.

 

'완도집'의 차돌된장찌게

서울시에서 쪽방 빈민들에게 한정할 사업이 아니라,

기초생활수급비를 줄여서라도 전국 독거노인에게 확대해야 할 복지사업으로 부상했다.

빈민의 삶은 물론 요식업이나 농민들 까지 두루 혜택을 받을 수 있으니, 도랑치고 게 잡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 뿐 아니라, 줄 세운 가장 큰 이유는 부족한 물량이었다.

전 주민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량이라면 언제든지 줄 수 있겠으나,

물량이 부족한 것은 선착순으로 줄을 세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대안으로 소량의 물품은 관할 푸드 마켓으로 보내, 필요한 사람이 순차적으로 가져가면 좋겠다고 했는데,

후암로 57길에 동행 스토어’를 차려 그곳에서 생수와 식료품을 가져가도록 만들었다.

여름이 되면 매주 수요일마다 공원에 줄 세워 생수를 나누어 주었는데,

이젠 본인이 필요할 때 일주일에 한 번씩 동행 스토어에 들려 가져갈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동행스토어'에 생수 받으러 온 주민

 잘못된 관행을 이처럼 바꾸어 가려면 관계기관이나 직원들의 협력도 따라야 하지만,

개선하려는 책임자의 의지가 중요한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그 의지를 엿볼 수 있었던 것은 지난 7월 6한국가스공사한국에너지공단에서

보내 온 여름나기 물품 나누기에서 재확인한 것이다.

주는 시간을 정해 두었으나, 그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오는 데로 나누어주니 줄 설 필요가 없었다.

그 오랜 줄 세우기 관행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지난7월 6일 나누어 준, '한국가스공사'와 '한국에너지공단'에서 보내 온 여름나기 지원품

 어제는 유호연 소장께 고맙다는 인사하러 서울역쪽방상담소를 찾아갔다.

또 무슨 일을 문제 삼을지 걱정한 직원이 이유부터 꼬치꼬치 캐묻고 만나게 해주었는데,

고마워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서울역쪽방상담소' 유호연소장

 유호연(59)소장은 청소년 쉼터에서 17년 동안 일하다 작년 10월 '서울역쪽방상담소에 부임했다고 한다.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갑 질하지 말라는 내 글을 읽었으니, 얼마나 속이 상했겠는가?

주변에서 도와주거나 여건이 맞아 하나하나 바꿀 수 있었다고 겸손해 하지만,

오래된 관행을 바꾸려는 책임자의 확고한 의지가 없었다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정수현소장과 김갑록소장을 거치는 동안 아무도 못했던 일이었다.

 

앞으로 소량으로 들어오는 지원품은 동행스토어로 보내어, 정해둔 상당의 금액만큼

필요한 주민들이 한 달에 한 번씩 가져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을 들려주며,

빈민들 삶의 질을 개선하는데 최선을 다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리고 지난 329일 고장 나 중단된 이불빨래 세탁기를 재가동하기 위해

서울시 지원을 다시 요청해 달라는 부탁도 드렸다.

서울시에서 수리할 예산이 없어 여태 방치했다는 것은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빈민의 어려운 마음을 헤아려 준 유호연 소장께 다시 한 번 고맙다는 인사를 드린다.

그리고, 서울특별시의 아름다운 동행사업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사진, / 조문호

 

“뒷정리를 부탁합니다”홀로 떠나는 이의 부탁에 울컥

 

“일주일 내로 모든 것을 정리하고 혼자 떠날 것 같습니다. 장례비용과 청소비용은 섭섭지 않게 남기겠습니다. 뒷정리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지난 1월 고독사 청소용역업체 결벽우렁각시 구찬모 대표는 한 50대 남성에게 이러한 연락을 받았다. 당시 구 대표는 한참을 다독이며 설득했다고 한다. 그러나 몇 주 뒤 이 남성이 극단적 선택으로 고독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독사 현장의 마지막 모습 - 고독사 현장에 남은 사람의 흔적.  고독사 유품 정리업체 결벽우렁각시 제공

오래 방치된 시신 자리엔 체액 스며들고 구더기 기어다녀

경기 용인시 외곽의 16㎡(5평) 남짓한 원룸. 구 대표가 현관문을 열자 시신이 부패하며 나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시신이 누워있던 자리 밑 장판엔 체액이 스며들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 주변으로 구더기 같은 벌레들이 기어 다녔다고 한다. 눈에 띄도록 탁자 위에 가지런히 놓인 흰 봉투에는 간단한 메모와 함께 장례와 청소비용으로 400만원이 들어있었다.

이 남성은 일용직 노동자의 삶을 전전하던 비(非)수급 빈곤층으로 가족과 연락을 끊고 살았지만 부양의무자(가족)가 존재한다는 이유로 기초생활보장 수급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구 대표는 “현장을 보면서 참혹하다 못해 외로움이 느껴졌다”라며 “유족들이 인수하기를 거부하면서 시신을 알아서 처분해달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길해용 스위퍼스 대표 역시 “이 일을 하면서 부양의무자가 있다는 이유로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고 고독사한 분들을 많이 본다”며 “대부분 반지하 단칸방, 옥탑방 등에서 술에 의존하며 근근이 벌어 사는 분들이었다”고 전했다. 고독사 한 이들 중 상당수는 죽기 직전까지도 가족을 그리워했지만 개인 사정으로 가족 간 불화를 겪으며 외로움 속에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부양의무자에게 부양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생전에 입증했다면 수급 대상이 될 수도있었지만 가족에게 연락조차 하기 어려운 이들에게는 가족을 찾아 ’관계 단절’을 증명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했다.

 

가족과 연락끊겼지만 ‘관계단절’증명못해 기초수급 혜택도 못받아

가족 외면과 상반되게 고독사한 그들이 마지막까지 품고 있던 것 중 상당수는 가족사진이었다. 이들은 30~40년 전 찍은 딸아이 모습부터 아들의 결혼식 장면까지 이미 빛바랜 사진을 마지막까지 소중하게 여겼다고 한다.

지난 2월 충북 청주시 4평 남짓한 원룸에서 고독사한 40대 남성의 시신 주변에도 오랫동안 연락이 끊긴 딸의 사진 수십 장이 흐트러져 있었다. 그 주변으로 술병과 담뱃갑, 약봉지, 각종 고지서가 정리되지 않은 채 널브러져 있었다. 현장을 청소한 업체 대표는“이혼한 뒤 병이 생겼고 오랜 기간 혼자 지내셨던 것으로 안다”며 “어릴 적부터 커 가는 과정이 담긴 딸 사진이 시신 주변에 놓여 있었는데 마지막까지 가족을 그리워했을 모습을떠올리면 마음이 안 좋았다”고 돌아봤다.

 

고독사 현장 - 고독사 현장에 방치된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들. 고독사 유품 정리업체 결벽우렁각시 제공

청소용역업체 관계자들이 본 그들의 마지막은 극심한 빈곤 상태를 그대로 드러냈다고 한다. 단칸방과 반지하 등을 전전하며 산 이들이 많아 살림이 단출하고 음식을 해 먹은 흔적이 없는 게 공통점이다. 일용직 근로자들이 상당수인데 큰 배낭과 현장 장비가 집 곳곳에 놓여 있고, 냉장고에는 김치나 단무지, 생수병만 덩그러니 있다. 외로움을 알코올에 의존하거나 지병이 있어 술병이나 약봉지가 많은 현장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김현섭 에버그린 대표는 “유족들은 시신 인수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은데현장을 가보면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가족사진이 놓여 있다”며“결국 경제적 문제가 가족 갈등 원인인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고 했다.

 

▶ 밀리터리 인사이드 - 저작권자 ⓒ 서울신문사 -특별기획취재팀

지난 주말에는 아산 인주면 산채에서 바비큐 파티가 있었다.

급히 장항에서 사진 찍을 일이 있다는 정 동지 말에 그곳부터 들려야 했다.

장항선 따라가는 장터 기행 작업하느라 여러 차례 갔으나,

‘등잔 밑이 어둡다’듯이 장항역 사진만 못 찍었다는 것이다.

사진 한 장 찍기 위해 장항까지 간다는 것은 좀 억울했다.

시간 낭비는 차지하고, 길바닥에 쏟는 기름 값과 통행료가 아까워서다.

차라리 사진 원고 대행업체에서 한 컷 빌려 쓰면 좋으련만, 정 동지는 모든 것을 직접 찍어야 직성이 풀린다.

 

장황에서 간단히 촬영한 후 급히 달려갔으나, 다들 파티를 열기위해 우리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여섯시 무렵 도착했으나, 해가 길어 한낮이나 마찬가지였다.

 

다른 곳은 비가 많이도 내렸으나, 이곳만 피해 갔는지, 파 놓은 연못에 물도 고이지 않았다.

들쥐와 뱀을 쫓는 고양이는 녹음 짙은 산채를 어슬렁거렸다.

 

임금님 기다리던 궁녀가 죽어 꽃이 되었다는 전설의 능소화는 전신주를 타고 올라 하늘 위에 피어 있었다.

 

매번 ‘백암길미술관’에서 머무는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본가에다 PC까지 장만한 임시 거처를 만들어 놓았다.

미술관 잠자리가 불편해서 보다, 그곳까지 운전해 가려면 술을 마실 수 없기 때문이다.

 

선우와 이현이는 음식을 나르고, 김창복씨는 모깃불 피울 쑥을 베거나

숯불을 피우는 등 바쁘게 움직였다. 등달아 평이도 신났다.

 

파티 준비를 서둘러 끝낸 후 다 같이 축배부터 들었다.

새 식구를 맞은 동지들의 단합을 위한 축배였다.

 

노릇노릇하게 구운 돼지고기와 자연 속에서 마시는 술맛은 어디에도 비길 바가 아니었다.

 

좋아하는 소주 ‘새로’도 한 박스나 사 두었다.

일 나갔던 기웅서씨는 정동지 좋아하는 흑맥주까지 사왔다.

평소 소주 한 병이 주량이지만, 그날은 두 병을 마셔도 끄떡없었다.

 

술이 들어가면 가무가 따라야 하지 않겠는가?

김창복씨는 주변을 밝힐 조명 설치에 분주하고, 이현이는 무대 장비 챙기느라 바빴다.

평이는 현장감독이라며 안전모까지 쓰고 나왔다.

 

창고에 숨겨 둔 드럼과 북채까지 끄집어냈다.

놀라운 것은 앰프도 없고 노래방 기계도 없지만, 디지털세대인 이현이의 지혜로 모든 것이 해결됐다.

 

마이크에 앰프 성능이 있었고, 유튜브 노래방 음원을 연결한 핸드폰이 노래방 기계로 변신한 것이다.

드디어 산 속 야외무대의 버라이어티 쇼 막이 올랐다.

쑥을 태운 자욱한 모깃불 연기가 마치 무대 연막 같았다.

 

차례대로 노래를 불렀는데, 나가수 뺨치는 노래 실력이었다.

김창복씨의 ‘휘나리’에 이어 ‘다 함께 나가자’에 이르기까지 별의별 노래가 다 나왔다.

 

산채가 떠나갈 듯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니, 울어대던 풀벌레도 기 죽어 잠잠했다.

 

선우와 이현이는 여성해방가로 불리는 ‘딸들아 일어나라’를 합창했다.

일하느라 하루를 다 보내고 자신과 세상에는

한 발도 들여놓지 못하는 여성의 처지를 토로한 노래였다.

 

촌에서 썩기 아깝다며, 중앙무대로 진출하라며 바람을 잡았다.

이현이는 다양한 분장으로 눈길을 끌었으나, 관객이 적어 아쉬웠다.

 

구름 속에 숨은 달빛만 엉큼하게 내려보고 있었다.

 

사진 : 정영신, 조문호 / 글 : 조문호

 

 
                                                         
                                                             
                                                                                                                          밖은 비가 쏟아지는데, 방 안은 와 이래 덥노?
                                                                                                                      담배 재가 날려 선풍기를 꺼니 찜질방이 따로 없다.
                                                                                                                            귀찮아도 담배는 화장실 가서 피워야겠다.
                                                                                                                      좌판기 두들기며 피우는 담배 맛이 솔솔한데...
                                                                                                               없는 놈은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는 말도 옛날 이야기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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