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시장' 부정적 인식 씻고 예술과 사회 잇는 다리 놓을 것


인사동 한복판 살며 화랑일 시작
41년 전통의 '동산방' 대물림
화랑협회 첫 父子 회장 타이틀

지원책 확대 요구하기 전에
선배화랑이 후배화랑 돕는 '멘토·멘티제' 도입 상생 먼저
보육시설·병원 등에 기증·대여
미술 소외자에 감상 기회 제공

구입비 5,000만원까지 손비처리
기부 기업에도 세제혜택 부여
침체된 미술시장 활성화 해야

 

[서울경제 / 조상인기자]



나면서부터 그의 머리맡에는 그림이 걸려 있었다. 한국전쟁 후 서울로 돌아온 네 살 무렵에는 종로구 인사동, 지금의 '미술 거리'에서 살기도 했다. 화랑주의 아들로 태어나 부친께 물려받은 동산방화랑을 2대째 경영해온 박우홍(63·사진) 동산방화랑 대표가 지난달 한국화랑협회 제17대 회장에 취임했다. 단독출마해 경선 없이 박수갈채 속에 회장에 추대됐기에 174개 회원 화랑의 통합을 이끌어낼 적임자라 는 기대의 목소리가 높다. 게다가 아버지 박주환씨가 화랑협회 창립 멤버로 2대·6대 회장을 지냈기에 그는 대물림 화랑주에 이어 국내 처음 화랑협회 '부자(父子) 회장'의 타이틀을 얻었다.

"미술작품이 주는 감동과 감정의 순화는 말로 표현할 수도, 정량화해 측정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 번 접하다 보면 자신만의 감성이 생겨납니다. 일반인보다는 예술작품을 다루고 경험할 기회가 많아 '식견 있다'고 평가 받는 화랑들이 예술과 사회를 연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박 회장은 미술 속에서 자랐고 그의 인생이 미술과 더불어 영글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전쟁 후 서울로 돌아온 네 살 무렵, 그는 인사동 한복판에서 살았다. 한국화 전문의 표구화방으로 시작한 '동산방'이 '화랑'으로 거듭난 것은 지난 1974년. 올해로 41년 된 그 화랑이 박 회장 인생의 전부였다. 그가 본격적으로 화랑일에 뛰어든 때는 단국대 경영학과 3학년이던 1976년 무렵이다.

"딱 그해에 아버지를 비롯한 화랑업계 어르신 몇 분이 처음으로 '화랑협회'를 만들고자 의기투합하셨죠. 사무실을 따로 차릴 여력이 없어 동산방화랑 안에 협회 사무실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 덕에 저는 감히 찾아가 뵙지도 못할 미술계 선배들을 자주 뵙고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 '선배님의 은혜'를 입었다는 박 회장은 취임 후 '멘토·멘티제'를 제안했다. 잘나가는 선배 화랑들이 멘토가 되어 멘티인 신규 화랑을 도우며 상생할 때 미술시장이 발전할 수 있다는 게 경험으로 터득한 그의 생각이다.

또한 박 회장은 미술시장을 위한 지원책 확대를 주장하기에 앞서 미술계가 먼저 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술계를 이야기하면 '서미갤러리' 등을 거론하며 비자금 연루, 검은 시장을 떠올리는 부정적 인식을 바꾸는 게 급선무입니다. 인식을 바꿔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기 전에 미술유통의 중심축인 화랑들이 미술문화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보여줄 생각입니다. 작게는 미술경험 소외지역에서 우리가 보완할 수 있는 것으로 사회적 역할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보육시설·학교·병원 등에 작품을 기증·대여하는 형식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미술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늘려주는 게 필요하거든요."

이는 1차적으로 불평에 앞서 인식전환의 계기를 마련하겠다는 대의에 기반한다. 나아가 2차적으로는 미술감상과 경험, 미술교육의 확대가 미술시장의 장기적 발전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얘기를 꺼내며 박 회장은 집무실 책상 옆에 걸린 그림 한 점을 가리켰다. 야트막한 산 위의 정자를 그린 산수화. '세검설초'라 적힌 소정 변관식의 작품이다.

"30대 때 일 때문에 드나들던 한 소장가의 집 침실에서 이 그림을 처음 봤습니다. 고등학교 때 살던 우리 집 창문 너머로 보이던 세검정 정자 장면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 앞에서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작아도 참 잘 그린 그림이었지만 내 추억이 버무려져서인지 한없이 좋은 거예요. 저기 정자 옆 너럭바위에서 한지 말리던 기억도 나고요. 결례를 무릅쓰고 '제 아버지가 파셨던 작품이지만 제가 되사면 안 되겠습니까' 했고 단칼에 거절당했습니다. 하지만 며칠 뒤 그 그림을 바라보는 저를 기억한 소장가에게서 팔 것 없이 그냥 주겠다고 연락이 온 겁니다. 나중에 운보 김기창의 그림을 드리고 맞바꾸긴 했죠. 이처럼 좋은 그림은 명화를 넘어 추억을 씹게 하는 그림입니다. 추억과 연결돼 가슴에 와 닿는 그림이 미술과의 접점인 만큼 미술교육과 경험이 중요합니다."

처음 가슴이 쿵 떨어지는 기분을 느끼게 한 수화 김환기의 1950년대작 '산월', 관아재 조영석이 절벽 아래에서 배 타고 노는 두 친구를 그린 '선유도 그림' 등 박 회장이 꼽은 '내 마음을 흔든 명작'은 한결같이 추억과 연결돼 있었다. 이런 경험을 일반 대중도 느끼게 하고 싶은 게 그의 바람이다. 결국 미술시장이 반짝 호황 이후 위축된 원인이 미술품에 대한 투기심리와 함께 미술 저변을 키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림을 즐기지 못한 채 투자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수요자도 문제고, "작품세계를 잘 숙성시킨 거장과 달리 빠른 성공을 좇는 국내 젊은 작가" 같은 공급자의 문제도 있다. 더불어 박 회장은 이 같은 분위기를 극복하지 못한 좁은 국내시장의 문제는 유통주체들의 책임이라고 자책하며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우선 화랑업계가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미술품 구입 관련 손비처리 등의 세제혜택이다. 하지만 미술품 수요자를 소수의 부유층으로 한정시켜 미술 관련 세제혜택을 부자감세와 결부시킬 경우 해법이 어려워지므로 보다 신중한 접근방식이 필요하다는 게 박 회장의 생각이다.

"현행 500만원 범위 내 미술품은 '장식품 대금'으로 비용처리를 해주는데 그 이상이면 비업무용 부동산으로 취급합니다. 이 경우 금융권에 부채가 있다면 이 미술품이 비업무용 부동산으로 분류돼 세금이 부과됩니다. 이른바 '필요 없는 것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소장·소유만 해도 세금을 내는 불합리한 면이 있습니다. 이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최소한 5,000만원까지는 작품구매비용을 손비처리해주면 미술시장의 악조건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경제상황 등을 고려해 개인의 활발한 그림 구입이 여의치 않다면 기업이 구입해 다각도로 사용할 수 있으니까요."

한편 미국은 기업이 미술품을 기부할 경우 그림값의 20~50% 범위에서 소득세를 전액 경감해주기에 길게는 수년에 걸쳐 세금감면 혜택을 보기도 하는 반면 우리는 미술품 기부에 따른 세제혜택이 전혀 없다. 박 회장은 이 점도 안타깝다.

"박물관·미술관 예술품 기부에 따른 세제경감 혜택을 단 5%만이라도 주는 방식으로 기부진작책을 쓰면 국가 차원에서도 기부의 길이 활짝 열릴 겁니다. 예를 들어 부모에게서 근대미술품을 물려받은 젊은 사람들에게서 작품 기부를 유도한다면 우리도 번듯한 근대미술관을 확보할 수 있을 겁니다. 공공적 재화로 미술품을 활용할 경우 연 30억원 안팎(국립현대미술관 경우)의 구입예산 몇 배의 효과를 가질 수 있습니다."

박 회장은 자신이 평생을 두고 미술시장의 희로애락을 봐왔기에 섣부른 단기 해법보다는 장기적 혜안이 살길임을 거듭 강조한다.

"한국의 미술문화가 성장을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자꾸만 트레이드마크화하는 식으로 폭을 좁히기 때문입니다. 가령 도상봉은 1960~1970년대 라일락 정물이 최고다, 식으로 고착시키면 그외 다른 시기 작품은 값이 뚝 떨어지죠. 우리는 그게 잘 안되니 원로작가들이 시장에서 퇴출되는 분위기고요. 그런 뿌리가 약하고 흔들리니 화랑도 2대·3대에 걸쳐 오래가지 못하는 겁니다. 덜 비싸도 나름 갖는 시대적 의미가 있는 작품들이거든요. 화랑업은 돈을 넘겨 주는 게 아니라 작품을 전수하는 것이거든요. 우리나라도 저를 비롯해 국제·가나·현대 등 주요 화랑의 2세 경영이 시작된 만큼 사회적 기여의 자세를 갖추는 화랑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합니다."

그의 반짝이는 눈에 미술계가 기대를 모으는 이유다.

He is…
△1952년 서울 △1977년 동산방화랑 기획·총괄 담당 △1978년 단국대 경영학과 졸업 △2000년 동산방화랑 대표 △문화관광부 미술은행 운영위원 △한국미술품감정협회 이사 △2009~2012년 한국화랑협회 부회장 △2015년~ 제17대 화랑협회 회장

서울 인사동에 ‘전통주 갤러리’ 문 열어…월별 주제에 따른 전시 및 시음

 


[서울] 술 한 잔에 시를 노래하며 풍류를 즐겼던 우리의 선조들. 그 전통과 멋을 담은 우리 술을 가까이서 만나볼 수 있는 곳이 생겼다.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인산동에 문을 연 ‘전통주 갤러리’가 그곳.

 

 

12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문을 연 전통주 갤러리

문화체육관광부와 농림축산식품부가 협력해 마련한 이곳은 전통주에 대한 정보를 누구나 손쉽게 얻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취지에서 설립됐다. 연간 관광객 1,700만 명이 왕래하는 서울 인사동에 자리하고 있어 국내 소비자뿐 아니라 많은 외국인에게도 우리 술을 홍보하는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그동안 전통주라고 하면 왠지 가까이 하기 어렵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번 기회에 직접 시음해볼 수 있다는 생각에 기대감을 안고 전통주 갤러리를 찾았다.

 

 

입구에 들어서자 지하 1층 갤러리로 가는 계단 옆으로 전통주에 대한 설명이 종류별로 잘 돼있어 눈길을 끈다.

 

전통주 갤러리의 영문명칭은 ‘The Sool Gallery’이다. ‘The Sool’이란 다른 술, 차별화된 술을 뜻한다고 한다. 마시고 취하는 것이라는 기존의 술이 가진 이미지와 달리 전통주는 술 본연의 가치를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그 자부심이 명칭에서부터 전해진다. 우리 전통주는 집에서 빚는 가양주 문화, 각 지역 고유의 특색과 다양한 맛을 지닌 지역성이 단긴 문화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 종류도 막걸리, 약주, 전통 소주, 포도주 등 생각보다 다양해 놀라웠다.

갤러리는 월별 주제에 따라 다양한 전통주를 전시하고 있다. 2월의 주제는 식품명인의 전통주’. 설에 맞춰 국가 공인 56인의 명인이 빚은 술이 전시되고 있었다. 그중 특별히 선정된 4종의 전통주는 예약을 하면 시음해볼 수 있다. 전문가의 설명과 함께 이달의 전통주 4종을 직접 시음해봤다.

 

2월의 시음주. 왼쪽부터 차례로 금정산성 막걸리, 계룡 백일주, 문배술, 솔송주.

 


첫 번째 전통주는 부산의 금정산성 막걸리. 조선 숙종 때 축성됐던 금정산성의 부역꾼들이 낮참으로 즐겨 마시던 데서 유래했으며, 부산 지역의 명물로 자리잡았다. 산도가 강한 맛이 특징이며, 삼겹살과 같은 기름진 음식에 곁들이면 좋다. 막걸리의 탁한 색을 외국인은 아이보리 색이라고 표현한다는데, 다홍빛이 살짝 감도는 아이보리 빛깔과 달콤하면서도 깨끗한 뒷맛이 인상적이었다.

두 번째는 계룡 백일주로, 백일동안 술을 익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충남의 명산인 계룡산의 이름을 딴 약주이다. 인삼향이 났지만 특이하게도 인삼은 사용되지 않고, 주로 찹쌀을 이용해 만든다고 한다. 진달래꽃, 국화꽃, 솔잎 등과 함께 증류시켜 은은한 향이 나는 게 특징인데, 한국 사계절의 향을 담았다고 평가될 만큼 그 맛과 향이 깊고 독특했다. 이 술의 별칭이 신선주인 이유를 알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문배술은 고려 시대부터 제조돼 내려온 평양 일대의 증류식 전통 소주이다. 고려 건국 초기 왕건에게 진상됐던 술인데, 이슬처럼 맑고 과일 배의 향이 나는 것이 특징이며, 40도의 높은 도수를 갖고 있어 목 넘김이 타는 듯한 특유의 느낌을 준다. 드라이하면서도 알코올 향이 나지 않는 깔끔한 맛을 지녔다. 각 지방의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전통주는 많지만 단 세 가지 술만이 국가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고 하는데, 문배술이 그 중 하나에 해당한다.

마지막은 함양 지역의 솔송주로, 지리산 자락의 맑은 물과 어린 소나무 싹인 송순을 이용해 빚은 약주이다. 옅은 금색의 투명한 빛깔과 달달한 감칠 맛, 싱그러운 솔 향이 인상적이었다. 생선회나 한식에 잘 어울리며, 개인적으로는 시음주 중 가장 맛있고 입에 맞았다. 계룡 백일주와 더불어 지방 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전통주에 대한 설명을 제공해준 무라오카 유카리(일본인 막걸리 소믈리에회 회장)

 


우리나라 전통주가 이토록 다양한 지역적 특색과 풍미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참 흥미로웠다. 한잔 한잔 맛보는 즐거움과 더불어 우리나라 식품 명인이 정성으로 빚은 무형문화재를 접한다는 특별함 또한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월별 테마에 따라 매달 다른 시음주가 선정되는데, 3월에는 이라는 주제로 시음이 진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벌써부터 어떤 새로운 전통주를 맛볼 수 있을지 기대됐다.

갤러리 방문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전통주 시음 외에도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먼저, 주제별로 전통주에 따라 공예진흥원이 추천한 주기 및 주병이 전시돼 있어 전통공예 문화를 접해볼 수 있다. 글로벌 막걸리 UCC 등의 홍보영상을 시청할 수 있으며, 다양한 자료집과 팸플릿을 통해 전통주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 술 안내지도를 통해 지역별 대표 전통주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으며, ‘찾아가는 양조장팸플릿을 통해 국내 전통 양조장들의 위치와 특성을 파악하고 원하는 곳에 직접 찾아가 볼 수 있다. 또 전통주 판매 활성화를 위한 비즈니스 상담을 운영하고 있어 전통주 구매처, 수출입 상담, 외식업장 전통주 메뉴 등에 대한 유용한 컨설팅을 받을 수 있다.

 

갤러리 내부 모습(왼쪽). 가운데 테이블에서는 각종 체험 프로그램과 상담이 예약제로 운영된다. 전통공예 주기가 전시돼 있는 모습.(오른쪽)

 


한전통주 갤러리는 한 마디로 우리 술에 대한 모든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갤러리를 찾은 장민호(27) 씨는 “우리 술 알리기 일환으로 정부에서 추진한 술 갤러리라고 해서 들렀다.”며 “네 종류의 전통주를 시음할 수 있어 좋았고, 상주하는 직원들의 친절하고 상세한 안내가 인상 깊었다. 앞으로 우리 술을 알리는 대표적인 명소가 되기를 기원한다.”라고 방문 소감을 밝혔다.

외국인의 발길도 눈에 띄었는데, 일본인 유학생 츠다 미야비(29) 씨는 “인사동을 지나가는 길에 들렀다. 깔끔하고 아름다운 내부와 친절한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막걸리가 아주 맛있고 기억에 남는다. 다음에 일본인 친구들과 함께 또 한 번 방문해보고 싶다.”며 소감을 전했다.

지금까지 전통주는 생소하고 낯선 술이었다. 하지만 갤러리에서 만나본 전통주는 그 이름만큼 친숙했고, 우리 술이 지닌 가치와 훌륭한 풍미에 자부심 또한 느낄 수 있었다. 설 명절 선물로도 더 없이 훌륭한 선택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전통주 갤러리를 통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 술에 더 친숙해지고, 국내외적으로 우리 술의 맛과 멋이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길 바라본다.

☞ 전통주 갤러리
위치:
서울 종로구 인사동 118 (인사동 쌈지길 맞은편)
시간: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 10~ 오후 6(무료)
예약: 블로그(http://blog.naver.com/soolgallery), 페이스북(http://www.facebook.com/thesoolgalley), 이메일(soolgallery@naver.com)을 통해 시음을 신청할 수 있다. 시음은 매일 오후 1, 3, 5시에 진행된다. 또한 내외국인 단체 방문객을 대상으로 요구와 특성에 맞는 맞춤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단체 예약은 soolgallery@naver.com로 국적, 이름, 연락처, 직업, 주소 등을 보내면 된다.

정책기자 김가영 (프리랜서) likekingdom@naver.com

 

 



인사동은 서울 시민에게 마음의 고향 같은 장소다. 우리의 전통 문화를 두루 경험할 수 있어서다. 인사동에는 전통의 맛을 느낄 수 있는 한정식집과 전통찻집이 수두룩하다. 고미술품과 한국 공예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화랑과 규방도 많다. 세월이 흘러 이제 인사동도 예전만 못하다고 하지만, 여전히 골목 구석구석엔 뿌리 깊은 명소가 건재하다. 쌈지길처럼 근래엔 생긴 공간에선 인사동의 다채로운 면면을 엿볼 수 있다.


승동교회 - 3·1운동의 현장

 

 

                                             승동교회.


승동교회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역사가 서린 장소다. 1919년 3·1운동 당시 전국에서 모인 학생 대표가 만세운동을 준비하고, 거사 전날 일제의 눈을 피해 태극기와 독립선언문을 나누던 장소가 바로 승동교회였다. 승등교회의 역사는 100년이 훌쩍 넘는다. 1893년 미국 선교사 사무엘 무어가 옛 공단골(지금의 롯데호텔 근방)에 설립했고, 1912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천도교중앙대교당 - 역사의 무대

 

                                             천도교중앙대교당.

승동교회와 함께 3·1운동의 중심지이다. 3·1운동 말고도 김구의 임정 귀국 연설(1945년), 소파 방정환의 어린이 운동(1921년) 등 한국 근현대사에서 주요 사건의 무대가 됐다. 건물 외관을 보면 붉은 벽돌과 육중한 화강암이 어우러져 위풍당당한 모습을 뽐낸다.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 햇빛이 드는 실내도 운치가 있다. 신자가 아니어도 들어갈 수 있다.


운현궁 - 마지막 왕가의 흔적

 

                                             운현궁 노안당.


흥선대원군 이하응(1820∼1898)의 집. 그러니까 조선의 마지막 황제 고종(1852~1919)이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흥선대원군이 거처하던 노안당, 명성황후(1851~1895)가 왕비 수업을 받던 노락당, 경비와 관리를 담당자가 머물던 수직사, 여자들의 공간 이로당 등 모두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전 9시~오후 7시.


토토의 오래된 물건 - 기억 속으로

중년이라면 반가울만한 물건이 가득한 골동품점이다. 1970~80년에 청소년기를 보낸 주인의 추억 어린 물건이 매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찌그러진 흑백TV, 헤진 교련복, 낡은 책가방과 라디오, 공중전화 등으로 빼곡하다. 다소 민망한 문구로 도배된 그 시절의 영화 포스터도 있다. 가게 안의 물건은 일렬로 정리된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에 아무렇게나 쌓여있다. 차근차근 주의해서 살펴보면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입장료 2000원. 오전 10시~오후 8시.


토인- 추억을 담아가세요

추억의 물건을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갈 수도 있는 가게다. 어린 시절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팔던 각종 학용품부터 구슬과 딱지, 인형놀이 세트 등 없는 게 없다. 엄마 몰래 사먹던 ‘아팟치’ ‘쫀드기’ ‘아폴로’ 등 옛 불량식품도 추억을 되살린다. ‘참 잘했어요’ 도장 옆에 원더우먼이 위풍당당하게 웃고 있는 간판부터 눈길을 끈다. 오전 10시~오후 8시.


쌈지길 - 인사동 최대의 문화 공간


 

 

                                              쌈지길.


쌈지길은 공예품 가게, 갤러리, 찻집, 음식점이 가득한 복합 문화 공간이다. 지하 1층부터 4층까지 마당을 둘러싼 구조로, 건축물 자체도 아름다워 사진을 찍으러 오는 사람도 많다. 4층 옥상에는 카페와 밥집이 있는데 꼭 식사를 하지 않더라도 한숨 돌릴 만한 공간이 있다. 내려다보이는 쌈지길과 인사동 거리를 배경으로 찍는 옥상 사진은 쌈지길의 대표적인 기념사진 포인트기도 하다. 오전 10시30분~오후 8시30분.


여자만 - 인사동 최고의 남도 맛집

 

                                              여자만.

오해 마시라. ‘남자 입장 불가’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여자만’은 전남 여수와 고흥반도 사이에 있는 만(灣)의 이름이다. 그 이름답게 남도 음식을 전문으로 선보인다. 특히 꼬막 요리가 많이 팔린다. 싱싱한 꼬막을 알맞게 데쳐낸 바다 향이 그득하고 짭쪼름한 맛이 술안주로 좋고, 반찬으로도 좋다. 벌교참꼬막(3만3000원), 양념참꼬막(3만8000원), 꼬막전(2만5000원) 등이 대표 메뉴다. 한옥을 개조해 만들어 내부로 들어서면 아늑하고 정겨운 느낌이다. 오전 11시30분~오후 10시30분.


민가다헌 - 분위기 좋은 한식 레스토랑

 

 

민가다헌.

퓨전 한정식 레스토랑. 명성황후의 조카 민익두 대감의 옛 저택을 개조해 만들었다. 한옥의 단점을 보완한 개량 한옥으로 고풍스러우면서도 고급스러운 인테리어가 특징이다. 외관과 담장은 전통 한옥이지만 내부는 서양이 주거양식이 반영돼 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건물로 인정받아 서울시 민속문화재 15호로 지정됐다. 호텔 수준의 질 좋은 음식과 아늑한 분위기 덕분에 귀한 손님을 대접할 때 안성맞춤이다. 정오~오후 11시.


메밀꽃 필 무렵 - 사람냄새 가득한 민속주점

 

메밀꽃 필 무렵.


김광석 팬에게 꽤 유명한 술집. 이곳은 365일 김광석 노래만 트는 민속주점이다. 푸짐한 안주와 덕분에 10년 넘은 단골 손님도 많다. 인사동의 다른 술집에 비해 가격도 부담없는 편이다. 직접 담은 죽통주(8000원)·감자전(1만5000원)·닭감자조림(2만5000원) 등이 인기 메뉴다. 인터넷카페 회원은 일부 메뉴를 할인받을 수 있다. 문 닫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은데, 손님이 많은 주말에는 새벽까지 정겨운 분위기가 이어지곤 한다.


별다방 미스리 - 신세대가 좋아하는 전통 찻집

 

별다방 미스리.

인사동의 수많은 전통 찻집 가운데 가장 대중적인 장소로 속한다. 초등학교 교실처럼 내부를 꾸몄고, 철제 도시락에 김치·김 등을 넣은 추억의 도시락(6000원)도 판다. 공방에서 직접 제작한 가구와 전통 조각보 문양으로 꾸민 인테리어는 신세대에게 더 인기가 좋다. 누구나 차 한 잔 마시면서 기념 사진을 찍어 간다. 아이스홍시(5300원)와 전통차(6500원부터)가 대표 메뉴다.

 

 중앙일보/ 백종현기자

 




Café&Bar, Open Space 

‘식물’ 오픈

 


 

 

낙원상가과 인사동을 잇는 오래된 한옥들이 즐비한 익선동 골목에 포토그래퍼 루이스가 운영하는 키페&바, 오픈 스페이스 ‘식물’이 문을 열었다.

1920~1930년대, 국내 최초 도시개발자에 의해 설계된 익선동에는 박물관 같은 한옥들이 즐비하다. ‘식물’은 이 중 철저히 밀폐되었던 한옥 네 채를 연결시키면서 만든 특별한 공간이다. Desi architects의 건축가 황현진과 디렉터 루이스는 많은 사람들과의 아트적 경험과 진솔한 소통을 통해 익선동의 스토리를 그대로 지니면서도 현대적 멋이 가미된 공간, ‘식물’을 만들었다.

 

 

 

 

자연광이 따뜻하게 들이치는 한옥의 툇마루와 흙벽, 현대적 프레임의 조화로 익선동 한가운데 심어진 ‘식물’은 한옥 지붕의 낡은 기와를 켜켜이 쌓아 공간 안의 벽으로 탈바꿈 시켜 유서 깊은 운치를 들어낸다. 한 낮이면 카보네이트로 둘러싸여 익선동의 자연광을 부드럽게 한옥으로 이끄는 외벽은 밤이면 식물의 빛을 도시로 은은하게 내보내며 한옥의 현재와 과거를 연결한다. 공사 중 나온 근현대의 세월이 깃든 창틀이 화장실의 거울이 되어 있고, 한국의 전통 자개 상과 미국의 가구 디자이너 찰스 임스(Charles Eames)의 테이블이 함께 들어서 있는 ‘식물’은 과거와 현재의 서울이 소통하고 지난 시간과 현대의 예술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모든 것을 믹스 컬쳐했다.

‘식물’에는 바, 카페와 함께 아티스트들의 작업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언제나 아티스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루이스의 철학으로 만들어진 작업 공간은 아티스트들과의 화합과 공동 작업을 위해 루이스가 오래전부터 구상한 공간이다. 작업 공간은 언제나 아티스트들에게 열려 있으며, ‘식물’의 아티스트들은 지속적으로 참신한 전시와 프로젝트로 열린 공간을 가득 채우며 사람과 사람이 만들어가는 소통의 결과를 보여줄 예정이다.

낮에는 공간에 가득 들어오는 햇살과 프랑스 출신의 셰프가 만든 베이커리, 커피를 비롯한 메뉴들을 즐길 수 있는 카페로, 늦은 저녁에는 디렉터 루이스가 운영하는 바로 바뀌며 즐거움을 주는 카페&바, 오픈 스페이스 ‘식물’은 종로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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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n
Café AM 11:00-PM 9:00
Bar PM 6:00-AM 2:00

02-747-4854
서울시 종로구 돈화문로 11다길 46-1

 


서울 운현궁의 전경
(서울=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 흥선대원군의 거처이자 고종의 잠저였던 서울 운현궁의 전경. 고종과 명성황후가 혼례를 올린 노락당을 중심으로 노안당, 이로당이 배치돼 있다. 조선 후기 건축양식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cityboy@yna.co.kr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조선시대 말기는 혼란스럽고 위태로웠다. 적통이 끊겨 멀리서 왕가의 친척을 데려다 국새를 맡기는 일이 벌어졌다.

그럴수록 임금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고, 권문세가가 정국을 좌지우지했다. 19세기 중엽에 즉위한 철종은 강화도의 촌부였고, 고종은 쇠락한 왕가의 자제였다

 

서울 운현궁(雲峴宮)은 고종이 평범한 소년 시절에 살던 잠저(潛邸)이자 그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생활했던 가옥이다. 흥선대원군은 이곳에서 아들을 주상으로 만들고, 스스로 그에 버금가는 권세를 누렸다.

 

사실 대원군은 신왕의 친아버지를 가리키는 칭호다. 조선시대에 대원군으로 추존된 인물은 모두 네 명이었는데, 그중 살아서 대원군이 된 사람은 이하응뿐이었다.

 

그는 본래 인조의 직계 후손이었으나, 아버지가 정조의 이복동생인 은신군의 양자가 되면서 영조의 고손이 됐다. 1820년에 태어나 10대에 부모를 여읜 뒤 24세에 흥선군으로 책봉됐다. 

 

그러나 이때는 외척의 세력이 워낙 강해 왕손이라는 지위가 결코 달갑지 않은 시기였다. 자칫하면 역모를 꾸몄다는 죄목으로 생을 마감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하응은 흥선군이 된 뒤에 '상갓집 개'처럼 살았다. 김동인이 쓴 장편소설 '운현궁의 봄'에는 그가 굴욕을 감내하는 과정이 자세히 묘사돼 있다.

 

행색은 "해어진 도포, 떨어진 갓, 어느 모로 뜯어보든지 표랑객" 같았고, 생활은 "주린 배를 움켜쥐고 투전판이며 술집을 찾아서 시정의 무뢰한들과 어깨를 겨루고 배회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는 모멸과 수치에 대해 무신경해질 정도로 바닥에 떨어진 삶을 영위했다. 목숨을 부지하고 가족을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철종이 왕좌에 올랐을 때 왕실의 최고 어른은 순조의 비인 순원왕후였다. 안동 김씨인 순원왕후는 손자인 헌종과 철종을 대신해 수렴청정을 했다. 당연히 안동 김씨는 세도가로서 막후에서 막강한 힘을 휘둘렀다.

 

철종 8년에 순원왕후가 세상을 뜨자 대왕대비의 존호는 헌종의 어머니인 신정왕후에게 넘어갔다. 풍양 조씨인 그는 안동 김씨 천하를 뒤엎고자 했다.

 

흥선군은 신정왕후에게 접근해 후사가 없는 철종이 붕어하면 둘째 아들을 왕으로 지명해 달라고 설득했다. 철종과 항렬이 같은 자신보다는 나이가 어린 아들인 명복이 후계자가 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1863년 12월 철종이 대를 이을 자식을 두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흥선군이 고대하던 순간이었다. 마침내 신정왕후는 흥선군의 아들을 새로운 왕으로 책봉한다는 교서를 내렸다. 

 

명복이 상감 자리에 오르면서 흥선군은 흥선대원군으로, 흥선군 사택은 운현궁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흥선군의 입장에서는 "오랫동안 쓸쓸하기 짝이 없던 그 집에도 드디어 봄이 찾아온 것"이었다. 보잘것없던 그의 사저 역시 "정치의 중심지이자 이 나라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운현궁의 중심 건물, 노락당(서울=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 서울 운현궁에서 위치나 규모 면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건물인 노락당. 정면 10칸, 측면 3칸 건물로 지붕이 겹처마로 처리됐다. cityboy@yna.co.kr

 

◇ 도심 속에 숨은 조선 왕실의 고택 

 

'운현'은 서운관(書雲觀) 앞에 있는 고개를 의미한다. 기상청에 해당되는 서운관은 세조 때 관상감(觀象監)으로 개칭됐으나 계속해서 명칭이 통용됐다고 한다.

 

고종이 등극하면서 운현궁은 궁궐 같은 집으로 변모한다. 곧바로 증축 공사가 시작돼 1864년 주요 건물이 속속 준공됐다. 

 

규모가 가장 컸을 무렵에는 왕궁처럼 사대문이 있을 정도로 위용이 대단했다. 그러나 지금은 후문만 남아 있고, 전체적인 면적도 크게 줄어들었다.

 

오늘날 운현궁의 입구는 인사동에서 삼일대로를 건너면 보인다. 자그마한 문으로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경비와 관리 업무를 담당했던 사람들의 처소인 수직사(守直舍)가 시야에 들어온다. 

 

본채로 향하는 솟을대문은 수직사 옆에 있다. 유난히 높은 문 앞에는 말이나 가마에서 오르내릴 때 쓰는 노둣돌이 놓여 있다. 솟을대문을 잠그는 장치는 원래 바깥쪽에 있었으나 1996년에 바로잡아 현재는 안쪽에 설치돼 있다.

 

운현궁은 노안당(老安堂), 노락당(老樂堂), 이로당(二老堂)이 남북 방향으로 배치돼 있다. 그중 솟을대문을 통과하면 만나는 노안당이 가장 남쪽에 위치한다.

 

'노안'이라는 당호는 '노인을 편안하게 한다'(老子安之)는 논어 구절에서 유래했다. 물론 노인은 고종의 친부인 흥선대원군을 뜻한다. 노안당은 대원군이 평상시 거처하는 사랑채였으며, 그가 1898년 임종한 곳이기도 하다.

 

흥선대원군은 12세에 군주가 된 고종을 대신해 정치에 깊숙이 관여했다. 신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했지만, 오히려 대원군의 목소리가 컸다.

 

그는 노안당에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논의했다. 붕당의 진원지로 지목된 서원을 철폐하고, 양반에게도 과세하도록 지시했다. 그의 개혁 정치는 논란을 일으켰지만, 대놓고 반대하는 세력은 없었다.

 

하지만 흥선대원군의 치세는 오래 가지 못했다. 1872년 고종이 친정을 선언하면서 차츰 정계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솟을대문의 자물쇠가 바깥쪽에 있었던 이유도 대원군의 움직임을 막기 위한 조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정면 6칸, 측면 3칸인 노안당에서 먼저 눈여겨볼 곳은 편액이다. 대원군의 먼 친척이자 스승이었던 추사 김정희의 글자를 집자해 만들었는데, 필치가 부드럽고 독특하다.  

 

노안당 지붕의 차양과 노락당의 공포(서울=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 운현궁 건물에는 처마 앞쪽에 햇볕과 비를 막아주는 차양이 설치됐다(왼쪽). 한편 노락당 건물에는 기둥머리에 날개 모양의 장식인 공포가 달려 있다(오른쪽). cityboy@yna.co.kr

 

지붕도 눈길을 잡아끈다. 처마 앞쪽에 햇볕과 비를 막는 차양이 달려 있다. 차양은 나무막대기 위에 판재를 깔고 함석을 덮은 형태로, 강릉 선교장의 열화당처럼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노안당은 편액을 정면에서 바라봤을 때 오른쪽에는 누마루, 왼쪽에는 행각이 있다. '영화루'(迎和樓)로 불리는 누마루는 대원군이 손님맞이를 위해 사용했던 장소이고, 행각은 대원군의 시중을 드는 사람들이 머물던 곳이다.

 

운현궁에서 중심이 되는 건물은 노락당이다. 노안당과 함께 세워진 노락당은 정면 10칸, 측면 3칸으로 광대하다. 운현궁 건물 중 유일하게 기둥머리에 날개 모양의 장식인 공포를 달아 멋스러움을 표현했고, 지붕도 겹처마로 처리했다.

 

노락당은 집안의 중요한 의식을 치르는 공간이었다. 고종과 명성황후가 혼례를 올린 곳도 노락당이었다. 1866년 두 사람의 가례가 거행됐고, 모든 준비는 노락당에서 이뤄졌다. 

 

노락당 북쪽에 있는 이로당은 고종의 혼인이 끝나고 3년이 지난 1869년에 지어졌다. 늘어나는 살림을 감당하지 못해 안채를 따로 만든 것이다.

 

'두 노인을 위한 건물'을 의미하는 이로당은 금남의 구역이었다. 안살림의 최고 책임자였던 부대부인과 여성들이 기거했다. 정면 7칸, 측면 7칸으로 크기는 노안당과 비슷하며, 세부적인 장식도 흡사하다. 

 

노락당과 행각으로 연결돼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인 구조는 무척 폐쇄적이다. 입 구(口) 자 모양을 띠고 있으며, 안쪽에 따로 정원이 있다. 밖에서는 정원에서 하는 일을 볼 수 없도록 설계됐다. 

 

이로당 주변에는 소소한 볼거리가 많다. 건물 뒤쪽으로 돌아가면 얼음을 보관하는 석빙고와 대원군이 난을 올려놓고는 했다는 무승대(茂承臺)가 보인다. 또 고종이 어렸을 때 즐겨 오르던 소나무가 있던 자리에 세워진 비석인 경송비(慶松碑)도 눈에 띈다.  

 

운현궁 유물전시관(서울=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 서울 운현궁에는 조선 후기의 정세와 운현궁의 특징을 알려주는 전시관이 있다. 운현궁의 전체적인 모습과 당시에 사용됐던 생활 용품 등을 엿볼 수 있다. cityboy@yna.co.kr

 

이로당을 둘러보고 다시 마당으로 나오면 유물전시관이 있다. 전시관에는 운현궁을 굽어볼 수 있는 축소 모형이 만들어져 있고, 문방사우와 나전칠기함 등 운현궁에서 쓰인 유물이 진열돼 있다. 

 

또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 복식, 흥선대원군이 펼쳤던 각종 정책과 외세가 밀려들어왔던 당시의 정세를 설명하는 자료도 엿볼 수 있다.

 

그러면 대원군의 사저였던 운현궁은 어떻게 공공에게 개방된 문화재가 된 것일까. 

 

대원군의 장자인 이재면에게 넘어온 운현궁의 소유권은 대대로 이어졌다. 이재면의 아들인 이준용은 혈육이 없었으나 고종의 후손을 양자로 삼아 물려줬다.

 

해방된 뒤에는 대원군의 5대손인 이청이 관리했다. 그러나 그가 1991년 양도 의사를 밝혔고, 2년 뒤 서울시가 매입해 정비 작업이 이뤄졌다. 현재는 사적으로 지정돼 있다.  

 

어스름이 깔린 운현궁(서울=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 어스름이 깔리자 서울 운현궁 담장에 주홍빛 조명이 켜졌다. 운현궁은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여름에 한해 야간 개장을 하기도 한다. cityboy@yna.co.kr



[기획탐방=돈되는 상권]-인사동 전통문화 거리…복합문화공간 등장으로 활기

안국동 사거리에서 종로2가 사거리 부근까지 약 700m에 이르는 인사동 일대는 1988년 ‘전통문화의 거리’, 2002년 ‘제1호 문화지구’로 지정된 곳이다. 인사동 전통문화의 거리는 전통업종 점포들과 각종 문화행사 개최 등으로 유명세를 탔고, 현재는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관광 명소가 됐다. 또 97년부터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까지 차량 통행을 전면 통제하는 ‘차 없는 거리’가 시행되고, 그 적용 시간대가 2003년 주말 전체, 2011년부터는 평일 오전 10시에서 밤 10시까지로 확대되면서 유동인구가 더욱 증가했다. ‘차 없는 거리’ 실시로 유동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상권이 더욱 주목받게 됐고, 다양한 업종의 프랜차이즈 매장들이 속속 등장했다. 인사동 전통문화의 거리 입구에서부터 토니모리, 스킨푸드, 이니스프리 등 화장품 로드숍이 들어섰고 스타벅스, 오설록 등 카페 프랜차이즈 전문점도 생겨났다. 이 일대 상권이 변화하면서 기존 갤러리들이 카페를 결합시킨 형태로 모습을 바꿨고, 고풍스러움을 강조했던 전통찻집들도 현대식 분위기의 인테리어로 새 단장을 했다. 특히 복합문화공간 ‘쌈지길’과 ‘마루’의 오픈으로 인사동 전통문화의 거리는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스카이데일리가 변화의 물결에 맞닥뜨린 인사동 전통문화의 거리를 다녀왔다.

 

 

[스카이데일리 / 김인희기자]

 

▲ 안국역 사거리에서 종로2가 사거리 부근까지 약 700m에 이르는 인사동 전통문화의 거리에는 골동품,

화랑, 표구, 필방, 전통공예품을 취급하는 점포들이 밀집돼 있었다. 그러나 이 점포들이 점차 사라지고

프랜차이즈 매장의 등장과 함께 복합문화공간인 ‘쌈지길’, ‘마루’가 들어서면서 인사동 전통문화의 거리의

상권은 변화 중이다. 위 지도는 인사동 전통문화의 거리 위치도. ⓒ스카이데일리

 

 

지하철 3호선 안국역 6번 출구로 나와 50m정도 직진하면 관광안내소가 보인다. 여기에서 좌측을 바라보면 ‘인사동 전통문화의 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과거 골동품, 화랑, 표구, 필방, 전통공예품을 취급하는 점포들이 밀집돼 있었던 거리였다. 그러나 유동인구 증가 및 외국인 관광객 증가에 따라 중국에서 들여온 공예품 가게가 증가하는 등 ‘전통’이 퇴색되기 시작했다.
 
또 임대료 상승으로 가게운영이 어려워진 인사동내 전통점포들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거나 문을 닫으면서 침체되는 분위기였으나, 프랜차이즈 전문들이 잇따라 입점하고 ‘쌈지길’에 이어 최근 오픈한 ‘마루’까지 복합문화공간 겸 쇼핑몰이 등장하면서 활기를 되찾고 있다.
 
인사동의 활력소 ‘복합문화공간’

 

2004년 12월 18일 인사동 전통문화의 거리에 등장한 복합문화공간 겸 쇼핑몰인 ‘쌈지길’은 지하 2층~지상 4층으로 이루어진 나선형 건물로 70여개 공예품점, 문화상품과 기념품 가게, 갤러리, 음식점들이 입주해 있다.

 

 

 ▲ 2004년 12월 인사동에 복합문화공간 겸 쇼핑몰 ‘쌈지길’이 등장해 인기를 끌었다. ‘쌈지길’이 개점한지 10주년 되는 올해, 지난 9월 17일에는 ‘인사이트 프라자’ 맞은편으로 ‘마루’가 오픈했다. 이번에 오픈한 ‘마루’는 공예품 가게 및 카페, 음식점, 휴식공간, 전시공간 등이 마련돼 있다. ⓒ스카이데일리


 

인사동 전통문화의 거리가 전체적으로 예스러운 느낌이라면 ‘쌈지길’은 세련되고 현대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어 젊은 층 또는 가족단위의 방문객에게 인기를 얻어 인사동의 명소로 거듭났다.
 
올해 개점한지 10주년 된 ‘쌈지길’에 이어 지난 9월 17일에는 새로운 복합문화공간인 ‘마루’가 개장했다. ‘인사이트 프라자’ 맞은편에 위치한 ‘마루’는 지하 1층~ 지상 4층으로 된 신관과 지하 1층~지상 6층으로 된 본관으로 이뤄졌다. 마루에는 음식점과 카페, 작가들이 직접 제작한 공예품 등이 입점해 있고, 휴식 공간 및 전시공간도 마련돼 있다.
 
마루 신관 3층에 입점한 ‘손멋’은 일러스트마켓 협동조합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운영하는 핸드메이드 아트숍으로, 예술과 산업의 중간다리의 역할을 하는 것이 목적이다.
 
‘손멋’에서 일하는 직원은 “다수 손님들이 ‘마루’에 대해 잘 모르고 있지만 처음 ‘손멋’을 방문하는 손님들은 신기해하고 흥미로워 한다”고 말했다.
 
신관 2층에 위치한 ‘갈중이’는 감물염색브랜드 업체다. 감즙으로 염색된 제주도 민속의상을 뜻하는 ‘갈중이’를 상호로 사용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제주도를 널리 알리고자 ‘마루’에 입점했다. 이곳에서는 스카프, 가방, 모자, 옷 등 천연염색이 이루어진 제품과 제주도 전통문화를 반영한 수제인형 등을 판매하고 있다.

 

 

▲ 인사동 전통문화의 거리 대로변 상가2층에 위치한 ‘갤러리 가이아’는 올해로 12년째다. 소속작가 위주로

전시회가 이루어지고 있고, 대관을 통해 갤러리를 유지하고 있다. 상가 1층에는 20년 된 전통찻집인 ‘머시걱정인가’가 있다.

이곳은 커피와 전통차를 판매하고 있고, 가게 대표는 직접 팔찌와 목걸이를 만들어 찻집 내부에 전시하며 판매하고 있다. ⓒ스카이데일리

 

 


갈중이’를 운영하고 있는 대표는 “고급 공예품에 관심 있는 손님들이 많이 찾아오고 있으며 고객 연령층은 젊은 층에서부터 노년층까지 다양하다”고 말했다. “고객들 중에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특히 많은데 이들 중에는 제주도를 관광해 잘 아는 분들이 있어 고급스런 제품에 대해 좋은 반응을 보이는 편이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마루에 대해 “디자이너들에 의해 제작된 수공예 제품을 판매하고 있어 전통적이고 세련된 분위기가 풍긴다”며 “시간대별로 공연이 열리기 때문에 고객들이 문화와 쇼핑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다”고 평가했다.
 
옷, 가방, 스카프, 손수건 등 규방공예품을 판매하고 있는 ‘우리세계’는 복합문화공간과의 시너지효과를 기대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5년간 일했다는 직원은 “우리 가게는 디자인을 연구 및 개발해 상품을 판매 중이고, 우리 것의 고급스러움을 강조해 전통유지에 노력하고 있다”며 “최근 개점한 ‘마루’에 가게를 오픈해 사업을 확장했다”고 말했다.
 

 

현대식 전통찻집과 갤러리 카페 늘어

 

 

▲ ‘여기쯤’은 갤러리카페 형태로 가게를 운영한지 2년됐다. 기존에 갤러리에서 고객에게 차를 대접하다가

수익을 고려해 갤러리카페로 바꿨다. 갤러리 카페 입구에서부터 산뜻한 분위기를 조성했고, 내부 전시된

그림은 주기적으로 바꾼다고 한다. ⓒ스카이데일리

 


 

인사동 전통문화의 거리는 90년대까지만 해도 고풍스러운 느낌이 물씬 묻어나는 전통찻집들이 대세였으나, 최근에는 현대적인 분위기를 연출한 전통찻집과 갤러리에 카페를 더한 갤러리 카페 쪽으로 변화는 추세다.
 
‘마루’ 인근의 ‘인사마루 전통찻집’은 지난 4월 개점한 현대식 전통찻집이다. 이곳 관계자는 “현대적 분위기의 전통찻집은 주로 20대 후반의 젊은 층이 선호한다”며 “중·노년층 고객들은 주로 좌식 구조로 된 한옥 전통찻집을 찾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갤러리 카페인 ‘여기쯤’은 원래 갤러리매장이었으나 그림 전시·판매로는 수지가 맞지 ‘갤러리카페’로 업종을 변경했다
 
‘여기쯤’을 2년째 운영하고 있는 대표는 “전시되는 그림을 시간 간격을 두고 바꿔주면서 갤러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어 고객들의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이곳에서는 전통차, 홍차, 커피 등을 판매하고 있다.
 
현대적 인테리어의 ‘전통찻집’이나 갤러리에 카페를 결합시킨 ‘갤러리카페’가 생겨나는 이유에 대해 10년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광록화랑’ 대표는 “갤러리에 구경하러 들어오는 고객은 많지만 구매고객은 얼마 되지 않는다”며 “여기에 불경기로 대관은 줄어드는 추세여서 운영이 어려워진 갤러리들이 카페로 업종을 변경하고 있는 것”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 규방공예품을 판매하는 ‘우리세계’는 디자인을 연구 및 개발해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이곳에서 운영한지는

올해로 10년째이고, 최근 개점한 복합문화공간인 ‘마루’에 가게를 추가로 오픈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스카이데일리

 

 

30년 역사의 전통찻집 ‘흐린세상 건너기’ 관계자는 “찻집들이 현대식으로 바뀌고 갤러리가 카페로 재탄생하고 있는데 이는 현재의 인사동에 어울리는 변화”라고 평가했다.
 
인근 부동산관계자에 따르면 인사동 전통문화의 거리의 대로변에 있는 점포는 10평 기준 보증금 4~5000만원, 월세 4~500만원이었고, 권리금은 가게마다 다양했으나 보통 2억원대로 나타났다.
 
이 관계자는 “대로변 입구의 10~20평사이의 점포의 경우 보증금은 1억원, 월세는 1000만원이고, 대로변 뒤쪽으로 보증금 5000~7000만원에 월세 800만원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작년 한옥음악회 모습


종로구(구청장 김영종)는  9월 26일(금) 오후7시에 인사동 홍보관 실내무대에서 '인사동 달빛 한옥음악회'개막행사를 개최한다.

이 행사는 전통 한옥 건축물인 인사동 홍보관을 활용해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우리 전통문화예술을 맛볼 기회를 제공하고, 전통문화 계승·발전에 일조하고자 마련되었다.

종로구가 주최하고, (사)인사전통문화보존회가 주관하는 이 행사는 9월 26일(금) 19시 개막행사를 시작으로, 올해 연말까지 매주 금요일 19시부터 한 시간 동안 진행될 예정이다.

現 세종시교육청 김설희 아나운서 진행으로 ▲국내실내악 ▲판소리 ▲한국무용 ▲국악가요 등 다양한 전통예술 공연을 선보이고, 관람객들 기념 사진촬영을 위해 전통문양 무대인 포토존도 마련했다.

관람을 원하는 사람은 전화 접수 또는 당일 직접 방문하여 예약가능하며, 관람료는 2만원이다. 단, 현금결제만 가능하다.

달빛 한옥음악회와 관련해 궁금한 사항은 (사)인사전통문화보존회(☎737-7890) 또는 종로구 문화과(☎2148-1806)로 문의하면 된다.

한편, 종로구는 인사동 정체성 확립과 전통 문화업소를 보호하고자 인사동 문화지구 육성과 관련된 다양한 사업을 발굴·지원해왔다.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전통문화상품인증제 시행, 권장시설 건물주 및 운영자에게 융자금 지원, 인사동길 차 없는 거리 운영, 인사동 관광편의시설 운영(인사동홍보관, 남·북인사관광안내소), 전통문화행사 개최 지원 등의 사업을 꾸준히 추진해오고 있다.

김영종 종로구청장은 “감성이 충만해지는 가을 밤에, 전통하면 떠오르는 인사동 한옥에서 전통문화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음악회가 열려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 며 “앞으로 이러한 크고 작은 행사들을 통해 인사동을 찾은 많은 국·내외 관람객들에게 우리의 전통을 알리고자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국시정신문 / 최미경 기자)

 

 

운현궁은 궁궐은 아니지만 궁궐보다 더 위세를 누린 집이다.

 

바로 조선 26대 국왕인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 이하응(1820~1898)의 집이다.

병약하고 무능한 철종이 1863년 자식 없이 병으로 죽는다.

다음 국왕을 누구로 할 것인지 눈치작전이 시작되고 결국 고종이 12세로 즉위한다.

당시 세도를 부리던 안동김씨들은 어린 고종을 조종해 자신들의 권세를 유지할 속셈이었다.

하지만 이하응에 대한 판단이 틀렸다.

 

한때 '상갓집 개'를 자처하며 안동김씨에게 굽신거리던 이하응은 자기 아들이 왕이 되자 돌변한다.

60년 세도정치 척결에 나섰다. 이후 10년 동안 그가 조선의 국정을 끌고 간다.

다만 국왕이 아닌 제3의 인물이 실세가 되는 시스템 왜곡은 지속된다.

조선 말 정치권력이 국왕에게 집중된 상황에서 그 자신이 무능할 경우 국왕의 이름으로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세력이 반드시 있다.

 

고종의 경우 처음에는 대원군이, 나중에는 외척 민씨들이 세도를 부린다.

사진은 종로구 운현궁의 사랑채인 '노안당(老安堂)'이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이 건물에 주로 머물면서 정치를 했다.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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