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와 90년대에 인사동을 내 집마냥 드나들던, 35명의 작가가

인사동,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를 풀어 낸 책 "인사동에서 만나자"가 '덕주'출판사에서 나왔다.

소설가, 시인, 화가, 조각가, 의사, 가수, 정치인, 인사동 가게 주인 등 여러 저자들의 이야기는

자신이 지켜 본 인사동 만의 매력과 따뜻한 삶의 자락을 전해주고 있다

 

15X21cm / 275P / 20,000원 / 덕주출판사

그리고 긴 세월 동안 인사동을 기록해 온 사진가 조문호와 김수길의 사진도 볼거리를 더해준다. 

 

이 책은 인사동에서 '갤러리 씨네'를 운영하는 노광래씨가 기획했다.

책이 출판된 지난 11월 17일 오후 4시무렵 저자들을 초대하여,

김수길씨의 '시간 지우기'사진전이 열리는 '무우수갤러리'에서 조촐한 출판기념회도 가졌다.

 

아래 사진은 노광래씨를 비롯하여 김수길, 김이하, 박상희, 김진규, 이명희, 최일순,

김 구, 김종근, 이도윤, 기국서, 최정인, 안선재씨 등 그 날 참석한 분들의 모습이다.

'풍류사랑'에서 '유목민'으로 옮겨가며  술을 마셨는데,

'유목민'에서 전태수, 최유진, 안원규씨를 만나기도 했다.

 

책에 실린 필자들의 글

지친 일상에 생명을 불어넣는 온기 가득한 거리_ 신소윤 ㅣ 우리들의 인사동 시대_ 이만주 ㅣ

삼류 시인 _ 조정은 | 알렉산드리아 _ 윤후명 | 뜨겁고, 아프고, 찬란했던 _ 신영란 |

〈천상시인의 노래〉와 인사동 _ 김진규 | 내가 만난 인사동 작가들 _ 노광래 |

사는 게 뭔지 _ 윤영준 | 인사동 in 서울 _ 장두이 | ,인사동 추억 _ 이정래 |

고서점, 화랑, 그리고 ‘그림마당 민’ _ 유홍준 | 나의 인사동 전시장 소요記 _ 김진하 |

인사동 ‘그림마당 민’ 이야기 _ 곽대원 l 고상한 미술관은 아니지만 지낼 만하니? _ 김구 |

인사동, 내 청춘의 고향 _ 김종근 | 수요일의 인사동 _ 최영남 |

천지에 쓴 낙서, 정신적 떠돌이가 된 사람들에게 _ 이도윤 | 새롭게 낡아가는 인사동을 그리며 _ 황주리 |

숨 쉬는 박물관 인사동 _ 김경업 | 1964년 인사동 _ 장광팔 |

먹 향기 가득했던 어린 시절 인사동의 추억 _ 정문헌 | 시간의 노숙자들 _ 정병례 |

인사동을 추억하며 _ 서공임 | 숨어 있는 전시장을 찾는 즐거움 _ 남궁옥분 |

화선지를 홍두깨로 다듬어 쓰셨다고 _ 유필근 | 우리나라 고미술품의 위상을 높이려면 _ 홍선호 |

나를 길러준 요람, 인사동 _ 최일순 | 스무 살 청년의 세 친구-삼청동, 관훈동, 인사동 _ 박상희 |

회상 _ 유상동 | 인사동, 나의 놀이터 _ 최정인 | 인사동에서의 안선재 수사 _ 안선재 |

인사동에 가면 _ 장순향 | 인사동에는 귀천이 있다 _ 강애심 l

인사동 40년 문화 공간 ‘시가연(詩歌演)’을 지키며 _ 김영희 | 흐린세상건너기 _ 한세미 |

 

 

이생진시인 / 사진:오마이뉴스 방관식기자

바다 위에 떠있는 섬을 걷고 또 걸으며 시를 써 온 ‘섬 시인’ 이생진씨가 뭍으로,

그것도 북적이는 시내 한복판 인사동으로 창작의 무대를 옮겼다.

‘인사동’(우리글)은 미로 같은 골목마다 숨은 찻집, 술집, 밥집과 그곳을 드나드는

우리 시대 예술가들의 친근한 모습을 정감있게 그려낸 시인의 신작 시집.

지난해 5월 소설가 박인식씨가 인사동을 무대로 불꽃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실명소설 ‘인사동 블루스’를 낸 데 이어 인사동을 주제로 한 시집까지 출간된 것을 보면

예술인들에게 인사동이라는 장소가 갖는 의미는 역시 남다른 모양이다.

이씨는 시집 머리말에서 “시인은 섬과 같아 겉으로는 사람을 멀리하지만 속으로는 늘 사람을 그리워한다”면서

“인사동에 상혼(商魂)만 북적거리라는 법은 없다. 시혼(詩魂)도 끼어들어 시성(詩聲)을 높여야 한다”고 썼다.

 

실제 시인은 박희진 시인(65)과 함께 2000년부터 인사동 찻집 등에서 시 낭송회를 가져왔다.

‘아트사이드’와 ‘시인학교’를 거쳐 지금은 ‘보리수’에서 매월 마지막 주 월요일 오후 7시에 낭송회가 열린다.

‘시인학교’는 1983년 정태승 시인이 문을 연 찻집으로 2004년 리모델링을 이유로 헐렸다.

그때의 허전한 마음을 시인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인사동/‘바람 부는 섬’ 옆에 ‘시인학교’가 있었다/그곳에서 김종삼의 ‘시인학교’를/브란덴브르그에 기대어 읽다가/

리모델링 바람에 내 마임이 헐리고 허전해서/바람 부는 섬에 와 있다/-이 섬도 헐리나요?/‘아뇨’/-

그럼 여기서 시를 읽어도 되나요?/‘…….’/대답이 없는 것을 보니 마음에 없다는 소리/

그래서 나는 도시의 섬을 버리고/진짜 바람 부는 섬 마라도로 왔다/

/여기서 시를 읽어도 되나요?/아무도 거절하는 사람이 없다.”(시인학교)

 

시는 이밖에 고 천상병 시인의 아내 ‘목 여사’가 운영하는 찻집 ‘귀천(歸天)’,

인사동 뒷골목의 허술한 카페지만 송상욱 시인이 기타를 치고 화가들이 손뼉을 치며 어울리는 곳 ‘시인과 화가’,

벽과 방이 온통 낙서로 도배된 향수어린 토속음식점 ‘풍류사랑’ 등

인사동 곳곳의 사람냄새 물씬 나는 장소를 무대로 인생과 예술을 노래한다.

시인이 현장의 모습을 직접 그린 스케치화와 친절한 주석이 함께 실렸다.

 

 2006.01.05 경향신문 / 이상주기자 sjlee@kyunghyang.com〉

정상과 비정상이 권력자의 눈높이에 따라 바뀌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군인들이 판친 정치를 사기꾼도 모자라 검사까지 설쳐대니,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누가 집권하던 집권자의 입맛에 따라 정상과 비정상이 뒤집혀버리는 것은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정상적으로 사는 사람만 바보가 되는 격이다.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니 좋아 지기는 커녕, 날이 갈수록 도를 넘고 있다.

인간들이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지난 월요일 정오 무렵, 서울 사는 고향 친구들의 인사동 오찬모임이 있었다.

인사동 골목에 둥지 튼 여자만에 구정희, 이수만, 김이만, 윤성관,

하금순, 김순남씨 등 일곱 명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가진 것이다.

 

한 달 전, 고향친구들이 상경하여 인사동 호텔에 여장을 풀고

청와대와 롯데월드를 둘러 한강유람섬까지 타는 일박이일 일정의 서울 관광을 다녔는데,

그때 찍은 사진을 모아 이수만씨가 사진집으로 엮어 왔다.

 

이수만, 신규식씨가 만들었다는 사진집에는 340여장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사진 뿐 아니라 인사동사람들블로그에 올린

서울 구경 온 고향친구들, 인생졸업사진 찍다는 수필까지 올려

무려 175페이지에 달하는 사진집이 된 것이다.

 

중복된 사진이 많은데다 무작위적인 편집이 눈에 거슬렸으나,

찍힌 친구들에게 사진 보내 줄 일을 들게 되어 고맙기 그지없었다.

 

6년 전, 정동지의 장날전시 때, 장흥의 마동욱 사진가

전시 개막식사진을 찍어 사진집으로 만들어 준적도 있었다.

소량으로 만들면 큰 돈 들이지 않고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그 때 알았는데,

왜 진즉 활용하여 정동지의 오래된 빚을 갚지 못했을까?

고향친구들 사진집을 보니, 그 일이 떠올라 마음이 다급해졌다.

 

오래전부터 정영신의 사진집을 먼들기 위해 틈틈이 기록해 왔다.

그러나 사진의 량도 만만치 않지만, 여러가지 비용이 마음에 걸렸는데,

두 권만 만든다면 큰돈 들이지 않고도 만들 수 있다기에 일을 벌이기로 했다.

사진을 년도 별로 구분하여 당시의 추억을 끌어내는 글까지 곁들인다면,

당사자에게는 최고의 선물이 될 것 아니겠는가?

 

정동지는 생일이나 명절만 되면 선물타령을 해대지만, 그동안 못들은 척 해왔다.

알라도 아이고 선물은 무슨 선물이고?“라며,

한쪽 귀로 듣고 한 쪽 귀로 흘린 수십 년의 세월이 늘 마음에 걸렸는데,

결혼 20주년을 기념해 처음이고 마지막이 될 선물 하나 만들어 주고 싶었다.

 

만약에 초상권 침해라며 압수해 간 정동지의 알몸 사진을 표지로 감는다면, 흥행도 가능할 것으로 여겨진다.

그 사진은 십 육년 전 장대비가 쏟아지는 만지산에서 찍은 그녀의 모습이다.

 

흙탕물이 튕겨 오르는 폭우 속에 검붉은 맨드라미까지 더해, 을씨년스런 풍경을

연출하는 그 때 장면은 처연하다 못해 처절한 느낌이 드는 걸작이었다,

그러나 정영신 개인 파일에 들어간 후로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사진이 되고 말았다.

설마 사진가가 자기 사진집 만든다는데도 내놓지 않을까?

 

그런데, 마동욱씨가 만들어 준 장터개막식 사진집도 줄 때만 좋았지, 두 번 다시 볼 기회는 생기지 않았다.

마침 고향친구들의 서울관광 사진집과 비교해 보기 위해 어렵사리 그 책을 찾아 낸 것이다.

그러나 그때의 추억을 되새기는 이외의 감동은 없었다.

 

결국 비슷한 사진들의 나열 보다 좋은 사진을 선정하는 안목과

편집 능력에 따라 책이 달라진다는 것을 새삼 절감한 것이다.

 

어렵게 구입한 책도 세월에 밀려 버려지는 것이 어디 한 두 권이던가?

인쇄물 홍수시대에 자칫 쓰레기를 양산하는 일은 만들지 않아야 할 것 아닌가?

특히 두고두고 보아야 할 가족 앨범이라면 좀 더 세심한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오자 하나 글씨 체 하나에 책의 품위와 격이 달라진다.

 

그리고 무조건 사진이 많다거나 책 면수가 두터워야 좋은 것도 아니다.

어떤 사진을 어떻게 배열하고, 어떤 캡션을 어떻게 붙이냐에 따라

책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을 염두에 두어 제대로 한 번 만들어 볼 작정이다.

 

찍은 사진을 년대별로 분류하여 당시의 추억을 들추어내거나

삶의 의미까지 더해 준다면 책장에서 잠이나 자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그런 사진집은 안 될 것으로 여겨진다.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

어쩌면 만들려는 정영신 사진집도 책이 아니라 e북으로 만들어야 할지 모른다.

책장보다 컴퓨터 앞이 더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젠 량과 부피가 아니고, 질이며 가치다.

 

이날 여자만에서 가진 오찬비용은 구정회씨가 부담했다.

그런데, 이미례씨가 '여자만 경영에 손을 땠을까? 음식도 달라졌고 종업원들이 불친절하기 짝이 없었다.

밑반찬도 다시 요구할 수 없는데다, 가져 온 밥도 바짝 말라 있었다.

밥을 바꾸어 달라고 하니 손님 먹는 밥을 손가락으로 꾹꾹 찔러보는 무례도 서슴지 않았다.

 

처음부터 툇마루에서 오찬모임을 갖기로 했으나,

 괜찮은 집으로 가자는 구정회씨 이야기에 여자만으로 정했는데, 후회막급이었다.

주인 없이 장사 잘되는 집 없고, 불친절에 다시 가고 싶은 집 없다.

 

구정회씨는 어릴 때 이외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고향에서 떠나오며 기억에서 멀어졌는데, 듣기로는 긴 세월을 군인으로 살았다고 한다.

그의 절제된 삶과 빈틈없는 생활습관에서 군인정신을 가늠할 수 있었지만,

그 역시 내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도 모를 것이다.

그동안 고향친구도 잊고, 다들 엄청 바쁘게 살았던 것 같다.

 

나야 민방위 출신이라 군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게 없지만, 어디서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했다.

'군대생활은 어디서 했고 전역 계급은 뭐냐?"고 물었더니, 입 무거운 구정회씨가 말문을 열었다.

 

귀가 어두운데다 말도 조근조근 하는 바람에 정확히 알아들을 수도 없었다.

두 차례에 걸쳐 군에서 죽을 고비를 넘겼는데, 한번은 소위로 임관하여 월남전에 참전했을 때이고

한번은 12.12사태를 일으킨 전두환 졸개들 총에 죽을 뻔 했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전두환의 12,12사태에 저항한 정병주 특전사령관 참모로 일했으나,

반란군들의 쿠테다가 성공하는 바람에 소령으로 강제 전역되었다고 한다.

명령을 생명으로 여기는 군인이 상관에게 총질을 해대는 더러운 판에 무슨 미련이 있겠냐마는,

간신처럼 달라붙어 승승장구하는 동료들을 보며 어찌 간이 뒤집히지 않겠는가?

 

전두환의 쿠테타 암호명인 생일집잔치의 최대 희생양은 정병주, 장태완, 김진기 장군이었다.

그들이 받은 수모는 말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만약 정병주사령관 수하 였던 박희도, 최세창, 장기오 같은 간신배처럼 상관을 배신했더라면

그런 처참한 수모는 당하지 않을 것 아닌가?

 

하기야! 만약 전두환을 직속상관으로 두었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명령에 죽고 사는 군인이 상관의 명령을 어찌 거부할 수 있겠는가?

이게 군인이 짊어져야 할 숙명인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정당하지 않은 명령까지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것이다.

 

나쁜 일은 상관이 아니라 부모의 말도 듣지 않는 것이 사나이가 갈 길이 아니겠는가?

그 때 쿠테타 군부에 고개 조아려 충성서약이라도 했다면,

처자식은 편하게 살았을지 모르지만, 실패한 인생이나 다름없다.

 

그는 소령으로 전역해야 할 타고 난 운명이며 팔자였다. 

장한 사람을 만들어 주었으니, 팔자가 나쁘지는 않다.

우리가 정치군인들의 비참한 말로를 똑똑히 보지 않았던가?

어떤 이는 죽어서도 반역자의 이름표를 가슴에 달고 살지만, 자네는 용기 있는 군인으로 길이 남는다.

 

여자만에서 일어나 찻집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여자만맞은편에 있는 귀천에는 손님이 많아 앉을 자리가 없었다.

이수만씨의 안내에 따라 찻집 인사동으로 갔다.

그곳은 젊은이들이 찾는 찻집이지만, 안쪽에 작은 정원이 있어 사진 찍기 좋은 장소다.

인사동에는 자판기 커피가 없어 달콤한 팥죽을 시켰는데, 찻값은 하금순씨가 냈다.

 

그 자리에서 서울모임 회장으로 이수만씨가 추천되어, 두 달에 한 번씩 정기적인 모임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얼굴보고 밥 먹는 모임이 아니라 의미 있는 시간을 창출해 내야 할 것이다.

하다못해 가물가물한 어릴 때 기억의 퍼즐이라도 맞춰, 잘못 알고있는 고향의 역사는 없는지 살펴보자.

 

그 곳에서 늙은 군인의 초상사진이라도 한 장 남기고 싶었다.

안쪽 작은 정원으로 구정희씨를 불러내어 사진을 찍었으나, 썩 마음에 드는 배경이 없었다.

사진 값이라도 하라는 듯 십만원을 꺼내 주기에, 고맙다는 말도 못하고 받아 챙겼다.

서울역에는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이 많아서다.

 

날씨는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떨어질 것처럼 잔뜩 지푸려 있었다.

인사동 길을 걸어 나오며 자랑스러운 친구의 얼굴을 바라보니,

김민기가 만든 늙은 군인의 노래‘가 떠 올랐.

 

 

나 태어난 이 강산에 군인이 되어
꽃 피고 눈 내리기 어언 삼십년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나 죽어 이 흙 속에 묻히면 그만이지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푸른 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 내 청춘

 

아들아 내 딸들아 서러워 마라
너희들은 자랑스런 군인의 자식이다
좋은 옷 입고프냐 맛난 것 먹고프냐
아서라 말아라 군인 아들 너로다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푸른 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 내 청춘"

 

사진,  / 조문호

 

 

 

‘제10회 사각사각(四角思刻) 회원전’ 22일가지 개최

어라연전각(篆刻)연구회 김현숙 소장, “돌에 무한한 우리의 생각 새긴다”

 

▲ 어라연전각연구소 & 아카데미 대표 어라연 김현숙 (사진제공=어라연전각연구회)

“전각에 대해 조금이나마 관심을 갖는 분이 있다면 먼저 본인 이름이라도 직접 새겨 보기를 권하고 싶다. 생각 보다 부드러운 돌 위에 사각사각 새기면서 느껴지는 흥미로움과 신기함을 맛보시기를 바란다. 돌이라는 딱딱한 사물 위에 자신이 새기고 싶은 뭔가를 조각하는 시간은 무엇보다 나를 집중하게 만드는 매력에 빠지게 할 것이다.”

어라연전각연구회 탄생의 주인공 김현숙 소장이 전각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그는 전각이 도장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회화나 한글 캘리그라피 작품, 설치 예술로 승화시키며 미술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기존 전각(篆刻)과 다른 다양한 면모를 선보이면서 이를 대중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탄생한 어라연전각연구회가 16일부터 오는 22일까지 인사동 경인미술관 제5전시관에서 ‘제10회 사각사각(四角思刻) 회원전’을 진행한다. 이번 회원전에는 총 26명의 회원 작품들이 전시돼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전각은 한자 전서(篆書)로 새겼다고 해서 전각이란 이름이 붙었다. 기존의 전각은 서예나 동양화 같은 예술 작품에 찍는 낙관이나 통장, 서류에 찍는 실용적인 도장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실용성과 예술성을 모두 지니고 발전해 왔다. 

 

〇 전시된 작품들에 대하여

 

김현숙 소장은 전시된 작품들에 대해 “기존과 다르게 예술로 확장된 전각은 다양한 재료에 문자 외에도 회화, 조각, 공예, 디자인적 요소들과 결합하게 됐고 이번 전시회에는 그런 작품들을 많이 볼 수 있다”면서 “전통성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기법을 다양화해 기존의 인장 범주를 넘은 것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여러 색상, 여러 형태로 표현하고, 돌, 나무, 안료 등 다양한 재료를 혼합해 새롭게 진화한 전각 예술의 세계를 잘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 어라연전각연구회 10회 정기회원전 공동주제 '우리나라 자랑스러운 유산을 전각으로 표현하기' 출품 작 


김 소장은 회원들의 공동 주제 작품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매년 정기 회원전 마다 주제를 다르게 정하는데, 올 해의 주제는 ‘우리 나라의 자랑스러운 문화 유산을 전각으로 표현하기’로 정했다”며 “회원들이 선정한 우리의 문화 유산들을 주제로 완성한 작품들은 정교한 새김부터 담백한 표현과 함께 돌에 색상을 입혀 시각적 효과를 줌으로써 보는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는다”고 강조했다.

 

〇 어라연전각연구회는

 

어라연전각연구회에 대한 소개를 부탁했다. 김 소장은 “어라전각연구회는 2012년에 설립된 순수 문화예술 단체다. 회원들이 서로가 지닌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면서 우리 사회에 전각에 대한 인식을 확대하는 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올해로 10회째 개최되고 있는 회원전을 통해 전각 예술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고 있으며, 한글날 한글전각체험, 전각 새기기 무료 체험행사 등 공공기관 주최 사업 참여와 각 급 학교 학생과 외국인 등을 대상으로 체험 프로그램을 활발히 운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〇 ‘사각사각(四角思刻)’의 의미와 향후 계획

 

▲ 어라연전각연구회 정기회원전 로고 '사각사각' 


2016년 제4회 회원전부터 사용한 사각사각(四角思刻)이란 명칭은 어라연전각연구회를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다. 김 소장은 “한 밤 중 고요한 눈 길 위를 밟을 때 들리는 소리의 의성어인 ‘사각사각’은 정성을 다해 전각도로 돌 위에 새하얀 눈들을 새겨 넣는 창작의 순간도 의미한다. 또한 작은 네모난(四角) 돌 위에 무한한 우리의 생각을 새기는 숭고함도 담고 있다”고 말했다.

 

향후 활동계획에 대해 김 소장은 “정기 회원전을 변함없이 진행하고, 내년에는 소규모 개인 부스전도 기획해 회원들의 역량을 한 단계 높일 좋은 기회가 되리라 본다”면서 “기존 국가공모사업도 지속적으로 수행하면서 전각을 심도 있게 배울 수 있는 아카데미 활동과 전각 체험관을 더욱 활성화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한편, 22일까지 진행되는 이번전시회는 각 작품에 부착된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스캔하면 작가의 작품설명을 AI 성우가 녹음한 목소리로 들을 수 있으며, 엽서크기의 안내서를 무료로 제공한다. 또한 전시장에 방문할 수 없는 관람객들을 위해 전자도록을 배포해 누구나 무료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문화저널21 박명섭 기자

 

 

김의권(74)씨가 지난 14일 새벽 4시 무렵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인은 실내장식 및그래픽디자이너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습니다.

그리고 인사동 사람들의 모임인 창예헌초창기 맴버로

인사동을 무척이나 사랑했습니다.

 

오랜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는 갑작스런 부고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고난의 삶을 마무리하고 하늘로 승천한 고인에게는 축복이겠으나,

단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일 뿐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빈소 : 창원 파티마병원 장례식장 VIP, (창원시 의창구 창이대로45)

발인 : 20221116/ 오전 730

장지 : 창원 상복공원

상주 : 처 최갑순, 자 김형일, 자부 배주연

녀 김엄지, 사위 이문규

 

상주 연락처 : 010 5049 0824 김형일

 

아래 사진은 인사동에서 찍은 고인의 살아 생전 모습입니다.

지난 날을 추억하며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시기 바랍니다.

 

김수길의 다섯 번째 시간지우기 편린사진전이 인사동 무우수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이와 함께 조해인이 쓰고 김수길이 찍은 에세이 신화가 된 청소부출판기념회도 유목민에서 열렸다.

 

지난 주말 정동지와 김수길씨 사진전 보러 인사동에 갔더니,

전시작가와 조준영시인이 안국역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김수길의 편린사진전이 열리는 무우수갤러리로 가는 길에 봉화에서 올라 온 신동여 화백을 만나기도 했다.

 

올 일월에 개관한 무우수갤러리는 처음 갔는데,

인사동길 19-2에 신축한 와담빌딩 3-4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김수길의 편린전은 여러 장 필름이 겹쳐진 이미지로, 마치 세월의 흔적처럼 희미한 기억을 불러냈다.

 

10년이 넘도록 한가지 작업에 몰입해 온 김수길의 '시간 지우기'전은

사실적 기록성보다 내면적이고 미학적 관점에 주안점을 두었다.

 

김수길은 사진 이전에 음악, 영화,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진 작가였다.

미학적 관점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 같은 장소를 시기별로 찾아다니며, 변해가는 공간의 잔상을 기록해 왔다.

 

그의 작업은 변해가는 도시의 단면이 켜켜이 쌓여, 암울한 시대적 잔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기존의 사진 형식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접근으로 사진 표현의 무한한 가능성을 탐색한다.

 

이번 전시에는 천에다 출력하여 깃발처럼 걸거나, 손수건으로 만들기도 했는데,

기존 천에 새겨진 무늬가, 프린트된 이미지와 어울리는 또 다른 시도를 감행했다.

장식성이나 실용성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이다.

 

기억하기 위해 시간을 지운다는 김수길의 편린전은 113일부터 14일까지 '무우수갤러리'에서 열린다.

 

전시장에서 나와 신화가 된 청소부술판기념회가 열리는 유목민으로 자리를 옮겼다.

술집은 이른 시간부터 지인들이 모여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조준영 시인이 사 온 축하 떡에 촛불을 밝히기도 하고

연극배우 이명희씨의 에세이 낭독이 이어지는 등 출판기념회 면모도 갖추었다.

 

행복 에세이란 부제를 단 신화가 된 청소부장애를 안고 태어난 소녀 이야기였다.

청소라는 일상적이고도 사소한 일을 하면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신화를 일구어내는 내용이었다.

 

작가는 사소한 일을 할 때도, 자신이 가진 100%를 아낌없이 밀어 넣으면,

그 하잖은 일은, 스스로 축복하는 에너지로 변환된다.

그리고 그 에너지는, 사막과 같이 메마른 우리의 내면 한가운데로

시냇물을 졸졸거리며 흘러가게 하는 동력이 된다.“며 글을 마무리했다.

 

버리커뮤니케이션에서 출판한 이 책은 136면에 1.5000원이다.

 

이날 술판기념회에 참석한 분으로는 주인공인 조해인 시인과 김수길 사진가를 비롯하여

조준영, 신동여, 이명희, 전강호, 김명성, 장경호, 송일봉, 정복수, 최석태, 김신용, 최유진

이만주, 김발렌티노, 노현덕, 안원규, 송상욱, 노광래, 이인섭씨가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에서 김신용시인은 일 년만의 외출이었다.

두문불출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요즘은 사진찍어 시를 쓰는 디카 시에 집중한다고 했다.

사진 제판에 의한 제작비 부담으로 출판사에서 반기지 않는다는 고충도 털어놓았다.

비염이 있다며, 술 한잔 마시지 않고 외곽으로 떠도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작품과 명예나 돈도 좋지만, 건강이 최고다.

모든 것이 죽고 나면 아무런 쓸모없는 게 아니던가?

어떻게 하면 재미있고 즐겁게 살까?를 고민할 나이다.

작업도 일처럼 하지 말고 놀이로 즐기자.

다들 건강이나 잘 지키시길 바랍니다.

 

사진, / 조문호

 

 

 

연초대비 2배 늘어, 외국인들 증가 추세…


 
서울 인사동 거리. 2022.11. 5 / 조문호사진

 

"외국인 손님들이 올해 초에 비해 요즘 확실히 늘어난 걸 체감합니다. 요즘 저녁에 오는 손님들 중 20~30%는 외국인이에요" (인사동의 한 삼겹살집 사장)

 

 "8월 초부터 확실하게 외국인들이 많아졌고 요즘 들어 더 많아졌습니다. 이제 국내 입국자에 대해 코로나19 유전자 증폭(PCR)검사 의무가 해제된 만큼 더 많은 외국인들이 왔으면 좋겠어요" (명동의 한 화장품가게 종업원)

 최근 국내 입국자에 대한 PCR검사가 폐지되고 원화 가치 하락으로 여행경비가 저렴해지면서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나고 있다. 큰손이었던 중국인 관광객들은 중국의 엄격한 방역정책으로 아직 한국 방문은 눈에 띄지 않지만 그 자리를 일본, 유럽 등지의 관광객들이 메우고 있다.

 

서울 인사동 거리에서 외국인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딸을 보기 위해 한국을 찾은 미국인 질 백베이(58·여)는 "최근 입국시 PCR 검사 폐지 소식을 들었는데 이제 안해도 돼 너무 좋다"며 "골동품 같은 것을 좋아해 인사동에 왔는데 환율까지 좋아서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서울 경복궁역 인근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 인근에서 만난 싱가포르 국적의 크리스틴(30·여)도 "마침 어제 입국했는데 PCR검사를 안해서 시간도 절약돼 좋았다"며 "경복궁에서 한복 체험도 하고, 주변에 예쁜 카페도 방문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30분동안 100여명 이상 외국인 보여…살아나는 도심 관광지

2일 오전 서울 '명동거리' 중앙에서는 외국인 관광객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이날 오전 10시30분부터 11시까지 30분간 거리에서 확인한 외국인은 100여명이 넘었다. 여행 가방을 끌며 숙소로 이동하는 젊은 커플(짝)들부터 10여명이 함께 화장품 가게로 들어가는 모습까지 오전부터 명동거리에는 활기가 넘쳤다.

러시아에서 여자친구와 함께 이틀 전 한국에 도착했다는 세르게이(26)는 "우리는 단 하루 차이로 PCR검사를 했지만 이제 없어지는 만큼 더 많은 친구들이 쉽게 한국을 방문할 수 있어서 좋을 거 같다"며 "한국에는 2주 정도 머물면서 부산도 가고 지역 맛집도 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명동 거리에서 만난 한 관광통역안내원은 "올해 5월 이후부터 외국인 관광객들이 늘어나는 추세고 요즘 방역완화 기조가 더해져 지금처럼 이른 시간부터 외국인들이 많이 이곳을 찾는다"며 "특히 요즘은 중남미와 유럽 등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이 오는데 일본인들도 몇 달 전부터 한국에 무비자 입국이 되면서 크게 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 인사동 거리. 2022.11. 5 / 조문호사진


◇상인들 "방역조치 완화된 만큼 더 많은 관광객 한국 왔으면"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서울 주요 도심 관광지의 상인들도 덩달아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이날 오전 인사동 거리에서 플리마켓을 운영하는 정대철 자투리컴퍼니 대표이사도 "PCR검사 폐지 등 입국 완화조치를 하면 더 많은 외국인들이 들어올 거 같다"고 밝혔다.

인사동에서 삼겹살을 파는 모 식당 사장도 "최근에 외국인 손님이 늘었는데 저녁 시간의 경우 10명이 온다고 하면 2~3명은 외국인인 거 같다"며 "친구나 커플 단위로 많이 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명동의 한 화장품가게 종업원은 "요즘은 홍콩, 필리핀, 미국, 영국 등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올해 초에 비해 진짜 많이 오고 있고, 오늘도 이른 시간부터 바쁘다"며 "체감상으로는 올 초에 비해 지금이 2배 정도 외국인 손님이 많아진 거 같다"고 설명했다.

베트남 단체 관광객(10명)을 인솔한 가이드도 "현재 베트남에서도 한국으로 많은 사람들이 관광을 오려고 한다"며 "방역 조치가 더 완화된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화장품 가게뿐만 아니라 식당도 방문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뉴스1) 김동규 기자, 유민주 기자 

dkim@news1.kr

지난 주말은 지옥 같은 하루를 보냈다.

이태원 참사 소식으로 온 종일 일손을 놓고 가슴 태웠다.

 

젊은이들이 무슨 죄가 있어, 날벼락에 깔렸는지 모르겠다.

지긋지긋한 공부에 얽매어 살다, 모처럼 축제 한 번 즐기러 나갔다가 목숨 잃은 것이다.

대비는 물론 늦은 대처로 더 많은 인명을 잃게 한 정부의 무능에 할 말을 잃었다.

 

더 이상 슬픔에만 빠져 있을 수 없어, 다음 날 집을 나섰다.

인사동 북인사마당에 마련되었다는 합동 분향소를 찾아 간 것이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추모객은 많지 않았으나, 덕원스님 모습이 보였다.

비명에 숨져 간 청춘들에게 고개 숙여 명복을 빌었다.

 

인사동 거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소와 다름없었다.

 

가게에 걸린 상품은 안타까운 희생을 애도하는 조화처럼 보였고,

목 없는 한복 마네킹은 희생자의 넋인 냥 비통함을 더했다.

 

이재민씨의 이것은 돌이다전시 보러 나무화랑'에 갔다.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작가가 반갑게 맞아주었는데,

전시작은 여러 가지 형태의 돌이 그림과 병치되어 있었다.

 

불안감을 조성하는 허공에 뜬 돌은,  무의식의 세계를 현실 공간에 끌어들인 것 일까?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작가 마그리트가 연상되는 작품이었다.

실물인 돌을 그림과 연결시켜 이야기를 전개한 것이다.

 

꿈과 실제의 구분을 허문 작품들은 돌 덩이에 의한 중량감으로

화면에 팽팽한 긴장감을 불러 일으켰다.

작가의 철학적 사유를 감지할 수 있었다.

 

작품에 등장한 돌의 형태 또한 기묘했다.

때로는 섬이 되거나 산이 되어 서사적 의미를 더했다.

 

그날따라 이재민씨의 돌이 무겁게만 느껴졌던 것은

비명에 떠난 청춘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한 몫 했으리라.

 

이 전시는 오는 118일까지 열리니, 추모기간 동안 많은 관람을 바란다.

나무화랑은 인사동 합동 분향소와 백 미터 지점에 있다.

 

다 같이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추모합시다.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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