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어딜 가나 둘로 나누어진다.
마지막 분단국가의 한이 곳곳에 뿌리박혀 있다.
진보, 보수로 나뉘는 정치적 대립은 물론, 종교적 갈등도 마찬가지다.
색깔이야 다를 수 있겠으나, 문제는 다르면 상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 역시 광신도적인 종교적 성향을 가졌거나,
박사모 같은 보수꼴통의 친구들은 잘 만나지 않는다.
더구나 인터넷 매체에 노골적으로 박근혜를 씹어대니,
그들도 나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 살며 마음 주고 받으면 그만인데,
몰지각한 정치꾼이나 맹신도들의 놀음에 왜 우리가 휘둘리는지 모르겠다.





빈민들이 모여 사는 동자동도 마찬가지다.
일단 주민들을 돕는 조직부터 둘로 나뉘어져 있다.
주민들이 스스로 꾸려가는 ‘동자동사랑방’과
관변 조직 ‘서울역쪽방상담소’가 있는데, 서로 반목한다.

싶게 말해 애들처럼 사탕가지고 장난치지 말라는 것이다.
가시적인 지원행사는 빈민들의 자립심만 잃게 한다는 말이다.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이곳도 정치적 성향으로 갈려있다.
몇일 전 진보성향의 ‘동자동사랑방’ 정기총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축사 하는 분이 지금 인양되고 있는 세월호의 아픔을 잠깐 언급하자
한 분이 대뜸 일어나 총회에서 정치적인 이야기 하지 말라는 것이다.
세월호의 아픔이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자체가 슬픈 일이다.






지난 30일 시나리오작가 최건모씨가 내가 사는 쪽방을 방문했다.
‘동자동사랑방’ 박정아씨를 만날 일이 있다고 했다.
‘식도락’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박정아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건모씨에게 닥아오는 어버이날, 주민들 사진 돌려줄 수 있도록
사진 프린트 지원업체를 한 번 알아봐 달라는 부탁도 했다.






‘동자동사랑방’사무실 주변에는 여러 명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김정호씨는 사랑방 입구에 걸린 간판을 자기가 새로 만들었다며 자랑 했다.
최건모씨가 돌아간 후 ‘새꿈공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공원 입구에 버틴 목련 꽃송이는 터질듯 부풀어 있었다.
그 아래 정재헌씨가 이른 시간부터 낮술에 젖어 있었다.
목련꽃 몽울진 봄바람에 취했는지, 지난날을 그리워하며 허무를 달래고 있었다.
옆에 있던 김장수씨는 기계체조 선수 시절의 추억을 씹었다.






‘동자동사랑방’ 주변에는 낮에 술 취한 사람이 전혀 없지만,
공원주변에는 낮에 취한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술을 좋아하고 안 좋아하는 차이가 아니라
희망을 가진 사람과 희망이 없는 사람으로 나눌 수도 있겠다.
한 가닥 희망마저 포기했기에 죽음 제촉하는 독주를 대낮부터 퍼 마셔대는 것이다.





돌아서니 최남선씨가 나를 불렀다.
영정사진을 한 장 찍어 달라고 했다. 요즘은 사진 찍어달라는 부탁을 하면 반갑다.
가진 재주가 그 뿐이니, 주변에 세워 두 컷을 찍었다.
슬며시 내 손에 전해주는 베지밀 병의 온기가 따뜻하게 전해졌다.
정치논리에 휘둘리지 말고, 이처럼 따뜻한 온기를 나누었으면 좋겠다.

사진, 글 / 조문호



























몇 일간 심한 감기증세로 꼼짝않고 방에서만 지냈다.
일단 사진을 찍지 않으니, 일 할 게 없어 편했다.
컴퓨터도 켜지 않은 채, 들어 누워 천장만 바라보았다.
천장에 붙여 둔 천상병선생의 윙크하는 사진이 위안했으나,
점점 고립감이 엄습해 온다. 죽음에 대한 연습인가?

쪽방은 방문을 닫으면 옆방에 사람이 죽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철저한 고립만 남는다.

그렇지만 그 고립을 은근히 즐겨온 게 사실인데, 몸이 아프니 도리가 없다.
엊저녁엔 장경호씨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 찾아 와 병원가자고 난리를 피웠지만,

그마저 귀찮은 것이다. 사람이 싫어지면, 사진도 찍을 필요가 없고, 살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래, 봄이 올 때까지 한 번 기다려보자.

곧 입춘이니, 광화문광장에서 한 판 놀아야 할 것 아닌가.
이틀 만에 밥을 먹기 위해, ‘식도락’으로 내려갔다.
그마저 늦은 시간이라, 밥은 일인분만 남아 있었다.
발알 하나 남기지 않고 밥솥을 비웠으나, 도통 목구멍으로 넘어가질 않았다.
입맛이 없어 살기위해 먹는다고 생각하니, 비참해지더라.

아마, 나 혼자 먹었더라면, 밥 숱 가락 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어렵게 남을 돕는 공간이라 밥 한 톨 남길 수 없었다.
다 먹은 후, 맛있게 먹었다는 난에 스티커를 한 장 붙였다.
허미라씨가 매일 오후1시부터 주민들과 정 나누는 티타임을 갖는단다.
허마담이 타주는 다방커피가 그리웠으나, 커피만 안 된다니 정이나 나눠야지...

내가 모르는 '서울역쪽방촌상담소'에 대해, 최남선씨에게 많은 것을 물어 보았다.
쪽방촌상담소는 관에서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단체에 하청을 주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사랑방’으로 자리를 옮겨 김정호씨 에게도 여러 가지 물어보았다.
주민들이 자치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사랑방조합’에서 받아들이지 않는 단다.

관의 도움이나 간섭받지 않고,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 하게 위해서다.

 

줄 세우는 거지취급도 싫다지만, 그건 주민들이 바꾸어 가야 할 일이다.
피난민들을 위해 한국전쟁 때나 있었던, 줄 세우는 짓은 이제 끝내야 한다.
주민들에게 지급하는 물품도 날자를 정해, 시간 나는 데로 찾아갈 수 있도록 하고,
소량의 후원 물품도 돌아가며 나누는 방법으로 바꾸면 된다.
빈민들을 구제한다는 가시적인 효과를 노리는지 모르지만,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


좀 더 합리적인 여러 방안을 마련하여, 협상에 나서기로 작정했다.

저녁에는 안승룡씨 전시 오픈이 있어, 강남 ‘스페이스22’에 가야했다.
반가운 분들 만났으니, 어찌 술잔을 마다할 수 있겠는가?

몇 잔 마시지 않았는데도, 어지러워 일어나야 했다.

돌아오는 길의 서울역 지하도엔 웅크려 자는 노숙자가 나를 비웃는 듯 했다.


저렇게도 살아가는데, 어찌 힘내지 않을소냐?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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