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거리는 항상 사람들이 붐비지만 전시장은 대부분 비어 있다.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겠으나 사람들을 전시장으로 끌어들일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오래전부터 인사동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소식을 인사동관광안내소에 비치하라는 등

여러 가지 대안을 제시했으나, 담당 공무원에게는 쇠귀에 경 읽기였다.

 

종로구청문화관광과 담당 공무원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인사동 상인들 모임인 인사전통보존연구회만 믿는지 모르지만,

서로의 돈벌이를 먼저 생각하는 상인들 모임에서 무슨 전통문화를 보존한단 말인가?

 

인사동 큰 길가의 매장들도 많이 바뀌어 있었다.

사거리에 있던 전통 한지 가게가 ‘BLING BOX’로 변신해 있었고,

곳곳에 대규모 모자가게가 들어서 있었다.

 

인사동에서 기존 전통 가게가 살아남기는 힘들어졌다.

거리는 대부분 관광객인데, 그날따라 잼버리에 참가한 스카우트 대원들 모습도 많이 눈에 띄었다.

인사동이 한국의 대표적 관광코스는 되었으나, 인사동 고유의 특색은 보기 힘들어졌다.

 

그나마 버스킹 나선 연주자들이 삭막한 분위기에 윤활유 역할을 해주는데,

젊은 퍼포머들을 끌어들여 다양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것은 어떨까?

 

복잡한 거리에서 탈 사람도 없는 관광용 아띠인력거를 운영하는 것보다는

옛날 약장수나 극장 포스터를 붙여 등짐 북을 치고 다니던 것처럼, 등짐 북을 재연하면 어떨까?

 

오랜 향수를 끌어들이는 재미도 있지만,

그날 열리는 인사동의 중요한 전시 포스터를 붙여 거리에서 등짐 북을 치고 다닌다면,

유독 전시장이 많이 몰린 인사동 홍보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그뿐 아니라 거리에 전시 현수막이나 다양한 홍보물을 설치할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한다

 

문제는 그 많은 전시 중에 볼만한 전시 한두 개를 선택하는 방법에 있다.

그 전시 광고를 신뢰할 수 있게 만들려면, 전문가가 나서야 한다.

절대 특정 개인이 개입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미술평론가 몇 분으로 구성된 선정위원회를 만들면 될 것이다.

홍보하는 전시를 신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다.

인사동 고유의 전통문화나 전시문화를 소개하는데, 전문가 개입 없이는 빛 좋은 개살구다.

 

작품성도 작품성이지만, 그때그때 사회적 이슈가 될만한 좋은 전시를 알려준다면,

이보다 더 유익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사실, 인사동에서 전시를 보려고 해도 어디에서 좋은 전시가 열리는지 몰라 방황할 때가 많다.

 

인사동에서 열리는 좋은 전시를 알릴 수 있는 선정위원회를 잘만 운영한다면,

인사동 전시문화도 살릴 수 있고관광객에게 좋은 정보까지 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 복잡한 거리에 트럭이 들어와 수박을 팔고 있었다.

차량 출입을 통제하는 인사동 거리에 몰래 비집고 들어왔으나, 큰 착각이었다.

 

사람이 많아 잘 팔릴 것으로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인사동 관광 나와 누가 그 큰 수박을 들고 가겠는가?

차라리 변두리 주택가를 도는 것이 훨씬 나을 것 같았다.

 

머리가 안 돌아가면 돈도 못 벌고 몸만 고생시킨다.

그 수박 장사꾼만이 아니라 종로구청 담당자도 마찬가지다.

 

/ 조문호

 

 

 


엊그제 인사동에 들려 어느 외국관광객 팀을 따라 다니며 유심히 지켜보았더니,

대부분 큰 길가에 있는 잡화상만 기웃거리며 군것질만 하다 돌아갔다.
아무 매력을 느끼지 못한 듯 한데, 그런 사람들이 두 번 다시 인사동을 찾겠는가?




날이 갈수록 변질되어 가는 인사동을 그냥 두어서는 안 된다.

전통과 예술의 거리로 살려 낼 방법을 다 같이 찾아내야 한다.
정체성을 잃고 잡상들만 득실댄다면, 인사동의 유명세를 언제까지 유지하겠는가?




인사동은 우리 전통과 함께 예술가들의 발자취가 담긴 곳이다.




먼저, 인사동의 역사부터 한 번 살펴보자.
조선 건국으로 수도가 된 한양은 창덕궁이 있는 북촌 주변에
고관들의 집과 양반들의 저택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멀리 떨어진 북악산과 남산자락에 모여 살던 양반들이 이곳으로 옮겨 왔다고 한다.




이후 북촌은 조선의 역사와 함께 500년의 역사를 지켜왔지만,
1900년대 초 일제에 의하여 왕조가 무너지고 신분제가 사라지며,
북촌 양반들의 가세는 하루가 다르게 기울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먹고 살기 막막해진 지체 높은 양반들이 집안의 귀중한 물건을 내다 팔기 시작하며
북촌주변이 점차 골동품시장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한다.




일제는 1914년 관인방 일대의 이름을 인사동으로 바꾸었다.




해방 후에는 전통과 현대의 모습이 뒤섞인 매력에 끌려 예술가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전통찻집과 전시장들이 생겨나며 전통과 낭만의 거리가 형성된 것이다




인사동에 화랑과 표구점이 많이 들어서며 미술인의 출입이 꾸준히 늘어났다.
60년대 명동을 거점으로 모이던 문인들이 관철동을 거쳐,

70대 후반 인사동으로 옮겨오며 '사루비아'다방을 거점으로 인사동 문화가 꽃 피우게 된다. 
80년대 초반에 생긴 천상병시인의 찻집 ‘귀천’과 '누님칼국수'로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들었고,

'실비집'과 '하가'는 물론 피맛골'에 박종수시인이 문을 연 '시인통신'도 많은 예술가들이 더나들었다.

90년대 들어 이해림씨가 개업한 '평화만들기'에는 예술가들과 기자들이 많이 출입하기도 했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인사동에 시인들과 관련된 자리가 많았다는 점이다.

63년 김상옥시인이 '아자방'이란 골동품점을 차려 문인들의 교류처가 되었고,

목순옥씨가 차린 '귀천'에 이어 84년도에는 정동용시인이 교장으로 있던 '시인학교'도 개업했다.

그 이후에는 '순풍에 돛을 달고'에서 이생진시인이 정기적인 시낭송회를 가졌으며,

음유시인 송상욱씨가 인사동에 집필실을 차리기도 했다.

그리고 2014년 소리시인 이춘우씨가 시 낭송회를 위한 업소 '시가연'을 개업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전시공간이 몰려 있어 미술인들의 출입이 많았던 반면, 문인들의 출입도 이에 못지않았다.
그 이후 '귀천'의 천상병선생과 목순옥여사를 비롯하여 민병산, 박이엽, 강 민, 심우성선생 등

인사동을 사랑하던 많은 분들이 돌아가시고, 살아계시는 분마저 몸이 불편해 잘 나오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제 대형건물이 여기 저기 들어서고 새로운 가게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며
옛 모습은 오간데 없이 사라지고, 예술가들의 발길마저 서서히 끊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인사동에 애정을 쏟아 붙는 사람들도 여럿 있다.

천상병기념사업회’ 이사장 김명성씨는 긴 세월 동안 사재를 털어 인사동 예술가들을 지원해 왔다.

틈틈이 모임을 주선하여 예술가들의 판을 만들고, 원로들에게 여비까지 챙겨주는 애정을 보였다.

‘통인가게’ 김완규회장은 무료 판소리공연을 정기적으로개최하여 우리문화를 알리는데 힘 써 왔으며,

‘나무화랑’을 운영하는 미술평론가 김진하씨는 좋은 전시들만 유치하여 인사동 전시문화에 기여한 바가 크다.

그리고 작고한 김수영시인이 찍힌 판화를 담벼락에 붙이는 Street Art를 펼치는 이태호교수 같은 분이 있기에

인사동은 아직 희망이 있는 것이다. 내가 몰라 그렇지, 어디 이 뿐이겠는가?




지금이라도 전통과 낭만의 거리를 되찾기 위해 많은 분들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
먼저 인사동에 몰려 있는 전시장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만들자.




그 첫 번째 시도로 인사동 전시 소식을 알려주는 간단한 주간지를 만들어 안내소에 배치하자.
미술평론가 한 분을 선정하여 전시 소식지를 만들고 좋은 전시를 집중적으로 소개하자.
또한 인사동에서 전시되고 있는 다양한 전시를 홍보하므로서, 명실상부한 전시문화의 본거지로 만들자.




둘째, 예술가들이 다시 인사동으로 모여들게 만들어 인사동 낭만을 부활시키자.
천상병시인, 민병산선생, 박이엽선생, 중광스님 등 돌아가신 분들의 동상을 골목에 세우는 등

인사동에 예술혼을 불어넣자.




인사동의 매력은 이리 저리 얽힌 수 많은 골목이 아니던가?
골목마다의 특징을 살려 문학의 거리나 미술의 거리로 지칭해
예술가들이 한 곳으로 모여들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찻집이나 술집, 어디를 가도 반가운 예술가를 만날 수 있다면 자연스럽게 모여 들 것이고,
예술가들이 뿜어내는 멋이 낭만의 거리로 자리 잡게 할 것이다.




기존의 ‘인사전통문화보존회’는 상인들의 모임이라 기득권을 지키려 하고.
‘종로구청’ 또한 그들의 눈치나 보는 탁상행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제 인사동을 사랑하는 예술가들이 힘을 모아 나서는 길 밖에 없다.
다 같이 지혜를 모아 종로구청과의 협의체부터 구성할 것을 제안한다.

인사동을 사랑하는 많은 분들의 관심과 협력을 부탁드린다.

사진, 글 / 조문호


















달이 바뀌면 제일 먼저 하는 일 중의 하나가 인사동 나가는 일이다.
‘서울아트가이드’를 얻어와 한 달 동안의 인사동 전시일정을 알리기 위해서다.






지난 1일은 정선에서 죽도록 고생만하고 돌아와, 이틀 날 정오 무렵에야 인사동에 들렸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아라아트’ 건물 전면에 걸린 대형 현수막이었다.

매번 텅텅 비어있던 ‘아라아트’ 전시장에 모처럼 대형전시를 하나 유치했더라.






‘보헤미안 랩소디 퀸 월드투어’전이 7월7일부터 3개월 동안 열리는데, 

 ‘인터파크’에서 입장권을 판매하는 흥행전이라 관람객은 제법 몰릴 것 같았다.






김명성씨가 만든 ‘아라아트’가 중국자본에 넘어간 지가 몇 해가 되었건만,

그동안 7개 층의 대형 전시장에 전시 한 두 개가 있으면 많은 편이었다.

경매에 넘어가기 전에는 전시장을 놀리지 않고 볼만한 초대전을 계속 유치했지만

지금은 오로지 대관전에 목을 매니, 볼거리도 갈 일도 별로 없었다.

예술에 관심없는 장사꾼이 하는 일이라 걱정할 필요는 없으나, 두고 볼 일이다.






그 아래 있는 ‘H갤러리’의 쇼케이스에는 김정열씨의 산이 두 개 매달려 있었다.

일단, 지나치는 이의 눈길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인사동 큰길로 들어서니, 몰려 다니는 관광객들의 행렬이 여전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예향으로 꼽히는 인사동을 찾는 관광객들이

곳곳에 늘린 전시장에 들려 작품 감상 하는 일은 왜 그리 인색한지 모르겠다.





관광객들의 예술에 대한 무관심도 문제이긴 하지만,

대외적으로 인사동을 알리는 홍보에도 큰 문제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종로구청'이나 '인사전통문화보존회'나 다들 제사보다 젯밥에만 관심이 있는 듯하다.





거리는 안내책자를 보거나 사진을 찍는 등,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관광객들로 부산하다.

더러 골목 식당가를 기웃거리는 여인네 동창 모임도 종종 볼 수 있는데,

남정네들의 동창 모임은 별로 없다는게 특징이다.

있어도 한 둘 술집에 모여 회포를 푸는게 고작인데, 주눅 들어 사는 사내들의 현실이다.






매장 부근으로 모여드는 비둘기 쫓느라 분주한 가게 주인 모습이 인상적이다.
“훠이~ 훠이~ 인사동에 잡귀는 물러가라!”



사진, 글 / 조문호


























인사전통문화축제가 지난 9일부터 15일까지 인사동 전역에서 펼쳐졌다.

주말을 맞은 12일은 거리퍼레이드와 개막공연으로 인사동거리가 흥청거렸고,

대취타와 풍물소리에 맞춘 길놀이 행열은 초가을의 인사동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나들이 나온 시민들과 외국 관광객들은 들뜬 기분으로 개막공연이 이어지는

남인사마당으로 따라들었으나 공연장 좌석은 이미 자리 잡은 어르신들로 꽉 찼다.

관광객들은 자연스럽게 공연장 주변으로 모여들었는데,

그만 개막식을 알리는 지루한 인사말들이 축제의 흥을 끊어버렸다.

아주 공식적인 국민의례에 이어 보존회장, 구청장, 구의회의장을 비롯한 내빈 축사까지 이어졌다.

대부분의 시민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지켜보았으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관광객들은

한 사람 두 사람 빠져 나가기도 했다.

 

어느 지역의 축제에 가든 개막식전 행사는 다 한다.

대부분의 축사들이 공치사에 불과해 지루하기 짝이 없지만, 모두들 참고 들어왔다.

이젠 방법을 바꿀 때도 되었다. 더구나 종로구는 정치일번지고 인사동은 문화일번지 아니던가

인사동부터 그러한 전례를 과감히 깼으면 한다.

많은 외국인들이 지켜보는 자리의 국민의례도 그렇거니와 지루한 인사말이란 모두 공염불에 불과하다.

돌아서면 아무도 그 말을 기억하지 못한다.

 

이젠 처음부터 끝까지의 모든 진행과정을 사회자에게 맡겨 무대를 재미있게 끌어가자.

공연 진행하는 중에 간간히 주최 측 인사들을 불러 박수를 쳐 주는, 생색내는 방법도 달리하면 된다.

공짜로 보여주는데 그것도 못 참느냐?” 랄지 모르지만, 그 돈은 다 국민들의 세금이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국민들의 깬 의식을 따라가지 못해, 매번 욕을 얻어먹는 것이다.

 

이날 공연은 박기덕 아나운서의 사회로 한복패션쇼와 광개토사물놀이예술단의 사물놀이,

국악소녀 송소희양의 소리, 그리고 가야금병창 등 볼거리 풍성한 잔치마당이 되었다.

특히 박지현 디자이너의 수려한 품격 뒤에 숨은 화려한 유혹이란 한복패션쇼는 짱 이었다.

궁중의상과 양반 및 기생한복, 그리고 전통한복을 응용한 웨딩한복, 파티한복, 어린이 퓨전한복에

이르기까지 새련미 넘치는 의상들로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 밖에도 도자기, 목 가구, 유물 등을 보여주는 내안의 겨레 얼이란 인사고미술잔치,

표구제작체험, 전통음식체험 등 다양한 부대행사들이 인사동 곳곳에서 펼쳐졌다.

 

인사전통문화축제를 더욱 빛내려면, 앞으로 쓸데없는 공치사는 생략하자.

 

사진, / 조문호

    



















































 

 


 

인사동의 서민 휴식 공간인 ‘인사문화마당’이 특정인에게 빼앗긴지 오래다.

이곳은 30여 년 전 예총회관이 있던 자리로 ‘포도대장과 순라꾼’들이 사용했던 곳이었다.
인사동을 찾는 서민들이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 뽑아, 약속한 벗들을 기다리기도 하고,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 정담을 나누던 인사동에 남은 마지막 숨구멍이었다.

종로구청에서는 북인사마당에서 인사 사거리까지 차 없는 거리로 만들면서

노점상들과 합의해 포장마차들을 그 곳에 수용했다고 하지만,

오래 전 인사동 주변의 포장마차들은 공평동 방향의 화신 먹거리촌으로 모두 옮겼었다.

3-4년 전부터 이 곳 ‘인사문화마당’은 포장마차들이 모인 먹거리 촌으로 변했는데,

언제부터인가 마치 특정인에게 분양한 것처럼 두 가건물이 들어서며 넓은 마당 전체를 점거해 

대나무 숲이 있는 안쪽에는 일반인들이 들어갈 수도 없게 만들어 놓았다.

포장마차란 서민들이 작은 돈으로 요기를 하며 술도 한 잔하는 선술집 형태였지만,

요즘은 그 규모도 커지고 가격도 일반 음식점보다 결코 싸지 않다.

‘인사문화마당’은 문화가 실종되어가는 인사동의 마지막 희망이다.

그 곳을 장사꾼들에게 넘겨주는 일은 절대 용납할 수 없으며,

특혜를 받은 그 들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되었는지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종로구청은  ‘인사문화마당’을 빠른 시일 내에 복원하라.

 

사진,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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