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을 하루 앞둔 31일 정오 무렵,

인사동에서 유목민을 운영하는 전활철씨가 집을 방문했다.

선물꾸러미를 들고 인사차 들렸는데, 대접할 음식이 마땅찮았다.

설날 세찬과 함께 마신다는 도소주는 없으나 대마불사주로 목을 달랬다.

 

이년 넘게 어렵사리 가게를 끌어가는 그로서는 빨리 코로나 역병이 끝나고

정상적으로 영업 하도록 해주는 것이 새해의 바람일 것이다.

만사형통을 기원했지만, 다들 나이가 들어 건강이 문제다.

 

이제 건강을 챙겨야 할 연식이라 술을 줄이는 것이 우선이지만, 그게 쉽지 않은 일이다.

활철씨는 당뇨가 심해 술을 멀리해야하지만, 술장사가 어찌 술을 마다할 수 있겠는가?

나 역시 술만 마시면 숨이 가빠 정신을 못 차리지만, 거절할 줄 모른다.

그러나 혼자서는 마시지 않고 주량도 점차 줄여나가니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니다.

 

설날 정오 무렵, 유목민에서 가까운 분들과 술 한 잔하기로 했다기에 나도 가겠다고 했다.

활철씨가 시장 보러 가야한다며 일어나기에 나도 하던 일을 마무리했는데,

자고나니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며 으슬으슬 추웠다.

감기 같았지만, 불길한 생각도 들어 온 종일 누워 뒤척였다.

 

유목민에 가겠다고 한 약속이 마음에 걸렸으나 어쩔 수 없었다.

그 다음 날 오후에야 몸을 추서려 인사동에 나갔다.

좀 이른 시간이라 거리를 돌아다녔는데, 설 분위기가 나지 않았다.

한복 입은 사람은 커녕, 거리에 나온 사람도 많지 않았다.

이곳저곳 전시장만 기웃거리다 유목민으로 발길을 옮겼다.

 

벽치기 골목을 들어서니 담배 피우러 나온 정영철씨가 멀리서 반가워했다.

오후 여섯시 밖에 되지 않았으나, ‘유목민엔 손님이 제법 있었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정영철씨와 필립, 두 사람 뿐이었다.

여지 것 약속 없이 술 마시러 나온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입구에 자리 잡아 전활철씨와 술 마시며 그간의 사정을 얘기했다.

어제는 몸이 아파 오늘 왔다니까,

자기도 어제는 몸이 좋지 않아 안원규씨 에게 맡겨두고 잤다는 것이다.

이인섭선생과 장경호씨 등 몇 사람 나오지도 않았다며

어제 먹다 남은 갈비 살이 있다며 한 접시 구워냈다.

 

얼마 전 김홍성씨가 페북에서 궁금해 한, 적음의 산문집에 대해 물어보았다.

"오래 전 김홍성씨 서문까지 받아두었으나,

시집 저녁에가을밤의 춤만 내고 산문집은 출판하지 못했다"고 한다.

적음의 정리되지 않은 많은 원고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아 손을 대지 못했다는데,

유목민에 메달리다 보니 출판에 관한 일은 손댈 겨를이 없었던 것 같았다.

누군가 그 일을 맡아 마무리 했으면 좋겠다.

 

마침 가을밤의 춤표지에 사용된 신준식의 담뱃불 그림 속에

적음 육필로 쓴 파적이란 시가 적힌 작품이 벽에 붙어 있었다.

김홍성씨 말처럼, 적음의 음모정렬체가 또렷했다.

 

"너와 나의 중간에

한 조각 흰 구름 무심히 떠 있어

오늘 하루도

그냥 스쳐 지나간다."

 

- '파적' 부분-

 

두 사람 다 술 때문에 요절한 친구가 아니던가?

적음은 암자에서 술 취해 자다 기도가 막혀 죽었고,

신준식은 술이 취해 길 건너다 차에 받혀 죽었다.

아무리 운명의 장난이라지만, 어찌 이리 기구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인사동 이야기사진전 이후의 불편한 심정도 털어 놓았다.

 

홀짝 홀짝 마시다 보니 한라산을 두 병이나 깠는데, 손님이 하나 둘 일어서기 시작했다.

이제 여덟시 반 밖에 되지 않았으나 혀 꼬부라진 소리가 여기저기 들리며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는 걸 보니 끝날 시간이 된 것 같았다.

이년 넘게 끌었던 코로나가 주당들의 음주문화까지 바꾸어 버렸다.

처음 보는 나야 황당했지만, 활철씨는 익숙한 듯 자리를 치웠다.

 

나 역시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데, 여지 것 이른 시간에 술 취해 돌아간 적이 있었던가?

하릴없이 인사동 밤거리를 방황했다.

거리의 악사가 연주하는 흥타령이 잠잠한 인사동을 들썩였다

 

그런데, 택시를 타지 않고 지하철을 타는 실수를 저질렀다.

술이 취하면 숨이 가빠 마스크를 쓸 수가 없는데,

대중교통에서 어떻게 마스크를 벗을 수 있겠는가?

경노석 구석자리에 앉아, 몰래 숨 한 번 크게 쉬고 다시 쓰는 일을 반복한 것이다.

 

세상에! 숨 못 쉬면 죽는 것 아닌가? 그 고통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산소호흡기 달린 마스크는 나오지 않는가?

정초부터 저승 문턱에 갔다 온 것 같다.

 

사진, / 조문호

 

 




지난9일 오후에는 모처럼 감질나는 비가 내려 인사동 열기를 식혀주었다.






종종걸음 치는 행인들도 하나같이 싱글벙글이다.

얼마나 더웠으면, 비 맞으며 식사하는 행상도 있었다.






잠시 내리다 그쳤지만,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 마치 초가을에 접어든 기분이었다.






돌 턱에 앉아 담배 한 대 피워 물었더니, 지나가던 정영철씨가 반가워 인사한다.





우연한 반가움이 인사동의 즐거움이고, 한 가닥 희망이다.
인사동
은 사람을 만나야 낯설지 않다.



사진, 글/ 조문호














지난 27일 김명성씨로부터 수상 축하주를 사겠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허구한 날 마시는 술이지만, 또 다른 술 마실 핑계 하나 만든 것 같았다.
마침 통의동 ‘인디 프레스’에서 열리는 양승우씨의 사진전에 들려서 가기로 했다.





이 날 따라 빌린 카메라의 전지가 소모되어 사진조차 찍을 수 없었다.
다른 사진은 차지하고라도 전시리뷰에 사용할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야 하는데,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하는 수 없어 카메라를 가진 이상엽씨에게 한 장 부탁했는데,
아직까지 감감소식이다. 개막식을 하는데, 빨리 오라는 독촉전화가 걸려왔다.
오랜만에 만난 양승우씨를 비롯하여 인디프레스 김정대관장,
이 전시를 기획한 황정수씨 등 반가운 분들이 많았으나, 살그머니 빠져 나와야 했다.





인사동 ‘유목민’에는 김명성씨를 비롯하여 도예가 김상기씨와 김각환씨가 자리를 만들어 놓았다.

전주 한봉림씨 작업실에서 벌인 포말 퍼포먼스 이후 처음 만났으니,

화제는 자연스럽게 그 때의 긴박한 상황으로 돌아갔다.

길길이 날 뛰던 김명성씨를 제압한 사람이 김각환씨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날 사고를 친 이상훈씨가 한봉림씨께 죄송하다는 전화조차 없었던데 분개하고 있는데,

슬며시 이상훈씨가 나타났다.






양순하게 생긴 그의 모습에서, 악마 같았던 그 날의 모습이 오브랩되었다.
술이 원수인지 모르지만, 어떻게 그 지경을 만들었는지 자신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도망쳐 나와 여지 것 전화 못했던 것도 너무 엄청난 일을 저질러 두려워서 못했다는 것이다.
어렵사리, 사과하며 찾아뵙겠다고 전화를 드렸다며, 그 날의 악몽을 되새겼다.






재미있게 놀 때, 전활철씨가 부른 ‘청춘’이란 노래도 한 몫 했을 것이다.
80년도 후반기 민주화 열망에 학교마다 전쟁터가 되었던 때가 되살아났다는 것이다.
포커판에서 여러 번 고배를 마시다 모처럼 결정적인 패를 잡았는데,
느닷없는 포말세례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고,
학생시절 직격탄을 맞은 최류탄으로 착각되어, 적개감에 난리를 피웠다고 한다.





아무턴 ‘미지랄’이란 전무후무한 역작을 탄생시켰으니, 언젠가 서명하러 가야 한다며 한 바탕 웃고 넘겼다.

뒤늦게 정영철씨와 정영신씨가 나타났다.
카메라가 없어 사진 한 장 찍지 못한 터라 죽은 사람 살아온 듯 반가웠다.
카메라를 건네받아 사정없이 갈겼더니 속이 좀 후련했다.
군인이 무기가 없으면 맥 못 추듯, 찍사가 카메라 없으면 찍사도 아니다.
찍고 나면 그 사진 정리하느라 낑낑대지만, 이게 업인데 어쩌랴!

사진, 정영신,조문호 /글, 조문호















지난 20일, 막사발로 통하는 도예가 김용문씨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모처럼 인사동에 나왔으니, 얼굴 한 번 보자는 거다.
그 날은 짐 옮길 일이 있어 차를 끌고 나왔는데,
술 한 잔 하려면 차를 돌려주어야 했으나 시간이 없었다.
박도선생의 ‘미군정3년사’작가와의 만남‘ 뒤풀이로 시간이 지체된 것이다.
술은 미시지 못하더라도 얼굴만 볼 작정으로
종로경찰서 옆에 있는 관훈주차장에 밀어넣고 ‘유목민’에 들렸다.






‘유목민’에는 사기꾼들이 여럿 앉아 있었다.
막사발 장인 김용문씨를 비롯하여 분청하는 변승훈씨와 이형석씨도 있었다.
안쪽에는 화가 정영철씨와 성애씨도 자리를 잡았더라.


인사동에서 김용문씨를 처음 만난 지가 30년도 더 되었으나, 오랜만에 만난 것이다.
터키 하제테페대학교 도예과 초빙교수로 떠나며 보기 힘들어졌는데,
페북에서 근황을 지켜보았던 터라, 겉으로 변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마치 트레이드마크처럼 말아 올린 상투가 막사발 같은, 그런 친숙한 모습이었다.






더구나 변승훈씨까지 오랜만에 만났는데, 어찌 술 한 잔 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제일 잘 지켜지지 않는 약속이 차 때문에 술 먹지 않는 일이다. 
한 잔만 한 잔만 하다 발동이 걸려 '에라~ 모르겠다. 퍼 마신 것이다.
김용문씨에게 터키에서 전시한 수묵드로잉이 좋았다고 이야기했더니,
인사동에서도 그 전시를 한다는 것이다.
이달 31일부터 보름동안 ‘나무화랑’에서 한다는 데, 술 마실 건수 하나 생긴 것 같았다.






그리고 주변에서 들은바로, 삼례역의 막사발미술관을 비우라는
통보가 왔다는데, 사실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다는 것이다. 
외국에 체류하는 날이 많아 자주 비워 그런지는 모르지만, 너무 아쉬웠다, 
그동안 세계막사발 축제로 쌓아놓은 탑을
어떻게 그리 쉽게 무너트릴 생각부터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최소한 작가와 협의하여 명맥을 이어갈 수 있는 방법부터 협의했어야 했다.






그런데, 변승훈씨가 자기 후배한테 찾아가 이빨하라며 성화다. 
그동안 대신 부담할테니 이빨 하라는 사람이 여럿 있었지만, 싫었다.
남에게 부담 주는 것도 싫지만, 그보다 오가는 게 번거로워 싫었다,
이번에도 변승훈씨가 해주겠다며 망가진 이빨을 핸드폰으로 찍어
후배에게 견적을 내보라며 부산을 떨어댔다.
나이 들면 하나 둘 망가지는 게 이치고,
그렇게 사라지는 게 인생인데, 더 이상 무슨 소용이랴!






강행복, 손기환씨를 비롯한 여러 명이 등장해 술집 분위기는 한층 무르익어갔다.
취하면 취할수록 차 걱정에 술 맛이 없었다.
어차피 대리운전을 불러야 했으나, 점차 올라가는 주차비가 걱정되어서다.
비상금으로 꼬불쳐 둔 신사임당 한 장 뿐이라,
대리운전을 부를 수밖에 없었는데, 나 또래의 늙은이가 왔다.






그런데, 주차장을 빠져 나가려니 차단기가 열리지 않았다.
아무리 찾아도 주차관리인은 물론 현금 넣는 기계도 없었다.
비켜달라는 뒷차의 경적에 빼고 박기를 반복하였으나, 나갈 방법이 없었다.
30여분을 씨름하다 뒤늦게 알았는데, 카드만 사용할 수 있는 주차장이란다.
신용카드가 없으면 차도 끌고 다닐 수 없는 요상한 세상에 잠깐 어리둥절했는데,
갑자기 인사동이 아니라 외국에 온 냥 낯설었다.






하는 수 없어 ‘유목민’의 전활철씨를 불러 해결했으나, 마음이 편치 않았다.
목적지인 녹번동으로 가자고 했더니, 수동에 익숙하지 않은지 시동 꺼트리기를 밥 먹듯 했다.
그런데, 어떻게 운전을 하는지 차가 탱크 달리는 소리를 냈다.
기사가 본래부터 소리가 심하냐고 물었지만, 아니었다.
속으로 마후라가 터졌나 걱정되기도 했으나, 뭔가 조작을 잘 못한 것 같았다.
차라리 내가 운전하는 게 더 편할 것 같았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간신히 도착해 차를 점검해 보았더니, 여지 것 사륜구동으로 달린 것이다.





“에라이! 이 아저씨야~”
그 실력으로 대리운전 하다니, 참 사는 게, 다 힘든 것 같았다.

족쇄 같은 차 때문에 시달리는 일도 이제 그만하고 싶다.
지공도사 형편에, 주제 파악 하라는 야유가 뒤통수를 치더라.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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