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도예의 거목 한봉림씨가 요즘은 그림 삼매경에 푹 빠졌다. 
작년에 완주 작업실에 가보았더니, 완성된 대작들과 진행 중인 작품도 있었다.

아마 원광대에서 정년퇴임하며, 그림에 매달렸던 모양이다.
이미 그만의 확고한 작품세계를 보여주어, 보는 이를 놀라게 했다.






지난 12일에는 그가 상경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끼는 몇 안 되는 제자 중의 한 사람이 인사동에서 전시를 한다는 거다.
그동안 인사동에서 술 한 잔하자는 말은 여러 차례 오갔으나 성사되지 않았는데,
모처럼 친구와 한 잔 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인사동의 ‘인사아트센터’6층으로 올라가니 최범홍씨의 도예전이 열리고 있었다.
한봉림씨와 안문선씨가 먼저 와 있었는데, 전시된 작품들이 너무 좋았다.
“연을 먹인 器”란 제목이 붙은 최범홍씨의 도예작품은 묘한 마력이 있었다.
연 먹인 빛깔도 이채롭지만, 도자에 번진 무늬가 신비로웠다.





뒤틀린 도자 작품들도 있었는데, 인상적이었다.
난, 마음이 뒤틀려 그런지, 뒤틀린 작품이 좋았다.
좌우지간, 한봉림씨가 아낄만한 제자였다.






식당으로 옮기는 길에 시장 봐 오던 ‘유목민’의 전활철씨를 만나기도 했다.






‘툇마루’ 된장비빔밥으로 간만에 입맛을 돋구었는데,
한봉림씨는 밥은 거들떠보지 않고 술만 마셨다. 점심은 본래부터 안 먹는다나...
그냥두기 아까워, 두 그릇이나 먹어 치웠더니, 술 들어 갈 자리가 없었다.
낮술에 쥐약인 내가 그 날 살아남았던 이유다.






한봉림씨는 인사동 옛 이야기로 시간가는 줄 몰랐다.
학창시절엔 연적을 만들어 인사동 필방에 납품한 적도 있단다.
그가 디자인한 독특한 맵시의 연적을 필방주인이 좋아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 만난 친구가 인사동의 양두 거목인 ‘통인가게’ 김완규 대표와

공화랑’의 공창호 대표라는 것이다.
두 사람 모두 학교 다니는 것 보다 전통 문화를 더 좋아했다고 한다.






공창호씨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표구점에 들어갔지만, 김완규씨는 달랐다.
학교를 안 가고 가게를 기웃거리니, 부친께서 가게 점원으로 일시키고,
대신 밤에 가정교사를 불러 공부시켰다고 한다.
한 분야에 일가를 이룬 장인이란 정규교육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그리고는 하소연을 늘어놓기도 했다.
작업이 풀리지 않아 “내가 왜 이 짓을 하냐?”며 붓을 놓은 적도 있단다.
그렇지만 한봉림이가 누구인가? 그 장인정신은 기어이 뿌리를 뽑는다.






요즘은 밤 그림자에 끌려 다닌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몇 시간동안 어두운 밤길을 혼자 걸어 다닌다고 한다.
아내는 “몽유병 환자처럼 어디를 떠돌아 다니냐?“고 타박한다지만,
대붕의 뜻을 누가 알리오.
그가 구상하는 작품이 어떤 울림으로 닥아올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빈 술병이 몇 개나 나왔다.
안문선씨가 술을 마시지 않으니, 한봉림씨가 세병은 마신 것 같았다.
이미 고속버스 표를 예매해 둔 터라, 더 마실 수는 없었다.






안국역으로 지하철 타러 갔다.
난 습관적으로 인사동 거리를 찍다 반가운 사람을 만난 것이다.
화가 장흥래씨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일행이 보이지 않았다.
부리나케 지하철로 내려갔는데, 이산가족 찾는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빨리 종로경찰서 앞으로 오라는 것이다.
다른 방향으로 가는 안문선씨를 배웅해 주고, 지하철로 내려와서는 나를 잠시 보잖다.
똘똘 뭉친 파랑새 뭉치를 내손에 쥐어주며, 술 사먹지 말고, 밥 사먹어란다.
친구의 따뜻한 마음이 추위를 녹였다.


"고맙다 친구야! 술 안주로 밥 사먹을께..."



 사진. 글 / 조문호










































설날이 기다려진 기억은 아득한 어린 시절뿐이다.
어른이 되고부터는 항상 걱정거리였다.
늘 마이너스 살림이라 나갈 돈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신통하게 잘 버텨 왔는데,
인생 말년이 되니, 걱정거리가 바뀌었다.

돈보다는 소외감이다.
다들 가족과 지내니, 사람도 만날 수 없고 밥도 사 먹을 수 없다.
밥이야 동자동 나눔의 집에서 지낼 합동 제사에서 얻어먹겠지만,
조상님 뵐 면목이 없는 것이다. 아마 자식 잘 못 둔 죄를 통탄 하실 것 같다.
이런 저런 허망함에 빠졌는데, 화가 이인철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명절 전에 촬영한 수고비를 준다며, 인사동 ‘민예사랑“에서 만나자는 것이다.





‘민예사랑’에는 장재순씨와 이인철, 류충렬씨도 와 계셨다. 뜻밖의 반가운 만남이었다.
문영태화백의 미망인 장재순씨로 부터 편지까지 쓰 넣은 예쁜 돈 봉투를 받으니,
쑥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사양했겠지만, 그럴 형편이 아니었다.

떡 본김에 제사지내듯이, 정영신씨를 불러냈다.
만나 삼계탕 사 주러 가는데, 뒤에서 누가 불렀다.
돌아보니 화가 장흥래씨였다.
어떻게 우리 마음을 알았는지, 바쁘지 않으면 삼계탕 먹으러 가자신다.






그 분을 처음 만난 것은 몇 개월 전 열렸던 무의도 축제에서 다.
‘한국녹색미술회’ 소속으로 그림 설치전에 참가한 분인데, 사진도 잘 찍었다.
핸드폰으로 내 모습을 몇 장 찍었는데, 보는 눈이 칼 같더라.
방송국PD로 정년퇴임한 후 뒤늦게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고 했다.

이제 여든을 넘겨셨으니, 그림 그린지도 오래되었다.
대충 즐기는 것이 아니라, 6년간 외국에 나가 미술공부까지 한 열성파였다.
주로 사실적인 인물화를 그렸는데, 하나같이 살아있는 모습 같았다.
나를 한 번 만나려 했던 것은, 그 때 찍은 내 모습을 그리고 싶다는 것이다.

방구석에서 의욕 없이 티비나 껴안고 사실 연세에 퍽 재미있게 사는 분이었다.
매사에 적극적이며 낙천적이고 긍정적이었다. 그러니 늘 바쁜 것이다.
소주 두병을 단숨에 해치우고는 이차로 맥주 집에 가자신다.
그러나 정영신씨와 내 방에 갈 일이 있어 헤어져야 했다.
동자동에 같이 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은 프린트기 사용법을 몰라서다.






몇 일전 이주용교수께서 복합 프린트기 ‘EPSON L220’을 선물했는데,

도저히 컴퓨터와 연결이 되지 않았다. 데려 간 그 역시 한 시간 넘게 씨름했으나, 마찬가지였다.
회사에 문의하여 방법을 알아내겠다지만, 언제 될지 기약 없다.

동내에서 만나는 분마다 사진은 언제 주느냐고 묻는데, 또 같은 말을 되풀이 할 수밖에...
찍는 즉시 프린트해 주면 별 일 아닌데, 이제 찍은 사진이 너무 많아 뽑는 일도 만만찮다.
따뜻한 봄이 오면 공원에 펼쳐놓고, 나누어 드릴 작정이다.

한 해 잘 놀았으니, 다시 봄을 기다려보자.

“다들 새해에는 더 재미있게 사세요. 건강 잘 챙기시고...”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5일, 인천 무의도 하나개 해수욕장에서 ‘I LOVE MUUIDO’, 제5회 무의도 문화예술 축제가 열렸다.

이 축제는 세계 최고 문화예술섬을 꿈꾸는 정중근씨가 5년 전부터 어렵사리 이끌어 왔는데, 지자체나 지역민 도움 없이 사재 털어 축제를 연다는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다, 다행스럽게 그와 뜻을 같이하는 ‘한국영상문학회’이세종회장과 ‘예당문화원’ 조수빈원장, ‘한국녹색미술회’ 황순규회장의 도움을 받아 명맥을 잇고 있는데, 오히려 처음 열릴 때보다 내용이 알찼다.

지자체에서 돈으로 만드는 축제보다, 예술가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만드는 이러한 축제가 훨씬 가치 있는 축제다. 어디, 이처럼 아름다운 자연경관에서 열리는 축제를 본 적이 있는가?  2년 뒤, 무의도 다리만 들어서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좋은 축제로 자리 잡을 것 같다.

천혜의 비경인 무의도 하나개 해수욕장 너머에서 열린 이 무의도 축제’는 시와 그림, 노래와 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자연을 덧칠했다. 외 딴 섬이라 배를 타고 들어가 모래밭과 갯벌을 걸어 들어가는 정겨운 나들이 자체가 인상적이었다.

자연은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는 예술을 조롱하는 것 같았다. 이보다 더 멋진 무대가 어디 있을까? 그 아름다운 자연 위에 시가 춤추고, 노래와 춤이 날개짓하며, 그림까지 널렸으니, 어찌 마음이 머물지 않겠는가? 웅장한 축제보다 훨씬 마음의 여운을 남기는 축제였다.

이세종시인을 비롯한 많은 시인들의 시가 깃발처럼 바람에 펄럭이는 가운데, 화가 황순규, 장흥래씨 등 녹색미술회원들의 그림 퍼포먼스와 설치미술들은 갯벌을 수놓았다.

‘한가온 무용단’의 이정자, 정정순씨가 춘 도살풀이는 마치 계곡에 선녀가 내려 온 듯 신성한 아름다움을 선사했고, 예당국악원의 조수빈, 최효숙, 안혜령씨가 들려 준 우리가락 또한 신명을 일으켰다.

전용숙씨의 색스폰연주와 인천통기타동인회의 기타연주 등 다양한 행사가 이어졌지만, 이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소리꾼 조수빈씨가 연출한, 다 함께하는 대지예술 ‘마음풀이’였다. 마지막으로 갯벌 위에 오방색 천을 펼쳐 액운을 바다에 버리며 화합으로 이끄는 대동놀이였다.


사진,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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