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 기다려진 기억은 아득한 어린 시절뿐이다.
어른이 되고부터는 항상 걱정거리였다.
늘 마이너스 살림이라 나갈 돈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신통하게 잘 버텨 왔는데,
인생 말년이 되니, 걱정거리가 바뀌었다.

돈보다는 소외감이다.
다들 가족과 지내니, 사람도 만날 수 없고 밥도 사 먹을 수 없다.
밥이야 동자동 나눔의 집에서 지낼 합동 제사에서 얻어먹겠지만,
조상님 뵐 면목이 없는 것이다. 아마 자식 잘 못 둔 죄를 통탄 하실 것 같다.
이런 저런 허망함에 빠졌는데, 화가 이인철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명절 전에 촬영한 수고비를 준다며, 인사동 ‘민예사랑“에서 만나자는 것이다.





‘민예사랑’에는 장재순씨와 이인철, 류충렬씨도 와 계셨다. 뜻밖의 반가운 만남이었다.
문영태화백의 미망인 장재순씨로 부터 편지까지 쓰 넣은 예쁜 돈 봉투를 받으니,
쑥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사양했겠지만, 그럴 형편이 아니었다.

떡 본김에 제사지내듯이, 정영신씨를 불러냈다.
만나 삼계탕 사 주러 가는데, 뒤에서 누가 불렀다.
돌아보니 화가 장흥래씨였다.
어떻게 우리 마음을 알았는지, 바쁘지 않으면 삼계탕 먹으러 가자신다.






그 분을 처음 만난 것은 몇 개월 전 열렸던 무의도 축제에서 다.
‘한국녹색미술회’ 소속으로 그림 설치전에 참가한 분인데, 사진도 잘 찍었다.
핸드폰으로 내 모습을 몇 장 찍었는데, 보는 눈이 칼 같더라.
방송국PD로 정년퇴임한 후 뒤늦게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고 했다.

이제 여든을 넘겨셨으니, 그림 그린지도 오래되었다.
대충 즐기는 것이 아니라, 6년간 외국에 나가 미술공부까지 한 열성파였다.
주로 사실적인 인물화를 그렸는데, 하나같이 살아있는 모습 같았다.
나를 한 번 만나려 했던 것은, 그 때 찍은 내 모습을 그리고 싶다는 것이다.

방구석에서 의욕 없이 티비나 껴안고 사실 연세에 퍽 재미있게 사는 분이었다.
매사에 적극적이며 낙천적이고 긍정적이었다. 그러니 늘 바쁜 것이다.
소주 두병을 단숨에 해치우고는 이차로 맥주 집에 가자신다.
그러나 정영신씨와 내 방에 갈 일이 있어 헤어져야 했다.
동자동에 같이 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은 프린트기 사용법을 몰라서다.






몇 일전 이주용교수께서 복합 프린트기 ‘EPSON L220’을 선물했는데,

도저히 컴퓨터와 연결이 되지 않았다. 데려 간 그 역시 한 시간 넘게 씨름했으나, 마찬가지였다.
회사에 문의하여 방법을 알아내겠다지만, 언제 될지 기약 없다.

동내에서 만나는 분마다 사진은 언제 주느냐고 묻는데, 또 같은 말을 되풀이 할 수밖에...
찍는 즉시 프린트해 주면 별 일 아닌데, 이제 찍은 사진이 너무 많아 뽑는 일도 만만찮다.
따뜻한 봄이 오면 공원에 펼쳐놓고, 나누어 드릴 작정이다.

한 해 잘 놀았으니, 다시 봄을 기다려보자.

“다들 새해에는 더 재미있게 사세요. 건강 잘 챙기시고...”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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