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작들은 오래전 보아왔던 ’복서‘ 연작 말고도 환경 비판적인 작품이나 다른 작품도 있었다.
승자보다 패자에 초점을 맞춰, 인간의 잔인한 말초성을 까발린 ’복서‘ 연작은 비애감이 감돌았다.
링에서 목숨 걸고 싸우는 권투선수도 그렇지만, 맞아 쓰러지는 선수 보며
객석에서 환호하는 사람은 또 뭔가? 폭력의 관음증에 노출된 인간 심리를 나무라고 있었다.
승자를 대리 체험하는 자기도취가 결국 권력과 자본이 연출한 허구임을 까발린 것이다.
한편으로 쓰러진 복서의 비참한 모습은 80년대 군부독재에 핍박받은 민중의 모습이기도 하고
힘겹게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이기도 했다.
그는 젊은 시절 반체제 작가로 낙인찍혀 감시받아 가며 힘겹게 작업했다.
쓰러지면서도 다시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는 복서나 마찬가지였다.
박흥순씨는 1982년 결성된 ’임술년‘ 창립 멤버로,
당대 현실을 소재로 비판적 리얼리즘을 추구한 리얼리스트다.
한때 ’민미협‘ 대표를 지내기도 했는데, 작품도 좋지만 사람은 더 좋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는데, 남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오래전 초상화 전시를 열며 나까지 그려 전시한 적이 있었는데,
돈 없는 거지 그리는 하나만 보아도 알 수 있지 않겠는가?
전시가 끝난 후 작품을 싸 주는데, 벼룩은 낮짝이라도 있다지만 벼룩보다 못하다.
그냥 그림만 챙기고 다음에 술 한잔 산다는 게 십 년이 넘었다.
초상화 또한 얼마나 멋지게 잘 그렸는지 모른다.
그의 그림 솜씨라면 당연히 잘 그리겠지만,
여태 다른 화가가 그린 내 초상화도 보았으나 최고였다.
그리고 ’복서‘ 신작도 있었는데, 정치적 풍자로 대상이 바뀌었다.
김정은의 주먹에 쓰러지는 트럼프를 보며 왜 그리 속이 후련한지 모르겠다.
그놈이 그놈이지만, 트럼프는 주는 것 없이 밉다.
트럼프 뿐 아니라 때려잡을 놈이 어디 한두 놈이겠는가?
다시 불을 지핀 박흥순의 새로운 ’복서‘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
미술평론가 김진하씨의 서문 일부를 옮겼다.
“「고향의 불안, 1991」,「갈증, 1994」은 심각해지는 환경문제를 거론했고, 「이라크와 성조기, 2006」를 통해서 미국의 폭력적 전쟁을 고발하고, 「독도와 촛불, 2008」은 일본 정치인들의 독도 관련 망언을 규탄하는 장엄한 현장을 그리고, 「북에서 바라본 NLL, 2012」은 핑크 모노톤으로 NLL의 긴장을 경쾌하고도 모던한 팩러독스 문법으로 회화적 실험을 하고, 「만남, 2019」은 남북정상회담에 거는 작가의 기대를, 「미완의 종지부, 2020」를 통해서는 여전히 5.18에 대해서 반성하지 않는 전두환을 비판했다. 그리고 2021년에는 다시 복싱에 북·미 관계를 대입한 풍자화 「북미의 이벤트」를 그렸다. 복서로 링에 오른 김정은이 역시 복서인 트럼프를 다운시키는 장면이다. 그런데 둘 다 상처투성이다. 심한 밀당으로 상호 어떤 이익도 얻지 못하고 상처만 남은 북·미 간 협상 실패를 비판하고 조롱하는 내용이었다. 한반도에서의 긴장 상황을 걱정해서인데, 결국 2024년 현재 그의 염려대로 한반도는 심각한 갈등상태에 처해 있다. 그의 염려가 예지였던 셈이다. 결국 일흔이 넘는 나이에도 그에게는 여전히 우리사회의 문제를 직시하는 리얼리스트의 피가 흐른다는 게 반증된 것이라고 하겠다”
지난26일 성균관로 ‘정문규미술관’에서 열린 김재홍 초대전 ‘깨어나는 몸, 다시 서는 거인’을 보면서다.
2년 전 보여준 ‘거인의 잠’에서는 갈갈이 찢기고 망가진 땅 즉 병든 국토를 이야기 했다면,
이번에 보여 준 깨어나는 몸은 썩어 문드러진 인간의 정신을 탓하는 것 같았다.
인간성을 말살시키는 물질문명, 즉 돈의 폐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현실을 반영한 리얼리즘이 아니라 현실을 반성케 하는 리얼리즘이라 듯이,
작가 김재홍이 전해주는 시어들은 절규에 가깝다.
김제홍은 정치적 모순이나 불안한 한반도 평화, 환경의 황폐화, 물질문명에 병든 현대인의 끝없는 욕망 등
동시대인이 처한 삶의 문제점을 자신만의 문법으로 신랄하게 비판해 왔다.
화산이나 지구를 멸망으로 몰아넣을 핵폭탄 등을 아름다운 꽃으로 표현한 작품에서는
보들레르 ‘악의 꽃’이 연상되었다.
‘그대의 증오로 저주받은 이 씨앗은
나를 짓누르는 분노를 솟구치게 할지니
독기 품은 새싹이 돋아나지 못하도록
늦기 전에 이 나무를 아주 비틀어 놓으리라!“
-보들레르의 시 ‘축복’ 중에서-
그리고 마지막 남은 여행은 ‘죽음’ 뿐이라고 했다
죽음의 길에서 ‘새로운 미지의 희망’을 찾는다는 것은
목숨 걸고 삶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이것이 ‘악의 꽃’이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였다.
김재홍이 추구해 온 일관된 작업은 우리민족이 겪어 온 역사적 사실에 기인한다.
민주화 과정을 겪는 지난한 시대적 사건에서 부터,
국토의 분단과 자연의 황폐화 그리고 핵 확산이 가져올 종말적 위기론까지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다.
그가 배경으로 끌어들이는 인간의 몸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이며 세상이다.
분단의 상처나 핵폭발로 일어 날 비극적 상황을 몸의 상처로 드러낸 것이다.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반성케 한다.
아래 글은 홍경한 미술평론가의 전시 서문에서 한 단락 옮겼다.
“김재홍은 정치적·사회적 관계망 속에 거주하는 실존이 겪는 삶의 냉혹한 현실을 기록하고
시대의 긴급한 사회적 문제들을 품격 있게 다룬다.
또 다른 역사화로 <근정전>을 잇는 <안타까운 유산>에서처럼 그의 작품은 그 자체로 강력한 ‘논평’이 된다.
물론 또 다른 특징도 있다. 바로 그의 작품은 형식상 사실주의적 경향을 따르지만 입체적 상상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입체적 상상은 상징적인 요소에 의한다. 작가는 상징을 통한 직관성을 회피하는 대신 작품마다 시어(詩語)를 심으며 현실 인식과 성찰의 행간을 만든다. 예를 들어 폭탄에 의해 깊은 웅덩이가 들어선 대지 혹은 자연의 일부처럼 보이는 몸을 그린 <거인의 잠>, <야만의 흔적> 연작은 거칠고 험난한 질곡의 역사를 다룬 진혼곡이다. 몸에 새겨진 크고 작은 기록과 생채기들은 엄혹한 현실의 투영이면서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각인될 수밖에 없었던 익명의 상흔이다.”
개막식이 열린 지난 26일은 청승맞게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성균관대 부근에 있다는 말은 들었으나, 정문규씨 집 찾느라 고생 좀 했다.
어렵사리 찾았지만 많은 분들이 뒤풀이 집으로 옮기고 있었다.
일 이층에 나누어 내건 대형 작품에 압도되었지만 손님이 너무 많았다.
뒤늦게 작품 보랴 인사 나누랴 정신없었는데, 단양 사는 김언경씨 모습도 보였다.
주인공 김재홍씨를 비롯하여 박불똥, 조경연, 장경호,박흥순,안원규, 박상희, 이필두, 최석태,
3. 공간의 역사와 성격을 스스로 아카이빙 하며 한국 동시대 미술사의 뿌리이자 줄기가 되고 있는 공간. 그 미술 공간의 디렉터, 비평가, 미술사가로 현장에서의 노동을 동시에 해내고 있는 고투에 찬 미술지식 노동자 김진하. 노역의 퀄리티를 갖춘 채 동요하지 않는 정신. 해방 이후 이런 전시공간과 전문가는 일찌기 없었다고 여겨집니다. 이 '나무아트'라는 토대를 바탕으로 더욱 더 한국 당대 미술에 기여할 수 있기 바라며, 이 행사에 저도 마음을 보탭니다. ■ 강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