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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21일부터 1214일까지 후암동 ‘KP Gallery’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고인이 남긴 유작 중 공개되지 않은 미 발표작으로 구성되었다.

유작을 맡아 관리하는 제자 이일우씨가 찾아낸 작품으로,

그것도 한두 점이 아니라 전시와 사진집을 만들 정도라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궁금한 것은 빈틈 없는 선생께서 왜 발표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정적인 고요의 세계에 너무 몰입해 놓친 것일까?

아니면 사후에 발표하려고 의도적으로 숨겨 둔 걸까?

사진가가 자기 작품을 고르는 데 눈이 어두울 수는 있으나,

남겨 둔 글로 보아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아무튼, 이번 전시로 선생의 작품세계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다.

 

전시된 사진은 존재에 대한 성찰에서 시작된 '선(禪)의 경지다.

긴 세월 동양 철학과 한국적 미학을 탐구해 온 선생의 작품세계에서

길이 빛날 유작이 아닌가 생각된다.

 

고) 한정식선생의 철학과 한국적 사진 미학의 정수를 놓치지 않기 바란다.

 

미발표 작을 담은 ()은 열려 있다사진집은 신청한 분에 따른 한정본으로 발행된다.

전시가 끝나는 1214일까지 신청 받는다고 한다.

 

아래는 선생께서 남긴 글이다.

 

 

"모든 존재의 근원이면서 동시에 종말인 거기에 공()은 열려 있다.“

 

내 사진은 사물의 존재로 향하고 있다. 특히 물, , 풀 등 자연 자체의 존재에 대한 관심이요 애정이라 해도 좋다. 내가 왜 자연으로 눈을 돌린 것일까. 내 눈을 끄는 것은 대개의 경우 인간을 떠난 자연이었다. 내가 지향하는 자연의 사진이란 이런 것이다. 아름다운 자연 풍광의 재현이 아니라, 그 안 깊이 잠겨 있을 시원에 대한 향수, 하늘이 열리던 때의 그 아득함을 생각한다. 그것을 찍고 있다가 아니라, 찍고자 한다, 찍고 싶다.

하지만 시원의 광야를 나는 아직 열지 못하고 있다. 그리로 가고는 싶은데 가는 길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그 깊은 속으로 들어가 시원의 하늘과 땅을 드러낼 방법을 아직은 모른다. 자연의 그 장엄함이 원시의 힘찬 숨결이 저절로 느껴지는 그런 풍경을 향해 서 있을 뿐 그리 들어가는 길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결국 한 개 사물을 통해 그 안에 숨어 있는 시원을 찾아 들어가는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다.

내가 모색해 오던 사진의 경지, ‘적정, 적멸(寂靜, 寂滅)’ ()’의 경지라는 것도 결국은 사물의 근원적 존재 양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리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움직임이 사라진 고요, 움직임도 움직임이 아님도 아닌 고요, 다시 말해서 생성 소멸을 벗어나 형태도 사라지고 존재감마저 느껴지지 않는 그런 경지, 모든 존재의 근원이요 동시에 종말인 거기에 은 열려 있다. 그곳에 이르고자 하는 것이 내 <고요>의 또 하나의 시도이기도 하다.

태풍의 눈이 그러하듯 모든 움직임의 중심은 고요하다. 그 고요가 곧 이다. 존재의 근원이다. 적정, 적멸이 그것이고, 그리고 이 <고요>는 그 을 향한 나의 발자국이다. 하늘이 열리던 날의 바람 소리가 듣고 싶다. 땅이 처음 솟던 날의 울림을 느끼고 싶다. 그 땅으로 처음 싹을 피워 올린 풀잎의 작은 촉감을 손가락 끝에 누리고 싶다.

 

2009년 밝은 방에서, 한정식

 

 

 

 

 

한정식선생의 서거 1주기를 맞은 추모 사진전 ‘북촌’이 지난 19일 ‘갤러리인덱스’에서 개막되었다.

 

‘북촌’은 선생께서 태어나고 자란 서울의 북촌 일대를 기록한, 1978년부터 1990년대 까지의 북촌 풍정이다.

 

선생께서는 생전에 기록사진이야말로 사진의 존재 이유임을 말씀하셨다.

그래서 어린 시절을 보낸 북촌을 기록했는데, 찍을 무렵부터 서울은 변하고 있었다고 한다.

 

기록사진은 된장이나 와인처럼 묵혀야 더 깊은 맛이 난다는 말씀처럼,

30년이 지나서야 ‘북촌’사진집을 펴내며 작품을 발표했다.

 

선생께서 남긴 리얼리즘 사진으로는 ‘북촌’ 외에도 ‘흔적’과 ‘마구간 옆 고속도로‘가 있다.

 

사진의 예술성에 뜻을 두신 선생께서는 '중앙대' 사진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리얼리즘 사진과 결별한다.

 

그 이후부터 법문 같은 ‘고요’라는 정적감 도는 예술사진에 천착하며 일가를 이루었다.

 

그러나 지금도 우리나라 사진사에 주명덕선생의 검은 풍경보다 ‘혼혈아’가 먼저 오르고,

한정식선생의 ‘고요’보다 ‘북촌’이 호출되는 것이 무엇을 말하겠는가?

 

사진의 기록성에 초점을 맞춘 선생의 작품들은 세월에 숙성된 사진이라

보면 볼수록 아련한 추억을 불러일으켜, 마음이 따뜻해진다.

 

전시된 ’북촌‘사진에는 근대화, 도시화 물결 속에서 차츰 변해가는 거리와 골목,

가지런한 기와, 다소곳한 처마, 고즈넉한 창살,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오롯이 담겼다.

 

“이 ‘북촌’은 내 개인 기록이다.

사진으로 엮은 나의 고향이야기로, 내가 아는 서울, 내가 느끼는 서울,

내 기억 속의 서울이 여기 담겨 있을 뿐이다.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은 서울의 북촌지역이었다.

그리하여 ‘서울’하면 내게 그것은 그대로 북촌을 뜻한다.

나의 발길이 북촌에만 머문 이유요, 북촌만으로 이 사진집을 엮은 이유이기도 하다.

하기야 서울이라고 하면, 특히 옛 서울은 대개 북촌지역이 중심이었다.

따라서 이 ‘북촌’은 북촌이로되 실은 그대로 나의 서울이야기다”고 사진집 서문에 썼다.

 

한정식 &lsquo;북촌&rsquo; -나의 서울-128페이지 230*280mm 서적 40,000원

‘북촌’ 사진집에는 흑백사진 80여 점이 실려있다.

 

추모의 시간을 가진 사진전 개막식에는 생각보다 추모객이 적었다.

 

긴 세월 강단에서 선생의 가르침을 배운 제자들은 다 어디 갔으며,

수시로 불러 모아 인사동에서 정 나누었던 주변 사진가들은 다 어디 갔는가?

‘죽고 나면 명예도, 작품도, 인연도, 아무 소용없다’는 생전의 말씀이 생각나는 시간이었다.

 

그날 개막식에는 ‘갤러리인덱스’ 안미숙 관장을 비롯하여

전민조, 강용석, 이일우, 이기명, 최연하, 김정일, 곽명우, 정영신, 한선영, 김창주씨 등

20여명의 사진가들이 모여 조촐한 추모의 시간을 가졌는데,

공교롭게도 이 전시를 기획한 ‘눈빛’ 이규상 대표마저 늦은 코로나에 걸려 참석하지 못했다.

 

전시는 7월 31일까지 열린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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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이재갑은 남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역사의 현장을 기록해 온 정통 다큐멘터리 사진가다.

고향땅을 밟지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강제징용 ‘잔혹사’를 기록한 ‘일본 속 한국풍경’, 경산 코발트 광산사건의 진실을 기록한 ‘잃어버린 기억’, 베트남전의 한국군 민간인 학살 피해현장을 찾아다닌 ‘하나의 전쟁, 두개의 기억‘ 등 사회가 기억하지 못하는 골 깊은 역사를 파헤쳐 왔다.

 

이번에 선보인 '어느 특별한 동행'전은 이 땅에서 태어났지만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배타적 차별을 감내하며 살아 온 혼혈인들과 함께한 전시다. 그들의 기쁨과 아픔을 함께 나눈, 우리 이웃의 또 다른 초상이다.

주명덕 선생께서 기록한 혼혈아, ‘섞여진 이름’이 발표된 지가 1965년이었니, 어느듯 반세기가 지났다. 그 이후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아무도 되돌아보지 않았던 삶을 이재갑씨가 조명한 것이다.

 

지난 10일 오후5시 무렵, 모처럼 전시장을 찾아 나섰다.

여태 전시 보는 것 자체를 피해 온 것은 전시리뷰나 이런 저런 글을 쓰기 싫어서다. 글로 인해 많은 사람이 등을 돌렸는데, '씹 대주고 뺨 맞는' 격이었다. 개인적인 감상문에 불과한 글을 느낀 대로 쓸 수 없다면 쓸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궁여지책으로 다른 분이 쓴 전시리뷰나 서문으로 소개를 대신 하기는 했으나, 평론가의 고충을 알만했다.

작품만 보고 전시리뷰는 쓰지 않을 수도 있고, 싫은 소리는 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속에 넣어두고 배겨나지 못하는 성질머리를 어쩌겠는가? 차라리 안 보는 것이 더 속 편했다. 그런 일로 많은 사람을 잃어버린 ‘미운 오리 새끼’신세가 되었는데, 심지어 가까웠던 친구나 가족까지 등 돌렸다. 잘 못 쓴 글이 아니라면 절대 내리거나 수정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이재갑씨의 ‘동행’전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전시였다. 전시가 열리는 ‘KP갤러리’가 동자동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있기도 하지만, 기대했던 전시라 통풍이 도져 아픈 다리를 끌고 찾아간 것이다. 예술지상주의의 허접한 사진들이 판치는 세상에, 이재갑씨 만한 사진이 드물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사진도 기록한다고 다 다큐멘터리 사진은 아니다. 아무런 작가의식 없이 돌아다니며 찍은 사진을 넝마주이 사진이라 한다. 작년에는 원로 사진가 두 분이 찍은 60년대 중반 무렵의 사회기록사진들이 서랍 속에 잠들다 반세기만에 빛을 본 적도 있었다. 공교롭게도 두 분 다 학창시절에 찍은 사진이었고, 그 이후부터 상업사진이나 문화재사진으로 전향한 형태도 비슷했다.

 

그 당시는 임응식선생이 주창한 ‘생활주의 리얼리즘’에 영향을 받아 거리의 스냅사진이 성행할 무렵이었는데, 세월의 무게에 실려 작가의식과 상관없이 소중한 역사적 사료가 된 것이다. 요즘의 아마추어 사진인들처럼 아름다운 풍경만 쫓아다니는 것보다야 백배 낫지만, 작가라면 뚜렷한 주관을 갖고 찍어야 할 것 아니겠는가? 주명덕선생의 ‘혼혈아’나 최민식선생의 ‘인간’, 그리고 김기찬선생의 ‘골목안 풍경’처럼 사람 속으로 파고 든 작업과는 차원이 다른 기록이다.

 

또 한 가지 사진의 우열을 가릴 수 있는 문제는 한 분은 표준렌즈로 찍었고, 한 분은 망원렌즈로 찍은 사진이 많다는 점이다. 망원렌즈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나, 동작을 포착하는 스포츠사진에나 활용되는 렌즈라 다큐멘터리 사진에는 적절치 않은 렌즈다. 망원렌즈로 사람을 찍는다는 것은 사람 속으로 다가 가는 것이 아니라 몰래 찍는 도둑 사진이나 다름없다. 요즘은 초상권 침해에 걸려 마음대로 발표할 수가 없어 그런지, 거리스냅 하는 사진인도 사라져버렸다.

 

가끔 사진가들의 프로필 사진에 대포 같은 망원렌즈가 장착된 카메라를 자랑스럽게 목에 건 사진을 볼 수 있는데, '난 사진가가 아니라 사냥꾼’이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하기야! 요즘 렌즈들은 광각에서 망원까지 사용할 수 있는 줌렌즈가 장착되어 다목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니, 카메라로는 알 수 없게 되었다.

 

이재갑의 "어느 특별한 동행"이 열리는 전시장을 찾아 갔더니, 전시 작가 이재갑씨와 전시기획자 이일우씨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전시된 작품은 작가가 혼혈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사회에서 특별한 존재로 취급받는 이들의 평범한 시간을 포착하고 있었다. 전시장에 내걸린 초상사진과 단체기념사진들은 얼핏 보면 평범한 사진으로도 볼 수 있으나, 작가와 당사자와의 끈끈한 교감이 느껴졌다.

 

‘동행’이란 전시제목처럼, 그들의 소소한 일상 속에 지난 시간의 기쁨과 아픔을 함께 나눈 흔적이 역역했다. 전시장에 찍힌 당사자의 모습도 보였는데, 이재갑씨가 형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니, 사진에 앞서 얼마나 가깝게 지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사람을 찍는 다는 것은 그 사람과 얼마나 소통하며, 상대의 마음을 얼마나 헤아릴 수 있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으니, 그냥 찍은 사진과는 격이 달랐다. 이것이 다큐멘터리 사진인 것이다. 

 

사진, 글 / 조문호

 

- 특별하지만 특별하지 않게, 함께 걷기 -

 

‘한 배를 타다(be in the same boat)’라는 표현은 한국어와 영어에서 똑같은 의미를 지닌다. 같은 운명이나 처지에 놓이다. 모든 이의 운명이 완전히 똑같이 일치할 수는 없겠지만, 서로의 처지가 비슷할 때, 우리는 이 말을 사용하고 의지하며 위안을 얻는다. 사진가 이재갑은 혼혈인들의 일상 속에 시선을 멈추어, 한국 사회에서 ‘특별한 존재’로 취급받는 이들의 평범한 시간을 포착한다. 같이 모여 음식을 나누고, 생일을 축하하며, 함께 야유회를 떠난다. 사진 속에 담긴 일상은 한국인들이 한국적인 것이라고 부르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아주 약간의, 외모적인 차이가 언뜻 엿보일 뿐이다. ‘아주 약간의 차이’, 그들이 탄 배의 이름이다.

 

미군정기(美軍政期)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외국인과의 교류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혼혈인이 생기고 그 수가 늘어났지만, 한국사회는 이들의 존재를 이질적인 존재로 규정하는 방식을 택해왔다. 국가의 발전이라는 기치 아래, 국가주도로 단일민족(Monoethnicity)이라는 신화를 기조로 삼아 민족의 우수성을 공교육에서 강조하고, 한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사회를 통합하는 동안, 외모가 다르거나 혈통이 다른 이들은 ‘소수자’라는 이름으로 묶여 한국사회의 주류에 끼지 못하고 주변부를 맴돌아야 했다.

 

한국사회가 이들을 ‘타자(the other)’로 규정하는 동안, 혼혈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면서도 그들만의 방법으로 한국 사회에 녹아들었다. 그들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이들과 교류하고 함께 시간을 나누면서 누군가와 함께 걸어가는 방식을 선택했다. 혼혈인들은 다른 혼혈인 가족과 기꺼이 시간을 나누고 가족끼리 교류하며 서로의 근황을 나눈다. 카메라는 이들의 일상과 행사에 드러난 얼굴을 기록한다. 타자로 규정된 얼굴들이 따로 또 같이 기념사진을 위해 활짝 미소를 지으며 모습을 드러낸다.

 

다채로운 인간 군상들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동질감을 강조하고 이질적인 존재들을 타자로 규정하고 거리를 두는 것은 가장 편리한 방법일지 모른다. 나와 같은 존재만 수용하고 그렇지 못한 것들을 외면하며 살아가는 일에는 많은 생각의 품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어느 정도는 같고, 어느 정도는 다르다. 제각기 다른 뿌리와 직업, 사고방식, 환경을 가지고 있는 혼혈인들은 자신들만이 가진 동질감으로 서로에게 기대어 느슨한 연대를 만듦과 동시에 이질적인 존재로 규정하는 한국사회에 기꺼이 ‘동일자(the same)’로 자신들의 자리를 만든다. 사회가 정해놓은 테두리와 선을 스스로의 존재로 지우고, 사회와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고자 한다.

 

철학자 레비나스(Emmanuel Levinas)는 『전체성과 무한』을 통해 타자를 집에 맞아들이는 ‘환대(hospitality)’가 우리 삶의 근본적인 자세라고 말한다. 내 테두리 밖의 ‘타자’는 익숙하지 않기에 낯선 자이지만, 그들의 존재는 지워질 수 없고 내 옆에 있으며, 함께 살아간다는 측면에서 ‘이웃’이기 때문이다. 환대. 이웃을 반갑게 맞아들이는 것, 이런 측면에서 이미 혼혈인들은 각자의 존재를 기꺼이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이라는 거대하고 불친절한 이웃을 환대하고, 더 나아가 그들의 세계로 또 다른 타자를 초대한다. 낯선 카메라에 반가운 미소를 짓고 자신들의 일상을 거리낌 없이 공개하는 ‘벌거벗은 얼굴들’은 바로 우리 이웃의 초상이다.

 

이재갑의 사진전 “어느 특별한 동행”은 한국이라는 배타적인 사회를 살아가는 혼혈인들의 일상을 보여준다. 사진에 담긴 이들의 시선은 사진을 보는 이들에게 ‘함께 걸어갈 것(동행)’을 제안한다. ‘아주 약간의 차이’를 기꺼이 받아들인다면, 그들이 탄 배에 동행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생각해본다. 우리 모두는 조금씩은 같고, 조금씩은 모두 다르다.

 

글 / 레 나(LENA)

 

KP 갤러리가 2023년 새해 첫 전시로 선정한 “어느 특별한 동행(同行)” 이재갑 사진전은 3월 4일까지 열린다. 

 

한정식선생께서 고요의 선계에 편안히 잠드셨다.

 

부음 받은 지난 23일 장례식장을 찾아 선생의 명복을 빌었으나,

떠나시는 선생을 배웅하고 싶다는 정동지 채근에 25일 새벽을 서둘러야 했다.

장례식장 변두리를 뒤덮은 호박꽃이 선생님 가신 극락세계 연꽃인양 반기더라.

 

장례식장에는 유족들과 이일우씨만 발인을 서두르고 있었고,

조문객으로는 강용석, 곽명우씨 등 서너 명의 사진가만 보였다.

뒤이어 '사진예술' 발행인 이기명씨 등 제자 몇 명이 찾아와 운구에 힘을 실었지만,

한국 사진 교육계 거목이 떠나는 상여길 치고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타 예술단체에 비해 사진인들의 선배에 대한 존경심이나 예의가 소홀한 것은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수많은 제자를 배출한 선생의 장례식이 이럴진데,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는가?

 

먼 길 떠나는 원로사진가 영전에 잠시 모여 추모사로 위업을 되새기거나,

떠나시는 선생을 위해 살풀이라도 한 번 추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이번 장례식에는 제자 이일우씨가 시종 차고 앉아 사진인을 맞았지만, 가족들은 인사도 안 했다.

선생께서 그동안 말씀은 안 하셔도 마음고생 많이 했겠더라.

아들 셋보다 딸 하나가 더 좋은 세상을... 

 

요즘 사진판에 짚고 넘어가야 할 심각한  문제는 가족들의 사진에 대한 무관심이다.

돈 되지 않는 사진에 메 달려 온 선친에 대한 원망스러움은, 사진이란 말조차 듣기 싫은 것이다.

그러니 당사자가 돌아가시면 사진에 관한 모든 자료들이 쓰레기로 사라진다.

 

사진이고 뭐고 죽고 나면 다 부질없는 짓이라는 선생의 평소 말씀에 공감 하지만,

그래도 살아 남은자의 도리는 지켜야 하지 않겠나?

 

사진, / 조문호

 

이 사진은 홍순태선생 마지막 전시회에서 찍은 원로사진가들의 기념사진인데,

 이제 살아계신 분보다 돌아가신 분이 더 많군요, 

좌로부터 주명덕, 강운구. 이완교, 황규태, 홍순태, 김한용, 한정식선생

 

한정식선생의 ‘고요_존재는 고요하다'전이 후암동 'KP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가 열리는 지난 19일, 서초동 한정식선생 댁을 찾아갔다.

해가 바뀌어 인사차 들린다는 것이 차일피일 하다, 전시 소식을 듣고서야 부랴부랴 찾아 나선 것이다.

선생님을 모시고 전시장에 같이 갈 생각에서다.

 

모처럼 찾아 뵙게 되었는데, 이마에 반창고를 붙이고 계셨다.

며칠 전 침실에서 넘어져 이마를 다쳤다는 것이다.

피도 많이 흘리고 몇 바늘이나 꿰맸다며,

갤러리 지하 계단 오르내리기가 힘들어 전시장은 못 간다고 하셨다.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댁을 나왔으나, 눈길이 미끄러워 가까운 식당도 걷기는 무리였다.

선생님 시키는 데로 차로 이동하여 ‘늘봄 웰봄’이란 식당에 간 것이다.

 

오찬 자리에서 산문집과 시집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이번 전시는 제자인 이일우씨가 기획한 전시로

그 동안의 ‘고요’ 전시에서 보여주지 않은 추상적 작품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한 번도 못 본 작품이라 더 궁금했다.

 

선생을 모시고 식당을 나섰으나,

간단한 계단에서도 머뭇거리시는 걸 보니 계단에 대한 두려움이 많은 것 같았다.

아무튼, 새해에는 건강도 회복하시고, 더 좋은 일 많이 만드시길 바랍니다.

 

선생님을 모셔다 드린 후, 전시가 열리는 'KP갤러리'로 갔다.

전시장 입구에 ‘고요’라는 제목이 붙었는데,

옆에 걸린 작품에서는 고요를 뛰어넘는 침잠 속 진동 같은 것이 느껴졌다.

 

선생께서 평생 추구해온 ‘고요’란 사진미학의 정수는 모르는 분이 없으나

이번 전시는 분명 한 수 위였다.

 

선명하게 흐르는 멈춤에는 봄버들 물오르는 그 파르르한 떨림같은 것이 감지되었는데,.

고요 속에 밀려 나오는 팽팽한 긴장감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추상이건 공상이건, 폭풍전야 같은 그 순간이 바로 고요의 경지가 아닌가 생각되었다.

정적 속으로 한 없이 끌고 가는 블랙홀 같았다.

 

이 전시는 중이 제 머리 못 깎듯, 선생이 놓친 것을 제자가 찾아낸 것이었다.

무슨 전시든 기획자 능력에 따라 격이 달라진다는 것을 재차 확인했다.

 

한정식선생의 ‘고요_존재는 고요하다’전은 3월 3일까지 열리니,

틈나시면 꼭 한번 관람하시기 바랍니다.

 

KP갤러리 주소 / 서울 용산구 소월로2나길 12(후암동 435-1번지) B1

전화 / 02.706.6751

 

사진, 글 / 조문호

 

서울역 11번 출구로 나가는 후암동에 멋진 사진전문갤러리가 생겼다.

사진기획자 이일우씨가 사진창작지원 사업을 비롯한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해 개관한 전시장인데, 내가 머무는 쪽방과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정영신씨와 함께 가기위해 미루다보니, 23일에서야 갈 수 있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 듯이 같은 후암동이지만 낯설었다.

쪽방촌에서 3-4백 미터에 불과한 거리지만, 바닥이 달랐다.

 

신진작가 지원전으로 정예진씨의 “Masquerade ;

나는 내가 없어서 남의 그림자를 훔쳐 입었다”라는 제목의 사진전이었다.

개관전이라면 유명작가를 내세우는 전례에 비해 신선하게 다가왔다.

 

전시장에 들어서니 묵직한 느낌의 으스스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로데스크한 느낌을 주는 초상사진들이 압도했다.

젊은 야성이 꿈틀거리는 이미지에서 인간의 심리적 불안과

욕망의 찌꺼기가 스물 스물 기어 나왔다.

 

타인의 초상을 통해 스스로의 고민과 욕망을 드러냈는데,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이의 고민은 시대가 만들어 낸 모순이었다.

자유분방한 초상사진이 주는 울림이 강열했다.

 

난, 전시작가 정예진씨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다.

사람은 물론 이력 한 줄 아는 바 없는, 말 그대로 신진작가다.

경험 많은 중견이면 뭐하고, 오래 찍은 원로면 무슨 소용있겠는가?

생각이 신진작가에 미치지 못하는데...

 

그 사진에서 청춘의 고민과 심리적 불안을 엿볼 수 있었고,

넘치는 욕망의 에너지를 읽을 수 있었다.

정체성의 가면을 쓰고 이중적 삶을 살아야 하는 암울한 현실을 대변한

작가노트에 적은 아래 말이 작품 창작의 계기를 잘 말해준다.

 

“세상은 나와 다른 모습으로서의 삶을 강요하였다. 나는 내가 아니었다.

이것이 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사진들은 젊은이의 고민과 욕망이 범벅된 외침이었다.

 

전시가 열리는 곳은 천장이 높아 고풍스런 분위기를 풍겼는데,

마치 정예진씨 전시를 위해 만들어 진 공간처럼 잘 어울렸다.

 

방명록에 이름을 남기고 나가려니, 낯익은 분이 반겨주었다.

오래 전 ‘스페이스22’에서 여러차례 뵌 분인데, 큐레이트로 일하는 오혜련씨였다,

기어이 차 한 잔 하고 가라지만,

관장 이일우씨가 갤러리 보수공사 하느라 정신없었다.

 

일손을 놓게 할 것 같아 도망치듯 빠져 나와 버렸다.

이제 가까운 곳에 오붓한 데이트 코스 하나 생겼으니,

눈 먼 할멈이라도 한 분 꼬셔야겠다.  꿈도 야무지지만...

 

글 / 조문호

 

‘Korea Photographers Gallery‘ 개관전

정예진씨의 “Masquerade ; 나는 내가 없어서 남의 그림자를 훔쳐 입었다”

전시기간 : 2020_0616_0707

관람시간 : 11:00am~06:00pm / 공휴일 휴관

KP갤러리 : 서울 용산구 소월로2나길 12(후암동 435-1 B1)

Tel. +82.(0)2.706.6751 / kpgallery.co.kr

 

Masquerade ; 나는 내가 없어서 남의 그림자를 훔쳐 입었다.

 

정예진展 / JUNGJEJIN / 丁藝振 / photography

2020_0616 ▶︎ 2020_0707 / 공휴일 휴관

 

정예진_나는 내가 없어서 남의 그림자를 훔쳐 입었다#22_100×67cm_2020

 

 

초대일시 / 2020_0618_목요일_01:00pm

Korea Photographers Gallery 개관展

관람시간 / 11:00am~06:00pm / 공휴일 휴관

 

 

KP 갤러리

Korea Photographers Gallery

서울 용산구 소월로2나길 12(후암동 435-1 B1)

Tel. +82.(0)2.706.6751

kpgallery.co.kr

 

 

한국 사진예술의 발전과 정체된 국내 사진문화의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설립된 Korea Photographers Gallery (이하 K.P 갤러리)가 2020년 6월 16일 신진작가 정예진의 『Masquerade ; 나는 내가 없어서 남의 그림자를 훔쳐 입었다』 전시를 시작으로 오픈합니다. 서울사진축제 예술감독, 대구사진비엔날레 큐레이터 등 전시기획자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이일우 기획자가 설립한 K.P 갤러리는 동시대 사진예술의 역할과 방향에 대해 고민을 바탕으로 사진인들을 위한 창작지원 사업, 국제교류사업, 학술행사개최, 예술가 매니지먼트 등 사진문화 발전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입니다.

 

정예진_나는 내가 없어서 남의 그림자를 훔쳐 입었다#01_155×100cm_2020

 

정예진 작가의 『Masquerade ; 나는 내가 없어서 남의 그림자를 훔쳐 입었다』전시가 2020년 6월 16일부터 7월 7일까지 K.P 갤러리에서 개최됩니다. Masquerade 는 '가면무도회', '진실, 또는 진심을 숨기고 가면을 쓰다' 의미로 이번 전시에서 정예진 작가는 자신과 타인의 경계를 넘어 다양한 정체성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담은 22점의 초상사진을 소개합니다.

 

정예진_나는 내가 없어서 남의 그림자를 훔쳐 입었다#03, #02, #04_155×100cm×3_2020

 

정예진_나는 내가 없어서 남의 그림자를 훔쳐 입었다#18, #08, #05_155×100cm×3_2020

 

'나는 내가 없어서 남의 그림자를 훔쳐 입었다.' 라는 작가의 고백처럼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작품들은 개인의 의지와 달리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매 순간 다양한 정체성의 마스크를 바꾸어 쓰며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의 모습과 그 속에 감춰진 개인들의 욕망을 담고 있습니다. K.P 갤러리 개관 전시이자 첫 번째 신진작가 지원사업으로 정예진 작가를 초청하여 개최되는 이번 전시는 사진 속 인물들의 숨은 이야기와 그들이 지닌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욕망을 소개하고 우리들 마음 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자아의 모습을 바라보고 성찰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입니다. ■ K.P 갤러리

 

정예진_나는 내가 없어서 남의 그림자를 훔쳐 입었다#14, #10, #12_155×100cm×3_2020

 

정예진_나는 내가 없어서 남의 그림자를 훔쳐 입었다#07, #06, #16_155×100cm×3_2020

 

'나는 내가 없어서 남의 그림자를 훔쳐 입었다.' ● 심한 우울증을 겪던 18살의 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모아 둔 수면제를 모두 삼켰다. 하지만 어떤 상황도 변하지 않았고 결국 난 도망치듯 고향과 부모님을 떠났다. 새로운 곳의 삶은 한 순간 내게 심리적 안정을 주기도 했지만 내게 감쳐진 나의 내적 불안감은 시간이 지나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현실에서의 삶은 내가 원하는 나로서의 모습이 아니라 끊임없이 나와 다른, 원하는 않는 다른 내 모습으로서의 삶을 강요하였다. 나는 내가 아니었다. 이것이 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 나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내 속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나는 친구에게 우연히 구입한 사진기로 나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기 시작했다. 나는 사람들의 모습에 나의 생각과 감정, 그들을 바라보는 내 욕망을 투영하였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고민들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만들기 시작하였다. ● 현실의 삶은 여전히 나의 생각과 괴리가 있고 아직도 여전히 아프지만 사진은 내게 위안을 준다. 사진을 통해 나를 찾고 싶다. ■ 정예진

 

Vol.20200616e | 정예진展 / JUNGJEJIN / 丁藝振 / phot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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