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의 동자동은 빵 배급 시간을 제외하고는 한가했다.
서울역 주변을 돌아봐도 오갈 때 없는 노숙인들만 눈에 들어왔다.

문 닫힌 ‘사랑방’ 사무실 앞에는 김호태, 조두선, 선동수씨 등 사랑방을 끌어가는 분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사진 찍는 김원씨도 끼어 있었다.

김호태 사랑방 대표에게 여러 가지 궁금한 것이 많아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한마디로 거절 당했다.

그 거절한 이유가 궁금했지만, 바쁜 일이 있는 것으로 여기고 다음으로 미루었다.
사랑방의 운영을 책임진 분이라면 앞으로의 포부나 진행 상황을 알려
조합원들의 알권리를 해소해 줄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공원으로 자리를 옮겼더니, 그 날은 구멍가게가 문을 닫아서인지 다른 날에 비해 한가했다.

남종호, 유정희씨가 막걸리로 시간을 죽이고 있었는데,
유정희씨는 아홉 살 때부터 남종호씨를 형님처럼 모셨단다. 각박한 세상에 그 오래된 인연이 부러웠다.
한 쪽에는 이기영, 이상준, 이홍렬씨 등 여러 명이 모여 있었는데,
그 날의 화제는, 몇 시간 전 이원식씨가 경찰에 연행된 사실이었다.

요즘은 이원식씨가 폐품을 열심히 주워 모아 어렵게 살고 있으나,
오래전 싸움에 연관되어 부과된 벌금 70만원을 내지 못해 구속되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자유롭지 못한 것 외에는 지금 사는 것보다 더 편할 수도 있겠다싶다.

“원식씨 부디 잘 수양하고 돌아오시게나~”

사진, 글 / 조문호















일요일의 동자동은 한산해서 좋지만, 밥 사먹기가 지랄 같다.
직장인이 없어 쪽방 사람들이 이용하는 광주식당까지 닫아 버린다.
하루 쯤 굶어도 죽지는 않으니, 발길을 공원으로 돌려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공원입구에는 여러 사람이 술로 다독이고 있었다.
트랜지스터에서는 ‘돌아가는 동자동’이 아니라 ‘돌아가는 삼각지’가 흘러나왔다.
김상구씨가 잔뜩 어깨에 힘을 실어 장단을 맞추고 있었는데,
직장인 없는 일요일의 동자동은 쪽방 사람들 세상이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술자리를 지키는 정재헌씨를 비롯하여
구멍가게 주인 강재원씨, 전설로 통하는 전찬우씨,
의리의 사나이 이준기씨, 이법사로 불러달라는 이원식씨,
그리고 김상구, 이태수, 박동구씨 등 여러 명이 있었다.






술과 담배가 바닥나 물주를 기다리는 중이었던지,
소주 세병과 담배 한 갑을 사갔더니, 입이 쩍 벌어졌다.
늘 술자리를 지키며 빈병을 치워주는 황옥선 할매에게도
우유 한 팩 드렸더니, 기분 좋아 노래까지 하신다.
작년 추석 노래자랑에선 상까지 탔는데, 올해도 나간다며 자랑이 대단하다.






구멍가게 주인인 강재원씨가 할 말이 있다며 날 좀 보잖다.
무슨 중요한 일이라도 있냐고 귀를 쫑긋 세웠더니, 나도 생각나지 않는 지난겨울 이야기를 꺼냈다.
내일 줄테니, 소주 한 병만 외상으로 달라 한 것을 거절한 게 아직까지 마음에 걸린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구멍가게에서 외상 주는 곳이 어딨냐고 그랬더니, 그 때는 사람을 잘 못 봤으나, 앞으론 잘 하겠단다.
그리고는 면전에서 내 칭찬을 해대는데, 얼굴이 간지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가게에서 십만원치 팔아야 만원도 남지 않는다며, 돈도 잘 빌려주지 않는 땡보 양반의 또 다른 순진한 모습에 놀랐다. 



 


이번엔 이홍렬씨에 이어, 화장을 지운 김은자씨가 나타났다.
난 이 여인을 ‘친절한 금자’씨로 바꾸어 부른다.

김은자씨는 왕년에 룸살롱 마담으로 전전하며, 사내께나 휘어잡은 여인이다.
세월에 밀려 쪽방 촌까지 들어 온, 그 한 많은 사연을 한 번 들어 볼 작정이다.






그 날은 화장을 하지 않아, 나도 사진 찍을 생각을 않았는데,
영문을 모르는 이준기씨는 같이 한 판 찍자며 졸라댔다.
“안 된다는데 왜 그래~”라는 날선 반응에 이해되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도 대머리라 모자 안 쓰면 찍기 싫은 거나 마찬가지다”고 했더니, 그때야 알아차렸다.






담장 모퉁이에 올려놓은 조그만 라디오에서는
이미자의 ‘여자의 일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여자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 못한다'는 대목에서는 은자씨가 슬퍼하고,
현인의 ’체리핑크 맘보‘에서는 다들 엉덩이를 흔들어댔다.






이 것이 사람 사는 재미다.
하잘 것 없는 사연에 울고, 흥겨운 멜로디에 웃는 사람들...
배우고 가진 자들이 서민들의 순수한 이 맛을 알리 있겠는가?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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