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에서 진행한 ‘내일키움일자리사업’은

살길이 막막한 젊은 예술가들에게 큰 위안을 안겨주었다.

그것도 많은 예술가들을 거느린 예술단체에서 나선 것이 아니라

설립한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은 ‘한국스마트협동조합’이

해 냈다는 점에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 없다.

 

‘스마트협동조합’개소식에서

 

'스마트'(SMART)는 'Social Mutual ARTs'의 약자로,

예술인들을 위한 상호부조 사회를 만들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지난 2월에 설립되어 5월에 ‘은평사회적경제허브센터’ 3층 사무실에 문을 열었다.

 

하는 일은 예술가들의 작업과 연관된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며 창작 여건을 개선하는데 있다.

공연이나 전시 기획, 조합원 교육, 예술인 네트워킹,

장비 및 공간 공유 등 조합원을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한다.

 예술인들이 자신의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스마트협동조합’개소식 만찬장

 

예술가들의 안정적인 활동 지원을 통해

공통의 경제적·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만들어 졌는데,

불과 몇 개월 만에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어낸 것이다.

 

‘스마트협동조합’ 개소식에서 인사말을 하는 서인형이사장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예술가 단체로 꼽히는 ‘예총’이나 ‘민예총’은 도대체 뭐 하는 곳인지 모르겠다.

여지 것 회원들 생계나 개인적 행정에 도움 준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하기야! 제대로 일 할 사람은 안 보이고,

감투나 명예에 눈독 들이는 사기꾼 비슷한 예술가들이 우글거리는 곳이 아니던가?

 

작가들의 사행심이나 조장하는 공모전으로 장사나 했지,

회원들의 생계에 도움 줄 일을 한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적 잖은 회비 갖다 바치며, 무리에 끼이려 안달하는 분들이 가련할 뿐이다.

 

‘스마트협동조합’ 회의장면

 

‘스마트협동조합’은 설립과 동시에 조합원을 위해 지속적으로 일거리를 만들어냈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중단되었지만 ‘예술가의 식탁’을 마련하여

매주 수요일 조합원들이 오찬을 함께하는 등 공동체 친목도 다졌다.

 

미술평론가를 앞세운 ‘도슨트와 미술관 산책’이라는 프로그램도 진행했고,

조합원들에게 700w상당의 음향기기를 대여하는 사업도 벌였다.

예술가들의 프로필사진을 촬영할 스튜디오 설치와 사진출력 프린트기를 마련하는 등

조합원들이 염가로 활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설비를 마련한 것이다.

 

‘스마트협동조합’개소식에서 축하공연을 하고 있다.

 

그 뿐 아니라 코로나19와의 전쟁으로 가난한 예술가들의 삶은

벼랑 끝으로 몰릴 수밖에 없는 어려운 시국을 맞아

조합에서 예술가들의 생계지원을 위해 발 벗고 나선 것이다.

 

영등포 지역의 사회적 경제 생태계를 조사하는 일과

금속 소공인들을 만나 설문조사 하는 일을 따내 3개월 간 예술가 24명을

근무시간에 따라 월 90만원에서 180만원을 받는 일거리를 만들어 준 것이다.

 

내일키움일자리사업 신청에 몰려든 젊은 예술가들

 

그리고 ‘보건복지부’에서 실시한 ‘내일키움일자리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예술가들이 수도권에 있는 사회복지시설(양로원 보육시설 등)을 찾아다니며

공연이나 전시를(두 달간 2회 이상)해 주고 총 360만원을 받는 사업인데,

어려운 예술가로서는 눈이 번쩍 뜨이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의 사업 일정이 너무 촉박하게 잡혔다..

사업선정 통보 받은 지 4일 만에 접수를 받았다는데,

300명 모집에 무려 700여명의 예술가들이 몰려드는 북새통을 이룬 것이다.

심의 기준에서 제외된 분을 위해 추가 모집을 협의해

다시 200명을 고용했다니, 대단한 일을 해낸 것이다.

 

내일키움일자리사업 신청에 몰려든 젊은 예술가들

 

그 많은 인원의 서류접수와 면접을 불과 몇 일만에 해 낸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서인형 이사장과 황경아 국장, 박건주씨 등 세 명이 밤을 새워가며 중노동을 했는데,

끝난 후 함께 일했던 박건주씨가 노동청에 고발한다는 농담을 할 정도였으니, 그 과정이야 말하나 마나다.

 

사람이 죽고 사는 생계문제가 걸렸는데, 어찌 원칙만 따질 수 있겠는가?

그 많은 예술가들의 활동 상항을 체크해 가며

마무리하는 것도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닐 것이다.

 

서인형이사장이 '내일키움일자리사업'에 신청한 예술가 면접을 보고있다.

 

조합원에게 도움을 주기위해 여러 가지 사업을 벌였지만, 재정은 빈 깡통이나 다름없다.

이사장이 앵벌이처럼 외부에서 벌어 두 직원 급여를 충당해가며 어렵사리 살림을 꾸려 온 것이다.

 

그런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지난 달 ‘문체부’의 사회적 기업으로 지정되어 날개를 달게 된 것이다.

‘스마트협동조합’이 제 자리에 안착된 것은 이사장과 사무국장의 부단한 노력에 의한 성과지만,

코로나 위기가 받침이 되었으니, 위기가 기회란 말이 딱 맞다.

 

지난 30일, ‘스마트협동조합’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자리가 있었다.

조합원에 불과한 나야 갈 필요가 없으나 정영신 이사가 가신다는데,

기사가 어찌 모른 척 할 수 있겠는가?

 

약속된 ‘궁중족발’까지 태워만 주기로 했으나,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참새가 방앗간 앞을 그냥 지나 칠 수도 없지만,

서인형, 황경아, 정영신씨 뿐이라 사회적 거리두기로 제한한

다섯 명을 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좀 있으니, 최석태씨와 박건주씨가 나타난 것이다.

인원이 초과되었으면 얼른 나와야 하지만,

모처럼 최석태씨를 만났는데, 어찌 그냥 올 수 있겠는가?

테이블 두 곳에 나누어 앉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놈의 코로나가 여러 가지로 입장 난처하게 만드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스마트협동조합 송년회 덕에

불청객도 기분 좋게 한 잔 걸치는 영광을 얻었다.

 

그런데, 술값을 돈도 못 버는 최석태 감사가 계산했다.

거지 조합에 거지들 밖에 없지만, 통상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협회 밥값을 감사가 내는 것 본 사람 있으면 어디 나와 봐라.

 

내년에는 더욱 성장하여 우리나라 예술가들의 본산이 되길 기대한다.

더 많은 참여와 예술가들의 연대도 부탁드린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 조문호

 

전시 교체로 분주했던 인사동의 화요일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다.

코로나 광풍에 거리두기가 시작되며 생긴 썰렁한 풍경인데,

육 개월이나 끌어 온 전염병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 30일 들린 인사동은 '갤러리H' 전시 작가 등 몇 몇만 오갈 뿐,

작품 반입으로 분주했던 예전의 모습은 아니었다,

잡화상에 진열된 영혼 없는 작품만 손님을 기다렸다.

 

전염병으로 모든 사람이 고통 받지만, 예술가들 삶도 말이 아니다.

찾는 관객도 없지만, 작품 거래 자체가 되지 않는다.

전시장은 개점휴업이나 마찬가지나 건물주는 집세 챙기기에 바쁘다.

 

갤러리도 지탱하기 어려운 처지지만, 작가들도 손을 놓고 있다.

돈 벌이보다 작품을 보여주기 위해 전시를 여는 경우도 많은데,

찾는 사람이 없으니, 전시할 생각조차 않는다.

 

잘 나가는 작가야 살아남겠지만, 대부분의 작가는 전업해야 할 형편이다.

배운 도둑질이 그 뿐이라 무엇을 해야 할 지 막막할 것이다.

인사동 갤러리만 죽는 게 아니라 예술가들도 다 죽는다.

 

작가들의 가난이 어제 오늘만의 일은 아니지만,

인사동을 풍미한 많은 작가들이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자존심에 기초생활수급비도 마다했으나, 이제 생각을 바꾼 작가도 여럿 생겼다.

 

예술을 전공해도 전업 작가가 살아남기는 정말 힘들다.

그 중 어려운 분야가 문학과 연극 사진 등인데,

이제 예술 창작을 보상하는 구조적인 개선이 절실하다.

 

정부도 코로나 여파로 상인들 대책은 세우지만 예술가들 생계는 관심조차 없다.

정치판에 들어 간 도종환과 박양우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

예술가를 대표한 자리가 아니라 스스로의 영화를 위한 자리 같다.

 

이제는 월급쟁이가 제일 부러운 세상이 되어버렸다.

특혜 받는 국회의원 세비와 고위공직자 임금부터 줄여야 한다.

일하지 않고 밥그릇 싸움이나 하는 정치꾼은 모두 끌어내리자.

 

예술가는 왜 가난하게 살아야 하며, 가난한 예술가는 국민이 아니던가?

이제 작가들이 작업실에서 뛰쳐나와 화염병을 들 차례다.

 

사진, 글 / 조문호

 

[스크랩] 서울문화투데이 2016년 11월16일

▲조문호 사진가



요즘 어처구니없는 일을 너무 많이 본다.

하루가 다르게 터져 나오는 박근혜 정권의 갖가지 부정과 비리에 차마 입을 다물 수 없다. 그중 문화예술인을 탄압한 블랙리스트 파문으로 문화예술계가 일파만파 들끓고 있다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탄압은 군사정권 때부터 내려 온 오래된 짓거리다. ‘예술인총연합회’란 단체가 태어날 무렵, 배후에서 조종한 세력이 있었던 것도, 그 조직을 통해 예술인들을 관리하기 위해서였다.

아부 잘 하는 예술가는 승승장구했고, 입바른 예술가들은 사정없이 밀려났다. 그 독재에 저항해 온 예술가들이 ‘민족예술인총연합회’를 만들었다. 민중미술과 더불어 탄생한 ‘현실과 발언’ 동인들의 직설적인 표현은 매서웠다. 바꾸어 생각하면 군사정권이 우리나라 민중미술을 꽃 피웠다 할 수도 있겠다.

69년에는 신상옥감독의 ‘내시’란 영화가 음란하다는 이유로 입건되기도 했고, 1970년에는 김지하시인이 ‘오적 필화사건’으로 구속되었다. 75년에는 공연 정화대책이란 걸 발표하면서 수백 곡의 대중가요를 금지시킨 일이 벌어졌다. 문제는 별 것도 아닌 가사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이다. 이장희의 ‘그건 너“는 책임전가로, 송창식의 ’왜 불러‘는 반말이라는 이유로, 한 대수의 ’물 좀 주소”는 물고문을 연상시키는 이유라는데,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던가?

그리고 87년에는 신학철화백의 ‘모내기’그림이 북한 찬양죄로 압수, 입건된 일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 터져 나온 블랙리스트 명단 역시, 그처럼 슬픈 코메디에 다름 아니다. 블랙리스트란 독일 히틀러나 일본제국주의에선 학살예비자명단이 아니던가. 과거 군사정권에서나 있을 법한 이런 치졸한 예술인 탄압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하기야!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례들이 쏟아져 나온 걸 보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겠다는 생각이 든다. 문화예술에 대한 각종 지원 사례를 보며 진작부터 낌새는 차렸으나, 설마 그렇게 몰상식한 짓을 하진 않을 거라는 위안도 마음 한구석에 깔려있었다. 그러나 그게 현실로 드러나며, 모든 예술인들이 충격 받고 말았다.

그 뿐 아니었다. 부당한 예술 검열 사례도 수없이 쏟아져 나왔다, 문체부의 치욕적인 인사 조치와 주요 문화정책사업의 예산 몰아주기 등 문화행정의 갖가지 파행이 체계적으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그 안에는 강남아줌마란 여성이나 더럽혀진 이름의 운동선수와 CF감독, 최순실, 차은택, 김종 문체부 차관의 인맥으로 분탕질 된 것이다. 이러한 모든 일이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나 묵인 없이 진행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제 입맛에 따라 예술인을 낙인찍어 문체부로 내려 보냈으나, 예술인 관리를 제대로 못했다는 이유로 차관이 날아갔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문체부 전·현직 공무원의 증언으로는 “청와대에서 재작년 중반부터 문화계 인사들을 분류한 명단을 문체부 예술국에 내려 보내 좌파 인사에 대한 지원을 못하도록 했다”고 한다.

지난 10월12일 공개된 예술인 블랙리스트 명단으로 예술인들은 분노해 일어났고, 18일에는 ‘예술행동위원회’에서 “우리 모두가 블랙리스트 예술가다”란 기자회견을 열며 광화문 광장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어 11월 4일에는 문화예술인들이 시국선언에 나서며, 광화문광장을 캠핑촌으로 만들었다. 끊임없이 ‘블랙리스트 페스티벌’과 시국 좌담회를 열며, ‘허수아비 박근혜를 풍자한 그림들을 그리는 등 갖가지 행위예술로 저항하지만, 알고도 모른 채, 묵묵부답이다.

문화융성이란 기치를 문화파탄으로 이끈 박 정권은 이제 그만 내려와야 한다. 하잘 것 없는 모리배들의 농간에 문화융성은 공염불이 되고 말았지만, 농단에 의해 중단될 성질이 결코 아니다. 관련자 처벌과 함께 새로운 적임자를 찾아 개혁해야 할 우리의 당면 과제이고, 기회이기도 하다.

더 이상 광화문 캠핑촌에 웅크려 자는 예술가들과 거리에서 퇴진을 외치는 예술가들의 외침을 외면하지마라. 그만 고생시켜라, 문화파탄의 주체인 조윤선 문체부장관과 정관주 국민소통비서관을 처벌하고, 그 중심에 있는 박근혜 대통령은 즉각 퇴진하라.

[스크랩 : 서울문화투데이]


▲조문호 사진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온 나라가 술렁거린다. 누가 공천 받을 것이라거나, 누가 밀려난다는 등의 추측들이 무성하다. 그러나 예술가들이 출사표를 던졌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예술가들이 작품 활동이나 열심히 하지, 정치는 무슨 정치냐고 할지 모르지만, 가난한 서민들의 생활고 못지않게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예술가들이 너무 많다. 그들을 대변하고 구제할 수 있는 정치인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가난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예술가들의 삶은 고달프기 짝이 없다.

2011년에는 연출가 최고은씨가 자신의 자취방에서 숨졌다.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 주세요."라는 글을 남겨, 사회에 큰 충격을 준 바 있다. 그래서 ‘예술인 복지법’이 제정되었다. 작년에는 연극배우 김운하씨가 고시원에서 죽었고, 영화배우 판영진(55)가 자신의 차안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는 일이 연이어 벌어졌다. 이 두 배우의 공통점은 한 달에 몇 십만 원에 못 미치는 극심한 생활고로 고통 받았다는 사실이다.

‘예술인복지법’이 실효를 거두지 못한다는 판단아래 개정안이 추진될 예정이라지만 탁상공론으론 복잡한 현실구조에 접근할 수 없다. 이젠 예술가들이 현실정치로 들어가 현장 목소리를 전하며 잘못된 현실을 바꾸는데 앞장서야 한다. 또한 예술의 상상력으로 현실 정치를 비판하고 해체해야한다. 기득권과 관습이 작용하는 정치를 ‘예술적으로’ 바꾸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그리고 여지 것 온갖 집회들이 난무했지만, 예술가의 복지나 권익을 내 세우는 집회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아마도 이런 현상의 가장 큰 원인은 예술가들의 체면 때문일 것이다. 복잡한 일상과 관습으로부터 거리를 두어 예술의 고고함에 지나치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생각 없이 내뱉는 `예술가는 가난해야한다`는 근대적 경구가 공허하다. 그 가난의 이름은 몸의 가난이 아니라 정신적 가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예술의 창조성이다. 그러나 예술가라고 개성과 이상향만 바라보며 살 수는 없다. 그들에게도 누울 잠자리와 허기를 메울 밥이 필요한 것이다.

요즘 만나는 예술인들마다 먹고살기 힘들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한 달에 100만원 소득도 올리지 못하는 실정이다. 작품을 팔아서는 도저히 기본적인 생활이 되지 않아 많은 작가들이 작품 활동을 접거나 위축되고 있는 것이다. 점차 어려워 진 경제상황은 예술가들을 신용불량자로 내몰며 범법자로 만들고 있다. 그러한 예술가들에게 국가에서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줘야 하지 않는가?

정부에서 베푼다는 예술인복지지원금이나, 지자체 문화재단에서 주는 창작지원금이 있다지만, 인사동을 오가는 주변의 가난한 예술가들이 혜택 받았다는 소식은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행정의 이치를 아는, 발 빠른 자들의 전유물일 뿐이다. 창작발표래야 용케 지원금 혜택 받는 몇몇 작가 내지는 돈 많은 집안이나, 돈 잘 버는 남편을 둔 아줌마가 되어야 일을 벌일 수 있는 것이다.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다.’ ‘문화예술이 국가 이미지를 높이고 나라의 격을 높인다.’ ‘문화예술을 통해 국민들의 삶의 질 향상’이라는 등 문화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말들은 뻔지레하지만, 정치인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인식은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다.

인사동의 그 많은 전시장에서 매일같이 좋은 전시가 열리고, 도처에서 좋은 공연이 열리지만, 텅텅 비어있다. 이젠 그런 말장난보다 어떻게 국민들을 문화로 끌어들이느냐에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문화를 끌어가는 예술인들이 안정적으로 활동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는 일이 시급한 문제다.

그래서 열악한 문화예술계를 대변할 예술가들이 정치 전면에 나왔으면 좋겠다. 최소한 이번 선거에서 어떤 출마자가 예술가를 위해 어떤 정책을 펴고자 하는지 관심 있게 지켜보자. 이를 토대로 예술가들의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자.

더 이상 냉혹한 현실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이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월소득 최저생계비 이하만 지원
“소외계층 돕듯 지원 안돼” 비판
졸업 앞두고 교사 자격증 등 준비
‘알바’ 뛰면 창작지원금 못받고


극단 ‘사이’ 대표 김유진(30)씨는 매일 오전 서울 합정동 한 카페에서 손님을 맞는다. 이렇게 4시간씩 일해 월평균 65만원을 번다. 원룸 월세와 각종 공과금 등을 내고 남는 10만~20만원을 모아 창작극 <살길> 등 작품 세 편을 지난해 무대에 올렸다. 연극에만 몰두하고 싶은 김씨는 올해부터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지원하는 ‘긴급복지지원’을 신청하려 했지만 자격조차 안 됐다.


 

카페 아르바이트가 문제였다. 예술인 긴급복지지원을 받으려면 올해 최저생계비인 60만3000원(1인 가구 기준)보다 덜 벌어야 한다. “주변을 보면 대부분 연극하려고 고시원 살면서 카페나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해요. 내가 ‘최고은’처럼 될 게 뻔한데 누가 일 안 하고 가만히 있겠어요. 현실을 모르는 정책이죠.”

 

2011년 초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의 죽음을 계기로 2012년 말 출범한 예술인복지재단이 올해 시작한 긴급복지지원 사업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시행한 창작지원금 사업은 소득이 충분한 일부 예술인들도 지원을 받는 등 소득수준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에 따라 폐지됐고, 대신 보건복지부의 최저생계비 기준을 적용해 긴급복지지원 제도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는 예술인들이나 돈 버는 자녀를 둔 원로배우 등은 자신이나 자녀의 수입이 최저생계비를 넘기면 이 제도를 이용할 수 없다.

 

41년째 연극 연출가로 활동하는 김아무개(72)씨는 긴급복지지원 선정을 기다리고 있다. 아내와 27살 막내아들과 살고 있는데, 다행히 3인 가구 최저생계비인 132만9000원보다 월 소득이 적었다. 2012년 제대한 아들이 올해 취업을 하게 되면 내년엔 지원 대상에서 탈락할 수밖에 없다. “나이든 동료들은 보통 아내나 자식한테 얹혀사는데, 최저생계비 넘는다고 안 줄 게 아니라 사정을 따져보고 지원을 해야죠.”

 

소득 기준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예술인 복지는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김상철 예술인소셜유니온 정책위원은 “소득에 따라 위기 상황을 긴급구제한다면 기존 사회보장과 똑같고, 예술인복지재단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최저생계비를 넘더라도 창작활동을 보장받을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예술인복지재단 관계자는 “최고은씨가 숨진 뒤 지난해 창작지원금 사업, 올해 긴급복지지원 사업 등을 도입했는데, 문제가 적지 않아서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차상위계층까지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취업 위해선 예체능 전공 포기

서울의 한 사립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손아무개(23)씨는 요즘 눈코 뜰 새 없다. 그림 그리기보다 영어공부, 자격증 준비에 한창이다. 졸업을 앞두고 있어서다. “선배들이 전공을 살린 일을 하며 어렵게 사는 것을 보고 뒤늦게 취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늦게 준비를 하다보니 어려움이 많아요.”


피아노를 전공한 정아무개(29)씨는 유치원에서 일한다. 교육 자재와 비품을 준비하는 것이 정씨의 일이다. 정씨는 ‘유치원 정교사 자격증’을 목표로 유아교육학 학위를 따려 하고 있다. 그는 “피아노 전공에 지금까지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한 터라 전공을 버리기 쉽지 않았지만, 안정적인 길을 가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예체능 전공자들이 취업난 탓에 전공을 살리는 경우가 더욱 줄고 있다. 서울 한 사립대 피아노과 출신으로 리서치회사에 다니는 박아무개(29)씨는 “선배들에 비해 전공과 무관하게 취업하려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정씨는 “교수·음악교사 같은 일자리가 거의 없고 입시 개인교습을 하며 들쭉날쭉한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아 피아노를 포기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전했다. 광주의 한 대학 조소과를 나온 박수진(31)씨는 “이름을 알리려면 전시회를 열어야 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다. 전시회를 열어도 미술가로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고 말했다. 교육부의 ‘2013 취업통계연보’를 보면, 국내 183개 대학의 예체능 졸업생의 취업률은 43.9%(전체 졸업생 취업률 55.6%)로, 인문·사회·교육·공학·자연·의약·예체능 등 7개 계열 중 가장 낮았다.


예체능 전공자들이 다른 일자리를 잡는 것도 쉽지 않다. 기업체 서류전형에서 ‘예체능’은 ‘주홍글씨’와 다름없다고 한다. 강아무개(29)씨도 제약회사에 취직하기까지 마음고생이 심했다. 그는 “입사 면접 때마다 ‘체육 전공자가 일을 잘할 수 있냐. 업무 관련성이 떨어지는데 어떻게 할 생각이냐’는 질문을 수없이 받았다”고 말했다.


예술인들에게도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나도원 예술인소셜유니온 공동준비위원장은 “우리나라는 예술 전공자가 안정적인 직업에 종사하며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이 못 된다. 영화나 음악산업에서도 단기계약직이 대부분이다. 예술을 하더라도 인간다운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복지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겨레 / 서영지 기자 yj@hani.co.kr , 이재욱 기자 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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