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소득 최저생계비 이하만 지원
“소외계층 돕듯 지원 안돼” 비판
졸업 앞두고 교사 자격증 등 준비
‘알바’ 뛰면 창작지원금 못받고


극단 ‘사이’ 대표 김유진(30)씨는 매일 오전 서울 합정동 한 카페에서 손님을 맞는다. 이렇게 4시간씩 일해 월평균 65만원을 번다. 원룸 월세와 각종 공과금 등을 내고 남는 10만~20만원을 모아 창작극 <살길> 등 작품 세 편을 지난해 무대에 올렸다. 연극에만 몰두하고 싶은 김씨는 올해부터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지원하는 ‘긴급복지지원’을 신청하려 했지만 자격조차 안 됐다.


 

카페 아르바이트가 문제였다. 예술인 긴급복지지원을 받으려면 올해 최저생계비인 60만3000원(1인 가구 기준)보다 덜 벌어야 한다. “주변을 보면 대부분 연극하려고 고시원 살면서 카페나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해요. 내가 ‘최고은’처럼 될 게 뻔한데 누가 일 안 하고 가만히 있겠어요. 현실을 모르는 정책이죠.”

 

2011년 초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의 죽음을 계기로 2012년 말 출범한 예술인복지재단이 올해 시작한 긴급복지지원 사업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시행한 창작지원금 사업은 소득이 충분한 일부 예술인들도 지원을 받는 등 소득수준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에 따라 폐지됐고, 대신 보건복지부의 최저생계비 기준을 적용해 긴급복지지원 제도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는 예술인들이나 돈 버는 자녀를 둔 원로배우 등은 자신이나 자녀의 수입이 최저생계비를 넘기면 이 제도를 이용할 수 없다.

 

41년째 연극 연출가로 활동하는 김아무개(72)씨는 긴급복지지원 선정을 기다리고 있다. 아내와 27살 막내아들과 살고 있는데, 다행히 3인 가구 최저생계비인 132만9000원보다 월 소득이 적었다. 2012년 제대한 아들이 올해 취업을 하게 되면 내년엔 지원 대상에서 탈락할 수밖에 없다. “나이든 동료들은 보통 아내나 자식한테 얹혀사는데, 최저생계비 넘는다고 안 줄 게 아니라 사정을 따져보고 지원을 해야죠.”

 

소득 기준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예술인 복지는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김상철 예술인소셜유니온 정책위원은 “소득에 따라 위기 상황을 긴급구제한다면 기존 사회보장과 똑같고, 예술인복지재단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최저생계비를 넘더라도 창작활동을 보장받을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예술인복지재단 관계자는 “최고은씨가 숨진 뒤 지난해 창작지원금 사업, 올해 긴급복지지원 사업 등을 도입했는데, 문제가 적지 않아서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차상위계층까지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취업 위해선 예체능 전공 포기

서울의 한 사립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손아무개(23)씨는 요즘 눈코 뜰 새 없다. 그림 그리기보다 영어공부, 자격증 준비에 한창이다. 졸업을 앞두고 있어서다. “선배들이 전공을 살린 일을 하며 어렵게 사는 것을 보고 뒤늦게 취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늦게 준비를 하다보니 어려움이 많아요.”


피아노를 전공한 정아무개(29)씨는 유치원에서 일한다. 교육 자재와 비품을 준비하는 것이 정씨의 일이다. 정씨는 ‘유치원 정교사 자격증’을 목표로 유아교육학 학위를 따려 하고 있다. 그는 “피아노 전공에 지금까지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한 터라 전공을 버리기 쉽지 않았지만, 안정적인 길을 가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예체능 전공자들이 취업난 탓에 전공을 살리는 경우가 더욱 줄고 있다. 서울 한 사립대 피아노과 출신으로 리서치회사에 다니는 박아무개(29)씨는 “선배들에 비해 전공과 무관하게 취업하려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정씨는 “교수·음악교사 같은 일자리가 거의 없고 입시 개인교습을 하며 들쭉날쭉한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아 피아노를 포기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전했다. 광주의 한 대학 조소과를 나온 박수진(31)씨는 “이름을 알리려면 전시회를 열어야 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다. 전시회를 열어도 미술가로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고 말했다. 교육부의 ‘2013 취업통계연보’를 보면, 국내 183개 대학의 예체능 졸업생의 취업률은 43.9%(전체 졸업생 취업률 55.6%)로, 인문·사회·교육·공학·자연·의약·예체능 등 7개 계열 중 가장 낮았다.


예체능 전공자들이 다른 일자리를 잡는 것도 쉽지 않다. 기업체 서류전형에서 ‘예체능’은 ‘주홍글씨’와 다름없다고 한다. 강아무개(29)씨도 제약회사에 취직하기까지 마음고생이 심했다. 그는 “입사 면접 때마다 ‘체육 전공자가 일을 잘할 수 있냐. 업무 관련성이 떨어지는데 어떻게 할 생각이냐’는 질문을 수없이 받았다”고 말했다.


예술인들에게도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나도원 예술인소셜유니온 공동준비위원장은 “우리나라는 예술 전공자가 안정적인 직업에 종사하며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이 못 된다. 영화나 음악산업에서도 단기계약직이 대부분이다. 예술을 하더라도 인간다운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복지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겨레 / 서영지 기자 yj@hani.co.kr , 이재욱 기자 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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