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권영빈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월 26일 ‘문화가 있는 날’을 맞아 서울 대학로의 한 소극장에서 창작 뮤지컬 ‘김종욱 찾기’를 관람했다. 지난 1월 첫 ‘문화가 있는 날’엔 시내 극장에서 국산 애니메이션 ‘넛잡’을 관람한 바 있다. 박근혜정부는 출범 이후 ‘문화융성’을 4대 국정기조 중 하나로 내세울 만큼 ‘문화’는 정부의 중요한 정책과제다. 대통령 직속으로 만들어진 문화융성위원회는 지난해 ‘문화가 있는 삶’ 8대 과제를 발표했고, 그중 하나가 올 들어 매월 마지막 수요일로 지정한 ‘문화가 있는 날’이다. ‘문화융성’ ‘문화가 있는 삶’이 화두가 되고 있는 이때, 권영빈(71)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으로부터 문화예술 전반에 대한 견해와 소신을 들어봤다.

“1973년 10월 박정희 전 대통령은 문예중흥 선언을 하고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을 만들었습니다. 전국에 107개의 문예회관을 설립하고 극장과 공연장 수입의 0.7%를 문예진흥기금으로 모아서 문화예술인에 대한 지원을 시작했지요. 초기엔 50억 원 정도의 기금이 모였는데,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500억 원이 넘을 것입니다. 그로부터 40년이 흐른 지난해에 공교롭게도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기조 중 하나로 문화융성을 내세웠습니다. 부녀간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사이에 상통하는 ‘문화 DNA’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문화를 국정기조로 내세운 대통령은 일찍이 없었기에 문화예술인들 입장에서 새정부의 정책은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입니다.”

지난 2월 27일 대학로 ‘예술가의 집’ 집무실에서 만난 권영빈 위원장은 칠순을 넘긴 나이지만 인터뷰 내내 흐트러짐 없는 자세와 품격 높은 선비의 모습으로 문화예술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거침없이 밝혔다. 권 위원장은 특히 각 문화 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국내외 여러 사례를 소개하며 기초 문화예술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과 ‘문화융성을 위한 문화의 세계화’를 강조했다.

―기초 문화예술 분야의 지원을 특히 강조하는 이유는.

“예술하는 사람이 예술로 밥을 먹고살 수 있어야 합니다. 극작가, 소설가, 시인, 연극배우·연출가 등 기초 문화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지원을 훨씬 강화해야 합니다. 기초 예술 분야에 대한 투자 없이는 응용문화도 발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정부의 투자는 응용문화 부문에 편중돼 있습니다. 영화나 애니메이션 등 응용예술 분야는 시장에 맡기면 잘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로만 문화가 있는 삶, 문화융성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문화융성이 되려면 문화의 세계화가 필요합니다. 기초 문화의 세계화가 필요한 것입니다. 문학, 연극 등 기초 예술 분야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문화융성의 세계화도 이룰 수 있습니다. 여자골프는 이미 세계를 장악했습니다. 서양음악시장도 머지않아 한국이 장악할 것으로 봅니다. 세계 3대 콩쿠르 중 하나인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에서 한국인이 1∼3위를 석권하고 있습니다. 재정적인 뒷받침만 된다면 서양음악시장을 점령할 수 있는 수준에 이미 도달한 것입니다. 뮤지컬 또한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고 있고, 시인의 경우 인구 비례로 따지면 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많습니다. 이런 기초 예술 분야에 적극적인 지원이 이뤄진다면 세계시장을 석권하는 날이 오래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문화가 있는 삶’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정선 아리랑’의 강원 정선은 5일장으로 유명합니다. 토요일 아침 8시 반, 서울 청량리역에서 기차를 타고 정선에 도착해 산나물을 사고 나면 12시, ‘정선 아리랑 콘서트’가 열립니다. 한 시간여 신나게 아리랑 선율에 취하고 나서 점심을 든 다음 다시 기차로 돌아옵니다. 이런 행렬에 지난해 46만 명이 동참했습니다. 주민 연 소득은 무려 9700만 원에 달합니다. 이것이 곧 문화가 있는 삶이 아닐까요. 지역에서 문화적 우월성을 갖고 사업을 할 수 있는 곳은 경북 안동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 등 도처에 있습니다. 문화예술을 통해 밥을 먹고 돈을 벌고 삶을 영위하는 것이 문화가 있는 삶입니다. 문화는 ‘삶의 기억이고 흔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을 기록하고 재생시키는 작업’이 예술이고요. 개인적으로 문화와 예술을 통해 삶이 윤택해지고 경제적으로 부를 창출해 내는 것이 창조경제라고 생각합니다. 창조경제와 문화가 있는 삶, 그리고 문화융성 이 세 가지는 동떨어진 게 아니고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예술인도 먹고살 수 있어야 하고 문화예술로 삶의 보람을 느끼고 삶의 경제가 윤택해지는 것이 문화가 있는 삶이고, 이것이 바로 문화융성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문예회관 설립과 문화예술인 지원 정책의 기조는 지금도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문예회관 설립은 시민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접근성(Acsess)을 높이기 위한 것이고, 문화예술인 지원은 문화적 우수성(Excellence)을 말하는 것으로 우수한 문화예술인을 육성하기 위한 것입니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설립된 이래 지금까지 접근성과 문화적 우수성이라는 투 트랙으로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저소득층을 위한 문화바우처 사업을 2005년부터 시행하고 있습니다. 올해부터 가구당 5만 원이던 지원금을 10만 원으로 늘렸습니다. 국민과 시민의 문화접근성을 높이고 백남준, 정명훈 등과 같은 인재를 집중적으로 키우는 등 접근성과 문화적 우수성을 높이는 정책을 동시에 추진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학로를 아트밸리로 조성 중인데요.

“1997년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집권할 당시 크리스 스미스라는 초대 문화장관이 있었습니다. 그는 탄광 산업이 사양화되면서 폐허가 되다시피한 뉴캐슬에 박물관과 미술관을 건립했습니다. 이후 관광객이 몰려 거대 문화 관광도시로 탈바꿈했습니다. 이 같은 뉴캐슬 재생사업은 블레어 정권의 혁혁한 공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대학로엔 150여 개의 소극장이 있습니다. 대학로를 기초 예술메카로 더욱 왕성하게 키워야 합니다. ‘예술가의 집’을 인문예술 아카데미로 만들고 문화예술을 즐기러 오는 외국인을 위한 숙박공간도 만드는 등 대학로를 하나의 아트밸리로 육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문화예술위원회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부족합니다. 문화예술위원회를 소개한다면.

“문화예술위원회는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전신으로 1973년 설립 이래 40년간 ‘문예진흥’이라는 목표를 흔들림 없이 줄기차게 추구해온 공공문화 지원의 중추기관입니다. 2005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 바뀐 뒤 일반인들에게 조금 낯선 이름이 됐습니다. 그간 여러 공과가 있었지만 변함이 없는 것은 지난 40년간 문예진흥기금을 조성해 문화예술의 발전을 위해 꾸준히 재정지원을 수행해 왔다는 점입니다. 설립 이래 지난해까지 40년간 총 1조6535억 원 이상을 문화예술계에 투자하며 다양한 문예진흥기금사업을 수행해 왔습니다. 하지만 역사가 40년이나 됐지만 문화예술위원회의 위상은 아직 미국이나 영국 등에 비하면 많이 낮고 기금도 크게 늘어나지 못했습니다. 정부의 지원이 더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하고, 무엇보다도 안정적인 재원 확보가 절실합니다.”

―문화예술위원회가 추진하는 ‘예술나무 운동’은 무엇입니까.

“예술나무 운동은 문화예술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확산시키기 위해 지난 2012년 하반기부터 추진하고 있는 범국민 문화예술 후원 운동입니다. 2017년까지 예술나무 10만 그루 조성을 목표로 온·오프라인 모금, 기업 대상 기획모금, 문화예술행사를 활용해 거리모금 캠페인과 문화예술 후원의 달 행사 등으로 ‘1인-1예술나무’ ‘1기업-1예술나무’ 키우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기반 모금 운동인 크라우드 펀딩, 기업의 문화예술 후원 활성화를 위한 ‘기업메세나’ 활동 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런 노력을 통해 지난해에는 전년 대비 32.1%(47억 원)가 증가한 194억 원의 기부금을 유치했습니다. 이는 1973년 모금을 시작한 이래 최고의 성과입니다. 앞으로 문화예술위원회는 문화예술후원 활성화법 제정과 문화후원센터 개소를 계기로 민간부문의 후원 활성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입니다.”

―문화예술 활성화를 위한 중점 추진 과제는.

“2014년도 사업예산을 지난해 대비 53% 증액된 1867억 원으로 대폭 확대했습니다. 특히 문화융성의 근간이 되는 ‘순수기초 예술 창작지원’ 예산을 올해 157억 원에서 내년도 611억 원으로 대폭 확대해 예술현장 속의 예술인과 일반 시민들이 그 효과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아울러 문화융성의 대표 사업으로 대한민국의 우수한 문화예술을 해외에 소개하는 K-Culture 세계화 사업을 확대할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세종학당-한국문학번역원,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광주비엔날레 등과 다자간 업무협약을 맺어 공동추진하고 있습니다. 또한 오는 6월 열리는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을 시작으로 남북 교류의 물꼬 역할을 수행할 남북 문화예술 교류사업도 추진할 계획입니다.”

―문화융성을 실현하기 위한 소견이 있다면.

“최근 정부가 문화융성 국정과제를 구현할 구체적 정책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그 하나는 문화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최소한 먹고살 수 있도록 하면서 예술 창작을 북돋우는 방안으로 최저생계비 이하 저소득 예술인에게 긴급 복지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예술활동 증명’을 마친 이들 중 1200명을 선정해 3∼8개월간 월 100만 원씩 지원할 예정입니다. 아울러 창작기반 활성화를 위해 극장 대관료를 80% 보조하고 빛을 보지 못하는 무대기술 인력에 100억 원을 지원합니다. 게다가 전국 5곳에 창작연습공간을 100억 원을 들여 조성하고 예술강사를 5000여 명, 문화복지 인력을 1000여 명 늘리는 등 예술가의 일자리를 창출해 나갈 계획입니다. 또 하나는 지역과 주민들이 어떻게 하면 쉽게 문화예술에 접근하고 문화가 있는 삶을 영위할 것인가에 주력하는 정책입니다. 이를 위해 120억 원을 들여 전국 20곳에 생활문화센터를 새로 조성하고 영화관이 없는 지역에 영화관 10곳을 신설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저소득층의 문화 향수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가구당 10만 원씩과 청소년 5만 원씩을 포함해 전국 144만 명에게 혜택을 주는 ‘문화누리 카드’를 만들었습니다. 이 문화누리 카드 한 장이면 극장도 가고 여행도 가며 야구장에 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기초 문화예술에 종사하는 예술가들은 어떤 장르보다 춥고 배고픈 분들입니다. 이들에게 밥과 일자리를 마련해 준다면 문화예술이 낙후된 지역과 계층에게 접근성을 크게 높여줄 것입니다. 이것이 문화융성 국정과제의 정책적 실현을 위한 기본 구도라고 생각합니다.”

문화일보 / 인터뷰=김도연 차장(문화부) kdychi@munhwa.com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