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평론가협회, '국립현대미술관 운영과 정체성 문제' 세미나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작년 11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서울 도심에 문을 열었다.

국내 미술계의 숙원이었던 만큼 기대가 컸지만 막상 개관전이 공개되자 각종 문제점이 지적되며 진통이 잇따랐다. 정형민 관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불거져 나왔다.

당황한 국립현대미술관 측이 미술인과의 소통을 강화하겠다며 뒤늦게 진화에 나섰지만 갈등은 쉽게 봉합되지 않는 분위기다.

한국미술평론가협회는 서울관 개관 100일을 맞아 21일 오후 종로구 동숭동 예술가의 집에서 '국립현대미술관 운영과 정체성 문제'를 주제로 정기 세미나를 연다.
발표자들은 세미나에 앞서 배포한 발제문을 통해 논란이 됐던 개관전 '자이트가이스트-시대정신'의 미흡함과 국립현대미술관의 폐쇄적인 태도 등을 비판했다.

윤익영 한국미술평론가협회장은 발제문에서 '자이트가이스트-시대정신'전에 대해 "국내외에 한국현대미술의 정신과 정체성에 대한 오해와 혼란을 갖게 했고, 국내의 미술인들에게는 실망과 위화감을 갖게 했다"고 꼬집었다.

윤 회장은 "미술사적 맥락 속에서나 고유한 의미를 지닐 수 있는 '자이트가이스트'를 빌려와 일반적 의미의 '시대정신'으로 쓰는 바람에 주제의 초점이 흐려졌고 전시작품의 배치는 어떤 시대나 양식적 분류의 기준조차 없이 들쭉날쭉 배열될 수밖에 없었다"고 비판했다.

김병수 미술평론가는 "미적 근대를 향한 나름의 질주는 역사성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며 "그렇다면 전시기획으로서 현실적으로 드러나는 상충에 대해 심사숙고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변종필 미술평론가는 "주제의 적절성, 작품 선정의 공정성, 전시 연출의 전문성에서 전시 기획의도만큼 객관성과 전문성을 찾아보기 힘든 전시"라며 "한마디로 시대적 바람과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전시"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는 이어 "이번 논란에는 미술관의 안일한 행정이 문제를 증폭시킨 부분도 간과할 수 없다"며 "우리가 진정 경계하고 두려워해야 할 것은 한국 미술의 시대담론이 상실되는 현실 앞에 침묵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성록 안동대 미술학과 교수는 "미술관 사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도대체 무엇이 잘못됐는지에 대한 반성이 없는 것 같아 씁쓸하다"면서 "소통이 꼭 별도기구를 둬야만 해결될 문제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한국미술계 발전을 위해 미술인과 고민을 같이하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며 "관장은 평소 측근만 만날 게 아니라 항상 미술인들을 폭넓게 만나고 그들의 의견을 청취해 미술관 정책에 반영했어야 옳았다"고 강조했다.

오세권 미술평론가는 "(이번 일은) 권위주의에 의한 미술계 현장과의 소통 부재와 폐쇄적인 국립현대미술관의 운영 때문"이라며 "미술관 측은 그동안 권위주의에 빠져 자기검증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첫 전시가 말썽 많은 전시로 전락돼 앞으로 미술관을 운영하는 데 있어 상처를 안고 나아가게 됐다"며 "미술관은 조직을 더욱 공고히 해야 할 것이며 개방된 운영을 해나가야 이런 사태를 치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hanajjang@yna.co.kr

 

뒷수습도 안되는 국립현대미술관 ‘시대정신’

 

서울대 동문 중심 ‘개관전’ 논란 뒤
TF 꾸린다면서 정책자문위만 구성
위원들 “의견수렴 시늉뿐” 줄사퇴

 

 

지난해 11월 서울관 개관 기념전인 ‘시대정신’전 출품작가 대부분을 서울대 출신 화가로 채워 말썽을 빚은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정형민)이 이를 수습하는 과정을 둘러싸고도 논란에 휩싸였다. 미술관이 구성한 정책자문위원회의 위원들이 연이어 사퇴하고, 평론가계에서도 비판이 나온다.

 

‘시대정신’전은 서울대 미대 정영목 교수에게 기획을 의뢰한 전시로, 출품작가 38명 가운데 28명이 서울대 출신이어서 서울대 동문전이라는 지적(<한겨레> 2013년 11월15일치 23면 참조)이 일었다. 당시 미술계 인사 300여명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특정 대학 미술관 분원으로 전락시킨 정형민 관장 사퇴, 편파·전횡 미술행정 일삼는 최은주 학예1팀장 사퇴 등 11가지 요구사항을 내걸고 서울관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그러자 미술관은 1주일 뒤 △미술계와 함께하는 국립현대미술관 발전 티에프팀 발족·운영 △우수한 작가들의 작품 전시 및 소장 기회 확대를 위한 방안 마련 △미술계를 대표하는 단체들이 참여할 수 있는 자문기구를 구성해 미술관의 정책 수립 및 실행에 반영할 것이라는 보도자료를 냈다.

 

하지만 미술관은 애초 발표와 달리 티에프팀은 구성하지 않았으며 우수한 작가들의 작품 전시 및 소장 기회 확대 방안도 아직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해를 넘겨 이영욱 전주대 교수, 최태만 국민대 교수, 김영순 미술평론가, 전승보 독립큐레이터, 홍경한 <경향아티클> 편집장, 윤남순 국립현대미술관 기획운영단장, 이제훈 한국미협 대외협력단장, 박진화 민미협 회장, 백동민 <퍼블릭아트> 발행인 등 9명으로 정책자문위원회를 꾸렸을 뿐이다. 이에 대해 미술관 쪽은 “이 위원회가 티에프팀과 정책자문의 기능을 다 묶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우수 작가 전시 및 소장 확대와 관련해서는 “이제 시작하는 단계”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올해 1월15일 소집된 첫 회의는 자문위원들의 의견을 듣는 데 그쳤다. 이날 회의에선 일부 인사가 시대정신전 관련자 문책을 요구했고, 윤남순 단장은 공무원 신분인 관련자 문책은 미술관 소관이 아니라는 취지로 답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의에 참석한 한 인사는 “자문회의에 관장과 학예실장 등 전시 책임자가 참석하지 않았으며 윤남순 단장은 변명으로 일관했다”고 전했다. 미술관 추천인사 중 한명인 김영순 미술평론가는 회의가 끝난 뒤 미술관의 준비 미흡과 회의 진행의 문제점을 들어 정형민 관장한테 메일을 보내 위원직을 사퇴했다. 이달 10일에는 미술인들의 집단행동에 주요 역할을 했던 이제훈, 박진화씨 등 2명도 위원직을 사퇴했다. 이들은 “‘시대정신’전이 특정 대학에 편중된 것도 문제지만 일부 인사가 독단으로 미술관을 운영하고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게 문제”라면서 ‘두달에 한차례 회의를 열어 미술계 의견을 수렴하는 시늉을 하는 미술관의 의도에 더이상 끌려갈 수 없다’는 취지의 메일을 미술관 쪽에 보냈다고 밝혔다. 결국 지난 12일 열린 2차 회의에는 3명만 참석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윤남순 단장은 “자문위원회가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자리를 만들어놔도 안 나오니 고민스럽다”고 말했다. 현재 ‘시대정신’전은 전시작품 62점 가운데 30점을 외부에 대여한 것으로 추가로 드러나면서 ‘소장품전’이라는 문구만 삭제한 채 애초 그대로 전시되고 있다.

 

한국평론가협회는 지난 21일 ‘국립현대미술관 운영과 정체성 문제’를 의제로 정기 세미나를 열고 미술관의 권위적인 행태를 비판했다. 서성록 안동대 미술학과 교수는 발표문을 통해 “미술관 사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미술관 쪽은)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에 대한 반성이 없는 것 같아 씁쓸하다”며 “반성은커녕 미술계 세력다툼으로 몰아가는 자세는 책임있는 모습이 아니”라고 비판했다.

 

 

한겨레 /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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