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역 6번 출구에 인사동의 갖가지 기억들을 백자 타일 150장에 담은 도화벽이 있다.

'인사동 풍물에 류를 더하다" 란 서울시의 도시갤러리 프로젝트로 만들어졌는데,

벌써 6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 도화 벽은 젊은이들의 만남의 장소나, 기념사진 찍는 장소로 알려져 있다.

날로 찾는 이들이 늘어, 이제 인사동 명물로 자리 잡았다.

 

지난 13일 이곳을 지나치다, 인사동을 자주 오가는 시인들의 낙서 조각들을 주워 보았다.

인사동에 현대시학사무실을 두었던 정진규시인의 나의 골목이란 글도 보였고,

이재무시인의 "인사동은 추억의 출구이자 입구", 그리고 “인사동 봄날을 노래한 이승철시인의 글도 있었다.


인사동은 고장 난 피아노의 건반 속 같다음유시인 송상욱씨의 인사동요

귀천의 목순옥 여사가 떠나는 꽃길을 엮은 김명성씨의 시도 찾았다.

 

인사동은 문화예술인들의 숨구멍이고, 남도 바닷가의 찰지디 찰진 개펄이라

김여옥시인의 낙서를 보며, 잠깐 생각에 빠져들기도 했다.

그 찰진 개펄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자신의 모습이 비쳐졌기 때문이다,


나의 천상병선생사진을 비롯해, 박재동, 여 운 등 많은 이들의

붓길 흔적들이 가슴에 그리움만 쌓이게 했다.

사진, / 조문호


















녹번동에서 지하철로 청량리를 가려면, 종로3가역에서 1호선을 갈아타야 된다.
지하철에서 인사동의 옛날을 떠 올릴 수 있는 상품이 뭔가를 생각하게 되었는데,
고작 머리에 떠오른 것이라고는 고서, 한지, 그림, 골동, 토기 등 몇 가지뿐이었다.
나이가 들어 기억력은 오락가락 하는 편이지만, 이건 아니다 싶었다.


갑자기 찾아보자는 생각이 들어, 시간에 쫓겼지만 안국역에서 내렸다.
종로3가역까지 걸어가며, 이 것 저 것 찾아 볼 생각을 한 것이다.
상품도 상품이지만, 그때를 추억할 수 있는 풍경은 무언가도 궁금했다.

어귀에 자리잡은 ‘통문관’은 문틀의 재질만 바뀌었을 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송림당, 명신당, 관성 등 필방들은 여럿 남아 있었지만, 대부분 바뀌었다.

‘통인가게’는 새로운 건축물이 앞을 가려, 고개를 처 들어야 보였다.

물건이래야 헌책이나 엽전, 탈, 붓, 한지 등 몇 가지밖에 눈에 띠지 않았다.
기억력에다 대상을 찾아내는 관찰력까지 없다고 생각하니 씁쓸했다.
그러나 인사동 특유의 골목골목을 돌아보면 많이 볼 수 있다고 자위했다.


사진,글 / 조문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