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으로 내몰린 구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과 연대하여

투쟁을 벌이는‘예술해방전선’ 전사들의 전시와 공연이

지난 17일부터 25일까지 아현동 ‘복합문화공간 행화탕’에서 열렸다.

 

‘노량진 : 터, 도시, 사람’ 이라는 주제를 내걸고

상인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예술로 형상화한 작업에는

그림, 사진, 음악, 영상 등 여러 장르의 젊은 작가 40여 명이 참여했다.

 

노량진 수산시장 상인들의 싸움은 5년 넘게 이어왔다.

2016년 시장 부지를 소유한 '수협'이 현대화를 명목으로

새 시장을 열고 옛 시장 철거에 나서면서 부터다.

 

상인들은 2017년 4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10차례에 걸쳐 강제집행을 당했다.

'수협'의 명도집행과 '동작구청'의 행정대집행을 동시에 당한 이들은 죽기 살기로 싸울 수밖에 없었다.

쫓겨난 상인 80여명은 노량진역 인근 육교 위에 텐트를 치고 반대했다.

 

'서울민예총' 사무국장인 황경하 작가는 지난해 10월부터 동료 작가들과 힘을 모아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공연을 여는 등, 힘을 실어주며 상인들과 연대하기 시작했다.

그 이전부터 노량진수산시장 문제를 기록해 온 사진가 최인기씨도 합류했다.

 

예술이 소수 특권층의 전유물이 되어 돈만 쫓는 현실에, 얼마나 아름다운 예술 행동인가?

예술의 목적이 약자의 마음을 다독이고 상처를 치유하는 힘이 되어준다면

이보다 더 가치 있는 예술은 없을 것이다.

 

가난한 젊은 예술가들이 생업을 밀쳐두고 애쓰는 고마움에 박수를 보냈지만,

정작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웠다.

 

늙은이가 끼이면 자유로운 활동에 장애가 될 뿐이다.

뒤늦게 전시라도 참여하라는 제안은 더더욱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함께 싸우지 않고 이름만 올린다는 것은 옳은 방법이 아니다.

차라리 돈이 있었다면 경제적인 도움을 주고 싶었다.

 

일정이 마무리되는 지난 25일 전시와 공연이 열린 아현동 '행화탕‘을 찾았다.

공연준비에 바쁜 황경하씨가 하던 일을 멈추고 작품 설명을 해주어 미안스러웠다.

나이가 무슨 벼슬도 아닌데, 서로 편하게 웃으면 그만인데...

 

전시장에는 ‘예술해방전선’ 소속 예술가들이 철거현장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기록하거나

그림으로 재현해 상인들의 아픔을 속속들이 보여주고 있었다.

 

전시 벽면에 길게 널린 천에는 살아있는 고양이와 생활 집기를 포클레인이 움켜쥐고,

그 밑에는 경찰무리가 차지해 철거현장의 공포감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었다.

지난 2월21일 노량진역 인근 노점 철거 당시의 현장을 지켜 본 이난영씨 그림으로,

당시 네 명이 다쳤고 상인 두 사람은 병원에 이송되었다고 한다.

 

한쪽에는 탁자 위에 정사각형 패널이 놓여있었다.

패널에는 못이 촘촘히 박혔다. 못과 못 사이 좁은 공간엔 글자가 한자씩 적혔다.

글자들은 가로·세로로 모여 갖가지의 단어를 이뤘다.

그 단어는 사라진 상점 이름이라고 한다. 바로 잊어버린 이름 찾기 작업이었다.

 

전시된 사진에는 평생을 시장바닥에서 조개 까느라 갈고리처럼 휘어진 상인들의 손가락도 있었고,

투쟁하는 상인이나 노량진 수장시장의 현실들이 마치 철거 현장처럼 여기 저기 덕지덕지 걸려 있었다.

한 쪽에서는 타큐멘터리 영상도 상영되고 있었다.

 

상인들은 일터를 잃은 것에 앞서 삶을 부정당한 느낌을 받았다며 울분을 토했다고 한다.

어찌 서울 한복판에서 아직도 용역이 사람을 때리는 폭력이 일어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생활터전을 잃은 상인들의 고통은 아랑곳없이 폐허가 된

구 노량진수산시장 터는 굴착기 소리만 요란하다.

저녁이 되면 상인들은 난민촌처럼 길게 줄 선 텐트 안에서 하루를 마감한단다.

 

절망의 나락으로 내 몰린 그들에게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매주 금요일마다 노량진 역 앞에 삼삼오오 모여 위로 공연을 펼쳤다.

처음엔 낯설었지만, 십개월 여 지속되어 온 젊은이들의 예술행동은

마음 기댈 곳 잃은 상인들에게 큰 위안이고 힘이 되어 주었다.

그 위대한 이름이 '예술해방 전선'이다.

 

공연장에 노량진 수산시장 철거 상인 30여명이 등장하여 자리를 메웠다.

상인 대표 한 분이 나와 상황을 설명했고, 한 분은 뽕짝 노래까지 불러가며 격의 없이 연대했다.

제주에서 올라 온 ‘여유와 설빈’의 아름다운 노래 소리로 함께 어울렸다.

뒤이어 ‘삼각전파사’와 회기동단편선, 바리케이트톨게이트, 공연이 펼쳐지는 등

9일 동안의 예술행동이 서서히 마무리 되었다.

 

그러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구 노량진시장 시민대책위’는 ‘국민권익위원회’ 제소 건을 검토하고 있다.

상인들의 구청 앞 농성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동작구청의 행정대집행에 맞서 결사항쟁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예술해방전선’의 연대도 멈추지 않는다.

매주 금요일 오후 6시부터 열렸던 노량진전철역 앞 공연이 계속된다.

시민대책위는 8월 중에 투쟁기금 마련을 위한 벼룩시장도 준비하고 있다.

 

십시일반 벌이는 예술투쟁이 세상을 움직일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의 격려와 성원을 부탁드린다.

 

 

“노량진: 터, 도시, 사람”전에 참여한 작가들

 

시각 : 건주, 김경진, 김수현, 등작, 박산들, 세민, 안명현, 양세진, 애나, 이난영, 이승휴, 이준용, 최인기

음악 : 가족사물놀이패 동동, 건주, 경하와 세민, 길가는 밴드 장현호, 김예원, 곽푸른하늘, 권나무, 노승혁,

        맑은, 바리케이트톨게이트, 박준, 삼각전파사, 손병휘, 손현숙, 여유와 설빈, 연영석, 유동혁, 유혜정,

        이산, 정수민, 조이영미블랭크, 지누콘다, 하늘소년, 출장작곡가 김동산, 하늘소년, 황푸하,

        회기동단편선

영화 : 편안한 밤, 시정잡배, 한 사람을 위한 음악회2

 

사진, 글 / 조문호

 



예술인을 규합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예술을 빙자한 기존의 사기꾼 패거리는 예술가 이름이나 붙여주는 것으로 장사를 하지만,
제대로 작업 하는 작가라면 아무도 그런 곳엔 관심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젠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그런 개인주의가 예술가를 가난하게 만드는 사회구조로 정착시킨 것이다.
기존 협회에서 안 하는 협동조합을 만들어 우리의 권익은 우리가 찾자는 것이다.



도둑놈 심보로 원고료도 안 주고 공짜로 써먹는 대형언론사의 횡포는 물론
초상권이나 사진저작권 등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일들이 한 둘이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작가가 살아가며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돈이다.




작가마다의 작업을 분류하고 작품가격 등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책정하여
작품이 필요한 사람이면 누구나 쉽게 소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작가가 안정적으로 생활비와 작업비가 마련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겠는가?




그 꿈같은 일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 것이
바로 서인형씨가 추진하려는 예술인협동조합 프로젝트였다.



아무리 좋은 일도 추진하는 이의 능력이 부족하거나
사심이 개입되어 있다면 성공하기 힘들다.
서인형씨라면 가능하겠다는 확신을 한 것이다.




그는 제대로 교육받은 엘리트 계층이지만, 안정적인 길을 택하지 않았다.
잘 못된 사회구조를 바꾸려는 그동안의 행적이 말해주듯,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려 꾸준히 프로젝트를 만들어 도움을 주지만,
중이 제 머리 못 깍듯 그는 늘 가난하게 산다.
가난하게 사니 가난한 사람의 심정을 더 잘 아는 것 같다.




그는 한 때 ‘민예총’ 사무국장을 지낸바 있는 문화전략가로
협동조합 결성에 대한 경험이 많은데다 대부분 성공시킨 경력자다.




이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해 몇 달 전부터 여러 사람이 협의하기 시작했다.
미술평론가 최석태씨, 사진가 정영신씨, 서울민예총 사무국장 황경아씨와 세민씨 등
여러 명이 협력하여 매주 일요일마다 역촌동에서 모여 회의를 가져왔다.
난, 얌체같이 한 번도 회의에는 참가하지 않았으나,
회의가 끝난 후 밥 먹는 데만 매번 따라붙어 술만 축낸다.




지난 1일에는 역촌동 ‘북경반점’에서 청요리와 고랑주를 얻어 먹었는데,
8일은 최석태씨 연락 받아 갔더니, 다른 분들은 볼 일이 있는지 모두 가고 없고,
최석태씨와 정영신씨만 정답게 앉아 있었다. 눈깔 튀어 나오게...




따라주는 이과두주를 홀짝 홀짝 마시기는 했는데, 겨우 몇 잔에 슬슬 맛이 갔다.
정영신씨 집으로 옮겨 와 다방커피 마시며, 술 깨려고 사진기를 들고 설쳤는데,
집이 너무 넓어 화각이 나오지 않았다.
이튿날 찍은 사진을 보니, 위험하게 씽크대에 올라가기도 하고
바닥에 드러눕는 등 별 지랄을 다 했더라. 


 
그 날 밤은 최석태씨가 자정이 가깝도록 미술에 관한 이야기를 했으나,
자고 일어나니 아무것도 생각 나지 않았다. 좋게 말해 치매지, 노망든 것이다.
그래서 예술인협동조합에 앞서 대중의 생각부터 바꾸어야 한다는 내 생각을 몇 자 적는다.




대중들의 예술품에 대한 가치기준, 즉 의식변화가 시급하다.
작품을 돈으로 보지 말고 즐기는 기호품으로 보라는 것이다.
작가 이름이나 값 비싼 작품만 관심을 가지거나,
평론가 말 듣고 작품을 구입하지 말라는 것이다.




누가 뭐라던 자기 마음에 드는 작품을 구입하여 즐겨라.
벽에 걸어두다 지겨우면 다른 것으로 바꾸면 된다.
그러다 보면 작품을 보는 나름의 안목도 생기게 되는 것이다.

작품은 돈이 아니다. 비쌀 수록, 유명 할 수록 사기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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