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긋불긋 봄 단장한 남산을 여러 차례 찾은 적이 있으나, 동자동 가족들과 어울려 나서기는 처음이었다.
지척에 멋들어진 남산이 있다는 걸 알기야하지만,
“꽃구경도 마음이 편해야 된다.” 듯이 잘 가지지 않는 것이 쪽방 촌사람들이다.
지난 12일 ‘동자동사랑방’에서 꽃놀이 간다는 사발통문이 왔다.
갑작스런 소식에 일정을 바꾸어야했지만, 흐드러지게 핀 벚꽃 보며 밝게 웃을 이웃을 보고 싶었다.
마치 소풍가는 어린 애처럼 설쳐나갔더니, 사랑방 앞에는 여럿이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랑방 보물 박정아, 허미라님의 미소 따라 김호태, 김정호, 김영진, 김창현, 유한수, 김규수, 구도원씨 등 열 명이 나섰다.
이승에서의 마지막 봄 소풍이 될지도 모른다는 방정을 떨어가며,
산 오르기를 10여 분만에 남산의 진경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동자동에서 손쉽게 나설 수 있는 최고의 산책코스이지만, 건강관리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아 그런지 한 번도 나서지를 못했다.
벚꽃 사이로 진달래, 개나리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색의 조화는 요염했다.
봄바람에 흩날리는 꽃의 감흥이야 늙은이나 젊은이나 다를 바 없었다.
이 화창한 봄날 겨울털 모자 쓰고나온 김영진씨의 말없는 표정에서도 슬며시 드러나고 있었다.
허미라씨가 챙겨온 박상과자도 먹고, 기념사진도 찍어가며, 실없는 농담들을 꽃바람에 날렸다.
꽃에 취해 길을 잃어버린 유한수씨 찾느라 잠시 헤매었더니, 그 다음부터는 인원검열이 시작되었다.
자기를 빠트리는 돼지 세끼 세듯...
남산 길에 밝은 김호태씨의 안내로 산을 내려오니, ‘한국의 집’이 있는 충무로에 닿았다.
즐거운 봄 소풍을 끝내고 돌아 온 동자동 골목길에는 이미 술판이 벌어져 있었다.
건강이 좋지 않은 김원호씨도 있었고, 함께 다녀 온 김정호씨와 끼어 술잔을 기울였는데,
꽃놀이는 남산에서 하고, 술 놀이는 동자동에서 했던 아름다운 봄날이었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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