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간의 연휴에는 정선으로 야채 심으러 갔다.
사진 찍어 올리며 사는 것도 그렇지만, 정선에서 농사짓는 것도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오가며 길에 뿌리는 돈도 만만찮지만, 모종 살 돈으로 사 먹는 것이 훨씬 싸게 먹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밥 팔아 똥 사먹는 일이라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땅을 놀리면 안 된다는 말은 구실에 불과하지만, 농사를 짓지 않으면 정선가기도 어렵고, 산소도 못 간다.
또 하나 못 말리는 것은 무공해 농산물을 좋아하는 정영신씨 때문이다.






오전 아홉시 무렵 평창에 도착하여 야채모종 부터 샀다.
고추 두 판, 상추 한 판, 옥수수 한 판, 도마도, 오이, 가지, 호박 등을 몇 포기씩 사다보니

모종 값이 육 만원을 넘어버렸다. 나머지는 씨앗으로 대체했다.





정선에 도착하여 짐을 내리니, 늘 반갑게 눈 맞추던 종이 사라지고 없었다.
일하러 밭에 나가면 밥 먹으러 오라 부를 때 치는 종인데,
치는 사람은 없지만, 늘 사람을 기다리는 종이었다.

요즘은 산골짜기 인심도 예전 같지 않다.
남의 땅에 있는 두릅이나 고사리도 먼저 본 사람이 임자다.
한 때는 두릅 철이 되면 서울로 가져와 나누어먹기도 했는데, 맛 본 지가 오래되었다.

산골 사는 원주민들이야 남의 것을 탐내지 않겠으나,
요즘은 외지에서 이사 온 사람들이 많아 누구의 소행인지 알 수가 없다.

공기 좋은 곳에 살러 왔으면 마음을 곱게 써야지...
사람들이 CCTV를 달라지만, 그러고는 쉽지 않았다.






밭에 난 잡초를 뽑고 땅을 고르며 비닐을 씌우는 등

오줌 누며 뭐 볼 틈도 없이 열심히 일하는 중에

갑자기 하늘이 깨질 것 같은 천둥소리를 내며 소나기가 쏟아졌다.
가문 날씨라 모종이 잘 살 것 같아, 비를 피하지 않고 부지런히 심었다.


한 시간 가량 쏟아지다 그쳤으나, 온 몸이 비에 흠뻑 젖어버렸다.
떨리는 한기는 견디겠으나 장화에 묻은 진흙이 무거워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물가로 내려가다 미끄러져 돌계단에 허리를 찧었으나 어디 하소연 할 때도 없었다.
그 것으로 그 날의 일은 끝이었다.






준비해 둔 빵조각과 우유로 저녁 끼니를 때운 후
군불 땔 힘도 없어 전기장판 위에 드러누워 끙끙대다 잠든 것이다.
한 밤에 진땀이 흐르기도 했으나, 자고나니 견딜만했다.






다음 날은 땅바닥에 퍼져 않아, 시름시름 옥수수를 심었다.

작년에는 멧돼지가 들쑤셔 한 톨도 건지지 못했지만, 또 한 번 투기를 한 셈이다.
곳곳에 철쭉과 조팝꽃, 복사꽃이 너울대니, 새들도 좋아라 지저긴다.
무슨 놈의 새 소리도 요상하다. “찌찌 찌~ 찌찌 찌~‘ 엿 먹이는 소린가?
그래, 마음먹기 따라 지옥이 되기도 하고, 천국도 될 수 있구나.






그 이튿날은 다시 마음이 바빠졌다.
모종이 모자라 정선 나갔더니, 연휴에 몰린 자동차로 도로가 몸살을 앓았다.
좋아하는 짜장면이라도 한 그릇 사먹어려던 생각은 포기해야 했다.
차댈 곳도 없지만, 한가하게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내일 약속이 있어, 모든 일을 끝내야하기 때문이다.


어머니 산소부터 들리고는 일을 서둘고 있는데, 옆집의 한순식씨가 빨리 오란다.
연휴기간 내내 옆집은 손님들로 북적였는데, 여러차례 술자리에 불렀지만 사양했다.
그 날은 아랫집의 김익수씨가 왔다기에 얼굴이라도 볼 겸 잠시 내려간 것이다.






낮부터 백숙을 안주로 소주를 까고 있었으나, 난 밥을 먹었다.
소화제라며 딱 두 잔 받아마셨는데, 술이 달았다.


사라진 종 이야기를 꺼냈더니, 또 CCTV를 달란다.
안 달면 도둑을 키우기도 하지만, 엉뚱한 사람 의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 너덜거리는 창호지를 뜯어내고 도배를 하는데,
술 취해 몸을 못 가누는 김익수씨를 한순식씨가 부축해 가고 있었다.
공기가 좋아 아무리 마셔도 자고나면 멀쩡하다고 자랑하더니, 너무 많이 마신 듯 했다.
나이도 나이지만, 술에 장사 없다.






무너진 돌계단도 손봐야 하지만, 다음으로 미루고 떠날 채비를 했다.
연휴가 끝나는 날이라 차 밀릴 것이 걱정되어서다.





아니나 다를까 양평 가까이 도착하니 차가 밀리기 시작했다.
수동 변속이라 다리에 쥐 날 지경이나, 무사히 돌아 옴을 자축했다.

뭐 사는게 별거냐?



사진, 글 / 조문호






























'동강할미꽃보존연구회'가 주최한 제10회 동강할미꽃 축제가

지난 4월1일부터 3일까지 정선, 귤암리 ‘동강생태체험학습장’에서 조촐하게 열렸다.

행사장에는 서덕웅 보존회장을 비롯하여 전정환 정선군수, 차주영 정선군의회의장,

한종수 정선읍장, 김수복 정선군 문화예술과장 등 많은 인사들과 주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높은 벼랑에 핀 동강할미꽃의 처연한 자태를 감상하며 정선의 봄을 맞이했다.

이제 동강할미꽃축제는 어린이들이 즐겨 찾는 축제로 서서히 자리잡아가고 있었다.
동강할미꽃들과 함께 열리는 사생대회나 백일장이 크게 기여한 듯 했다.

이 날 떡메 치는 재미도 솔솔 했지만, 어디 이웃과 함께하는 재미에 비할소냐.

귤암리 부녀회에서 마련한 음식과 막걸리를 마시며 봄의 여흥을 마음껏 즐긴 것이다.

이처럼 마을축제란 주민들이 화합하는 자리가 되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잘 안 된다.

농사철에 접어들면 쉴 겨를이 없지만, 이 날 만큼은 만사를 재쳐두고 나와야 했다.

그리고 정선 문화예술인들이 그렇게 많지만, 모습을 드러낸 분은 김우영씨 한 분 뿐이었다.

예술한다는 사람들이 그러니, 농사일에 바쁜 주민들만 탓할 일도 아닌듯 싶다.

내가 사는 만지골은 지하수를 둘러싼 원주민들과 이주민의 분쟁이 극에 달하고 있다.
지하수 펌프나 배관을 보수하는데 따른 비용분담으로 발생한 사건이란다.
축제장에서 만난  전정환 군수께 지하수 관리비용을 군에서 부담할 수 없냐고 물었더니,
즉석에서 한종수 읍장을 불러 해결방법을 모색하자며 걱정해주셨다.

한종수 읍장은 앞으로의 유지보수비를 주민들에게 부담시키지 않겠다고 하였으나,
문제는 그 갈등의 골이 한계를 넘어 버렸다는 점이다.

이웃 간에 내용증명이 오가는 등 소송까지 불사할 감정싸움으로 비화해, 손을 쓸 수 없게 된 것이다.

원주민들과 이주민들의 분쟁은 이제 귤암리만의 문제도 아니다.
오래 전부터 전원생활을 즐기려는 이들이 산골로 몰려들며 생긴 일인데,

대개들 '가까히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라는 거였다.

도심에서 이웃과 교류 없이 살아 온 이들이 동네 주민들과 어울리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축제라도 나와 얼굴을 부딪쳐야 하는 것 아닌가?

더욱이 강원도 정선지역은 예로부터 산골에 갇혀 살아, 외지인에 대한 배타적인 습성이 몸에 배어있다.

난, 정선 들어온 지 20년차지만 외지에 나돌아다녀 그런지, 아직까지 데리고 온 서자 취급이다.

그렇지만 함께 어울려 잘 살고 있지 않은가?

마을의 정서보다 원칙을 따지는 분들이 늘어나며 이런 분쟁이 터진 것이다.

싸우는 양측에서 서로 협력을 요구해 더욱 난처하게 만든다.

이미 내집에 대한 관리와 의결권은 이웃 최종대씨에게 위임한 상태라 뒤늦게 개입할 문제도 아니지만,

편 가르기로 비화된 흙탕물에 휘말리기는 더 더욱 싫기 때문이다.

부디 서로 양보하여 평화로운 마을이 되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사진,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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