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간신히 올라 갈 수 있는 건물 입구에 앉아 바람을 쐬고있다. 옆에는 공공개발을 반대한다는 건물주의 붉은 깃발이 걸려있다.

동자동 쪽방촌으로 옮겨 온지도 벌써 6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젠 쪽방살이에 제법 익숙해 졌으나, 한여름만 되면 여전히 곤욕을 치러야 한다.

낯 시간에는 길가에 자리를 펴거나 시원한 곳을 찾아 떠돌지만, 밤에는 어쩔 도리가 없다.

다들 해수욕장 처럼 옷을 벗고 사는데, 우리 층에는 여성이 있어 방문도 열어두지 못한다.

선풍기로 잠을 청하지만 밤새도록 후덥지근한 바람을 쐬니, 아침이면 얼굴이 퉁퉁 붇는다.

생지옥이 따로 없으나, 스스로 자청한 일이라 누굴 원망하랴?

 

내가 사는 쪽방을 ‘관사 403호’라 부른다.

정부에서 주는 주거비로 사용하니 관사가 아니겠는가?

한 층에 아홉 개의 쪽방이 다닥다닥 붙은 오래된 건물이라 요상한 냄새마저 풍긴다.

나야 몸에 배어 잘 느끼지 못하나, 찾아 온 손님마다 코를 컹컹거린다.

냄새를 잘 맡는 정동지 말로는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독특한 냄새란다.

오래된 목재건물의 퀴퀴한 냄새와는 또 다르다며 거지촌 냄새라고 못 박았다.

 

고장난 컴퓨터 손 봐주러 온 정영신 동지

계절적 이재민을 양산하는 쪽방은 지옥고(지하방, 옥탑방, 고시원)보다 못하고, 교도소 독방보다 못하다.

여름에는 찜질방 같은 방에서 땀을 뻘뻘 흘려야하고, 겨울에는 차거운 냉골에 떨어 감기를 달고 산다.

최저 주거기준인 4평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치는 1.5평 남짓한 쪽방이라 한 몸 누우면 꽉 찬다.

그 좁은 곳에 쥐와 바퀴벌레까지 함께 살아야 하니 더 이상 무슨말을 하겠는가?

 

코 구멍만한 방이지만, 이불을 깔면 침실이 되고, 라면을 끓이면 주방이 되고,

자판기를 두드리면 작업실이고, 컴퓨터로 영화를 보면 거실이 되는 요술 방이다.

창문이 하나 있으나 옆 건물과 붙어 있어 햇볕은커녕 비둘기 똥만 덕지덕지 붙었다.

 

아홉 명이 사용하는 재래식 공용화장실도 지저분하기는 마찬가지다.

세면장은 물론 설거지까지 하는 곳이라 아침이면 나라비를 서야한다.

요즘은 샤워까지 자주해, 급한 볼일을 보려면 공원 화장실을 찾는게 상책이다.

 

이것이 쪽방촌 사람들이 살아가는 보편적 주거 실태다.

쪽방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임시정거장이 아니라, 늪지대로 전락된 지 오래다.

다들 노숙자 신세를 피해 쪽방에 발을 들였으나, 열에 아홉은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문제는 건물주들의 횡포다.

세입자들의 처지를 악용하여 사람이 살 수 없는 방에 평균 23만원의 선 월세를 받아 챙긴다.

이는 서울 평당 아파트 월세의 5배에 달하는 액수다.

가난한 사람들의 자립을 위해 쓰여야 할 세금과 피땀 흘려 번 빈민들의 돈이 자본가 호주머니로 들어가고,

돈벌레들은 그 돈을 모아 또 다른 건물을 사들이며 탈세를 밥 먹듯이 한다.

 

쪽방건물은 치밀한 먹이사슬 구조로 얽혀있다.

세입자들은 건물주를 볼 수가 없다. 대개 관리인을 통해 모든 일을 처리한다.

건물주들은 등기부 상의 주소지를 허위 신고하여 법망을 교묘히 피해가고,

관리인은 쪽방 일을 맡아 주는 대가로 무료로 쪽방 한 칸을 얻어 산다.

 

보통 쪽방 계약은 구두로 이뤄진다.

'방 있음'이라고 적힌 벽보의 전화번호를 보고 연락해 계약한다.

정식 부동산 계약서도 보증금도 없다. 최저주거기준을 만족하는 '주택'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월세를 먼저 내지 못하면 곧 바로 쫓겨난다.

 

동자동에 명기된 쪽방 건물 소유주 124명 중 88명이 쪽방 건물이 아닌 곳에 살고 있다

현 건물주들의 정체는 정치인, 중소기업대표, 강남의 고급빌라 소유자, 인터넷 스타강사,

투기로 쪽방건물을 매입한 청년과 고등학생에 이르기 까지 각양각색이다.

투기목적으로 쪽방건물을 구매했거나 부모로부터 상속 또는 증여받아 건물주가 되었다.

아예 가족 비즈니스 형태로 쪽방건물을 여러 채 매입하여 수익을 올리는 이도 있다.

 

쪽방촌 건물주에게는 평균 한 달에 1.750만원의 수익이 생기지만, 모두 현금으로 받아 세금 한 푼 안 낸다.

벽지가 너덜거리고 비가 새어도 보수 작업을 해주지 않으니, 건물 관리도 걱정할 필요 없다.

무허가 숙박업이라 주택임대차보호법 등의 보호를 받지 않아, 여러모로 남는 장사다.

 

더 억장이 무너지는 사실은 쪽방 사람들을 바라 보는 부정적 시선이다.

게으르다는 인식이 만연해, 기초생활수급자를 ’기생수‘라고 줄여 부르며 ’기생충‘ 취급을 한다,

부자가 아닌 서민들조차 정부지원금으로 어렵게 살아가는 빈민들을 손가락질한다.

열심히 일해 돈 벌 생각은 안 하고 가만히 앉아 나라 곳간만 축낸다지만,

대개 일할 수 없는 노인이거나 장애인이 많은 쪽방촌 실정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진짜 기생충은 따로 있다. 비정한 도시에서 부당 이득을 취하는 돈벌레들이다.

피 냄새를 맡은 흡혈귀처럼, 말라비틀어진 자들의 목에 빨대를 꼽고 고혈을 빨아들인다.

그 단맛을 못 잊어, 정부에서 고시한 공공개발을 막으려고 발악이다.

 

'사람나고 돈 낳지, 돈 나고 사람 낳냐'

더구나 공정을 내 세운 정부가 아니던가?

국토교통부는 더 이상 악질 자본가들의 눈치만 보지 말고,

하루속히 동자동 공공개발 지구지정 하라.

 

사진, 글 / 조문호

 

 

 

 

 




기초생활수급비가 나온 지난 19일의 동자동 새꿈 공원은, 공원 자체가 술상이었다.
평소에는 수급비가 20일 나오지만, 당일이 공휴일이라 하루 앞당겨 나온 것이다.

수급비래야 노령년금 제하고, 쪽방 달세내고 나면 40만원 가량 남지만,
이런 저런 사정으로 수급비를 못타는 빈민들의 입장에서는 부럽지 않을 수 없다.
먹고 싶은 것 참아가며 알뜰하게 모우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대개 얼마가지 않아 바닥 나 또 다시 수급 날을 기다리게 된다.


수급비가 나와도 이웃에 빌린 돈이나 외상값 갚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으니 
쪼달리는 생활이 반복되는 것이다.






대개 술 담배를 즐기는 사람과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의 차이인데,
희망도 없는 빡빡한 살림에 술 한 잔 하는 낙마저 없다면 무슨 재미로 살겠는가.


동자동 사람들은 예사로 이웃과  술 담배를 나눈다.

어디를 가나 없는 사람의 인심이 더 후한 것은 기정사실이다.


구두쇠처럼 야멸차게 사는 사람과 인심 좋은 사람을 두고,
대개의 사람들이 후자를 더 안 좋게 보는 세상이다.
사람보다 돈의 논리를 더 앞세우기 때문이다.






다들 술이 취해 별 것 아닌 일에 언성을 높이기도 하고, 싸울 듯 맛 서기도 했다.
김씨가 이씨에게 나라 망친 역적의 후손이라니, 듣는 이씨 기분이 어떻겠는가?
그러나 아무도 주먹을 휘두르지 않았다. 그 뒤의 결과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끌벅적 소란스럽지만, 이내 다시 술잔이 오간다.






술이 거나하게 취한 이진수씨가 내 팔을 당기며 따라 오란다.
비닐봉지에는 마시다 남은 소주병과 따지 않은 소주병이 있었지만, 기어이 새 병을 땄다.
먹던 술을 두고 왜 새 병을 따냐고 물었더니, 대접하는 술은 새 술이라야 된다나...


몇 발자국 옆의 정옥상씨를 부르니, 저 놈은 술 취하면 잔소리가 많으니 그냥 두란다.
그러면서 지갑 속에 들어 있는 신사임당 지페 몇 장을 꺼내 보이며 자랑 해댄다.
허구한 날 허덕이다 모처럼 돈이 생겼으니, 기분 좋은 모양이다.






공원 한 쪽 구석에서는 잔돈 섰다판이 벌어지기도 하고,
한 쪽에서는 빌린 돈을 갚는지 돈을 주고 받기도 했다.

구멍가게 옆의 공원 입구 자리는 일찍부터 정재헌씨가 판을 벌여 놓았다.
배용식, 이준기, 이원식, 강완우씨 등 여러 명이 주위를 배회하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김장수씨는 문대통령이 5,18유가족을 포옹했던 이야기를 꺼내며,
좋은 대통령이 되었다며 칭찬에 침이 말랐다.






공원에 어둠이 몰려오자 하나 둘 둥지로 돌아갔다.

정재헌씨는 엊그제 계단에서 넘어져 얼굴을 다쳤는데, 이 날도 술이 취해 몸을 가누지 못했다.
5층 사는 정재헌씨 방까지 부축하느라 얼마나 용을 썼던지, 마셨던 술이 깰 지경이었다.
간신히 방에 앉혀 놓았더니, 말없이 쳐다보는 눈길에 고마움이 묻어난다.





다행스럽게도 정씨는 혼자 술을 마시지는 않는다.
술 취해 오르기가 힘든 줄 알면서도 매일같이 공원으로 내려오는 것은
사람 사는 정이 그리워서다.


정 때문에 울고, 정 때문에 사는 사람들이다.


사진, 글 / 조문호













































기초생활수급자 노인들을 제외시켜 온, 기초연금을 지급하라는 기자회견이

지난 4월24일 오전10시 30분 여의도 문재인, 안철수 대선후보 캠프장에서 열렸다.

‘동자동사랑방’을 비롯한 20개 빈곤단체들이 뭉친 ‘빈곤노인기초연금연대’가 주최한

이날 기자회견장에는 노년유니온 고현종 사무처장의 사회로 ‘동자동사랑방’ 김호태 회장,

노년유니언 김선태 위원장, ‘세상를 바꾸는 사회복지사’ 이명묵 대표,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오건호 위원장 등

여러 명이 나와 ‘줬다 뺏는 기초연금’ 해결을 약속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대선 공약으로 기초연금을 20만원에서 30만원으로 인상하겠다는 공약을 내 놓았다.

그러나 생계가 제일 어려운 기초생활수급자에게는 전혀 혜택이 가지 않는다.

왠 만한 노인들은 기초연금 30만원 없어도 산다. 그러나 가난한 노인들에게는 삶의 질이 달라지는 돈이다.

그 것도 통장에 넣었다 다시 빼가니 더 분통 터지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두 후보 모두 지난 총선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약까지 했으나,

이번 대선에서는 두 후보가 약속이나 한 듯 슬그머니 빼버린 것이다.

그래서 거동도 불편한 노인들이 몰려나와 이 문제를 공약으로 내 세우라며 들고 일어난 것이다.

동자동에서 김호태, 박정아, 김정길, 김정호, 김원호, 강병국, 임수만, 김선근, 조인형씨 등 십 여 명이 나왔는데,

몸이 불편한 김원호씨는 잦은 화장실 출입으로 곤욕을 치루어야 했다.

쥐꼬리만한 기초생활수급비로 잦은 병원비까지 대야하니, 힘들어도 나서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가진 자들은 없는 자의 설음을 잘 모른다. 복지, 복지 나발 불어대면서, 어찌 이리 극빈자들에게 인색할 수 있는가?

지금이라도 공약에 추가하여 꼭 이 문제를 해결해 주기 바란다.

그런데, 안철수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캠프를 연이어 찾았는데, 두 후보 측의 노인들을 대하는 상반된 태도다.

안후보 측에서는 확성기로 시끄럽게 외쳐대도 얼씬도 하지 않아 사무실에 찾아가 정책제안서를 제출한 반면,

문후보 측에서는 정책담당관이 나와 정중하게 제안서를 받아 갔다는 점이다. 이게 무얼 말하겠는가?

가난한 국민들의 목소리에는 관심도 없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지금 대선기간 중이라 쇼라도 해야 할텐데, 확실히 뭔가 잘 못 돌아가고 있었다.

아마 판세가 기울어 똥줄 탄다는 이야기다.


“정신 차려라. 이 바보들아! 국민들이 바보가 아니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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