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정영신씨를 통해 사진가 오현경씨로 부터 오찬 초대를 받았다.
지난 번에 전시한 ‘그림자를 지우는 비’ 사진전에 참석해 준 인사라는데, 살다보니 이런 일도 다 있네.

십 수년을 사진 찍어 올리며 전시리뷰를 써 왔으나 이런 인사받기는 처음이었다.

당시 카메라에 이상이 생겨 사진도 찍지 못하고 몇 줄의 전시소식만 올린터라, 송구스러웠다.






인사동에서 오현경씨를 만나 ‘사동집’에 들렸더니, 주인 송점순씨가 죽은 사람 만난 것처럼 반가워했다.

전골에다 귤전까지 잔뜩 시켰는데, 써비스 음식까지 갖다주어 그 날 저녁식사는 생략해도 될 것 같았다.

낮 술은 가급적 피하지만, 맹숭맹숭하게 밥만 먹을 수 없어 막걸리도 한 병 시켰다.






오현경씨는 지나치다 더러 만났지만, 식사를 함께하기는 처음이었다.

웃는 모습이 너무 매혹적인데, 인사성까지 밝은 줄은 미처 몰랐다.

마주 앉아 얼굴도 못 들고, 정영신씨와 나누는 이야기를 엿들으며 음식만 허겁지겁 먹었다.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비오는 풍경을 열심히 찍었다는 고백에, 그 사진들이 더 가슴에 와 닿았다.

전시할 생각은 없었으나, 주변에서 부추기는데다 초대전 기회가 생겨 했다는 사정 이야기도 했다.






즐겁게 식사 한 후,  인사동 거리를 스냅하며 걷다보니 너무 많이 가버렸다.
남인사마당에서 헤어져 되돌아왔는데, '툇마루'에서 저녁 모임이 있어 집에 갈 수도 없었다.





남는 시간은 '정독도서관'에서 정선 가느라 못한 일을 하려고 노트북까지 챙겨 왔으나,

막걸리 한 병에 곤죽이 되어 만사가 귀찮아졌다. 이젠 아무래도 술과의 인연도 끝내야 할 것 같았다.





드러누워 쉬려고 '정독도서관' 대신 '백상사우나'로 간 것이다.

모처럼 뜨거운 물에 들어 앉아 자성의 시간을 가졌는데, 오현경씨의 따뜻한 배려가 일깨운 바가 컸다.

나이를 생각하지 않고 너무 사방 팔방 쫓아 다니며 나부댄 것 같았다.





내가 좋아서 했던 일이지만, 이제 전시장 찾아다니며 사진 찍고 글 올리는 짓은 그만두어야 겠다.

때로는 하기 싫은 일을 무슨 사명감처럼 일했는데, 정작 당사자들은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전시를 하면 보도 자료를 만들어 언론사에 돌리지만, 요즘은 보도 자료도 만들지 않았다.

자료가 없어 전시된 작품을 찍어야 했고, 유리에 반사되면 도록을 사서 스캔 받아 올리기도 했다.

아마 전시 홍보를 하지 않겠다는 심사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돈 들여 전시는 왜 하는지 모르겠다.






때로는 언론사에 전시리뷰를 투고해 신문에 게재하는 열성까지 보였으나 다들 묵묵부답이었다.

신문기자가 올리는 기사야 월급 받고 하는 일이라 그냥 지나칠지 모르나, 난  다르지 않은가?

작가를 배려해 나쁜 면은 감추고 좋은 면만 내 세우는 쪽팔리는 리뷰라 때로는 얼굴이 간지러울 때도 많았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 갚는다는 말이 있듯이 고맙다는 댓글 한 줄이 그렇게 어려울까?

자기가 잘 나거나 전시가 좋아 올린다고 생각하면 할 말이 없지만...





아무래도 물러 날 때가 훨씬 지난 꼰대가 아직 꿈을 깨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왜 쓸데없는 일에 개고생하며 열 받는지, 이제 생각하니 한심한 생각이 든다.





앞으로는 작가의 초대가 없는 전시장 개막식은 일체 가지 않기로 했다.
젊은 사람 모임에 늙은이가 끼이면 불편할 수 있다는 생각을 왜 못했을까?





그리고 평소 신세졌거나 가까운 분의 부탁이면 모르겠으나, 전시장 사진을 찍거나 글 쓰는 일도 없을 것이다.

남을 배려하기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는 철저한 개인주의자가 되어야겠다.






이제 죽을 때가 되었는지, 사람 좋아하던 내가 사람이 점점 무서워진다.
차라리 아무 것도 모르는 낯선 사람이 더 좋다.



사진, 글 / 조문호












사진가 오현경씨의 ‘그림자를 지우는 비’가 지난 3월 21일부터 인사동 ‘마루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개막식이 열린 21일 오후6시 무렵 들린 전시장에는 사진가 오현경씨를 비롯하여

이규상, 박재호, 석재현, 남 준, 권 홍, 정영신, 하춘근씨 등 많은 사진가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박순경사진


처음 본 오현경씨의 사진을 꼼꼼히 살펴보니, 꿈결같은 시상이 떠올랐다.

아마 작가가 사진을 찍었을 때 느꼈던 시어로, 작가의 마음속에 도사린 욕구와 감정을 사물을 통해 풀어낸 것 같았다.

어쩌면 제목처럼 그림자에 작가의 뜨거운 욕구를 감추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못이 박혀 깨진 유리의 균열에는 절망적인 분노가 담겨있고,

가로등에 비치는 빗줄기에는 우울한 작가의 고뇌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물위에 아롱진 잔영으로 스스로를 위안하기도 했다.

때로는 사군자 같이 드리워진 나뭇잎으로 또 다른 감성의 서정적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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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보여주는 이미지는 직설적으로 풀어낸 기록사진을 넘어 심상적 시로 승화시키고 있었다.

가끔 독해를 요구하는 이해되지 않는 이미지도 있었지만, 대부분 보는이로 하여금 울림을 주었다.





오현경씨의 작업노트에 적힌 부분이다.

"복잡한 현실과 고민들을 그림자 속으로 집어넣었고, 감추고 싶던 아픔 혹은 현실적 처지와 어려움을 대변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그리고 여자로서 감당해야만 하는 감정의 원칙과 형식의 정렬들... 내가 사진 속에서 말하고자 한 것은 바로 '자유'였다.

움직이는대로 변하고 형성되는 그림자... 나만의 사진 놀이이자 자유로운 외출이다."





오현경의 ‘그림자를 지우는 비’는 작가의 감정을 그림자에 숨기고 싶은 자기성찰이며 자화상이다.





이 전시는 '마루갤러리'[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35-4 마루 / 신관3층 C관]에서 3월 29일까지 열린다.



글 / 조문호





그날 찍은 기념 사진은 카메라 조작 실수로 망쳐놓았는데, 뒤늦게 포토샵에서 몇장 구제했다.
복구 못한 작가의 인물사진 및 작품사진 몇 점은 페북에서 스크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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