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모처럼 인사동에 나갔다.

인사동 ‘고도’에서 열리는 박성남씨 전시에 들렸다가 ‘툇마루’로 갔다.




장경호씨를 비롯하여 김이하, 이승철 시인, 그리고 인사를 나누지 못한 최명철씨도 함께 있었다.

최명철씨는 광화문광장에서 여러 번 본 기억이 있는데, 화가 박광호씨를 너무 닮았다.
이미 술판은 파장이었고, 막걸리 한 두 잔 마시고 나와야 했다.





다들 술이 취했으니, 노래 할 수 있는 술집으로 가자했다.
‘아리랑’으로 갔으나, 이른 시간이라 문이 잠겨있었다.
그 다음 찾아 간 곳이 ‘백상사우나’ 부근에 있는 ‘갤럭시 노래방’이었다.
처음 가본 곳인데, 대뜸 최명철씨가 아가씨 네 명을 불렀다.
술 취한 사내가 여인네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마는
난, 술도 취하지 않았지만 너무 뜻밖이라 걱정 되었다.
한 두 사람도 아니고 짝 맞춘다면, 그 돈은 어쩔건가?





이미 엎질러 진 물로, 양주가 나오고 아가씨 네 명이 사내들 옆에 끼어 앉았다.
최명철씨는 노래하느라 바빴고, 아가씨들은 술 권하기 바빴다.
맨 얼굴로는 도저히 마주 볼 수 없을 것 같아 바쁘게 술을 마셔댔다.
빈속에 들어가니, 금세 본색이 더러 났다.
그 때야 옆에 앉은 여인에게 나이를 물어 보았다. 딸이나 마찬가지였다.


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뭐냐고? 다시 물었다.
한 마디로 돈이라 했다.
돈은 중요한 목적을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냐고 했더니, 쾌락이라 고쳐 말했다.
너무 솔직한 대답이었다.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즐길 수 있으니까...





취기가 올라 맞은편에 앉은 여인에게 춤을 추자고 권했다.
파트너였던 김이하시인이 마침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그녀는 40대로, 그중 나이가 들어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춤은 추지 못하지만, 그녀를 안아보고 싶었다.


여인네의 살 냄새에 강한 욕정이 일었다.
몸에서 피가 끊었고 힘이 흘러 넘쳤다.
살아 있다는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다.
금세 한 시간이 지나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다들 술이 취해 시킨 술도 마시지 못했건만, 3차로 ‘아리랑’에 갔다.
‘아리랑’엔 먼저 온 손님들이 이미 놀이판을 휘잡고 있었다.
마실 만큼 마셨으면 그만 헤어지지, 왜 방황하는지 모르겠다.





원님 덕에 나팔 불듯 잘 놀았으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자정이 가까워서야 도망쳤는데, 맡겨 둔 짐 보따리 찾느라 유목민에 들렸다 지하철을 놓쳐버렸다.

술 취한 거지를 어떻게 알았는지, 오는 택시마다 도망치네. 제기랄~


사진, 글 / 조문호






























요즘 인사동거리는 내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다.
인사동의 색깔은 보이지 않고, 상혼만 들끓는다.
다들 뭘 보고 뭘 느끼는지 모르겠으나, 걱정스럽다.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미술품에도 별 관심 없다.
인사동이 미술의 메카로 알려지지 않았으니,
그냥 인사동의 전통성이 뭔지, 기웃거릴 뿐이다.





지금도 인사동 주변에 호텔은 계속 생겨나지만,
인사동의 정체성을 살릴 일은 아무도 생각 치 않는다.
인사동 골목문화를 알릴 노력조차 없다.






관광객들이 사라진 내일의 인사동이 궁금하다.
호텔은 가난한 예술가들 작업실이 되고,
거리는 온통 예술품이 들 끊는, 그런 날이 올까?

괜한 헛꿈에, 기분이 좋아진다.






지난 30일은 이른 시간부터 인사동을 기웃거리다가,
오후5시 무렵에는 임옥상씨 전시 보러 평창동으로 갔다.





개막행사가 끝난 후, 다시 인사동으로 돌아왔더니,
전시장에서 만난 박진화, 송 창, 김태서, 박홍순씨가
‘유목민’에 먼저 와 있었다.





한 쪽에는 공윤희씨와 이지연씨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좀 있으니 장경호, 이승철, 임경일씨 등 반가운 분들이 줄줄이 나타났다.






이미 술에 젖어 온 장경호씨는 막걸리를 마시며, 다른 곳에서 한 잔 더 하잖다.
‘월하의 공동묘지’? 라고 물었더니, 고개를 꺼떡이며 일어났다.
난, 동자동으로 가야해 남은 술을 마시며 자리를 지켰다.






종로3가 지하철로 가는 길에 ‘국악’에 잠시 들렸더니, 아니나 다를까 장경호씨가 있었다.
빈털터리 주제에 왜 비싼 술집에서 여인네들 접대를 받아야하는지 모르겠다.
여자를 밝히지 않는 사람이건만, 외로워서 그럴까?
혼자 두고 오려니 마음에 걸렸으나, 더 취하기 전에 나와야 했다.






낙원상가 앞길에는 성기준씨 일행이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그래도, 밤이 되면 인사동 곳곳에 반가운 사람들이 박혀 있어 좋다.
새로운 인사동 풍류에 한 가닥 희망을 걸어본다.

사진,글/ 조문호























인사동에서 한 달에 한번이라도 반가운 사람을 만나자는 뜻으로 시작된

첫 ‘주삼수(酒三水)날은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했으나, 너무 과음했다.
‘학고제’에서 화가 송창씨의 개막식이 있었지만, 삼청로라 갈 수도 없었다.
많은 주당들이 그 전시뒤풀이에 퍼지겠지만, 약속은 약속이었다.






인사동 길거리에서 반가운 분들을 만났다.
제주로 내려 간 김호근씨를 만났는데, 오랫만의 서울 나들이라 했다.

종각 부근에서 약속이 있어 그 곳에서 마시자고 했으나 양해를 구했다.

인사동에서 이차를 약속하고 ‘낭만’으로 갔지만 거긴 아무도 없었다.

이 날은 핸드폰까지 고장 나 아무와도 연락되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사진하는 곽명우씨를 만났다. 언제나 웃는 표정이 정겨운 친구다.





벽치기 샛길의 주막으로 접어드니, 찻집 앞에는 김명성씨가 앉았고,

불화가 이인섭씨는 제자와 함께 반대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이 날의 첫 술잔은 이인섭씨와 골목에서 시작되었다.

성기준씨와 송용민씨도 다녀 갔지만, 이차는 화가 김 구, 장경호씨와 마셨다.

장경호씨는 이미 술에 취해 왔는데, 다른 곳에 가서 한 잔 더하자며 바람 잡았다.





칠뫼 김구씨와 함께 따라간 곳은 ‘국악 라이브’였다.

장경호씨는 요즘 술만 취하면 ‘월하의 공동묘지’같은 이집으로 자주 데려왔다.

여자들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노래 부를 수 있는 곳이 없어 찾는 것 같은데, 만만찮은 그 술값은 어쩔거냐? 

난 너무 취해 소파에 잠시 골아 떨어졌는데, 눈을 떠보니 임경일씨도 와 있었다.






장경호씨는 자기의 십팔번인 뒷동산 아지랑로 시작되는 노래를 부르고 싶었지만,

제목을 몰라 못 찾고 있었다. 그토록 노래를 자주 부르면서 제목도 기억하지 못하다니...
그나저나 자정이 가까워 오고 있었는데. 일산 사는 장경호씨는 또 백상사우나에서 신세 질 팔자였다.

나도 지하철 끊기기 전에 줄행랑쳤지만, 뒤가 편치 않았다.


에고~ 사는 것도 힘들지만, 노는 것도 힘들다.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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