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 - Rebirth

나형민展 / NAHYOUNGMIN / 羅亨敏 / painting
2020_0318 ▶︎ 2020_0324


나형민_Lentiscape-쥐불_렌티큘러_66×100cm_2020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71115a | 나형민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일요일_12:00pm~06:30pm



갤러리 그림손

GALLERY GRIMSON

서울 종로구 인사동10길 22(경운동 64-17번지)

Tel. +82.(0)2.733.1045

www.grimson.co.kr



누구에게나 죽음이란 두려운 대상이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은 죽음을 회피하고 영생불사, 불로장생 또는 죽음 이후의 부활의 삶을 추구한다. 그러나 어떤 인간도 존재도 영생할 수 없으며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그래서 한 줌의 흙으로 이루어진 능(陵)이란 삶의 한계이면서도 생과 사의 경계이다. 남양주에는 왕릉임에도 불구하고 소소한 광릉, 유릉, 홍유릉 등 여러 능묘(陵墓)를 볼 수 있다. 이 왕릉에는 전통적인 수종으로서의 큰 소나무가 가득하여 인위적이지 않은 경건함을 풍긴다. 사철 푸르름을 머금고 있는 소나무는 절개의 상징이자 본인 작품의 제재로서 자주 활용되기에 왕릉은 때때로 방문하는 좋은 소재처이다.


나형민_붉은 상원(上元)_한지에 채색_135×190cm_2019


특히 남양주 진건읍 사능리에는 소재로서의 겨울 노송(老松)의 이미지를 다수 채집할 수 있었던 정순왕후(定順王后) 송 씨의 사릉(思陵)이 있다. 그녀는 단종의 왕비로 책봉되었다가 강등 된 후, 다시금 숙종 때(1698) 정순왕후로 복위된 파란만장한 삶을 산 여인이다. 왕후에서 노비로까지 떨어졌으나 이후 다시금 복권되어 왕후로 되살아난 역사적 터전을 이번 작품의 주된 소재이자 재생의 함의를 담은 요소로 활용하였다. 재생(再生)이란 보통'죽음 이후에 다시 태어난다(rebirth)'는 되살아남의 뜻으로 부활의 의미가 담겨있다. 사릉의 정순왕후의 육신은 비록 물리적으로 죽음을 맞이했지만, 사후 다시금 단종 복위와 더불어 재생의 지평으로 부활하였듯이 재생이란'의미 또는 가치의 되찾음, 되돌아감'으로서 복귀의 뜻이 담겨있다.


나형민_명승(名勝)-울산바위_한지에 채색_135×190cm_2018


그리고 재생에는 마치 보름달이 가득 찼다가 사라지고 이내 다시 채워지듯이 순환의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삶과 죽음, 내세와 외세의 이원론적인 세계관에서는 죽음이란 삶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 또는 다른 세계로의 전환이라고 사유하였다. 따라서 능(陵)이란 삶의 끝이 아니라 이(this) 세계에서 저(that) 세계로 또는 차안(此岸)에서 피안(彼岸)으로의 통로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언덕 앞 정자각(丁字閣)의 문은 두 세계의 사이에서 항상 열려 있다.


나형민_재생의 언덕_한지에 채색_135×190cm_2020


나형민_재생의 지평_한지에 채색_135×190cm_2020



작품 지평에 자주 등장하는 불꽃으로서의 쥐불, 들불도 태움이라는 소멸을 통해 다시금 소생한다는 의미가 있다. 특히 대보름날의 쥐불놀이는 논두렁이나 밭두렁을 태워 외적 나쁜 것으로서의 들쥐, 해충, 잡초 등과 내적 나쁜 것으로서의 액운을 소멸시키고, 그 재가 거름이 되어 새로운 생명과 운명이 시작되듯이 재생의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서 재생이란 소멸과 생성, 탄생과 죽음의 순환적 역사의 정점으로서의 문(門), 통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지평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불꽃, 능, 보름달 등등의 주된 작품제재는 소멸과 파괴의 외적 이미지를 넘어 생명을 잉태하는 쥐불놀이와 같이 '소멸을 통한 정화'와 그로 인한 다시 태어남(再生)의 함의가 있다.



나형민_흔들리는 지평_한지에 채색_135×190cm_2019


나형민_지평 위의 허수아비_한지에 채색_84×260cm_2018



이번 전시에서도 순환적 시공간으로서의 재생의 의미를 랜티큘러를 통한 풍경작품인 랜티스케이프(Lentiscape)를 통해 담고자 하였다. 랜티스케이프란 움직임을 통한 다원공간의 변환 또는 2차원의 평면 속의 심도 있는 공간감 표현으로 이 공간과 저 공간을 연결하는 통로로서의 시각적 일루전을 새롭게 구현한 시도이다.'랜티스케이프(Lentiscape)'는 랜티큘러(Lenticular)와 랜드스케이프(landscape)를 합성한 본인만의 조어(造語)로서 최근 작업하는 지평의 그림을 동양화적인 랜티큘러로 실험한 작품 유형을 통칭한다. 따라서 작품명 랜티스케이프는 랜티큘러를 통해 평면적이고 고정된 시점의 풍경화의 한계를 극복함과 동시에 전통적인 산수화에서 보여왔던 다시점, 이동시점의 다양한 시각법을 구현함으로써 새로운 지평 표현을 선보이고자 하는 의의가 있다. ■ 나형민



Vol.20200318a | 나형민展 / NAHYOUNGMIN / 羅亨敏 / painting



달빛 녹취록
이재삼展 / LEEJAESAM / 李在三 / painting
2020_0116 ▶︎ 2020_0303 / 1월22일~27일 휴관


이재삼_달빛 MOONSCAPE_캔버스에 목탄_227×910cm_2016



초대일시 / 2020_0130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일요일_12:00pm~06:30pm / 1월22일~27일 휴관



갤러리 그림손

GALLERY GRIMSON

서울 종로구 인사동10길 22(경운동 64-17번지)

Tel. +82.(0)2.733.1045

www.grimson.co.kr



갤러리그림손은 2020년 신년기획을 맞이하여 이재삼 개인전 『달빛녹취록』을 개최합니다.


● 이재삼 작가는 목탄으로 검은 공간을 표현하는 작가입니다. 올해로 34번째 개인전을 하는 이재삼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표현한 홍매화 대작을 비롯하여 나무시리즈, 물안개, 대나무, 폭포 작업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젊은 시절에는 인물과 추상, 설치작업을 주로 한 작가는 자연의 공간을 표현하고자 하는 의지로 표방된 검은 풍경은 곧 달빛의 이미지가 되었고, 검은 빛이 아닌 검은 공간으로 나타나, 빛과 함께 드러나는 자연의 형태를 숯을 이용하여 단순한 풍경이 아닌 대상의 그 너머에 있는 적막함과 어둠 속에 보이지 않는 침식된 풍경을 보여주고자 하였습니다.


이재삼_PINKMOON_캔버스에 목탄_194×518cm_2017

작가가 말하는 숯 곧 목탄은 드로잉의 재료가 아닌 회화의 일부분으로 영혼의 표현체로 사용하고 있으며, 초기에는 먹과 목탄을 함께 사용하다가 점차적으로 목탄을 중심으로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작가는 어둠 속에서 사물자체가 아닌 사물과 사물 사이, 고유한 형상의 너머에 있는 빈 공간, 그것은 보이지 않지만, 일종의 '초월' 공간일 것 같은 비경을 달빛소리, 달빛기운, 달빛냄새를 통하여 목탄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있습니다.


이재삼_저 너머 BEYOND THERE_캔버스에 목탄_150×400cm_2016


꾸준히 목탄 작업을 한 작가는 2018년 제3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을 하면서 작가로써 작품으로써 더 많은 가능성과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주로 대작 위주로 하는 작가는 자연의 힘과 기운을 표현하기에는 작은 캔버스보다는 거대한 캔버스를 통해 자연의 영혼을 펼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작가의 검은 풍경은 먼저, 자연탐사를 시작으로 진행합니다. 지역을 돌면서 필요한 풍경을 찾아 스케치를 한 후, 다시 작가의 생각과 구상을 더하여 작가만의 새로운 자연풍경으로 되살아 나는 작업과정을 하고 있습니다. 하여, 이재삼 작가의 풍경은 실재이면서, 실재가 아닌 풍경이 되며, 이러한 풍경은 검은 공간을 통해 추상적 이미지와 구상적 이미지가 함께 공존하는 풍경으로 표현됩니다. 작가는 검은 풍경을 나타내기 위해 수많은 시간을 캔버스에 목탄을 문지르고 문질러서 화면 깊숙이 검은 공간을 품고 있습니다. 해외에 많은 컬렉터와 예술관계자들의 관심을 높이는 이재삼 작가의 목탁작품은 작가가 표현하는 영혼의 최대 일부분이며, 삶이며 수도자의 수행과정과 같은 것입니다.


이재삼_달빛 MOONSCAPE_캔버스에 목탄_227×181cm_2013


이재삼_저 너머 BEYOND THERE_캔버스에 목탄_291×364cm_2006


이번 갤러리그림손 기획 초대전에서는 이재삼 작가의 대표작을 비롯하여, 작가가 이제까지 보여주고자 했던 목탄의 의미와 달빛의 의미, 검은 공간의 의미를 작품을 통해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작가는 끊임없이 작품을 통해 우리의 삶과 영혼,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 그 외에 또 다른 공간이 존재함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 갤러리 그림손



이재삼_달빛 MOONSCAPE_캔버스에 목탄_162×90cm_2011


이재삼 달빛을 말하다 ● 달빛은 감성과 마음의 빛이며 가슴 사무쳐서 심금을 울리는 빛이다. 단순히 바라보는 시각이 아닌 우리 몸속의 오감이 뒤섞인 모든 육감을 품은 빛이다. 그 어둠 속 기운과 정령들이 눈동자에, 콧등에, 입가에, 혀끝에, 귓가에, 살갗에 전율을 스치며 파고든다. 달빛이 나의 손길과 맞닿는 순간 화면 깊숙히 자리해 만물과 포옹하게 하는 것이다.



이재삼_저 너머 BEYOND THERE_캔버스에 목탄_194×130cm_2008


이재삼 목탄을 말하다 ● 나는 목탄으로 달빛이 채색된 정경을 그리는 것이 화두이다. 목탄(Charcoal)은 나무를 태운 숯인데 나에겐 다소 신성함으로 다가오는 재료이다. 나무가 산소하나 없는 밀폐된 숯가마에서 온종일 불사르고 난 후 재가 되기 전의 검디검은 자태이고 또한 숲의 육신이 마지막으로 남긴 숲에 대한 영혼의 사리이다. 촛불은 제 몸을 불태워서 빛을 발하지만, 목탄은 나무였던 스스로를 연소시켜 자신의 온몸을 숲의 이미지로 환생시키는 영혼의 표현체이다.



이재삼_달빛 녹취록展_갤러리 그림손_2020


이재삼_달빛 녹취록展_갤러리 그림손_2020


이재삼_달빛 녹취록展_갤러리 그림손_2020


나에게 목탄의 검은 빛은 검은 색이 아닌 검은 공간으로 존재한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숲으로 이루어진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사물과 사물 사이의 고유한 형상에 대한 그 너머가 만들어내는 적막함이며 무수히 많은 숲과 나무 사이의 깊고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공간 속에 비경을 담고자 하는 침식된 풍경이다. 숲과 나무는 깊은 어둠의 공간속에서 기지개를 펴는 표정인데 달빛에 비친 음혈의 신령한 존재로서 드러나며 달빛소리, 달빛기운, 달빛냄새가 목탄으로 채색되고자 하는 의지이다. 그리고 단 하나의 목탄이 화면에 부딪쳐 으스러지는 가루에 나의 정신과 혼이 묻어나길 바라는 마음이다. ■ 이재삼


2016년 강원도 작가들이 함께 떠난 바이칼여행에서 찍은 이재삼씨

 



Vol.20200116c | 이재삼展 / LEEJAESAM / 李在三 / painting




-박종규, 윤주동, 이태량, 채성필 작가 참여-



윤주동, ‘하프-(Half-moon)’. 백자, 37 x 34.6 x 33cm. 2015



갤러리그림손이 인사동 고미술화랑과 협업해 기획전 초월시공(超越时空)’814~93일 연다.

올해로 3회를 맞이하는 초월시공(超越时空)’전에는 고려방, 고은당, 관고재, 류화랑, 모임갤러리, 보고사, 천갤러리 등 고미술화랑이 참여한다. 현대미술과 고미술의 컬래버레이션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전통이 가지는 예술적 가치와 현대작품의 조화에 주목한다.

전통가구와 현대미술이 조화를 이루는 이번 전시에 현대작가 4명이 참여한다. 많은 선과 점을 통해 디지털 시각화를 표현하는 박종규 도자를 현대적 감각으로 표현해 회화와 조각을 보여주는 윤주동 존재와 사고의 추상적 개념을 보여주는 이태량 흙으로 예술의 근원과 본질을 알려주는 채성필까지 작가 4인은 조선시대 전통가구와 함께 최고의 조형미와 심미안을 제시한다.

 



이태량, ‘명제형식(Propositional Form)’. 캔버스에 혼합 미디어, 130.3 x 162.2cm. 2019


갤러리그림손 측은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옛 것에 대한 문화적 충돌을 진부하고 고루하게 느끼며 새로운 대상, 새로운 창조물, 새로운 성질에 대해 더 많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가치를 우리는 시공을 초월해 그 가치를 본다고 한다. 예술적 가치가 그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우리 선조들이 남긴 예술적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가치부터 우리 일상생활과 가까이 있는 모든 예술적 가치는 인간의 감정과 정신을 충족시켜주는 미적 가치인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많은 가치들 중에 우리 옛 전통가구와 현대미술과의 만남은 가치의 변화에 부응하지 않는 절대적인 가치를 보여주고자 함이다. 옛 전통가구는 현대예술과 절대 분리되지 않는 가치이며, 현대미술은 전통가구와 만남으로서 과거와 현대를 잇는 매개체 역할과 먼 미래에 가치를 부여 받을 예술품이기 때문이라고 전시 기획 의도를 밝혔다.


 [스크랩 / CNB저널, / 김금영]






Symphonie de terre

채성필展 / CHAESUNGPIL / 蔡成珌 / painting
2018_1128 ▶︎ 2018_1225



채성필_histoire de bleu(180808)_pigments naturels sur toile_160×20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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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8_1128_수요일_05:00pm

갤러리 그림손 10주년 특별기획 초대展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일요일_12:00pm~06:30pm



갤러리 그림손

GALLERY GRIMSON

서울 종로구 인사동10길 22(경운동 64-17번지)

Tel. +82.(0)2.733.1045

www.grimson.co.kr



갤러리그림손은 2008년 6월 인사동에 개관하여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10주년 특별기획으로 한국과 유럽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채성필 작가를 모시고 초대전을 진행합니다. '흙의 작가'로 잘 알려진 채성필 작가는 흙의 기원과 블루의 역사를 꾸준히 작업하며 국내외 많은 전시를 통해 현대미술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 이번 갤러리그림손 특별기획 초대전에서는 (흙)대지를 넘어 하늘과 우주의 공간을 확장시킨 다양한 작품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채성필 작가의 작품에서 보이는 본질적 땅은 우주의 근원과 재현을 표현하였다면, 이번 전시에서 표현된 작품은 땅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면서 그 땅에 존재하는 우주적 근원의 흐름을 시간적으로 펼치고 있다. 작가가 추구하는 시간적 흐름은 기존의 공간 유토피아, 시간 유토피아와의 개념과는 다르다. 작가의 이상향은 미래에 존재하지 않고 이상세계를 형상화하고 현실화 하여 새로운 이상세계, 즉 자신의 소망을 완성해 간다.



채성필_Origine(181111)_terre, pigments naturels, encre de Chine sur toile_162×130cm


작가는 서울대를 졸업한 뒤 바로 파리로 건너가 현재의 작품세계를 구축하였으며, 유럽과 해외 많은 곳에서 전시를 하면서 자신의 작품을 알리게 되었다. 해외의 활동 속에서 태초의 고향, 어머니에 대한 근본적 근원은 작품의 중심이 되었고, 작품의 과정이 되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 『terre anonyme(181006)』 『terre anonyme(181007)』은 작가가 추구하는 가장 기본적 근원을 표현하고 있다. 끝없이 펼쳐진 선의 선율은 마치 대지의 무한함과 영속성을 보여는 동시에, 때로는 수직 하강하는 속도의 흐름을 보여주는 흙(대지)은 시간과 창조의 가장 원초적 조형성을 나타내고 있다. 『symphonie de terre(181001)』 작품은 이번 전시 타이틀이면서 작가가 새롭게 시도한 대지이며 블루이며 우주이다. ● 대지에서 하늘, 우주까지 도달한 빛의 파노라마는 이번 전시 타이틀인 『 Symphonie de terre 대지의 심포니』에 맞게 지금까지 모든 작업의 과정에 대한 완성이며 새로운 도약이다. ● 채성필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작품 외에 판화도 선보인다. 지금까지 작업 중 대표적 작품이미지 3점을 판화로 제작하여 원화에서 보여준 감정 그대로, 판화로 전달 할 예정이다. ● 채성필 작가 작품은 많은 컬렉터가 보유하고 있으며, 그 중 세계 제1위의 컬렉터이기도 한 프랑소아 피노가 선택한 작가이기도 하다. 작품에 끊임없는 시도를 하는 채성필 작가의 신작들을 볼 수 있는 좋은 전시가 될 것이다. ■ 갤러리 그림손




채성필_symphonie de terre(180601)_pigments naturels sur toile_130×130cm


재현된 '코스모스(Cosmos)'세계에 바치는 송가1. 음악 같은 그림, 그림 같은 음악 그림 같은 음악이 있다. 드뷔시의 피아노곡들이 대표적이다. 음에 색이 있고, 형태가 그려진다. 때론 무지개 빛 물방울의 반영이 아름답게 쏟아지고(Debussy, 「Reflets dans l'eau」), 황토의 그라나다 황혼 속에 무희의 춤이 다채롭게 펼쳐진다(Debussy, 「La soirée dans Grenade」. 개별적 음 하나하나가 쏟아내는 선과 색의 향연이 어우러져 구성체를 형성한다. 음악 같은 그림이 있다. 채성필의 작품들이 그러하다. 언제나 경계에서 새로움을 사유하고 모색하는 작가 채성필의 작품은 멈추지 않고 항상 음악의 선율처럼 흐른다. 그 흐름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역행하고, 변주한다. 강력한 역행을 통해 기존의 필연과 당연을 성찰한다. 주류를 변주하여 자신의 길을 열기보다는 누군가 들의 길, 즉 '익명의 땅'을 일구어 간다.



채성필_symphonie de terre(180602)_pigments naturels sur toile_130×130cm


2. 몽상에서 깨어난 대지, '대지의 몽상'에서 '대지의 심포니'까지 ● 작가 채성필은 2017년 5월 전시 『블루의 역사, + & ―』 에서 강자의 테제였던 기존의 블루를 대신할 새로운 블루의 도래를 예견함으로써 블루의 새로운 시대를 선취했다. 그리고 이제 2018년 12월 새로운 전시 『대지의 심포니』를 통해 오랫동안 기획한 대지의 몽상을 현실화한다. 대지는 이제 기나긴 몽상에서 깨어난다. 때론 물의 흐름과 바람의 움직임, 깎아지른 듯한 대륙의 이동을 통해 끊임없이 길 찾기를 모색한 채성필은 드디어 새로운 블루가 꿈꾸는 세상을 펼쳤다.



채성필_symphonie de terre(180930)_pigments naturels sur toile_162×130cm×2


채성필의 흙은, 땅은, 대지는 항상 이상을 품어 왔다. 채성필의 모든 작품 세계를 수렴하는 주제인 '익명의 땅'들은 화폭에 창조된 태초의 광활함을, 고향의 어머니를, 아들의 미래를, 바람의 근원을 꿈꾸는 땅들이다. 조물주의 자리를 넘보는 화가 채성필은 불온하다. 그는 세상의 근원인 오행(五行, 火水木金土)를 통해 '익명의 땅'을 창조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근원과 원형의 재현을 꿈꾼다. 채성필의 이상향은 기존의 공간 유토피아, 시간 유토피아의 개념과 다르다. 작가 채성필의 이상향은 '저기, 미래'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이상향을 '지금, 여기', 자신의 화폭에 형상화하고 현실화한다. ● 채성필의 관객들은 '지금, 여기'에 형상화된 이상향속에서 작가의 이상을 함께 공유해 왔다. 이미 『블루의 역사, + & ―』 에서 연대하기 시작한 관객들은 채성필의 연작 「대지의 심포니」에서 연대와 개별 움직임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이상 세계를 형상화하고 현실화한다. 작가 채성필은 원래 그들의 것이었던 '익명의 땅'들을 그들 앞에 활짝 펼친다. 새로운 조물주 채성필이 창조한 '익명의 땅'에 발 디딘 존재들은 이제 무수한 별들로 승화한다. 무수한 별들은 새로운 '땅'과 함께 역행하고 변주한다. 그리고 마침내는 푸르른 하늘에, 드넓은 우주에까지 도달한다. 그리고 타인의 여정과 더불어 진정한 이상향을 공유한다.



채성필_symphonie de terre(181001)_pigments naturels sur toile_100×100cm×4


3. 쇼팽과 채성필, 「전주곡」과 「대지의 심포니」 ●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의 가사를 통해 쉴러는 그리고 베토벤은 '한 조각의 넋이라도 자신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모여 환희의 송가를 부르자'고 외친다. 작가 채성필과 함께 꿈꾸어 왔던 관객들은 물론 그의 작품의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꿈꾸는 자는 모두 이미 '별들'이다. 보다 나은 내일과 세상을 후손들에게 전하기 위해 자신의 시공간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순례하는 모든 존재는 이미 '별들'이다. 세상과 사람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자신만은 자신을 속이지 않으며 자신의 색을 품은 모든 존재들은 '자신의 넋'을 소유한 존재들이다. 채성필의 새로운 전시 『대지의 심포니』는 '자신의 넋'을 소유한 존재들이 부르는 '환희의 송가'이다. ● 우주에 가득한 환희의 송가를 부르는 존재들은 안주하지 않는다. 개별 존재 스스로 지속적인 움직임을 통해 보다 아름다운 형상을 형상화한다. 『대지의 심포니』에서 전시된 채성필의 작품들속에 형상화된 개별된 존재들은 다른 존재의 삶과 방식을 반복 재생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음악에서의 모든 조성인 24개의 조성속에 감정을 보다 자유롭고 다양한 양식으로 형상화한 쇼팽 「프렐류드」에 맞닿는다.



채성필_terre anonyme(180909)_terre, pigments naturels, encre de Chine sur toile_240×360cm



29세의 젊은 쇼팽은 죽음의 공포를 음악으로 견뎌내며 스페인의 섬 마요르카에서 「프렐류드」 24곡을 작곡한다. 쇼팽 「프렐류드」를 구성하는 개별 곡들은 비교적 짧지만, 자신만의 선율과 색을 지닌다. 이들 곡들은 이웃한 곡들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완전 5도씩 상승하며 메이저 혹은 마이너의 선율을 통해 자신들의 삶과 감정을 진솔하게 노래한다. 24개의 소품으로 이루어진 쇼팽 「프렐류드」에는 마주르카, 녹턴, 발라드, 즉흥곡, 에튜드 등의 다양한 '성격'들이 공존한다(프렐류드는 '성격소품 character piece'이다). 결핵으로 인한 고독과 고통 속에서 외딴 섬에 유폐된 망명자 쇼팽은 다양한 양식들로 구성된 개별 곡들을 통해 한편의 완전체인 「프렐류드」를 완성한다. ● 작가 채성필의 「대지의 심포니」에서 다양한 색을 통해 한편의 교향악, 단성적 독백이 아닌 다성적 대화의 아름다운 세계를 형상화한다. 과거 작품과 유사해 다소 익숙해 보이는 조형적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별을 품고 있는 것으로 이번 전시의 그의 작품들은 이전과 다른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한다. 각각의 별들은 자신만의 서사를 품고,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이들은 타 존재들과 조화롭게 공존하며 연대한다. 어떤 별들은 메이저처럼 크고 밝게 빛나고, 어떤 별들은 마이너처럼 작고 미미하게 보이지만 이 모든 별들이 어우러져 한편의 아름다운 세계를 형성한다. 하나의 작품 내적인 범위를 넘어서 개별 작품들은 곁의 작품들과 나란히 공존하고 비약하면서, 「대지의 심포니」가 전시된 전시장은 하나의 거대한 코스모스의 우주가 된다. 역행과 변주를 카오스를 품은 코스모스이기에 그가 꿈꾸는 우주의 시공간은 창세기의 구절처럼 '보기에 매우 좋'은 하나의 완전체이다.



채성필_terre anonyme(181006)(181007_terre, encre de Chine sur toile. 2018_100×280cm×2


4. 새로운 '익명의 땅'을 향하여 ● 땅을 넘어서 하늘로, 우주로 펼쳐지는 화폭 속 공간의 확장은 작가의 욕망이 아닌 소망이다. 고독과 고통을 안고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삶을 완주하는 평범한 별들로 이루어진 연대를 보다 넓고 아름답게 확장하고자 하는 세상과 존재를 향한 간절한 소망이다. 소망은 이루어졌고, 이상은 현실화되었다. 그러나 존재가 향하는 길은 언제나 열려 있기에, 작가 채성필은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땅을 꿈꾼다. 새로운 '익명의 땅'을 향한 탐색은 이미 시작되었다. '혼의 방랑'의 결과, 우리에게 들려 주며 함께 공명할 새로운 음악은 무엇일지 기대하며, '지금 여기'에 이루어진 그의 코스모스 속에 '나의 넋'이 부르는 송가(頌歌, hymn)를 바친다. ■ 정해성



Vol.20181128f | 채성필展 / CHAESUNGPIL / 蔡成珌 /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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