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찜통 같은 날씨에 인사동의 시원한 전시장에서 작품에 푹 파묻히는 건 어떨까?
새로이 개관한 ‘이노아트스페이스‘에서는 금보성씨의 ’한글‘전이 열리고,
‘마루갤러리’에서는 이도씨의 ‘서사를 만드는 정물’전이, ‘통인화랑’에서는 김정선씨의 ‘다시 지금 여기에’전이 열린다.


 


그리고 지난 6월 개관한 '베를린미술관‘에서는 융합서예술가 양상철씨의 전시를 비롯하여

24명의 작가들이 함께하는 ’8월의 만남‘전이 기다린다.

여러 개의 전시장에서 보여주는 작품의 다양성은 물론이고, 곳곳에 마련된 자리에서 사람들을 만나

님도 보고 뽕도 따는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몇 몇 아는 전시가 이 정도인데, 인사동 곳곳에서 열리는 좋은 전시가 얼마나 많겠는가?

다양한 작가들의 예술 혼에 흠뻑 빠지다보면, 스스로를 충전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지난 9일 오후 무렵, 무작정 인사동에 나갔다. 그리운 사람도 많고, 보고 싶은 작품도 많아서다.

제일 먼저 금보성씨의 전시가 열리는 이노아트스페이스부터 들렸다.



그런데, 입구에 줄지어 선 축하 화분을 보니 가슴이 답답했다.

보내 주는 화분을 어쩌겠냐마는, 이젠 쓸데없는 낭비는 그만 했으면 좋겠다.

전시장을 답답하게도 하지만, 쓰레기가 될 화분에 작품이 파 묻혀 버린다.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을 화분 외에는 담을 수 없단 말인가?



전시장에서 심철민 관장과 초대전을 여는 금보성씨를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기존의 보아왔던 한글 작품과는 좀 달랐다.


 


최근에는 아리랑을 주제로 민족의 정서에 다가간 작업을 해 왔으나

이번에는 한글의 역사성과 생명성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한글에 담긴 정신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그 역사성은 암각화의 상형문자를 연상시키기도 했는데, 한글 자모를 바탕으로 철판이나 동판을 부식시켜 만든 부조였다.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철판의 나이테 속에는 푸른 나뭇잎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철이 한글의 역사를 상징한다면 작은 나뭇잎은 생명의 탄생을 의미했다.


 

금보성씨는 금년에만 아홉 번의 개인전을 열었던, 잠시도 쉬지 않는 열혈작가다,

같은 시간에도 자하미술관에서 열리는 나랏말싸미’ 단체전을 비롯하여

외국이나 지방에서 각기 다른 전시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지칠 줄 모르는 작업에 대한 열정과 창의력은 무엇에 기인하는 것일까?


 


그는 개인 작업에만 열정을 쏟는 것이 아니라, 작가지원에도 온 힘을 아끼지 않는다.  

마치 미술을 위해 태어난 사람 같다.


 

오는 819일까지 열리니, 꼭 한 번 들려보기 바란다.


 

두 번째 들린 전시는 마루갤러리’1관에서 열리는 이도씨의 서사를 만드는 정물전 이다.



작가가 그린 소재들은 사실대로 재현하기보다 화면을 이루는 계기와 연유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것이 수확과 연결되는 시간으로 대체되기도 하는데, 그 시간은 사람의 강인한 정신을 담아 내었다.

 


작가가 보여주는 도상이 추상적 형식을 갖추고 있으나, 이미 사유되어 정서적 이해로 얽힌 하나의 덩어리였다.

바로 정서적 운동감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사유이고 느낌이다.

단호하면서도 생략된 선들이 만들어내는 완강한 힘이 핵심이다.


 


미술평론가 강선학씨는 완만한 선, 직선이 최소화된 배분의 화면은 구성과 해체라는 자신의 어법을 보여주고,

머뭇거림 없는 단호한 선들과 색상들, 흔적은 최소의 색, 도식화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표정과 관계,

의외로 서사가 이루어지는 정물적 시선으로 인물을 구축하는 독특한 조형성 태도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선이 보이는 형태의 단호한 결정, 그러나 그 단호함 밑으로 보이는 중첩된 선들의 민감한 배치, 선의 다의성이 주는 잠세적인 운동감,

대지를 밟고 선 강인함의 현재화야말로 작품을 이해하는 기항지로서 역할을 할 것이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전시 팜프렛에 적힌 작가 프로필을 보고 약간의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정수미술대전' 초대작가상 수상이라 적혀 있었는데, 그 상이 그토록 자랑스러웠던가? 

'정수미술대전'은 박근혜가 만든 '정수문화재단'에서 주는 상이 아니던가?

상이란 것 자체가 작가를 병들게도 하지만, 상에 따라서는 작가를 부끄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난, 작가주의 보다 인간주의자다. 아무리 작품이 좋아도 인간답지 않으면 발톱에 때 만치도 여기지않는다.

여류작가 이도씨의 작품은 13일까지 열린다.


 

그리고 마루갤러리신관에서는 김동욱, 김영진, 김용식, 김주희, 김지은, 빅터조, 오재언, 왕에스더,

이우현, 이정연, 장영훈, 정현태, 제소정, 채정완, 최은서, 한민수, 허진의. 호 진 씨등 젊은 작가 18명이 함께 한

젊음 그리고 오늘전이 12일까지 열리고 있다.



마루갤러리’2관에서는 세계 유일의 오가닉 그림을 그리는 황복은씨의 별이 쏟아지는 푸른 정원이 열린다,

염색기법에 의한 다양한 천들과 도자들이 어우러져 전시장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베를린미술관개관초대전으로 열리고 있는 제주의 양상철씨 전시도 눈길을 끌었다.

서예와 회화를 융합하여 작업하는 양상철씨는 전통과 현대를 넘나들며 장르를 해체하는 작가다. 

제주의 대표적인 작가로 나무, , . 도자 등을 이용하여 예술의 경계를 뛰어넘는다.

그는 과거의 서예 가치를 미래의 가치로 끌어 올린 가장 현대적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가 주로 사용하는 재료는 제주밀감껍질을 말려서 가루 낸 것을 석고와 풀, 아크릴로 반죽하여 바르고,

끈적이는 면 위에 즉흥적이고 순간적인 붓질로 글 쓰듯이 그려 낸 작품이다.

꿈틀대는 그림의 형상들은 암각화에 새겨진 상형문자를 닮은 것도 여럿 있다



 

 필락해집'이란 작품은 '급한 붓질에 끌려 게들이 모여든다'는 뜻이다.

굵게 내려 그은 붓질이 폭포가 되었는데, 가히 붓질의 힘이 폭포를 능가하였다.

이 그림은 어릴 적 폭포 아래서 게를 잡던, 오래된 기억에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강민기, 권치규, 김기애, 김병규, 김재호, 김지영, 나인성, 남희조, 도태근, 박건재, 박찬걸, 성도형,

송미진, 송현구, 양진옥, 이성옥, 이인숙, 이창희, 이해성, 임세현, 임호영, 장수빈, 주영호, 최승애씨 등

24명의 작가가 참여하는 ‘8월의 만남전도 열리는데, 두 전시 모두 13일까지 열린다.


 

오는 825일까지 통인화랑에서 열리는 김정선씨의 다시 지금 여기에전도 볼만하다.


 

김정선씨는 오래된 사진 이미지를 이용하여 유화를 그려 온 작가다.

한 동안의 관심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긴 세월 동안 사진에 의한 그 만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몇 장은 가지고 있을 법한 어렴풋한 형상의 사진 이미지들은 보는 이들에게 아련한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때로는 풍경이 때로는 그의 주변 친구나 가족으로 짐작되는 인물들이 화면을 메우지만,

그 것들이 누구이며 무엇이고, 어디에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그의 작품 속 인물이나 풍경들은 존재론적인 세계에서 규정되는 어떤 것이 아니며

그 어떤 의미를 위해 임무를 부여 받은 것도 아니다.

작품의 소재가 되는 인물과 풍경은 그저 그렇게 자리에 있는, 즉 실존하는 어떤 것들이다.


 

기억을 살려내는 행위의 연장선상에서 보잘 것 없는 일상의 한 부분과

그것이 우연히 망막에 맺혀 만들어내는 색채를 그만의 기억으로 그려낸다.

그 작품이 말하는 것은 무언가를 느끼고 기억하게 하는 순간의 진실이다.


 

사라져가는 자신 안의 어떤 것들을 필사적으로 구출하고 살려내기 위한 인공호흡이며 몸짓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신경 쓰지 않는 모든 것들을 살려내려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치고 있었다.



여러분의 삶은 어떠한가? 누구를 위해, 아니 무엇을 위해 불태우고 있는가?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스스로를 충전하러 나가자.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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