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티잔 아티스트 게릴라

홍범도 - 장군의 초상

2023_1101 2023_1113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강경구_김구_김억_김인규_김재홍_김주호

김준권_김진열_김진하_류연복_류준화_문승영

박건_박건웅_박순철_박영균_손기환_송창

유기호_유대수_이동환_이명복_이상호_이원석

이윤엽_이인철_이재민_이태호_이현숙_장경호

정기현_정원철_최경선_최윤정

 

관람시간 / 11:00am~06:00pm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4-1 4

Tel.+82.(0)2.722.7760

 

1. 최근 윤석열 정권이 친일과 반공을 하나의 이념으로 묶어 국민을 상대로 이념 전쟁을 선전포고 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획책이 바로 육군사관학교에 설치된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제거하는 것이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홍범도 장군은 봉오동 전투를 비롯, 평생을 조국 독립을 위한 항일 무장투쟁에 일생을 바친 분이셨습니다.

 

김주호_우리가 홍범도다_질구이 930도 소성_19cm, 가변길이_2023
김진열_새벽을 기다리는 촛불_종이에 혼합재료_57×79cm_2023

2. 그런 홍범도 장군을 의도적으로 욕보임으로써 반공=친일이란 그릇된 프레임을 일반화시키려는 작태를 현 정권이 펼치고 있는 것입니다. 소련공산당 입당, 빨치산 활동, 자유시 참변 등의 이유로 홍범도 장군의 활동 폄하와 함께 무장 독립운동사를 우리 역사에서 숙청하고, 궁극적으로는 친일 극우 세력의 영구적 정치 기반을 만드려는 획책이기도 합니다. 역사학계와 양심적 지식인들은 이 정권의 황당한 양두구육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박순철_홍범도 (아! 어찌 나에게...)_한지에 수묵_96×66cm_2023
박영균_백두산의 아침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7×72cm

3. 1940년대 태평양전쟁이 한창일 때, 한 고독한 70대 독거노인이 소련군에 입대하겠다고 했답니다. 소련이 미국과 연합해서 대일본과의 전쟁에 참전하면 본인도 전장터에 나설 거라면서요. 일본에게 부인과 아들 둘 가족 모두를 잃은 봉오동 영웅 홍범도 장군의 이야기입니다. 모든 것을 잃은 채였지만, 파란만장했던 삶의 마지막까지 조국 독립을 위해 일본과 싸우려 했던 내면의 도저한 치열함은 가히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임종하기 직전까지 30년의 저항, 그 고단했던 대일항쟁 편력이 아마도 그의 마지막 얼굴에 생생하게 스며있었을 것입니다. 그 절절했을 절대 고독, 그게 홍범도 장군의 실존적이고도 수명적인 '장군의 길'이었던 모양입니다.

 

이동환_범도 아바이_장지, 수간채_65×55cm_2023
이윤엽_아 홍범도_70×56cm_2003

4. 이런 과거-현재 얘기가 설왕설래하는 와중, 저희 나무아트에서는 깨어있는 작가들과 함께 게릴라형태로 홍범도-장군의 초상전을 기획했습니다. 현재 홍범도 장군에 대한 역사적 사진이나 이미지는 상당히 희박한 게 현실입니다. 따라서 미술인들이 홍범도 장군의 정신을 반영할 수 있는 다양한 양식의 초상화를 제작-전시함으로, 우리 근대사의 항일 독립 정신이 시민에게 널리 향유되면 좋겠습니다. 또한 작가마다의 고유한 개성과 상상력으로 이 초상화들이 진지한 역전의 역사화로 연결되면 더 좋겠습니다. [김진하]

 

-이달에 볼만한 전시-

-인사동-

파르티잔 아티스트 게릴라전 홍범도 장군의 초상’/ 2023,11,1-11.13 / 나무화랑

장경호전 '묵시' / 2023,11,15-11.28 / 나무화랑

김윤수선생 5주기 추모전 / 2023,11.29-12.4 / 동덕아트갤러리

박야일전 녹는, ‘/ 2023.10.28-11.12 / 아르떼 숲

박 건전 ’/ 2023.11.15-11.30 / 아르떼 숲

전대식전 '사진속의 추억, 추억속의 인생' / 2023.11.15-11.20 / 갤러리 인덱스

박재동회화전 / 2023,11.22-11.28 / 인사아트프라자갤러리

이명복전 / 2023,11.8-11.20 / 인사아트센터

이상남전 소중한 유산‘/ 2023,11.1-11.6 / 인사아트센터

이열전 / 2023,10.18-11.7 / 노화랑

전옥희전 '시간과 선물' / 2023,11.8-11.24 / 장은선갤러리

최석운전 풍경같은‘ / 2023,11.8-11.28 / 가람화랑

윤현진,이상용전 데우스 엑스 마키나’/ 2023,11.1-2024,1.31 / 갤러리 몬도베르

한대수 사진전 / 2023,11.15-11.28 / 토포하우스

이경훈 회화전 / 2023,11.15-12.10 / 통인화랑

권인경전 열린 방‘/ 2023,10.27-12.25 / 갤러리밈

전명자전 / 2023,11.15-12.12 / 선화랑

 

-그외 강북지역-

김구림전 / 2023.8.25.-2024.2,12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정연두전 / 2023.9.6.-2024.2,25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장욱진회고전 '가장 진지한 고백' / 2023.9.14.-2024.2,12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80 도시현실전/ 2023.5.25-2025.5.26 /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근대문예인, 위창 오세창전 / 2023.9.7.-2023.12.25 /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강서경전 / 2023.9.7-2023.12.31 / 리움미술관

유근택전 ‘REFLECTION’/ 2023,10,25-12.3./ 갤러리현대

김환기 점점화70-74/ 2023,9,1-12.3 / 환기미술관

김재홍전 깨어나는 몸, 다시 서는 거인‘ / 2023,10,26-11.26 / 정문규미술관

한정식전 은 열려있다‘ / 2023.10.21.-12.24 / KP갤러리

강운구 사진전 / 2023.11.22.-2024.3.17 / 뮤지엄 한미삼청

박재훈 미디어전 / 2023,10,20-11.19 / 성곡미술관

노원희 '거기 계셨군요'/ 2023,8,11-11.19 / 아르코미술관

정강자회화전 / 2023,11,15-12.30 /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류주영회화전 / 2023,10,27-11.18 / 아트사이드갤러리

이상은회화전 / 2023,11,1-11.28 / 아트파크

박광수회화전 / 2023,11,8-12.9 / 학고재

권진규조각전 / 2023,11,14-12.9 / PKM갤러리

김승연판화전 / 2023,11,8-12.8 / 토탈미술관

박병욱 조각전 그리고 ’ / 2023,10,10-11.18 / 김세중미술관

구명본 초대전 / 2023,11,1-11.14 / 금보성아트센터

김대열 수묵언어전 무상.유상’ / 2023,11,9-11.21 / 한벽원미술관

이화자전 蒼然’ / 2023,10,18-12.9 / 스페이스 소포라

박상희전 그럼에도 영롱한’ / 2023,11,2-11.22 / 인디프레스

임다인 회화전 / 2023,11,10-12.2 / 이목화랑

차승언전 / 2023,10,26-11.29 / 씨알콜렉티브

이기영전‘Work2023’/ 2023,11.8-11.28 / 이화익갤러리

양승우전 '나의 다큐사진분투기' / 2023,10.31-11.12 / 류가헌

남태영사진전 / 2023,11.11-11.19 / 갤러리단정

박찬숙전 세상의 끝’/ 2023,11.1-11.10 / 갤러리브레송

추영호전 / 2023,11,3-11.22 / 혜화아트센터

 

[스크랩 : 서울아트가이드 202311월호]

 

울긋불긋 꽃처럼 돋아난 화려한 물질문명에 슴이 턱턱 막혔다.

지난26일 성균관로 정문규미술관에서 열린 김재홍 초대전 깨어나는 몸, 다시 서는 거인을 보면서다.

 

  2년 전 보여준 거인의 잠에서는 갈갈이 찢기고 망가진 땅 즉 병든 국토를 이야기 했다면,

이번에 보여 준 깨어나는 몸은 썩어 문드러진 인간의 정신을 탓하는 것 같았다.

 

  인간성을 말살시키는 물질문명, 즉 돈의 폐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현실을 반영한 리얼리즘이 아니라 현실을 반성케 하는 리얼리즘이라 듯이,

작가 김재홍이 전해주는 시어들은 절규에 가깝다.

 

   

김제홍은 정치적 모순이나 불안한 한반도 평화, 환경의 황폐화, 물질문명에 병든 현대인의 끝없는 욕망 등

동시대인이 처한 삶의 문제점을 자신만의 문법으로 신랄하게 비판해 왔다.

 

  화산이나 지구를 멸망으로 몰아넣을 핵폭탄 등을 아름다운 꽃으로 표현한 작품에서는

보들레르 악의 꽃이 연상되었다.

 

  그대의 증오로 저주받은 이 씨앗은

나를 짓누르는 분노를 솟구치게 할지니

독기 품은 새싹이 돋아나지 못하도록

늦기 전에 이 나무를 아주 비틀어 놓으리라!“

-보들레르의 시 축복’ 중에서-

 

  그리고 마지막 남은 여행은 죽음뿐이라고 했다

죽음의 길에서 새로운 미지의 희망을 찾는다는 것은

목숨 걸고 삶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이것이 악의 꽃이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였다.

 

  김재홍이 추구해 온 일관된 작업은 우리민족이 겪어 온 역사적 사실에 기인한다.

민주화 과정을 겪는 지난한 시대적 사건에서 부터,

국토의 분단과 자연의 황폐화 그리고 핵 확산이 가져올 종말적 위기론까지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다.

 

  그가 배경으로 끌어들이는 인간의 몸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이며 세상이다.

분단의 상처나 핵폭발로 일어 날 비극적 상황을 몸의 상처로 드러낸 것이다.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반성케 한다.

 

  아래 글은 홍경한 미술평론가의 전시 서문에서 한 단락 옮겼다.

 

김재홍은 정치적·사회적 관계망 속에 거주하는 실존이 겪는 삶의 냉혹한 현실을 기록하고

시대의 긴급한 사회적 문제들을 품격 있게 다룬다.

또 다른 역사화로 <근정전>을 잇는 <안타까운 유산>에서처럼 그의 작품은 그 자체로 강력한 논평이 된다.

 

  물론 또 다른 특징도 있다. 바로 그의 작품은 형식상 사실주의적 경향을 따르지만 입체적 상상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입체적 상상은 상징적인 요소에 의한다. 작가는 상징을 통한 직관성을 회피하는 대신 작품마다 시어(詩語)를 심으며 현실 인식과 성찰의 행간을 만든다. 예를 들어 폭탄에 의해 깊은 웅덩이가 들어선 대지 혹은 자연의 일부처럼 보이는 몸을 그린 <거인의 잠>, <야만의 흔적> 연작은 거칠고 험난한 질곡의 역사를 다룬 진혼곡이다. 몸에 새겨진 크고 작은 기록과 생채기들은 엄혹한 현실의 투영이면서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각인될 수밖에 없었던 익명의 상흔이다.”

 

  개막식이 열린 지난 26일은 청승맞게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성균관대 부근에 있다는 말은 들었으나, 정문규씨 집 찾느라 고생 좀 했다.

어렵사리 찾았지만 많은 분들이 뒤풀이 집으로 옮기고 있었다.

 

일 이층에 나누어 내건 대형 작품에 압도되었지만 손님이 너무 많았다.

뒤늦게 작품 보랴 인사 나누랴 정신없었는데, 단양 사는 김언경씨 모습도 보였다.

 

주인공 김재홍씨를 비롯하여 박불똥, 조경연, 장경호, 박흥순, 안원규, 박상희, 이필두, 최석태,

김도수, 김영진, 최운영, 류충렬, 나종희, 황준연, 이인철, 김진하, 류연복, 이재민, 양상용, 이현정,

칡뫼김구, 성기준, 두시영, 박은태, 곽대원, 손기환, 한상진씨 등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많은 화가들이 나왔다.

 

  임정희씨는 동행한 독일 문화비평가 안드레아스를 소개시켜 주기도 했다.

 

  뒷풀이 집인 한국관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그 넓은 식당에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

마침 장경호씨가 자리를 잡아 놔 끼어 앉을 수 있었는데,

그 날 뒤풀이 비용은 갤러리측에서 낸다기에 마음 편히 즐길 수 있었다.

 

  기분 좋게 마신 것 까지는 좋았으나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게 탈이었다.

옆에 앉은 손기환씨가 술잔만 비면 따라주는 바람에 정량을 한 참 초과했는데,

문제는 술이 취하면 오버 하는데 있다.

 

  평소엔 말을 잘 하지 않지만, 술이 취하면 검정되지 않은 이야기를 마구 까발리거나 고집하는 게 문제다.

그 날은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며칠 후 끝나게 될 이인철의 거리에서전시에 꽂혀,

전시 끝나는 다음 날 인사동 거리 전을 하자고 고집한 것이다.

 

  그것도 작품설치는 누가 어떻게 할 것이며 관리는 어떻게 한다는 등 구체적인 대안도 없이,

이인철, 김진하, 최석태씨 등 가까이 있는 모든 분에게 반복했으니, 얼마나 짜증나겠는가?

 

  전시장은 텅텅 비고 거리에는 사람이 넘쳐나는 문제점의 대안을 찾고 싶은 궁여지책으로,

이인철의 ‘거리에서’전을 열면 행인들에게 오래된 추억을 소환할 것으로 판단했는데,

술자리에서 거론할 문제는 아니었다.

술 취한 자의 행복한 노래 쯤으로 여겼으면 좋으련만, 미운 살 박히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다.

 

술이 취해 최석태씨 도움으로 버스정류장까지 갔는데, 길거리에서 중국 통 이강군씨를 만나기도 했다.

 

  대학로에서 버스로 출발해 갈아 탄 것 까지는 좋았으나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일어나보니 목적지에서 두 구역이나 지났는데, 술김에 걸었으나 너무 무리했다.

그렇지 않아도 전시장 찾느라 많이 걸었는데, 며칠은 고생하게 되었다.

부산 같다 온 휴유증도 이틀 만에 간신히 가라앉히고 나갔는데 말이다

사람도 아닌 송장이 사람 행세하고 다니기가 너무 힘들다.

 

이 전시는 1126일까지 열리니 꼭 한 번 관람하시기 바란다.

 

사진, / 조문호

 

한국일보 2023.10.31

사진집 '혼자 가본 장항선 장터길' 발간한 정영신 작가

지난해 충남 천안 온양온천역 인근에 열린 풍물오일장. 역 앞으로 나오면 광장이 보이고, 광장 너머 장항선 고가철도 하단부에 장이 열린다.

스스로를 '장돌뱅이(보부상) 사진가'라 칭하는 이가 있다. 바로 37년째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오일장을 모두 기록한 정영신(65) 작가다. 전국 방방곡곡 안 가본 장터가 없지만, 그는 아직도 장터를 갈 때면 "연인을 만나러 가는 것"처럼 그립고 설렌다고 한다. 배낭에 카메라와 시집 한 권, 수첩과 필기도구, 생수 한 병 챙겨 놓고 훌쩍 떠나는 정 작가의 이번 여행지는 '장항선' 일대의 장터들이다.

 

장항선은 충남 천안시 천안역과 전북 익산시 익산역을 연결하는 철도 노선이다. 과거 일제의 군사적 목적과 물자 수탈을 위해 만들어진 노선이다. 근대화와 제국주의의 수탈을 상징하던 노선이지만, 이 길을 따라 생명력 넘치는 민중의 삶은 꽃피었다. 물건을 내다 파는 장꾼들과 가계를 꾸려나가는 사람들이 모여, 시골의 지역경제를 이루는 근간인 '장터'를 형성했다.

 

천안역에서 충남 서천군 장항역까지 사이 스물한 곳에서 오일장이 열린다. 천안역에는 거봉 포도로 유명한 '입장장' '성환장' 그리고 독립운동의 텃밭인 '아우내장'이 있고, 삽교역에는 곱창으로 유명한 '예산 삽교장'이 열린다. 홍성역에는 '홍성장' '갈산장', 대천역에는 '보령 대천장' 장항역에는 '서천 장항장' 등이 있다. 가까운 거리에 24시간 영업하는 편의점과, 세계의 온갖 공산품도 쉽게 구할 수 있는 대형마트가 익숙한 도시 사람들에게는 낯선 풍경이다.

 

충남 서천 특화시장에서 만난 장꾼 할매가 만 원을 받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최근 사진집 '혼자 가본 장항선 장터길(눈빛 발행)'을 출간한 정 작가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여정"으로 장항선 장터 여행을 택했다고 했다. 코로나19 이후 챗GPT니, 메타버스니 하는 최신 기술로 모두가 디지털 세계로 빠져 들어가는 현실에 불편함을 느꼈다. 후덕한 인정 넘치는 사람들이 그리웠다. 그 길로 장터가 열리는 충남 내포 지역으로 향했다.

 

"장터를 돌아다니다 보면 물건을 사고팔 때 묘한 신경전을 목격해요. 100원, 500원에 얼굴 표정이 달라지죠. 그런 찰나를 보는 게 재밌어서 사진을 찍어요."

 

그가 처음 장터를 찾은 건 1980년대 후반이다. 신춘문예에 낙선한 뒤 사람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것이 아닌가 회의감이 들었다. 그때 장터가 떠올랐다. 아무나 가도 되고, 사람 이야기가 흘러넘치며, 스스럼없이 친구가 될 수 있는 곳. 현대의 급속한 변화 속에 이제는 장터에도 사람이 없고 쓸쓸함마저 감돌지만, 그가 장꾼들을 만나며 채록한 이야기와 카메라로 담은 사진들로 인해 비로소 장터는 다시 생기를 얻는다.

 

책에는 장터 할매들이 펼친 난전의 농산물 사진을 비롯하여 장터에서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 농촌의 한적한 들판 풍경 등 느려서 아름다운 풍경들이 가득하다. 호박, 쪽파, 열무, 고추, 가지, 여주, 마늘, 배추, 도라지 등 오랫동안 사람들의 밥상을 책임졌던 작물들은 마트의 매끈하고 평균적인 맵씨와 대조적으로 울퉁불퉁 개성 있게 생겼다. 봄이면 산나물 하나를 사는 데도 할매들의 '봄나물 강의'가 덤이다. 예산역전장의 한 할매는 차마 버리지 못하고 썩은 부분을 도려낸 사과 두 알을 내놓았다. 장터에서는 모든 물건이 소중하고 낭비가 없다.

 

"시장의 물건들은 모양새도 다르고, 물과 흙에 따라 물건들도 제각기죠. 할머니들이 봄부터 씨 뿌려 물 주고 애써 기른 물건은 나물 하나, 호박 하나만 봐도 달라요. 느리게 관찰해야만 알 수 있는 거죠."

장터에서 볼 수 있는 온갖 풍경들.

책은 점점 사라지는 장터와 이 공간을 메운 장꾼들을 향한 연서다. 옛날에 보았던 풍각쟁이, 원숭이와 함께 나온 약장수의 익살스러운 농담에 환하게 웃는 사람들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장터를 찾을 때마다 "우리 죽으면 이 장도 없어지고 주차장 된다"는 말을 들으면서 정 작가는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번화했던 과거는 옛말이고, 장꾼 서너 사람만이 자리를 지키는 경우도 왕왕 있다. '나고 자란 고향을 지켜야 하는데 내가 죽으면 이 장은 누가 지키나' 하는 마음으로 늙은 몸을 이끌고 꿋꿋하게 장꾼들은 가져온 물건을 내어놓는다.

 

"어르신들이 장에 나오는 건 세상을 만나러 오는 거래요. 장사는 '일'이 아니라 '삶'이고, 나를 살리는 일이라고요. 지금 장항선은 느린 열차가 달리지만, 5년 후에는 KTX처럼 고속 열차가 달릴 거래요. 장항선이 없어지기 전에 이 장터들에 가서 이야기도 나눠보면서 시골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는 건 어떨까요."

 

1987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정영신 작가는 한국의 시골 장터를 기록해오고 있다.
혼자 가본 장항선 장터길 / 정영신 지음 / 눈빛 발행 / 224쪽 / 2만5,000원

 이혜미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열린 방 an open room

권인경/ KWONINKYUNG / 權仁卿 / painting 

2023_1027 2023_1225

권인경 _ 열린 창 1_ 한지에 고서꼴라쥬 ,수묵 , 아크릴채색 _135X197cm_2023

 

권인경 홈페이지_www.inkyungkwon.com

페이스북_www.facebook.com/inkyung.kwon.5

인스타그램_@artist_inkyung

 

초대일시 / 2023_1027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30am~06:00pm

 

갤러리밈

GALLERY MEME

서울 종로구 인사동5길 엠보이드 5,6

Tel. +82.(0)2.733.8877

www.gallerymeme.com

 

열린 방 이번 전시에서 권인경은 방이라는 공간에 집중한다. 방은 개인의 연장, 또는 확장으로 간주된다. 작가인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을 말했을 때, 그곳은 자폐적인 공간이기보다는 세계로 열린 일종의 플랫폼 같은 곳이었을 것이다. 예술은 열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열린다는 것은 그 전에 닫힘을 전제한다. 자기가 없다면 그저 세계에 흡수될 것이고, 자기만 있다면 세계는 그저 자신을 비추는 거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두 극단은 모두 문제적이다. 살아있는 생명은 세포막의 차원에서부터 닫힘과 열림이 유동적이다. 그래야 그가 던져진 세계 속에서 잘 살아갈 수 있다. '개인의 방'은 심리적인 차원이 강조된다. 작가는 이번 전시의 작품들에 대해 '각 인간들의 최소 안식 공간인 방에서 일어나는 일들, 심리적 상황, 떠오르는 상념들, 수집하는 대상들'을 다룬다고 밝힌다. 자기만의 공간에 갇혀있는 지인에서 출발했지만, 이러한 난관은 정도의 차이일 뿐 현대인이 겪고 있는 보편적 상황이다, 같은 외부 풍경이라도 그것을 바라보는 다른 개인이 있으며, 작품에서는 그런 개인의 공간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다른 위치에 있는 개인의 관점이 평등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 문제다. 원근법적 세계는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강력한 지배적 관점이 고정되는 것이 문제다. 장기적으로 고정된 체계는 궁극적으로는 변화하지만, 개인의 시간은 너무 짧다는 것이 문제다. 권인경의 작품이 다소간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시점을 운용하는 것은 지배적 관점에 대한 문제의식의 발로다. 장면 또는 풍경은 건축적 구조를 따라 펼쳐지지만, 그 구조들이 실제 건축처럼 합리적이지는 않다. 공간 사이에 언제든 새로운 공간이 끼어들 수 있고 또 사라질 수 있다. 한 화면에 많은 공간이 연결되어 있는 촘촘하게 구획된 구조다. 합리적 공간의 선형적 이동에 따른 단일한 이야기가 아니라 다양한 이야기가 다성(多聲)적으로 들려온다. 현대인에게 분리된 독립 공간은 누구나 원하는 물리적, 심리적 자원이다.

 

권인경_너의 마음1_한지에 고서꼴라쥬,수묵,아크릴채색_136X176cm_2023
권인경_홀로 앉은 기억1_한지에 고서꼴라쥬,수묵,아크릴채색_136X176cm_2023
권인경_서로 다른 기억들1_한지에 수묵,아크릴채색_194X130cm_2023
권인경_떠오른 기억들4_한지에 고서꼴라쥬,수묵,아크릴채색_72X140cm_2023
권인경_떠오른 기억들1_옻칠지에 수묵,꼴라쥬,아크릴채색_53X73cm_2023
권인경 _ 떠오른 기억들2_ 한지에 고서 꼴라쥬 ,수묵 ,아크릴채색 _47.5X79cm_2023
권인경 _ 떠오른 기억들3_ 옻칠지에 꼴라쥬 ,수묵 ,아크릴채색 _47X90cm_2023

방 안에 있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외부적 사회관계로부터 탈주하는 안도감을 느낀다. 밖으로 나갈 수도 있지만, 그것은 내 선택이지 강제가 아니다. 작품에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방의 풍경들은 사람의 흔적을 보여준다. 심리적 공간이라고 해서 '단순한 흔적'이어선 안되고 '기록으로 서로 다른 그곳들을' 남기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그것은 개인의 기억이 스며있는 현대적인 사물 뿐 아니라, 고서를 꼴라주하는 형식에서 나타난다. 기억은 현재에 국한되지 않고 시간을 넘나든다. 작품 속 가구나 건축적 구조 등에 주로 꼴라주된 고서는 '말이 내뱉어진 순간'을 고착하는 것이며, '언어가 삶에 묻어'있음을 강조한다. 고서에 적힌 언어라서 고풍스럽지만, 그 또한 지금의 상용어처럼 한 시대의 지배적 언어였을 것이며, 주체를 구성했을 것이다. 인류학이나 언어학이 밝힌 바에 의하면. 그 사회의 지배적 언어를 통해서 인간은 비로소 인간이 된다. 하지만 인간은 대상/기호, 기표/기의가 분리되는 언어 자체의 분열적 조건에 당면한다. '환자'는 이 조건에 보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자 일 따름이다. 속해야 하지만, 완전히 속하기 싫은 애증에 찬 구조이다. 정신분석학을 비롯하여 모든 종류의 구조적 이론에 저항하는 저자 펠릭스 가타리의 저서 [카오스모제]에 의하면, 상징적 질서는 결정론적인 납 망토처럼 죽음의 운명처럼 무형적 세계를 짓누른다. 그에 의하면 말(발화)은 법의 차원, 즉 사실, 동작, 감정의 통제 차원에 고정된 문자적인 기호학의 지배 아래 통용될 때 공허해진다. 가타리는 정신분석학을 염두에 둔다. 마단 사럽이 해석하는 라깡의 심리학 이론에 의하면 상징계를 통해 주체가 구성되므로, 주체가 태어나기도 전에 담론에 의해 그에게 할당되는 장소가 있다. 상징계가 자율적인 구조가 될 때 인간의 자리는 과연 있을 것인가. 이러한 결정론으로부터 인간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방이라는 구조적 공간을 개인과 비유하면서 종횡무진 연결망을 구축하는 것은 구조를 인정하면서도 넘어서려는 방식이다.

 

권인경_그때의 기억1_한지에 고서꼴라쥬,수묵,아크릴채색_53.5X107.5cm_2023
권인경 _ 서로 다른 기억들 2_ 옻칠지에 고서꼴라쥬 , 수묵 , 아크릴채색 _142X;73cm_2023
권인경 _ 너와 나의 이야기 1_ 한지에 고서꼴라쥬 ,수묵 ,아크릴채색 _197X135cm_2023
권인경 _ 붉은 기억 _ 한지에 고서꼴라쥬 ,수묵 ,아크릴채색 _176X136cm_2023
권인경 _ 마주한 그날2_ 한지에 고서꼴라쥬 , 수묵 , 아크릴채색 _72X;50cm_2023
권인경 _ 마주한 그날 1_ 한지에 고서꼴라쥬 ,수묵 ,아크릴채색 _35.5X55.6cm_2023

권인경은 다양한 형식을 실험하고 있으며, 그렇다고 형식주의는 아니고 궁극적으로는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삶에 대한 서사는 인간이 등장해야 자연스럽지만, 작품에는 정작 인간이 없고, 간혹 뜬금없이 등장하는 의자는 인간의, 요컨대 부재함으로서 현존하는 자리를 상징한다. 인간관계로부터 출발하는 현대적 병이 있지만, 작가이기에 자기 안에만 머물 수도 없다. 방에 집중하게 된 계기는 가까운 이가 어릴 적 외상후 스트레스 증상을 앓았고, 이후 오지랖 넓은 한국 사회 특유의 집단 폭력을 겪으면서 외부와 단절된 상황과 관련된다. 타인과의 언어적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그는 방에서 잘 나오지 않지만, 문을 조금은 열어 놓는다고 한다. 세상과의 조그만 통로의 확보이다. 하지만 정상/이상의 관계는 유동적이다. 정도의 문제일 뿐 보통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다. 비우호적인 외부로부터 보호받으려는 본능이 개인으로 하여금 점점 오래 방에 머물게 한다. '스마트'한 세상이 열리면서 나가지 않는(않아도 되는) 경향은 강화된다. 지난 몇 년간 코로나 시기를 겪으면서 '대면' 관계는 상대화된다. 대면은 이제 당연한 것이 아니라 선택지가 된 것이다. 세계로 열리는 문이나 창이라는 비유는 물리적인 만큼이나 가상적이다. 하지만 정보혁명의 시대에는 현실을 대신하는 코드들의 세계에 갇혀 있기 십상이다. 방의 역할을 강화되고 있다. 개인공간이 아닌 상업시설에도 'OO'이 많지 않은가. 대부분 일탈적인 'OO'''이라는 공간 특유의 비가시성에 대한 안도감 때문일 것이다. 권인경의 방들은 자족적이지 않고 계속되는 연결망이 특징적이다. 내부와 외부가 뫼비우스 띠처럼 연결되고 이러한 변화무쌍한 공간관은 이와 연동되는 시간관과 연결된다.

 

권인경 _ 그날의 기억3_ 한지에 고서꼴라쥬 , 수묵 ,아크릴채색 _26.2X18cm_2023
권인경 _ 그날의 기억4_ 장지에 고서꼴라쥬 ,수묵 , 아크릴채색 _26.2X18cm_2023
권인경 _ 그날의 기억 5_ 장지에 고서꼴라쥬 ,수묵 ,아크릴채색 _26.2X18cm_2023
권인경 _ 그날의 기억6_ 장지에 고서꼴라쥬 ,수묵 ,아크릴채색 _26.2X18cm_2023
권인경 _ 마주한 그날 4_ 고서에 수묵 _15.5X24cm_2023
권인경 _ 마주한 그날5_ 고서에 수묵 _15.5X24cm_2023

  조너선 스미스는 [자리잡기 to take place]에서 명사적인 성스러운 공간(sacred space) 보다는 자리(plce)에 대한 사회적이고 동사적인 이해를 강조했다. 저자에 의하면 공간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의 투사에 의해 창조된 것이다. 선험적 공간이 아닌 찾아내야 하는 자리는 시간성을 중시한다. 그리고 시간은 무엇보다도 서사이다. 이번 전시에 포함된 기억 시리즈에서 '기억'이라는 키워드는 시간과 관련된 범주이다.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는 공간들은 관객에게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 속에 많이 쟁여져 있는 시공간만큼이나 빠른 보폭을 요구한다. 국면의 빠른 전환은 대도시를 통과할 때의 경쾌한 느낌을 준다. 대도시에서 촘촘하게 자리하는 방들은 철저히 계층적이다. 가난한 1인 가구의 허름한 주거지가 된 고시원부터 시작해서, 보다 보편적으로는 아파트의 방들이나 오피스텔이 그렇고.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초고층 펜트하우스까지 공간은 가장 값비싼 물적 자원이다. 방은 초라하든 화려하든 개인의 심리적 연장이자 보호 역할을 맡는다. 우리나 공동체에 대한 기대치가 있지만, 현대사회는 근본적으로 인간과 인간을 분리시킨다. 인간은 생산/소비적 체계로 관계를 맺는다. 이러한 구조가 내면화 되어 개인은 필사적으로 자기 영역을 확보하려 한다.  이선영

 

The City

안은정展 / AHNEUNJUNG / 安垠靜 / painting

2023_1025 ▶ 2023_1030 / 화요일 휴관

안은정_The City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30cm_2023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 화요일 휴관

 

갤러리 인사아트

GALLERY INSAART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6

(관훈동 119번지) 1층, B1

Tel. +82.(0)2.734.1333

www.galleryinsaart.com

도시의 생명성을 표현 ● 현대 문명의 거대한 도시는 아름답고 화려하며, 마음의 고향을 상실한 현대인들에게 삶을 의욕적으로 살아가게 하는 동력원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날의 도시는 다양하면서도 빠르게 변화하는 예측불허의 상황 속에서 현실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며,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많은 사람의 호락호락하지 않은 삶의 이야기들로 애잔하다. 그뿐만 아니라 한편으로는 비인간적이며, 생존하기 위한 투쟁과 질투로 점철된 장소이기에 오히려 감각적인 아름다움의 표현을 제약하기도 한다.

 

안은정_The City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30cm_2023

안은정_The City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30cm_2023

작가 안은정의 작품은 주로 도시를 소재로 한 것으로, 도시 속의 사람들을 그리지는 않지만 도시가 지닌 다양한 세계와 교감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작업은 도시를 그리기보다는 도시를 통해 인간의 삶과 죽음 그리고 고뇌와 고통, 생존의 치열함, 희비의 엇갈림 등을 무언의 메시지처럼 화면 안에 담아내는 것이며,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이미지로 조형화하는 것이다. 작가는 체코 여행에서 아름다운 도시의 모습을 보았는데, 얼마 후에 그 자리를 떠난 후로 다른 누군가가 그 자리에서 자신이 봤던 그 모습을 다른 생각과 다른 느낌으로 바라볼 수 있음을 상상하게 되었다. 시간의 흐름 속에 있는 도시를 통해 진실한 참 세계를 생각하게 되었으며, 삶은 마치 신기루처럼 일시적일 뿐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작가는 도시의 외적인 현실보다는 내재적인 실재를 존중하며 회색의 도시 속에서 더 인간적인 것을 순수하게 표현하려 노력해왔다. 도시의 시공간 속에 공존하는 진실한 실체를 진지하게 모색하면서 오늘을 사는 현대인의 삶과 사회 빈곤층의 삶 등 다양한 실체들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도시와 관련한 심도 있는 사색 및 미적 가치와 더불어 다양한 도시의 모습을 조형적으로 표현하면서 우리 시대의 고독한 현대인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고자 한다.

 

안은정_The City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91cm_2023

안은정_The City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91cm_2023

작가는 이처럼 도시 속의 실체를 예리하게 직시하고 이를 조형화하려고 노력을 해왔다. 현대 문명을 압축한 도시를 표현하기 위해 화면을 입체적으로 나누었으며, 여기에 더 작은 면들을 구성하거나 불균형의 큰 면에 원색 계열의 강도 있는 색을 구사하여 거대한 도시의 모습을 이미지화하였다. 희망과 위로, 아름다운 도시의 이미지, 화려하면서도 진정성이 스며있는 선명한 색과 명료한 직선 등이 절묘하게 결합하여 조화를 이룬다. 특히 도시를 구성하는 다양하면서도 강렬한 색은 기하학적인 도시 이미지의 구성과 하나가 되며 아름다운 통일성을 구축한다. 사람들에 의해 건설된 도시는 사람들의 꿈과 욕망이 담긴 결정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 친화적인 시골이 아닌, 욕망이 내재한 도시의 모습을 조형화하기는 쉽지 않다. 이처럼 작가의 작업은 사람에 의해 구축된 거대한 회색 도시에 새로운 희망과 생명력을 불어넣는 독특한 것이다.

 

안은정_The City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60.6cm_2023

작가 안은정의 작품에는 이처럼 균형감과 통일성이 내재한다. 작가는 다양함이 공존하는 도시를 캔버스에 담아내기 위하여 일정한 형태를 지양하고 도시의 이미지를 그리되, 변형적이면서도 기하학적인 특성들을 활용하여 다양한 이미지를 펼쳐 보이면서도 통일감을 구축하는 독특한 작업을 펼친다. 그래서 작품은 독특한 예술적인 가치와 의미를 지니며, 예술론적인 혹은 미학적인 분석 이전에 세련되고 기교가 뛰어나고 숙련되어 시지각적인 즐거움을 준다. 이러한 시지각적인 즐거움은 어두운 밑 색에서부터의 선명하고도 강렬한 색채와 기하학적이면서도 변칙적인 선과 특이한 공간 구성 등을 통해 펼쳐지는 창의성, 독창성, 실험성, 현대적 감각의 예술성, 수준 높은 기교 등이 한데 어우러져 형성된 것이다. 이는 현대적 감성과 우리 고유의 조형적 사고와 감흥, 문화적 이질성과 동질성 등이 교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다원주의적 하모니즘(Pluralistic harmonism)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작가의 작품에 내재한 이러한 조형성은 예술적인 끼와 감성뿐만 아니라 새로운 조형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과 열정적 노력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안은정_The City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60.6cm_2023

안은정_The City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60.6cm_2023

작가의 창작은 주지하다시피 주로 회색의 도시와 연관된 삶과 예술에서의 실체적 조형성에 대한 고민이며, 이를 토대로 사람과 도시, 사물의 본질을 예술적으로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작가는 도시의 이미지를 기하학적으로 새롭게 조합하고 구성함으로써 조형 영역의 새로운 개척과 도시 미학 및 정신성 구현 등에 관심을 쏟아 독특한 도시 조형예술의 장르를 풍요롭게 하였다. 이러한 작품들은 도시 조형이라는 한국 현대 미술의 새로운 영역의 개척과 정체성의 구현이라는 측면에서 의의가 있으며, 날이 갈수록 회색의 이미지로 변해가는 숨 막히는 현대 도시 사회의 갈증을 덜어주는 청량제 같은 역할을 한다. 게오르크 루카치는 현대미술에 있어서 새로운 형식을 찾고자 한 수많은 시도가 비인간화적이며 이슈를 담은 실험에 그쳤다고 푸념하기도 하였는데, 작가 안은정의 작품에서는 이러한 루카치의 푸념을 넘어선 미적 생명력이 꿈틀거린다. 그러기에 중후하면서도 잘 구성된 형태미 속에서 드러나는 깊이감과 안정감은 미술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도 충분히 감지할 수 있을 만하다.

 

안은정_The City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60.6cm_2023

안은정_The City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60.6cm_2023

화면 속의, 파편 같은 조각조각의 기하학적 형상과 선명하면서도 아름다운 색채는 회색 도시 속의 인간성 회복을 지향하는 호소인 듯하다. 발터 벤야민(W. Benjamin)은 "무정형의 파편만큼 예술의 상징과 조형적 상징 그리고 유기적·총체적 형상과 격렬하게 대비를 이루는 것은 없다."라고 현대 예술의 양상을 예견했는데, 새로운 조형성을 추구하는 알레고리를 통해 유기적·총체적 이미지로 격렬하게 혹은 파편적으로 평면 안에 형성된 작가의 작품 속에서 후기 모더니즘적인 요소들을 확인할 수 있다. ■ 장준석

 

안은정_The City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60.6cm_2023

Expression of City's Vitality ● The huge cities of modern civilization are beautiful and colorful, and at the same time, they are also a source of motivation for modern people who have lost their spiritual home to live their lives with motivation. On the other hand, today's cities are a source of vague fears not only about reality but also about the future in a diverse, rapidly changing and unpredictable situation. A detailed observation of the city's interior evokes sadness through the stories of countless people's difficult lives. The city is also inhumane and a place filled with struggle for survival and jealousy, so the expression of sensuous beauty may be restricted. ● The main subject of Artist Ahn Eunjeong's work is the city. Although people in the city do not appear in her works, she communicates with the diverse world of the city. In other words, rather than painting a city, she captures human life and death, agony and pain, the intensity of survival, and the joys and sorrows of humans through the city, like a silent message, and molds them into new images that we have never experienced before. She came to imagine that someone else might later see the beautiful city she encountered on her trip to the Czech Republic with different thoughts and feelings. She came to think about the true world through the city in the flow of time, and realized that life is temporary, like a mirage, and cannot last forever. The artist has tried to express more purely human things in the gray city, respecting the inner reality rather than the external reality of the city. She seriously explored the true realities that coexist in the city's time and space, sublimating various realities such as the lives of today's modern people and the poor in society into art. She seeks to provide comfort and hope to the lonely modern people of our time by figuratively expressing various aspects of the city along with in-depth contemplative and aesthetic values related to the city. ● The artist, in this way, has keenly looked at the reality of the city and has tried to formulate it. She divided the screen three-dimensionally to express a city in which modern civilization is compressed, and imaged the appearance of a huge city through the composition of smaller surfaces or the strong use of primary colors on an unbalanced large surface. The exquisite combination of hope and comfort, images of a beautiful city, vivid colors that are gorgeous yet imbued with sincerity, and clear straight lines are in perfect harmony. In particular, the diverse yet intense colors that make up the city become one with the geometric composition of the city image, completing a beautiful unity. The city built by people is the culmination of their dreams and desires. It is not easy to model the appearance of a city with inherent desires, unlike the nature-friendly countryside. In this way, her work is unique in that it breathes new hope and vitality into the huge gray city built by people. ● Artist Ahn Eunjeong's work has a sense of balance and unity. She carries out special work to capture a city where diversity coexists on canvas, where a certain form is avoided and the image of the city is drawn, but a sense of unity is created while unfolding various images by utilizing transformative and geometric characteristics. Therefore, her works have unique artistic value and meaning, and, before artistic or aesthetic analysis, are refined, skillful, and skilled, giving visuoperceptual pleasure. This visuoperceptual pleasure is formed by the combination of creativity, originality, experimentation, modern artistry, and high-level technique unfolding through vivid and intense colors from dark undertones, geometric yet irregular lines, and unusual spatial composition. This is also due to pluralistic harmonism that cleverly harmonizes modern sensibility, our own formative thinking and inspiration, and cultural heterogeneity and homogeneity. This formativeness inherent in the artist's work appears to be due not only to his artistic talent and sensibility, but also to his constant desire and passionate effort for new formativeness. ● As mentioned earlier, the artist's creation is mainly concerned with the tangible formativeness of life and art related to the gray city, and based on this, she artistically embodies the essence of people, cities, and objects. The artist, who was interested in pioneering new areas of formative art and realizing urban aesthetics and spirituality, enriched the unique genre of urban formative art by newly combining and composing urban images geometrically. These works are significant in terms of pioneering a new area of Korean contemporary art called urban formative art and realizing its identity and act like a refreshing drink that relieves the thirst caused by the suffocating modern urban society that is turning into a gray image day by day. Gyorgy Lukacs lamented that numerous attempts to find new forms in modern art were dehumanizing and ended up being issue-laden experiments. Ahn Eunjeong's work shows an aesthetic vitality that goes beyond Lukacs' complaints. Therefore, the sense of depth and stability in the profound yet well-constructed beauty of form is clearly revealed in a way that even ordinary people outside of art can perceive. ● The geometric shapes and vivid yet beautiful colors of the fragment-like pieces in the picture seem to be a call for the restoration of humanity in the gray city. Walter Benjamin predicted the pattern of modern art when he said, "Nothing contrasts more violently with the symbols and plastic symbols of art and with organic and total forms than amorphous fragments." Through allegory, which pursues new formativeness, we can identify elements of late modernism in the artist's works, which are violently or fragmentarily formed on a two-dimensional surface using organic and holistic images. ■ Jang Junseok

한국현대목판화 발굴 프로젝트 2-

이인철 1984-1994: 거리에서

이인철/ LEEINCHEOL / 李仁澈 / printing

2023_1018 2023_1030

이인철 _ 신혼의 이씨 _ 목판채색 _52&times;40cm_1992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4-1 4

Tel.+82.(0)2.722.7760

 

이인철의 1980년대 목판화 - 거리에서 보낸 한 철 1. 알만한 사람은 알듯 이인철은 부산수산대학 출신이다. 그림판에 넘치는 그 흔하고 뻔한 미대 출신이 아니다. 그런데도 대학을 졸업하고 무작정 상경해서 화가가 되었다. 서울에서 처음 만난 일군의 화가들이 민중미술 운동의 중심이 되는 작가들이었다. 서울미술공동체라는 미술운동 단체 멤버들이었고, 이인철도 창립회원으로 가입해서 함께 활동을 시작한다. 1984년경이다. 이어서 1985년 전국단위 문화운동 단체인 민족미술협회가 창립되면서 이인철도 자연스레 민미협 회원이 된다. 이는 시위하는 바가 크다. 미술계와 별 인연이 없는 사람이 현실 비판적인 미술운동에 자연스럽게 몸을 담근다는 거, 그의 기질 혹은 사유에 사회나 역사에 대해 곧추선 의식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이는 근 4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이인철 작업을 관통하는 주제 의식의 뼈대이기도 하다. 역사적 사실, 동시대 현실, 그리고 미래에의 전망을 통시적으로 통찰하면서도 동시에 당대 현실에 미술로 개입하고 실천하는 행동 말이다. 1980년대의 저항 이후 지금까지 제도권 화단의 아웃사이더로 표류하면서도 이인철은 초지일관 현실과의 접점을 찾는 내용의 작업을 지속해왔다. 상업성과는 거리가 먼 괴롭고도 지난한 과정이었다. 80년에는 목판화로 9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컴퓨터그래픽으로 스스로를 더 고립시키며 작업해 왔다. 물론 그러면 그럴수록 그는 제도권 화단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했다. 리얼리스트로서 미학적 이념을 현실에 정착시키려는 작가 의식은 현실과의 불화를 동반할 수밖에 없는 범, 그 지난하고도 외로운 과정이 자신의 미학적 입장을 작업에 정착시키는 것이기에. 이번 전시와 이 도록은 그런 이인철의 활동 중에서 초기인 1980년대 부터 90년대 초반까지의 목(고무)판화 작업으로 구성된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 수도 있는 기간이다. 그의 서울미술공동체민족미술협회회원 시절의 주요 장르다. 당시 목판화는 민중미술의 핵심으로 대 사회적 메시지와 복수미술로서의 가능성에 크게 고무된 장르였다. 1985년부터 시작된 이인철의 목(고무)판화는 1990년대 초반까지 대략 10여년간 진행되었다. 이 시기 이인철은 한국 판화사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킬만한 독자적 양식과 기법의 작업을 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부터의 디지털 작업으로의 전환은 이인철의 판화작업을 이후 좀처럼 볼 수 없게 만들었다. 그렇게 시간은 30여 년이 흐르고 이인철의 판화작업들도 우리들의 뇌리에서 상당 부분 잊혀졌다. 아쉬운 일이다. 그래서 본 나무아트 프로그램인 한국현대목판화 발굴 프로젝트의 두 번째 작가로 이인철의 목판화를 조망해보고자 한다.

 

이인철 _ 거부의 몸짓&nbsp; 2_ 판화에 채색 _45&times;57cm_1985

2. 19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진행된 이인철의 목판화와 리놀륨(Linoleum)판화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철저하게 사진적 몽타주를 극사실로 재현한 판각법과, 외곽선에 의한 형태로 인물의 성격을 드러낸 바람 부는 날, 1985」「짤라 버릴까부다, 1986」「마누라 나도, 1987」「갈증, 1988」「어떤 수인, 1988등과 같은 일련의 형식이 있다. 이런 위트·풍자·해학 등으로 군부독재 시기를 비틀며 비판한 내용의 선각 작업이 대략 1985~1988년경 먼저 시도된 형식이고, 동시대를 응시하면서 불의한 권력에 의한 모순을 정면으로 담아낸 증언이자 기록의 정밀한 판각법이 86~90년대 초반까지 이어지는 경향이다. 이 글에서는 이인철 특유의 양식이자 대표작으로 여겨지는 정교한 형식의 판화를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하겠다. 먼저 눈에 띄는 건 역시 과도기적 특징의 작업이면서도 반5·반미·반제를 선명한 콘트라스트 형식으로 도상화한 거부의 몸짓, 1985」「스포츠 공화국의 상과 하, 1986」「자유의 여신상, 1986」「안녕히 가세요, 1987」「반전 반핵, 1989등과 같은 작품이다. 작가가 의도한 메시지와 80년대 민중미술에서 두드러지는 대하서사적 시각 문법이 선명하다.

 

이인철 _ 역사의 기록 _ 판화 _51&times;33cm_1989

이어서 좀 더 정교해진 칼맛으로 형상화한 동시대 현실 풍경. 80~90년대 거리에서 마주치는 현상들에 대한 일상적 서사성이 두드러지는 작품들이 이어진다. 머물지 못하는 사람들, 1985」「불꽃으로 다시 살아나, 1989」「죽음의 변주곡, 1989」「역사의 기록, 1989」「젊은 날의 초상-1, 1991」「체포, 1991」「죽음, 죽음, 죽음, 1991」「젊은 날의 초상-2, 1992등과 같은 동시대 민중의 삶의 모습이나, 시위현장과 거기서 산화한 젊은이들에 대한 진중한 슬픔의 묘사가 눈에 띈다.

 

이인철_젊은날의 초상-1_판화_61&times;125cm_1991

특히 이인철의 판화 중 가장 큰 대작인 젊은 날의 초상-1」「젊은 날의 초상-2는 한국 리얼리즘 목판화의 백미라고 여겨진다. 시위 현장에서 백골단과 젊은 육체를 부딪치며 전투를 벌이는 청년들과, 이어서 그 청년 중 누군가의 상여가 거리를 행진하는 장면이다. 운구하는 대학생들의 슬프고도 엄숙한 표정에서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의 반독재 투쟁 풍경이 전형화되어 드러난다. 많은 대학생과 노동자들의 격렬한 전투와 더불어 고문·분신·투신 정국에서 젊은 꽃송이들의 스러짐은, 결국 그들이 싸웠던 거리에 숭고하고도 장엄한 비극적 장면을 살아남은 우리에게 남겼다. 불의에 '저항'하다가 그 힘에 굴복하지 않은 '죽음'은 장엄하다. 박종철이 그랬고, 이한열도 그랬다. 뿐인가 숱한 민주열사와 노동자들의 외침과 죽음 또한 그랬다. 이인철이 거리에서 취재한 이 두 점의 작품이 어떤 최루성 장치 없이 사실만을 건조하게 제시하면서도 우리에게 먹먹한 가슴의 통증을 남기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인철_젊은날의 초상-2_판화_64&times;100cm_1991

이인철은 바로 이 두 장면을 통해서 1980~1990년대 초반의 시대성을 정교하게 반영해냈다. 단단하고 빈틈없이 정밀한 형태감. 목판의 나뭇결과 반대 방향으로 흐르는 칼의 운행(등장인물의 얼굴과 의복 부분)은 마치 한지 위에 얹힌 세필의 먹 필선이나 동판화 에칭의 그것처럼 빈틈없이 정갈하다. 동시에 단단한 형태감과 유연한 칼의 운행은 밀도 높은 화면을 견인해냈다. 목판화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서사적 내용과 기술과 숙련성이 두루 엮여서 수준 높은 미적 전형성을 확보한 리얼리즘의 수작이라 하겠다.

 

이인철_김씨_판화_50&times;32cm_1991

이런 서사성과는 달리 서정성을 담지한 리얼리스틱한 일군의 작품들도 중요하다. 오월 광주의 회한을 격렬한 감정과 회한으로 표현해낸 죽음의 변주곡, 1989」「마침내 망월동에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한다, 1991, 노동자와 도시 서민의 아픔과 슬픔의 소외된 일상성을 포착한 우리들의 일상, 1987」「산성비가 내린다, 1989」「보이지 않는 손, 1990」「김씨, 1991」「동트는 새벽에, 1990」「신혼의 이씨, 1992」「가족, 1992」「거리풍경, 1991」「술집 풍경, 1992」「아침, 1992등의 다소 건조한 서민들의 계급적 서정으로 연결된다. 모두 이웃들의 모습을 연민으로 바라본 시선이다. 그러면서도 전체적으로는 감정적 입장(주관적 표현성)을 절제하면서 대상과의 일정한 거리두기의 객관적 시각을 유지하려는 의도가 도드라진 작업들이다. 그중에서도 풍경인 마침내 망월동에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한다와 인물인 김씨, 1991」「신혼의 이씨, 1992가 주목된다. 전자는 작가의 내적인 분노와 슬픔이 격렬한 표현적 풍경으로 상징화된 점이, 후자는 노동자의 실존적 고민이 은밀하고 고요하게 배어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상호 대비되면서도 동시에 돋보인다. 그런데 냉정하고도 차갑게 대상과 일정한 거리두기를 유지하는 관찰자 시점에서 극사실적인 기법을 구사하는 이인철의 형식에서, 이렇듯 작품을 보는 이의 감정을 자극하는 서정성이 도드라지는 점이 놀랍다. 서사적인 장면이든 서정적인 화면이든 가리지 않고 이인철의 화면에서는 사람 냄새가 난다는 뜻이다. 그 이유가 뭘까. 1980년대라는 시대를 함께 겪은 정서 때문일까. 아니면 그와 나의 세계에 대한 개별적 인식이나 감성이 어떤 공통의 분모를 가져서일까. 단언하기 어렵지만 유추해본다면, 그것은 아마도 생래적으로 폭력적 현상에 대한 거부라는 본능의 바탕에, 저항에의 의지와 현실 인식이 더해서였을 것이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당시 민중미술이나 비판적 형상성을 추구하던 작가들 상당수가 그랬다. 아니, 19876월 혁명에 임하던 시민 거의 모두의 태도가 그랬다. 그런 각자의 뜨거운 경험과 겹치는 이인철의 도상에서, 인간적 감정을 함께 공유하게 되는 것이리라. 그러니까 이인철의 이런 서정적 형상성은, 그림의 단순한 소재를 넘어서서 타자와 공유 가능한 정서적 지점을 포착해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홀로 격리된 골방이 아닌 시민과 동지들이 "거리에서" 함께 보고 겪었던 지점, 현장을 즉물적으로 겪었던 체험을 이인철 특유의 목판화 형식으로 진술함으로 확보하게 되는 전형성으로 말이다. 이는 이인철의 목판화가 90년대 이후 그의 디지털 회화와 조형적 문법이나 양식이 아닌 태도로서 구별되는 이유이기도 하다(물론 이 말은 그의 디지털 회화와 비교하려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이인철의 디지털 회화는 또 그 나름대로 독립적 장르적 특성과 장점을 갖고 있으니 말이다. 오해 없으시길...).

 

이인철_마침내 망월동에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한다._판화_57&times;43cm_1991

3. 리놀륨(Linoleum)은 정교한 칼의 운행이 유효한 재료다. 목판에 비하자면 상대적으로 편한 판(Plate)의 유연한 질료감 때문이다. 이인철은 그런 고무판의 속성을 잘 활용했다. 그러나 이인철은 단단하고 다소 거친 목판화에서도 그 정교한 호흡을 놓치지 않았다. 이인철 판화의 독자적 형식을 산출한 이 재료와 칼의 구사 기법은, 공학자나 건축설계자의 그것처럼, 혹은 한땀 한땀 뜨는 수예처럼 한칼 한칼의 운행이 꼼꼼하고 정밀하게 계산된 결과다. 기계적으로 보일 만큼 절제를 동반한 형태감과, 칼의 구사와, 제판 기법은 이인철의 체질적 특성과 맞는 것이기도 하다.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과 그것을 판면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개인적이고 주관적 표현성보다는, 마주한 현상을 있는 그대로의 객관적인 대상성으로 분석하고 서술하려는 리얼리스트의 판각법에 잘 어울리는 장르란 뜻이다. 또 시각적인 맛과 효과를 유도하는 이인철의 계산된 칼질의 매력(꼼꼼한 장인성)에 바탕한 것이라, 이는 기존 민중미술의 거칠고도 속도감 있는 기법이나 언술들과는 다른 매력을 동반한다. 그리고 이런 특징들은 이인철이 90년대 중반 판화와 결별하고 극한적인 장인성과 디테일을 요하는 3D 회화로 그의 미디어를 이주하는 체질적 원인도 된다. 리놀륨과 목판화는 기본적으로 밑그림-판각-프린팅이라는 과정으로 구성된다. 밑그림에서는 작품의 내용·화면구성·언어 등이 결정되고, 판각에서는 작가의 체질·표현법·어법 등이 드러난다. 그리고 프린팅에서는 잉킹과 찍기라는 균질한 복수성의 기계적 프로세스가 반복된다. 한마디로 회화적 감성과 몸을 통한 노동, 그리고 규칙적이고도 정교한 장인성이 필요한 장르라는 의미다. 이인철의 작업은 이 셋 모두 담기에 적합한 양식과 주제를 띈 조형적 특성을 가졌다. 당연히 자신의 판화 감수성과 심미적 체중이 판 위에 실렸기에 이인철 특유의 맛이 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지금 다시 돌아보면, 이인철의 판화는 1980년대 민중미술 목판화의 다소 단순한 형식적 흐름에서 이탈해서 독자적인 표현법의 한 지점을 점유했다고 여겨진다. 이는 민중미술 목판화사에서 귀한 실례다. 당시 민중미술 진영에서 판화가로서 이인철은 나름의 이런 독자성을 확보했던 상태라, 그의 이 반전에 가까운 디지털로의 궤도 변경은 신선한 충격으로 동료 작가들에게 회자 되곤 했다. 그만큼 이인철 판화의 정밀한 칼맛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 많은 이들에게 이미 인정받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인철은 과감하게 그 장르에 이별을 고하고, 90년대 중반 민중 미술계에서는 전인미답이었던 첨단 3D 디지털 회화(이자 디지털 판화)의 생소한 장르로 이주한 것이었다. 새로운 장르로의 선택과 전회는 물론 작가로선 긍정적인 도전이다. 그러나 한편 그 길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위험한 장정이기도 했다. 당시로서는 물과 식량, 지도나 나침반조차 없이 길 없는 픽셀의 사막에 무모하게 진입한 것이니까. 그게 30여 년 전이다. 당시 첨단이었던 3D 프로그램들은 이제 보편적인 일상적 기술이 되었고, 또 많은 사람이 구사하는 도구가 되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서도 이인철의 3D 회화작업이 자신만의 정체성과 독자성을 유지하며 지속되고 있는 것은 분명 긍정적이다. 이인철이 미디어 자체에 탐닉하는 스타일리스트가 아니라, 끊임없이 동시대 현실의 모순을 포착하고 저항하는 내용을 작품으로 구현하고 발언하는 '작가'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서로 다른 장르, 즉 물리적·물질적 판화와 비물질적인 디지털이지만 이를 관통하는 이인철식 세계관과 리얼리즘의 구현이라서 그렇기도 하고. 그러나, 상대적으로, 목판화계에선 이런 이인철의 공백이 아쉽다. 80년대 왕성했던 민중미술과 비판적 형상미술 목판화의 미술운동으로서의 신명과 전투성은 90년대 초반 문민정부 시기 이후 점차 화단 변방으로 사라지고, 바뀐 사회 문화적 환경으로 인해 여러 목판화 작가들도 생계를 위해 지방이나 시골로 거처를 옮기면서 사실상 목판화는 그 시대적 소명을 다한 것처럼 보이는 시기라서 그렇다는 것이다. 물론 이인철의 장르 변경도 다른 작가들의 이주와 같은 이유였을 것이다. 다만 타 작가들은 지역에 은거했더라도 조각도를 갈며 은인자중 계속 목판화를 지속했음에 비해, 이인철은 디지털회화로 장르를 바꾼 점만 달랐을 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이인철의 목판화 공백을 아쉬워하는 것이다. 90년대 초중반 만개한 목판화 기량이 절정일 때, 그리하여 그 이후를 더 기대하던 터에 갑자기 조각도를 놓고 총잡이 '셰인'처럼 떠난 칼잽이 목판화가 이인철이 말이다. 비록 그는 디지털 회화로 자기 길을 표표히 갔을지라도, 남아서 그 뒷모습을 보는 이의 아쉬움은 얼마나 컸을 것인가. 하물며 지속적으로 80년대 이후 목판화의 진행을 비평적으로 주목하는 나 같은 사람은 한국현대목판화에서 사라진 리얼리즘의 정수를 아쉬워하는 것이다. 이인철은 한국현대목판화사에서 정원철과 더불어 가장 정교한 목판화 판각법을 구사한 작가다. 그래서 짧은 10여 년간 100여 점만의 목판화를 남긴 게 더 아쉽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10년 정도 더 작업해서 작품을 300점 정도라도 남겼다면 1990년대 목판화사는 훨씬 풍부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4. 어떤 시대든 그 시대를 견디는 건 모든 이들이 힘들지만, 그들을 관찰하고 작업으로 옮기는 작가는 더 아프고 괴롭다. 함께 겪은 통증을 작업으로 진술하거나 표현하는 이중고통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인철은 엄혹했던 1980년대에 부조리한 권력과 폭력이 작동했던 사회의, 사람살이에 대한 관찰과 이미지 채집을 멈추지 않고 작업으로 남겼다. 그것은 통증을 피하지 않고 정면에서 응시한 결과로, 안락한 머무름이 부재한 '거리'라는 공간에서 타고난 아웃사이더의 더듬이를 가진 채 떠도는 불편한 리얼리스트의 모습이다. 거리에서 사람들의 삶을 보고 표현하는 표류는 쓸 수 있으되 정착는 쓸 수 없는, 그야말로 '작가'로서 감내해내야만 하는 태도로 무장한 모습으로 말이다. 어렵고 힘들었을 것이다. 오랜만에 지난 시기 이인철 목판화를 일별하다가 보니, 그에게 위로의 술 한잔 사고 싶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거리에서... # 이 글은 2021년 부산민주공원에서 열렸던 이인철-지구표류기도록 서문에서, 목판화에 관계된 부분을 발췌 보완한 것임을 밝힙니다. 김진하

 

 

이리저리 살다 보니 잊어버린 지가 한 참된 고향에 들리게 되었다.

 

지난 20일 부산에서 열린 최민식 선생 10주기 심포지엄 가야 하는데,

열차표가 매진되어 부득이 고물차를 끌고 가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차도 불안하지만, 나 역시 걸어 다니는 송장이지만 어쩌겠는가!

 꼭 가야 할 일이기도 하지만, 호텔 방까지 잡아 두었다는데...

평생을 천운에 맡기고 살아온 내가 새삼 걱정할 게 무언가?

걷는다면 오백 미터도 못 가지만, 차만 있다면 다음날 죽더라도 어디엔 들 못 가겠는가?

정동지 더러 ‘지루하지만 멋진 드라이브가 시작 된다는 안내맨트를 날린 것까지는 좋았는데,

 불알처럼 차고 다니던 카메라 주머니를 두고 와 버렸다.

이미 시가지를 벗어났으나, 그냥 갈수는 없었다.

 

되돌아가 다시 네비를 보니, 도착시간이 심포지엄 시작 시간보다 15분 늦었다.

연료 넣으러 휴게소에 잠시 들렸을 뿐, 도착시간 줄어들기만 바라며 냅다 밟았다.

단속 카메라 피해 다니느라 졸음 올 겨를도 없었다.

통행료 계산할 시간마저 아끼려고 하이패스로 빠져버렸는데, 정확하게 15분 늦었다.

 

지금 다시, 최민식을 바라보다는 타이틀로 열린 심포지엄은

이광수교수의 최민식 사진의 작품성: 평론가와 대중의 평가 차이를 중심으로발제로 열리고 있었다.

사진가 이동근씨의 사회로 진행된 패널로는 사진가 김문호, 문진우, 강제욱씨가 나와 있었다.

오기 전에 발제문을 보아 내용은 알고 있으나, 귀가 어두워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옆에 앉은 정동지 메모 글을 넘겨보며 짐작할 뿐 자리만 지킨 것이다.

끝날 무렵에는 나 더러 무슨 말을 하라는데, 귀만 어두운 것이 아니라 입도 벙어리나 마찬가지다.

더구나 관중공포증이 있어 사람의 눈만 마주치면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벙어리 가슴 앓는 소리 몇 마디 지껄이긴 했지만,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조차 없다.

 

심포지엄이 끝나고 아구찜 집에서 술 마시는 시간은 좋았다.

이차로 하숙집이란 술집까지 갔는데, 술 맛나는 이교수 구라에 어찌 취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방에 들어가니, 그때 사 누적된 피로가 덮쳐 정신없이 뻗어버렸다.

다음 날은 이 교수 안내로 해운대 달맞이 명물 대구탕 집에 가서 해장하는 호강도 누렸다.

 

행사를 주관한 김정근 감독과의 인터뷰 약속이 있어 김 감독 스튜디오도 갔다.

걱정되는지 이교수까지 옆에 지켜 섰는데, 김감독이 다른 방으로 가시란다.

아마 김감독이 나의 문제점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정동지는 있어도 괜찮다는 걸 보니, 보호자로 여기는 모양이다.

말은 잘 못 하지만, 김감독 묻는 대로 답하니, 어려울 것도 없었다.

놓친 말이 있어 블로그에 다시 글을 쓰기도 했는데, 그래도 할말이 남았다.

언젠가 하늘나라 계시는 선생님께 못다한 편지를 쓰고 싶다.

 

일은 마쳤지만 길바닥에 기름 쏟으며 부산까지 왔는데, 반 본전이라도 뽑아야 하지 않겠나!

인근에 있는 경상도 장을 찾아 가려는데, 하필이면 밀양 무안장에 가 잔다.

어린 시절에도 가본 기억이 있는 무안장은 고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이곳이라고 안 바뀔 수 있겠는가?

정동지는 사람들 만나 이야기를 듣거나 사진을 찍었지만, 나는 차에 자빠졌.

가만히 생각해보니, 무안까지 와서 고향 산소에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았다.

장터 마겥에서 소주 한 병과 과자 한 봉지를 샀다.

 

부곡 온천을 거쳐 고향 영산으로 들어오니, 초입의 만년교가 반겼다.

만년교 풍경을 보니 돌아가신 아버지 친구 김형권씨가 생각났다.

김형권씨는 쇠머리대기기능 보유자로 사진을 하셨는데, 주로 민속놀이를 찍으셨다.

삼일문화제를 찾는 아마추어 사진인들을 위해

한복을 차려 입은 어린이나 농부가 만년교를 건너가는 모습을 연출해주기도 했다.

  만년교 위에서 쥐불 돌리는 사진들은 대개 김형권씨 도움을 받아 찍은 사진일 게다.

 

그리고 박만영씨가 운영했던 '녹지사진관'의 진열장에는 항상 가족사진 대신 흑백풍경이 걸려 있었다.

나도 60년대 중반 무렵,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구입한 적이 있었다.

사진도 사진이지만 텅스텐  전구를 터트리는 텅스텐 스트로보가 멋 있었다. 

친구들 기념사진이나 찍으며 폼 잡고 다닌 것이다.

찍은 흑백필름을 박만영씨 사진관에 맡겼는데, 그 때 암실을 살펴 본 기억이 난다. 

 서정적인 농촌풍경을 많이 찍으셨는데, 그 사진 원판은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60년대 초반 창녕경찰서장으로 계셨던 이봉하씨도 사진을 찍었다.

이봉화씨는 주로 백로사진을 많이 찍으셨는데,

한 번은 관용차 타고 늪에 사진 찍으러 가다 엠비시 기자한테 걸려 혼이 나기도 했으나, 

정년 퇴임하여 '사협' 이사장까지 하셨다. 

 

영축산 아래턱의 대암골이라 불리는 산소는 본래 감나무 과수원이었다.

감나무는 고목이 되어 다 넘어졌으나, 지팡이 짚고 버티던 제실마저 넘어지고 없었다.

 

몇 년 만에 왔는지 기억조차 아련하니, 조상님께 어찌 고개 들 수 있겠는가?

언제나 감싸주시던 할머니부터 술 한 잔 올렸다.

마음으로 빌었으나,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힘들게는 살지만 하고 싶은 일 하며 잘 산다고 말씀드리고.

산소에서 뵙는 건 마지막이 될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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