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진의‘눈멂- Blinding Scenery’전이 안양 ‘두나무아트큐브’에서 지난 6일 열렸다.
지난 7일 아산 ‘꿈에실농장’ 가는 길에 한 번 찾아보기로 했다.
그동안 정동지 전시도 있었지만, 몸이 편치 않아 오랫동안 아산에 들리지 못했더니,
지난 추석에는 아산 농장 식구들이 서울로 올라 오기도 했다.
가을걷이라 해야 고추 밖에 없지만겸사겸사 시간 내어 안양 한상진씨 전시부터 들린 것이다.
약속이나 한 듯전시 작품들을 보고 있으니 작가가 나타났다.
전 날 인사동 정복수씨 전시장에서 만남에 이은연이은 만남이었다.
전시장에는 수묵드로잉을 비롯한 페인트작업이 걸렸고
바닥에는 버려진 사물들을 채집하여 가지런히 진열해 놓았는데,
사진으로 본 작품의 느낌과 실제의 느낌이 너무 달랐다.
눈멂이란 수동적으로 이끌리는 '중지'의 순간으로,
길을 가다 만난 풍경과 풍경 속에 담긴 삶의 모습이 아련하지만 친근하게 다가왔다.
대상을 만나 스스로 성찰하는 과정을 그치며 그려 낸 작품에는 고요한 울림이 번지고 있었다
찰나가 전해주는 잔잔한 울림으로, 마치 수행자의 묵상처럼 고요한 정적감도 감돌았다.
볼수록 풍경 속으로 빨려 가는 심오한 흡인력이 느껴졌다.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난 계곡의 돌들도 저마다 소리를 내고,
말없이 흐르는 구름마저 손짓하며 암시한다.
그렇게그렇게 사는 것이라고...
“그의 되돌아 봄에는 어떤 것들이 담겨 있을까... 그곳에는 이름 없는 풍경과 스쳐 지나가는 사람, 돌아올 수 없는 시간, 보잘것없는 사물들, 변화하며 사라져가는 자연의 풍경들이 자리하고 있다. 서양의 전통적 사유가 자연을 인위적인 환경으로 조성하는 것임을 의미한다면 동양의 사유에 있어서 '자연은 스스로 그러한 것'을 말한다. 작가가 그려가고 있는 소박하면서도 현대적인 회화작업 속에는 이러한 전통적 사유와 함께 우리가 성찰해야 할 '오래된 미래'가 스며들어 있다.” - 두나무아트큐브
습지를 찾다 ● 습지는 흙이 물과 만나 빚어낸 젖은 땅이다. 흙이 물을 만나 고이면서 온갖 생명을 잉태한다. 자줏빛 가시연꽃과 노란 개구리밥이 잔잔하게 수면을 덮고 있고 왜가리며 두루미가 한가로이 날갯짓한다. 온갖 벌레울음이 서로 화답하며 일순 비현실적 상상에 젖게 한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다가서서 들여다보면 습지는 혼탁하다. 어둡고, 깊고, 질퍽하다. 물과 흙이 뒤엉키며 수시로 서로의 경계를 허문다. 어디까지가 뭍이고 어디까지가 물인지 불확실하다. 돌 하나만 들추어도 스멀거리는 벌레들이 그득하다. 하물며 저 불투명한 심연 어딘가에는 지구의 역사 이래 밝혀지지 않은 괴생물체들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순간 섬찟한 느낌, 선뜻 다가갈 수 없는 두려움 같은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맑은 물, 흐르는 물을 좋아한다. 기실 그 이유는 깨끗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시선으로 투명하게 포착할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지만 맑은 물은 다양한 생명을 온전히 담지 못한다. ● 두 해전 60을 훌쩍 넘어가진 첫 개인전에서 나는 내가 평생을 살아온 동네 불광천을 그렸다. 마른 잡풀들이 어석어석 서로의 몸을 부대끼는 겨울 불광천을 차갑게 묘사했다. 처음부터 작정한 주제는 아니었다. 매일 소요하던 불광천이 자연스럽게 나를 이끌었다. 나이 때문일까. 그림을 그릴수록 그 어떤 이념이나 동시대적 미학이 쉽게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 간다. 도회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얕고 평범한 천변이지만 온갖 생명의 움틀임이 나를 자꾸 부추겼다. 보이지 않던 것을 보게 했다. 겨울 불광천이 그림을 그리지 못했던 나의 청년기와 장년기의 긴 공백을 연상케 하는 바가 있었다면 이제 새로 시작하는 그림은 봄이나 여름이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십여 년의 세월을 교사로 지낸 내게 정년퇴직은 자유로운 여행의 시간을 허락했다. 전국의 습지를 찾기로 했다. 기왕이면 람사르에 등록된 습지를 우선하여 책을 읽고 찾아다녔다. 람사르 1호인 강원도 인제의 용늪에서 마지막 24호인 일산의 장항습지까지 대략 반 정도는 다녀온 것 같다. 각각의 습지에는 지형적, 발생학적, 생물학적 특성도 다양했지만, 무엇보다 제각각의 사회적, 역사적 서사들을 품고 있어 애틋했다. 인간의 관여가 만들어낸 슬프거나 기특한 이야기들은 그 자체가 이미 자연의 역사이기도 했다.
서울에도 람사르 습지가 하나 있다. 서강대교와 마포대교 사이에 걸쳐있는 밤섬이다. 우리가 강변북로나 올림픽대로를 오가며 무심코 지나치는 섬이다. 없는 듯 그곳에 늘 있어왔다. 그러나 이 섬이 람사르에 등록된 습지이며, 고려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아왔고, 1960년대에 인간에 의해 폭파된 섬이라는 슬픈 사연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밤섬은 원래 밤톨 모양의 바위가 솟아난 돌섬이었다. 1968년 모래섬이었던 여의도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밤섬은 폭파되었고, 당시 거주하던 62세대 594명은 강제 이주되었다. 시간이 많이 흐른 후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밤섬에 점차 퇴적토가 쌓이기 시작했고 떠내려온 씨앗에서 풀과 나무가 자라났다. 그리고 온갖 철새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인간의 무관심이 역설적으로 생명의 땅을 부활시킨 것이다. 출입이 제한된 밤섬에 나 같은 일반인이 들어가기에는 절차가 너무 까다로웠다. 하는 수 없이 서강대교를 서성이며 먼발치에서 사진에 담을 수밖에 없었다. ● 강원도 인제 대암산에 있는 용늪은 4000년 전에 형성된 해발 1,280m의 고층 습지다. 연중 5개월이나 영하에 머무는 저온 때문에 식물들의 사체가 썩지 않고 켜켜이 쌓여 이탄층을 형성하고 그 위로 빗물이 고이며 생긴 습지다. 산정 높이 분화구처럼 펼쳐진 용늪은 그래서 사철 물이 마르지 않고 평지에서는 볼 수 없는 온갖 희귀 동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생태 보존지구로 지정된 터라 하루에 20명 제한으로 사전 허가를 받고 오를 수 있었다. 그곳에서 아주 오래 그들만의 생명의 시간을 견뎌온 산사초, 뚝사초, 이끼류, 그리고 한 번도 보지 못한 들꽃들이 짙은 안개의 습기를 헤치고 겨우 모습을 드러내다 사라지곤 했다. 늪의 깊은 곳에는 엄청난 양의 탄소가 머물고 있고, 그들이 내뿜는 생명의 기운으로 아직 지구는 견디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았으면 했다. 한갓 물웅덩이와 겨우 견디고 있는 풀 한 포기가 사라질 때 지구 전체가 요동친다는 걸 깨달았으면 했다. 자연의 신비로움은 오직 겸허한 인간의 내면만이 느낄 수 있는 법이다.
우포는 원시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내륙 습지다. 신생대 빙하가 녹으며 거대한 웅덩이가 만들어지고 여기에 물이 흘러들어 형성되었다. 우기나 홍수 때 과다한 수분을 습지 토양 속에 저장하였다가 건기에 지속해서 주변에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코로나가 한창일 무렵 우포를 찾았다. 끝없이 펼쳐진 습지에는 자줏빛 가시연꽃과 노란 개구리밥, 부들과 창포가 빼곡히 덮여있다. 먼발치에서 두루미와 왜가리, 따오기, 그리고 이름 모를 새들이 유유히 서 있거나 푸덕거리며 날아오르곤 했다. 3일을 그곳에 머물며 태곳적부터 이어온 생명의 신비를 만끽했다. 제집을 빼앗기고 인간에게 기생할 수밖에 없었던 코로나 바이러스도 이곳에 오면 늪 속으로 스며들어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 강화의 매화마름 습지는 원래 농경지였으나 멸종 위기의 매화마름을 보존하기 위해 시민단체와 주민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조성되어 람사르에까지 지정된 사례로 의미가 깊다. 반면 창원의 주남저수지는 넘치도록 완벽한 조건을 다 갖추었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람사르에 등록되지 못하였다. 환경 문제는 자본의 논리와 인간의 욕망을 비껴갈 수 없음을 안타깝게 깨닫는다. 경기 북부의 DMZ와 임진강변은 여느 습지보다도 온전한 생태계를 갖춘 습지이다. 가장 풍요로운 다양성과 순환성이 숨쉬는 곳, 그러나 우린 가 닿을 수 없다. 차라리 다행인지도 모른다.
습지를 그리다 ● 내가 습지를 그리는 이유는 습지의 신산한 느낌과 내음과 소리가 좋아서이다. 스스로 살아 숨 쉬는 다양한 생명체들의 하모니가 아름답고 고마워서이다. 그 어떤 미적 이념과 감성보다 소중한 가치가 그 안에 담겨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싶었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라고 말해 놓고 보니 이 말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말인지를 깨닫는다. 저 습지의 심연이 '어떻게 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작가는 언제나 제 시선으로 바라보고 제 방식대로 편집할 수밖에 없다. 내 안에서도 자연은 엄연히 작동한다. 들숨과 날숨, 피돌림으로부터 세포와 기관들의 조응, 그리고 욕망과 분노와 경탄의 감정들. 그것들 또한 알 수 없는 내 안의 자연이다. 그래서 습지의 생명감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내 안의 자연이 함께 운율을 맞춰주어야 한다.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림의 연륜이 짧은 나에게는 더욱 어려운 일이다. 자꾸 다듬고 개칠을 한다. 습지의 생명감 있는 기운이 아니라 풀잎 하나의 형태에 자꾸 얽매인다.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생명 존재들의 화음을 놓치곤 한다. 늘 불만스럽다. 오래 창작해 온 작가들의 거침없는 필치가 부럽기도 하다. 그렇다고 항간의 미적 이념이나 독특한 방법론 따위의 주장들에 선뜻 동조할 수는 없다. 적어도 습지를 마주하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는 그렇다. 불만스럽고 지난한 그 과정의 어느 지점에서 내 안의 자연이 스스로 그들과 호흡하게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자꾸만 '대상의 재현'에 빠져든 듯한 내 작업이 종종 불안하고 불만스럽다. 하지만 이 재현적 이끌림이, 적어도 지금의 내겐,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거스를 수 없는 내 안의 자연의 발로임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현대미술은 은연중 '재현(再現, representation)'을 '표현(表現, expression)'보다 낮은 등급의 창작 태도로 여긴다. 그 이유는 일단 '재현'을 대상에 대한 일차적이고 시각적인 유사성으로 제한하여 보기 때문이며, '재현'의 원본성을 객관화된 자연에 두기 때문이다. 타자로 전락한 자연에서 경외감을 느끼거나 진리의 목소리를 들을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기실 재현과 표현은 완전히 분리할 수 없는 개념이며, 근대 이전에는 그 분리가 존재할 필요도 없었다. 재현은 '자연의 재현'이며, 표현은 '주관의 재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자연이 부재한 표현이 있을 수 있으며, 주관이 부재한 재현이 성립될 수 있을까. 자연은 모든 생명들이 조응하며 늘 변화할 뿐이다. 자연에 원본은 없으며 '있는 그대로' 그린다는 것은 오만일 뿐이다. 그래서 근대 이후의 미술은 자연을 알 수 없는 신화의 세계로 규정하고 작가의 주관적 인식과 감성을 앞세운다. 작가에게 '천재' 또는 '독창성'의 작위를 부여한다. 온갖 실험을 통해 새로운 미적 개념을 쏟아내도록 한다. 경제 발전 지표가 1을 넘지 않으면 자본주의의 신화는 붕괴한다고 한다. 이 신화는 체제의 지속을 위한 믿음의 체계이다. 인공지능과 우주산업, 그리고 유전자 공학에 대한 엄청난 투자는 새로운 문명과 인류의 행복을 위한 것이기에 앞서 체제의 붕괴를 피하기 위한 또 하나의 신화 창조일뿐이라는 해석들이 현대의 미술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모종의 문화적 이데올로기가 작동하고 있음을 예견한다. 나아가 예술의 주체적 자율성 신화가 진행되어 오는 동안 지구의 환경도 급격히 훼손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단지 우연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 나는 오랫동안 평론가의 이름으로 생태학과 자연 미학에 대한 글을 써왔다. 뒤늦게 이론을 접고 그림을 그린다. 뜻대로 되어줄 리 없다. 그림은 때로 내 생각을 거스르며 나를 이끌어 간다. 그럼에도 생태학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그림 속으로 이어진다. 어쩌면 내 그림이 고리타분한 풍경화로 읽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쩔 수 없다. 그림을 그리려면 그림 그리는 몸부터 만들라는 충고를 듣는다. 늦었지만 조금씩, 그 몸을 만들어 가야겠다. ■ 김경서
정복수의 ‘자궁으로 가는 지도-1’전이 10월6일부터 30일까지 인사동 올미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린다.
화가 정복수는 반평생을 억눌린 인간의 본성이나 실존에 대한 문제를 인체 구조로 표현해 온 작가다.
그는 탐욕의 인간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육체라는 믿음으로 인간의 절단된 몸을 그려 왔다.
오래전 그의 작업실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하나의 충격이었다.
마치 종합병원 정형외과에 온 것 같았다.
작업실에는 사방에 해체되고 절단된 인체가 걸려 있었다.
팔다리가 잘려 나간 형체나 표정에서 사악해지는 인간의 실체를 보는 것 같았다.
한편으론 짐승 같은 인간 본능의 원초적 욕망이 이글거리는 생존을 그린 투시도 같았다.
바로 병들어가는 현대인의 자화상이었다.
이번 개인전은 ‘자궁으로 가는 지도‘라는 제목이 붙었다.
이건 돌아갈 수 없는 지도가 아닌가?
갑자기 존덴버 노래 ’Take Me Home, Country Roads‘가 떠올랐다.
"시골길이여 나를 집으로 데려가줘요. 나의 보금자리로..."가 아니라 어머니 뱃속으로...
신비한 자궁의 세계를 엿 볼 기회라며 들어갔는데, 마치 사주 보는 점집에 들어 온 기분이었다.
손금과 눈이 그려진 손바닥 그림 몇 점이 다가왔는데,
마치 스스로를 알라는 듯 묘한 뉘앙스를 풍겼다.
인간은 어머니의 자궁에서 출발했으나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인간 회귀의 욕망을 부추겼다.
어찌보면 길 잃은 인간들을 안내하는 지도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처음 보는 작가의 자화상도 걸려 있었다.
작품에 대한 해설은 미술평론가 김진하씨 서문으로 대신한다.
“영원한 청춘일듯하던 인생도 종국에 는 맞닥뜨리는 게 있다. 생명체라면 모두 피할 수 없는 운명, 생장해서 성숙해지 는 만큼 소멸이 가까워지는 게 세상 이치다. 생명의 끝 지점. 자궁으로부터 출발 했으나 결코 자궁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그런 회귀 불가능은 더욱 회귀에의 욕망을 증폭시킨다. 그 도저함의 사막에서 마지막 한 방울 생명수가 모래 사이로 스 며들어 버렸을 때, 마침내 우리의 모든 기억에서 자궁이 지워지는 암전 상태가 된 다. 페이드 아웃. 디 엔드. 이름하여 죽음.
정복수의 그림엔 항상 무엇인가 하는 인간들이 즐비했다. 50여 년의 화력을 돌이켜보면 초지일관 무엇인가 행위 하는 인간을 그렸다. 뱉고, 욕설하고, 먹고, 마시고, 싸고, 싸우고, 자위하고, 섹스하고, 거부하는 인간들. 그야말로 본능의 상태에서, 짐승과 같이 생존의 원초적인 욕망이 가득한, 생래적으로 죽음과는 거 리가 먼 듯한 살아있는 인간들의 생존경연장이자 투기장이었다.
그 숱한 공격적 동사형의 인간을 그리던 정복수도 이제는 그의 그림의 출발 지점인 10대 시절보다 좀 더 먼 과거를 유영해보려는 모양이다. 출생의 기표인 지문과 손금이라는 나침반을 꼼꼼히 분석하면서, 또 타고 난 눈빛과 얼굴과 성정을 참조하면서, 성장하면서 경험했던 사건들과 섭취했던 온갖 욕망을 하나 둘 해체 하며 「자궁으로 가는 지도」를 그리고 있다. 따지고 보면 인간의 생은 회갑을 기준으로 그 이전에는 미래에 의 욕망과 그에 비례하는 기억의 축적이 느리게 진행되고, 그 이후에는 과거로의 회귀 욕망의 증대와 추억을 망각하는 속도가 빨라지는 생태성으로 구성된 듯하다. 그래서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를 화 두로 삼았으되, 결국은 그 중간 지대인 현실에서의 번뇌와 고통과 헤맴으로 인해, 자궁으로 회귀하는 길을 찾지 못하는 것 일게다.
그래선가, 이번 근작들에선, 정복수 특유의 이빨, 성기 노출, 사정과 같은 이미지들은 많이 소거 됐다. 대 신에 ‘자궁으로 가는 지도’, ‘깊은 인생’, ‘너무 깊은 생각’, ‘생각의 입’, ‘생각의 핏줄’, ‘신神을 찾는 방법’, ‘인간 은 무시무시한 벌레’ 등과 같은 철학적 사유를 동반하는 제목들이 등장한다. 화가도 인간인 이상 그의 나이 에 비례해서 자기 존재성이나 내면을 반영하는 일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또 그만큼 삶에 대한 내밀한 관념 과 인식을 화면에 드러내게 된다. 정복수의 근작도 이런 경향을 여지없이 반영한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정 복수의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여전히 치열하다. 힘을 빼려는 자의, 힘을 빼는 과정에 집중하는 치열성이라고 해야 하나. 그림 속으로 파고 들어가서 채굴하고, 다시 묻고, 또 그 옆의 구멍에 천착해서 관통하고 나간 뒤 근처에서 돌아오기 위한 구멍을 다시 판다. 그림 그리기에 대한 정복수의 기본적 태도다. 버리기 위해서 버 리는 것에 더 깊이 몰두하는 습관이나 체질과 같은 태도 말이다.
한편, 그 치열한 자궁으로의 회귀 욕망과 기억과 기록을 더듬는 정복수의 진술은 남은 삶에의 욕망이자, 더불어서 죽음의 길을 순연하게 찾기 위해 작성하는 지도다. 정복수에게 그림은 그 지도를 제작하는 것으로 부터 그 지도에 표기하는 메모와 주의사항들을 꼼꼼하게 형상으로 확인하는 절차이기도 하고. 자궁에서 나 왔을 때부터 그의 의식에 지문처럼 새겨진 죽음에 대한 메멘토 모리를 통해 끊임없이 의심-저항-확인-수 용해온 지난 50년의 작업적 변증이, 정복수에게는 자궁으로 돌아가고픈 그의 본능과 의지의 생산 과정이었 다고 하겠다. 기실, 그게 화가의 일이다. 그가 출발해서 떠나왔던 자궁 입구를 찾기 위해 그리는 삶과, 마침 내 그곳에 다다랐을 때 비로소 그리기를 멈추는 것 말이다. 그 궤적을 그림으로 기록하고 표현하는 게 바로 작가적 삶과 죽음의 표지일지니, 여적 그리고픈 인간이 많다는 정복수에게 「자궁으로 가는 지도」는 또 새 로운 인간 유형을 탐색하는 길을 열어 줄 것이다. 67년을 걸어온 만큼 회귀하는 길 또한 만만치 않게 길 터 이니, 그가 그릴 인간들은 아직 많이 남았을 것이다. 다만, 이제는, 격렬한 본능보다는 존재를 사유하고 탐 색하는 깊은 인간형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 유추해본다.“ 김진하(미술평론)
두나무아트큐브에서는 한상진 작가의 『눈멂, Blinding Scenery』 展을 기획하였다. 그의 작업은 드로잉과 회화(painting) 그리고 버려진 사물을 채집하여 숨결을 불어 넣는 오브제(objet) 작업으로 이루어진다. ● 작가의 작업은 주로 길 위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낯선 자리에서 만나게 되는 풍경과 사람들, 그 속에 담긴 삶의 모습들, 친근하면서도 낯선 언어들과의 만남, 접촉을 통해 스스로를 성찰하고 되돌아보는 것이다. ● 그의 되돌아 봄에는 어떤 것들이 담겨 있을까... 그곳에는 이름 없는 풍경과 스쳐 지나가는 사람, 돌아올 수 없는 시간, 보잘것없는 사물들, 변화하며 사라져가는 자연의 풍경들이 자리하고 있다. 서양의 전통적 사유가 자연을 인위적인 환경으로 조성하는 것임을 의미한다면 동양의 사유에 있어서 '자연은 스스로 그러한 것'을 말한다. 작가가 그려가고 있는 소박하면서도 현대적인 회화작업 속에는 이러한 전통적 사유와 함께 우리가 성찰해야 할 '오래된 미래'가 스며들어 있다.
길 위에서, 멈춰서서, 한없이 바라보게 되는 순간을 작가는 '눈멂'이라고 말한다. 눈멂이란 수동적으로 이끌리는 '중지'의 순간이 아닌가... 중지의 순간-이끌림, 의식과 의미가, 이성의 구조적 판단이 멈추는 응시의 순간, 수행자의 묵상처럼 찰나가 전해주는 울림을 그는 마음의 숨결, 몸의 감각을 통해 화면으로 전이시키고 있는 것이다. ● 이번 전시에는 2023년 전후, 풍경과 사물을 응시해온 수묵드로잉을 포함하여 페인팅 작업 그리고 채집된 오브제로 재구성된 가변설치작업을 선보일 예정이다. ● 한상진 작가는 홍익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하였다. 2005년 전후 「문명의 침실」 연작, 2008년 전후 「FLASH GARDEN」 연작, 2011년 전후 「응시와 명상」 연작, 2014년 전후 「소요逍遙-흐르는 풍경」, 「무경계, NO BOUNDARY」, 「미명微明」 연작 등, 실험적인 작업을 진행해 왔으며 20여 회의 개인전과 100여 회의 기획전 및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두나무아트큐브
눈멂-Blinding Scenery ● 나는 이름 없는 풍경들이나 버려지고 오래되어 허름한 사물들에 이끌린다. 의미화되거나, 화석화되거나, 기호화된 것들과는 거리가 먼, 일상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걸음을 멈추게 하는 응시의 순간이 작동하게 되는 계기는 무엇일까. 그것은 보여지는 것 이상의 바라봄이며 시선이 시선 속에 그 이상의 나머지를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알 수 없는 삶의 계기들은 거부할 수도 온전히 받아들여질 수도 없는 친밀하고도 낯선 모호함을 숨기고 있다. ● 문화적으로 가공된 이미지들은 공시적 의미(connotation)로 기능하며 독자의 체계와 공명하겠지만, 이미지가 그 너머의 타자성을 품을 때,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가 『밝은 방』에서 제기한 개념 푼크툼(punctum, 푼크툼은 라틴어로 '찌름'이라는 의미로, 이미지를 봤을 때 다가오는 충격과 여운의 감정을 말한다)처럼 숨겨진 틈으로 이어지는 강렬한 분열이 발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미지는 때로 폭력적이고 위험한 것일 수도 있다. ● 분열의 시간은 일상 속에서 접하는 시간의 나눔과 선형적인 구분 사이에 있다. 동일성을 배제한 타자들의 목소리는 어두운 심연에 몸을 움츠리고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침묵이 또 다른 소리의 형상이며 침묵 또한 온전하게 의미로 정립되는 것을 방해한다. 동행하던 내 안의 내가 길 건너 저편에서 손짓하고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유령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도플갱어(doppelganger), 겹침(overlapping)은 그러한 의미에서 나에게 온전치 못한 불가능한 의미의 세계로 길을 안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 풍경 속에서 풍경이 되어가는 순간들은 길 떠남으로부터 시작된다. 흐린 날의 기행, 목적 없이 떠나는 길에 만나는 풍경들은 변증법적으로 충족시켜가는 과정이 아니며, 다시는 고유성으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 실패하는 여행이다. 죽음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이미 죽은 것들은 내가 어쩔 수 없는 나의 또 다른 모습들이다. 벗어남, 회의, 전락, 공포의 감정, 무의식... 존재는 언어적인 의미로 해석이 안 된다. ● 모리스 블랑쇼(Maurice Blanchot)는 유한성의 무한한 지속을 존재의 참을성(patience)이라고 한다. 의미는 급하고 참을성이 없다. 어떤 것에 속하려고 하는 강박은 의미에 집착하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벌거벗은 존재로서의 연기는 나에게 종결되지 않는 물음을 제기한다. 존재는 의미에 편입되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풍경 속에 몸을 담고 있다. 중지의 순간에도 흐르는 풍경은 고유한 자리가 없다. 죽음은 죽임으로 종결되지 않는 욕망이다. 흔적으로만 이야기할 수 있는 죽음은 시간적인 차연으로 존재함으로 풍경이 풍경으로 다가오는 순간은 벌거벗은 풍경으로서, 재현 불가능한 풍경으로서만 이야기될 수 있다.
기억할 수 없는 타자, 역사 속에서 반복되어 살아 숨 쉬는 죽음의 순간들은 말할 수 없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사진가 육명심(陸明心) 선생은 "나는 농경사회의 마지막 세대이다. 지난날 원시인들이 바위에 암각화를 남겼듯이, 그런 심정으로 우리 시대 사람들을 사진으로 담았다."라고 말했다. 그의 사진집 『백민(白民)』에 수록된 윤세영 선생의 글을 참조하자면 1970년대 말 시작된 『백민(白民)』 연작은 낮은 곳에서 한국인의 정서를 지탱하고 있었던 기층민, 삼베나 모시옷을 입은 옛 삶의 원형을 담백하게 보여준다. 영적이고, 신비로운, 무속적이고, 토템적인 분위기는 사진들에서 보여주는 강렬한 정면성에 나타나 있고 바라봄과 보여짐의 사이에서 발생하는 이러한 현상, 서로를 마주하면서 발생하는 라포(rapport)를 형성하는 것으로 본다. 관계의 형성은 서로의 경계가 무너지는 교감을 바탕으로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육명심 선생의 작품집 『백민』은 시대의 풍경을 호명하는 것이고 오늘날 기층민이란 의미가 무엇인가를 성찰하게 해준다. 나에게 존재란 그리고 그림이란 이름 없는 것들 속에서, 그 관계 속에서 삶-죽음을 호명하는 것이다. ● 나는 197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의 시대적인 상황을 묵시해 왔다. 정치적인 형세, 흑백에서 컬러로의 전환,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의 전환,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전환을 경험하였다. 급속도로 변화하는 시대적 풍경 속에서 자본의 흐름이 존재를 지배하는 방식은 우리의 삶을 서구의 그것보다도 더 비자연적으로 획일화시키고, 물질화된 환경 속으로 소외시키고 있다. 그리하여 생산과 소비 속에서 남겨진 잉여, 의미로부터 버려진 사물과 풍경들은 일렁이는 시선의 동일성 속에서 나를 애착(affection)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땅 위에 떨어진 열매, 투박하게 마모된 조약돌, 빛바랜 플라스틱이나 유리 파편들, 녹슨 쇠붙이, 바닷가에 떠내려온 부유목, 수변 풍경, 적벽... 풍상이 담긴 나무들, 나타나고 사라지는 하늘의 구름, 하늘과 땅의 경계가 그려내는 모호한 풍경들, 그것들은 그 자체로 원초적이고, 거칠고, 아름답고, 숭고하고 강렬히 눈을 멀게 하고, 삶 속에서 헐벗은 파편으로 흐르며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텅 빔을 나로 하여금 반복-공유하게 한다. ● 위와 같은 여정 속에서 작품으로 등장하는, 오브제(objet), 최소한의 재료나 물질의 옷을 입은 형과 상의 속삭임들, 미완의 흔적들은 손에 잡을 수 없는 형상들이 되고 만다. 그러한 의미에서 나에게 무경계(no boundary)란 완결되지 않은, 종결될 수 없는 이미지를 사로잡으려는 욕망으로부터 나를 내려놓는 것이다. 천천히, 목적 없이 걷는 길 위에서 만나게 되는 풍경과 사물들, 그러나 이러한 재현 불가능한 것을 재현하려는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온다. 실패의 반복,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길을 나서며 풍경을 소요(逍遙)하는 것은 아무런 구분도 가능하지 않은 어둠, 바깥으로 열리는 텅 빔을 환대하려는 태도를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 한상진
옛집처럼 나지막한 벽을 거쳐 들어가니 성소처럼 어두운 공간이다. 그곳을 손바닥만 한 그림 2점이 꽉 채웠다. 장욱진(1917~1990)과 가족이 평생 그리워했던 유화 ‘가족’(1955)과 그것을 기억하며 다시 그린 ‘가족도’(1972)다. 평생 가족을 그린 화가의 전범(典範) 같은 그림이다.
첫 개인전에서 일본인 소장가에 팔려 주요 전시 때 마다 수배했지만 60여년간 행방이 묘연했던 작품을 일본에서 발굴해 흰곰팡이를 제거하는 등 응급 보존처리 후 대중에 처음 공개됐다.
그림에도 등장하는 큰딸 장경수 양주시립미술관 명예 관장은 “60여년 만에 봤는데 먼지가 뽀얗고 조금 훼손됐을 뿐 당시 들락날락하면서 봤던 그림 그대로여서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14일 개막한 그의 대규모 회고전 ‘가장 진지한 고백’에서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1920년대 다채로운 화풍을 시도하며 공모전에 참가하던 학창 시절부터 1990년 작고 때까지 그린 유화와 먹그림, 매직펜 그림, 판화, 표지화와 삽화, 도자기 그림 등 270점을 역대 최대 규모로 펼쳤다.
또 한국 전쟁 후 생계를 위해 소설가 염상섭의 장편소설 ‘새울림’에 그렸던 삽화 56점과 마지막 유화 작품 ‘까치와 마을’(1990)도 처음 공개됐다.
‘동심 가득한 작은 그림’ 작가로 알려진 1세대 모더니스트 화가의 주제의식과 조형의식의 변모를 짚어가며 작가의 진면목을 발견할 소중한 기회다.
무엇보다 장욱진 그림에서 작가의 분신 같은 까치, 온 세상을 품는 우주인 나무, 시공간을 초월한 영원성을 상징하는 해와 달 등 반복되는 소재의 의미, 도상적 특징을 비교하면서 볼 수 있어 흥미롭다. 아울러 기존 화가들이 좀처럼 쓰지 않던, X자나 왕(王)자, 십자, 변각 등 비현실적이거나 불안정한 구도를 나무와 집 등 흔한 소재를 더해 안정적으로 풀어낸 솜씨가 놀랍다.
어린아이처럼 단순한 선으로 표현한 인간과 가족처럼 조화로운 동물 모습은 평면성이 극대화된 원시 벽화를 연상시킨다. 해방 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로 근무하며 고구려 고분벽화 복원에 참여한 이력도 작품세계에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에도 문인화와 민화 전통까지 흡수해 ‘장욱진’이란 브랜드로 한국적 모더니즘을 완성했다.
작가는 생전에 “그림은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툭툭 튀어 나온다”며 텅 빈 마음 상태에서 비로소 붓을 든다고 고백한 바 있다. 1970년대 말부터 본격 그린 먹그림 등 말년작에서는 불교 색채가 강해졌다. 작가 스스로 ‘붓장난’이라 일컬었을 정도로 무계획적인 필선으로 자유분방하다. 형태를 즉흥적으로 간략하게 표현한 ‘심우도’(1979)는 순간의 깨달음을 시각화한 선종화의 미학적 요소를 갖춘 수작으로 꼽힌다. 넓어지는 여백만큼 좁은 화폭에서 벗어나 더욱 자유로와지고 해학성도 엿보인다.
배원정 학예연구사는 “전시를 준비하면서 첫 가족도를 새롭게 발굴하기도 했지만, 아카이브 조사를 통해 초기 작가의 행적을 보완하며 작품명이나 연보 등 오류를 바로잡은 것도 성과다”라며 “그림 속 점 하나, 선 하나 엄격하고 치열한 고민 끝에 완성해 나간 완벽주의자로서 작가 면모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 작가가 명륜동 작업실 벽에 걸었던 그림들을 흡사하게 되살린 장면은 반갑다. 자식 같은 작은 그림들이 걸린 방에서 그만큼 작은 화폭을 바닥에 놓고 쪼그려 앉아 수공업 장인처럼 그렸던 화가의 모습을 사진으로 확인하면 작품이 또 달리 보인다. 평생 수행처럼 그려서 일상과 작품이 하나가 된 ‘물아일체’의 경지에 도달한 듯싶다. 아침에 염불 외는 아내 모습에 감화받아 7일간 식음을 전폐하며 보살로 그렸다는 ‘진진묘’(1970)처럼 소박한 일상이 종교적으로 승화하는 경지를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