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소설 2

fotofiction 2 寫眞小說 2

휘휘(현선)/ HWIHWI / 翬輝 / photography.text

2023_0728 2023_0811 / 월요일 휴관

휘휘_비자림로_피그먼트 프린트_10.2×8.8cm_2020

 

휘휘 인스타그램_@hwihwi.kr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제작지원 / 한국예술종합학교 공연전시센터

 

관람시간 / 12:00pm~07:00pm / 월요일 휴관

 

래빗앤타이거 갤러리

Rabbit and Tiger Gallery

서울 서대문구 세검정로146 1

www.rabbitandtigergallery.com

@rabbitandtigergallery

 

왜 이렇게 비겁하게 작업을 해왔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꿈에서나 미워하는 것을 향해 총을 쏠 줄 알지, 현실 세계에서는 소극적인 자세로 현장에서 사진만 찍고 빠질 뿐이었다. 카메라 대신 피켓을 들 때면 조용히, 튀지 않게 최대한 몸을 굽혔다. 그렇게 살게 된 이유는 뭘까. 앞서지 못하고 뒤에서 조용히 화를 삭히며 이런 글과 사진을 찍어온 이유가 있을까. 선조들 탓으로 그 핑계를 돌리며 잘도 살아왔다. 조용히 하라는 것. 어디 가서 그런 말 하지 말라는 것, 가족이, 어른들이 내게 그래서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살았다. 누군가는 내 이름이 온갖 '특권적인' 이름이 합류하는 곳이라 말했다. 증인, 당사자, 생존자, 활동가, 선주민. 난 듣보잡 사진가로 살아도 좋으니 작업 소재로 이 지긋지긋한 비극을 그만 갖다 쓰고 싶다.

 

휘휘_하도리 철새도래지_피그먼트 프린트_25.4×20.32cm_2020
휘휘_시퀀스, 고모_피그먼트 프린트_60×20cm_2022

뭐가 그리 특권처럼 보이는지 모르겠지만 난 내가 도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난 제주도가 싫다. 그런데 정이 뚝뚝 떨어지는 그곳에 아직도 자꾸만 소설 같은 일들이 벌어진다. 얼마 전 우리 집 돌담을 공사 차량이 무너트렸다. 버틴다고 버텨지는 일이 아닌 이 난개발은 점점 나의 목을 졸라온다. 이제 곧 동부지역의 원형과 역사의 흔적은 보기 힘들어질 것이다. 눈앞에 있는 소중한 것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라질 것이라는 공포는, 마치 죽음을 기다리는 것과 닮았다. 내일이면 생이 끝나고, 기억이 끝나는 것처럼, 가장 힘이 센 눈앞의 펼쳐진 물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무리 사진으로 그 풍경들을 남겨도 무기력을 남겨준다.

휘휘_등장인물, 규_피그먼트 프린트_10.2×8.8cm_2018
휘휘_사진소설 QR3 난개발_42×29.7cm_2022

 

그럼에도 사진을 찍고 글을 다듬으며 이곳의 사람들이 내게 준 희망의 몸짓을 떠올렸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미래에 대한 희망적인 상상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의 말을 기억하며 글을 쓰고 사진을 편집했다. 우리의 이러한 몸짓들은 무기도, 아름다움도 되지는 않지만, 살아있는 생을 멈추지 않는 것, 일상에서 보이는 평화의 몸짓들임은 분명하다.

 

두 번째 같은 제목으로 전시를 하고 소설을 쓰며 세 번째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향의 변해가는 모습의 사진을 2011년부터 찍어왔지만, 더 긴 호흡으로 이 삶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다. 싸움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 언저리에 조마조마하게 있는 작은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을 더 써 내려갈 것 같다. 휘휘

 

 

 

 

 

한정식선생의 서거 1주기를 맞은 추모 사진전 ‘북촌’이 지난 19일 ‘갤러리인덱스’에서 개막되었다.

 

‘북촌’은 선생께서 태어나고 자란 서울의 북촌 일대를 기록한, 1978년부터 1990년대 까지의 북촌 풍정이다.

 

선생께서는 생전에 기록사진이야말로 사진의 존재 이유임을 말씀하셨다.

그래서 어린 시절을 보낸 북촌을 기록했는데, 찍을 무렵부터 서울은 변하고 있었다고 한다.

 

기록사진은 된장이나 와인처럼 묵혀야 더 깊은 맛이 난다는 말씀처럼,

30년이 지나서야 ‘북촌’사진집을 펴내며 작품을 발표했다.

 

선생께서 남긴 리얼리즘 사진으로는 ‘북촌’ 외에도 ‘흔적’과 ‘마구간 옆 고속도로‘가 있다.

 

사진의 예술성에 뜻을 두신 선생께서는 '중앙대' 사진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리얼리즘 사진과 결별한다.

 

그 이후부터 법문 같은 ‘고요’라는 정적감 도는 예술사진에 천착하며 일가를 이루었다.

 

그러나 지금도 우리나라 사진사에 주명덕선생의 검은 풍경보다 ‘혼혈아’가 먼저 오르고,

한정식선생의 ‘고요’보다 ‘북촌’이 호출되는 것이 무엇을 말하겠는가?

 

사진의 기록성에 초점을 맞춘 선생의 작품들은 세월에 숙성된 사진이라

보면 볼수록 아련한 추억을 불러일으켜, 마음이 따뜻해진다.

 

전시된 ’북촌‘사진에는 근대화, 도시화 물결 속에서 차츰 변해가는 거리와 골목,

가지런한 기와, 다소곳한 처마, 고즈넉한 창살,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오롯이 담겼다.

 

“이 ‘북촌’은 내 개인 기록이다.

사진으로 엮은 나의 고향이야기로, 내가 아는 서울, 내가 느끼는 서울,

내 기억 속의 서울이 여기 담겨 있을 뿐이다.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은 서울의 북촌지역이었다.

그리하여 ‘서울’하면 내게 그것은 그대로 북촌을 뜻한다.

나의 발길이 북촌에만 머문 이유요, 북촌만으로 이 사진집을 엮은 이유이기도 하다.

하기야 서울이라고 하면, 특히 옛 서울은 대개 북촌지역이 중심이었다.

따라서 이 ‘북촌’은 북촌이로되 실은 그대로 나의 서울이야기다”고 사진집 서문에 썼다.

 

한정식 ‘북촌’ -나의 서울-128페이지 230*280mm 서적 40,000원

‘북촌’ 사진집에는 흑백사진 80여 점이 실려있다.

 

추모의 시간을 가진 사진전 개막식에는 생각보다 추모객이 적었다.

 

긴 세월 강단에서 선생의 가르침을 배운 제자들은 다 어디 갔으며,

수시로 불러 모아 인사동에서 정 나누었던 주변 사진가들은 다 어디 갔는가?

‘죽고 나면 명예도, 작품도, 인연도, 아무 소용없다’는 생전의 말씀이 생각나는 시간이었다.

 

그날 개막식에는 ‘갤러리인덱스’ 안미숙 관장을 비롯하여

전민조, 강용석, 이일우, 이기명, 최연하, 김정일, 곽명우, 정영신, 한선영, 김창주씨 등

20여명의 사진가들이 모여 조촐한 추모의 시간을 가졌는데,

공교롭게도 이 전시를 기획한 ‘눈빛’ 이규상 대표마저 늦은 코로나에 걸려 참석하지 못했다.

 

전시는 7월 31일까지 열린다.

 

사진, 글 / 조문호

 

.

 

 

밤의 집 The Houses at Night

손은영/ SONEUNYOUNG / 孫銀英 / photography

2023_0706 2023_0831

손은영_밤의 집 The Houses at Night#27_Ed.2/10_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80×110cm_2020

손은영 홈페이지_soneunyoung.com

인스타그램_@_young_eye

 

주최,후원 / 서울대학교 유전공학연구소

 

초대일시 / 2023_0706_목요일_11:30a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주말_10:00am~04:00pm

 

 

서울대학교 유전공학연구소

Seoul National University

Institute of Molecular Biology and Genetics

서울 관악구 관악로 1 서울대학교 1051

imbg.snu.ac.kr

 

밤에 본 집 손은영은 서울과 군산 등 한국의 도시 주변의 자리한 작고 납작한 집들을 촬영했다. 어두운 밤으로 둘러싸인 집의 외관을 인공의 빛이 환하게 비춰주고 있어서 마치 인물을 촬영하듯 하나씩 집들을 기록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그로인해 집은 인격을 부여받은 존재가 되어 자립한다. 누군가의 초상처럼 자리한 낮은 집들은 낡고 누추한 대로 기꺼이 사람의 보금자리를 기품 있게 만들어 보인다. 가능한 자신의 정면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는 이 정직한 집은 가장 기본적인 집의 외관과 구조만을 뼈처럼 드러낸다. 지붕과 벽, 창문 이외의 다른 장식은 거의 없는 집이다. 도로나 길가와 인접한, 그렇게 무방비로 노출된 집들은 출입구를 숨긴 체 밋밋한 벽만을 창백하게 보여줄 뿐이다. 다만 몇 개의 창이 있고 외부의 시선과 접촉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구조물이 창문으로 붙어 일종의 방어벽을 만들고 있다. 이 어설프고 불안한 시설물은 기능적인 역할보다는 심리적인 방어기제로 작동하는 편이다. 기이한 색상의 페인트로 칠해진 벽은 그만한 강도를 지닌 지붕 색과 강렬한 대조를 이루면서 너무 얇고 평면적으로 펼쳐져있다. 벽은 그 집에 사는 누군가의 등을 연상시킨다. 혹은 타자의 시선에 대책 없이 드러나 버린 살처럼 민망하면서도 관능적으로 빛난다.

 

손은영_밤의 집 The Houses at Night#37_Ed.3/15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60×80cm_2020

사진이란 이미 존재하는 세계를 다시 보여주는 일일 텐데 그렇게 자리한 대상 자체가 지닌 묘한 시각적인 힘을 작가는 날카롭게 찍어낸다. 비록 더없이 소박하지만 충분히 흥미로운 구조와 형태, 매력적인 색채를 품고 있는 레디메이드로서의 이 건축물/집의 외관은 그 자체로 당당한 회화작품처럼 다가온다. 흡사 색채들의 콜라주로 이루어진 색면 회화 같기도 하다. 그래서 나름의 조형적인 매력을 간직한 오브제를 선명하고 밀도 있게 건져 올리는 감각이 돋보인다. 이 사진은 그러한 작가의 안목이랄까, 미에 대한 묘한 감수성의 결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사진에 들어와 박힌 대상보다도 그것을 다시 보여주는 작가의 시선, 안목, 조형감각이 우선하는 사진이라는 생각이다.

 

손은영_밤의 집 The Houses at Night#45_Ed.2/5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20×160cm_2020

고층 건물 아래에 마지못해 끼여 있거나 허름한 골목길 모퉁이 어딘가에 뜬금없이 박힌 이 작은 집들은 길옆에 바짝 붙어 서서 각박한 생애의 고단함을 스스로 방증하고 있다. 아름다우면서도 동시에 다소 생뚱맞은 색채와 기이한 형태가 역설적으로 빚어내는 조형도 정형화된 질서에서 벗어난 낯선 미감을 발화한다. 그것은 소외되고 주변부화된 것들의 간절한 반짝임이고 이는 집과 창문으로 발광하는 따스한 빛이 포개지면서 보다 강화된다. 지붕과 벽, 그리고 그 사이에 놓인 몇 개의 창문만이 집을 집이게 한다. 이 집들은 현재 번화한 도시에서는 찾아보기 드문 가옥구조이자 아파트와 고층 건물의 현란함 속에서 뒷걸음질 친, 지난 시간대의 집들이자 서서히 사라져가는 건축이다. 이상하고 키치적인 건물이자 주어진 어려운 여건 속에서 필사적으로, 불가피하고 요령껏 만든 집이다. 그래서인지 사진으로 다시 보게 되는 이 집들은 현실감이 줄어들고 마치 영화나 드라마세트장과도 같은 느낌을 부여한다. 사람이 거주하는 현실적인 공간이라기보다는 거의 초현실적이고 몽환적인 장면이다. 밤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기에 그러한 느낌은 보다 더 고양된다.

 

손은영_밤의 집 The Houses at Night#53_Ed.2/10_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80×110cm_2021

동시에 이 사진은 평범한 주변의 일상 풍경이 특별한 존재로 탈바꿈 하는 순간을 기록하고 있다. 작가는 일상적으로 접하는 현실 안에서 어딘지 이상한 파열음을 내는 순간, 장면을 만났고 이를 관찰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익숙한 공간 안에서 마주한 집의 외관에서 어떤 낮설음과 이상한 욕망과 충격을 건져 올려 찍는다. 눈에 보이는 광경을 넘어선 다른 어떤 것을 암시해주는 순간을 사진으로 재현하고자 한 것이다. 그것은 이른바 찰나에 대한 노스탤지어에 가깝다. 작가는 밤에 유독 특별한 순간, 장면이 되어버린 것을 건져 올리고 일상과 일상 너머,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느낌이 사진 속에서 공존하도록 배려한다. 우리는 일상을 살면서 늘상 현실의 풍경을 바라보지만 그 안에 감춰진, 그것이 두르고 있는 독특한 순간의 모습은 잘 보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란 그것을 보게 하는 이들이고 보여주는 존재들이다. 일상속의 비일상, 현실 속의 비현실, 사물 속의 꿈, 풍경 속의 또 다른 세계가 이어져있는 것을 보는 일, 보게 하는 일이다. 작가는 그렇게 현실계에 은밀하게 숨겨진 무엇인가를 발견한다.

 

손은영_밤의 집 The Houses at Night#55_Ed.2/5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20×160cm_2020

도시 공간에 자리한 모든 사물들은 침묵하는 부동의 것들이다. 몸은 있지만 입을 가지지 못해 발화하는 음성은 없지만 그래서 고막에 와 닿는 소리는 없지만 분명 사물은 표면과 질감으로 인간의 말과는 다른 말을 건네기도 한다. 문법과 규칙이 소거된 그 상형문자 같기도 한 이상한 문자, 말은 차갑고 완고하게 사물의 피부에 문질러져있다. 낯선 집의 외벽은 다양한 흔적과 상처를 간직하고 있다.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잔뜩 서려있고 그것과 함께 했던 누군가의 체취와 지문이 저부조의 층을 만들며 눌려있다. 그래서 사물의 피부에 눈을 주면 사물의 생애는, 그 역사는 매개 없이 그대로 다가와 안긴다. 무수한 사물들로 채워진 도시는 그런 의미에서 거대한 텍스트이자 관능적인 몸들이다. 시선으로 읽고 마음으로 상상하는 텍스트로서의 풍경이다. 도시에서 산다는 것은 사물들 속에서 사는 일이고 사물을 관찰하는 관찰자가 된다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자신을 둘러싼 공간, 환경을 질문하는 일이다.

 

손은영_밤의 집 The Houses at Night#61_Ed.2/5_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20×160cm_2021

작가는 적극적으로 그 도시의 내부로 잠입하면서 무엇인가를 관찰하고 찾아낸다. 그녀가 찾아낸 것은 어둠 속에 박힌 작은 집들이다. 밀폐된 벽을 성처럼 두르고 소박한 불빛을 등댓불처럼 방출하는 그 집들의 벽은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삶의 뒷면을 보여줄 뿐이다. 앞이 부재한, 따라서 표정이 지워진 뒷모습은 보는 이의 상상력을 발동시킨다. 그것은 다양한 페르소나를 가져야 하는 정면보다 더 정직하다. 집이란 공간도 그 내부의 인테리어나 살림살이보다 그 모든 것을 보자기처럼 죄 감싸버린 벽에서 진실에 더 가까운 것을 볼 수 있다. 작가는 그 벽 앞에서 들리지 않는 음성을 듣고 보이지 않는 집 안 사람들의 몸의 놀림을 보고 있다. 상상하고 있다. 침묵으로 절여진 집의 외벽이란 경계를 마주하면서 그 피부와 피부 너머를 동시에 바라보고 있다.

 

손은영_밤의 집 The Houses at Night#64_Ed.2/10_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60×120cm_2021

인간의 자취가 사라진 이 빈 풍경에는 이상한(?) 건물과 집의 내부에서 부드럽게 빛나는 불빛을 전해주는 창문만이 무거운 침묵 속에 놓여있다. 풍경이라기보다는 차갑고 즉물적인 정물의 느낌을 받는다. 다만, 보는 이들은 밝은 창문으로 인해 살림살이의 흔적, 사람의 자리를 은연중 상상하게 한다. 햇빛이 모였던 창이 밤이 되면 다시 안의 빛을 밖으로 방사한다. 그것은 막막하고 절대 암흑의 공간에 고립된 집들이 외부에 보내는 구원의 신호와도 같다. 생각해보면 모든 집들은 타인에게는 무척이나 완강하고 폐쇄적이다. 사람들의 최종 귀착점은 결국 각자의 집이지만 그것은 지극히 사적이고 그만큼 내밀하고 고독하다. 그래서 타자의 집은 타자만큼, 그보다도 타자적이다. 더구나 전통사회와 같은 공공의 영역과 사적 영역의 구분이 모호한 공동체가 무너진 이후 도시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타자에 대한 의구심과 경계심을 보이면서 이를 집의 구조를 통해 반영한다. 아파트 공간이 그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아파트는 기계와 같은 기능 복합체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손은영_밤의 집 The Houses at Night#85_Ed.2/10_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60×120cm_2021

반면 손은영이 사진으로 담은 집은 단독주택이자 현재의 거주 공간에서 낙후되어 밀려나고 퇴락한 것들, 빈한했던 지난 시절의 흔적을 아직도 간직한 것들로서 가난하고 소박한 살림을 숨기지 않는다. 벽으로 감싸인 납작한 집들은 방이 있음을 암시하는 창문과 그 안에서 사람이 살고 있음을 발신하는 불빛이 새어나온다. 작가는 아직도 우리 주변에 저런 집들이 존재하고 그 집에 분명 사람이 살며 생을 영위하고 잠이 들고 꿈을 꾸고 내일을 도모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우리는 작가가 보여주는 세상의 이 집들, 밤을 배경으로 고독하게 직립한 집의 외관을 통해 그 안에 있는 누군가의 삶과 생애를 기억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작가는 이 사진들이 "상처 입은 인간에 대한 위로"가 되고 싶다고 한다.

 

손은영_밤의 집 The Houses at Night#89_Ed.2/5_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20×160cm_2021

사실 작가는 이 빈집들을 촬영한 다음 후보정을 통해 창에 조명을 기입했다. 그래서 흡사 실제 전기불빛이 퍼지는 듯한 허구를 만든다. 집들은 정면에서 빛을 받고 있다. 지붕과 벽이 어둠 속에서 돌출하듯 밀고 나온다. 이 집들은 주변 풍경으로부터 고립되어 있거나 밀려나온 듯하다. 주변 풍경에 비해 이질적이고 생경한 외형을 간직하고 있는 어색하면서도 안쓰러운 이 집들은 또한 그런 사람의 초상, 생애를 대리한다. 반면 볼품없어 보이는 집의 외관과는 달리 작은 창문을 통해 나오는 조명의 불빛은 마냥 환해서 무척이나 당당하다. 그것은 자신의 가난에 기죽지 않는 자존심으로 견디고 있는 매 순간을 연장시킨다.

 

손은영_밤의 집 The Houses at Night#49_Ed.3/15_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60×80cm_2020

이처럼 작가는 이미 존재하는 도시의 풍경, 작은 집을 오브제 삼아 흥미로운 풍경, 정물을 구성한다.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레디메이드미학과 연루되면서 절묘한 구성과 기이한 형태, 매력적인 색채들의 조화로, 이상한 조합으로 만들어낸 예기치 못한 미이고 조형이다. 사진이 란 이미 존재하는 것의 피부에 달라붙어 이를 떠내는 일이지만 동시에 그로부터 너무 낯설고 이상한 아름다움을 무의식적으로 건져 올리면서 사진/회화의 구분을 무의하게 가로질러 가는 시각이미지를 선사한다. 벤야민이 언급한 것처럼 인간의 길들여진 시선과는 다른 사진이라는 기계적 시선으로 인해 가능한 초현실적인적인 힘을 누수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사진은 가장 보편적이고 익숙한 사진에서 출발하지만 동시에 그 비근한 소재에서 찾아낼 수 있는 수수께끼와도 같은 지점을 예민하게 지각시켜주는 사진이다. 무엇이라 설명하기 힘들고 규정하기 어려운 묘한 느낌과 모종의 기운이 어둠 속에서 밀도 있는 공기의 층으로, 몸으로 휘감기는 안개처럼 잔뜩 피어오르고 있다는 생각이다. 작가는 바로 '그것'을 찍고 싶었던 것 같다. 박영택

 

손은영_밤의 집 The Houses at Night#33_Ed.3/15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60×80cm_2020

현대인들을 일컬어 집 잃은 존재 homeless being 라고 한다. 집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집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나 동물이 추위, 더위, 비바람 따위를 막고 그 속에 들어가 살기 위하여 지은 건축물 등을 말한다. 단지 생명 유지가 집의 역할의 전부는 아니다. 기본적으로 집이란 한 인간의 태어나고 성장하는 생물학적인 장소이자 가족 구성원으로부터 사회의 규범과 질서를 배우고 세상을 알아가는 사회적 장소이다. 이와 더불어 집은 모든 개인적인 행위들이 일어나는 지극히 일상적 장소이기도 하다. 이처럼 주거 공간, 즉 집으로 불리는 건축물은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서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손은영_밤의 집 The Houses at Night#07_Ed.2/10_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80×110cm_2020

집은 인간이 거주하는 물리적인 공간이지만 개인의 경험과 정서가 결합하면서 가족 구성원과 추억을 공유하고 미래의 꿈을 함께 하는 삶의 중요한 터전이다. 즉 인생에서 가장 긴 시간을 보내는 장소이기도 하다. 하이데거는 인간 실존의 본질이자 존재의 기본적인 특성을 집에 거주하는 것으로 보았다. 집은 단순히 우연히 살게 된 가옥이 아니다. 그것은 어디에든 있는 것이거나 교환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의미의 중심인 것이다. 따라서 집은 외부와 나를 구분 지어주는 경계이기도 하면서 개인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장소이기도 하다.

 

손은영_밤의 집 The Houses at Night#75_Ed.2/10_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80×110cm_2021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집은 이런 정서적이고 정신적 의미보다는 경제적 가치의 척도가 되어버렸다. 젊은 세대는 삶의 목표를 집을 마련하는 것에 두었고 집을 마련하기 위해 일을 한다고 대답한다. 점점 갈수록 생업에서 돌아와 내 몸 편히 쉴 수 있는 집을 마련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집의 가치가 인간 실존의 문제보다 상위에 군림해버렸다. 몇 평의 집에 사는지, 자가인지 월세인지, 아파트인지 연립인지, 강남인지 어느 동네인지 등에 따라 한 인간의 능력과 가치를 판단하는 척도가 되었고, 부모 세대는 자식에게 집을 물려줄 수 있는지에 따라 능력의 지표가 되는 세상이 되었다.

 

손은영_밤의 집 The Houses at Night#46_Ed.3/15_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60×80cm_2020

우리는 어떤 집을 욕망하는가. 비록 집이 한편으로는 구체적인 건축물의 형태를 하고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삶에 있어서 가족 구성원들의 필수적인 정서적인 교류 공간이라는 점을 다시 생각하면서 '밤의 집'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바슐라르가 지적한 대로 실제로 사람들이 거주하는 모든 공간은 본질적으로 집이라는 개념을 지니고 있다고 했듯이 다양한 형태의 집들이 존재하고 있다. 우리가 기존에 생각하던 '전형적인' 주거 공간과는 달리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다. '밤의 집'에서 일관되지 않는 거주 구조를 보여주고 싶었다.

 

어릴 적, 아버지의 직업으로 인해 가족과 떨어져 지냈던 기억이 있어서 가족에 대한 애착과 온전한 가정에 대한 그리움이 적지 않았다, 어둠 속에 자리를 잡은 집을 들여다보면 그 속에서 사는 가족이 보이는 듯하다. 비록 화면에는 사람은 부재하지만, 창문 밖으로 새어 나오는 빛을 바라보고 있으면 가족 간의 대화가 들리는 듯했다. 자신을 가장 힘들게 하는 장소가 되기도 하지만 엄마의 뱃속과 같이 평온하면서 가장 사적이고 소중한 공간으로 보이도록 충만한 색감을 많이 사용하였다. 밤의 공간 속에서 찬연한 익명의 집들은 아름답게 빛나는 존재의 집으로 드러내 보이고 싶었다. '밤의 집'은 소유의 대상으로 전락한 집에 대한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고 현재를 살아가는 집 잃은 영혼을 위로하는 따뜻한 빛을 담아내고 싶었다. 손은영

 

정전 7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나를 울린 한국전쟁 한 장면” 사진전이

지난 21일부터 26일까지 인사동 ‘갤러리 인덱스’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된 한국전쟁 특별전은 20여 년 전 소설가 박도 선생께서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을 여러 차례 방문해 발굴해 낸 사진이다.

 

어둠 속에서 잠자던 사진을 찾아와 여러 권의 사진집을 펴내

우리가 몰랐거나 잊었던 6.25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주었다.

 

그 사진은 한국전쟁에 참여한 미국 종군사진가에 의해 기록된 사진이지만,

소설가 박도씨가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칠 수밖에 없었던 중요한 사료들이다.

 

우리는 긴 세월 동안 몇 되지 않는 국내 종군 기자들의 사진이나

정부에서 공개한 사진으로 전쟁을 바라보며 기억해야 했다.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눈 아픔에 앞서, 정부에서 내 세운건 오로지 승전과 반공이었다.

 

6.25를 이념의 편향에서 벗어나 사실 그대로 바라보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빨갱이란 말을 노골적으로 내뱉는 현실에서 어쩌면 두려운 일일 수 밖에 없었다.

정전 70주년을 맞이했건만, 아직도 국민의 인식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번에 마련된 6.25 특별전은 그동안 펴낸 사진집에서 골라낸 사진들이다.

나이 어린 북한 소년병이 미군에게 조사받는 장면에서부터

부역자로 몰려 죽임을 당한 비참한 장면 등 그날의 아픔을 되새기게 하는 장면들이다.

 

소설가 박도 선생은 발굴한 사진으로 사진집만 펴낸 것이 아니라, 소설 ‘전쟁과 사랑’도 펴낸 바 있다.

그 소설은 “사랑의 정동이 감동적으로 그려진 차원 높은 전쟁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전쟁과 사랑 / 박도 장편소설 / 387면 / 눈빛출판사

지난 6월 21일 오후 5시에 개막된 한국전쟁 특별전에 박도 선생의 개막기념 강연이 있었다.

 

눈빛출판사 이규상대표를 비롯하여 안미숙관장, 미술평론가 최석태, 사진가 정영신, 곽명우,

장병국, 박기서, 김성식, 이성호, 박정호씨 등 20여 명이 자리했다.

 

사진을 발굴해 온 과정에서부터 한 장의 사진에 영감받아 쓰게 된 소설

‘전쟁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한 시간 가까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그 귀중한 사진전 개막식에 사진가가 세 사람밖에 참석치 않았다.

사진 만드는 사진작가는 차고 넘쳐도, 기록하는 사진가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말이다.

사진가만이 아니라 일반 대중의 기억에서도 ‘한국전쟁’이 서서히 잊혀져 가는 현실이 더 슬펐다.

 

전쟁을 겪은 그 당시 사람들은 대부분 돌아가셨다 치더라도,

그 후손이 동족상잔의 아픔을 잊거나 관심에서 멀어져 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사실, 그 자리에 참석한 분도 박도 선생이나 몇몇만 한국전쟁 직전 세대지, 대부분 전후세대였다.

 

나 역시 네 살 적 일이라 그 기억은 미미하지만,

육이오를 떠올리면 희미하지만 잊을 수 없는 가슴 떨리는 일이 있다.

 

북한군들이 고향인 경상남도 영산까지 밀고 내려왔을 때의 일이다.

낙동강 전투의 최후 보루인 내 고향은 피비린내 나는 전장의 한복판이었다.

남산에는 유엔군이 진을 치고 북쪽 영축산에는 북한군들이 포진하여 혈전을 벌였다.

마을 사람들은 전장을 피해 뿔뿔이 흩어졌다.

 

한국전쟁2 / 768면 / 박도 엮음 / 가격29,000원 /눈빛출판사

전쟁 포화가 잠잠해질 즈음 나를 들쳐업은 어머니가 살던 집을 찾아 나섰다.

남산 아래 미나리꽝 뚝 길로 지나갈 무렵이었다.

피를 흘리고 쓰러진 군인이 물을 달라며 갑자기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움켜잡았고,

옆에 있던 군인은 그냥 가라며 총부리로 위협했다.

 

한국전쟁1 / 768면 / 미해외참전용사협회 엮음 / 가격 29.000원 / 눈빛출판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두려움에 떨던 어머니의 받쳐 업은 두 손이 내 몸을 꽉 조였다.

간신히 군인의 손을 뿌리치긴 했지만, 혹시 뒤에서 총을 쏠까 등에 업힌 나를 가슴에 안고 뛰었는데,

어머니의 온몸은 땀으로 흥건히 젖었다.

 

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 / 글: 김원일외 3명, 사진편집: 박도 / 가격18,000원 / 눈빛출판사

그때 느낀 어머니의 거친 숨결과 전율감은 숱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생생한데,

이것이 내 기억에 남은 유일한 한국전쟁의 잔상이다.

 

정전 70주년 육이오 맞아, 인사동에 사진전 보러가자.

여의치 않다면 책이라도 구해보자.

누가 말했는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사진, 글 / 조문호

 

장종운 '젊은 날의 초상' 사진집 표지 / 168면 / 눈빛출판사 / 28,000원

사진가 장종운씨가 소대장 시절 찍은 국내 최초 병영기록 사진집 ‘젊은 날의 초상’이 ‘눈빛출판사’에서 나왔다.

사진전은 지난14일부터 20일까지 인사동 ‘갤러리 인덱스’(02-722-6635)에서 열린다.

 

전시된 사진들은 ROTC 25기로 임관한 장종운씨가 전방부대 박격포 화기 소대장으로 배치받은

1987년부터 전역한 1989년까지 기록한 생생한 병영기록이다.

 

사진가 장종운

군대 사진으로는 이한구, 이규철, 조성기, 강재구 등 여러 명의 사진가가 발표한 바 있지만,

소대장이 부대에 암실을 차려놓고 찍은 사진도 처음이지만, 그중 오래된 또 다른 기록이라데 의미가 있다.

 

전시가 시작된 지난 6월 14일 오후4시 무렵 갔더니, 작가 장종운씨를 비롯하여 '눈빛출판사' 이규상대표,

'인덱스' 안미숙 관장, 사진가 김문호, 정영신, 이 다, 곽명우,씨 등 반가운 분이 많았다.

 

 

작가로부터 당시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이런저런 군대 이야기하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사진집에는 전시된 사진 외에도, 또 다른 추억을 떠올리는 사진이 많았다.

 

아래는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의 ‘젊은 날의 초상’사진집 서문에서 발췌했다.

 

인연

이 사진집에 수록된 사진들을 나는 35년 전인 1989년에 본 적이 있다. 장종운 중위가 전역하고 고향으로 내려갈 때인지 아니면 전방에서 잠시 외출을 나온 것인지는 불분명하나 그는 어느 날 우리 출판사를 방문해 이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1989년이면 막 출판사(1988년 창립)를 시작할 무렵이었고, 한두 권 책을 냈을 때였는데 그가 어떻게 우리 출판사를 알고 찾아왔는지 몰라도 고마운 일이었다. 당시는 한국 사회가 민주화를 향해 몸살을 앓고 있었지만 아직 군부독재의 잔재가 남아 있던 시기였다. 우리 출판사의 첫 책 크리스 마커의 북한 사진집 『북녘 사람들』마저도 억울하게 북쪽을 찬양하는 도서로 분류돼 마포경찰서 정보과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사무실을 이전해 짐을 풀고 나면 반갑지 않은 담당 요원이 제일 먼저 방문하곤 했으니 지금 생각해도 그들의 정보력은 놀라운 것이었다. 이런 서슬 퍼런 공안정국도 이유였고, 군 관계 사진은 보안이 필수인데 찍힌 지 얼마 안 된 따끈한 사진을 바로 출판하면 촬영자에게도 불이익이 돌아갈 우려가 없지 않았다. 또 창업 초기라 출판사 경영도 녹록지 않아 원고를 반려하고 나중을 기약했다.

 

최근에 작가로부터 당시 사진집을 내고 보도사진계로 진출하고 싶었다는 얘기를 듣고 그에게 사진이 절실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게 그런 힘이 있었는지 몰라도 그때 사진가로의 길을 터주지 못한 것에 대한 일말의 책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사진가의 길은 가시밭길이고 그때나 지금이나 사진은 돈이 되지 않는 매체이니 사진의 길로 인도하지 않은 것은 어쩌면 그와 그의 가족을 위해 다행스러운 일이 아닌가 싶다. 어쨌건 그는 전역 후 고향에 내려가 한평생 보험업계에 투신하여 2023년 4월 정년퇴임을 했다. 비록 그때 사진집을 내지는 못했으나 우리는 종종 전화 통화로 서로의 안부를 묻곤 했다. 그는 우리 출판사에서 나오는 사진집들을 사보며 취미 삼아 사진을 오랫동안 해올 정도로 그의 인생에서 사진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 않다. 이제 고대하던 사진집을 내게 되었으나 원고를 돌려주며 그때 기약한 ‘나중’이 일제강점기와 맞먹는 35년이나 될 줄은 작가나 나도 몰랐던 일이다. -중략-

 

군에서 공식적으로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병사는 정훈병이다. 1970년대-80년대에는 고된 훈련과 근무에서 벗어날 수 있으므로 사진병으로 군 복무를 하기 위하여 사진학원을 다니는 장정들이 많았다. 사진병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전통을 따랐는지 통신병과에 소속되어 있다가 2014년 정훈병과로 바뀌었다고 한다. 사진병은 주로 간부들을 따라다니며 군대내의 공식 행사 및 교육훈련 장면을 찍는다.

 

군에서 홍보용 화보집을 만들거나 보도기관에 배포하는 사진들은 신형 탱크나 자주포 등 현대화한 군 장비와 난관을 뚫고 용맹 무쌍하게 진격하는 부대의 훈련상황 등을 찍은 공식적인 홍보용 사진들이다.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사진이 유산지에 덮혀 맨 앞쪽에 배치하고 이어서 국방부장관, 육군참모총장의 사진이 역시 유산지에 덮혀 머리말이나 격려사와 함께 나온다.

 

사진병은 아니지만 사진 전공자 가운데 군 복무를 하며 사진을 찍은 사진가로는 이규철, 이한구 등이 있다. 이들은 휴가 복귀 중 카메라를 몰래 영내에 반입하여 선임들의 묵인하에 내무 생활을 촬영해 전역 후 전시를 하거나 사진집 (이한구 ‘군용’)을 통해 공개하였다. 1990년대 초에 울산지역 해안초소에서 근무했던 이규철은 신병 군기 잡기, 얼차려 등 내무 생활 중 벌어지는 군대 폭력을 사진을 통해 보여주었고, 이한구는 군용품으로 다뤄지는 병사의 인권 문제를 사진으로 제시했다. 사진 전공자이며 부사관(중사)으로 복무한 특이한 이력의 사진가 조성기는 301특공여단의 교육훈련 과정을 다큐멘트해 1993년 군에서 전시회를 가진 바 있다. 여단장의 허락을 받아 촬영한 공식 사진이지만 고된 교육훈련에 지친 훈련생의 모습과 휴식, 장비 점검 등 훈련의 이면을 기록하였다.

 

장종운 소대장의 사진에는 용감하고 늠름한 병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역시 대대장의 허락하에 카메라를 영내에 반입해 사진을 찍었다지만, 그의 앵글은 군의 공식 사진과는 거리가 멀다. 대학 동아리에서 사진을 익히고 임관 전 전시회를 했듯이 카메라를 다루는 그의 능력은 수준급이었다. 일반인들은 다루기 힘든 마미야 중형카메라를 사용하고 독신 장교 숙소인 BOQ에 필름을 현상 인화할 수 있는 암실을 마련했을 정도로 그는 사진에 빠져 있었다. 초상사진을 찍으며 군용담요를 배경막으로 사용한 것도 이채롭다. 특히 빼당(페치카 당번병), 이발병, 사역병 등 병사들의 사진은 독일의 사진가 아우구스트 잔더(August Sander)가 독일인들을 직종별로 분류해 남긴 사진 기법을 떠올리게 한다.

 

정종운 소대장은 소대원들을 찍되 훈련상황보다는 청춘을 반납하고 혹독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병사들의 일상과 내면에 주목했다. 그는 전지적 서술자(Omniscient narrator)로서의 시점을 시종일관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서술자는 인물의 내면이나 인물 간의 관계를 파악한 뒤 이야기를 서술한다. 그는 소대장실에서 소대원들의 신상 명세서를 보았을 것이고, 또 전임자나 내무반장으로부터 소대원 개개인의 특성을 전해 들었을 것이다. 앞의 이규철과 이한구가 내무 생활자로서 직접 보고 목격한 1인칭 시점을 유지하고 있는데반해 장종운 소대장은 간부(장교)라는 3인칭 시점에서 1980년대 후반의 병영생활과 병사들의 모습을 사진기록으로 남겼다.

 

군대라는 시공간의 제약에서 벗으나 비교적 자유롭게 촬영한 그의 사진은 대한민국 건군 사상 간부가 찍은 최초의 병사들에 관한 기록이라는데 그 의미와 가치가 있다. 그런데 아무리 객관적 기록이라해도 사진은 촬영자의 주관을 거치게 된다. 징집된 젊은 영혼들이 모여 있는 한 소대를 책임졌던 소대장의 연민과 안타까운 시각이 사진에 묻어난다. 계급을 떠나 카메라를 매개로 병사들의 불안과 상처를 감싸안고 그들과 하나가 되었다. 그도 말한 바 있지만 그것은 병사들이 그를 형이나 친구처럼 따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무리 소대장일지라도 군림하려 들면 병사들은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사진집 ‘젊은 날의 초상’은 지난날 병사들이 처해 있던 환경과 일상 그리고 그들의 내면세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소중한 기록이다. 이러한 기록이 군을 폄훼하거나 평가 절하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병영생활의 진실을 보여줌으로써 군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과 개선의 필요성을 새롭게 유도한다. 실사구시와 진실은 망각과 환상만을 불러일으키는 경직된 사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제시할 때 비로소 바로 볼 수 있게 된다.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했지만 젊은 날의 병사들은 현실을 받아들이며 이를 잘 참고 견뎌냈다. 지금은 초로에 접어들었을 이 사진집에 등장하는 소대원이나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에게 장종운 소대장의 사진은 추억 이상의 것을 말해준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고난의 군대였지만 그때는 그래도 청춘이었다. 청춘은 언제나 그립고 아쉬운 법이다.

 

이등병 월급이 3천원에서 60만원대에 이르기까지 정말 오랜 세월이 흘렀다.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앞으로 군의 사정도 점차 나아질 것이다. 35년 전에 이 책이 나왔다면 아마 나는 상처 치유와 위안 그리고 생명 복원력이 있는 세월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 이규상 (출판인)

 

2023 GRAPHOS(그라포스)

2023_0608 ▶ 2023_0622 / 일,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23_0610_토요일_04:00pm

 

참여작가

김승환_김정현_김지영_라인석

박경태_박세진_박정랑_엄효용_최수정

주최 / 충무로 갤러리

 

관람시간 / 11:00am~07:00pm / 토요일_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충무로갤러리

CHUNGMURO GALLERY

서울 중구 퇴계로2728 한영빌딩 B1

Tel. +82.(0)2.2261.5055

www.chungmurogallery.com

blog.naver.com/chungmurogallery

@chungmuro_gallery

 

1844년 탈보트에 의해 최초의 사진집인 자연의 연필 Pencil of nature이 발표되었다. 사진의 태동기에 만들어진 이 책은 탈보트가 촬영하고 인화하여 만든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자연의 연필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사진은 순수한 자연의 개입으로 인해 완성된 작품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사진을 향한 탈보트와 많은 발명가의 보이지 않는 고뇌와 실패의 흔적들이 보배처럼 담겨있으며, 지금도 그러한 탐구 정신을 이어가는 작가들에 의해 사진은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김승환_네모심장T_광택지에 피그먼트 잉크젯 프린트_85×120cm_2023
김승환 네모심장F_광택지에 피그먼트 잉크젯 프린트_96×135cm_2023
김정현_부활#052_카본 프린트_45×45cm_2019
김정현_부활#069_카본 프린트_45×45cm_2019
김지영_In the Beginning#31-Jeju_코튼지에 피그먼트 잉크젯 프_70×70cm_2017
김지영_In the Beginning#38-Haeundae_코튼지에 피그먼트 잉_70×70cm_2020
라인석_Pencil on paper_종이에 피그먼트 잉크젯 프린트_110×73cm_2012
라인석_롯데월드타워로부터, 눈_touched paper에 피그먼트 잉크젯 _106×80cm_2018

그라포스는 사진 매체를 이용해 그림을 그리듯 작품을 완성하는 작가들의 모임이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각기 다른 형식과 방법으로 하늘, 나무, 과일, 꽃 등 일상적인 소재를 그들 만의 언어로 재구성하고 있다. 그들에게 사진 매체는 사물을 재현하는 기능적 도구를 벗어나, 유희와 실험적 행위로 활용되고 있으며, 그 결과 완성된 작품들은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모호하게 넘나들고 있다. 또한 그들의 작품 속에는 작품을 위해 쏟은 여러 실험적 행위와 시간이 중첩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작품에 남겨진 작가의 호흡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박경태_Methuselah_green apple#01_코튼지에 피그먼트 잉크_55×55cm_2020
박경태_Methuselah_peach#02_코튼지에 피그먼트 잉크젯 프린트_55×55cm_2020
박세진_사유되지 않는 것#1_광택지에 피그먼트 잉크젯 프린트_80×60cm_2018

 

박세진_바라보게되다_매트지에 피그먼트 잉크젯 프린트_80×60cm_2020
박정랑_고등어의 꽃단장_수채화지에 시아노타이프_20×20cm_2002
박정랑_어둠 속의 빛_수채화지에 시아노타이프_15×20cm_2015
엄효용_사려니숲 가을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60×105cm_2018
엄효용_축령산 편백나무 여름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90×120cm_2020
최수정_천년의 꽃-05용문사_수채화지에 검 바이크로메이트 프_70×50cm_2017
최수정_천년의 꽃-07용문사_수채화지에 검 바이크로메이트 프_70×50cm_2017

이번 전시는 매년 열리는 정기전으로 김승환 네모심장, 김정현 부활, 김지영 In the Beginning, 라인석 휘어진 세계로부터, 박경태 Methuselah, 박세진 내면의 표상, 박정랑 마음속의 우화, 엄효용 리틀 포레스트, 최수정 Millennium Flowers의 작품들이 전시된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빠르고 쉬운 것을 탐닉하는 시대에 반하여, 천천히 그리고 깊게 호흡하며 실험적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이것은 사진의 태동기처럼 새로운 변화를 원하는 작가들의 염원이며, 이것이 그들의 작업이 주목받는 이유이다. 그들은 행동하는 작가들이다. 김정현

 

평평한 것들 Flatness of Things

김옥선/ KIMOKSUN / 金玉善 / photography 

2023_0609 2023_0813 / 월요일 휴관

김옥선_Adachi Portraits_acp_srw259_디지털 C 프린트_2023

김옥선 홈페이지_www.oksunkim.com  

 

기자간담회 / 2023_0612_월요일_11:00am

도슨트 / ~일요일 03: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입장마감_05:30pm / 월요일 휴관

 

주최,주관,기획 / 성곡미술관

 

입장료 / 일반(18~64) 5,000원단체,

65세 이상, 장애인, 국가유공자, 예술인패스 4,000

초등생 이하, ICOM 무료 인터파크 티켓예매

 

 

성곡미술관

SUNGKOK ART MUSEUM

서울 종로구 경희궁길 42(신문로 21-101번지) 1

Tel. +82.(0)2.737.7650

www.sungkokmuseum.org @sungkokartmuseum

 

김옥선(b.1967, 서울)은 사실성과 객관성에 충실한 사진으로 땅 위를 표류하는 우리 사회의 주변적 존재와 풍경을 새겨온 작가다. 떠남과 머묾, 차이의 공존, 경계에 선 이들에 주목하는 그의 시선은 결혼 이후 건너간 제주에서 30년 가까이 살며 겪은 이주의 경험과 가족을 비롯한 주변의 이방인들을 이해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한 것이다. 성곡미술관의 '한국중견작가초대전'으로 마련된 이번 개인전 평평한 것들 Flatness of Things은 주체와 객체, 문화와 자연의 대비 너머 차이를 딛고 존재하는 다양한 ''들의 초상을 평평한 시선으로 담아낸 김옥선의 지난 20여 년의 작업을 나란히 펼쳐 보인다.

 

김옥선_The Shining Things_untitled_jmd232_디지털 C 프린트_2023

언어, 사고, 문화 등 서로에게 이질적인 조건과 환경 속에서 함께 사는 커플들을 담은 초기작 해피 투게더(20022004/2023)를 시작으로, 김옥선은 결혼과 취업, 여행 등 각자의 이유로 경계를 횡단하고 모험하는 이들에 대한 관심을 이어 왔다. 특히, 베를린에 거주하는 한인 간호 여성들의 모습을 담은 베를린 초상(2018)을 계기로 근현대 역사 속에서 각자가 지닌 이산의 경험과 그로 인한 삶의 변화를 주체적으로 꾸려가는 여성들에 주목하고 있다. 그 연장선인 신작 신부들, 사라(2023)20세기 초 사진 교환만으로 성사된 결혼으로 낯선 미국 땅으로 건너간 최초의 사진신부 '최사라'와 이름 모를 신부들을 오마주하며, 베트남, 몽골, 중국 등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결혼이주여성들의 초상을 보여준다. 작가는 사진신부의 기록 자료를 재현하는 대신, 어느덧 7년에서 20년 가까이 한국에서 가정을 이루고 적응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며 지금 우리 시대의 얼굴을 마주하게 만든다. 이번 연작에서는 기존의 작업과 확연히 구분되는 극적인 조명 연출이 돋보인다. 세 방향에서 조명을 비춤으로써 빛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인물에 입체감을 부여하는 고전적인 인물 초상의 조명 방식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옛 사진관 사진을 떠올리게 하는 레트로한 배경과 더불어 이와 같은 시도는 황학동의 한 사진관을 섭외하며 구체화되었는데, 사진관을 거쳐 간 수많은 한국인의 얼굴과 마찬가지로 새겨진 결혼이주여성의 초상은 그 또한 오늘날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얼굴임을 환기하고 증명한다.

 

김옥선_Adachi Portraits_acp_rsj551_디지털 C 프린트_2023

김옥선의 사진에서 익명화된 이 이름 모를 얼굴들은 시공간을 넘어 서로를 비춘다.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민족의식에 기반한 독립운동에서의 활약'이나 '외화벌이'와 같은 거시적인 목적과 성과에 기대어 기록되거나, '가족을 위한 희생'과 같은 부풀려진 서사 속에서 소비되어 온 이 개별 주체들을 김옥선이 달리 그려내는 방식이다. 그는 이 미시적인 존재들이 이주와 정착, 꿈의 실현, 가족의 형성 등 개인적인 삶의 영역에서 내린 선택들에 주목하고, 그들이 살고 있는 현재를 가시화한다. 그런데도 경계 밖으로 늘 미끄러지는 이들의 존재를, 김옥선은 사진을 통해 움켜쥔다. 오랜 시간 대상을 바라보고 사실적으로 포착하는 김옥선의 다큐멘터리 초상은 우리로 하여금 사진 속의 대상을 직시하고 그 이면의 의미를 마주하게 한다. 대상이 그 장소에 실재함을 기억하고 증거하는 사진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며, 실물 크기로 확대된 사진 속 얼굴과 시선을 교환하게끔 하면서 말이다.

 

김옥선_Adachi Portraits_acp_kns324_디지털 C 프린트_2023

김옥선의 사진에서 인간, 자연, 사물은 평평한 세계에 놓여 서로를 가리켜 보인다. 이국적인 낙원의 땅을 욕망한 인간에 의해 이식된 야자수가 어느덧 제주를 상징하는 식물로 자리 잡았듯, 김옥선은 제주의 나무들에서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을 비롯해 그간 담아왔던 이방인들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고 말한다. 신작 영상에서 작가는 경계를 표류하며 새로운 터전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 가는 이 존재들을 떠올리며 '야자수 인간'을 제시한다. 야자수의 외양을 하고 제주 곳곳의 풍경에 이질적으로 녹아드는 야자수 인간의 초상은 이들 각자를 연결하고 상징하며, 나아가 인간/자연, 유기체/비유기체 등의 구분을 교차-횡단하는 트랜스적 존재에 대한 작가의 상상적 산물이다.

 

김옥선_Brides_Sara_bsp_ahs130_디지털 C 프린트_2023

2023년 착수한 아다치 초상은 재일교포 2, 연변 등 중국에서 온 교직자, 일본인-미국인 부부와 그들의 자녀 등 재일외국인의 얼굴을 보여준다. 집과 근무지, 주변 동네와 자연, 신사 등 그들이 몸담은 다양한 장소를 배경으로 촬영한 이번 시리즈는, 각자 좋아하는 제주의 풍경 혹은 그들이 머무는 실내 공간을 배경으로 제주의 이방인을 담은 전작의 양식들이 종합된 듯 보인다. 베를린 초상에서 동일한 형식의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열거하되 자유로운 포즈를 허용하는 등의 유연성을 견지했다면, 아다치 초상에서 그 유사성은 더욱 느슨해진다. 대상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삼각대와 시트 필름 대신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하면서 보다 자유로운 카메라 워킹이 가능해졌기 때문인데, 그로 인해 인물의 자연스러운 모습과 그들의 일상적 삶에 더욱 가까워진다. 홀씨처럼 날아온 이 존재들은 어느새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으로 우리 곁에 자리한다. 김옥선은 빛나는 것들(20112014/2023)에서 뒤엉킨 잔가지와 넝쿨, 이끼가 잔뜩 낀 나무 둥치, 길 밭에 볼품없이 자란 야자수에 주목한다. 무분별한 개발이 휩쓸고 지나간 지금의 제주에서는 이 평범한 풍경마저도 찾아보기 어렵지만, 이 특별할 것 없는 주변적 존재들은 여전히 사진 밖으로 생명력과 존재감을 발산하는 듯하다. 순수박물관(2016)에서도 반핵 기호가 그려진 버려진 탁자, 손때 묻은 온도계, 지나간 계절을 뒤로 하고 우두커니 놓인 선풍기는 각자 그들이 놓인 장소의 흔적과 관계의 기억을 품은 채 잔존한다. 이처럼 초상사진의 방식을 빌어 담아낸 자연과 사물의 장면에는 이들을 독자적인 객체이자 존재로서 호명하고 존중하는 작가의 의도가 들어 있다. 김옥선은 우리의 세계가 인간과 자연 그리고 비유기체적인 사물들이 함께 얽히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만들어지는 것임을 사진을 통해 아로새긴다.

 

김옥선_Brides_Sara_bsp_sph796_디지털 C 프린트_2023

2차원 평면에 인화된 사진 매체의 고유한 평면성을 넘어서, 김옥선이 말하는 '평평함'은 무엇일까. 너와 내가 '평평하다'는 것은 각자가 딛고 있는 지면이 굴곡 없이 고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건 우리 각자가 동등한 선상에 서 있다는 것이며, 서로가 위치한 장소를 긍정하는 것은 곧 그 존재 자체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옥선의 카메라에 담긴 대상들은 인간, 자연, 사물의 구분과 인종과 젠더, 국경 등 각종 위계에서 자유로운 평평한 세계에 놓인다. 이처럼 각자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김옥선의 사진은 ''와 다른 존재를 이해하며 '우리'의 외연을 확장해 나가려는 노력이다. 그렇게 서로의 존재를 그러쥘 때, 서로가 정박해 있는 자리를 긍정할 때 우리 안에 자라날 환대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전지희

 

Through her photography, Oksun Kim has been recording people as peripheral beings who are constantly drifting in our society, as well as the landscapes that surround us, all the while remaining faithful to realism and objectivity. Kim's view to focus on departing and staying; the coexistence of differences; and people straddled on boundaries started with her own experience of migration, as she has been living on Jeju Island for nearly 30 years since her marriage, with constant attempts to better understand the lives of foreigners and strangers all around her, including her own family members. Flatness of Things, a solo exhibition of Oksun Kim at the Sungkok Art Museum, juxtaposes Kim's works over the past 20 years, in which she uses an egalitarian gaze to capture portraits of various things existing with differences, beyond the contrast between the subject and object and between culture and nature. Beginning with one of her early works, Happy Together (20022004/2023), which depicts couples living together in conditions and environments that are foreign to each other in terms of language, thought, and culture, Kim has continued to pursue her interest in people who cross boundaries and venture out for their own reasons, such as through marriage, work, and/or travel. In particular, with Berlin Portraits (2018), which looks at Korean nurses in Germany, Kim paid close attention to the experience of diaspora in modern history and the women who are actively managing the changes in their lives due to such experiences. As an extension of that, her newest work, Brides, Sara (2023), pays homage to Choi Sara, the woman who is believed to have been the first Korean picture bride, and other unnamed Korean brides who crossed over to the unfamiliar land of the United States in the early 20th century through arranged marriages carried out solely after exchanging photographs. At the same time, this artwork documents portraits of migrant women who came to Korea from Vietnam, Mongolia, China, and other countries. Instead of representing the archival materials of the picture brides, the artist capturesas they arethe lives of people who have been living in Korea for between seven and nearly 20 years. Some of them have started families, while others have become naturalized citizens. In this way, Brides, Sara also brings viewers face to face with the faces of our time. With its dramatic lighting, this series is distinctly different from her previous works. By illuminating her subjects from three different directions, she adopted the classic portrait lighting method of maximizing the effect of light and giving the portrait a three-dimensional look. Along with the retro backdrop reminiscent of old photo studio photographs, the project was realized by arranging the use of a local photo studio in Hwanghak-dong, Seoul. The portraits of married migrant women, which were captured like the faces of countless Koreans who have passed through the same photo studio, remind usand provethat they are also the same diverse faces that make up our society today. In Kim's photographs, these anonymized faces mirror each other across time and space. What is noteworthy is the way in which she portrays these individuals, all of whom have been recorded in terms of macro goals and achievements such as "playing an active role in the independence movement based on national consciousness" or "earning foreign currency," or consumed in inflated narratives such as "sacrificing for family" in a different way than before. Instead, Kim focuses on the choices these people make as microscopic beings in their personal livesmigrating and settling, realizing dreams, starting familiesand visualizes the present situation in which they live. And yet, their existence, which is always slipping outside the boundaries, is captured by Kim through her photographs. By looking at her subjects for an extended period of time and capturing them realistically, her photographs force us to look directly at the subjects and face the meaning behind them. Ultimately, she stays true to the purpose of photography, which is to remember and testify to the existence of the subjects in each specific place, as she allows us to exchange gazes with the faces in the photographs that are enlarged to life size. In Oksun Kim's photographs, humans, nature, and objects point to one another. Just as the palm tree, transplanted by humans who desired an exotic paradise, has become a symbol of Jeju, Kim says she saw in the trees of Jeju the faces of the strangers she had been capturing, including the children of multicultural families. In her new video Home (2023), the artist presents "palm tree humans," recalling these beings who are drifting over boundaries and constantly making their places in new lands. The portrait of the palm tree human, which has the appearance of a palm tree and blends into the landscape of Jeju, is the product of the artist's imagination, which connects and symbolizes these people. Furthermore, it is also a symbol of a transitional being that crosses over and traverses the divisions of human/nature, organism/non-organic objects. Begun in 2023, the series Adachi Portraits shows the faces of expats in Japan, including second-generation overseas Koreans in Japan, lecturers from Yanbian and other cities in China, as well as a Japanese-American couple and their child. Photographed in various places where they stayed, including their homes, workplaces, and neighborhoods, the series seems to be a synthesis of styles from her previous works, which depicted Jeju's foreigners against the backdrop of their favorite Jeju landscapes or the interior spaces they occupy. If Berlin Portraits maintained flexibility by enumerating images in the same format but allowing for free poses, the similarities are even looser in Adachi Portraits. This is because the use of a digital camera, instead of tripods and sheet film that restrict the movement of the subjects, allows for free camera work. This brings the artist's work closer to the naturalness of the subjects and their everyday lives. These beings that flew here like spores became part of our everyday lives in the most ordinary and mundane ways. In The Shining Things (20112014/2023), Kim pays attention to the tangled branches and vines, the moss-covered base of a tree trunk, and the palm trees that grow unattractively in the roadside field. Even these ordinary scenes are hard to find on Jeju now that sprawling development has swept across the island, but these unremarkable peripheral beings still seem to radiate vitality and a sense of presence in the photographs. In Museum of Innocence (2016), an abandoned table with an anti-nuclear sign on it, a hand-stained thermometer, and a lonely electric fan are objects that remain, bearing the memories of the places they are placed, and perhaps more directly than the portraits, attest to the traces of existence. These scenes of nature and objects, captured in the manner of a portrait photograph, reflect the artist's intention to recognize and honor them as unique objects and beings. Through her photographs, Kim clearly conveys that our world is created as humans, nature, and non-organic objects intertwine with and influence one another. Beyond the inherent flatness of a photograph printed on a two-dimensional plane, what does Kim mean by "flatness"? For you and me to be "flat" means that the ground we stand on is even, without curvature. It means that each of us is on an equal footing, and to affirm each other's place is to acknowledge its existence. In this sense, the subjects of Kim's camera have the same degree of being-ness, free from all hierarchies, such as those based on factors related to humans, nature, objects, race, gender, or boundaries. Her photographs, which reveal their differences as they are, are an effort to expand the periphery of "us" by understanding beings who are different from "me." When we grasp each other's existence in such a way, when we affirm the place where each other is anchored, we are more likely to discover the possibility of hospitality that will grow within us.  Jihee JUN

 

 작가 도슨트- 진행자: 김옥선(참여작가)

- 일시: 1- 2023610() 오전 11         

           2- 2023723() 오후 2

- 장소: 성곡미술관 1

 아티스트 토크-박상우 &김옥선

- 진행자: 박상우(서울대학교 미학과 교수) &김옥선(참여작가)

- 일시: 2023624() 오후 2- 장소: 성곡미술관 1

 

 

교통통제 중인 시민군. 이창성 사진 / 눈빛 제공

이창성씨의 ‘나는 시민군이다’사진전이 인사동 ’갤러리 인덱스‘에서 열리고 있다.

’5·18 기념재단‘과 ’눈빛출판사‘가 5,18, 43주년을 기념하여 선 보이는 생생한 기록 사진전이

지난 17일 오후4시 개막식을 가졌다.

 

금남로에서 교통 통제하는 시민군. 이창성 사진

슬픈 역사적 기록이 40년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 광주 외는 한 번도 전시회를 가진 적이 없다는

사실도 믿기지 않지만, 그 첫 전시가 인사동에서 열려 더 반가웠다.

 

시민군들. 이창성 사진

사진전 개막 시간에 맞추어 갔으나 이미 전시장은 관람객으로 북적였다.

보도 사진가 이창성씨를 비롯하여 당시 시민군 방송 요원이었던 차명숙씨와

'금남로 광수 1호'로 지목되었던 화제의 인물 차복환씨도 와 계셨다.

 

교통통제 중인 시민군. 이창성 사진

'눈빛출판사' 이규상대표와 '인덱스갤러리' 안미숙관장을 비롯하여 전민조, 장남원, 김문호, 김녕만,

윤세영, 정영신, 곽명우, 김 헌, 이명옥씨 외는 모르는 분이 더 많았다.

 

전시 작품은 중앙일보 사진 기자였던 이창성씨가 광주에 투입되어 찍은 흑백 30점과 컬러 10점이었다.

5·18 전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시민군’으로 압축되었다.

 

방석모와 총기로 무장한 시민군. 이창성 사진

관람객 틈 사이로 사진들을 들여다보니, 눈물이 나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처음 보는 사진들도 많은데, 누가 그들을 폭도라 할 수 있겠는가?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꽃다운 청춘이라 더 가슴이 미어졌다.

 

의사가 동승한 시민군 구호 지프가 광주 시내를 돌고 있다. 이창성 사진

시민군은 훈련된 군사 조직이 아니라 계엄군 과잉 진압에 맞선 자위 조직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사진들은 계엄군이 물러간 이후의 기록이었는데,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다.

논란이 되어 온 북한군 투입설이나 불온 세력, 부랑 집단이라는 억지를 단숨에 불식시켰다.

 

취재 중인 이창성 기자, 광주 1980. 5

지금까지 외국 기자들의 활동은 영화 등을 통해 널리 알려졌지만, 정작 국내 기자들의 취재 활동에 대해서는 평가절하된 것도 사실이다.

특히 이창성씨가 찍은 사진이야말로 5·18에 머물지 않고, 시민군의 활동상을 기록하였다는 점에서 더 높게 평가된다.

 

이창성씨는 개막식에서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야간 교전중이라 기자들이 숙소에서 나갈 수가 없었다며, 당시의 현장을 지키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고 했다.

새벽녘에야 시민군 지휘부를 찾아가 설득한 결과 어렵사리 취재 허락을 받아 냈다고 한다.

시민군 지휘부로부터 허가를 받아 현장에 뛰어든 공식 시민군 사진가가 되었는데,

역사적 현장을 기록해야겠다는 투철한 사명감이 그를 사지로 내몬 것이다.

 

“나는 역사의 기록자로서 현장에 있었을 뿐이다. 혼신의 노력을 쏟았던 것은 1980년 5월이 내게 부여한 의무였다.

마지막 모습이 되고 만 시민군 사진들은 대부분 젊은이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민주주의는 순전히 그들의 희생 덕분이다.”고 말했다.

15년 전 '눈빛출판사'에서 '28년만의 약속'이란 사진집을 펴낸 것도 전민조씨의 권유와 소개로 성사되었다며,

찍은 사진 2300컷 중 공개하지 못한 사진을 보완하여 다시 사진집을 출간하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당시 동료였던 고래 사진가 장남원씨는 '전시된 사진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숨어 찍은 사진이 아니라 대부분 정면에서 찍은 사진'이라며, 이창성씨의 투철한 기자정신을 높이 평가했다.

 

그리고 당시 방송요원이었던 차명숙씨는 발표된 사진 대부분이 외국 기자가 찍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찍어도 내놓을 수 없는 엄격한 상황에서 당당히 발표한 용기가 대단하다고 했다.

 

한때 북한에서 남파된 '광수1호'로 지목되었던, 실제 인물 차복환씨도 나와 그날을 회고했다.

기관총으로 무장된 페퍼포그 차량에 올라탄 채 카메라를 째려보는 문제의 사진은,

당시 이창성 기자에게 사진을 찍지 말라며 화를 낸 장면이었다고 했다.

 

금남로 광수 1호로 지목되었던 시민군 차복환 씨 1980. 5. 22 광주. 이창성 사진

2008년 이창성 사진집 ‘28년 만의 약속’을 펴낸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는 인사말에서

“그동안 논란 되어온 북한군 투입설이나 불온세력이란 억지를 불식하는 전시가 될 것이다. 그리고 5,18은 광주만의 행사가 아니라 전 국민의 행사가 되어야 한다"며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듯 모든 진상은 사진 속에 다 있다고 했다.

 

한 장의 사진이 백 마디의 말보다 더 많은 진실을 알려 주었다.

 

전시는 5월 29일까지 열린다. 꼭 관람하시어 그 날의 아픔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사진, 글 / 조문호

 

이창성'28년 만의 약속' 사진집 표지/ 눈빛출판사/ 가격35,000원

 

5,18 영령을 추모하는 날이라 뒤풀이는 생략했지만, 전시관계자들은 '부산식당'에서 만찬의 시간을 가졌다.

 

 

[2023,5,19작성]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