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대포 이은 전시장 내부 차량 점거
입주자 측 "당장 오늘 전시 어떡하나"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인사동 소재 복합문화공간 건물에서 철거 용역 업체가 전시장 내부로 승합차를 들여보낸다

이달 초 물대포까지 등장해 강제철거 논란이 일어났던 서울 종로구 인사동 소재 복합문화공간 전시장에서 30일 오전 철거 용역 업체가 승합차 2대를 동원해 재점거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날 종로경찰서는 아침 7시께 복합문화공간 코트(KOTE) 본관 전시장을 점거한 철거 용역업체 직원들을 영업 방해 혐의로 입건했다.

코트 전시장 외부 CCTV에는 쪽문 진입 방향으로 우산 쓴 남성 네 명이 접근하는 모습이 찍혔다. 전시장으로 진입한 이들이 차량이 들어올 수 있도록 앞문을 열자 대기하던 검정 승합차가 진입했다. 해당 남성들이 주변 전시물을 치운 뒤 검정색, 회색 승합차 두 대가 전시장 내부 깊숙이 멈춰서 정차했다. 확인된 영상에서는 채 2분도 걸리지 않아 운전자를 포함한 6명의 남성이 곧바로 우산을 챙겨 유유히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전시관 점거를 주도한 용역업체를 고용한 인물은 코트 측 임차인 A씨로 파악됐다. 앞서 A씨는 이달 초 철거용역 업체를 동원해 코트 입주민들을 물대포로 위협하며 철거를 시도했다.

A씨는 지난달 종로구청에 해당 건물에 대한 철거를 접수한 상태인 반면 전대차 계약을 맺은 코트 대표 B씨는 "계약기간이 내년 11월까지"라고 반발하고 있다.

지난 4일 건물 입주민들을 향해 물대포를 쏜 철거용역업체 직원들이 특수폭행 혐의로 입건돼 분쟁이 일단락되는듯했지만 이날 추가로 점거 사태가 일어나면서 분쟁이 재점화 되는 양상이다.


코트 대표 B씨는 "전시관을 점거한 승합차에 대해 경찰은 견인조치 할 권한이 없으니 구청에 연락해보라고 했다"며 "구청에 연락하자 사유지에서 일어나는 일을 담당하는 팀이 없다며 따로 방법이 없다고 한다"고 토로했다.

매일경제 / 고보현, 박홍주 기자

 

며칠 전, 이번 전시에 직 간접적으로 도움주신 분들 작업실을 방문했다.

사진이나 책을 택배로 보낼 수도 있으나, 인사드릴 겸 찾아 나선 것이다.

사전 연락도 없이 ‘금보성아트센터’ 금보성관장 부터 찾아갔다.

마침 2층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하던 일손을 멈추고 반갑게 맞아주었다.

차 한 잔 하는 자리에서 내년부터 처음처럼 다시 시작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한글작업만이 아니라 갤러리 운영 등 모든 면에 반영한다는 것이다.

 

금보성씨는 하루에 세 시간 정도만 자고, 모든 시간을 작업에만 몰두한단다.

수면 시간이 부족해 차만 타면 잠에 빠져들 정도로 바쁘게 살지만,

곳곳의 전시장을 찾아다니며 작가들 격려하는데도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새해부터 금보성에 어떤 대변신이 일어날지 기대되었다.

 

그 다음 날은 과천에 있는 ‘진인진출판사’ 김태진대표를 만나러 갔다.

그 역시 사람이 방문한 것도 모른 채 일에 파 묻혀 있었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가까운 식당부터 찾아갔다.

한 달 전에 따라가 본 적 있는 ‘풍경’이란 밥집인데, 유기농채소만 고집하는데다 음식이 정갈하고 맛있었다.

 

사무실에 다시 올라와 커피 한 잔하며, 내년에 출판할 인사동 사진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앞으로는 정기적으로 인사동을 찾아다니며 생각을 모울 작정이라고 했다.

나 역시 독자들이 관심가질 만한 책이 되도록 출판사 의향을 따를 것이며,

출판사에서 편집방향을 정하게 되면 재촬영하더라도 그쪽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아무리 좋은 책을 만들어도 보는 사람이 없으면 쓰레기가 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들어 김태진씨 모친이 편찮아 마음고생이 심하단다.

그 날 '진인진출판사'에서 발행한 도시문화연구서 ‘서울 산책’과

‘경복궁옆 송현동 살리기’ 책 두 권도 선물 받았다.

 

새해에는 ‘금보성아트센터’와 ‘진인진출판사’에 좋은 일이 가득하기를 바란다.

 

사진, 글 / 조문호

성원해 주신 덕에 ‘인사동 이야기’ 출판기념전을 잘 마쳤습니다.

 

그러나 코로나가 설치는 때이기도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해 편치 않은 전시임은 틀림없었다.

한 달 전의 민폐가 체 가시기도 전이라 염치없는 짓이었다.

 

책이라도 좀 팔려는 욕심의 신중하지 못한 결정임을 뒤늦게 후회했으나

이미 전시안내를 올린 터라 빼도 박도 못할 처지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보도자료에서 부터 일체의 전시홍보를 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일기처럼 매일 올리는 중계방송까지 멈추고, 한 분이라도 알게 될까 전전긍긍한 것이다.

그러나 다녀간 분들의 페북 연결로 알만한 분은 다 알게 되어버렸다.

 

그 벌은 전시장을 지켜는 내내 고스란히 받아야 했다.

아는 분이 오시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으니, 고문도 그런 고문은 없었다.

심지어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 중에 자기가 왜 빠졌냐며 원망하는 지인까지 여럿 있었다.

그래서 정동지에게 맡겨둔 채 전시장 비우기를 밥 먹듯 했다.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만, 한정된 지면에 어찌 다 수용할 수 있겠는가?

11년 전 초판 나올 때 찍은 분도 다 게재하지 못한 상황에서 추가 촬영까지 했으니 쩔쩔 맨 것이다..

하다못해 사진 질에 따라 선정하라며 출판사 편집자에 위임해 버렸다.

 

예전에는 만나는 대로 촬영했으나 이번에는 사정이 좀 달랐다.

친분보다 인사동과의 관계성에 중점을 두어 신중하게 선택했지만, 이 또한 갑 질에 다름 아니었다.

 

내년에 출판될 인사동 책에는 개인 입상사진보다 인사동 행사장을 비롯한

특정 공간에서 찍은 단체사진을 많이 할용해 당시의 현장 이야기까지 곁들일 생각이다.

많은 분이 참여할 수 있는 책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할 것도 약속드린다.

 

이번 전시로 인해 많은 분들에게 민폐는 끼쳤지만, 더 좋은 책을 준비하는 수업료로 여긴다.

그 덕에 ‘인사동 이야기’ 책도 100여권이나 팔았고, 사진도 여러 점 판매해 손해는 보지 않았다.

 

그런데, 대전에 계시는 사진가 박순규씨는 전시 때마다 먼 길을 찾아주는 것도 고마운데,

마치 자식 챙기듯, 올 때 마다 농산물이나 음식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와 송구스럽게 만들었다.

 

어려운 사정에도 불구하고 전시장을 찾아 주신 많은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전시 첫날인 24일은 ‘유목민’에서 간단한 뒤풀이를 했는데,

이한성씨가 술값으로 백만원을 술집에 맡겨주는 통에 지난 전시 때와 달리 술값 걱정은 덜게 되었다,

그 날은 조해인, 김수길, 정동용, 김 구, 김제홍, 장경호, 임경일, 이명희씨와 함께 마셨다.

 

그 다음 날인 25일에는 마지막 들린 황정수씨 내외와 한 잔했는데,

먼저 술집으로 안내해 드린 화가 김정헌, 이태호씨도 자리 잡고 있었다.

술자리에서 황정수씨와 사진가 양승우씨가 친하게 된 경위와

서지학자 김영복씨와 오랫동안 함께 했던 관계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셋째 날인 26일은 '눈빛출판사' 이규상대표와 조준영씨가 전시장 문 닫을 무렵에 나타나

모처럼 ‘부산식당’에서 생태찌개를 먹을 기회가 생겼다.

 

오랜만에 들린 ‘부산식당’은 방에서 의자로 실내장식이 바뀌었으나

13년 전 찍어 준 조성민씨 사진은 그대로 걸려 있었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아들이 물려받았는데,

마치 부친의 입상사진이 ‘부산식당’ 트레이드 마크처럼 벽면을 지켰다.

 

27일 늦게는 판화가 류연복씨, 사진가 김문호씨, 화가 신상덕씨가 나타나

전시장에서 와인으로 목을 축이다 ‘유목민’으로 자리를 옮겼다.

 

술 마시는 중에 신상덕씨와 ‘귀천’에 모과차 마시러 갔더니 목영선씨가 반겼다.

목순옥여사가 운영했던 ‘귀천’을 조카 목영선씨가 물려받았는데, 벌써 23년의 세월이 흘렀단다.

다섯 살짜리 아들이 스물여덟의 청년이 된 것이다.

 

28일은 ‘진인진출판사’ 김태진대표가 꽃다발과 축하선물까지 사 오셨다.

오래전 부터 인사동에 관한 출판 계약을 한 상태에서 같은 주제의 사진집 복간 기념전을 열었으니,

죄송스러워 얼굴을 들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고마운 분이다.

 

그 날은 마지막 들린 화가 이인철씨와 어울려 불편한 마음을 위안했다.

 

전시 철수 전 날인 29일은 최석태, 장경호씨 등 여러 명과 어울려 자리를 옮겨가며 마셨다.

 

전시장에선 매일 주눅 들어 지내지만 문 닫기가 무섭게 술집에서 지냈다.

 일주일 내내 술독에 빠지는 즐거운 비명을 질러야 했다.

 

그런데 전시 끝나는 날 이한성씨가 다시 나타났다.

맡겨두고 간 술값이 소진될만하니 다시 찾아 온 것이다.

그 날은 장경호씨 앞으로 술 값 백만원을 맡겨두고 간 것이다.

 

이한성씨는 20여 년 전 인사동 주막 ‘작은뜨락’을 자주 찾았는데,

늘 가난한 예술가들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하는 자선 사업가다.

재산이 많은 사람일수록 더 야박한 현실이 아니던가?

이런 분들이 인사동 풍류객의 주체로 버티는 한 인사동 앞 날은 결코 어둡지만 않을 것이다.

 

전시를 철수하는 날은 전시 디피에서부터 마무리까지 도와 준 김진하관장과 한 잔 했는데,

김수길, 전활철, 임경일, 노광래씨와 어울려 마지막 술잔을 들었다.

 

그동안 전시장을 비워 만나 뵙지 못한 분들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해 아쉽지만, 아래 방명록에 적힌 성함이라도 오래 동안 기억하렵니다.

"고마웠고, 미안합니다"

 

조해인, 이명희, 한배규, 석은미, 김인재, 박경하, 이종승, 전강호, 양시영, 박홍순, 노광래, 박상희, 변정대섭,

편근희, 손기환, 전태수, 양상용, 김이하, 정영철, 나종희, 조정애, 김재홍, 황영선, 우문명, 곽숙경, 공윤희,

박옥수, 박서연, 박상희, 박 건, 조경연, 박불똥, 임태종, 서인형, 박태종, 김진하, 박서호, 안정희 ,최인기,

임경일, 안동해, 정동용, 김 구, 김수길, 박은태, 변성진, 박찬원, 성기준, 현영애, 박순규, 최효준, 이종구,

김발렌티노, 이태호, 김정헌, 황정수, 이만주, 김윤기, 최연하, 이규상, 조준영, 최영호, 이기정, 이성은,

김지연, 곽명우, 최태만, 양정애, 최동락, 박종면, 고 헌, 송주원, 전민조, 김문호, 유광식, 신상덕, 류연복,

이승곤, 양재문, 이병진, 김태진, 이인철, 문성식, 박순영, 이한복, 서정란, 임정희, 강찬모, 이상훈, 최석태,

금보성, 하형우, 이태호, 임동은, 고영준, 전활철

 

사진 : 정영신, 조문호 / 글 : 조문호

 

은행잎이 인사동을 금칠 한다

또 한 해의 끝자락이 몰려온다.

 

세월따라 가겠지만 모두 바뀐다.

인사동 거리도 변하고 생각도 변한다.

 

복면의 시대라 사람도 잘 몰라본다,

사람이 사람 만나기를 겁낸다.

 

더 큰 건물 지으려고 ‘지리산’을 철거한다.

인사동의 기억을 지운다.

 

풍류객 잔당들의 마지막 저지선 '벽치기골목' 

 

‘유목민’에 모여 앉아 음모 꾸민다.

이름하여 ‘풍류 쿠테타’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0일은 인사동 나무아트에서 

인사동이야기사진전을 준비하는 날이다.

 

승용차에 가득 싣고 간 사진액자를 4층까지 올리기가 만만찮았다.

5분이 초과하면 주차위반으로 카메라에 찍힌다기에

숨 쉴 틈도 없이 바쁘게 들어 올렸다.

 

너무 많이 준비한 액자 때문에 걸 일이 걱정되었으나

차를 주차장에 옮겨놓고 돌아오니 김진하관장이 적절히 자리를 잡아놓았다.

 

일사불란하게 설치하는 김관장의 디피 솜씨는 장인의 경지에 달해 있었다.

그 많은 액자를 짜임새 있게 걸어주어 우려를 덜었다.

조명 조정까지 잘 마무리했다.

 

김진하, 장경호, 전활철씨와 어울려 유목민에서 저녁식사를 겸해 술 한 잔했다.

전시는 30일까지니, 시간 나시면 관람하시길 바란다.

 

사진, / 조문호

 

 

인사동의 전통문화가 퇴색되고 예술가들의 풍류가 사라진 지 오래다.

인사동이 관광지로 바뀌며 점차 황폐화되어가는 현실을 말하고 싶어 ‘인사동 이야기’ 사진전을 마련한다. 

이 전시가 인사동 반세기를 정리하는 서곡이기도 하다.

 

2009. 80x50cm. 디지털프린트

인사동은 긴 세월 많은 사람에게 예술적 영감을 일깨워온 곳이다. 어찌 보면 예술을 공유하는 장터나 마찬가지다. 장에 갔다가 반가운 사람 만나 즐기듯이, 다들 뒷골목 주막에 모여앉아 정 나누어 온 장소다. 혁명을 외치고 사랑과 예술을 노래하며 꿈을 펼친 곳이다.

이제 문화 특구로 내세울 만한 예스러움이나 인사동 풍류는 오 간데없다. 더러는 인사동이 끝났다는 절망적인 이야기도 한다. 그러나 인사동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 이상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전통 가게나 문화공간들이 어려워도 군데군데 버텨나갈 것이고, 예술가들도 작품을 펼쳐 놓고 어느 골목 주막에 모여앉아 담론으로 꽃 피울 거다. 그래서 인사동 노래를 부르기로 작정한 것이다.

 

2006. 65x40cm. 디지털프린트

이번 전시는 20년 이전에 촬영한 흑백사진을 제외한, 그 이후에 촬영된 컬러사진에서 골라냈다. 인사동의 변해가는 풍경을 년 대별로 보여주는 작품 30여 점을 주축으로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 입상 사진 20여 점도 함께 전시한다.

 

2010. 33x20cm. 디지털프린트

인사동 이야기에 비켜선 입상 사진을 내건 것은 인사동이야기사진집의 많은 지면을 인사동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기도 하지만, 본래 의도한 제목도 인사동 이야기가 아니라 인사동 사람들이었다. 비단 인사동만이 아니라 장소에 앞서 사람이 먼저라는 생각에는 언제나 변함이 없다. 어쩌면 그 사람들이 인사동을 지켜나갈 전사이기도 하다.

 

2016. 33x20cm. 디지털프린트

'인사동 사람들' 작업은 15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2007공화랑에서 개최한 인사동, 그 기억의 풍경사진전과 2010북스갤러리에서 개최한 인사동, 봄날은 간다사진전에 이은 세 번째 전시다. 인사동을 사랑하는 예술가들을 각자가 추억하는 특정 장소에서 촬영하여 지난날을 되새기게 했다. 앞으로도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촬영은 계속 이어지겠지만, 이 전시를 계기로 그동안 기록한 인사동 사진들과 사료를 정리하기로 했다.

 

2011. 65x40cm. 디지털프린트

길고 긴 인사동 이야기를 들추려니 오랜 세월을 거슬러 올라야겠다. 조선시대에는 궁중 화가들의 작업실인 도화서가 인사동에 있었다고 한다, 연암 박지원과 율곡선생도 인사동에 살았고, 400년 된 회화나무와 명성황후의 조카 민익두 대감의 옛 저택인 민가다헌’, 박영효 대감댁이었던 경인미술관한옥도 인사동 유적이다.

 

2012. 33x20cm. 디지털프린트

19세기 말 개화 바람이 불면서 인사동 일대는 교회, 요릿집, 병원 등이 들어서며 신식 동네로 변해갔다. 태화관 터, 천도교 수운회관, 숭동교회, 해정병원 등이 다 그 때 생긴 것이다. 1924년 김정환 옹의 통인가게가 생기면서 고미술 관련 상가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1934년에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책방, 산기 이겸노옹이 운영한 통문관도 들어섰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고가구나 고미술품 등 골동이 인사동으로 쏟아져 들어오며, 1960년대까지 고서점, 고미술상, 필방, 표구점 거리가 되었다. '구하산방'과 수도약국도 그 때 생겨난 것이다.

 

2013. 65x40cm. 디지털프린트

일제강점기에 형성되었던 골동품 상점들은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 초까지 성시를 이루었는데, 한국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먹고살기 힘들어 많은 골동품이 인사동으로 몰려들었다. 미군 장교 출신 막 뮐러가 골동품을 몇 트럭이나 사들여 번 돈으로 천리포수목원도 만들었고골동상들도 때 돈을 벌었다그리고 사기 사건도 성행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가짜 고서화사건, 금당 살인사건이다.

 

2014. 80x50cm. 디지털프린트

인사동이 갤러리 타운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다. 박명자씨의 현대화랑이 관훈동에 문을 연 것을 기점으로 1974'문헌화랑', 1976'경미화랑' 등 상업 화랑들이 속속 모여들어 미술문화의 거리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박주환씨가 '동산방'1976년 열었고, 1977년에는 김창실씨가 '선화랑'을 열었다. 1983년 이호재씨의 가나화랑과 공창호씨의 공창화랑’, 김완규씨의 '통인화랑', ‘관훈갤러리’, ‘학고재’, ‘경인미술관등이 개관하므로 인사동은 명실상부한 화랑가로 자리를 굳힌 것이다. 그 후에도 김진하씨가 운영한 나무화랑을 비롯하여 많은 화랑이 생겨났다. ’나무화랑그림마당 민에 이은 민중미술의 교두보로 자리 잡았다.

 

2015. 65x40cm. 디지털프린트

상업화랑이 생겨나기 이전인 1959년에는 종군사진기자 임인식선생이 관훈동에 사진전문화랑인 '신한화랑'을 차린 적도 있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김영섭화랑과 이순심씨가 운영한 나우와 룩스가 생겼으나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최건수씨가 '룩스'를 인수하여 인덱스’로 개명한 것이 인사동의 유일한 사진화랑으로 남았다.

시인들의 아지트로는 84년 정동용 시인이 운영한 시인학교를 시작으로 이생진 시인의 단골 모임터 순풍에 돛을 달고’, 김여옥 시인이 운영한 시인 과 강고운시인의 '무다헌'이 운영되다 문을 닫았고몇 년 전 문을 연 이춘우 시인의 시가연만 남아 있다.

 

2016. 80x50cm. 디지털프린트

인사동은 예술단체들이 모여 있었다는 점도 또 하나 특징이다. 조선 전기 금속활자 1600여점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자리에는 초창기 예총회관이 있었고, 80년대 중반에는 민미협이 창립한 데 이어 88년에는 민예총이 창립되어 건국빌딩에 사무실을 차렸다. ‘민미협 창립과 함께 그림마당 민이 생겨나는 등 인사동이 민중미술의 본거지가 된 것이다. 그리고 99년에는 민사협이 북인사마당 입구에 둥지를 틀었다.

 

2017. 65x40cm. 디지털프린트

인사동에 예술가들의 풍류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70년대로 알려지고 있다. 명동을 주 무대로 모이던 문인들이 종로 관철동 시대를 거쳐 인사동으로 옮겨오며 시작된 것이다. 거리의 철학자로 불리는 민병산 선생을 앞세워 천상병, 박이엽, 민영, 신경림, 강민, 구중서, 신동문, 박재삼, 황명걸, 방영웅씨 등 많은 문인들이 인사동으로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2018. 65x40cm. 디지털프린트

인사동에 예술가들이 모이는 곳은 주로 기원이나 찻집, 그리고 대폿집이었다. 천상병 시인의 부인 목순옥씨가 차린 귀천과 장문정씨의 수희재’, 최정해씨의 초당같은 찻집, 그리고 술집으로는 실비집이나 고갈비 양푼집 등 이름도 없는 대폿집이 주 무대였다. 실비대학이라 불린 '실비집'은 항상 빈털털이 예술가들이 우글거렸다.  하가'레떼', '춘원', '누님칼국수등이 연이어 생겨났고, 전시 뒤풀이 장소였던 부산식당에 많은 작가들이 어울렸다. 그 이후 생겨 난 전유성의 학교종이 땡땡땡과 사진가 김수길의 '구름에 달 가듯이', 노인자의 뜨락이나 ‘소설’, 이해림의 평화만들기’ 이미례 영화감독의 여자만’, 송점순의 사동집’, 유재만의 아리랑가든’, 박중식 시인의 툇마루같은 술집이나 밥집에 많은 예술가들이 드나들었다. 그 뒤에는 최동락씨가 운영한 풍류사랑’과 전활철씨의 유목민’, 최일순씨의 푸른별 이야기도 생겨났고, ’풍류사랑은 김용태 미망인 박영애씨가 이어받았다.

 

2018. 33x20cm. 디지털프린트

인사동 술집 곳곳에는 많은 예술가들이 북적이며 개똥철학을 풀어댔다. 그러나 술판의 끝자락은 언제나 소란했다. ‘평화 만들기에 평화가 없던 그때가 인사동의 전성기였는지 모른다.

 

2019. 65x40cm. 디지털프린트

이 전시는 1124일부터 30일까지 인사동 나무아트에서 열린다.

꺼져가는 등불처럼 가물거리는 인사동의 부흥을 위해 다 같이 힘을 모우자.

 

2016. 65x40cm. 디지털프린트

개정판으로 나온 인사동 이야기 사진집에는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 124명의 입상사진을 바탕으로

강민시인을 비롯한 43명의 작가가 쓴 48편의 인사동에 관한 글과 인사동 사진 37점이 소개되어있다

 

눈빛출판사 / 가격25,000원

 

 

 

한국의 채색화 민화’ 전에 나온 19세기 말~20세기 초 화조영모도의 오리 그림. 물고기를 잡아먹으려고 머리를 물속에 처박거나 물고기를 부리에 잡아넣고 삼키는 모습이 익살맞게 그려졌다.

100여년전 병풍에 그려진 동물들의 짓거리가 개그맨을 뺨친다. 천연덕스런 표정의 오리는 헤엄치다가 물 속에 대가리를 처박거나 부리로 덥석 물고기를 물어 막 삼키려는 참이다. 민물 속에서 험상궂은 척만 하는 쏘가리 몰골도 웃음보를 터뜨린다. 입가에 삐죽 튀어나온 날카로운 잔이빨로 물 속에 가라앉는 꽃잎을 우적우적 씹어먹는 모양새라니.

 

이번 주말, 서울의 문화 거리로 손꼽히는 북촌 인사동에 가면 전통 민화의 숨은 명작들과 20세기초 진귀한 근대 생활용품들을 구경할 수 있다. 전시 무대는 인사동 거리 북쪽 들머리에 있는 문화복합몰 ‘안녕인사동’ 지하 1층 센트럴뮤지엄. 여기에 지난 10일부터 18개 고미술업체들의 장터로 열리고있는 ‘2021 인사동 앤틱&아트페어’의 딸림 특별전 ‘한국의 채색화 민화’가 19세기말~20세기초 기기묘묘한 수작들로 입소문 났다.

 

‘한국의 채색화 민화’ 전에 나온 쏘가리 그림. 날카로운 이빨로 물에 가라앉는 꽃잎을 먹고 있는 모습을 해학적인 선으로 그렸다.
 
현대화랑의 문자도 기획전에 나온 제주 문자도. 화면 중간의 문자도를 중심으로 위쪽에는 화초를, 아래쪽에는 바다 속 해물들을 등장시키는 것이 특징이다.
 

출품된 민화들에는 ‘대체 무엇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의외성의 매력이 여실하다. 얼빠진 듯 익살맞은 오리, 쏘가리, 토끼 등의 자태와 몽글몽글한 소용돌이 선으로 배경의 바위덩이를 묘사한 화조영모도가 압권이다. 새 발자국처럼 대충 끄적거린 흔적으로 나는 기러기 떼를 간략하게 표현한 ‘소상팔경도’, 구성이 재미있는 강원 지역 문자도, 책 읽는 귀부인이 등장하는 근대 책가도 등도 눈맛을 다시게 한다. 올해 처음 차려진 앤틱 페어에선 전통 민예품 말고도 근대기 가정집과 사무실 등에서 쓰던 근대기 그릇과 각종 생활용품, 경성제국대학 교기 등의 유물들이 시선을 끌고있다. 인사전통문화보존회가 주관하는 이번 장터는 14일까지다. 17~21일 같은 장소에서 현대미술품을 파는 장터인 ‘아시아호텔아트페어(AHAF) 서울 2021’이 이어진다.민화 애호가라면 인근 사간동 현대화랑에서 14일까지 선보이는 기획전 ‘문자도 현대를 만나다’를 함께 감상해도 좋다. 백수백복도, 제주문자도, 화조문자도 등의 명품들이 나왔다.

 

한겨레신문 / 글 ·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인사동이야기' 표지 / 눈빛출판사 / 가격 25,000원

‘인사동 이야기’ 사진집이 나와 억지 춘향격으로 전시를 준비하다 보니 인사동을 다시 돌아 볼 기회가 생겼다, 인사동은 서울의 수많은 동네 중에 한 동네에 불과하나 마치 고향 같았다. 긴 세월 예술가들을 만나 정신적 키를 키워 온 것에 비한다면, 오래전에 떠나온 고향보다 더 가까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인사동이 마냥 좋아 때론 아쉽기도 하고. 원망스러워 밉기도 했다. 어쩌면 사람이 좋아 사람을 찍어왔듯 인사동도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돈에 병들어가는 사람이 미워져 가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이제 돈에 병든 인사동이 예전으로 돌아가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가끔 인사동 골목에서 벗들을 만나 회포 푸는 것으로 위안하는데, ‘맛이 간 인사동을 그만 찍을 때도 되지 않았냐?’고들 말한다.

 

나에게 인사동은 병든 가족 못버리는 것과 같다. 고향이 싫다고 아닐 수 없듯이 인사동은 인사동인 것이다.

 

오랜세월 인사동을 기록해 왔지만, 예술로서 작품을 찍은 것이 아니라 기록으로서의 사진을 찍었다. 찍은 사진들을 살펴보니 각양각색이었다. 인산인해를 이루는 거리풍경이나 전시장 풍경이 난무했고, 대폿집 정경을 비롯하여 인사동 향취가 묻어나는 사진도 있었다. 때로는 변해가는 인사동의 어두운 모습도 있었다.

 

수 많은 사진 중에서 '인사동 묵시록'이란 주제에 걸맞는 이미지만 골라냈는데, 백남준씨가 ‘예술은 사기다’고 말했듯이 이 또한 사기다. 사람이 별로 없거나 역광에 의해 무거운 분위기의 사진을 고르고 거기다 한술 더 떠 컬러사진을 흑백으로 바꾸었다. 사진을 실제보다 어둡게 프린트하여 흥겨운 놀이를 귀신놀음처럼 음산하개 만드는 등의 조작도 마다하지 않았으니, 이게 사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기도 아무나 치는 게 아니더라. 먹고살기 위해 사기를 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덫에 걸린 것이다.

 

작가라면 자신이 표현하려는 주관에 맞는 이미지를 찾아 찍는 게 상식이지만, 기록을 중시하는 사진가라면 편파적인 시선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만약 신문기자가 주관적인 기사를 만든다면 기레기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글만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도 얼마든지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카메라 각도에 따라 달라지고 앵글 선택에 따라 의미가 바뀔 수 있다.

객관적인 기록사진을 찍는 자가 다소 주관적 사진을 골라낸 데 따른 변명을 하다 보니 말이 길어진 것이다. 전시 의도는 눈 앞이 보이지 않는 인사동의 암담한 현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삭막해 가는 인사동의 그늘이 짙은 것도 사실이고, 망가져 가는 현실에 실망한 시선도 한몫했다.

 

인사동은 긴 세월 많은 사람에게 예술적 영감을 일깨워온 곳이다. 어찌 보면 예술을 공유하는 장터나 마찬가지다. 장에 갔다가 반가운 사람 만나 즐기듯이, 다들 뒷골목 주막에 모여앉아 정 나누어 온 장소다. 혁명을 외치고 사랑과 예술을 노래하며 꿈을 펼친 곳이다.

 

세상 흐름 따라 장터 변하듯 인사동 역시 변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모든 것은 사람이 만들어가지만 망치는 것도 사람이다. 유명세에 힘입어 관광지화 되다보니 돈맛에 병든 것이다. 예술보다 돈 되는 상품이 인사동을 장악하는 현실은 전통가게와 전시장까지 밀어내고 있다.

 

돈이 무섭고 악랄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얼마 전 인사동에서 무자비하게 철거된 문화공간 ’코트‘가 대표적인 예다. 전시장을 헐어 주차장을 만들기 위해 계약도 끝나지 않은 곳을 강제 철거했다. 용역업체를 끌어들여 고압수를 살포하며 입주자들에게 폭력까지 행사했으니, 돈 앞에서는 법도 소용없는 무서운 세상인데,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렇지만 인사동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 이상 쉽게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전통가게나 문화공간이 어려워도 군데군데 버텨나갈 것이고, 예술가들도 작품을 펼쳐 놓고 어느 골목 주막에 모여앉아 담론으로 꽃 피울 거다. 그래서 하잘 것 없는 인사동 노래라도 부르기로 작정한 것이다.

 

이번에 출판된 '인사동 이야기’는 11년 전에 나와 절판된 사진집이다. 인사동에서 잔뼈가 굵은 노광래씨가 복간을 추진하다 개정판이 되었는데, 글과 사진을 일부 추가하여 부족한 부분을 메웠다.

 

내년에 출판할 예정인 인사동 반세기를 정리하는 준비 작업이기도 하다.

 

전시에 내걸 사진은 인사동의 현실을 말하는 40여점이 주를 이루는데, 책에 없는 사진이 더 많다. 그리고 한 쪽 벽에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입상사진 10여점도 내걸기로 했다.

 

주제와 다른 입상 사진을 내건 것은 ‘인사동이야기’의 많은 지면을 인사동 사람들의 입상사진이 차지하고 있기도 하지만, 본래 의도한 책 제목도 ‘인사동이야기’가 아니라 ‘인사동 사람들’이었다.

 

초판에 게재된 분들은 13년 전에 열었던 ‘인사동, 그 기억의 풍경’전에 내 걸었으니, 추가로 촬영한 20여 명 중 일부라도 선보이려는 것이다.

 

각자가 추억하는 장소에서 찍었으니, 인사동의 특정 거리나 공간도 포함되었다. 사실 인사동이란 장소에 앞서 사람이 먼저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어쩌면 그 사람들이 인사동을 지켜나갈 전사이기도 하다.

 

‘인사동 이야기’ 에는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 124명의 입상사진을 바탕으로 강민시인을 비롯한 43명의 작가가 쓴 48편의 인사동에 관한 시와 추억담이 있고, 인사동 사진도 37점이 중간 중간 들어있다. 책값은 25,000원이다.

 

이 전시는 11월 24일부터 30일까지 인사동 ‘나무아트’에서 열린다.

꺼져가는 등불처럼 가물거리는 인사동의 부흥을 위해 다 같이 신명난 굿판 한 번 벌이자.

 

사진, 글 / 조문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