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24일까지 학고재 전관에서 열려

2017년 08월 21일 (월) 04:34:45 조문호 기자/사진가 prees@sctoday.co.kr


 

얼마 전부터 민중미술이 새삼 뜨고 있다.


이것은 일시적인 시대적 유행이 아니라, 뒤늦게 미술의 가치를 알아챘다는 사실이다.

아직까지 민중이란 말만 들어도 두드러기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들도 있지만,

백성의 삶과 아픔을 드러내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예술이 어디 있겠는가?



▲꿈 Dream, 2013, 캔버스에 유채, 조화 Oil, artificial flowers on canvas, 259x388cm

작품을 배경으로 선 송창 작가. (사진=조문호)


민중미술은 현실의 부조리와 모순, 그리고 들끓음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다.

80년대부터 진보적인 미술인들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미술변혁운동에 의해 예술이 사회를 향한 발언으로 진일보하게 된 것이다.

성완경, 김정헌씨 등 10여명의 미술인들이 힘을 모아 ‘현실과 발언’이란 운동을 펼칠 즈음,

송창을 비롯하여 박흥순, 이명복, 이종구, 전준엽, 천광호, 황재형씨도 ‘임술년’이란 민중미술 단체를 만들어 나선 것이다. 



▲송창, 굴절된 시간 Refracted Time + 미사일 Missile, 2016, 포탄에 아크릴릭, 우레탄페인트, 조화

Acrylic, urethane paint, artificial flowers on bombs, 가변크기 Size variable


80년대의 한국 정치사는 강압적인 독재 정치를 일삼아온 지배 권력과 이에 대항하여 민주주의를 쟁취하려는

시민들은 물론 예술가들의 격렬한 투쟁으로 얼룩진 시련의 역사였다.

그 핍박과 가난에도 버텨 온 민중작가들이 뒤늦게나마 인정받아 화단의 주체가 되고 있음은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학고재’에서 “꽃그늘”을 보여주는 송창 역시 이미 작품 값이 만만찮은 민중미술의 대가

신학철, 황재형, 이청운, 강요배씨와 함께 어깨를 겨눌 수 있는 핵심 작가이다.



▲송창, 그곳의 봄 The Spring of That Place, 2014, 캔버스에 유채, 조화 Oil, artificial flowers on canvas, 194x379cm


송창은 전쟁의 아픔과 민족상잔의 비극인 분단의 풍경을 그리며 여러 사회적 문제들을 외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끌어안았다.

파주, 연천, 포천, 철원 등지의 전쟁의 상처가 또렷한 도시를 여행하며 상처의 딱지를 하나하나 채집한 것이다.

틈이 나면 공원묘지와 추모공원에 놓인 낡은 조화도 수거했다. 비바람에 얼룩진 조화를 씻어내 작품에 덕지덕지 붙였는데,

그 꽃들이 그가 그린 유화 속에 다시 피어난 것이다. 전쟁과 죽음 속에 피어 난 조화는 처연하면서도 아름다웠다.

꽃들 사이사이로 유골과 날카로운 쇠못의 자취들이 번득거린다.

냉기 어린 분단의 땅 위에는 음울함과 희망이 뒤섞인 채 울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작가는 분단의 현실과 안타까운 죽음에 바치는 헌화라고도 했다.



▲송창, 꽃그늘 Flower-Shade, 2017, 나무 실탄박스, 연습용 포탄 및 실탄, 조화

Wooden ammunition box, projectiles and ammunitions, artificial flowers, 가변크기 Size variable


전시장 본관 안쪽으로 들어서면 작품 ‘꿈’이 웅장한 힘으로 시선을 끌어당긴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곳은 경기도 연천 지역의 주상절리다. 용암이 굳어 알려진 곳이지만,

송창은 이곳에서 현재의 모습이 아닌 과거 한국전쟁 당시의 모습을 본 것이다.

작품은 마치 전쟁터 한가운데 서 있는 것만 같은 생생함이 느껴진다.

붉은 하늘을 배경으로 포연 자국과 같은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미처 다 짓지 못한 교량의 모습이 전쟁의 폐허를 재현하고 있다.



▲송창, 연천발-원산행 From Yeoncheon to Wonsan, 2013,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421x259cm


‘연천발 원산행’이란 작품은 고향을 지척에 둔 망향의 그리움이 절절이 묻어난다.

그리고 지난해 작업한 '운명'은 북한 미사일과 연천 주상절리를 대치시킨 것이다.

북한 포탄이 떨어졌던 곳을 그린 그 작품은 아름다워도 꽃그늘처럼 그늘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작품들은 대체로 농밀하고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 기념비적 주제를 다룬 몇 작품들에서 그런 면모가 두드러진다.

그 예인 “그곳의 봄”(2014)과 “등록문화재 408호”(2014)는 서부전선에서 전사한 유엔군의 시신을 화장하던

화장장 시설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화장장에 흩뿌려져 있던 조화를 작품으로 끌어들여 전쟁을 비판하며

사라지고 잊혀진 사람들에게 애도의 마음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송창, 등록문화재 408호 The Registered Cultural Heritage Number 408, 2014,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227.3x241.8cm


그는 한 때 독산동 근처 시흥의 산동네와 당시 난민 천막촌이 자리 잡고 있던 강남, 그리고 난지도 매립지 등을 그리기도 했다.

철거민과 빈민들의 끔찍하고 잔혹한 생활상 즉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슬프고 가슴 아픈 현실을 형상화한 것이다.

도시가 토해내고 밀어낸 더러운 쓰레기 산에도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난지도-매립지’(1984)는 황량한 매립지를 배경으로 격앙된 인간 군상이 그로테스크하게 뒤엉킨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매립지와 군중이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는 모습을 송창 특유의 필치로 그려낸 것이다.

아름다웠던 난지도의 풍경은 오간데 없고 검붉은 하늘과 대지 그리고 그곳을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민중들만 남았다.

용광로처럼 들끓는 붉은 쓰레기 더미 너머로 푸른 신도시의 풍경도 어렴풋이 보인다.



▲송창, 난지도-매립지 Nanjido - Landfill, 1984,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112.1x291cm


사회의 어둡고 부조리한 부분을 작품 속에 담는 온 송창은 회화에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 판화, 설치 등 다양한 매체 사용을 통해 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한 편으로는 그가 전하는 메시지가 침울하고 날카로워 보이기도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부푼 희망도 담겨 있다.



▲송창, 운명  Destiny, 2016,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181.8x287.3cm

열일곱 번째 열리는 송창 개인전 “꽃그늘”은’학고재‘(02-720-1524)전관에서 40일에 걸쳐 열리는 대형 전시다.

전시구성도 송창 작업 세계를 연도순으로 살펴볼 수 있게 펼쳐 놓았다.

본관은 조화를 사용한 2010년 이후의 신작 위주로 전시되고,

신관 지하 2층에서는 ‘매립지’ 시리즈를 비롯하여 분단을 다룬 2010년 이전의 대표작과 초창기 작품을 전시한다.

대작중심의 신작에서부터 초창기 작품에 이르기 까지 총38점이 전시되고 있다.


오는 9월24일까지 열린다.











30일까지, 청운동 류가헌서, 사진집 출판기념전


2017년 07월 28일 (금) 16:59:01 조문호 기자/사진가 prees@sctoday.co.kr

 


사진가 김봉규의 ‘팽목항에서’사진집 출판기념전이 오는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청운동 ‘류가헌’에서 열리고 있다.

이 전시는 ‘한계레’사진기자 김봉규씨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2014년 4월16일 전남 진도 팽목항으로 달려 간 후,

40여 차례 넘게 팽목항과 동거차도를 방문 기거하며 기록했다. 기자로서의 냉철한 시각보다 인간으로서의 처절한 심정으로 찍었다.

객관성을 우선하는 신문사진과 주관을 우선하는 사진가로서의 갈등도 보였다.



▲김봉규 사진가.ⓒ조문호 사진가.


수많은 기자들과 사진가들이 팽목항을 촬영했겠지만, 김봉규씨는 마치 친자식을 떠나보낸 듯한 비통한 마음으로 아파하며 찍었다.

사진가로서의 소명도 중요하지만, 인간으로서 더 아팠다.

다큐멘터리사진에서 제일 중요한 덕목이 대상 속으로 들어가 이루어내는 공감인데,

김봉규의 평목항 전시가 빛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공감이었다.

스스로 아파야 그 아픔이 사진에 드러나고, 보는 이도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봉규의 사진을 덕목과 공감으로 평한 사진가 김문호씨의 말을 한 번 들어보자.



▲눈빛사진가선 50. 팽목항에서 표지



“다큐사진의 무게, 혹은 삶의 무게, 사진가가 찍는 대상인 당신이 곧 내가 되고 당신과 내가 우리가 되고,

그 "우리"를 "인간"이라는 단어로 환치할 수 있을 때, 가장 진정성 있는 다큐멘터리 사진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다큐멘터리 사진의 무게를 이루는 것, 그것은 대상과 사진가와 인간이 공유할 수 있는 "공감"(compassion)의 무게일 것이다.

사람을 가장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덕목 "공감", 다큐멘터리 사진에 진정성의 무게를 만들어주는 덕목, "공감".

그것이 결여되어 있다면 우리는 그런 사람을 "사람 같지 않은 사람, 사람 되기는 그른 사람"이라 하고,

그것이 결여되어 있는 다큐멘터리 사진을 "진정성이 없는 사진"이라고 말한다.

김봉규의 팽목항 사진에서 읽어내야 하는 것, 그것은 단순히 슬퍼하는 유족들에 대한 동정을 넘어서

바로 우리가 적어도 지금 살아 숨쉬는 "인간"이라면 마땅히 체감해야 할 "공감"일 것이다.

사진이 이렇게도 이렇게 막막할 수 있다니...”



▲동거차도 앞바다를 찾은 단원고 안주현 학생의 어머니 김정혜 씨_2016년 4월 22일 오후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사진기자 김봉규씨가 유가족의 울부짖는 모습이나 시신이 인양되는 비참한 모습이 담긴 직설적인 표현을 비켜간 의도가 무엇이겠는가?

가족처럼 차마 보여 주기 싫었던 것이다. 그 것만 으로도 사진가가 얼마나 아파하며 그들과 동화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사진들은 ‘객관적 앵글’로 찍힌 신문용 사진이 아니라, 한 인간의 감정에 충실한 ‘주관적 앵글’의 사진이다.

오히려 직설적인 화법보다 간접적인 화법이 더 강하고 여운이 오래간다는 것도 증명했다.



▲동거차도_2017년 3월 22일 오후



세월호가 침몰하는 평목항에 달려가 처음 맞은 동거차도의 밤은 적막감과 긴박감이 뒤섞여 있었다. 사진집 표지에 실린 사진처럼,

조명탄에 비친 가라앉는 세월호의 선수가 마지막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어둠의 농도로 하늘과 바다를 구분하며 어렴풋이 먼 섬의 능선들이 드러났지만, 긴박한 비극의 현장은 적막에 휩싸여 있었다.

사람이나 움직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조명탄만 흘러내렸다.

그 사진이 운명의 첫날밤에 맞딱뜨린 김봉규의 처절한 심정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인양되는 세월호_동거차도 사고해역_2017년 3월 24일 오후



넋을 잃은 듯 절망스런 표정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먹구름이 뒤덮은 칠흑 같은 바다를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뒷모습들이 마치 지옥의 묵시록처럼 무겁게 다가왔다.

가끔 어두운 바다를 배경으로 부표나 십자가, 노란 리본들이 부각되기도 했으나, 대개가 침울한 슬픈 풍경이다.

마치 유령이 나올 듯이 음산하며, 불쌍한 원혼들이 바닷가를 멤 도는 착시현상마저 생겼다.

중요한 것은 사진 곳곳에 작가의 분노가 똬리 틀고 있었다.



▲팽목항_2014년 4월 27일 오후



“여기에 실린 김봉규의 사진들은 대체로 비극의 슬픔과 분노를 적막 속에 감추고 있다.

감춘다기보다는 감춤으로써 표출되고 억누름으로써 드러난다. 이 억누름은 힘을 가해서 얻어지는 물리적 억누름이 아니라,

드러나지 못해서 아우성치면서 심층에 잠겨있는 것들의 드러남을 허용하는 여백의 시간과 공간을 마련한다.

이 억누름과 드러남은 고통스런 분열의 과정인데 그 과정을 통해서 인칭의 국면은 힘겹게 전환되면서

인칭들 사이에 새로운 의미가 빚어지고, 대상은 보이기 시작한다“고 소설가 김훈은 해설했다.



▲팽목항_2014년 6월 2일 오후



이러한 작업을 이루어 낸 사진가 김봉규씨의 집념과 열정에 대해 몇 가지 부언하려 한다.
그를 처음 만난 건, 90년대 초반 ‘사진집단 사실’에 함께 하면서다. 그는 사진이라면 물 불 가리지 않았고,

이루어내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 당시는 다큐 사진가로서 살아남으려면 최선의 직업이 사진기자였다.

밥벌이로 작업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가 평소 관심 가진 ‘시사저널’주간지를 택했다.

사진기자 모집이 있는 것도 아닌데, ‘시사저널’ 주필 방에 들어가 통사정한 것이다. 끈질기게 자기의 포부를 밝혀 특채가 되었다.

그 뒤 ‘한겨레’신문으로 자리를 옮겼으나, 사진 찍는 일 외에는 전혀 한 눈 팔지 않았다.

대개가 취미사진가를 위한 강좌나 촬영지도 같은 부업을 갖지만 그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오로지 사진이었다.



▲팽목항_2014년 7월 9일 오후



이 ‘팽목항’ 작업 역시 사진 작업에만 몰두하는 그의 열정과 끈기가 이루어낸 성과다.
우리가 영원히 잊어서는 안 될 세월호의 현장을 통한의 시어처럼 기록해 남긴 것이다.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나고 가슴이 미어지는 장면 장면들이다.



▲팽목항_2014년 11월 18일 오후


세월호는 천재가 아닌 인재라는 것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그 인재가 삼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인양작업을 시작한 후 하루 만에 올라 온 세월호가 인양하는데 왜 3년씩이나 걸렸는지도 모르겠다.

박근혜가 탄핵되고 세월호가 인양된 것은 정말 우연일까?

특검도 밝히지 못한 박근혜 7시간의 행방이며, 세월호 수사를 방해했다는 우병우 구속신청기각도 석연치 않다.

정권은 바뀌었으나, 범죄 집단 같았던 기득권의 뿌리가 여전히 깊다는 이야기다.



▲팽목항에 설치된 분향소. 2015년 12월 20일 오후


사람의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 이데올로기조차 뛰어넘는 게 사람의 생명이요 인간의 존엄성 아니겠는가?

이제부터 하나하나 밝혀,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어린 영혼들의 원한을 풀어주자.

이 김봉규의 팽목항 전시와 사진집 출판을 계기로 빠른 시일 안에 진실이 밝혀지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세월호 앞에는 우리 모두가 죄인이다.


전시문의:‘류가헌’(02)720-2010

*사진제공=눈빛출판사


 

 

▲ 조문호 사진가

우리 고유의 장터문화가 현대화의 물결에 휩싸여 순식간에 사라지고 있다. 몇 일전 경주 건천장에 갔더니, 그 멋진 장옥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이미 건천장 뿐 아니라 성주장은 물론, 전라도에 있는 나산장까지도 장옥이 없어졌다. 들창이 달린 7-80년 된 장옥들이 몇몇 남아있었으나, 2008년부터 시작한 문화관광형시장에 밀려 하나하나 사라지더니, 이제 전멸 상태다.

‘문화관광형시장’은 전통시장에 고유문화를 더해 관광명소로 육성하려는 취지로 ‘중소기업청’과 ‘시장경영진흥원’에 의해 추진되었지만, 그기에 쏟아 부은 국고나 노력에 비해 실패작이나 마찬가지다. ‘정선아리랑시장’ 같이 성공한 장도 간혹 있으나, 대부분 돈만 날렸다. 특히 그 지역만이 보여줄 수 있는 시장의 특성화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문화관광형시장’ 상인들의 대체적인 불만은 쓸데없는 곳에 돈을 낭비했다는 거다.

그리고 더 심각한 문제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오래된 장옥들을 깡그리 없앴다는 점이다. 일단 토목공사부터 벌여야 가시적인 효과도 있지만, 업자들에게 콩고물이라도 얻어먹을 것 아닌가? 역사를 우습게 아는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일을 제대로 하겠는가?

강원도 정선군에서 올해 처음으로 ‘전국 오일장 박람회’를 열었다.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5만 여명의 관광객이 방문하여 오일장 박람회의 성장 가능성을 확인시켰다. 지난 달 22일부터 25일까지 진행된 이번 박람회에는 전국 각 지역 대표 전통시장 87곳이 참여하였고, 각종 문화공연과 향수어린 오일장 사진전, 토속음식 체험행사 등이 다채롭게 펼쳐졌으나 앞으로 보완할 문제도 여럿 보였다.

시장상품의 전국 평준화로 지역을 대변할 특산물이 다양하지 않은 것도 문제지만, 매장의 상품들이 대개 비슷비슷했다. 강경 젓갈시장과 성주 참외시장, 고창 복분자시장 등 특산물을 판매하는 매장도 있었으나, 그 지역 특산품과 관련 없는 일상적인 품목들을 판매하는 곳이 더 많았다. 그리고 오일장의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조선시대 저잣거리 재현이나 다양한 설치와 전시 이벤트도 절실했다.

일단, '전국 오일장박람회‘는 맛있는 음식 먹고 재미있게 놀며, 상품을 구입하는 잔치마당으로서는 자리 잡았으나, 정선아리랑시장을 아시아 글로벌시장으로 만들기 위한 목적에는 미치지 못했다. 이번 박람회를 기획했던 첫 제안처럼 전통 장옥을 재현하는 것도 고려되어야 했다.

그 실행되지 못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관광객들의 오일장에 대한 향수 충족은 물론이거니와 문화적 가치에서 오는 여러 가지 이득은 예산의 부담을 감내하고도 남는 장사다. 지역 행사 때 마다 임시 텐트를 설치하는 것보다, 기존의 만들어진 장옥을 활용하는 것은 물론 평소에도 그 장옥을 상용하여 대표 오일장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하나 이해되지 않는 것은 우리나라에 다양한 박물관이 있는데, 오일 장터 박물관은 왜 없는지 모르겠다. 장터는 우리민족의 삶의 근거지다. 시장은 단순히 물건이 오고가는 장소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만나 소식을 전하고 전해 듣는 소통의 장이기도 하고, 다양한 생활 문화를 접하는 없어서는 안 될 공간이었다.

역사적으로 삼국시대에도 장이 있었다. 그러나 장시가 본격적으로 발달한 것은 조선 후기였는데, 그 때는 장시의 수가 크게 늘어나 전국 곳곳에서 열렸다. 농민들은 자신이 먹을 곡식 외에 장시에 내다 팔기 위한 작물을 재배하기 시작했고, 수공업의 확산으로 여러 가지 공산품이 만들어졌다. 화폐가 널리 쓰이면서 물건을 사고팔기 쉬워졌기 때문이다. 19세기 초에는 전국적으로 1,000개가 넘은 장시가 섰다고 한다.

지금은 대형마트에 밀려나긴 했으나, 도회지의 상설시장을 제외한 전국에 600여개의 오일장이 남아있다. 그리고 특수한 장도 더러 있다. 약령시장과 우시장, 어시장, 화문석시장, 죽물시장 등인데, 화문석시장을 비롯한 공예시장들은 이미 서서히 사라지거나 사라지기 직전에 있다.

더 늦기 전에 오일장에서 사용되었던 세월의 더께가 뭍은 집기들을 비롯하여, 장에서 만들어 진 오래된 공산품까지 수집해야한다. 그리고 오래된 장옥도 몇 채 찾아 와 장터의 역사를 한 눈에 돌아볼 수 있는 ‘오일 장터 박물관’을 건립해야 한다.

이번 ‘전국 오일장 박람회’에 불을 지핀 정선군에서 ‘오일장 장터박물관’까지 만들기를 제안한다. 전국 오일장을 대변하는 정선군이 아니고 어느 지자체에다 맡길 수 있겠는가? 정선의 ‘전국 오일장 박람회’에서 장터의 역사까지 한 눈에 돌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동식이 살해하여 찍은사진, 당시 보도된 일간지에서 스크랩했다




▲조문호 사진가



사진도 제대로 모르는 얼치기 아마추어 사진 인들이 전체 사진가들 얼굴에 똥칠시킨다.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른 채, 오로지 공모전에만 집착하여 상장 쪼가리 몇 장 받고나면 자기도취에 빠져 안하무인이 되어버린다. 취미로 즐기며 남에게 피해만 끼치지 않는다면야 나무랄 일은 못된다. 그러나 자연을 훼손하거나 부정을 저지르는 등 온갖 부도덕한 짓거리로 말썽을 일으켜 문제다,

반세기 동안 공모전 수상 경력을, 한 사진단체의 입회 자격으로 삼은 것이 원인인데, 그 폐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오래 전부터 공모전 입회점수제를 폐지하라며 목청을 높여왔으나, 여지 것 반복되고 있으니, 어쩌면 영원히 바꿀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모든 부정부패나 불협화음이 공모전에서 비롯되지만, 돈과 모든 이권이 공모전에 걸려 있으니 없앨 수 없는 것이다, 그 폐해는 사람을 죽여 사진을 찍는 이동식 같은 살인마도 탄생시켰다.

이동식이 죽음에 집착한 동기도 공모전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가 여러 차례 공모전에 출품하여 고배를 마셔오다 우연히 죽어가는 비참한 닭을 촬영해 출품했는데, 그게 은상을 받은 게 사건의 발단이다. 그래서 끔찍하고 자극적인 사진이 예술사진으로 착각하게 되었고, 그런 생각이 굳으며 엽기적인 살인마로 변한 것이다.

어디든 마찬가지겠지만, 한 단체가 구성되려면 구성원의 인성이나 자질은 물론, 교육이 중요한 것은 두 말할 필요 없다. 그 살인 사건도 창피하다고 쉬쉬할 것이라, 입회규정에 명시된 공모전 수상경력을 폐지하여 회원들의 자질이나 사진교육에 치중했더라면, 오늘처럼 작가 없는 작가단체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사진작가란 허울 좋은 이름에 순수한 아마추어 사진 인들이 공모전을 추종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 조직의 규모가 공룡집단처럼 비대해졌다, 이젠 한 술 더 떠 예비회원이란 이름으로 선모집도 한단다. 이게 작가증 팔아먹는 장사꾼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리고 전국에 깔린 조직들의 지역 이기주의 또한 보통문제가 아니다.

몇 일 전 속초 청호동에 ‘아트 플렛폼 갯배’란 갤러리가 개관되어 엄상빈씨의 ‘아바이 마을 사람들’ 초대전이 열렸는데, 지역 아마추어 사진인들의 항의성 민원이 물의를 빚었다는 것이다. 지역 사진가를 두고 왜 외부 사진가를 끌어들여 개관전을 하느냐?, 지원액도 지역 사진인들과 차별하느냐?‘는 내용이라는데, 사진이면 다 같은 사진이냐? 못 먹는 밥에 재나 뿌리자는 심보인지 모르지만, 제발 주제 파악 좀 하라. 이런 일들이 지방마다 비일비재하다.

앞서 이동식사건을 새삼 언급한 것도 그 희대의 살인마가 그 사진단체 회원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이동식씨는 서울 가락동에서 보일러 배관공으로 일하며 취미로 사진을 찍었다. 처음에는 모델촬영대회를 쫓아다니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주변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목 맨 모습이나, 밧줄에 묶여 칼에 찔려 죽는 모습 등 비참하게 죽어가는 잔인한 사진을 연출해 찍기 시작한 것이다. 점점 실감나는 사진을 얻기 위해 마침내는 살인까지 저지르게 되었다. 이동식은 이발관 면도사였던 김경희(24)양을 모델 시켜 주겠다며 산으로 유인해, 청산가리를 담은 캡슐을 감기약으로 속여 먹였다고 한다. 당시 일간지 사회면을 장식한 그가 찍은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사진들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더 귀가 막히는 것은, 그 당시 전두환 군사정권에서 올림픽을 앞 둔 시점이라 나라 망신시킨다며 수사를 중단시킨 채, 그냥 덮어 버렸다는 점이다. 몇 년 전 담당 수사관이 뒤늦게 밝힌 바에 따르면 전처를 비롯하여 21명이나 되는 또 다른 여성 실종자에 대한 살해자백도 받아 냈다고 한다. 전처의 시신이 묻힌 자리를 파는 순간, 수사를 종결하라는 지시에 막을 내렸다니, 이제 죽은 자에게 더 물어 볼 수도 없게 되었다.

86년도 사형이 집행되며 그 살인사건은 모두에게 잊혀 졌지만, 난 부끄러워 잊을 수가 없었다. 정부에서 입을 막았고, 사진 계에서도 입을 닫았지만, 절대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지난 달 사진계 원로학자를 만난 사석에서 그 이야기도 사진사에 남겨야 되지 않느냐고 했더니, 가치 없는 그런 일은 입에 담지도 말라는 것이다. 치욕의 사진사는 역사가 아니던가? 꼭 남겨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한 인간이 죽어가는 모습, 그 것은 예술이다. 나는 예술사진을 찍은 것이다.“라는 한 사이코의 괘변이 아직도 머리를 짓누른다. 미쳐도 제대로 미쳐야지, 어중간하게 미치면 사람도 잡을 수 있다는 경고의 말이다.



[스크랩 / 서울문화투데이]


압수된 사진들과 증거자료를 설명하는 이동식.


▲조문호 사진가



권력을 제 마음대로 휘두르는 거대 언론들의 횡포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정치인이건 재벌이건 언론 앞에서는 아무도 자유로울 수 없다.
여론몰이로 한 방에 갈 수 있으니, 어느 간 큰 놈이 감히 고개 처들 수 있겠는가?
긴 세월동안 서로의 먹이사슬이 되어 결국 오늘에 이르지 않았던가.
그러한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여론을 호도하거나 상대를 짓밟는 짓거리만이 아니라,
가난한 예술인들의 피를 빨아먹는 치사한 짓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작가들의 원고료를 착취하거나 재능기부란 이름의 연예인 인건비를 착취하는 사례 등인데,
문제는 대개의 작가들이 언론사의 인터뷰나 원고청탁에 상응한 대가를 강력히 요구하지 않는데 있다.

돈을 요구하면 당연히 대상에서 밀려나겠지만, 어느 누군가는 그냥 주기 때문에 악습이 반복되는 것이다.
인건비와 원고료는 고사하고, 한 술 더 떠 돈 봉투를 주거나 작품까지 싸 주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더러운 관행 아닌 관행 또한 청산되어야 할 적폐임이 틀림없다.
요즘 들리는 바로는 소개해 주는 기사 당 인터넷매체는 30만원, 종이신문은 50만원이상 이라는 말까지 떠돈다.
돈을 받는 놈이나 주는 놈이나 똑 같다.

돈 되지 않은 문학이나 사진은 작품을 주거나 돈 봉투 내미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니겠으나,
당연히 받아야 할 원고료는 물론 취재에 대한 인건비조차 받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더 부끄러운 것은 작가들이 비굴하게 언론에 굽신 거린다는 점이다.
살아남기 위한 수단인지 모르나, 작가로서 최소한의 자존심은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살기 위해 작품이라도 한 점 팔려면, 자신을 알려야 하는 다급한 사정은 이해가 되나,
스스로의 자존심이나 권리마저 내 팽개치는 예술가들의 책임 또한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란 생각으로, 긴 세월 언론의 버르장머리를 고치지 못한 원로들의 책임도 크다.

80년도 부산에서 사진 활동할 무렵, 작고하신 원로사진가 최민식선생을 자주 만날 때의 일이다.
그 당시 선생께서는 각종 신문이나 잡지에서 청탁을 더러 받았는데, 대개 원고료도 받지 않은 채 사진을 보내 주었다.

그것도 가난한 잡지라면 모르겠으나 재벌 언론조차 원고료를 주지 않아, 선생의 살림살이가 걱정되어 한 마디 거들었다.
“원고료 안 받으면, 다음에 후배들은 우째 묵고 삽니꺼?” 했더니, “안 주는 걸 어떻게 달라하냐?”하셨다.
“그라마, 달라 해야지 예!”라며 몰아 부쳤으나, 말은 쉬워도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일 것이다.

사진은 먹고 살기가 어느 예술분야보다 열악하다. 그 때나 지금이나 언론사들의 원고료지급 사례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대표적인 공영방송에서 몇일 동안 한 가족의 생활을 묶은 대가의 인터뷰료가 고작 30여 만원에 불과했다.

지난 달 케이비에스에서 방영한 ‘한국의 밥상’에서는 평생 장터를 찍어 온 정영신씨의 옛날 장터 사진을
여러 장 사용했으나, 원고료를 한 푼도 주지 않았다고 한다.
당연히 적은 금액이나마 원고료를 지급할 것으로 생각했으나, 아예 예산책정에도 잡혀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영방송이 이러하니 다른 군소 방송이나 신문, 잡지사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사진이 기대어야 할 언론매체의 비도덕적 만행은, 사진 중에서도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의 살 길을 막아 왔다.

그리고 언론을 앞세운 방송사들의 재능기부공연도 심각한 문제다. 재능기부라는 말 뜻은 참 좋다.
즉 개인이 가진 재능을 사회에 공헌하는 것인데, 그러한 선의의 재능기부를 악용한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시간과 노동력의 보상, 혹은 정당한 대가없이 이용한다는 측면에서 노동착취의 수단이 될 수 있으며,
창작행위의 가치를 떨어트리고 시장에 혼란을 가져 올 수 있다.
재능기부는 경제적 가치가 다른 기부를 쉽게 요청하고 거절 못하게 하며,
개인의 능력과 직업의 가치를 폄하하는 아주 나쁜 방법이라 생각한다.

아무리 재능기부라지만 사회적 강자이거나 돈 있는 사람에게 없는 사람이 ‘기부’하는 경우가 어디 있는가?
언론사들의 공연문화 발전을 해치는 악덕 재능기부, 노 캐런티 출연문화’는 연예인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
이게 가난한 예술인들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제 가난한 예술가들을 힘들게 하는, 힘센 언론의 예술인 노동력 착취는 뿌리 뽑아야 한다.

 
[스크랩 / 서울문화투데이]


▲조문호 사진가



한 국가의 수준과 품격을 말해주는 문화가 블랙리스트 파문과 국정농단으로 체면이 말이 아니다.

더구나 박근혜 정권은 문화로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문화 융성 정책을 간판으로 내걸었으나,

문화융성이 아니라 문화파탄이었다. 뭘 제대로 알지도 모르면서 그럴싸하게 포장한 말장난에 불과했지만,

그는 문화융성이란 말을 꺼낼 자격도 없다,

의식주 문제가 해결된 다음의 우리 주식은 쌀이 아니라 문화다.

문화는 정치보다 강하고, 그 문화가 인간을 기른다. 난 문화의 향수 능력이 인간의 자치의식을 기른다고 생각한다.

그 나라의 문화는 정쟁으로도 정복할 수 없음을 베르꼬르의 ‘바다의 침묵’같은 소설이 말해 주지 않았던가?.

이제 새 정치를 여는 키워드는 당연히 문화정책이 우선되어야 한다.

새 정부에서 쇄신해야 할 문화정책이나 새로 내 세워야 할 문화정책이 적지 않게 쌓여있다.

경제성장과 경쟁을 사회의 중심 가치로 삼을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나누고

이를 통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국가 가치를 세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문재인대통령 주변에는 문화예술인들이 유달리 많다.

지난 대선에서 문화예술인 수천 명이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던가?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써야할 것이다.

먼저 대통령후보로 나서며 내 세운 공약이 너무 많다.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비롯한 적폐 청산은 되어야겠지만,

예술인 실업급여 제도 도입을 비롯한 크고 작은 공약이 열 다섯 개나 된다.

다 좋은 일이지만, 성급하게 하지 말고 하나라도 확실하게 해야 한다.

일단 새로 추진할 것보다 잘 못된 것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

먼저 문화행정을 좌지우지하는 관료부터 전문가로 교체하라. 뭘 알아야 제대로 할 것 아닌가?

작가나 기획자가 제일 힘들어하는 부분은 작업이 아니라 현장 공무원들과 접촉하는 일이다.

뭘 모르면 작가와 의논하여 돕는데 집중하면 될 텐데, 사사건건 딴지 걸고 갑질부터 하려 한다.

그리고 한 부서에 오래 일해 능력이 축적되어 일 좀 할 만하면, 승진시켜 다른 부서로 보내버린다.

그러니 재대로 헤아리지도 못하는 신출내기가 설쳐대는 것이다.

두 번째는 관료사회의 문어발식 확장에 다름 아닌 문화예술위원회나 각종 진흥원, 센타, 문화재단 등

중간조직을 없애거나 대폭 축소해야 된다. 그동안 시혜성 지원사업과 그 기관설치에 주력해 엄청난 예산이

엉뚱한 곳으로 빠졌는데, 그 예산의 절반이라도 작가들에 쏟았다면 이 지경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작가들에게는 그러한 중간조직의 조직화는 모두 옥상옥일 뿐이다.

예술 각 분야에서 개선할 일과 건의할 게 많지만, 시급한 몇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첫째 가난한 작가들의 지원책이 절실하다. 어제 오늘만의 일은 아니지만,

대개의 문인들이 창작에 대한 원고료는 커녕 출판 비용조차 당사자가 부담하는 실정이다.

작가들이 생계 걱정에서 벗어나 마음껏 창작활동에 전념 할 수 있도록 나라에서 도와주어야 한다.

더 이상 굶어죽는 최고은 같은 작가가 나와서도 안 된다. 비록 예술가들에 한한 문제는 아니지만,

소외되고 가난한 약자의 편에서 모든 정책을 펼쳐주길 바란다.

그리고 출판은 문화의 근간이다. 그동안 게임과 영화, 음악 등에는 국가적 차원의 육성책이 많았으나

출판은 상대적으로 소외받은 것이 사실이다. 독서가 곧 지식 경쟁력이 되고, 이것이 쌓여 국가 경쟁력이 된다.

따라서 출판 진흥책을 다각도로 마련해주길 부탁드린다.

마지막으로 ‘정부기록사업소’의 일을 확대해야 한다. 사진가들을 활용하여 체계적으로 기록해 가는 것은 물론,

사라져가는 역사적 기록사진들을 적극적으로 수집하는 부서를 별도로 만들었으면 한다.

수많은 무명사진가들이 평생을 찍어 온 소중한 사진자료들이 집안의 애물단지처럼 굴러다니다

본인이 세상을 떠나면 그냥 쓰레기더미에 쓸려가고 만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유명작가 위주로 소장을 하지만, 새 발의 피다.

누구라도 오래된 원판을 가져오면 심의를 통해 필요한 사진들을 매입할 수 있는 구조부터 만들어야 한다.

부디 문제인대통령이 문화를 부흥시킨 제2의 세종대왕으로 남기를 바란다.
 
  
[스크랩 / 서울문화투데이]


조문호/사진가

사람들이 사진을 너무 우습게 생각한다.

아무리 이미지 홍수시대에 살고 있으나, 오래된 사진이나 기록적가치가 높은 사진은 차원이 다르다. 예술 보다 더 소중한 기록의 역사성을 하잖게 여기니, 어찌 역사가 바로 설 수 있겠는가? 수 많은 무명사진가들의 소중한 사진자료들이 쓰레기더미에 썰려나가도 사진계의 어느 누구하나 나서는 이가 없고, 정부도 사회도 아무런 관심이 없다. 사진가들이 평생 찍어 온 필름들이 집안의 애물단지처럼 굴러다니다 본인이 세상을 떠나면 그냥 소멸되고 만다. 이런 지경이니 사진가들이 잘 팔리지도 않는 사진집이지만, 살아생전 책 한 권이라도 남기려고 몸부림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정부기록보존소’에는 왜 역사적인 사진자료를 발굴하여 소장하는 부서가 없을까? 고작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알려진 작가 위주로 소장전을 갖기도 했으나, 사진가들의 이전투구로 그마저 뜸하다.

어느 분야의 예술이건 작가들의 삶이란 빈궁하기 짝이 없다. 예술계 전반에 대한 빈곤의 문제지만, 그중에서도 가난한 작가는 사진가이고, 사진 중에서도 기록에 전념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다. 탁상에서 할 수 있는 문학 같은 일과 현장을 누비고 다녀야 하는 다큐사진과는 경제적 비용 발생에서 큰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아무런 보상이나 보장도 없지만 오로지 사명감하나로 버텨내고 있는 것이다. 다큐멘터리사진을 전공해도 사회에 나오면 다들 몇 년을 견디지 못한다. 사회는 다른 직업을 갖고 틈틈이 찍는 아마추어 사진가를 원하고 있다. 

사진가들이 다들 살기 어려우니 별의 별 일이 다 일어나고 있다. 최근 폐북에 글을 올려 말썽을 일으킨 두 사진가 모두 가난에서 비롯되었다는 공통점은 일말의 동정의 여지가 있으나, 그 행위 자체는 용납할 수 없다. 거론된 해당 출판사나 갤러리 측은 많은 사진 중에 선택해야했으니, 밀려난 사람의 입장에서는 갑 질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그 건 아니다. 어려운 사진계를 위해 애쓰는 분들에게 큰 상처를 입히며 의욕을 꺾어버렸다. 아마추어가 프로를 심의한다는 모욕적인 말을 퍼트리기도 하고, 자기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그냥 두지 않겠다며 협박하고 나선 것이다. 두 분 다 정중히 사과해야 한다. 그 피해를 입은 당사자만이 아니라 자존심 하나로 버티는 많은 사진가들을 부끄럽게 했기 때문이다. 그 불미스러운 사건은 개인적 욕심과 자기도취에 빠진 사진가들의 전형적인 자화상이 아닐 수 없었다.

비록 다큐멘터리사진가들만이 아니라 사진계 전반에 문제가 많다. 아마추어 사진가들 모임인 ‘한국사진작가협회’라는 거대한 조직은 포기한지가 수십 년 넘었지만, 그 대안으로 창립한 ‘민족사진가회’마저 개인의 사유화로 방치되고 있으니, 참담한 심정이 아닐 수 없다. 구심점이 없으니 단합 할 수 없고, 단합할 수 없으니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것이다. 여지 것 그 많은 사회적 정치적 문제점에 저항하며 기자회견장 한 번 마련 한 적 없고, 타 단체와 연대해 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사진에 대한 문제점을 시정하고 바로잡기 위해 힘을 모아 나선 적도 없었다. 선배나 후배나 모든 사진가들이 자기밖에 모른다. 어느 예술매체보다 사회현실과 가까워야 할 다큐멘터리사진가들 조차 나서지 않으니,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사진에 대한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으려면 정치인들과 교류도 있어야 되지만, 정치적인 일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예술행위에 정치가 개입되는 자체는 말이 되지 않지만, 사진계 발전이나 후진을 위해서 누군가는 나서야 한다. 사진인 스스로 권익을 찾지 않으니 누가 권익을 찾아주겠는가? 그러니 정치인마저 사진을 우습게 여기는 것이다. 얼마 전 한 대선후보의 문화포럼에 모든 예술분야 인사들이 골고루 참석했으나, 유독 사진가만 한 사람도 없었다. 이건 한 사례일 뿐이지만 도처에 사진이 개 취급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 또한 자업자득일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사진인들은 물론 모두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배고픈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쪽 팔려 못 살겠다.

[스크랩 / 서울문화투데이]


조문호/사진가



욕심을 버리자는 말을 끄집어냈지만, 사실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살림 꾸려 자식 키우고 살려면 돈도 있어야 되고 자기 터울 지킬 수 있는 힘도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놈의 돈이란 요물이 사람을 꼬여 욕심을 부채질해대니 거기서 헤어나기 어려운 것이다.

돈도 힘도 있으면 편하겠지만,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정도는 지켜야 한다.

그걸 지키지 않아 세상이 요 모양 요 꼴이 된 것이다.

지금 나라꼴이 말이 아니지만, 그 위기가 기회로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이 참에 국민들이 힘을 모아 평등하고 정의로운 살기 좋은 세상을 한 번 만들어 보자.

누가 대통령이 되건 모든 욕심 내려놓고 원칙을 지키는 대승적인 측면에서 이끌어 가야 한다.
여지 것 봐 오지 않았는가? 돈과 권력 때문에 패가망신한 전직 대통령들과 재벌들 말이다.

이번 대선을 계기로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판을 제대로 바꾸어 놓아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정치하는 사람들이 앞장서야 한다. 정치인들이 정직해야 나라가 정직해 진다.

모든 걸 까발려 잘못한 것은 솔직히 사과하고, 자격이 안 되면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

국민들은 정치인들이 하는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다.

자신이 저지른 업보는 언젠가 다시 부메랑으로 돌아간다.

지역감정이나 부추기고, 색깔 타령이나 하는 한물 간 짓거리는 이제 그만 집어치우라, 지겹지도 않나.

전직대통령 죽음까지 조롱하는 말장난으로 민심을 거역하는 홍준표를 비롯하여

‘군대여 일어나라’는 난장판의 꼭두각시가 되어 역사를 퇴행시키는 김진태처럼,

정신병자 같은 정치인들이 더 이상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제발 양심을 속이는 짓 좀 하지마라.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나?

그리고 야당도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여지 것 야당이 제 능력으로 집권한 적 있었던가?

야당 구실을 잘 해서가 아니라 정부 여당의 실정과 헛발질에 따른 반사이익이었다.

집권하더라도 모든 욕심 다 내려놓고 정의로운 사회건설에 앞장서야 한다.

더욱이 이러한 시기에는 공무원들의 책임이 막중하다.

유력시되는 차기정권 눈치나 보며 당면한 업무를 보류시켜두고 출세의 잣대나 재는 공무원은 더 이상 사라져야 한다.

이명박 정부 출범 무렵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고 말한 공직자도 있었지만,

그건 아니다. 이제부터 공무원은 영혼이 있어야한다. 모든 걸 원칙에 입각해 소신 것 해주기 바란다.

정치권에서도 그런 사람을 더 중히 여겨야할 것이다.

권력자에게 잘 보여 줄 서려는 풍토는 사회 곳곳에 뿌리박혀 있다.

이번에 박근혜 탄핵의 또 한 가지 원인이 되기도 한 블랙리스트 예술가도 그래서 나온 것이다.

정작 블랙리스트 예술가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화이트리스트 예술가도 문제다.

집권하면 자기편에 줄선 예술가들에게 특혜를 주려면 화이트리스트가 필요했을 것이다.

화이트리스트에 들기 위해서는 자신의 작업보다 튀는 행동으로  정치권에 눈도장이라도 찍어 놓아야 했던 것이다.

예술가들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현실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 욕심을 이루기 위한 예술가가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예술가들은 정치권력이 만들어 가는 업보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돈과 명예는 영원하지 않지만, 자신의 작품이 영원한 데 무엇을 더 바라는가?

예술가들이 힘들게 싸우는 이유도 모든 이들의 권익과 평등을 위해서다.

이제 박근혜는 파면되어 구속되었다.

변명과 거짓으로 일관하며 반성할 줄조차 모르는 그 부도덕한 왕고집을 결국 촛불의 힘이 구속시키고 만 것이다.

박근혜의 일곱 시간 행적 논란 자체가 박근혜의 무능과 게으름을 상징하였다.

권력을 떡 주무르듯 하며 국가와 국민을 혼란에 빠트린 데 대한 분명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이명박 정권이 저지른 실정과 부도덕도 함께 밝혀져야 한다.

봄은 그냥 오는 게 아니다.
박근혜의 파면과 구속은 끝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향한 시작일 뿐이다.

촛불의 민심은 적폐가 청산되어 정의로운 사회가 이루어 질 때 까지 꺼지 않고 싸워야한다.

이번 기회에 개인적인 욕심은 모두 내려놓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데 힘을 모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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