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는 장모님이셨던 정영신씨 어머니 김덕순씨는

100수를 일주일 남긴 지난 2018년 12월 25일에 임종하셨다.

얼핏 생각하면 예수님이 탄생하는 날 제사를 지내는 반역처럼 보이지만,

가족들이 잊지 말고 즐거운 시간 보내라는

어머니의 마지막 배려였는지도 모른다.

 

난, 솔직히 제사보다 젯밥을 더 좋아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제삿밥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제삿밥 먹기위해 기다리다 잠이 들어버린 적이 있었다.

이튿날 깨우지 않았다며, 울며 생 때를 쓴 적도 있었다.

 

일찍부터 정영신씨가 장보러 가는데 따라 나섰다.

봉지 봉지 싸들고 왔으니, 아무리 적게 잡아도 이십 만원은 날아간 것 같았다.

좁은 집에서 다듬고 부치고 한바탕 난리를 쳤는데,

나야 시키는 대로만 하지만, 시다바리가 더 고달픈 것은 사실이다.

 

온 종일 난리법석을 친 결과 드디어 제사상이 차려졌다.

요즘은 가족까지도 거리두기를 하는 시대라

둘이서 오붓하게 제사를 지내려는데. 동생 주영씨가 오기로 했단다.

뒤늦게 오면서 제사상에 놓으라고 큰 문어 한 마리를 사왔는데,

문어 삶느라 시간이 더 지체되어버렸다.

 

내 이름을 닮은 문어라 한 번도 먹어 본적은 없으나 제사상이 그득했다.

어머니께서 살아 생 전 좋아하시던 고구마도 제사상에 올랐고.

바닷가 추억이 담긴 홍어와 문어까지 올랐으니, 흐뭇하셨을 것 같다.

 

지난날을 돌이켜 보니, 즐거웠던 추억보다 안쓰럽고 가슴 아픈 일이 더 많았다.

십 오년 넘도록 병석에 누워 계신 때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평소 말씀이 없어 눈길이라도 마주치면 어색해 하셨는데,

썰렁한 내 농담에 웃음 머금고 고개돌리시던 모습도 선명하다.

 

자리가 비좁아 운신하기 불편했지만 다들 엎드려 제사를 지냈다.

다섯 자식 중에 유독 셋째 딸 영신이를 좋아하셨는데,

이제 딸 걱정이랑 마시고 편히 계시라며 빌었다.

약식의 제사 였지만, 음복시간은 길어졌다.

 

홀짝 홀짝 마신 술에 취했지만, 즐겁지는 않았다.

제삿밥에 밥을 너무 많이 넣은데다 술 안주로 사온 소고기까지 넣어 버렸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제삿밥으로 울고, 늙어서는 제삿밥 때문에 화가 났다.

늙어지면 어린애가 된다는 말이 딱 맞다.

 

즐거운 크리스마스가 아닌 씁쓸한 제삿날이었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조문호

 

요즘 인사동은 불경기 탓인지 크리스마스나 년 말 분위기가 통 나지 않는다.
예년 같았으면 크리스마스 캐롤도 들리고 흥청대는 젊은이들을 볼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외국 관광객들이 여기 저기 기웃거리고 있을 뿐, 너무 쓸쓸했다.
최백호의 노래 ‘낭만’처럼 뭔가 잃어버린 듯, 헛헛함이 밀려왔다.

 

점심과 저녁모임이 있었던 26일은 세 시간 가량 인사동을 떠돌아야 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채 한과를 만드는 친절한 아주머니도 만나고,

인사동에 건물이 두채나 있어도 온 가족이 장사하느라 메달리는

옛 사무실 건물주인 이기웅씨 내외도 만났다.


마음이 텅빈 기분을 아는듯 인사동거리에 요상한 십자가가 나타났다.
두 사람이 등에 짊어진 괴상한 벽보판은 그냥 지나칠 수 있었으나,
시끄러운 확성기 소리는 심각한 소음공해를 일어키고 있었다.
누가 이런 꼴을 보고 예수를 믿고 싶겠는가?

사진,글/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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