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은 용산보건소에서 동자동에 밀집한 쪽방 건물 64개동을 대상으로 빈대방역을 실시했다.

 

내가 사는 4층은 빈대가 발견되지 않아 3층까지만 했는데

스팀 소독기로 방구석 구석을 비롯하여 옷가지와 침구까지 뿌려 바퀴벌레까지 씨를 말릴 것 같았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옛 속담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런데, 방역하는 걸 보아서인지 아무렇지도 않던 내 몸까지 가려웠다.

 

사실 빈대가 문제가 아니라 쪽방 빈민들의 피를 빨아먹는 건물주 빈대가 더 문제다.

그토록 사유재산 침해라며 난리를 치더니, 공공주택지구내에 거주하지 않는 쪽방 소유주도

아파트 분양권을 받을 수 있는 법안이 마련되니 조용해졌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지난해 착공하여 한창 공사 중이어야 하는데 

그들 때문에 첫 단계인 '공공주택지구 지정조차 못하고 있다.

2 7개월이 넘도록 제자리걸음이던 공공개발의 실마리는 푼 셈이다.

 

  쪽방촌 공공주택 사업의 보상 확대 내용을 담은 '공공주택 특별법' 개정안은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고 이달 중에 열릴 본회의 문턱만 남았다고 한다.

 

  그 개정안은 쪽방 밀집 지역을 포함한 공공주택지구 토지 또는 건축물 소유자에게 

현물보상  '아파트 분양권을받을  있도록 하는 특례 내용이 담겼다는 것이다.

 

  공공주택이 성사되어도 입주하려면 아직 몇 년이 더 걸릴지 몰라

죽기 전에 입주하기는 어렵겠지만 이제 마음편이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하루속히 공공임대주택이 마련되어 다들 다리 뻗고 잘 수 있기를 바란다.

 

사진, / 조문호

 

 

며칠 전 초상사진에 사용할 액자를 구하러 일산 이케아에 갔다.

8X10규격이지만, 매트 여백도 좀 있어야 하고 프레임의 재질이나

색깔이 마음에 들어야 했는데, 액자는 골랐으나 수량이 모자랐다.

재고량을 전부 구입한 후 부족분은 다음에 가져가기로 했다.

 

그런데 액자매장에서 침대매장 쪽으로 들어서니 쪽방에 꼭 맞는 침대가 있었다.

나도 몇 년 전 허리 협착증이 생겨 꼼짝 못 할 때가 있었는데,

그 사연을 알게 된 안애경 작가가 함께 일하던 필란드 목공예가를 데려와

즉석에서 목침대를 만들어주어 잘 사용하고 있다. 지금은 안타깝게도 천국으로 떠났지만...

 

방이 비좁은 쪽방에 무슨 침대를 들이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침대 크기만 줄인다면 비좁은 방일수록 더 실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침대 밑은 책장이나 설합장으로 활용해 너절한 짐은 그 속에 집어넣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침대를 이케아에서 판매하고 있었다.

가격도 145,000원이면 크게 부담되지 않았다.

 침대 필요한 쪽방 주민이 많다면 일괄적으로 주문 제작하면 가격도 더 낮출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사용하는 목침대는 별도의 쿠숀 없이 이불로 쿠숀을 대신하지만, 아주 편하고 좋다.

아무래도 별도의 쿠숀이 있다면 침대 밑 수납 공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단점도 있다.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려면 선반은 물론 작은 수납장도 필요하다.

한 달 전에는 누가 버린 삼단 코너장을 주워 사용하는데, 복잡한 공간이 단출해 졌다.

 

침대는 다른 곳으로 이사해도 사용할 수 있기에 쪽방 사는 노약자들에게 꼭 권하고 싶다.

온종일 방에서 지내는 쪽방 주민으로서는 잠자리가 달라지고 환경이 달라짐에 따라 느끼는 행복감은

돈으로 살 수 없다. 특히 허리가 불편한 분들은 필수품에 가깝다.

물론 개인이 그곳에 사러 간다거나 제작한다는 것은 어려운 현실인 만큼,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주민들께 설문을 돌려 일괄 구입하거나 제작하면 될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버스정류장에 설치된 냉온열의자를 동자동 새꿈공원에도 설치해 주었으면 좋겠다.

노약자들이 공원에서 오들오들 떨며 시간을 보내는데,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는 좋은 장치라고 생각되었다.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서울시청담당자에게 건의해 주길 바란다.

 

사진, / 조문호

 

 

또 다시 겨울이 다가오고 한 해가 지날 채비를 하지만,

동자동에 짓기로 한 공공주택은 어떻게 되었는지 감감소식이다.

 

뉴스에는 김포시가 서울에 편입되고 메가시티가 건설된다는 등

온통 정치 모리배들의 표몰이 바람에 시끌벅적하지만,

동자동공공개발은 공표한 지 몇 년이 지나도록 첫 삽도 뜨지 않고 있다.

 

  원희룡 국토부장관은 도대체 무슨 꿍꿍이로 입을 다물고 있을까?

전세사기 대책이나 서울-양평고속도로 문제 등 눈앞에 닥친 일도 한둘이 아닌데다,

윤석렬 눈치 보느라 어느 것 하나 소신대로 하는 일이 없다.

 

  그와 달리 약자와의 동행을 시정목표로 삼은 오세훈 서울시장은 좀 다른 것 같다.  

지난 달 동자동 온기창고개장식에서 동자동공공계발을 공개적으로 약속했지만,

동행식당, 동행목욕탕, 온기창고 등 빈민들 피부에 닿는 복지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의 집무실 한쪽 벽에는 약자와의 동행이란 글귀가 붙었는데,

그 글은 동자동 장애주민 윤용주씨가 써준 붓 글이었다.

 

국토교통부에서 깔고 앉아 어쩔 수 없이 기다리는지 모르지만,

국토부를 재촉해서라도 하루속히 성사시켜 줄 것을 촉구한다.

 

  그제는 동자동에도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다.

거리에서 노숙하는 자들은 다들 어디로 피했는지,

비에 젖은 이불만 어지럽게 늘려 있었고, ‘새꿈공원에는 비둘기들이 먹이를 찾고 있었다.

사람들조차 만 날 수 없는 비 오는 날의 한가한 동자동 풍경이었다.

 

  비가 그친 다음 날은 채남규씨가 머무는 경기여인숙부터 잠시 들렸는데,

몸이 아파 공공근로에도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보살펴 줄 사람 없는 쪽방사람들은 몸이 아프면 큰 일이다.

 

  거리에는 곳곳에 젖은 이불을 말리고 있었다,

노숙인이 머무는 자리에는 누가 버렸는지 매트리스가 깔려있었다.

 

  거리에서 임백수씨와 유정희씨를, 공원에서는 박소영씨와 황춘화씨를 만났다.

임백수씨와 황춘화씨는 만나 본 지가 한 참되었다.

그동안 왜 그리 나오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두 사람 다 술을 끊었단다.

사람들과 어울리면 술 마시게 될까 염려되어 방에서 꼼짝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다들 몸이 더 이상 버텨내지 못해 금주를 했겠지만,

술 때문에 아들까지 잃은 황씨로서는 큰 결심을 한 것 같다.

 

  대개 보이던 사람이 보이지 않으면,

이사를 갔거나 교도소에 간 경우였는데, 이젠 금주로 나오지 않는 사람도 있다.

다들 방에서 티브이만 끼고 사는데, 술을 끊을 수 있었던 그 비결이 궁금했다.

 

  건강은 물론 돈까지 절약할 수 있으니 도랑 치고 게 잡는 일이 아니던가?

나 역시 술과 담배 때문에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이라 빨리 결단을 내려야 할 문제다.

 

  모처럼 술 마시지 않은 황춘화씨를 만나 초상사진을 찍을 수 있었는데,

뒤늦게 나온 양인숙씨도 초상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찍은 초상사진 대부분이 남자들이라 고맙게 받아들였다.

 

이제 날씨가 추워지면 오갈 데 없는 노숙인들이 걱정이다.

다시서기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노숙인이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술을 끊지 못하는 알콜 중독자들은 어쩔 수가 없다.

 

  하루속히 약자들이 살 수 있는 주거부터 해결해 주기 바란다.

 

사진, / 조문호

 

 

 

 

말 뿐인 약자복지, 거짓 정권 물러가라.

매년 1017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빈곤퇴치의 날이다.

빈곤철폐의날 조직위원회에서는 세계빈곤퇴치의 날을 앞둔

지난 14일 오후2시부터 한 시간 가량, 사전집회를 가졌다.

종로 보신각 앞에서 열린 사전집회에는 400여명이 참가했다.

 

이날 집회에는 동자동 쪽방촌 주민을 비롯하여 장애인, 노동자,

종교인 등 시민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단체 회원들이 모여

주거권을 당장 보장하라고 외치며 거리에 나섰다.

 

코로나로 인하여 의료와 간병, 보육 등 사회서비스의 필요성은 확대되었으나,

윤석렬 정권의 사회서비스 확대 정책은 민영화로 기울고 있다.

지금까지 여성에게 전가하여 유지됐던 돌봄, 시장공급에 의존해 온 주거,

의료가 절실한 빈민들의 기본권 박탈 등은 더 이상 두고 볼 일이 아니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위기의 재난은 일상화되었다.

이에 자본주의의 모순은 더욱 극적인 양상으로 드러난다.

지난 해 우리가 경험한 반 지하 수해 참사, 최근 오송 지하차도 침수,

경북 산사태, 등 며칠 간격으로 반복하는 폭염과 폭우의

기후재난 일상화는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심각한 상황이다.

 

올해 빈곤철폐의 날 슬로건은 주거권 지금 당장이다.

빈곤과 불평등은 날로 심각해져, 이주대책 없는 재개발로

철거민은 속수무책 쫓겨나고, 반 지하 거주자는 수해로 목숨을 잃었다.

 

전세사기와 깡통전세는 가난한 사람의 삶을 궁지로 몰아넣는다.

동자동 쪽방촌의 공공개발도 3년째 밀쳐놓고 눈치만 보고 있고.

장애인은 집이 아닌 시설에 감금하여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게 한다.

 

윤석렬정권은 약자복지를 정권의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어려운 분들을 돕겠다고 강변하지만, 입에 발린 헛말일 뿐이다.

여태까지 약자복지 운운하며 가난한 이를 들러리 세워,

권리를 요구하는 약자를 탄압해 오지 않았던가?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더 이상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다.

국민을 우습게 여기는 거짓 정권에 철퇴를 내리고, 우리의 권리를 쟁취하자.

 

이날 거리대행진에 앞서 열린 사전집회는

빈곤사회연대 정성철 사무국장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집회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대표의 발언을 시작으로

노점상, 전세사기 피해자, 철거민들의 현장 발언으로 이어졌다.

 

박경석 빈곤사회연대 공동대표는 주거권을 쟁취하기 위해 함께 투쟁하자며 독려했다.

이 사회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 게으르네. 너 능력 없네. 너 못 배웠네. 너 여자네. 너 나랑 다르네.’

이게 바로 낙인이자 차별이고 격리이자 감금이라며 가난을 이유로, 못 배움을 이유로,

장애를 이유로 우리를 공격하는 권력자와 자본가들과 함께 싸우자고 촉구했다.

 

안상미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장은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국가가 정한 법과 제도

안에서 국가가 공인한 공인중개사를 통해 집을 계약했다. 그런데 전세사기의 책임은 피해자가 다 진다.

국가가 대책이라고 내놓은 건 무이자로 대출해 줄 테니 성실히 갚아라고만 한다며,

국가 제도 안에서 벌어진 일인데, 왜 임대인만 보호 하나?며 울분을 터트렸다.

이게 어떻게 개인의 거래? 윤석열 정부가 책임지고 해결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병찬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중랑지역장은 동대문구에서 벌어진 노점 강제철거 폭력을 고발했다.

지난 316일 새벽, 동대문구청에서 노점 리어카를 탈취해 갔다고 했다.

80대 할머니 노점상들이 어렵게 마련한 리어카를 도둑맞았는데.

노점상을 몰아낸 자리에다 화단을 깔아 놨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노점상의 생존권을 탄압하는 이필형 구청장은 각성하라,

끝까지 투쟁하여 노점상 생존권을 쟁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동자동 쪽방촌의 정대철씨를 비롯하여 홈리스 주거팀 활동가인

림보, 로즈마리, 요지, 달자씨가 등장하여 단막극을 선보였다.

 

줄거리는 정대철씨가 동자동 쪽방촌에 들어와 겪은 나날을 극화했는데,

동자동공공개발 발표에 따른 희망에서 점점 기대치가 줄어가며, 절망에 빠져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로인해 투쟁의 의지를 다지는 과정을 연출한 극인데, 장애에 의한 정씨의 어눌한 말투가 웃프기도 했으나,

어느 연극이 삶의 현실을 토해 내는, 이보다 더 감동적일 수 있겠는가?

 

그 외에도 기후단체, 공공운수노조의 연대발언과 민중가수의 열창도 있었다.

 

조직위는 투쟁결의문을 통해 더 높아지는 건물이 더 깊어지는 절망만을 의미할 때,

우리는 세상의 규칙을 바꿔야 한다. 노점상이 사라진 도시를 발전한 도시라고 말하지 말자.

휠체어를 외면하는 버스와 장애인을 채용하지 않는 노동을 묵인하지 말자.

가난한 이들을 빗물과 더위, 추위에 죽어가도록 방치하지 말자. 이대로는 살 수 없다.

빈곤 없는 세상을 만들자고 했다.

 

집회가 끝난 후 서울시 종로구 공평동, 안국동, 낙원동, 종로2가를 거치는 2km가량을 거리 행진했다.

캐리어를 끄는 퍼포먼스를 선보인 탈 가정 청소년, 강아지와 함께 행진한 시민,

돼지 분장을 하고 동물권을 외친 활동가 등 다양한 풍경이 펼쳐졌다.

 

빈곤과 불평등을 없애기 위한 우리의 요구

기만적인 약자복지 반대한다. 차별과 동정 말고 가난 이들에게 권리를!

기후위기 시대 주거는 기본권이다. 주거권 보장 지금 당장!

우리에게 더 많은 평등한 땅을, 공동 토지 민간매각 금지, 공공임대주택 확대!

 

사진, / 조문호

 

지난 12일은 이른 아침부터 아산에서 김선우가 올라왔다.

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선우가 강제로 병원에 데리고 가기 위해

병원 두 곳에다 예약까지 해 두고, 나를 꼼짝 못하게 만든 것이다.

얼마 전에는 강제로 한의원에 데리고 가, 복에 없는 한약을 먹게 하는 등

선우의 극성은 정동지도 못 말릴 정도로 지극정성이다.

 

  그날은 '경노의 달'을 맞아 용산구에서 마련한 찾아가는 어르신 문화행사'가

열리는 '갈월종합사회복지관'에 가기로 되어있어 입장이 난처했다.

 

  문화행사 취재보다 병원부터 갈 수 밖에 없었는데, 신사동 이비인후과부터 데려갔다.

한 쪽 귀는 완전히 들리지 않고, 한 쪽마저 청력이 가물가물한 심각한 상태다.

상대방의 입을 보고 말을 알아들을 정도의 귀머거리 행세를 한지가 꽤 오래되었는데,

귀에 문제가 있으면 어지럼증을 동반한다는 말에 보청기라도 구할 작정이었다.

 

 의사 앞에  죄인처럼 불려 앉았는데, 왼 쪽 귀는 귀지 덩어리가 막고 있어 귀지 빼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귀지를 녹여 간신히 빼 냈는데, 그 크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들리는 데는 전혀 도움 되지 않아 청력검사를 했더니, 예상대로였다.

 

  그러나 5개월 후에 다시 청력검사를 해도 그대로라면

장애진단을 내려 줄 수 있다는 의사 말에 귀가 번쩍 띄었다.

텅 빈 장애인 주차구역을 보고도 차 댈 곳이 없어 헤매는 어려움은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침 겸 점심을 먹은 후 두 번째 예약병원인 '청구성심병원' 으로 갔다.

정기적으로 진료를 받는 곳이라 별도의 검진 없이 술과 담배를 끊으라는 유의사항만 들었다.

선우와 정동지는 집으로 가고, 난 행사장으로 내달렸다.

 

  현장에 도착해보니, 100여명의 노인들이 나와 공연을 즐기고 있었는데,

판소리 수궁가가 장내를 뒤덮었으나, 추임새는 커녕 관람석은 조용했.

 

그런데 아무리 살펴보아도 동자동 쪽방촌에서 온 노인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방에 갇혀 있는 것보다 사람들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데다,

선물까지 준다는데 왜 오지 않았을까? 마음의 여유가 없는 듯해 더 짠했다.

 

  노래는 뭐니뭐니해도 신나는 유행가가 최고였다.

두 번째로 등장한 가수의 남행열차노래 가락에 노인들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예쁜 가수가 객석을 돌아다니며 손까지 잡아주니,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이어 퀴즈 게임이 시작되었는데, “어떤 여자가 서울에서 부산까지 걸어갔는데,

그 여자를 세 글자로 말해보라는 것이었다.

대답하는 분이 없어 웃기려고 미친년이라고 말했더니 맞단다.

그다음에는 부산에서 서울까지 걸어 온 여자를 네 글자로 말하라는 퀴즈가 나왔는데,

별의 별 답이 다 나왔으나 마지막에 손든 분의 아까 그년이 정답이란다.

 

  오후330분부터 시작된 노인잔치는 한 시간 가량 이어졌는데, 덕분에 건강곡물을 퀴즈상품으로 받았다.

겨울용 상의와 먹거리 등 얻어 온 선물도 한 보따리나 되었다.

 

자랑하러 녹번동부터 달려갔는데, 정동지와 선우는 짐 옮기느라 정신없었다.

계절이 바뀌면 발동하는 정동지의 세간살이 옮기는 병이 도진 것 같았다.

비좁은 집에서 옮겨보았자 거기가 거기건만, 그 무거운 책과 장을 이방에서 저 방으로 옮겨 가며

환경에 변화를 주어야 직성이 풀리는 정동지의 취미생활은 못 말린다.

 

  다른 때는 내가 없을 때 혼자 낑낑거리며 하는데, 이번에는 선우 온 틈을 이용하여 일을 벌인 것 같았다.

선우는 늦게까지 붙잡혀 일하다 밤늦게 아산으로 떠나는 모습이 영 안 서러웠다.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 않는 방법은 건강하게 사는 것뿐인데,

몸이 송장이나 마찬가지니 이를 어쩌겠는가?

 

사진, / 조문호

 

 

 

박갑석 47 세

빈곤은 늙은이보다 젊은이가 더 문제다.

쪽방 살거나 노숙하는 사람 중에는 젊은 친구도 더러 있는데, 대개 아들 같은 4, 50대로

한창 자식 키우며 신나게 일할 나이에 장가도 못 가고 거리를 떠돈다.

지병이 있어 장애등급을 받으면 쪽방이라도 들어올 수 있지만,

대개 주민등록에 문제가 있거나 장애등급을 못 받아 노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 중에는 알콜 중독자가 많은데, 문제는 자포 자기하며 산다는 것이다.

 

모처럼 공원에 나갔더니, 짜장면 나누어 주던 봉사원들이 일을 끝내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지경학이는 짜장면을 먹다 말고 맹숭맹숭하게 앉아 있었다.

술 생각은 간절하나 돈이 없어 물주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소주 한 병에 육포 하나 사서 같이 술 한잔했는데,

술이 들어가니 마음이 편안해지며 불안감이 사라진다고 했다.

 

경학이는 이제 쉰 둘인데, 내가 오기 전부터 동자동에서 머문 오래된 사이지만.

사진 찍히는 것을 유달리 싫어해, 찍은 사진이 별로 없다.

모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보니, 사진을 안 찍는 별다른 이유도 없었다.

세수도 하지 않은 구질구질한 모습을 남기기 싫어서 란다.

 

입버릇처럼 말해 온 남는 것은 사진 뿐이라며,

자존감 나온 얼굴 사진이라도 한 장 남겨야 할 것 아닌가? 라고 말했더니,

자존감이 밥 먹여 주냐고 구시렁대며, 얼굴을 내밀었다.

 

지경학 52 세

그러나 기념사진은 찍을 수 있으나, 초상 사진은 다음에 찍자며 미루었다.

'사진에 술 마신 표가 나냐?'며 되물었지만,

정신이 온전할 때 찍기로 한 나름의 원칙은 지켜야 한다며 설득했다.

 

그 와중에 이재안씨를 비롯하여 유정희, 정수일 등 여러 명이 등장했다.

유정희씨는 품속에 감추어둔 막걸리 한 병을 꺼내 놓았고,

수일이는 배가 고프다며, 경학이가 먹다 만 짜장면을 먹었다.

한 시간도 더 지난 짜장면이라 불어 터졌지만, 배가 고팠는지 맛있게 먹었다.

 

수일이는 요즘 춘천에서 살고 있는데, 재미가 없어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가오로 항상 나이방을 끼고 다니지만 도통 먹히지가 않는다며, 사진이나 멋지게 찍어 달랜다.

 

정수일47세

젊은이 초상사진으로는 지난 '추석 한마당'에서 찍은 강 호와 박갑석씨도 있는데,

다들 하루속히 안정된 일자리를 얻어 젊은 꿈을 펼치길 바란다.

 

강호 59 세

서울문화재단에서 실시한 원로작가지원사업의 도움으로 시작했던,

버려진 사람들의 초상사진은 이달 말까지 찍은 사진으로 일단 마감해 정산하기로 했다.

 

장정된 초상사진은 오는 동짓날(1222) 정오부터 오후 5시까지 새꿈공원에서 나누어 드릴 작정이다.

오후 6시부터는 서울역광장에서 '홈리스추모제'도 열리니, 찍힌 분들은 그 날 찾아가기 바란다.

공원에 먼저 가신 분을 위한 조촐한 추모의 술상도 마련할 테니, 소주라도 한잔하면서...

 

이 초상 사진 나눔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사람 없는 초상 사진을 없애기 위해 살아 있는 동안은 지속적으로 찍을 작정이다.

개인이 해결하기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 제도개선을 위한 시발점이기도 하다.

 

한평생 힘들게 살다 죽는 것도 억울한 데, 죽어서 까지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이건 인간 존엄에 대한 모독이다.

"제발 인간을 모독하는 얼굴 없는 유령은 만들지 마라! "

 

사진, / 조문호

 

 

 

전시 치루는 일이 힘에 부치는 걸 보니, 이제 몸이 다 된 것 같다.

보름동안 치룬 정영신의 혼자 가본 장항선 장터 길돕느라 혼 줄이 났다.

전시 끝난 지가 제법 지났건만, 아직도 맥을 못 추고 있다.

틈만 나면 더러 눕고 싶지만, 일을 놔두고 어찌 잘 수만 있겠는가?

요즘은 하루 한 번씩 식사하러 갈 때 외에는 컴퓨터만 끼고 산다.

 

 서울시에서 준 '이름다운 동행 사업' 무료 식권이 없었다면, 죽어도 밖에 나가지 않을 것 같다.

그 날 먹지 않으면 없어지는 돈이 아까워 어쩔 수 없이 챙겨 먹는 것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동자동 사는 노인 대부분이 비슷한 실정일 게다.

없는 자들의 끼니를 해결해 주는 좋은 일이지만, 움직여야 살 것 아니겠는가?

고독사를 줄이는데 서울시의 식권사업이 크게 기여하고 있다.

쪽방 촌에 한정할 게 아니라 전국 독거노인에게 확대해야 할 복지사업이다.

 

동자동에 정해진 식당만 열 곳이 넘지만, 늘 가는 곳만 간다.

처음엔 중국집 등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골라 먹었으나, 지금은 두 집만 다니며 집 밥처럼 찾아 먹는다.

다들 김밥집으로 몰려 그 집만 파격적인 매상을 올려주지만,

한 달 전 그곳에서 먹은 콩국수에 배탈 나, 온종일 쏟아 부은 적도 있다.

이후부터 그 식당은 발길을 끊었는데, 여름철엔 위생이 최우선이다.

 

지난 7일엔 식당 찾아가다 일전에 초상사진 찍은 이기영씨를 골목에서 만났다.

잠시 기다리게 하고, 다시 쪽방에 올라가 뽑아 둔 사진을 가져다 주었는데,

옆에 있던 채남규씨가 자기 방에서 한 잔 하자며 팔을 잡아 끌었다.

채씨는 쪽방 들어온 지 20년이 넘는 선배 격이지만, 평소 데면데면한 사이였다,

같이 술자리를 했거나 특별한 연이 없으면 인사도 나누지 않는 이웃이 많다.

내성적인 성격이라 때로는 오해 받는 경우도 있지만, 천성이 그런 걸 어쩌겠는가?

 

아마 자기도 초상사진을 찍으려고 나를 방에 데리고 간 것 같았다.

경기여인숙’ 2층에 살고 있었는데, 코 구멍만한 방세가 한 달에 32만원이란다.

방세가 비싼 줄 알지만, 방세 싼 곳 찾기도, 옮기기도 귀찮아 눌러 산다고 했다.

방안에서 초상사진을 찍고 나니, 막걸리를 내놓았다.

먹는 약 때문에 술은 마실 수 없었지만, 사는 이야기를 들었다.

 

올 해 64세인 채남규씨는 전라도 부안이 고향으로, 반평생을 미장 일하며 살았단다.

그러나 다리를 심하게 다친 후로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용산구청의 자활근로사업에 나가는데, 그것도 반타작이라 한 달에 팔십만원 받는단다.

방세주고 술값 제하면 남는 것도 없지만, 절약한 덕에 백만 원이나 통장에 남았다며 자랑 질이다.

술을 마시는 동안 수시로 오줌이 마려워, 방안에서 페트병에 소변을 보았다.

파리 눈물만큼 나오는 오줌을 모아 한꺼번에 버린다는데, 그 일도 예삿일이 아니었다.

 

자활 나가면 무슨 일 하느냐고 물었더니, 숙대 입구에서 담배꽁초 줍는 일 한단다.

제일 무료한 일이 담배꽁초 줍는 일이라 했더니, 맞다며 맞장구 쳤다.

주울 꽁초만 있다면 시간 보내기는 안성마춤이나, 주울 꽁초가 없어 지루해 미치겠다며 투덜거렸다.

자활이란 게 가난한 사람 돕기 위한 복지사업이지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다른 일은 없을까?

 

이런 저런 신세타령을 듣는 중에 채씨의 전화기는 계속 울어 댔다.

간다 간다 하면서도 일어 서질 않아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급한 일이 생긴 후배에게 돈을 빌려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마음이 좋아 남이 어려운 사정을 두고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같이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없는 사람이 인심 좋은 건 말 할 필요도 없다.

 

다시 골목으로 돌아오니, 이번엔 김상진씨가 나와 있었다.

그는 동자동에서 몇 안 되는 먹물로 인문학에 관심이 많다.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는지 나에 대한 정보를 훤히 알고 있었다.

김상진씨는 사진을 두차례나 찍었으나, 내키지 않아 다시 찍을 참이었다.

 

처음엔 눈물이 고여 실패했고, 두 번째는 나의 실수였다.

짝을 때 좀 많이 찍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한 자리에서 두세 컷 찍고 끝내니,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더러 생긴다.

평소의 촬영 습관이라 어쩔 수 없는데, 이번에 찍은 사진도 마찬가지다.

세 차례나 찍는 경우는 없었는데, 아마 좋은 초상을 찍을 특별한 인연인 것 같았다.

 

 새꿈공원에서 유정희씨를 만났는데, 술이 취해 길바닥에 퍼져 있었다.

만나기만 하면 사진 달라고 졸랐는데, 술이 취해 챙기지 않을 것 같아 걱정되었다.

 

정재은씨는 유씨에게 빌려 준 돈 내놓으라며 으름장을 놓고 있었는데,

돈 생기면 술 마시기 바빠 갚을 여유가 없는 것은 불을 보듯 훤했다.

 

공원 안쪽에는 자선단체에서 무료 법률 상담을 나왔는데, 이준기씨도 상담 받고 있었다.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모르지만, 그런 곳은 갈 일 없는 것이 상책이다.

 

요즘은 '法' 법자만 들어도 몸서리가 친다.

무력으로 밀어 부친 군인들이 판을 친 군부시대에는 저항할 힘이라도 생겼지만,

남의 뒷구멍이나 뒤져 독제하는, 군부보다 더 무서운 검부시대에 살고 있다.

 

공원 한 쪽 구석에는 어떤 낯선 이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었다.

애잔한 선율이 공원으로 번져 나갔는데,

무슨 곡인지 모르지만 돈 없고 힘없는 사람을 위한 소나타라 이름 붙여 본다.

사진, / 조문호

 

길가의 이병호씨가 휠체어에 깔려 있었다.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그 앞에 쪼그려 앉았는데,

술 취해 휠체어 바퀴에 머리를 집어넣고 잠들었다.

 

세상에! 한때는 중령까지 지낸 장교 출신 꼴이 이게 뭔가?

그는 걸어 다니질 못해 얼마 전 새 휠체어 하나를 얻었는데,

그걸 잃어버릴까, 바퀴 틈에 머리를 끼고 자는 것 같았다.

 

누가 휠체어를 건드리면 다칠 것 같아 깨웠더니, 게슴츠레 눈을 떴다.

나를 보더니 귀찮다는 듯 다시 눈을 감기에 일어나서 술 한 잔 하라고 말하니

그때야 휠체어에서 빠져나오려고 꼼지락거렸다.

 

부축해 일으켜 앉혔더니, 술 달라는 듯 마시는 시늉부터 했다.

물이나 우유를 갖다 줄까?”라고 물었더니, 손을 내저었다.

그렇게 고주망태가 되었지만, 정신만 차리면 술부터 찾았다.

 

구멍가게에서 우유 한 팩과 소주 한 병 사 와 우유부터 한 컵 따라주었더니,

한 모금 마시고는 토할 것처럼 불편해 했다.

그 대신 술을 한 모금 마시더니, 마약처럼 얼굴이 풀렸다.

술 없이는 견딜 수 없는 이런 노숙자를 구제할 방법은 없을까?

 

'김밥천국' 앞에는 위수범씨가 쪼그려 앉아 있었다.

그 역시 알콜 중독 증세가 있지만, 술을 참으려고 애쓰는 편이다.

다들 넋 잃은 사람처럼 멍하게 쳐다보는 모습이 안쓰럽기 그지없다.

 

'새꿈공원' 입구에서 한동안 보이지 않던 유정희씨를 만났다.

 

찍어 둔 초상사진을 전해주려고, 오래전부터 가방에 넣고 다녔으나 보이지 않았다.

몸이 아파 병원 간 줄 알았는데, 얼굴이 좋아져 한 달 만에 나타난 것이다.

어디 갔다 왔냐고 물었더니, 벌금을 못내 감방 살다 왔단다.

술 마시지 않고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으니, 몸이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알콜 중독자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같았다.

 

요즘은 찍어 준 초상사진을 다시 찍는 경우가 더러 있다.

임백수씨를 비롯하여 이상준, 이기영씨를 다시 찍었다.

 

가능하면 본 모습을 부각하려고, 멋 부린 것들은 가급 적 내렸는데,

왜 사나 가오를 죽이냐?’는 임씨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말이 맞았다. 안경이나 모자 하나라도 그 사람에게는 자존감이었다.

그 이후부터 찍힐 사람이 좋아하는 대로 사진을 찍는다.

 

그날은 연세가 많아 기력이 없는 김수안씨가 영정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옆방에 살지만, 꼼짝하지 않으시고 하루에 한 번씩 식사하러 갈 때만 나오시는데,

늘 교회에서 기도하러 오시는 분들을 기다린다.

아마 천국 가실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내가 동자동에 살며 느낀 것은 다들 죽음을 겁내지 않는데 있다.

고통스러운 이승보단 저승이 편할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상 영화를 누리면 누릴수록, 가지면 가질수록 욕심은 더해지고,

목숨에 대한 집착도 강해지는 법이다.

 

죽는 걸 겁내지 않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다.

가진 것 없는 빈자의 특권이다.

 

사진, / 조문호

 

오는 12월, 쪽방 건물 벽면에 '버려진 사람들의 초상' 사진을 전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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