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반가운 벗들을 만났다.
출감 후 며칠 동안 두문불출했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무슨 벼슬하고 온 것도 아닌데,
여기저기 전화 받기가 머쓱해 핸드폰을 없애버렸으나
정영신씨를 통한 쓰리 쿠숀으로 쳐들어 왔다.




사실, 구치소에서 작심한 것이 여럿 있었다.
그 중 핸드폰을 없애는 일과 페북을 끊는 것도 있는데,
전화 없애는 일은 간단했으나, 페북 탈퇴는 작심 삼 일을 못 넘겼다.




결국 출소 이틀 만에 글을 올리고 말았는데,
페북이 마약보다 중독성이 강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그렇지만, 하루에 한차례만 접속하기로 다짐에 다짐을 한다.



 
첫날은 정영신씨와 함께 일하는 ‘예술인협동조합’ 서인형씨가 찾아와
녹번동 ‘풍년집’에서 돼지 한 마리 잡아 몸보신 시키더니,
지난 주말에는 김명성씨 전화를 연결시켜주었다.




진관동 집 부근에서 같이 점심이나 먹자는데,
시인 조해인씨도 와 있었고, 뒤 따라 김상현씨를 비롯하여
‘뮤아트’에서 음악 하는 낭자들도 셋이나 등장했다.




북한산 아래 ‘북한산 메기탕’에서 메기탕을 끓였는데,
수제비를 뜨도록 밀가루 반죽까지 넘겨주었다.
쪼물락 쪼물락 만지는 촉감이 꽤 좋을 것 같았다.
“아~ 옛날이여!”




술자리가 끝난 후, 김명성씨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청운씨가 그린 석양 포구에서 듣는 음악이 그리워서다.



그 날은 보슬비 내리는 창밖 풍경까지 한 몫 한 것은
북한산을 휘감은 구름이 장관을 연출해서다.



어찌 이 분위기에 술이 없을소냐?
중국집에서 유산슬 시켜 또 한잔 걸쳤는데,
김상현씨가 선곡한 음악까지 죽였다.



황금심의 ‘외로운 가로등’을 비롯한 축음기 시절 노래가 흘러나왔는데,
코맹맹이 음색의 간 들어진 노래 소리가 봄비마저 울렸다.



그날은 눈물의 여왕으로 불렸던 전설적인 여배우 전옥 노래까지 나왔다.
배우 최민수씨 외할머니였던 전옥의 창법은
가슴 속 가라앉은 슬픔을 끌어내는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전옥이 출연하고 주제가를 부른 '항구의 일야' 레코드자켓

봄비와 노래가 작당하여 늙은 놈 가슴을 후벼 팠다.
재미있게 살기로 한 시작치고는 결코 만만치 않았다.



 
설거지를 끝낸 김명성씨가 새로 나온 명함을 한 장씩 돌렸다.
주식회사 ‘아트해피니스’ 연구실장이라 적힌 명함인데,
‘행복’이란 글씨가 도드라졌다.
김구선생 필체라는데, 글체처럼 뭉툭한 행복이 찾아들었으면 좋겠다. 


 

빨리 코로나가 끝나야 한옥마을에서 걸쭉한 잔치 한 판 벌일텐데...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주말, ‘코로나’에 겁먹어 방구석에 처박혀 사는  이 비상시국에 김명성씨로부터 연락이 왔다.
요즘 그가 어떻게 지내는지도 궁금했지만, 온몸이 근질근질 하던 차에 냅다 진관동으로 달려갔다.


 

‘한옥집’이라는 삼겹살 집을 물어물어 찾아 갔더니, 김명성씨와 김상현, 심재문씨가 와 있었고,
나중에는 전활철, 유진오씨가 나타났다.



 
이른 시간부터 인사동에서 한 잔하고 오는지, 둘 다 술이 거나하게 취해 들어왔다.
오랜만에 반가운 사람 만나 삼겹살 구워 술 한 잔 했다.




김명성씨는 독립운동자료 기획전을 추진하다 연기했다는데, 사태가 진정되면 전시를 열 모양이었다.
빨리 전염병이 사라져야 ‘한옥마을’로 봄나들이 갈 텐데, 일정이 맞아 떨어질지 염려된다.
이 달 중 20일 동안 어디 갔다 와야 할 일이 있어서다.




술자리가 끝나 김상현씨와 김명성씨 집에 차 한 잔 하러 갔는데,
혼자 사는 집이 티끌 하나 없이 반들반들 했다. 참 부지런하고 꼼꼼한 친구였다.
요즘은 음악에 심취해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다.




마침 Ravel의 ‘Bolero’가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음악에 미쳐 살던 아득한 옛 날이 떠올랐다. 
Deep purple의 ‘April’이 생각나 신청하였더니, 김상현씨가 찾아서 들려 주었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노랫말처럼, 잔인한 4월을 맞을 것 같은 예감이었지만,
음악이 흐를수록 희열이 느껴졌다.




뒤이어 김상현씨가 선곡한 ‘Black Orpheus’ 반주에 푹 빠져 들기도 했는데,
추천 곡으로 ‘Once upon a time in america’도 시간나면 들어보라고 권했다.




음악도 마약 같아, 한 번 빠져들면 끝이 없어 겁난다.
젊은 시절엔 삼천여장이나 되는 LP판을 처분한 적도 있었는데, 왜 적당히 즐길 줄 모를까?




모처럼 옛날 생각하며 음악에 취한 즐거운 밤이었다.
밖에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는데, 왠지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이 나이에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ㅉㅉ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일요일 '천상병기념사업회' 이사장 김명성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 성씨가 왔는데, 별일 없으면 집에 놀러오라는 것이다”
별 일도 없지만, 구로구청장 이 성씨 본 지가 오래되어 진관동으로 달려갔다.

이성씨에게 제일 궁금한 것부터 물어보았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냐?”고 물었더니, 한마디로 안 한다고 했다.
할 만한 사람은 관심 없고, 썩어빠진 인간들만 몰리니 정치판이 개판 아닌가?




창밖 풍경은 을씨년스러웠다.
나뭇가지에 쓸리는 “솨~솨~”하는 바람소리가 겨울을 재촉하고 있었다.

김명성씨 독립운동자료전을 비롯한 은평 한옥마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김명성씨 더러 은평구청장을 한번 만나보라며 이성씨가 다리를 놓았다.
허물없는 사이인지 일요일인데도 김미경 구청장께 전화를 걸었다.


좀 있다 저녁식사라도 같이 하자고 답이 온 모양인데,
한참 후에 나타난 김미경 구청장이 정희석 은평구 정책관을 대동했다.
김명성씨는 물론 나 역시 김미경 구청장을 처음 만났다.
오죽하면, 선거 포스트 사진보다 훨씬 인간적이라는 소리까지 했을까?




진관동 일대를 문화관광벨트로 엮기 위해 애 쓰는 은평구청장과
진관동 주민이며 문화전략가인 김명성씨의 만남은 예사롭지 않았다.

구체적인 논의보다 첫 인사나 나누는 만찬자리였으나,
돌아가는 분위기가 은평 한옥마을에서 좋은 일들이 벌어질 것 같았다.

은평구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관광 체험 도시’를 만들고 있다.
수려한 북한산자락에 들어 서 있는 100여채의 한옥마을을 거점으로
2025년까지 옛 기자촌 자리에 “국립한국문학관”을 건립한다.
그리고 문화 예술인들이 창작 활동을 펼치고 시민들이 예술 체험을 즐기는
문화 아지트(예술인마을)도 조성할 계획이다.
진관동 일대를 ‘문화·관광 벨트’로 엮는다는 구상이다.




영원한 사진동지 정영신씨도 은평구에서 수 십 년을 살았지만,
아들 햇님이도 은평구에 산지가 오래되어, 여자로 치면 은평구가 친정 같은 곳이다.
이왕이면 친정 동네에 문화아지트 생기면 좋지 않겠는가.

전시장도 여러 군데 있다니, 좋은 전시를 유치하는데 힘을 보탤까 한다.


더구나 은평구 응암동에는 천재화가 이청운씨가 살지 않는가.
지금은 병석에 있지만, 대부분의 이청운 걸작들이 응암동작업실에서 탄생했다.
그리고 김명성씨는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의 진귀한 자료를 대부분 소장하고 있지 않은가.
얼마 전 그 많은 자료를 촬영하여 데이터 베이스화 했는데, 대관절 나라에서 그동안 뭐했는지 모르겠더라.

그처럼 역사를 소홀하니, 역사를 뒤 집는 인간도 생기지 않더냐.
그 방대한 자료를 한 번에 전시하려면 '국립현대미술관' 전관을 빌려도 안 될것 같았다.

아무튼 은평구가 우리 문화예술의 거점으로 우뚝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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