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당'은 손님을 받을 수 있는 테이블이 세 개 뿐인 인사동에서 가장 조그만 찻집이다.
최정해 보살이 30여 년 동안 지켜 온 이곳은 인사동의 온갖 사연이나, 인사동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많은 뒷이야기를 담고 있어, 인사동 인문학의 보물창고나 마찬가지다.

한 때는 '초당'과 쌍벽을 이루던 '수희재'도 있었으나 아쉽게도 몇 년 전 문을 닫고 말았다.

'초당'은 많은 손님을 수용할 수도 없지만 조용한 분위기를 헤칠까봐  알려지는 것 자체를 조심스러워 했다.

그러나 전통 차를 즐기는 메니아들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음을 양해 바란다.

이 찻집의 특징은 4-5가지 차를 코스로 끓여 낸다는데 있다.
술 마신 다음날 마시면 좋다는 홍삼말차 코스,

으슬으슬 몸살기운이 있을 때는 여섯 번 끓여 낸 쌍화차와 편강이 특효다.

목감기나 기관지염에는 오미자차와 석죽차가 좋고,

거칠어진 피부를 부드럽게 하려면 백련잎차를 맛보라.

그리고 추위나 스트레스를 날리려면 솔 바람차가 적격이란다.

그 외에도 구절초 꽃차를 비롯한 다양한 차들이 있으나,

차를 달여 내는 방법이나 정성이 다른 가게와는 확연히 다르다.

무쇠화로와 맥반석주전자로 끓여내는 초겨울의 한방차효험은 보약에 버금간다고 한다.

찻값은 10,000원, 15,000원, 20,000원 등 세 종류가 있다.

가격이 만만찮은 데다 카드결재가 안 된다는 것도 유념해야 한다.

위치도 마음먹고 찾아가지 않으면 눈에 띄기 어려운 곳에 숨어있다.

조계사 맞은 편 골목으로 들어가면 서인사마당주차장이 나온다.

그 옆에 '목인박물관'이 있는데, 그 박물관의 정문 옆 건물 1층에 자리하고 있다.

인사동을 드나드는 문화계인사나 스님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분위기 또한 조그만 법당에 들어 온 듯 고적하다.

지난 18일, 우연히 방문한 '초당'에는 사천의 철오스님과 자혜등 보살이 차를 마시고 있었다.

차 이야기를 하고 있던 초당보살이  몇 년 만에 들린 나의 무정한 발길에 화들짝 놀란 것이다.

'초당'벽에는 20년 전 걸어 준 나의 '사천왕상' 사진이 아직도 걸려있었다.

사실 '초당'은 가난한 사람들이 들리기는 다소 부담스러운 집이다. 

싸구려 좌판기 커피 맛에 길들여져, 전통차를 좋아하지 않는것도 들리지 않은 원인이었다.

손님만 없었더라면 단골손님들과 초당보살의 근황에 대해 묻고 싶은 것이 많았으나,

이름도 성도 모르는 차만 마시고 나와야 했다.

 

 

사진,글 / 조문호

 

 

 

 

 

 

 

 




과실 발효한 진한 맛 찻집 즐비
귀천 전통다원 달새 소금인형 등

 

 



 

'남주북병(南酒北餠)'이라는 표현이 있다. 한양 도성의 남쪽 사람들은 술을 잘 마시고 북쪽 사람들은 떡을 잘 먹는다는 이야기다.
남북을 가르는 경계는 청계천이다. 한양의 남쪽 끝은 청계천이었다. 남쪽은 남산 기슭이다. 도성 밖, 무반(武班)들이나 딸깍발이 선비들이 살았던 곳이다. 가난한 곳. 예나 지금이나 벼슬이 낮거나 가난한 사람들은 가슴에 맺힌 한이 많다. 술로 풀 수밖에 없다.
북쪽은 경복궁 일대를 말한다. 오늘날 삼청동 일대는 북촌이다. 고위직 관리들을 비롯하여 행세하는 이들이 살았다. 넉넉한 이들은 떡 상을 받았다. 떡은 반가에서 나온다. 낙원동 일대에 떡집이 많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북촌에 가깝기 때문이다. 수요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인사동도 북촌, 경복궁과도 가깝다.

떡은 차와 어울린다. 밀가루에 비해 화려한 맛이 부족하고 빵이나 케이크에 비하면 심심하다. 그래서 케이크는 커피와, 떡은 차와 어울린다. 케이크는 강하고 맛이 짙다. 커피도 마찬가지다. 떡은 은은한 맛이 깊다. 차도 그러하다. 북촌, 떡집과 가까운 인사동에 찻집들이 많은 것도 우연이 아니다.

한국의 차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다는 표현은 틀렸다. 한국의 차 문화는 나름 그 독특함이 있다. 차를 덖고 말리고 찌는 과정은 일본이나 중국보다 번거롭고 손이 많이 간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차는 가볍게 발효한다. 중국의 우롱차나 일본의 말차보다 은은하고 부드럽다. 일상적으로 차를 마시는 문화가 보편화되지 않았을 뿐이다. 국수주의적이거나 자학적인 사관으로 분석할 일이 아니다. 한국의 음식에 맞는 차 문화가 있었을 뿐이다. 김치, 된장, 청국장을 먹고 차를 마셔도 입이 개운해지지는 않는다. 발효음식이 많은 한식을 먹고 나서 차로 입가심을 하면 아무래도 부족하다.

우리의 전통적인 후식은 숭늉, 곡차다. 곡물을 익히고 태워서 만든, 그 무엇보다 심심하지만 깊은 맛을 낸다. 된장찌개를 먹고 난 후에는 숭늉이 제격이다. 그래서 전통찻집이 많은 인사동에서도 맑은 녹차보다는 과실을 직접 발효한 진한 맛의 찻집들이 많고 인기 있다. 굳이 한국식 차 문화를 이야기하자면 "맑은 음식을 원했던 불교와 가깝다"고 표현해야 한다.

'경인미술관전통다원'은 인사동의 랜드마크 중 하나다. 단순한 미술관은 아니다. 그 안에 차를 마실 수 있는 실내 공간과 야외 공간이 널찍하게 있다. 인사동 마니아들은 전통다원의 야외에서 차 한 잔 마시는 걸 인사동 나들이 주요 목표(?)로 삼기도 한다. 전통 한옥이 갤러리와 찻집을 겸한다. 겨울을 제외하고는 야외석이 늘 인기 있다. 차를 주문하면 간단한 다과와 함께 나온다. 전통 차는 강하고 진한 맛 보다는 깨끗하고 깊은 맛이다. 구석구석 볼거리도 넉넉하다. 여러 전시회가 동시에 열리기도 한다. 가족단위로 방문하여 따로 관람을 해도 좋다. 널찍하면서 은은한 경치들은 덤이다.

'인사동'은 동네 이름 인사동을 그대로 가게 이름으로 정했다. 입구는 좁지만 내부로 들어갈수록 점점 더 넓어진다. '좁은 입구-좁은 실내-자그마한 마당-한옥 공간'으로 이어지는 특이한 구조다. 내부 공간은 꽤 넓고 특히 정원보다는 마당이란 이름이 어울리는 뒷마당이 아주 좋다. 전체적으로 분위기도 요란하지 않고 은은하다. 나무를 잘 사용한 공간이 아주 좋다. 실내의 따뜻하고 노란 조명이 공간을 밝힌다. 모과차, 대추차 등의 진한 맛을 내는 과실발효차들이 있다. 날이 따뜻한 봄철부터 가을까지는 실내 공간 뒤의 뒷마당이 좋고, 추운 계절에는 아늑한 한옥이나 앞의 좁은 실내 공간이 좋다.

'달새는 달만 생각한다'는 널리 알려진 로맨틱한 이름이다. 여기저기 인용도 많이 되고 있다. 제목은 류시화 시인의 산문집에서 이름을 따왔다. '달새'는 특정한 새의 이름은 아니다. 그저 종달새의 '달새'다. 1990년대 후반에 개업한, 제법 내력 있는 찻집이다. 쌈지길 뒤 작은 골목에 덩굴로 덮인 입구가 있다. 입구도 퍽 로맨틱하다. 1년 이상 숙성, 발효한 차를 내놓는다. 모과차가 향기롭기도 유명하다. 내부 공간은 오밀조밀하고 전통 소품들로 가득 차 있지만 난잡하지는 않다. 일본에도 널리 소개되어 일본인 관광객들의 방문도 잦다.

'소금인형'은 인사동 사거리 옆길에 있는 수더분하고 소박한 찻집이다. 내부는 갤러리처럼 깔끔하고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정겹다. 전통적으로 인기가 있는 모과차와 더불어 한층 업그레이된 모과빙수가 인기다. 보기 드문, 맑고 깨끗한 차를 원한다면 장미차를 추천한다. 장미꽃 차다. 향은 화려지만 깊고 은은한 단맛이 있다.

'귀천'은 고 천상병 시인과 목순옥 여사의 러브 스토리와 가게 이름이기도 한 천 시인의 시 제목 '귀천'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인사동에서 가장 유명한 찻집이다. 이제 목순옥 여사도 '소풍'을 끝내고 떠났다. 친척조카가 이어받아 운영하는 걸로 알려졌다. 차보다는 분위기를 음미하는 곳이라지만 직접 담근 차도 수준급이다. 특히 팥빙수가 인상적이다. 팥과 떡, 약간의 마른 과일이 전부인데 깜짝 놀랄 만큼 맛있다.

'아름다운 차박물관'도 한번쯤은 가볼 만하다. 인사동에서 종로로 향하는 길, 한걸음 뒷골목에 있다. 깔끔한 한옥 갤러리이다. 다양한 차와 도구들을 볼 수 있다. 차의 종류에 맞춰 각양각색의 다기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녹차는 물론 꽃차, 지리산 하동 송주스님의 수제 차까지 다양하게 있다. '아름다운 차박물관'만의 메뉴는 홍차빙수다. 수북한 홍차얼음에 견과류는 따로 나온다.

주간한국/ 황광해 음식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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