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인사동은 많은 예술가들을 품어 준 어머니의 자궁 같은 동네였다.
가난한 시절이었지만, 인사동이 있었기에 위안 받을 수 있었다.
골목골목 먹 냄새와 술 냄새가 함께 익었다.






구멍 뚫린 주머니지만, 대포 한 잔으로 천하를 얻은 듯 깔깔거렸다.
무엇보다도 인정이 살아 동네가 훈훈했다.
이제 그러한 풍류는 오간데 없고, 추억마저 희미해진다.
돈 맛에 사람도 동네도 다 맛이 가버렸다.






다들 고무신 거꾸로 신은 인사동이 보기싫어 잘 나오지도 않는다.
아는 분들의 전시와 모임에나 나와 벽치기 골목 주막에서 술판을 벌일 뿐이다.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보고 한 장이라도 더 찍고 싶어,
매주 셋째 수요일마다 만나자고 나발 불지만,
지인들 전시 없으면, 몇 사람 모이지도 않는다.






지난 5일은 조준영시인이 연락한 모임이 있어 인사동에 나갔다.
그런데, 안국역 6번 출구에서 벽치기 골목으로 들어가려니
관훈주차장 벽을 등지고 장사하는 노점상이 하나도 없었다.
노점상을 할 수 없다는 ‘덕성학원재단’의 공고만 드문드문 붙어있었다.





공사장처럼 판넬을 쳐 놓는 것보다, 사람들이 웅성이는 것이 더 인간적이지 않을까?
주차장 영업은 물론, 행인들의 통행에도 별 지장 주지 않는다.
마치, 여기는 내 땅이라고 유세하는 것 같았다.






이 뿐이 아니다. 인사동 낭만의 마지막 보루인 벽치기 골목도 마찬가지다.
뚱보는 들어 갈 수도 없는 개구멍 같은 골목인데,
주차장 부지를 50cm만 당겨주면 좋으련만, 손톱도 들어가지 않는다.
최소한 아픈 사람이 통과할 수 있는 휠체어 정도는 통과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 골목으로 진입하면 인사동 16길과 연결되는데,
푸른별 이야기, 유목민, ‘유담’커피숍, 유진식당, 갤러리 ‘보고사’, 사랑채,
‘PEARL HOTEL’ 등의 업소를 가는 지름길이기도 해 통행량도 제법 많다.






그 길을 통과 하려면 누가 들어오는지 망부터 보아야 한다.
오죽하면, 그 골목 이름을 벽치기 골목이라 불렀겠는가?
벽에서 떡치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지나가는 사람마다 벽을 쳐,

담이 무너졌으면 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없는 사람 돈 좀 벌고, 조금이라도 편하게 다니는게, 그렇게 배가 아플까?
덕성의 교훈이 ‘사랑’으로 알고 있는데, 사랑은 무슨 시나락 까먹는 소리더냐?

사람 만드는 교육이 아니라, 돈 만드는 교육이더냐?






제발 돈만 생각하지 말고 사람 좀 생각하라.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18일 오전 무렵, 별 볼일 없이 인사동에 나갔다.
주말은 봄나들이 나온 관광객들로 붐빌 것 같아 금요일을 택했는데,

포근한 봄 볕 탓인지 거리가 유난히 정겨웠다.

유치원 어린이들의 재잘거림도 여기저기 들리고,
장대만한 흑인이 피에로처럼 머뭇거리는 모습도 만났다.
‘이즈갤러리’ 건물은 한국화가 김현정의 전시 광고로 뒤 덥혀 있었다.
4개 층 전관을 한 달 가까이 빌려 ‘내숭놀이공원’이란 전시이벤트를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인사동에 대한 향수를 달랠 수 있는 예스러움은 만날 수 없었다.


한 때, 80년대 인사동 낭만을 풍미한 민병산, 천상병, 박이엽선생의
동상을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가 추진된 적이 있었다.

‘아라아트’를 운영하는 김명성씨가 사재를 들여, 벤취에 앉히거나
골목 어귀에 세우기 위해 조각가 최옥영씨에게 맡겨 시안까지 만들었다.
그러나 그 뒤 김명성씨가 빚더미로 벼랑에 내몰리며 보류되고 만 것이다.

그 프로젝트를 서울시에서 물려받아 재추진하는 방법은 없을까?
지금 국적불명의 관광지가 된 인사동에 변화를 줄 수 있는 물꼬를 터야한다.
인사동만의 문화와 풍류를 위한 다양한 사실적 스토리텔링이 절실한 것이다.
그 분들의 동상을 만들어 앉혀, 인사동 거리분위기부터 바꾸어보자.

사진,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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